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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가을단풍
배지희는 옷자락을 휘날리며 밤바람 속으로 멀어지는 신경남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등줄기를 타고 흐른 식은땀이 옷을 흠뻑 적셨다.

방금 전 신경남을 마주하고 그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기와 기력을 쥐어짰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가장 하고 싶었고 중요한 말을 꺼냈으니, 신경남이 믿든 안 믿든 첫 고비는 넘긴 셈이었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여전히 막막했다.

"어머니."

방에 남겨진 신재형이 그녀를 불렀다. 아이는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평소에 자신에게 늘 다정하게 대해주던 계모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방금 전 아버지와 계모가 크게 다투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오늘 낮에 자신이 한 잘못 때문일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예전에도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

아버지가 계모를 호되게 꾸짖으면, 그녀는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을 더욱 정성껏 돌봐주었다.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며 서글픈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신재형도 작은 죄책감을 느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어차피 그녀는 마음씨 고약한 계모이니 그래도 된다고 굳게 믿었다.

어머니의 동생이라는 것을 핑계로 자신에게서 어머니의 기억을 지우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신재형은 입을 삐죽거리며 크게 울기 시작했다.

"배 아파, 재형이 배 아파요……."

아이는 울며불며 배지희에게 안아달라고 두 팔을 뻗었다.

멍하니 있던 배지희는 무의식중에 아이를 안아주려 팔을 내밀었다.

그 순간 그녀는 통통한 아이의 얼굴에 스치는 묘한 웃음을 보았다.

배지희는 섬뜩함을 느끼고 멈칫 동작을 멈추었다.

바로 그때였다.

짝!

신재형의 작은 손이 배지희의 손등을 매섭게 내리쳤다.

하얀 손목 위에 순식간에 붉은 자국이 생겼다.

청심이 놀라서 신재형을 안아 들었다.

"도련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도련님 때문에 작은 마님께서 오늘 하루종일 앓아누우셨는데 어찌 그런 분께 매질을 한단 말입니까."

아랫사람 신분이라 대놓고 나무랄 수는 없었지만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신재형은 대꾸도 없이 까만 눈으로 배지희를 빤히 바라보며 반응을 살폈다.

여느 때 같으면 배지희는 아픔을 참고 다정하게 그를 끌어안으며 다독일 뿐, 꾸짖지 않았다.

그 틈을 타 무리한 요구를 해도 웬만하면 다 들어주었고, 억지를 부려도 일단 알겠노라 달래주었다.

하지만 오늘의 배지희는 손목에 난 붉은 자국을 물끄러미 내려다볼 뿐,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 그녀가 멈칫하며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면 고스란히 뺨을 맞았을 것이고, 다음 날까지 붉게 부어올랐을 것이다.

그녀는 아이에게서 깊은 실망감을 느끼고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본성이 악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가르치려 해도, 곁에서 틈만 나면 악의적으로 부추기는 하인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배지희가 반응이 없자 신재형은 또다시 크게 울며 안아달라고 떼를 썼고, 급기야 청심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배지희가 차갑게 말했다.

"내 병이 재형이에게 옮을까 두렵구나. 청심아, 유모와 함께 재형이를 부인 처소로 데려가거라."

청심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재형을 안은 채 돌아서서 유모를 찾으러 나갔다.

신재형은 이 모든 상황이 어리둥절했다. 청심의 어깨에 매달린 아이는 침상에 누워 파리하게 눈을 감은 계모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어머니가 왜 자신을 곁에 두고 재우지 않는지 의아했다.

신재형은 북정원으로 가기 싫었다. 그곳의 이부자리는 향냄새가 너무 진하고 뻣뻣해서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지 않았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차 멀어지고 청심원에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창문 틈으로 서늘하고 축축한 밤공기가 스며들어 방 안이 다시 썰렁해졌다.

한바탕 소동을 겪고 나니 잠이 달아난 배지희는 난심에게 지필묵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난심은 주인의 창백한 안색을 보고도 감히 말리지 못했다.

지필묵이 준비되었지만, 막상 텅 빈 화선지를 마주한 배지희는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써야 할 말이 많았지만 막상 붓을 쥐려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수년 동안 쌓인 크고 작은 서러움이 한꺼번에 치솟으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적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배지희가 일어났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

간밤에 신재형이 곁에 없었던 덕분에 모처럼 푹 잤다. 평소 같으면 신재형이 아플 때마다 온 청심원이 발칵 뒤집히고, 그녀 역시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밤을 꼬박 새워야 했다.

열이 내리자 기력도 제법 회복되었다. 하얗던 뺨에 옅은 생기가 돌았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청순하고 단아한 기품이 흘렀다. 맑은 눈동자는 보석처럼 밝게 빛났다.

붉은 입술, 갸름한 턱선, 오뚝한 콧날은 연약한 자태 속에 우아한 귀티를 더해주었다.

그녀의 나이는 가장 꽃다운 나이 열여덟이었다.

북정원에서 사람이 와서 진씨의 아침 식사 시중을 들라 전했다. 배지희는 잠시 고민하다가 준비를 마치고 스스로 가겠다고 돌려보냈다.

심부름을 온 시녀는 천천히 몸단장을 하는 배지희의 담담한 모습에 기가 눌려 차마 눈치를 주며 재촉하지 못했다.

청심이 불안해하며 말했다.

"만약 늦게 갔는데 부인께서 호되게 기강을 잡으시면 어쩌나요?"

어제 사당에서 두 시진이나 무릎을 꿇렸으니, 진씨의 성미를 보아 오늘도 혹독한 괴롭힘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청심은 머리를 굴리다 조심스레 조언했다.

"작은 마님, 가셔서 어제 일은 오해였다고 간곡히 해명하십시오. 도련님이 성가셔서 돌려보낸 것이 아니라 그저 병이 나서 홧김에 그러신 거라고……."

배지희는 차분하게 청심의 말을 끊었다.

"그럴 필요 없다."

과거에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그녀 역시 어떻게든 해명하려 애썼고 악의가 없었음을 증명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신경남이 믿지 않았고, 진씨는 더더욱 믿지 않았다.

아이에게 등을 떠밀려 호수에 빠졌을 때, 그녀는 마침내 지난 몇 년간 자신이 겪은 고통의 원인을 깨달았다.

애당초 그녀의 신분 자체가 지울 수 없는 원죄였던 것이다.

이혼을 입에 올린 순간,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홀가분했다.

신경남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고, 진씨가 어떻게 자신을 괴롭히든 마음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떠나기로 결정한 마당에 두려울 것은 없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자유롭고 홀가분한 삶이었다. 이 감옥 같은 곳에 갇혀 하루하루 피와 눈물을 말리며 살고 싶지 않았다.

배지희가 북정원에 도착했을 때, 웬일인지 셋째 집안과 넷째 집안 사람들까지 모두 모여 마당이 붐볐다.

마당과 복도에는 지위가 높은 어멈들과 시녀들이 서 있었다.

배지희가 다가가자 다들 못 본 척하거나 건성으로 인사만 까딱하고는 다시 자기들끼리 떠들며 그녀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신씨 가문 사람들의 이런 노골적인 무시에는 이골이 난 터라, 배지희는 청심과 함께 회랑 구석에 조용히 서서 기다렸다.

박씨 어멈은 배지희가 온 것을 보고 바닥에 침을 뱉고 나서야 진씨에게 보고하러 안으로 들어갔다.

어멈은 어젯밤에는 그리 뻣뻣하게 굴더니 결국 기어 나와 문안을 드린다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배지희가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는데 화려한 비단옷에 장신구로 치장한 신경운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올해 열세 살인 신경운은 연노란색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배지희를 발견하고는 작정한 듯 다가왔다.

"어제 우리 재형이를 호수에 밀어버리고 어머니까지 화나게 만들었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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