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7년 전 말없이 떠난 전 남친이 새 사장으로 돌아왔다. 취임식에서 서로 모르는 척한 서윤과 도현. 이제 도현은 서윤의 팀 기획안을 직접 검토하겠다고 한다. 일로만 대하려는데, 작은 배려와 스치는 손끝이 자꾸 신경 쓰인다. 팀의 앞날까지 불안한 지금, 서윤은 일도 마음도 지킬 수 있을까?
Ver más한서윤은 커피를 내려놓고 모니터를 봤다.
상품기획팀 공유 메일함에 전사 공지가 떠 있었다. ‘경영권 이전 및 신임 대표이사 취임 안내’. 날짜는 오늘이었다.
“야, 봤어?”
옆자리에서 오민재가 의자를 끌고 왔다. 서윤 쪽으로 모니터를 기울이며 같은 메일을 가리켰다.
“에이펙스캐피탈. 미국 투자사래. 대표가 직접 사장으로 온다는데.”
“읽었어.”
“근데 이름이 좀 낯익지 않아? 강도현.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데.”
마우스를 잡은 손가락이 멈췄다. 서윤은 손끝에 힘을 주었다가 풀었다. 민재는 눈치채지 못했다.
“흔한 이름이잖아.”
“그런가.”
민재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서윤은 메일을 다시 읽었다.
강도현.
3글자가 또렷했다. 32살. 미국에서 투자사를 운영하는 사람.
「동명이인이겠지.」
그런 사람이 세상에 1명만 있으란 법은 없었다. 그런데 마우스를 쥔 손이 차가워졌다. 커피에 손을 대려다 그만두었다.
7년이었다.
그동안 그 이름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누가 물어도, 혼자 있을 때도. 꺼내면 무너질까 봐서가 아니었다. 꺼낼 이유가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했기 때문이다.
잘 됐다고 생각했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보기 전까지는.
“서윤 씨, 취임식 11시래요. 1층 로비에서.”
후배가 지나가며 말했다.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를 1모금 마셨다.
미지근했다.
컵을 내려놓고도 손을 떼지 못했다.
◇
1층 로비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온리빙 직원 200여 명이 거의 다 내려와 있었다. 구조조정 소문이 도는 터였다. 새 사장 얼굴이라도 보자는 분위기였다.
박 팀장이 팀원들을 앞쪽에 세우며 넥타이를 고쳐 맸다.
“자리 잡아, 자리. 앞에 서야 눈도장이라도 찍지.”
민재가 서윤 옆에 섰다.
“긴장돼?”
“왜 내가 긴장을 해.”
“아니, 그냥. 사장이 바뀌면 분위기도 바뀌잖아.”
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로비 정면을 봤다. 임시 단상 위에 마이크가 놓여 있었다. 옆에는 다온리빙 로고가 걸린 배너가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비서로 보이는 여자가 먼저 나왔다. 뒤로 남자가 1명 걸어 나왔다.
검은 코트. 넥타이 없는 셔츠.
걸음이 빨랐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걷는 습관도 그대로였다.
서윤은 숨을 멈췄다.
동명이인이 아니었다.
강도현이었다.
7년 전보다 얼굴이 날카로워졌다. 턱선이 또렷했고 눈매는 차가웠다. 대학교 4학년 때 후드티 위에 패딩을 걸치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얼굴과는 달랐다.
그런데 왼발을 내딛을 때 어깨가 미세하게 기울었다.
서윤의 시선이 그 어깨에 머물렀다. 얼굴은 낯선데, 그런 작은 움직임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대로네.」
생각하자마자 입술을 다물었다.
도현이 단상 앞에 섰다. 로비가 조용해졌다.
“강도현입니다. 오늘부터 다온리빙 대표이사를 맡게 됐습니다.”
목소리도 달라져 있었다. 낮고 단단했다.
예전에는 좀 더 부드러웠다. 서윤에게 말할 때는 특히.
서윤은 맞잡은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 사이가 축축했다. 고개를 들자 도현의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회사를 살리러 왔습니다. 불필요한 것은 줄이고, 필요한 것에 집중하겠습니다. 여러분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박수가 터졌다. 성의 없지는 않았지만 열광도 아니었다. ‘불필요한 것은 줄이고’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서윤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모은 손을 그대로 두었다.
도현의 시선이 로비를 훑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서윤 위를 지나갔다.
멈추지 않았다.
서윤도 피하지 않았다. 도현의 눈을 마주할 때만 턱에 힘이 들어갔다. 들이마신 숨은 천천히 내보냈다.
「모르는 사람이야.」
7년 전에 아무 말 없이 사라진 사람은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도현의 시선은 로비 끝까지 갔다가 정면으로 돌아왔다.
“각 팀 기획안을 이번 주 안에 제출해 주십시오. 제가 직접 검토하겠습니다.”
로비가 웅성거렸다.
박 팀장이 서윤을 돌아봤다. 기획안은 사실상 서윤이 쓰고 있었다.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취임식은 그렇게 끝났다.
◇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서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눌렀다.
“한서윤 대리.”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서윤은 바로 돌아보지 못했다. 버튼에서 뗀 손끝이 허공에 잠깐 머물렀다.
누구인지 알았다. 그 목소리를 모를 리가 없었다.
천천히 몸을 돌렸다.
도현이 2걸음 뒤에 서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눈 밑에 그림자가 있었다. 잠을 못 잔 얼굴이었다. 서윤은 그 눈 아래를 보다가 시선을 올렸다.
이 거리에서 도현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세고 싶지 않았다.
“기획안 제출 일정 관련해서 팀장님께 전달 부탁드립니다. 금요일까지입니다.”
사무적인 말투였다. 눈도 그랬다. 서윤의 이름을 부를 때 한 글자도 흔들리지 않았다.
서윤은 입 안쪽을 가볍게 눌렀다. 목소리를 고르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도현과 같은 톤이었다.
말이 끊겼다.
1초. 2초.
서윤은 도현의 코트 깃으로 시선을 내리지 않으려 했다. 눈을 계속 보고 있자 숨 쉬는 소리까지 신경 쓰였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났다.
도현이 먼저 시선을 거뒀다.
“수고하십시오.”
돌아서서 걸어갔다. 코트 자락이 흔들렸다. 서윤은 그 등을 봤다.
7년 전에도 이 사람은 등을 보여주고 갔다. 그때는 아무 말도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서윤은 안으로 들어가 닫힘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는 동안 손을 내려다봤다.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을 접어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닿았다.
4층 버튼을 누르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형광등 불빛이 하얗고 차가웠다.
「괜찮아.」
숨을 내쉬었다.
「모르는 사람이야.」
◇
자리에 돌아오자 민재가 물을 1잔 내밀었다.
“얼굴이 안 좋아.”
“원래 이런 얼굴이야.”
“아니, 평소보다 더. 밥 안 먹었지?”
서윤은 물을 받아 1모금 마셨다.
민재는 더 묻지 않았다. 물어볼 건 물어도 선을 넘지는 않았다. 서윤이 말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기획안 금요일까지래.”
“금요일? 이번 주 금요일?”
“응.”
“미쳤다. 사흘밖에 안 남았는데.”
“있는 거 다듬으면 돼. 지난달에 정리해 둔 거 있잖아.”
민재가 한숨을 쉬었다.
“그건 그렇지만. 새 사장이 직접 본다며. 수준이 다를 텐데.”
서윤은 모니터를 켰다. 지난달에 만든 기획안 파일을 열었다. 반년 넘게 준비한 주방용품 신제품 라인업 제안서였다.
이걸 강도현이 본다.
키보드 위에 놓인 손가락이 멈췄다.
7년 전, 도현은 서윤의 시험 기간에 도서관 자리를 맡아주던 사람이었다. 발표를 준비할 때는 옆에서 타이머를 돌려주었다.
서윤의 일을 누구보다 응원하던 사람이었다.
이제는 평가하는 사람이 됐다.
서윤은 커서를 움직이지 않았다. 화면을 보고 있는데 로비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자꾸 생각났다. ‘한서윤 대리.’ 이름 뒤에 붙은 말까지 낯설었다.
물컵을 잡았다가 놓았다.
「지금은 일이야.」
타이핑을 시작했다. 감정은 나중이었다. 7년 동안 그렇게 해왔다.
민재가 서랍을 열어 과자 봉지를 꺼냈다. 봉지 뜯는 소리가 키보드 소리 사이로 들렸다.
“이거라도 먹어. 부스러기 안 떨어지는 거야.”
서윤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민재가 봉지를 쥐여 주려다 책상 빈 곳에 내려놓았다.
“손에 묻겠다. 여기 둘게.”
“고마워.”
서윤은 입력하던 문장을 마저 쓰고 과자를 집었다. 버터 냄새가 났다. 씹는 동안 표의 숫자를 다시 읽었다.
잘못 옮긴 판매량이 있었다. 원본 자료를 열어 고쳤다. 숫자가 맞아 들어가자 굳었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민재가 모니터 아래 붙은 메모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지난달 자료는 공유 폴더에 있어.”
“찾았어.”
그제야 민재가 자기 의자를 당겼다.
서윤은 봉지 입구를 접어 물컵 옆에 놓았다. 손은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그런데 키보드로 돌아가는 사이, 도현 앞에서 떨리던 손끝이 떠올랐다.
서윤은 손가락을 펴고 다시 문장을 썼다.
◇
저녁 8시. 사무실에는 서윤만 남아 있었다.
민재는 퇴근하며 “밥은 먹어”라고 했다. 박 팀장은 6시에 나갔다. 후배들은 7시쯤 하나둘 빠졌다.
서윤은 기획안을 고치고 있었다. 숫자와 시장 데이터를 확인하고 문구를 다듬었다.
집중하면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집중하는 동안만큼은.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복도 끝 창문 너머로 6층에 켜진 불이 보였다. 사장실이었다.
서윤은 걸음을 멈췄다.
불빛을 올려다보자 낮에 봤던 도현의 눈 밑이 떠올랐다. 피곤해 보이던 얼굴. 가까이 서고 나서야 보였던 흔적이었다.
「아직 있네.」
잠깐 더 보고 말았다.
「그래서 뭐.」
돌아서려는데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서윤은 받지 않았다. 벨이 멈췄다가 다시 울렸다. 같은 번호였다.
전화를 받았다.
“한서윤 대리님, 사장실에서 찾으십니다.”
비서의 목소리였다.
“지금요?”
“네. 기획안 관련이라고 하셨습니다.”
서윤은 핸드폰을 내렸다. 화면에 시각이 떠 있었다.
오후 8시 14분.
기획안은 아직 제출 전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서윤은 계단으로 갔다. 엘리베이터가 더 빨랐지만, 2분이 필요했다. 숨을 고를 2분.
올라가는 동안 입술을 다물었다. 숨이 가빠져서인지, 다시 마주할 생각 때문인지 가슴이 빠르게 움직였다.
6층 복도는 조용했다.
사장실 문 앞에 섰다. 불투명 유리 너머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서윤은 문에 손을 가까이 댔다가 손가락을 가볍게 접었다.
노크를 했다.
“들어오세요.”
낮게 들리는 목소리에 손이 잠깐 멎었다.
문을 열었다.
도현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재킷은 의자 등에 걸려 있었다. 셔츠 소매는 1번 접어 올린 상태였다. 책상 위에는 서류가 쌓여 있었다.
서윤은 문 앞에 섰다.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마주쳤다.
로비에서와는 달랐다. 사이에 아무도 없었다. 200명의 직원도, 박 팀장도, 민재도.
서윤은 문에서 손을 뗐다. 손끝을 몸 옆에 붙이고 섰다.
도현의 접힌 소매 아래로 손목이 보였다. 서윤은 그쪽으로 내려가려는 시선을 다시 눈높이에 맞췄다.
「일 때문에 온 거야.」
도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상품기획팀 기획안, 기존에 진행 중인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주방용품 신제품 라인업입니다.”
“방향을 미리 듣고 싶습니다. 금요일 전에 1번 브리핑해 줄 수 있습니까.”
완벽하게 사무적이었다.
서윤은 그 목소리에서 다른 뜻을 찾지 않으려 했다. 도현이 말을 마친 뒤에도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에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일정 잡아 주시면 준비하겠습니다.”
“내일 오후 3시. 여기서.”
“알겠습니다.”
대답은 곧바로 나왔다.
다만 숨을 들이마시는 게 조금 늦었다. 도현 앞에서는 그런 작은 것까지 의식하게 됐다. 어깨를 움직이지 않으려고 얕게 숨을 쉬었다.
서윤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시선을 내리니 책상 위에 놓인 도현의 손이 보였다.
더 보지 않고 돌아섰다.
“한 대리.”
걸음이 멈췄다.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는 아까보다 반 톤 낮았다. 서윤은 문 쪽으로 뻗으려던 손을 내렸다.
돌아보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다음 말을 기다리는 동안 고개가 조금 움직였다.
“……아닙니다. 수고하세요.”
서윤은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문을 잡은 손끝에 힘을 주었다. 닫히는 소리가 날 때까지 도현 쪽을 보지 않았다.
복도로 나와 걸음을 옮겼다.
무릎에 힘이 풀렸다. 벽에 손을 짚었다. 손바닥 아래로 차가운 벽면이 느껴졌다.
서윤은 고개를 숙였다. 숨을 내쉬어도 가슴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아까 그 반 톤.
그건 사무적인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름을 부른 것도 아니었다. 한 대리. 낮에도 들었던 말이었다.
그런데 왜.
「기다리지 마.」
서윤은 눈을 감았다.
3초.
눈을 떴다. 벽에서 손을 떼고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차가운 감촉이 아직 남아 있었다.
「괜찮아.」
계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
「모르는 사람이야.」
계단을 내려갔다. 4층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모니터에는 기획안이 그대로 떠 있었다.
서윤은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손끝이 제자리를 찾았다.
떨림은 멈춰 있었다.
(1화 끝)
“월요일은 괜찮아.”서윤이 대답하자 민재가 가방 끈을 고쳐 잡았다.“저녁 먹으면서 얘기해도 되지?”“응. 어디로 갈까?”“너 자주 가는 데. 회사 뒤에 밥집.”“거긴 퇴근 시간에 사람 많잖아.”“안쪽 자리 있으면 앉고. 없으면 다른 데 가자.”평소 식사 약속을 잡을 때 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민재는 휴대전화를 꺼내지 않았다. 서윤을 한동안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월요일에 보자.”서윤도 고개를 끄덕였다.갈림길에서 민재가 먼저 손을 들었다. 서윤은 몇 걸음 가다가 돌아봤다. 민재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눈이 마주치자 민재가 다시 손을 들었다.서윤은 이번에는 돌아보지 않았다. 가방 끈을 잡고 그대로 걸었다.◇3월 24일, 서윤은 출근하자마자 제조사 메일을 확인했다.재시험 일정은 아직이었다. 승인된 비용 안에서 진행할 항목을 정리했다는 답만 와 있었다.민재가 옆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답 왔어?”“일정은 오후에 준대.”“고객 자료는 오전에 다시 보낼게. 구매 이력 확인된 것만 먼저 묶었어.”“고마워.”민재는 자리에 앉았다. 서윤은 화면을 조금 당겼다. 두 사람 모두 금요일에 잡은 약속을 꺼내지 않았다.오전 회의가 끝나자 후배가 자료철을 안고 다가왔다.“대리님, 제가 지난주 조사 안내물을 추가 제작비에 넣었는데요.”서윤은 후배가 가리킨 항목을 봤다.&ld
“재시험을 빼면 수정한 조건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서윤은 승인 메일 옆에 빈 문서를 띄웠다.전화 너머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필수 시험과 추가 조사를 나눠서 보내 주시겠습니까?”“네. 비용이 이미 발생한 항목도 따로 적겠습니다.”“자료를 보내신다고 유지가 확정되는 건 아닙니다.”“알고 있습니다. 같은 항목이 두 번 삭감되지 않게 확인해 주세요.”통화가 끝났다.서윤은 첫 줄에 재시험이라고 적었다. 낙하와 개폐력, 높이가 다른 몸체에 같은 뚜껑을 끼우는 시험. 확인한 것과 남은 것을 나눴다.책상 한쪽에 조사실에서 가져온 샘플이 있었다.큰 몸체 안에서 작은 몸체 두 개를 꺼냈다. 높이는 달라도 입구는 같았다. 뚜껑을 바꿔 끼워도 손끝에 걸리는 감각은 달라지지 않았다.「필요한 것만 살 수 있으면.」기록지에 적힌 말을 다시 읽었다. 서윤은 큰 몸체를 상자에 넣었다.◇3월 21일 아침, 민재는 의자에 앉기도 전에 서윤의 책상을 봤다.“밤에 구성 바꿨어?”“아직 제안이야. 자주 쓰는 크기 두 개로 시작하려고.”서윤은 용기를 민재 쪽으로 밀었다.“규격은 같고 높이만 달라. 뚜껑도 서로 바꾸어 쓸 수 있어.”“단품보다 이쪽이 나아?”“각각 포장하면 처음 사는 가격은 내려가도 비용이 많이 붙어. 두 개를 묶는 안으로 견적 요청했어.”민재가 작은 몸체를 들었다.“구성이 줄어도 공용 뚜껑을 써 볼 수 있겠네.”“응. 나중에 필요한 높이를 더 살 수 있고.”“추가로 살 거라고 계산에 넣은 건 아니지?”서윤이 손익표를 돌렸다.“입문 구성만으로 계산했어. 추가 구매는 따로 검증해야 해.”민재는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 봉투를 내려놓았다.“그럼 이것도 입문 구성.”작은 빵 두 개가 들어 있었다.서윤이 민재를 봤다.“커피만 마셨을 것 같아서.”“아직 물도 안 마셨어.”“더 심하네.”민재는 자기 자리에서 물병을 가져왔다. 서윤은 병을 받고 빵 하나를 꺼냈다.먹는 동안 제조사 회신이 왔다. 두 용기를 묶으면 재료비는 줄었다.
도현은 태블릿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빈 의자 뒤에 머물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손끝이 의자에서 떨어지는 순간까지 서윤은 보고 있었다.“회사에 온 이유를 묻는 겁니까?”“둘을 다르게 대답할 거예요?”서윤은 책상 모서리에 손을 대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다시 일 이야기로 돌아갈까 봐 망설였다. 손가락을 가볍게 접었다.도현이 입술을 열었다가 닫았다. 대답 전에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워서 들리는 소리였다.“다르게 대답해야 합니다.”“그럼 오늘은 됐어요.”서윤이 몸을 돌렸다. 도현은 붙잡지 않았다. 그런데도 등 뒤에 시선이 남아 있었다.서윤이 의자를 당기기 전에 도현이 다시 말했다.“대답을 피하려는 건 아닙니다.”아까보다 목소리가 낮았다.서윤은 돌아보지 않았다.“지금 못 하는 대답이면 준비해서 해요.”의자에 앉자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반품 비용표가 떠 있었다. 서윤은 글자를 읽으려 했다. 읽던 줄에서 눈이 멈췄다.도현의 손이 태블릿 위에 닿았다. 바로 집어 들지는 않았다. 화면 가장자리에 놓인 손끝이 가만히 있었다.“한 대리.”서윤은 화면을 본 채 기다렸다. 대답하면 목소리가 달라질까 봐 입을 다물었다.“업무가 끝난 뒤에 시간을 부탁해도 되겠습니까?”서윤은 그제야 도현을 봤다. 도현은 태블릿이 아니라 서윤을 보고 있었다.「업무가 끝난 뒤.」그 짧은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목요일에 패널 시험이 잡히면, 결과부터 정리해야 해요.”“그 뒤라도 괜찮습니다.”도현은 재촉하지 않았다. 서윤이 답할 때까지 손도 움직이지 않았다.서윤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그제야 도현이 태블릿을 가져갔다. 책상 위에서 손이 멀어졌다. 서윤은 시선을 화면으로 돌렸다.발소리가 사무실 밖으로 멀어지고 나서야 등받이에 등을 댔다. 짧게 참고 있던 숨이 나왔다.화면 아래로 빵 포장이 조금 나와 있었다.서윤은 남은 빵을 꺼냈다. 포장을 접는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무슨 대답을 하려고.」한 입을 먹고, 식어 버린 물을 마셨다. 목
서윤은 메일을 끝까지 읽고 4층 버튼을 눌렀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파일을 받친 손가락에 종이 모서리가 눌렸다.설문만으로는 안 된다는 말은 맞았다. 서윤도 그 말을 했었다.그런데도 화면에서 눈을 떼는 데 조금 걸렸다.사무실에 돌아오자 민재가 의자를 돌렸다.“어떻게 됐어?”“검토 일정은 그대로래.”“원가가 낮아져도?”“실제로 팔린 건 아니니까.”서윤은 파일을 내려놓고 메일을 전달했다. 민재가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그럼 지금 판매부터 하라는 거야?”“품질 확인이 남았어. 그 순서는 못 바꿔.”“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자.”민재가 빈 문서를 열었다.서윤도 의자에 앉았다. 손을 올렸지만 바로 글자를 치지는 못했다.메일에서 읽은 말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틀린 말은 아니야.」서윤은 문서 제목부터 적었다.고객 패널 시험안.◇3월 18일 아침, 서윤은 시험안 첫 장에서 구매 의향이라는 말을 지웠다.옆에 적었던 예상 주문도 지웠다.민재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화면을 봤다.“아예 안 물어보게?”“물어볼 거야. 그냥 사고 싶냐고만 묻지는 않고.”서윤은 빈 용기와 뚜껑을 책상 위에 놓았다. 종이 가격표도 옆에 세웠다.“제품을 써 보고, 가격을 보고, 자기 집에 가져갈 구성을 고르게 할 거야.”“안 고르는 것도 가능하게?”“응. 지금 쓰는 걸 계속 쓰겠다는 선택도 있어야 해.”민재는 뚜껑을 집었다가 내려놨다.“좋다고 해 놓고 가격 앞에서는 안 고를 수도 있겠네.”“그걸 봐야 해.”진행 순서는 간단히 정했다. 평소 쓰는 용기를 확인한 뒤 샘플과 가격을 보여 준다. 마지막에는 선택을 바꾸거나 모두 취소할 수 있게 했다.민재가 마지막 칸을 가리켰다.“여기서 결제는 안 받고?”“안 받아. 주문으로 기록하면 안 돼.”“그럼 매출 증거는 여전히 없네.”“맞아. 매출을 대신할 수는 없어.”서윤은 문서 맨 위에 적었다.비판매형 시험. 결제와 주문 접수는 진행하지 않음.선택한 구성과 구매를 포기한 이유는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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