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붉게 새겨진 [미숙가단] 글자가 놈의 동공에 박혔다."손님. 여기 입장료는.""히익!"퍼억!"목숨이야."놈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미숙이가 놈의 이마를 강타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의 고개가 뒤로 꺾였다. 즉사였다.시작이었다."쳐라! 한 놈도 놓치지 마라!"내 고함 소리와 함께, 숨어있던 익호군들이 해안가를 덮쳤다."와아아아!""죽여! 왜놈들이다!"해안가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바다에서 겨우 기어 올라온 왜군들은 무기도, 체력도 없었다. 그저 벌벌 떨며 기어 다니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타스케테쿠레! 코우산다! 코우산스루!(사, 살려줘! 항복! 항복한다!)"왜군 하나가 무릎을 꿇고 빌었다. 하지만 최가는 가차 없었다."머라고 씨부리는 거여? 조선에 왔으면 조선말을 혀야지!"푸욱!최가의 낫이 놈의 어깨를 찍었다. 놈은 비명도 못 지르고 쓰러졌다."대장님! 이쪽도 있습니다!"바위틈에 숨어있던 놈들을 춘식이가 찾아냈다. 대여섯 명이 옹기종기 모여 떨고 있었다."처리해."나는 놈들에게 다가가며 미숙이를 휘둘렀다.붕- 퍽! 억!허리를 돌려 원심력을 실은 스윙.왜군들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흑단목은 피를 머금어 더욱 검게 빛났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피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크아악! 오니! 오니다!"뒤늦게 올라오던 왜군들이 그 참상을 보고 기겁했다. 놈들은 다시 바다로 도망치려 했다."어딜 가려고.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나는 등 뒤에 멘 활, 고삐리(고필)를 꺼내 들었다.시위를 당겼다.팽팽한 장력이 손끝을 파고들었다.'도망가는 놈 등짝 맞추는 게 제일 쉽지.'피융-!화살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 파도를 헤치고 도망가던 왜병의 뒤통수에 꽂혔다."꼬르륵..."놈은 그대로 물속으로 사라졌다. 붉은 피가 파도에 섞여 번졌다."나이스 샷."나는 연달아 화살을 날렸다.피융! 피융! 피융!백발백중.물
콰아앙! 콰아아앙-!바다가 뒤집혔다.천지 개벽이 일어난다면 이런 소리가 날까.견내량의 좁은 수로를 빠져나온 와키자카의 함대는, 한산도 앞바다라는 거대한 아가리 속으로 제 발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아가리가 닫히는 순간, 지옥도가 펼쳐졌다."쏴라! 놈들을 수장시켜라!"이순신 장군님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부채꼴로 넓게 펼쳐진 학익진(鶴翼陣).그 거대한 날개 끝에 위치한 판옥선들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수백 발의 포탄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왜선들 위로 쏟아졌다.우지끈! 콰직!나무로 만든 왜선들은 종이배처럼 구겨졌다. 돛대가 부러져 병사들을 덮치고, 배 허리가 꺾여 두 동강이 났다. 바다는 순식간에 불길과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보시오! 저걸 보시오!"나대용이 내 어깨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그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포연을 뚫고 적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두 척의 괴물.놈들은 마치 성난 코뿔소처럼 왜선들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쿠웅-!충각.거북선의 단단한 용머리가 왜선의 목재를 박살 내며 파고들었다. 왜군들이 조총을 쏘고 화살을 날려댔지만, 거북선의 등판을 덮은 검은 철갑은 그 모든 공격을 비웃듯 팅팅 튕겨냈다."형씨가 설계한 배가 날아다니는데요?""그렇소! 저 회전 반경을 보시오! 무게 중심을 낮춘 덕에 급선회를 해도 배가 기울지 않소! 그리고 저 포각! 사방팔방으로 불을 뿜어도 끄떡없단 말이오!"거북선은 멈추지 않았다.용머리 아가리에서 붉은 포염과 함께 독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유황 연기였다."콜록! 콜록! 앞이 안 보인다!""악귀다! 바다에서 용이 나왔다!"왜군들은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다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바다에는 이미 불이 붙은 기름과 배의 파편들이 가득했다.왜군들이 살기 위해 거북선 등판으로 기어오르려 했지만, 그곳에는 촘촘하게 박힌 쇠송곳이 기다리고 있었다.푸
배마다 '왜(倭)'자가 쓰인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갑판 위에는 조총과 창으로 무장한 왜군들이 개미 떼처럼 바글거렸다.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함대였다.위용이 대단했다. 배의 크기도 크기거니와, 그 숫자가 주는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바다를 새까맣게 뒤덮으며 다가오는 놈들을 보니, 왜 조선 수군이 겁을 먹고 도망쳤는지 이해가 될 정도였다."워매... 저게 다 뭐당가요? 바다를 덮어버렸구만요."최가가 질린다는 듯 중얼거렸다. 육지 촌놈들이라 배를 볼 일이 별로 없었으니, 저 압도적인 스케일에 기가 죽을 만도 했다.옆에 있던 병사들도 웅성거렸다."저걸 우리 수군이 이길 수 있어? 숫자가 너무 딸리는데?""그냥 우리도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여?"패배주의.그것이 가장 큰 적이다.나는 천리경을 내리고 녀석들을 돌아보았다."쫄지 마."내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배 많다고 이기는 거 아니야. 그리고 놈들은 지금 독 안에 든 쥐야.""독이요? 바다가 저렇게 넓은데요?""두고 봐라. 장군님이 어떻게 요리하시는지. 횟감 뜨듯이 아주 예쁘게 발라주실 테니까."그때였다.견내량 입구 쪽에 조선의 판옥선 몇 척이 나타났다. 대여섯 척 정도의 소규모 함대였다.왜군 함대에 비하면 초라해 보일 정도로 적은 숫자였다. 마치 거인 앞에 선 어린아이 같았다."와아아아!"왜군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게 여기까지 들렸다.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 떼처럼, 왜선들이 속도를 높여 조선 수군을 쫓기 시작했다. 노 젓는 소리가 둥둥 울려 퍼졌다."어어? 우리 편 도망치는데요
1592년 7월.조선의 여름은 지독하게 뜨거웠다.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솜을 누벼 만든 두꺼운 방탄조끼(누빔옷)를 입고 있으려니 죽을 맛이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엉덩이 골까지 적시는 기분은 정말이지 최악이었다."더워 죽겠습니다, 대장님. 꼭 이렇게까지 입어야 합니까? 쪄 죽겠습니다요."옆에 엎드려 있던 최가가 혀를 내밀며 헐떡거렸다. 녀석의 얼굴은 잘 익은 홍시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죽기 싫으면 입어. 왜놈들 조총은 더위보다 뜨거우니까."나는 나직하게 대꾸하며 시선을 전방으로 고정했다.이곳은 경상도 거제도와 통영 사이, 견내량(見乃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해안가 절벽 숲속이었다. 매미 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익호군 정예 100명이 숨을 죽이고 매복해 있었다.우리가 왜 금산이 아닌, 이곳 남해안 끝자락까지 왔느냐고?이유는 하나였다.오늘 이곳에서, 조선의 운명을 가를 거대한 판이 벌어지기 때문이다.며칠 전, 미령이가 가져온 첩보는 충격적이었다."아저씨, 큰일 났어요. 왜군 함대가 견내량 쪽에 집결하고 있대요. 규모가... 어마어마하다고 해요."와키자카 야스하루.용인 전투에서 조선군 5만을 1,600명으로 갈아버렸던 일본의 명장. 그가 이끄는 최정예 수군 70여 척이 한산도 앞바다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저놈이다. 이광 감사가 5만 대군을 말아먹게 만든 장본인.'전라감사 이광이 나에게 조방장 자리를 제안하며 같이 북상하자고 했을 때,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미래를 아는 나로서는 뻔히 보이는 불구덩이에 내 정예병들을 밀어 넣을 수 없었으니까.'덕분에
그날 밤.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마당에 나와 활을 닦았다.검은 옻칠 위로 달빛이 흐르며 '자고자대 자취멸망' 글귀가 빛났다."아저씨."미령이가 다가왔다. 손에는 작은 호리병이 들려 있었다."이거... 약주예요. 잠 안 오시면 한 잔 드세요.""고맙다. 넌 안 자고?""걱정돼서요... 꼭 이기셔야 해요. 그리고 꼭 돌아오셔야 해요.""당연하지. 우리 식구들 두고 어딜 가냐."나는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미령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미령아. 너도 가서 자라. 내일 부상자 나오면 네가 바빠질 거야.""네... 아저씨도 빨리 주무세요."미령이가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나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가, 이내 씁쓸한 표정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임진왜란.교과서에서 볼 때는 그냥 활자 몇 줄이었지만, 현실은 지옥이었다.이 전쟁통에 아무런 죄도 없이 부모를 잃고 길바닥에서 굶어 죽거나, 칼에 찔려 죽은 아이들이 산을 이뤘을 것이다. 셀 수도 없는 어린 생명들이 피워보지도 못하고 짓밟혔을 것이다.미령이는 그나마 운이 좋아서 나를 만난 거고, 구해진 거다.'살릴 수 있다면, 내 팔이 닿는 곳에 있는 아이들은 무조건 살린다.'그게 어른이 할 일이고, 힘 있는 놈이 해야 할 의무니까.미령이뿐만 아니라, 내 뒤에 숨은 모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이겨야 했다.나는 미령이가 주고 간 호리병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싸한 술기운이 돌았다."이것도 먹으면서 마셔요."등 뒤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돌아보니, 어둠 속에 잠겨 있던 객주 기둥 뒤에서 서백설이 작은 소반을 들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어? 안 자고 있었어?""몰라요. 그냥... 잠이 안오네요."그녀는 내 앞 평상에 소반을 내려놓았다.소반 위에는 먹기 좋게 찢어놓은 육포와, 하얀 분이 곱게 핀 곶감, 그리고 따뜻한 꿀물이 담긴 대접이 놓여 있었다."이게 뭐야?""안주예요. 미령이가 술 챙겨가는 거 봤거든요. 깡술 마시지 말고 이거랑 같이 먹어요."그
"대장님, 방금 뭐 지나갔습니까?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요?""안 보이는 게 정상이야. 보이면 피하니까."나는 통아를 내려놓으며 전율했다.이건 활이 아니다.저격총이다. 소음기 달린 저격총."끝내주네요. 이걸로 적장 머리통을 노리면, 놈들은 억 소리도 못 내고 가겠는데요.""그렇소. 사거리도 길고 탄속도 빨라서 갑옷도 뚫소. 다만..."나대용이 씩 웃었다."익히기가 어려워 아무나 못 쓴다는 게 단점이지. 허나 자네라면 문제없겠구려."나는 편전 한 발을 더 장전했다."감 좀 잡아봐야겠습니다. 최가야! 저기 허수아비 10개 더 세워라! 이번엔 350보 뒤로 물려!"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었다.나는 미친 듯이 편전을 날렸다.피융! 피융! 피융!백발백중.허수아비의 급소란 급소는 모조리 꿰뚫렸다. 머리, 심장, 그리고... 사타구니.한 시간쯤 쏘고 나니 어깨가 뻐근했다. 하지만 감각은 완벽하게 돌아왔다."좋아. 이 정도면 실전 투입 가능해."나는 활과 통아를 내려놓았다.나대용이 다가와 품에서 또 다른 종이 뭉치를 꺼냈다."활 연습은 끝났소? 그럼 이것도 보시오.""설계도입니까?""현무 개량안이오. 자네가 가져온 화약과 쇠 덕분에 발상이 떠올랐소."그가 펼친 도면에는 현무의 지붕 위에 낯선 장치가 그려져 있었다."이게 뭡니까? 솥단지?""비격진천뢰 투석기요.""투석기?""손으로 던지는 건 한계가 있지 않소. 현무 내부의 장력을 이용해서 진천뢰를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날려 보내는 장치요. 움직이는 포대(砲臺)가 되는 거지."미쳤다.이 양반은 진짜 시대를 잘못 태어난 천재다. 탱크에 박격포까지 달겠다는 소리였다."형씨. 형씨 머릿속엔 뭐가 들어있는 겁니까?""뭐긴. 왜놈들 박살 낼 생각뿐이지."우리는 마주 보고 낄낄거렸다.든든했다. 최고의 무기, 최고의 기술자, 그리고 최고의 동료들.하지만 이 평화로운 훈련도 잠시였다."대장님."미령이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장난기 어린 모습은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