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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스매시모찌
“으악!”

갑자기 보이지 않는 주먹에 얻어맞은 듯, 소현성이 온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번쩍 떴다.

“지... 지금 몇 시야?”

의식은 아직 흐릿했지만, 거의 반사적으로 침대 옆에 놓인 휴대폰을 더듬어 켰다.

“아, 다행이다...”

터져 나온 건 깊은 한숨이었다.

화면에 찍힌 숫자는 참담했다. 알람이 울리기까지 아직 10분이나 남아 있었다.

‘고작 10분... 다시 잘까?’

순간 달콤한 유혹이 스쳤지만 그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자신이 어떤 성격인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 눈을 감는 순간, 십중팔구 알람 따위는 듣지 못하고 점심 무렵까지 뻗어버릴 게 뻔했다.

이 익숙한 감각은 고3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던 그때는 잠깐이라도 눈 붙이는 그 짧은 순간이 제일 행복했었다.

'지금 다시 누우면 그대로 기절해 버릴 거야. 그땐 회사 출근은 고사하고 눈을 뜨고도 한참 동안은 이름조차 가물거릴 게 분명해...'

“으윽...”

침대의 유혹을 겨우 떨쳐 내고 그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어제 게임을 그렇게 늦게까지 하는 게 아니었는데...”

머릿속에는 길드 형님들이 떠올랐다. 회사 일에 치이고 피곤한 와중에도 매일 접속해 사냥을 즐기는 그들의 끈기는 놀라움을 넘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아, 안 되겠다. 시간 다 됐네.’

잠깐 멍하니 있던 새, 시계는 어느새 10분을 삼켜버렸다.

더는 여유 부릴 수 없어 곧장 욕실로 달려갔고 세수와 샤워를 따로따로 할 겨를조차 없었다.

차가운 물줄기가 머리 위로 쏟아지자, 얼굴을 덮친 냉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컥, 하아... 이제야 잠 좀 깨네.”

왼손으로 샴푸를 움켜쥐어 대충 머리에 문지른 뒤, 몇 번 비비고 바로 헹궈냈다.

‘됐어. 이제 확실하게 잠 깼어.’

젖은 머리를 휘젓자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었고 은은한 샴푸 향이 욕실 안에 퍼졌다.

‘아... 그때가 그립다.’

예전 같았으면 아직도 게임 속 던전에서 한창 전투에 몰두하고 있었을 시간이었다. 피곤과 함께 밀려오는 짜릿한 성취감에 취해 그대로 이불 속에 파묻혀 밤낮이 뒤바뀐 채 뻗어버리곤 했었다.

‘좋았지... 하지만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아.’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씻고 나와 옷을 갈아입은 뒤 거실로 향했다.

그러다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췄다.

식탁에 부모님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두 분은 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두 분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어요?”

순간, 소현성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아까 내가 요란 떨며 씻은 것 때문에 깨신 건가?’

“현성아, 이리 와서 좀 앉아봐라.”

소제훈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위압감이 배어 있었다.

“네? 왜요?”

“너 요즘 새벽마다 어디 가는 거냐? 정말 면접 보러 다니는 거 맞아? 그 시간에?”

김미연의 눈빛에는 걱정과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

‘올 게 왔다...’

소현성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게... 사실은 취직했어요.”

“뭐라고?”

김미연의 목소리가 단번에 높아졌다.

“면접 본다더니, 그게 아니었어?”

“네. 지금도 출근하는 길이에요.”

돌이켜보니 벌써 출근한 지 사흘째였다.

앞선 이틀은 혹시나 잘려 다시 백수로 돌아갈까 봐, 불안에 떠밀려 입을 열지 못했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는 천천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식탁 위에 ‘탁’ 하고 내려놓았다.

“네오투자캐피탈?”

소제훈이 벌떡 일어섰다.

“잠깐만, 네가 말하는 직장이... 우리가 아는 네오투자캐피탈 맞아?”

김미연은 눈이 휘둥그레져 명함과 사원증에 얼굴을 바짝 가까이 들이댔다.

두 사람의 시선은 마치 그것들을 꿰뚫어버릴 듯했다.

“이게... 진짜 내 아들 명함이야?”

소제훈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명함 위 소현성의 이름을 더듬었다.

“어머나 세상에... 이거 진짜 네오투자캐피탈 사원증이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김미연은 믿기지 않는 듯, 두 눈을 크게 뜬 채 얼어붙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아들의 손을 덥석 움켜쥐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손끝이 덜덜 떨렸고 과하게 조여 오는 힘에 소현성은 견디다 못해 얼굴을 찡그렸다.

“현성아... 혹시 엄마 아빠가 너무 닦달해서 가짜 명함을 만든 거 아니지? 엄마도 알아. 네오투자캐피탈이 어떤 회사인지. 거기는 웬만한 스펙으로는 감히 발도 못 들여놓는 데잖아.”

따지는 듯한 말투였지만 목소리에는 불안과 걱정이 묻어 있었다. 김미연은 아들이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다고 믿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쳇... 이건 뭐라고 변명도 못 하겠네.’

소현성은 속으로 혀를 찼다.

네오투자캐피탈, 예전 같았으면 감히 꿈에서조차 발도 들이지 못할 곳이었다. 문턱이 하늘을 찌를 만큼 높다고들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다만 그 자리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워낙 기상천외했을 뿐.

“이 일...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저 진짜 거기 다니는 거 맞아요. 엄마, 이제 나가봐야겠어요. 아홉 시에 장 시작하면 바빠질 테니까, 그 전에 준비할 게 많아요.”

트레이딩 어시스턴트라면 잡다한 심부름부터 챙기는 건 기본이었다. 베테랑 트레이더들이 매매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게 그의 역할이니, 절대 늦을 수 없었다.

“현성아... 엄마한테 솔직히 말해봐.”

김미연은 끝까지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여보, 당신은 우리 아들이 어떤 애인지 몰라?”

옆에 있던 소제훈이 명함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공부는 영 시원찮고 게으른 데다 게임만 죽어라 하던 놈이지. 그동안 흠도 많고 탈도 많았어. 그래도 그동안 거짓말은 안 했잖아. 특히 이런 큰일 두고는 더더욱.”

“아빠, 그게 칭찬이에요, 디스예요...”

소현성은 아버지의 말에 입을 비죽였지만, 마음만은 따뜻해졌다.

“그러니까... 이번 일은 진짜라는 거지?”

“네.”

그는 고개를 힘주어 끄덕였다.

“좋다. 아빠는 그렇게 믿을게.”

소제훈은 네오투자캐피탈 명함을 두 손으로 들고 글자 하나하나를 천천히 훑었다. 마치 귀한 보물을 들여다보듯 눈빛은 점점 자부심으로 가득 차올랐다.

“네가 거기 들어갔다는 건 분명 이유가 있는 거다. 결국 우리 아들이 해내는구나. 정말 자랑스러워!”

입가에 걸린 웃음은 오랜만에 보는 진심 어린 아버지의 웃음이었다.

“고마워요, 아버지. 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얼른 가라. 출근 늦으면 안 되지.”

아버지가 손을 흔들며 배웅하자, 소현성은 가방을 챙겨 현관으로 달려갔다.

“잠깐!”

김미연이 부리나케 따라와 삶은 달걀 두 개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 하나, 그리고 사과까지 그의 손에 쥐여줬다.

“길에서 먹어. 빈속으로 다니면 안 돼.”

익숙한 냄새와 함께 스며든 엄마의 온기가 오랜만에 마음 깊은 곳을 따뜻하게 채웠다.

“그리고 그 양복도 주말에 새로 맞추자. 매일 똑같은 거 입고 다니면 안 되잖니.”

말을 마치며 김미연은 팔을 벌려 소현성을 꼭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엄마의 포근하고 든든한 품이었다. 언제나 마음의 위안이 되는 가족의 사랑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뒤에서 지켜보던 소제훈도 슬그머니 다가와 투박하게 등을 두드려 주었다.

“잘해라, 아들.”

“힘들면 말하고. 괜히 혼자 버티지 말고.”

“네, 아버지.”

부모님이 응원을 들은 소현성은 콧등이 시큰해졌다.

가슴 속이 따뜻하게 부풀어 올라 이른 아침의 마지막 냉기를 밀어냈다.

‘아... 이게 인정받는 기분이구나.’

“이러다 진짜 늦겠네요.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네가 좋아하는 반찬 해놓을게. 일 끝나면 꼭 연락해.”

“알겠어요.”

소현성은 마지막 대답을 남기고 현관문을 나섰다.

오늘 아침, 그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차고 가벼웠다.

...

트레이딩본부 사무실 문을 막 열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딱 맞춰 들어오시네요? 현성 씨, 1분만 늦었으면 지각이었어요.”

장난기 어린 이혜림의 말투였다.

“휴... 큰일 날 뻔했네요.”

소현성은 헐떡이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죄송합니다, 혜림 누나.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어요.”

“괜찮아요.”

이혜림은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내저었다.

“제가 있는데 뭘요. 혹시 늦더라도 제가 커버해 드릴게요.”

상쾌하던 아침 공기는 어느새 사라졌고 그의 하루는 산더미 같은 보고서 정리로 시작됐다.

“어제는 정말 정신없었죠?”

이혜림이 서류를 척척 정리하며 말을 건넸다.

“네, 정말 정신없는 하루였어요.”

소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근 첫날도 정말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제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어제는 특이 케이스였어요.”

이혜림이 차분히 설명했다.

“시장이 갑자기 크게 요동쳤잖아요.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니까 너무 겁먹지 마세요.”

이혜림은 커피잔을 들고 있다가 슬쩍 눈길을 옆으로 돌렸다.

고작 세 번째 날인데도, 옆자리 채용 연계형 인턴 소현성은 묘하게 눈길을 끌었다.

‘솔직히 인정할 건 해야지. 보통 다른 인턴 같으면 두세 달은 굼뜨고 버벅대기 마련인데... 현성 씨는 다르네. 손발이 놀랍도록 빠르고, 일머리가 있어. 언제, 어디서 뭘 해야 하는지 감각적으로 아는 사람 같아.’

덕분에 오늘 아침 준비는 평소보다 훨씬 수월했다.

이혜림은 심지어 따끈한 커피를 들고 창가에 서서 풍경을 바라볼 여유까지 있었다.

트레이딩본부에서 아침 시간에 이런 사치를 누린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다.

“아, 맞다.”

무언가 떠올린 듯 이혜림이 고개를 들었다.

“어제는 너무 정신없어서 깜빡했네요. 현성 씨, 모의투자 계좌 확인해 보셨어요?”

“아니요. 어제는 누나 따라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죠.”

소현성은 헛웃음을 지었다.

보고서, 출력물, 커피, 간식...

하루 종일 카트를 밀고 층마다 뛰어다니며 그야말로‘트레이딩본부 배달 기사’가 된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소속팀만 챙기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시장이 크게 요동치자 얘기가 달라졌다. 채용형 연계 인턴은 인력이 모자랄 때면 다른 팀까지 지원 나가야 했다.

어제는 특히나 전쟁터 같아서 종일 뛰어다니고 나니 다리가 퉁퉁 붓고 뻗어버릴 지경이었다.

“제가 방금 생각해 봤는데요.”

이혜림이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차라리 지금 포지션 정리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괜히 손실을 더 끌고 가느니 현금화했다가, 조정 끝나면 다시 들어가는 게 낫죠.”

“아... 그런가요?”

“네. 제가 같이 보면서 도와드릴게요. 지난번에 매수했던 종목이 관리종목 ‘중윤골드’였죠? 어제 종가가 얼마였는지 먼저 확인해 보죠.”

사무실 한쪽에서 모처럼 느껴보는 여유를 만끽하며 이혜림은 천천히 마우스를 클릭했다.

관리종목 ‘중윤골드’의 주가 페이지가 화면 위로 천천히 펼쳐지는 그 순간 예상치 못한 해프닝이 벌어졌다.

“푸헉!”

이혜림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입안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그대로 뿜어냈다.

갈색 물줄기는 허공을 가르며 활처럼 휘어져 날아갔다.

“누, 누나 괜찮으세요?”

맞은편에 앉아 있던 소현성은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젖히며 다급히 휴지를 집어 내밀었다.

그러나 이혜림은 입가를 닦을 겨를조차 없었다. 눈은 휘둥그레지고, 떨리는 손가락은 모니터를 가리켰다.

“현성 씨... 이거, 이거 좀 보세요...”

모니터에는 붉은 숫자가 또렷하게 찍혀 있었다. 관리종목 ‘중윤골드’가 전일 대비 +5%, 상한가에 그대로 꽂혀 있었다.

바로 그 종목이었다.

모든 금 테마주가 일제히 무너져 내리던 순간, 온 시장이 아비규환으로 뒤덮였던 바로 그때, 소현성이 홀로 매수 버튼을 눌러 들어간 바로 그 종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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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썩을 놈들, 개 같은 것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방송이고 신문이고 전부 나서서 당장 주식 사라고 부추겨대더니...”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 히스테릭하게 고함을 질렀다. 목소리에는 배신감에 짓눌린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이게 말이 됩니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 수가 있다니! 젠장, 진짜 비열하고 파렴치하잖아요!”“빨리 팔아요! 지금 당장 다 팔아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들고 있는 포지션 전부 박살 납니다! 어서요!”불과 몇십 분 전까지만 해도 흡연구역에서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성과급으로 최신형 수입차를 뽑을지, 아니면 휴양지로 떠날지를 두고 떠들던 사람들이었다.그러나 지금, 그들은 모두 가장 원초적인 공포와 절망 속으로 추락하고 있었다.트레이딩본부 사무실은 단숨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절망의 고함, 광기에 가까운 키보드 두드림, 눈앞에서 자산이 산산이 부서져 가는 광경에 억눌린 소리 없는 비명들로 뒤덮었다.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빨리 손실을 끊고 빠져나가길 원했다. 그것만이 이 돌발적인 참사를 피할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시장에는 이미 매도 물량만 산사태처럼 쏟아지고 있었다.셀 수 없이 겹겹이 쌓여 올라가는 매도 호가 속에서 이를 받아낼 매수자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바로 그 시각, 사모펀드는 트레이딩본부 소속팀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팀은 종말을 맞은 듯한 혼란과 공포에 잠식되고 있었다.오직 7팀만은 폭풍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이상하게도 한 발 비켜 서 있었다. 마치 거센 강물 건너편에서 불시에 터진 거대한 불꽃놀이를 차갑게 지켜보는 듯했다.물론 그것이 진정한 평온일 리는 없었다.7팀 구성원들 또한 심장이 벌렁거렸고 마찬가지로 거대한 또 다른 충격에 완전히 얼이 빠져 있었다.“정말... 정말 팀장님 예언대로 주식시장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 겁니까?”한 선임 트레이더는 눈앞에 펼쳐진 차트를 멍하니 바라보며 중

  •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제95화

    “방금... 방금 전입니다. 몇 분 전쯤이었어요.”이수호는 온몸의 힘을 짜내듯 겨우 말을 이었다. 이미 목소리에는 떨림이 묻어났다.“금융위원회에서 긴급 정책 조정 발표문을 냈습니다. 앞으로 신용거래, 특히 레버리지를 동반한 공매도 거래를 전면 제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뭐라고요?”양건우는 귓가에 이명이 들렸다. 순간 그의 머릿속이 텅 비듯 새하얘졌고 몸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얼어붙는 듯 뻣뻣해진 감각이 전신에 퍼져 나갔다.이는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니었다.금융당국이 직접 나서 단기 과열을 차단하겠다는 가장 강경하고도 명확한 메시지이었다. 지금까지 증시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밀어 넣던 ‘신용거래 자금’, 일명 빚투의 동맥을 정면으로 끊어 버리겠다는 의미였다.“그러니까... 그래서 다들 이렇게 아우성치는 거군요.”이수호의 얼굴은 거의 오열 직전처럼 일그러졌다.“양 수석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시장에 들어와 있는 자금의 절대다수는 사실상 본인 돈이 아니라, 몇 배에서 많게는 열 배까지 불린 신용거래 자금입니다. 전부 빚이지요. 그런데 그걸 오늘 당장 막아 버리겠다고 하니...”그의 목소리는 끝내 갈라졌다.사무실을 짓누르는 정적은 곧 닥쳐올 시장 붕괴의 서막을 알리는 불길한 침묵 같았다.불과 짧은 시간 안에 주식시장이 폭발적으로 치솟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금융당국이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강력히 밀어붙인 신용거래 제도가 있었다.쉽게 말해 투자자가 자기 계좌에 가진 소액의 자금을 증거금으로 맡기면, 증권사를 통해 그 몇 배, 심지어 열 배 가까운 돈을 추가로 빌려 주식 거래에 나설 수 있었다.예컨대 2천만 원밖에 없더라도 신용거래를 활용하면 최대 2억 원을 굴릴 수 있는 셈이었다.이 제도는 사실상 ‘재테크용 흥분제’였다.순식간에 부를 불릴 수 있다는 환상은 개인 투자자들을 불나방처럼 끌어들였고 시장은 ‘돈이 돈을 부르는’ 불길로 달아올랐다.그러나 바로 오늘, 금융당국이 태도를 돌연 뒤집었다.그동안 무제한으로 열어 두었던 자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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