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Bab 1 - Bab 10

100 Bab

제1화

“이게 뭐야, 도대체 어디서 주워 온 휴지 조각이야?”인사본부장 한문빈이 한 장의 이력서를 손가락으로 꼬집듯 들어 올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당장이라도 책상을 뒤엎을 기세였다.창밖으로는 한진시 금융타운의 빌딩 숲이 유리창에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숱한 마천루가 권력과 자본의 위세를 과시하며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반면, 사무실 안쪽에는 ‘네오투자캐피탈’이라는 금빛 사명이 묵직하게 걸려있었다.20조 원을 굴리는 국내 최상위 사모펀드, 명문대 출신은 기본 스펙이고 각종 국제 자격증으로 무장한 금융 엘리트들이 피를 말리며 경쟁하는 곳이었다.그런데 지금 인사본부장 한문빈이 손에 쥔 이력서는 너무도 초라했다.[이름: 소현성][나이: 25세][학력: 한진과기대 경영학 전공][자격증: 없음][경력: 없음]한문빈은 소현성의 이력서를 본 순간 혹시라도 프린터가 오작동해서 테스트 페이지가 잘못 나온 게 아닐지 의심했다.CFA, CPA, FRM 같은 금융권 필수 스펙은커녕 인턴 경력조차 빈칸이었다. 네오투자캐피탈 역사상 이런 ‘빈 종잇장 같은 이력서’를 본 건 처음이었다.네오투자캐피탈 사무실 한쪽에는 수천만 원짜리 해외 명품 파쇄기가 놓여 있었다.그런데 지금, 그 비싼 파쇄기에 넣기조차 아깝다고 느껴질 만큼 형편없는 이력서 한 장이 지금 그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본부장님... 조금 전에 회장님 비서실에서 직접 보낸 이력서입니다.”비서의 조심스러운 말에 한문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뭐라고요?”한문빈은 의자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벌떡 일어났다.‘우리 회사를 무명에서 업계 정점으로 끌어올리고 인사 문제에서는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 회장님 말이야? 학연, 지연, 혈연 따위를 가장 혐오하시는 우리 회장님이?’불과 1년 전, 한 원로 임원이 조카를 핵심부서에 앉히려다 회장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 일 이후로, 사내에서는 ‘인사 청탁’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졌다.한문빈 역시 그 장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근데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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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미쳤다... 진짜 여기 맞아?”소현성이 고개를 들어 구름을 찌를 듯 솟아오른 황금빛 빌딩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네오투자캐피탈... 내가 광한국 최고 사모펀드 직원이 되었다고?’비명문대 출신에다 변변한 직장 하나 못 구한 청년에게 이곳은 말 그대로 감히 넘볼 수 없는 꿈의 직장이나 다름없었다.‘평소 같으면 멀찌감치서 쳐다보는 것조차 주제넘은 짓이라 여길 곳에 다니게 된다니...’“소제훈이랑 김미연한테는... 아직 말도 못 꺼냈는데.”아직도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내가 뭔 능력으로 여기 취직을 해? 혹시 며칠 동안 그림자 취급받다가 바로 짐 싸서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지?’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랐던 소현성은 별수 없이 집에는 그냥 ‘면접보러 간다’고만 얼버무린 채 도망치듯 나왔다.“아, 이 양복... 좀 끼네.”백수로 지내는 동안 김미연의 잔소리와 살벌한 눈빛을 피하려고 야식까지 끊은 덕에 공처럼 불어나진 않았지만 지금 보니 운동은 꼭 시작해야 할 판이었다.‘겨우 지하철 타고 몇 층 올라왔을 뿐인데 왜 이렇게 숨이 차냐. 근데... 진짜 이렇게 일찍 출근하는 게 맞는 거야?’그가 받은 입사 안내 문자에는 분명히 적혀 있었다.[오전 7시 전까지 도착해주세요.]소현성은 그 문자 한 줄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지각하지 않으려고 해 뜨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새벽 첫 차에 몸을 실었다.텅 빈 지하철에서 그는 중얼거렸다.‘설마 나 혼자만 멍청하게 출근한 거 아니겠지? 회사 문도 안 열었으면 어떡하지?’하지만 막상 금융타운에 도착한 순간 눈앞의 풍경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와... 진짜 장관이네...’정장을 빼입은 사람들로 거리가 붐볐다. 숨 돌릴 틈 없이 걷는 직장인들이 빼곡히 메운 그 모습은 마치 전쟁터로 몰려가는 군대 같았다.‘헐...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빡세게 사는 거야?’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갔다. 오전 9시면 증시가 열리는데 그 전에 모든 준비를 마치려면 어쩔 수 없이 더 일찍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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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으악, 뭐 하는 거예요!”이혜림은 소현성이 갑자기 마우스를 ‘딸깍’ 누르는 걸 보고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소현성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왜 갑자기 매수를 눌러요? 설명도 아직 안 끝났는데!”‘끝났다. 출근 첫날부터... 일은 시작도 못 하고 사고부터 치다니...’소현성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이거 관리종목인 거 알아요? 그리고 호가창 좀 보세요. 매도 호가만 있지, 매수 호가 걸린 게 보여요?”“없네요...”“그렇죠. 그 말은 지금 이 종목이 하한가에 딱 묶여 있다는 뜻이에요. 이해됐죠?”“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다행히 지금은 모의 계좌라 괜찮아요. 만약 진짜 회삿돈으로 이런 짓을 했다면 팀장님께서 뒷목 잡고 쓰러졌을지도 몰라요.”그 말을 듣고서야 소현성은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방금 이혜림이 소리를 지를 때만 해도 정말 회삿돈을 날려 먹은 줄 알았다.“문제는 따로 있죠. 아까도 말했잖아요? 모의투자 실적도 평가에 반영된다고요.”혼잣말처럼 내뱉은 이혜림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묻어 있었다. 마치 자기 실수인 듯 초조해 보였다.“모의투자 실적이 좋아야 정규 채용 가능성이 생기는데... 관리종목에 몰방해버리면 어떻게 해요...”“죄송합니다...”“에이, 죄송할 것까지야.”이혜림은 피식 웃더니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누구나 처음에는 실수할 수 있어요. 저도 입사 초기에 이보다 더 황당한 사고도 친 적 있어요. 물론 이번 건은 평가에 영향을 좀 줄 수는 있겠죠.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팀장님께 잘 말씀드려볼게요.”소현성은 이혜림의 얼굴에 번진 진심 어린 걱정을 멍하니 바라봤다.‘혜림 누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네...’그는 속으로 울컥하며 마음속에서 은근히 ‘호감 점수’를 적립해 줬다.그러면서 동시에 출근 첫날부터 이런 황당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야말로 사회생활을 접고 싶을 만큼 굴욕적이었다.‘조금 전 온몸을 전율로 휘감던 그 감각은 뭐였을까? 너무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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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으악!”갑자기 보이지 않는 주먹에 얻어맞은 듯, 소현성이 온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번쩍 떴다.“지... 지금 몇 시야?”의식은 아직 흐릿했지만, 거의 반사적으로 침대 옆에 놓인 휴대폰을 더듬어 켰다.“아, 다행이다...”터져 나온 건 깊은 한숨이었다.화면에 찍힌 숫자는 참담했다. 알람이 울리기까지 아직 10분이나 남아 있었다.‘고작 10분... 다시 잘까?’순간 달콤한 유혹이 스쳤지만 그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자신이 어떤 성격인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지금 이대로 눈을 감는 순간, 십중팔구 알람 따위는 듣지 못하고 점심 무렵까지 뻗어버릴 게 뻔했다.이 익숙한 감각은 고3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던 그때는 잠깐이라도 눈 붙이는 그 짧은 순간이 제일 행복했었다.'지금 다시 누우면 그대로 기절해 버릴 거야. 그땐 회사 출근은 고사하고 눈을 뜨고도 한참 동안은 이름조차 가물거릴 게 분명해...'“으윽...”침대의 유혹을 겨우 떨쳐 내고 그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어제 게임을 그렇게 늦게까지 하는 게 아니었는데...”머릿속에는 길드 형님들이 떠올랐다. 회사 일에 치이고 피곤한 와중에도 매일 접속해 사냥을 즐기는 그들의 끈기는 놀라움을 넘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아, 안 되겠다. 시간 다 됐네.’잠깐 멍하니 있던 새, 시계는 어느새 10분을 삼켜버렸다.더는 여유 부릴 수 없어 곧장 욕실로 달려갔고 세수와 샤워를 따로따로 할 겨를조차 없었다.차가운 물줄기가 머리 위로 쏟아지자, 얼굴을 덮친 냉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컥, 하아... 이제야 잠 좀 깨네.”왼손으로 샴푸를 움켜쥐어 대충 머리에 문지른 뒤, 몇 번 비비고 바로 헹궈냈다.‘됐어. 이제 확실하게 잠 깼어.’젖은 머리를 휘젓자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었고 은은한 샴푸 향이 욕실 안에 퍼졌다.‘아... 그때가 그립다.’예전 같았으면 아직도 게임 속 던전에서 한창 전투에 몰두하고 있었을 시간이었다. 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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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이혜림은 모니터를 바라보는 소현성의 표정에서 묘한 기류를 읽어냈다.‘놀란 듯하면서도, 정작 놀라지 않은 듯한 눈빛...’그의 표정에는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한 차분함과 동시에 뜻밖의 당혹스러움이 겹쳐 보였다.“아, 저도 방금 본 거라서요. 이상하네요... 어떻게 이런 종목이 오르죠...”소현성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어색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애써 담담한 척하지만 감춰지지 않는 긴장감... 거기에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한 몸짓까지... 정말 내 착각일까?’이혜림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하지만... 수십 개 금 테마주가 줄줄이 무너질 때, 현성 씨는 어떻게 하필 딱 이 종목을 고른 거지? 우연치고는 소름 끼치게 정확한데...’참다못한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현성 씨, 정말 몰랐어요?”“네?”“솔직하게 말해보세요.”이혜림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췄다.“혹시... 중윤골드가 오늘 오른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건 아니죠?”“어, 그럴 리가요. 제가 무슨 수로...”소현성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눈빛은 미묘하게 흔들렸고 시선은 자연스레 옆으로 비껴갔다.‘그러네... 내가 너무 과민반응 했지.’이혜림은 잠시 정신을 가다듬으며 조금 전 떠올린 의심이 스스로도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당시 시장의 분위기는 분명했다. 금값이 단기간에 과열 상승했고 유니스 연방의 금 선물 다수 포지션이 대거 청산되면서 경험 많은 고참 트레이더들조차 골드 테마주의 조정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고작 입사한 지 사흘 된 인턴이, 그것도 캔들 차트조차 겨우 구분할 정도의 신입이 무슨 내부 정보를 알 리가 있겠어. 그냥 말도 안 되는 우연, 그야말로 미친 듯이 운이 좋았던 거겠지.’“소현성 씨.”그렇게 스스로 결론을 내리려는 순간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목소리가 사무실을 가로질렀다.“아, 네, 팀장님!”소현성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곧추세웠다.주희재가 두 사람과 커피로 얼룩진 책상을 흘끗 훑었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턱을 치켜들며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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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아이고, 아이고...”소현성이 뻣뻣하게 굳은 팔다리를 어설프게 풀어 늘리자, 옆에 있던 이혜림이 눈길을 돌렸다.“현성 씨, 뭐 하는 거예요?”“아, 혜림 누나. 별일 아니에요. 그냥 몸 좀 풀고 있었어요.”지난 사흘 동안 증시가 개장하는 순간부터 채용 연계형 인턴들의 하루는 똑같았다. 삐걱대는 철제 카트를 밀며 트레이딩본부 각 팀을 오가고 지시와 서류를 전달하느라 물고기처럼 분주히 뛰어다녀야 했다. 말 그대로 바닥부터 굴러야 하는 자리였다.“누나가 말했잖아요. 증시는 순식간에 요동치니까 결국 중요한 건 두 가지라고. 하나는 ‘심리전’, 흔들리지 않는 멘탈이 필요한 작업이니 그건 머리 다 벗겨져 가는 베테랑 트레이더들이 맡아야 할 몫이고... 우리 같은 인턴이 낼 수 있는 가치는 오직 하나, ‘속도’뿐이라고요. 남보다 빨라야 하니까, 스트레칭이라도 해줘야죠.”전날 하루 종일 뛰어다닌 탓에 그의 장딴지는 여전히 뻐근했다. 납덩이를 달아놓은 듯 무겁게 처지는 피로감이 온몸을 뒤덮었다.그때 소현성은 처음으로 절실히 깨달았다.‘나도 팀장님처럼 운동 좀 해서 몸을 만들어야 하나...’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퇴근하고 운동? 웃기고 있네. 지금껏 게임만 하던 내가 밤마다 헬스장을 간다고? 절대 불가능하지.’그렇게 자조하던 순간, 이혜림이 몸을 살짝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현성 씨, 좋은 소식 있어요. 오늘은 그 카트 안 밀어도 될 것 같아요.”“네?”소현성이 멍하니 눈을 크게 떴다.‘인턴 중에서도 제일 말단인 내가 안 하면 누가 하지?’“팀장님 지시예요.”이혜림이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다른 팀 인턴들한테 부탁했다고 하더라고요. 오늘은 우리가 발로 뛰지 않아도 된대요.”‘왜 갑자기? 어제는 안 그러더니. 그동안 괜히 다리만 고생했잖아...’투덜거림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감히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주 팀장이 이렇게까지 배려할 리가 없는데... 설마 내가 낙하산이라는 걸 의식한 건가?’이혜림이 설명을 이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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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주희재는 젊은 시절부터 게임을 거의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멀리한 건 아니었지만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도대체 번쩍거리기만 하고 요상하기 짝이 없는 그 가상 세계가 뭐가 그리 대수라고 사람들은 밥 먹는 것도 잊고 밤새도록 빠져드는 걸까? 시간 버리는 건 줄도 모르면서...’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고 굳이 파고들고 싶지도 않았었다. 그저 짙은 안개 장막 너머에서 멀찍이서 한심하다 생각하며 거리를 둘 뿐이었다.그런데 증권시장이라는 소리 없는 전장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이제는 오히려 게임에 빠져 사는 사람들의 심정을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장 시작을 알리는 시스템 알림음이 ‘띵’하고 울리는 순간부터 온 신경은 캔들 차트에 꽉 묶여버렸다. 눈앞에서 요동치는 숫자와 캔들 차트가 만들어내는 심연 속으로 영혼이 통째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고 장 마감 알림음이 울릴 때까지 그 세계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다.오늘도 마찬가지로 찰나처럼 짧게 느껴진 하루의 격전이 끝났다.“후...”주희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내뱉은 숨결에는 증시라는 소리 없는 전장의 화약 냄새가 묻어 있는 듯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 한쪽에 고정돼 있었다. 이제 오늘의 성적표를 확인할 시간이었다.[+1%, 1% 수익 실현.]언뜻 보기에 보잘것없는 숫자였지만, 칼끝 위에서 버티는 트레이딩본부 입장에서는 결코 쉽게 얻은 성적이었다. 특히 오늘 같은 장세라면 더더욱 어려웠다.“팀장님, 오늘도 정말 최선을 다해주셨네요. 덕분에 저희 팀은 살았습니다.”젊은 트레이더 하나가 다가와 안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다른 팀들은 어때요?”주희재는 시선을 화면에서 떼지 않은 채 담담히 물었다.“말도 마세요... 완전 아수라장입니다. 우리 트레이딩본부 소속팀들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들도 줄줄이 크게 깨졌습니다. 다들 난도질당했죠.”최근 시장은 발작한 원숭이처럼 위아래로 날뛰며 사람들의 멘탈을 갉아먹고 있었다. 사실 증시란 원래 그런 것이었다.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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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데일리 리뷰 미팅.주희재 팀장이 회의실 앞에 서서 담담한 얼굴로 당일 실적을 리뷰했다.“오늘은 전반적으로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우리 트레이딩본부도 역대급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다만 다른 부서와 비교했을 때 리스크 관리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게 이뤄졌습니다. 오늘 손실은 내일 전략 조정으로 만회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정규 매매 외에 별도로 보고할 만한 트레이딩 이슈는 없습니까?”한 트레이더가 곧바로 대답했다.“네, 팀장님. 오늘은 지수가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보여서 사전에 마련해 둔 시나리오대로 주요 섹터 위주로 헤지 포지션을 운용했습니다. 위험 노출 관리 차원 외에는 특별한 대응은 없었습니다.”“좋습니다. 이번 하락세가 며칠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내일도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해주십시오.”“네, 알겠습니다.”“오늘 하루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모두 조금 일찍 퇴근하도록 합시다.”순간 회의실 안 공기가 살짝 흔들렸다.‘와, 조기 퇴근이라고? 완전 개이득이지! 빨리 집 가서 레이드 뛰어야겠다. 게다가 길드장도 오늘 꼭 약속 시간에 접속하라고 문자까지 보냈단 말이야!’소현성의 가슴이 괜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세상일은 이상하게도 모두가 깊이 잠든 사이에 터지곤 한다는 말,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그 까닭은 단순하다. 지구는 둥글고,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동쪽에서 모두가 코를 골며 자고 있을 때, 지구 반대편에서는 천지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 비비며 휴대폰을 열어보는 순간 지구 반대편, 당신과는 전혀 다른 시차 속에서 이미 세계 질서를 바꿀 만한 격변이 한창 벌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다음 날 새벽, 아직 해가 뜨기도 전, 트레이딩본부 사무실은 불야성을 이뤘다.뉴스를 접하자마자 잠을 포기하고 달려온 트레이더들이 모니터 앞에 둘러앉아 있었다.하나같이 얼굴은 굳어 있었고 몇몇은 이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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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음...진지하게 차 한 대 뽑아야 하나?’소현성의 머릿속에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첫 월급도 아직 못 받은 채용 연계형 인턴이 무슨 돈으로 차를 산단 말인가.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절실히 알 수 있었다.왜 이 빌딩 안에서 잘나가는 트레이더들이 양복 한 벌 걸칠 여유만 생겨도 하나같이 차를 끌고 다니려 드는지.출근 시간이 문제였다. 이른 정도가 아니라,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얼마나 빠르냐고? 첫 지하철을 놓치는 순간, 지각은 확정!’운 좋게 겨우 첫차를 탄다고 해도 회사에 도착해 들어설 때면 늘 숨이 턱에 차서 헉헉대야 했고 이마에 땀이 채 마르기도 전에 모니터 앞에 앉아야 했다.그나마 다행인 건 잔뼈 굵은 베테랑 트레이더들까지 목숨 걸고 새벽 출근을 하는 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그래서 소현성 같은 잔챙이 인턴이 조금 늦게 들어온다고 해도 평소라면 대놓고 눈총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사무실 문턱을 넘는 순간, 소현성의 발걸음이 절로 멈췄다.묘하게 짓눌린 공기, 숨 막히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층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다.고개를 들어보니 트레이딩본부 층 전체가 사람들로 들끓고 있었다.소현성 또래의 어리숙한 인턴들부터 머리를 반듯하게 빗어 넘기고 독수리 같은 눈빛을 번득이는 베테랑 트레이더들, 평소에는 그림자조차 보기 힘든 팀장들까지...트레이딩본부 전 직원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이건 무슨 상황이지...’‘뭐야, 벌써 장이 시작된 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무슨 일이지?’소현성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사무실은 전선을 앞둔 군영처럼 긴박하게 요동쳤다. 쿵쿵 울리는 발자국 소리, 쉴 새 없는 키보드 두드림, 낮게 터져 나오는 다급한 대화들이 한데 뒤섞이며 공기마저 무겁게 짓눌렀다.눈에 보이지 않는 화약 냄새가 번지는 듯했다. 누구 하나 고성을 지르진 않았지만, 공간 곳곳에 폭풍 전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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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소현성의 예상대로 이혜림은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말이 점점 빨라졌다.“어제까지만 해도 우리 모두 배터리 섹터는 침체기라고 봤잖아요. 단기 하락세는 확정, 기본 전략은 공매도였죠. 그런데 인니시아가 이렇게 판을 흔들어버리니까, 논리가 완전히 뒤집힌 거예요.”그녀는 손짓까지 써가며 소현성이 이해하도록 설명했다.“생각해 봐요. 니켈 재고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거나, 광산이랑 이해관계가 직결된 회사들 말이에요. 그런 회사들은 순식간에 시장의 핵심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죠. 주가 폭등은 거의 기정사실이라고 봐야 해요.”“문제는...”이혜림은 잠시 말을 고르더니 낮게 덧붙였다.“어제만 해도 여러 팀이 배터리주에 대규모 숏 포지션을 잡았다는 겁니다. 알죠? 공매도는 방향이 틀리면 시장이 거꾸로 움직일 때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잖아요.”끝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만으로도 상황의 심각함은 충분히 전해졌다.최근 들어 주식 기초지식을 부랴부랴 익혀온 소현성은 이제 이런 전문 용어가 낯설지 않았다. 기관이 말하는 ‘숏 포지션’이 곧 공매도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특정 종목 주가가 하락할 거라 예상하고 고점 매도, 저점 매수로 차익을 노리는 전략 말하는 거네!’대형 기관들은 이를 리스크 해지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투기적 무기로 활용했다. 문제는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보면 그 자체가 벼랑 끝에서 줄타기하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는 점이었다.만약 시장 흐름을 잘못짚어 주가 하락에 베팅했다가, 돌발 이슈가 호재로 작용해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치솟으면 그 순간부터 공매도 손실은 사실상 한도 없이 불어난다.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새벽의 풍경, 해 뜨기도 전에 모두가 사무실로 뛰어와 전쟁 준비하듯 긴급 대응 모드로 들어간 이 풍경 자체가 바로 그 ‘무한 손실 리스크’가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안타깝게도 몇몇 팀들은 배터리주의 하락세를 굳게 믿고 과감히 공매도에 나섰다가 인니시아 정부라는 블랙 스완의 날갯짓에 정면으로 얻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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