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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스매시모찌
“으악, 뭐 하는 거예요!”

이혜림은 소현성이 갑자기 마우스를 ‘딸깍’ 누르는 걸 보고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소현성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왜 갑자기 매수를 눌러요? 설명도 아직 안 끝났는데!”

‘끝났다. 출근 첫날부터... 일은 시작도 못 하고 사고부터 치다니...’

소현성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거 관리종목인 거 알아요? 그리고 호가창 좀 보세요. 매도 호가만 있지, 매수 호가 걸린 게 보여요?”

“없네요...”

“그렇죠. 그 말은 지금 이 종목이 하한가에 딱 묶여 있다는 뜻이에요. 이해됐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다행히 지금은 모의 계좌라 괜찮아요. 만약 진짜 회삿돈으로 이런 짓을 했다면 팀장님께서 뒷목 잡고 쓰러졌을지도 몰라요.”

그 말을 듣고서야 소현성은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방금 이혜림이 소리를 지를 때만 해도 정말 회삿돈을 날려 먹은 줄 알았다.

“문제는 따로 있죠. 아까도 말했잖아요? 모의투자 실적도 평가에 반영된다고요.”

혼잣말처럼 내뱉은 이혜림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묻어 있었다. 마치 자기 실수인 듯 초조해 보였다.

“모의투자 실적이 좋아야 정규 채용 가능성이 생기는데... 관리종목에 몰방해버리면 어떻게 해요...”

“죄송합니다...”

“에이, 죄송할 것까지야.”

이혜림은 피식 웃더니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누구나 처음에는 실수할 수 있어요. 저도 입사 초기에 이보다 더 황당한 사고도 친 적 있어요. 물론 이번 건은 평가에 영향을 좀 줄 수는 있겠죠.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팀장님께 잘 말씀드려볼게요.”

소현성은 이혜림의 얼굴에 번진 진심 어린 걱정을 멍하니 바라봤다.

‘혜림 누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네...’

그는 속으로 울컥하며 마음속에서 은근히 ‘호감 점수’를 적립해 줬다.

그러면서 동시에 출근 첫날부터 이런 황당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야말로 사회생활을 접고 싶을 만큼 굴욕적이었다.

‘조금 전 온몸을 전율로 휘감던 그 감각은 뭐였을까? 너무도 강렬하고 너무도 확실했는데...’

그 순간의 ‘촉’이 아니었다면 절대 매수를 누르지 않았을 것이었다.

만약 게임이었다면 버튼을 누르는 즉시 ‘레전드 아이템’인지 ‘쓰레기 아이템’인지 판가름 났겠지만, 증시는 밑이 보이지 않는 심연 같은 늪, 또는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미궁 같았다.

화면 속 관리종목 주식은 여전히 파랗게 얼어붙은 채, 하한가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설마 내 착각이었을까? 게임에서 통하던 그 촉이 현실에서는 아무 소용 없는 건가? 아니면 단지 몇 번 운이 좋았던 게 착각을 만든 걸까...’

소현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지금은 쓸데없는 생각 말고 눈앞의 일에 집중해야 해. 잡념은 그만!’

...

증시 정규장은 아침 9시에 열리지만, 전쟁은 사실상 8시 30분부터 시작됐다.

개장 전 동시호가와 지수 선물의 움직임이 이미 치열한 눈치싸움을 예고하기 때문이었다.

그 보이지 않는 전투는 오후 3시 30분, 시스템에서 울리는 ‘띵’ 하는 장 마감 알림음과 함께 비로소 막을 내렸다.

이 전쟁에는 총도 칼도 없었다. 대신 억 단위, 조 단위의 돈이 오가며 누군가의 심장을 멎게 하고, 또 다른 이의 피를 들끓게 했다.

그리고 그 전쟁터 한가운데가 바로 트레이딩본부였다.

회사 안에서도 가장 빠른 템포와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가 몰아쳐, 하루하루가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이곳의 트레이더들은 단타가 곧 승부라고 믿었다.

가격이 요동칠 때는 굶주린 늑대처럼 달려들어 불 속에서라도 알맹이를 낚아채려 했고, 변덕스러운 캔들 차트에서 억지로라도 수익을 짜내는 게 이들의 방식이었다.

종목을 오래 들고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보유 기간은 길어야 며칠, 대부분은 장 마감 전에 포지션을 정리해 수익을 확정했다. 사실상 극단적 단타에 가까운 운용 행태였다.

“현금은 곧 힘이다. 수익은 실현해야 의미가 있다.”

트레이딩본부의 신조는 단순했지만 분명했다.

그러니 장기 투자를 신봉하는 이들과는 애초에 결이 맞을 리 없었다. 장기투자자라면 자산운용본부나 리서치본부에서 가치투기를 논하는 편이 훨씬 잘 어울렸다.

트레이딩본부 1팀을 이끄는 주희재 팀장은 느릿한 거래를 진심으로 경멸했다.

그가 사랑하는 건 단 하나, 아드레날린이 폭발하고 도파민이 요동치는 ‘진짜 전장’이었다.

이곳에서는 매일, 매분, 매초 캔들 차트가 살벌하게 충돌했다. 마치 두 군데가 맞붙은 전쟁터처럼 그래프는 피 튀기듯 출렁이며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싸움을 이어갔다.

트레이더들은 한 치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고 서로에게 연막을 치고 불시에 저격을 날리며 곳곳에 함정을 파묻었다. 그리고 종가 무렵이 되면 마지막까지 남은 물량을 수확하듯 쓸어 담았다.

매일 이런 고강도의 실전 거래에 임하다 보니, 요즘 젊은 세대가 밤새워 본다는 ‘도파민 숏폼 영상’은 시시하게 느껴졌다.

실제 회사 자금을 걸고 단 몇 초 만에 손익이 극단적으로 오가는 업무 환경에 비하면 그런 영상은 단순한 오락일 뿐이었다.

‘우리 트레이딩본부야말로 가장 극적인 자극을 체감할 수 있는 현장이지.’

이는 주희재가 회사를 떠나지 않는 이유였다.

물론 가끔 이런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 정도 실력이면 독립해서 자기 돈으로 투자하면 더 자유롭고 더 짜릿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주희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절대 안 돼.’

회사의 자금을 운용할 때는 무의식 깊은 곳에서 이성의 끈을 잡고 있어, 그 단 한 조각의 냉정함이 합리적 판단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자기 피땀 어린 돈을 굴리는 순간, 인간 유전자에 새겨진 탐욕과 공포가 마치 바이러스처럼 번져 나가며 모든 이성을 무너뜨리기 일쑤였다.

그때부터는 감정의 파도에 휘둘려 일관된 매매 전략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회사 안에서 천재라 불리던 수많은 트레이더들이 독립 이후 처참히 무너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장 마감 알림음이 막 울려 퍼졌다. 사무실 공기에는 방금 전까지 이어진 격전의 열기와 피로가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미진 씨, 오늘 포지션 리포트랑 거래 내역 정리해서 바로 주세요. 특이 사항은 다 표시했죠?”

“네, 팀장님. 리포트 다 준비했습니다. 데이터와 함께 곧 보내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서둘러요. 내일 트레이딩 전략을 세워야 하니까.”

“네.”

업무 지시를 마친 주희재 팀장은 하루 종일 앉아 있던 몸을 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 밑에 두었던 덤벨을 꺼내 팔을 걷어붙이고 곧장 운동을 시작했다.

장이 끝난 뒤 몇 세트씩 근력 운동을 하고 단백질 보충제를 챙겨 마시는 일은 이미 습관이자 의식처럼 굳어진 루틴이었다.

저녁 식사 역시 늘 닭가슴살이었다. 맛은 밋밋했지만 규칙적인 훈련과 관리야말로 그의 또 다른 무기였다.

그때, 문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마치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 한참을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혜림 씨? 무슨 일인가요?”

주희재가 덤벨을 든 채 문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 네, 팀장님. 운동 중에 죄송합니다.”

이혜림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그냥 몸 좀 푸는 겁니다. 말해보세요.”

“그게... 오늘 새로 들어온 인턴에 관한 건데요.”

이혜림은 낮에 소현성이 저지른 실수를 간단히 보고했다.

주희재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러니까... 오늘 막 들어온 채용 연계형 인턴이 실수로 모의 계좌 자금을 전부 관리종목에 넣었다는 겁니까? 그것도 하한가에 매수했다는 거죠?”

그가 덤벨을 내려놓으며 묻자, 이혜림은 난처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설명하던 중에 그만 잘못 누른 것 같아요. 게다가 그 종목은 하루 종일 하한가에 묶여 있었고요. 혹시 정규직 전환 평가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돼서...”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주희재가 말을 끊었다.

“평가 문제는 신경 쓰지 마세요. 앞으로 인턴 교육은 계속 혜림 씨가 맡아주세요.”

“네, 팀장님.”

이혜림이 사무실을 나서자, 주희재의 시선이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따라갔다.

‘이혜림... 이름처럼 맑고 착한 사람이야. 성격도 그렇지만 앳된 얼굴에도 그 마음씨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지. 하지만... 이렇게 냉혹한 전장에서 끝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마치 가시 숲에 들어선 연꽃처럼, 눈에 띄지만 그만큼 위태로워 보이네.’

주희재는 애써 소현성의 일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했다.

하지만 ‘낙하산 인턴’이라는 꼬리표와 황당하기 짝이 없는 그의 첫 주문은 머릿속에서 닫히지 않는 팝업창처럼 계속 깜빡거렸다.

‘하한가에 묶인 관리종목을 풀매수했다고?’

실전이었다면 바로 짐 싸서 나갔어야 했지만, 다행히 모의 계좌라 회사에 손실을 안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설명하기 어려운 위화감이 뇌리에 남았다.

‘아무리 실수라 해도, ‘매수’ 버튼은 본인이 직접 클릭하고 확인을 눌러야 체결될 텐데... 마우스가 스스로 주문했을 리는 없잖아.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아니면... 설마 그 종목에 뭔가 있는 건가?’

소현성이 몰방한 종목은 금 테마주 중에서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중윤골드였다.

관리종목은 상폐 리스크 때문에 유동성도 떨어지고 위험도는 일반 종목보다 훨씬 높게 평가되기에 회사 차원에서도 명백히 거래 금지 대상으로 지목해 둔 터였다.

하필 오늘은 금 가격이 기술적 조정에 들어가면서 전체 금 관련주가 파란 물결로 도배된 날이었다.

‘정말 실수였을까?’

“에잇! 그만 생각하자!”

주희재는 스스로를 다잡았다.

어차피 낙하산 인턴에 불과했다. 잠깐 경험이나 쌓고 이력서 한 줄 남긴 뒤 떠날 가능성이 크니, 정규직 전환은 애초부터 기대할 필요가 없었다.

‘캔들 차트도 제대로 못 보는 초짜에게 진짜 회자 자금을 맡겨 선임 트레이더로 키운다고? 난 그렇게 순진하지 않아. 회사 윗선도 설마 그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겠지. 일단 두고 보자. 얼마나 버티나.’

...

“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어느새 시곗바늘은 저녁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소현성은 아침 7시에 출근해 회사 문을 들어선 뒤로 꼼짝없이 이 좁은 공간에 묶여 있었다.

따지고 보니 꼬박 열두 시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하루가 마치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 듯했다.

“여기 있으면 시간이 진짜 빨리 가요.”

이혜림이 서류를 정리하며 웃었다.

“이곳은 모든 게 속도 싸움이에요. 다들 한시도 멈추지 않고 달리다 보니... 시간 감각은 금방 무뎌질 수밖에 없죠.”

증시가 막 개장했을 때만 해도 소현성과 이혜림은 크게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거래가 본격적으로 불붙자, 각종 지시와 잡무가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이 보고서 당장 출력해 와요.”

“이 자료는 외환거래팀으로 바로 전달해 주세요.”

“커피! 커피 좀요! 당장 리필해줘요!

...

소현성은 온종일 멍한 얼굴로 이혜림의 뒤만 따랐다.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다니며 그때그때 부딪치면서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근데 말이에요, 현성 씨.”

이혜림이 미소 지으며 격려했다.

“첫날인데 이 정도면 아주 잘한 거예요. 내일 또 봐요, 현성 씨.”

“아, 감사합니다. 혜림 누나. 네, 내일 뵙겠습니다.”

소현성은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동안 넋 놓고 바라봤다.

솔직히 오늘의 업무 강도는 그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여기가 어떤 곳인데... 수많은 금융 엘리트들이 목숨 걸고 들어오려는 최상위 사모펀드 본사잖아. 고작 하루 버티고 힘들다고 투덜대는 건 알도 안 되지.’

그는 문득 부모님이 떠올랐다.

캥거루족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자신을 위해 여전히 밖에서 고생하는 부모님을 떠올리니 에어컨 바람을 쐬며 앉아 있는 회사 일은 훨씬 수월해 보였다.

‘게다가 혜림 누나가 챙겨주잖아. 이만큼 좋은 출발이 어디 있어. 불평할 자격은 없어. 더 노력해야지.’

그는 시계를 힐끗 보았다.

“헉, 벌써 게임 시간 됐네. 회장님이 접속해서 기다리실 텐데...”

순간, 피곤함도 다 잊은 채 소현성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는 거의 전력 질주하듯 지하철역으로 몸을 날렸다.

...

아침 7시 무렵, 아직 해가 채 떠오르지 않은 이른 시각, 출근길에 오른 직장인들은 하품을 삼키며 또다시 반복될 하루를 시작했다.

빠르고 지친 일상의 리듬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예외도 있었다.

그 속에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오히려 경건한 표정으로 이른 시각부터 사무실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트레이더들이었다.

이들은 주말만 되면 오히려 불안해했다. 증권시장이 닫히면 손끝이 떨리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질 못했다. 마치 금단 증상을 겪는 중독자가 룰렛이 돌기만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모든 트레이더가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희재 팀장이 봐 온 절반 이상의 트레이더들은 분명 도파민에 중독된 듯한 양상을 보였다.

그날도 주희재는 가장 먼저 사무실에 도착했다.

책상 위에 쌓인 리포트와 글로벌 뉴스 클리핑을 꼼꼼히 훑으며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사건이 자본시장에 어떤 파급 효과를 미칠지 정리했다.

손에는 진한 커피 대신 단백질 파우더를 탄 텀블러가 들려 있었다.

‘커피? 애송이들이나 마시는 거지.’

“좋은 아침입니다, 팀장님.”

팀원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발소리까지 일정하게 맞춘 듯, 정확히 정해진 시각에 줄줄이 도착하는 모습은 군대 집합을 방불케 했다.

“준비하고 모이세요. 15분 뒤 데일리 시장 브리핑 회의 시작합시다.”

“네, 팀장님!”

데일리 브리핑의 핵심은 세 가지였다.

전일 시황 복기, 금일 개장 전 시장 점검, 그리고 최신 이슈에 따른 전략 조정까지.

간단한 지시를 마친 주희재는 곧장 집무실로 돌아갔다.

멀티 스크린에는 장 개장을 앞두고 호가창과 캔들 차트가 숨 가쁘게 요동치고 있었다.

개장까지 1분 남았다.

익숙할 법도 했지만 그의 심장은 여전히 긴장으로 팽팽히 죄어 있었다. 설명하기 힘든 흥분이 손끝을 저릿하게 만들었고 키보드를 두드리려는 충동은 파도처럼 연달아 밀려왔다.

곧이어 시스템 알림음이 장 시작을 알리자, 사무실의 정적은 산산이 깨졌다.

그 순간부터 주희재의 손가락이 쉼 없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오가며 숨 가쁘게 움직였다.

시선은 수십 개 창을 넘나들며 실시간으로 변하는 호가와 차트를 추적했고 머릿속은 과열된 CPU처럼 초당 수십 번의 계산을 반복했다.

전략이 들어맞을 때마다 짜릿한 쾌감이 몰려왔고 불과 몇 분 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반복됐다.

그는 그 몇 시간 동안 수십 차례 의사결정과 손익 변동을 경험했다.

몰입의 시간 속에서 시계는 의미를 잃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여섯 시간이 지나 있었고 시곗바늘은 장 마감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매번 이 순간이 되면 알 수 없는 허무감이 찾아왔다. 하루 종일 전투를 치른 뒤, 놀이공원 문이 닫히는 순간 찾아오는 공허감과도 같았다.

“팀장님, 오늘 보고서와 데이터 다 정리됐습니다. 곧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미진의 목소리가 그를 현실로 불러냈다.

‘오늘의 전투는 끝났다. 하지만 내일의 시장은 이미 기다리고 있다. 지금부터 복기하고, 내일 투입할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보내주세요. 특이 사항 있습니까?”

“오늘 몇몇 종목의 변동성이 유난히 컸습니다. 관련 자료는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고생했어요.”

주희재는 오늘의 이슈를 정리한 리포트를 열었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급등주와 급락주, 즉 하루 동안 시장을 요동치게 한 종목들에 꽂혔다.

이런 급등락의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매일 저녁 복기의 핵심 과제였다.

마우스 휠을 굴리며 주희재는 종목 리스트를 빠르게 훑어내렸다.

화면 가득 뒤섞인 붉은 숫자와 푸른 숫자는 그날 시장의 명암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익숙한 종목이 눈에 띄었다.

“어?”

낯익은 종목 하나가 불쑥 눈에 들어왔다. 마치 갑자기 튀어나온 팝업창처럼 시선을 강제로 붙잡았다.

“잠깐, 이건...”

순간 터무니없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그는 곧장 어제 채용 연계형 인턴의 모의투자 계좌 기록을 열어봤다.

화면에 뛰쳐나온 데이터는 그 생각이 정확했을 입증을 했지만, 동시에 믿기 어려울 만큼 충격적이었다.

[관리종목 ‘중윤골드’ +5%]

관리종목 ‘중윤골드’는 오전에 돌연 공시로 거래 정지에 들어갔다가 오후 거래 재개와 동시에 상한가로 직행했다.

“허...”

주희재는 기가 찬 듯 짧게 웃음을 흘렸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관리종목 ‘중윤골드’가 상한가에 직행한 이유는 곧 밝혀졌다.

중윤 그룹이 ‘중윤골드’ 지분 20%를 인수한다고 발표했고 거래가 완료되면 최대 주주는 정책금융공사로 변경될 예정이었다.

광한국 최대 금 생산 기업인 중윤 그룹의 전격적인 합류는 자산 주입과 자원 통합에 대한 기대감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주희재의 경험상, 이 종목은 이제부터 단 한 번의 숨 쉴 틈도 없이 치고 올라갈 것이 분명했다. 중간에 끼어들 기회 따위는 없이 연속 상한가 행진이 확실해 보였다.

‘그런데 이 종목을 알아본 사람이 하필이면 그 낙하산 인턴이라니... 그것도 풀매수로!’

물론 모의투자라 실제 수익이 없어 놓친 기회가 뼈아팠다 그러나 아쉬움보다도 쉽게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저 녀석, 대체 어떻게 미리 알았던 거지?”

그는 전날 있었던 데일리 시장 브리핑 회의 내용을 떠올렸다.

유니스 연방의 NFP, CPI 지표 발표와 원화 강세 전망, 금 가격의 기술적 조정 요인들이 겹치면서 시장 컨센서스는 ‘금 테마주는 추가 조정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는 한 가지 결론으로 모아졌다.

실제로 장 초반 시장 반응도 그 예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금 관련 종목은 파란 캔들로 도배되었고 누구도 그 흐름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현성은 마치 천기를 훔쳐본 듯 수천 개 종목 가운데 단 하나, 관리종목 ‘중윤골드’를 집어 들어 하한가 풀매수를 박아 넣었다.

이혜림의 보고대로라면 단순한 ‘실수’여야 했다. 그러나 주희재는 도저히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건 실수가 아니다. 교묘한 위장... 아니면 노골적인 도발이다.’

그리고 곧 머릿속을 스친 황당한 가설 하나.

‘설마... 저 자식, 뒷배가 어마어마한 내부자인 건가? 트레이딩 어시스턴트라는 자리가 모욕처럼 느껴져서 일부러 모두가 외면한 섹터에서 보석 같은 종목을 찍어 올린 건가? 보란 듯이? 그리고 풀매수, 하한가, 관리종목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우리를 조롱하고 있는 건가?’

“하...”

싸늘한 기운이 등을 훑고 지나갔다.

주희재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깊게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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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이딩본부 7팀 직원들의 눈이 하나같이 휘둥그레졌다.숨소리는 가빠졌고 얼굴에는 극도의 충격과 광기가 뒤섞여 있었다.그 표정에는 믿기 힘든 환희와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 못 하는 멍한 기색이 공존했다.눈빛마저 흐릿해져 마치 집단으로 환각제라도 들이킨 듯 반쯤 영혼이 날아가 버린 모습이었다.“티, 팀장님...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아신 겁니까?”팀원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먼저 물었다.그 시선은 마치 신화 속에서 걸어 나온 예언자를 바라보는 듯 경외로 가득했다.“와... 팀장님, 진짜... 신이십니다. 대박이네요.”다른 팀원은 거의 욕설에 가까운 감탄을 터뜨렸다.그리고 또 다른 팀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낮게 속삭였다.“설마... 혹시 금융위원회 쪽에... 아는 분이 있으신 겁니까?”소현성은 그 말에 순간 기침이 튀어나올 뻔했다.‘아는 분이 있냐고? 무슨 헛소리야. 나 같은 캥거루족 백수였는데, 무슨 수로 금융위 고위 인사를 알아? 말도 안 되는 소리를...’그는 서둘러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가볍게 기침했다.곧 일부러 의미심장한 듯 고개를 끄덕인 뒤,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가볍게 흔들었다.그러고는 담담하면서도 여유가 깃든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옛말에 그런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개나 소나 다 주식으로 돈 번다고 달려들기 시작하면 그때가 바로 거품이 꺼질 때라는 신호라는 거죠.”사실 그 말은, 예전에 소현성이 투자 서적을 건성으로 넘기다 우연히 보게 된 문구였다.정확한 출처조차 기억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주식의 신’이라는 아우라를 덧씌우기에 충분했다.논리는 간단했다. 시장이 달아오르다 못해 주식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까지 뛰어드는 수준이 된다면 그것은 이미 비이성적인 광기가 극점에 달했다는 뜻이었다.그리고 그 끝에는 언제나 예외 없이 붕괴가 기다리고 있다는 냉혹한 사실이 숨어 있었다.“그런 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팀원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표정에는 여전히 불신과

  •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제99화

    ‘전부 헛소리였지. 이런 눈사태 같은 장세라면 이번 달은 물론, 몇 달은 부서 전체가 고개 푹 숙이고 쪼들려 지낼 게 뻔하다. 다 같이 허리끈 졸라매고 연명하겠구먼...’“잠, 잠깐만! 저건 뭐지?”장준휘는 모든 희망이 끊어진 듯 체념에 잠겨 있을 무렵, 시야 끝에 걸린 모니터가 그의 동공을 단번에 조여왔다.끝없이 무너져 내리던 파란 절망의 바다. 그 지옥 같은 화면 한가운데서, 눈을 찌르는 듯 선명한 빨간색 곡선 한 줄기가 치솟고 있었다.그건 단순한 상승세 신호가 아니었다.마치 화산이 분출하듯, 불길처럼 번져 나가며 모든 한기를 삼켜버릴 듯 타오르는 역전의 불꽃이었다.‘아니... 저건 그냥 빨간색 그래프가 아니다. 저건 희망이다. 거센 역풍을 뚫고 선 자만이 붙잡을 수 있는 승리의 불꽃이야.’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시장이 끝없이 치솟을 거라고 외쳐댔다.“밀어붙여! 몰방이 답이다!”“이참에 바닷가 별장 하나 장만하는 거야!”그러나 그 광기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놀란 닭처럼 허겁지겁 소리쳤다.“팔아! 던져! 다 정리해!”그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의 팀만은 정반대 길을 걸었다.처음에는 죽으러 가는 미친놈 취급을 받던 그들이 지금은 모든 이가 눈을 감은 자리에서 홀로 눈을 뜬 예언자로 서 있었다.그는 말뿐이 아니라 무려 현금 1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움켜쥔 채, 단호하게 전부 공매도에 쏟아부었다.온 시장이 매수 버튼을 광기에 휩싸여 두드리던 그 순간, 정반대 방향으로 몸을 던진 단 한 사람은 바로 소현성이었다....같은 시각 폭풍의 정중앙, 트레이딩본부 7팀 팀장 집무실.“...”소현성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기쁨도 분노도 없었다.화면 위의 숫자들은 파도처럼 쏟아져 내렸고 캔들 차트는 절벽에서 추락하듯 곤두박질쳤다.누가 봐도 처참한 금융 재난의 도식이었다.그러나 그의 시선은 고요했다. 마치 모든 것이 이미 예정된 시나리오라도 되는 듯, 마음속은 평

  •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제98화

    날카롭고 급박한 시스템 알림음이 순식간에 리스크관리본부 전체를 휘몰아쳤다.리스크관리본부 팀장 장준휘는 등골 끝에서부터 차가운 한기가 솟구쳐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순식간에 등줄기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들었다.이 바닥에서 굴러온 세월이 몇 년인데, 이런 장면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모니터가 파란색으로 뒤덮였다.그 파란색은 곧 시장 붕괴와 재앙을 의미했다. 번쩍이는 불길한 빛은 그 자체로 종말을 알리는 경고등 같았다.순간, 평소라면 재빨리 돌아가던 그의 머리마저 멈춰 섰다.남은 건 단 하나의 생각뿐이었다.투박하고 무겁고 절망적인 결론이었다.‘씨X... 이제 끝장이다.’불과 몇 분 전만 해도 부서 분위기는 은퇴 후의 오후처럼 한가로웠다.커피잔을 들고 잡담을 나누거나 다과를 곁들여 티타임을 즐기던 모습이었다.시장은 잔잔했고 관리할 만한 리스크도 없었다.그러나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순간 단숨에 하늘이 뒤집혔다.금융위원회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마치 수심 깊은 바다에 폭탄을 던지듯 새로운 규제 정책을 기습 발표한 것이었다.그 소식은 마치 끓어오르는 기름 솥에 한 바가지의 얼음물을 퍼붓는 듯한 충격이었다.시장은 그대로 폭발했다.투매가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제방을 무너뜨리고 쏟아져 내린 홍수처럼, 셀 수 없는 매도 물량이 무자비하게 덮쳐오고 있었다.“본부장님, 어... 어쩌면 좋습니까?”장준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거의 나자빠지듯 반세훈 앞에 달려왔고 목소리는 너무 떨려 말 한마디조차 똑바로 나오지 않았다.그러나 눈앞에 보인 건, 이미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려 정신마저 놓아버린 듯한 반세훈 본부장이었다.그 순간, 장준휘의 심장은 그대로 얼어붙었다.“우리가 뭘 어쩌겠습니까?”반세훈은 입술을 덜덜 떨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갈라진 목소리 속에는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다는 절망이 배어 있었다“우리 리스크관리본부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뭡니까? 서버실에 뛰어가서 랜선을 뽑아버릴 겁니까? 거래소

  •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제97화

    양건우는 숨조차 멎은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손아귀에 힘주어 움켜쥔 마우스가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처럼 덜덜 떨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단순한 클릭조차 쉽지 않았다.그 앞에 펼쳐진 광경은 마치 주신의 신이 환생하여 인간 세상에 개입해 만들어낸 기적 같은 대역전이었다.‘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트레이딩본부 신설팀을 맡은 지 겨우 일주일 남짓 된 팀장이, 무슨 근거로 이런 사태를 예측할 수 있었단 말인가? 소현성... 저 사람은 도대체 정체가 뭐지?’양건우는 그 순간 200% 확신했다.광한국의 금융 중심지는 물론, 전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이런 타이밍에 이런 방식으로 시장의 붕괴를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을.그 사람은 바로 트레이딩본부 7팀의 믿기 어려울 만큼 젊은 팀장 소현성이었다.‘설령 세상 어딘가에 또 다른 괴물 같은 천재가 있어 이번 폭락을 예상했다 해도, 과연 누가 우리 팀장님을 흉내 낼 수 있을까? 누가 감히 모든 이가 매수 버튼을 광기에 가까운 열기로 눌러대던 그 순간에 홀로 반대편에 설 수 있었겠는가? 조롱과 의심, 질타와 비웃음을 정면으로 감수하면서 가진 자금을 몽땅 내던져 시장을 거스르는 그런 베팅을 누가 감히 할 수 있었겠는가? 단순한 통찰의 영역이 아니야. 그건 배짱이고 광기이며 동시에... 선택받은 자만이 감히 할 수 있는 도박이야.’그건 절대 대수롭지 않은 소액의 시도가 아니었다. 수십만 원, 수백만 원 단위의 소액 투자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다.무려 100억 원, 중견기업 하나 부도나게 할 수 있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양건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시선은 자석에 이끌리듯 얇은 유리 칸막이 너머로 향했다.회사 전체가 종말 같은 혼돈과 공포에 휩싸인 순간에도 소현성은 바른 자세로 흔들림 없이 앉아 있었다. 마치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놀라울 만큼 평온했다.양건우는 단 한 번의 눈 깜박임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숨을 죽이며 소현성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제96화

    “이 썩을 놈들, 개 같은 것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방송이고 신문이고 전부 나서서 당장 주식 사라고 부추겨대더니...”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 히스테릭하게 고함을 질렀다. 목소리에는 배신감에 짓눌린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이게 말이 됩니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 수가 있다니! 젠장, 진짜 비열하고 파렴치하잖아요!”“빨리 팔아요! 지금 당장 다 팔아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들고 있는 포지션 전부 박살 납니다! 어서요!”불과 몇십 분 전까지만 해도 흡연구역에서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성과급으로 최신형 수입차를 뽑을지, 아니면 휴양지로 떠날지를 두고 떠들던 사람들이었다.그러나 지금, 그들은 모두 가장 원초적인 공포와 절망 속으로 추락하고 있었다.트레이딩본부 사무실은 단숨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절망의 고함, 광기에 가까운 키보드 두드림, 눈앞에서 자산이 산산이 부서져 가는 광경에 억눌린 소리 없는 비명들로 뒤덮었다.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빨리 손실을 끊고 빠져나가길 원했다. 그것만이 이 돌발적인 참사를 피할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시장에는 이미 매도 물량만 산사태처럼 쏟아지고 있었다.셀 수 없이 겹겹이 쌓여 올라가는 매도 호가 속에서 이를 받아낼 매수자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바로 그 시각, 사모펀드는 트레이딩본부 소속팀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팀은 종말을 맞은 듯한 혼란과 공포에 잠식되고 있었다.오직 7팀만은 폭풍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이상하게도 한 발 비켜 서 있었다. 마치 거센 강물 건너편에서 불시에 터진 거대한 불꽃놀이를 차갑게 지켜보는 듯했다.물론 그것이 진정한 평온일 리는 없었다.7팀 구성원들 또한 심장이 벌렁거렸고 마찬가지로 거대한 또 다른 충격에 완전히 얼이 빠져 있었다.“정말... 정말 팀장님 예언대로 주식시장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 겁니까?”한 선임 트레이더는 눈앞에 펼쳐진 차트를 멍하니 바라보며 중

  •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제95화

    “방금... 방금 전입니다. 몇 분 전쯤이었어요.”이수호는 온몸의 힘을 짜내듯 겨우 말을 이었다. 이미 목소리에는 떨림이 묻어났다.“금융위원회에서 긴급 정책 조정 발표문을 냈습니다. 앞으로 신용거래, 특히 레버리지를 동반한 공매도 거래를 전면 제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뭐라고요?”양건우는 귓가에 이명이 들렸다. 순간 그의 머릿속이 텅 비듯 새하얘졌고 몸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얼어붙는 듯 뻣뻣해진 감각이 전신에 퍼져 나갔다.이는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니었다.금융당국이 직접 나서 단기 과열을 차단하겠다는 가장 강경하고도 명확한 메시지이었다. 지금까지 증시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밀어 넣던 ‘신용거래 자금’, 일명 빚투의 동맥을 정면으로 끊어 버리겠다는 의미였다.“그러니까... 그래서 다들 이렇게 아우성치는 거군요.”이수호의 얼굴은 거의 오열 직전처럼 일그러졌다.“양 수석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시장에 들어와 있는 자금의 절대다수는 사실상 본인 돈이 아니라, 몇 배에서 많게는 열 배까지 불린 신용거래 자금입니다. 전부 빚이지요. 그런데 그걸 오늘 당장 막아 버리겠다고 하니...”그의 목소리는 끝내 갈라졌다.사무실을 짓누르는 정적은 곧 닥쳐올 시장 붕괴의 서막을 알리는 불길한 침묵 같았다.불과 짧은 시간 안에 주식시장이 폭발적으로 치솟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금융당국이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강력히 밀어붙인 신용거래 제도가 있었다.쉽게 말해 투자자가 자기 계좌에 가진 소액의 자금을 증거금으로 맡기면, 증권사를 통해 그 몇 배, 심지어 열 배 가까운 돈을 추가로 빌려 주식 거래에 나설 수 있었다.예컨대 2천만 원밖에 없더라도 신용거래를 활용하면 최대 2억 원을 굴릴 수 있는 셈이었다.이 제도는 사실상 ‘재테크용 흥분제’였다.순식간에 부를 불릴 수 있다는 환상은 개인 투자자들을 불나방처럼 끌어들였고 시장은 ‘돈이 돈을 부르는’ 불길로 달아올랐다.그러나 바로 오늘, 금융당국이 태도를 돌연 뒤집었다.그동안 무제한으로 열어 두었던 자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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