Se connecter프레데릭의 시점뉴욕의 비는 그 무엇도 깨끗이 씻어내지 못한다. 거리의 오물들을 더 끈적거리고 짚게 만들 뿐이며, 이 건물 안에 드리운 죄악들을 한층 더 무겁게 짓누를 뿐이다.벽시계는 새벽 2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스미스-존스 타워 건물은 어둡고 침묵에 잠겨 있어야 마땅했다. 보안등과 몇몇 비상등만이 불을 밝히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52층, 잠겨 있는 두꺼운 떡갈나무 쌍배문 뒤에서 나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내 앞의 거대한 마호가니 책상은 아수라장이었다. 지안이 모레티 계열사들로 흘려보낸 불법 송금 내역 서류 더미가 표면에 곰팡이 막이 생긴 식어버린 커피 잔 옆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눈이 화끈거렸다. 눈꺼풀 안에 모래가 가득 들어차 있는 것만 같았다. 폴라가 강제로 안겨준 코카인 금단 증상이 아직도 간헐적으로 손끝을 떨리게 만들었지만, 지금 내 손을 떨게 만드는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내 손을 떨게 만드는 건 그녀에 대한 생각이었다.헬레나.혹은 마틸다.아니면 새로운 얼굴을 쓰고 있는 그 유령의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나는 머릿속 안개를 털어내려 얼굴을 거칠게 문질렀다. 물이 필요했다. 어쩌면 술이든가. 하지만 서랍 속 위스키 병은 이틀 전에 비워버렸고, 나는 할머니와 나 자신에게 파티가 끝날 때까지 다시는 술에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정적에 싸인 방 안에 가죽 의자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나는 유리병에 든 광천수를 따르기 위해 사이드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그리고 그때, 그것을 보았다.내 마호가니 책상 한가운데, 지난날 오후에 내가 자랑스럽게 정리해 두었던 지안의 파일 더미 바로 위에 봉투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하얗고, 민무늬인.우표도, 수신인 이름도, 회사 로고도 없었다. 멀리서 가져왔음을 나타내는 그 어떤 얼룩이나 접힌 자국조차 없었다. 봉투는 마치 책상 표면에서 자라난 것처럼 그 자리에 고요히 놓여 있었다.내 심장이 1초 동안 완전히 멈추었다.그리고는 심장이 요동쳤다. 거칠고,
마틸다의 시점먼지 냄새, 재봉틀 기름 냄새, 그리고 식어버린 커피 향이 어두컴컴한 창고 안에 감돌고 있었다.나는 방 한가운데 있는 작은 단 위에 서서, 가장자리에 먼지가 뿌옇게 쌓인 거대한 거울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내 몸은 마리아가 골라준 딥블루 드레스로 감싸여 있었다. 차갑고 부드러운 실크 섬유는 내 몸의 곡선을 가혹할 정도로 정교하게 감쌌다. 마치 얼음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안토니오는 내 뒤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몇 십 년 동안 직물에 바늘을 찔러 넣으며 거칠어진 재단사의 손으로, 그는 내 종아리 주변의 드레스 자락을 정돈하고 있었다. 그는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핀을 찔러 넣었다. 때때로 바늘 끝이 살갗에 닿을 때면 차가운 감촉에 소름이 돋았다."너 너무 경직되어 있잖아." 안토니오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거칠고 피곤함이 묻어났다. "이게 무슨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입어야 하는 드레스인 줄 알아? 이건 전쟁용 갑옷이야. 어깨는 이완하되, 눈빛은 상대를 죽일 듯이 살아있어야지.""나도 이완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안토니오." 거울 속 그의 비친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당신 바늘이 3초마다 내 허리를 찌르고 있다고요."안토니오는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 그는 핀 하나를 뽑아 약간 왼쪽으로 다시 찔러 넣었다. "편안함을 찾는 거라면 작은 가게로 돌아가시지. 나중에 열릴 갈라(Gala) 파티에서 투자자들과 뉴욕의 엘리트들은 네가 불편해하는지 따위엔 관심도 없을 거다. 약해 보이면 너를 산 채로 잡아먹을 테니까."나는 숨을 참았고, 그 바람에 그는 내 허리께의 옷감을 더 세게 잡아챘다. "약해 보이지 않을 거예요.""좋아." 안토니오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내 주변을 돌며 앞으로 걸어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플 정도로 비판적인 시선으로 나를 스캔했다. "쇄골에 빛이 떨어져야 해. 등은 살짝 드러나야 하지만 결코 싸구려처럼 보이면 안 되고. 예전에
프레드릭의 시점저택 서재의 고풍스러운 괘종시계 소리가 내 두골을 내리치는 거대한 망치처럼 울렸다. 째깍. 째깍. 째깍.그 소리는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을, 그리고 사일런트 드롭 절벽 밑바닥에서 마틸다와 함께 죽었어야 했을 내가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쉼 없이 일깨워 주었다.나는 커다란 원목 책상 맞은편에 앉아 자선 가라 행사의 연설문 초안이 띄워진 노트북 화면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 속 글자들이 춤을 추듯 일렁이고 겹쳐 보였다. 눈이 욱신거렸다. 취조실에 있던 그날 밤 이후로 눈물은 이미 말라붙었기에 울어서 생긴 통증이 아니었다. 꼬박 사흘째 이어진 불면증이 가져온 통증이었다.몸은 휴식을 갈구하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근육은 납덩이처럼 무거웠고, 갈비뼈 안쪽에서는 심장이 불규칙하게 고동쳤다. 폴라가 강제로 먹였던 저급 코카인의 금단증상이 불쑥불쑥 위장을 뒤틀리게 만들었고, 죄책감은 목구멍을 태울 듯한 뜨거운 열기로 치밀어 올랐다."프레드릭."조용하던 서재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드러웠지만, 콘크리트마저 균열을 낼 만큼 육중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나는 본능적으로 허리를 곧게 펴며 떨리는 왼손을 책상 밑으로 숨겼다. 그리고 로자를 올려다보았다. 할머니는 늘 앉던 가죽 의자에 앉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자세로 도자기 찻잔을 들고 계셨다. 이마에는 주름 하나 없었고, 피로한 기색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여성은 순전히 강철과 야망으로 만들어진 존재였다."네, 할머니." 내 목소리는 거칠게 잠겨 있었다. 나는 얼른 목을 가다듬었다. "연설문 초안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필요하다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연설문 때문이 아니다." 로자가 내 말을 끊었다.그녀는 찻잔을 받침대에 내려놓았다. 달깍하는 가벼운 소리가 정적에 싸인 방 안에 아플 정도로 크게 울렸다. 로자는 바로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눈빛으로. 그것은 최고경영자가 하수인에게 보내는 눈빛도, 가문의 수장이
마틸다의 시점텔레비전 리모컨이 손바닥 안에서 미끄러운 것처럼 느껴졌다.오늘 밤에는 텔레비전을 켜지 말았어야 했다. 안토니오도, 엔조도, 심지어 평소에는 내 일에 관심도 없는 마리아조차 이렇게 말했었다. "갈라 행사가 끝날 때까지 스미스 가문과 관련된 뉴스는 절대 보지 마. 네 정신은 오직 집중하는 데에만 쏠려 있어야 해."하지만 나는 결국 텔레비전을 켜고 말았다.그리고 지금, 내 아버지의 고향 마을 하나쯤은 통째로 사고도 남을 가격의 검은색 가죽 소파에 앉아,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움켜쥔 채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뉴욕 증권가 속보입니다. 북아메리카 최대의 다이아몬드 기업 연합인 스미스-존스 가문이 거센 내부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소스에 따르면, 최고경영자 프레드릭 리암 스미스의 사촌인 지미안 스미스가 프레드릭의 지도력에 대한 불신임안을 발의하기 위해 위임장 주주들의 지지를 결집하고 있다고 합니다."화면 위에 지미안의 얼굴이 나타났다. 교활한 미소, 회색 정장, 그리고 먹이를 기다리는 뱀 같은 눈빛."오늘 낮 짧은 기자회견에서 지미안은, 지난달 사일런트 드롭 절벽에서 아내 마틸다 브라운 스미스가 사망한 비극 이후 프레드릭 리암 스미스가 겪고 있는 '정신적 불안정'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그는 프레드릭이 100년 넘게 이어져 온 가문 기업을 이끌기에 '부적격하다'고 평가했습니다."심장이 1초 동안 멈췄다.단 1초 동안만.그러고 나서 다시 뛰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박자가 엉망이었다. 지나치게 빨랐고, 지나치게 크게 울렸으며, 그리고…… 지나치게 불안했다.오, 하나님.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때까지 리모컨을 꽉 움켜쥐었다."전문가들은 지미안이 전체 주주의 25퍼센트 이상의 지지를 확보할 경우 이 불신임안이 성공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헨더슨 씨, 휘트모어 씨, 캘러웨이 씨를 비롯한 세 명의 대형 위임장 주주들이 지미안과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만약 그들
프레드릭의 시점스미스-존스 타워 52층의 이사회 회의실은 마호가니 목재와 페르시아산 카펫으로 공들여 꾸며진 조사실처럼 보였다.에어컨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차가운 온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니면 내 몸이 지나치게 뜨거워져 있던 것인지도 몰랐다.나는 긴 테이블의 끝에 홀로 앉았다. 내 앞에는 원래 이사회 임원들이 앉아야 할 일곱 개의 빈 좌석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 단 네 개의 자리만 차 있었다. 내 왼쪽에는 나의 운영 총괄 이사인 마커스가 앉아 있었다. 여전히 감히 나와 동행하려 드는 유일한 아군이었다. 그리고 테이블 맞은편에는 지미안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었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아침에 먹은 것까지 토해내고 싶어졌다.지미안의 옆에는 나이든 세 남자가 앉아 있었다. 헨더슨 씨, 휘트모어 씨, 캘러웨이 씨. 위임장 주주들이었다. 일찍이 내 두 손으로 아낌없이 배당금을 쥐여주던 그 사람들이, 지금은 마치 회사라는 유기체에서 도려내야 할 악성 종양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스미스 씨." 헨더슨의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그는 내 앞에 두꺼운 서류철을 펼쳐놓았다. "우리는 이 청원서에 서명한 소액 주주들의 32퍼센트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이에 스미스-존스 홀딩스의 최고경영자로서 귀하의 지도력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하는 바입니다."나는 움직이지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도 않았다."법적 근거가 뭡니까?" 내가 물었다. 내 목소리는 실제 내 심정보다 훨씬 건조하고 단조롭게 들렸다."회사 정관 제14조 제3항." 이번에는 지미안이 대답했다. 그는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미소를 더욱 짙게 지었다. "최고경영자의 정신적 불안정이 입증되거나, 회사 명예에 손상을 입히는 스캔들에 연루되거나, 신탁 의무를 다할 능력이 없다고 판명될 경우—이사회는 전체 주주의 25퍼센트 이상의 동의를 얻어 불신임안을 제출할 수 있다."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비서가 들어와 내 앞에 서류 한 부를 툭 내려놓았다.나는 그것을 열어보지도 않은 채 응시했다."알잖아, 프
마틸다의 시점이 조용한 아파트 복도에서 문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는 마치 사형 선고처럼 울렸다. 나는 안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무거운 문이 뒤로 닫히게 내버려뒀다. 툭. 자동 잠금장치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들렸다. 그리고 지나치게 단호하게.이 아파트는 호화로웠다. 엔조가 내게 '나만의 작전 본부'로 내어준 곳이었다. 하얀 대리석 바닥, 뉴욕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통유리창, 그리고 아버지가 예전에 일하던 마을 하나쯤은 통째로 사고도 남을 가격의 가죽 소파. 하지만 오늘 밤, 이 공간은 마치 내 유령의 안치소처럼 느껴졌다. 차갑고, 텅 비어 있었다. 외로움의 냄새를 헛되이 가리려는 인공 방향제 냄새만이 짙게 배어 있었다.나는 12센티미터 높이의 하이힐을 발로 툭 차 벗어던졌다. 긁히고 부어오른 발가락이 마침내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닿았다. 금이 가서는 안 되는 도자기 인형처럼 갇혀 지내야 했던 열두 시간 끝에,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는 허락을 받은 것만 같았다.메인 조명을 켜지도 않은 채, 나는 무거운 걸음으로 천천히 화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화장대 스탠드의 희미한 불빛만이 켜져 있었고, 벽면 전체를 채운 커다란 거울에 내 모습이 비쳤다.나는 멈춰 섰다.거울 속의 여인 역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완벽하게 조각된 광대뼈. 어린 시절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생겼던 턱의 희미한 흉터조차 없는 날렵한 턱선. 도톰한 입술, 오똑한 코, 그리고 햇살이나 눈물의 맛 따위는 결코 알지 못한 듯 매끄러운 피부.도시 교외의 집 한 채 값에 달하는 대가를 엔조가 지불하고 산 얼굴. 프레드릭 리암 스미스를 눈빛 하나로 죽여버릴 만큼 차가운 표정을 갖추도록 안토니오가 매일같이 벼려내는 얼굴.하지만 그 눈동자만큼은…….오, 하나님, 그 눈동자만큼은.그 어두운 갈색 눈동자만은 예전 그대로였다.늘 바닥을 향해 내리깔리던 눈. 프레드릭이 컵을 집어던지거나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모욕할 때면 언제나 용서를 구걸하던 눈. 그 차가 폭발하던 순간, '사일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