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매니저는 웃으며 답했다.“대표님, 저도 보여주고 싶은데 금고의 열쇠는 다른 팀장님 손에 있거든요. 팀장님께선 오늘 휴가이시니... 죄송하지만 오늘은 못 보여줄 것 같네요.”한현진은 계 매니저를 힐끗 한번 보곤 또다시 물었다.“그럼 장부는 있겠죠? 가져올 수 있나요?”“아이고 참. 정말 아쉽게도 그 장부는 귀한 주얼리와 함께 금고에 있거든요. 아니면 다음에 다시 오세요. 그때 제가 보여줄게요.”차미주는 미간을 찌푸렸다.“장부와 주얼리를 함께 넣어두었다고요? 그럼 장부 꺼낼 때 제품이 함께 딸려 나와 스크래치가 나지 않나요?”계 매니저가 답했다.“저희 가게에선 줄곧 이런 식으로 보관해 왔습니다. 익숙해지면 괜찮아요. 그러니 한 대표님께서도 익숙해지세요.”차미주는 그의 말에 이를 빠드득 갈았다.‘이 개 매니저가 일부러 이러는 거지?! 뭐? 대표님한테 적응하라고? 대표님한테? 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어!'그녀가 화를 내려고 할 때 한현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볼 수 없다고 하니 그럼 안 볼게요. 계 매니저는 위층에 있는 디자인실과 세공실을 보여주세요.”계 매니저는 영업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세공실은 전부 먼지와 세공 기계가 많아 귀하신 한 대표님이 가시기엔 적합하지 않을 거예요. 만약 거기서 다치기라도 하시면 저흰 책임 못 지거든요.”한현진은 차갑게 입꼬리를 올렸다.“정말 책임 못 질 것 같으면 그만두시는 게 좋겠네요. 제가 일 잘하는 직원으로 다시 뽑으면 되죠.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고 하는 계 매니저보단 낫지 않겠어요? 그런 업무 능력으로 어떻게 매니저까지 된 거죠? 전 당신의 능력이 의심되네요.”계속 영업적인 미소로 이것저것 통제하던 계 매니저의 표정 관리가 살짝 무너지기 시작했다.그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대표님께서 농담을 잘하시네요. 저도 안내해 주고 싶죠. 하지만 대표님께선 워낙 귀하신 분이시라 그런 환경을 버티지 못하실까 봐 그러는 거죠.”말을 마친 그는 뜸을 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대표
말을 마친 계 매니저는 그녀를 보았다. 그러자 차미주는 헛기침하면서 태연하게 물었다.“이 하나의 봉투가 200만 원이라고요?”계 매니저가 말했다.“네, 회수하러 오는 사람이 저희 가게와 계약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수거 금액도 많이 쳐줍니다. 다른 공장에선 한 봉투에 120만 원 정도밖에 안 주거든요.”한성우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이런 품질의 자투리는 산산조각이 난 정도거나, 세공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면 절대 봉투에 가득 넣어서 팔지 않아. 게다가 품질도 나쁘지 않으니 아무리 폐기 처분 자투리라고 해도 한 봉투에 200만 원은 불가능한 거야. 일단은 지켜보자. 한현진이 오늘 처음 여기 왔잖아. 아직 사업 시작도 안 했고 직원들도 한현진을 받아주는 기색이 아니니까 아마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차미주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이 말을 어떻게 현진이한테 전해주지?'사실 그녀가 말해주지 않아도 한현진은 이미 이상함을 눈치채고 있었다. 한현진은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계 매니저, 디자인실로 가요.”계 매니저는 태연하게 둘러보며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는 한현진에 그저 이런 부분에 무지한 사람이라 여기며 남몰래 안도했고 그들을 데리고 2층으로 내려갔다.스트레인지엔 5명의 디자이너가 있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땐 그중 네 명은 이미 자기 위치에 앉아 있었다. 계 매니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자자, 손에 든 것을 모두 내려놓으세요. 이분은 오늘 저희 지사의 새로운 대표님이십니다.”고개를 돌린 디자이너 중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한현진은 살짝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람은 바로 방금 플라자에서 부딪친 전혜지였다. 그녀가 대체 여기에 왜 있는 것일까?전혜지의 디자인 실력은 수수하지 않았다. 응당 대기업에서 일할 정도로 실력이 좋은 사람이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전혜지도 한현진을 발견하곤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만 어딘가 다소 엄숙해 보이기도 했다.계 매니저는 마치
한현진은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온몸에 액세서리를 건 여자가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의 어깨, 머리, 목... 그리고 귀까지 액세서리를 낄 수 있는 곳엔 전부 액세서리를 끼고 있었다.게다가 액세서리에 박힌 보석도 엄청나게 컸다. 한눈에 봐도 가치가 엄청날 것 같은 액세서리를 전부 겹겹이 겹쳐 끼고 있어 오히려 너무 화려하고 번잡해 보였다. 연예인들도 저 정도의 액세서리를 착용하진 않았다.온몸에 가득 착용한 액세서리뿐만 아니라 여자가 입고 있는 치마도 명품이었고 가격이 최소 2000만 원 정도 하는 것이었다.지나가는 사람이 봐도 일반적인 부잣집 딸이 아닌 엄청난 재벌가의 딸로 보일 정도였다.여자는 턱을 빳빳이 쳐들고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반쯤 꿇고 앉은 자세를 한 직원이 디자인 시안을 든 채 양지원에게 말하고 있었다.그 직원이 아마도 디자이너들이 불렀던 하 팀장, 하설윤인 것으로 보였다.양지원은 디자인 시안을 힐끔 보더니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이것도 아니야.”하설윤은 바로 대답했다.“어디가 마음에 안 드시는 건가요. 제가 바로 수정해 오겠습니다.”양지원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을 콕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여기. 여기 이 피닉스 모양이 왜 이래? 왜 이렇게 이상한 거야?”하설윤이 답했다.“양지원 님께서 피닉스를 넣어달라고 하셨잖아요. 피닉스 모양이 원래 이런 거랍니다.”“아니, 내 상상 속 피닉스랑 모양이 달라. 이건 너무 쓸데없이 복잡한 모양이잖아.”“그럼 어떻게 수정해 드릴까요? 양지원 님께서 마음에 드실 때까지 수정하겠습니다.”양지원은 입술을 틀어 물었다. 나름대로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을 했지만,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은 눈치였다.문제는 본인도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원래 그저 목걸이 두어 개 골라 바로 살 생각이었지만 직원이 그녀를 잡고 이것저것 따져 묻는 바람에 디자인 시안까지 의뢰하게 되었다.
말을 마친 그는 이내 양지원에게 디자인 시안을 보여주던 디자이너를 그녀에게 소개했다.“대표님, 이분이 저희 디자인팀 팀장 하설윤 씨입니다. 우리 가게에서 예약 손님이 제일 많은 디자이너이기도 하죠. 많은 고객님이 하설윤 씨 디자인을 좋아하거든요. 설윤 씨, 얼른 대표님께 인사해.”하설윤은 한현진을 힐끔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대표님, 만나서 반가워요.”한현진은 테이블 위에 있는 디자인 시안을 보곤 물었다.“하 팀장, 이 디자인 시안 내가 좀 볼 수 있을까요?”하설윤은 젊어도 너무나도 젊어 보이는 새로운 사장에 봐도 모를 것이라며 속으로 비웃고 있었다.‘서 대표님께선 대체 왜 이런 새파랗게 어린 년한테 이곳을 맡기신 거지?'이내 아주 냉담한 어투로 말했다.“보고 싶으면 보세요. 어차피 알아보지도 못할 거니까요.”차미주는 바로 하설윤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못 알아본다는 건 당신 디자인에 문제가 있다는 거야!”순간 욱한 감정이 올라온 하설윤은 반박하려고 했지만, 옆에 있던 한현진 때문에 다시 화를 꾹 참고 차가운 눈빛으로 차미주는 보았다.한현진은 디자인 시안을 보았다. 그리고 하마터면 “이게 뭔 쓰레기야.”라고 할 뻔했다. 그녀는 입술을 틀어 물고 많이 순화해서 말했다.“음... 디자인이 참... 유니크하네요.”차미주도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슬쩍 보곤 바로 말했다.“헐, 대박. 이건 뭐야. 뭐 이렇게 못생겼어. 이건 닭대가린가?”양지원은 차미주의 말에 눈썹을 치켜세웠다.하설윤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모르면 헛소리나 내뱉지 말아 줄래요?!”그러자 차미주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었다.“네, 그래요. 난 디자인에 대해 잘 몰라요. 그래도 눈은 멀쩡히 달려있거든요. 닭의 볏에 닭 부리까지. 이거 닭이 맞잖아요. 아닌가요?”하설윤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그건 봉황이에요! 봉황! 피닉스! 몰라요? 정말 무식하기도 하지!”차미주가 화를 내려던 순간 한현진이 말렸다.“하 팀장, 내 친구가 좀 솔직한 사람이라 그런 거니 이
하설윤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얼굴이 벌겋게 되었고 바로 고개를 돌려 계 매니저한테 울분을 토했다.“매니저님, 전 고객님이 원하시는 대로 디자인을 했는데, 그게 잘못인가요? 한 대표님은 대체 왜 저를 못마땅해하시는 거죠?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면서 양지원 님 디자인 만들어 드려서 대표님한테 인사를 안 했다고 지금 그러시는 건가요? 양지원 님께선 저희 가게 VIP 고객님이시잖아요. 제가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건 다 가게를 위해서인데, 아무리 새로 부임한 대표님이라도 그렇지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이렇게 저를 대하시다니요!”“스트레인지에서 근무한 오랫동안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가 어떻게 고객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매니저님께선 잘 아시잖아요. 전부 제가 다 열심히 노력하고 또 노력한 결과인 거잖아요! 가게로 와서 주문 제작을 의뢰하는 고객님들 대부분이 저를 찾으러 오시는 거 아닌가요? 만약 서 대표님만 아니었으면 제가 여기서 일하고 있었겠어요? 한 대표님이 제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하니, 그럼 전 그만둘게요!”한현진은 입술을 틀어 물었다.그녀는 원래 고객에게 디자인을 수정 원하는 하설윤의 태도가 다소 마음에 들지 않아 입을 연 것이다. 그러나 하설윤은 바로 그녀를 향해 불만을 보였다.처음엔 그녀가 디자인에 대해 문외한이라고 몰아가다가 인맥으로 위협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엔 서해금을 언급하면서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있다.디자이너가 이런 거만한 태도를 보일 뿐만 아니라 작품에 영혼이 없다고 말하자 바로 반박하면서 협박한다.계 매니저는 하설윤을 달래면서 한현진에게 말했다.“대표님, 하 팀장은 서 대표님이 대기업에서 데리고 온 인재예요. 매장에 있는 주얼리 대부분 설윤 씨가 디자인한 거예요. 그리고 저희 회사 디자이너 중에서 제일 촉망받는 디자이너이기도 하죠. 많은 고객님들의 사랑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객님과 사이도 아주 좋고 인맥도 넓어요. 일부러 설윤 씨에게 디자인을 맡기러 오는 고객님들이 아주 많다고요.”한현진은 아주 냉
하설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어떻게 감히 양지원을 평가하겠는가. 한참을 말 못 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자 한현진이 차갑게 말했다.“디자이너면서 본인 만의 스타일도 없고 아이디어도 없고, 고객님의 이미지를 바꿔주는 사람이면서 고객님이 저런 패션으로 입고 와도 아무 말도 안 하고, 회사에서 대체 하설윤 씨를 고용하는 목적이 대체 뭐죠? 고객님들에게 그저 아부나 떨라고 고용한 줄 알아요?”“...”옆에 있던 계 매니저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는 어쩐지 자신도 엮어 욕하는 기분이 들었다.하설윤의 표정이 더욱더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녀가 반박하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한현진이 말도 못 하게 말을 이었다.“하 팀장도 더는 여기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계 매니저, 얼른 사직 준비 처리하세요.”하설윤의 안색이 급속도로 변했다.그녀는 그저 사직으로 한현진에게 겁을 줄 생각이었고 진짜로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양지원 같은 VIP 고객 한번 모시는 거로 엄청난 보너스가 붙기에 월급은 아주 높았고 다른 곳에서 개인 의뢰를 받는 것보다 돈을 더 많이 벌었다.“한 대표님, 전 서 대표님께서 직접 채용한 사람이에요! 한 대표님이 절 자를 순 없어요!”한현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하 팀장이 먼저 그만두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지금은 내가 해고하겠다는 거로 바뀐 거죠? 설마 하 팀장은 방금 본인의 사직으로 절 협박이라도 한 건가요?” 하설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인정해도 이상하고 인정하지 않자니 그래도 이상했다. 그래서 뻔뻔하게 모른 척 말을 돌렸다.“전 서 대표님께서 직접 채용한 겁니다. 서 대표님 외엔 저를 자를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한현진의 눈빛에 한기가 맴돌았다.“하 팀장, 한 가지 모르고 있는 거 같아서 말해주는데, 스트레인지의 현재 주인은 나예요. 나에겐 하 팀장을 해고할 권리가 있어요.”하설윤의 안색이 더욱더 창백해졌다.줄곧 한현진 곁에 아무 말 없이 있던 성월이 입을 열었다.“한 대표님, 스트레인지를
계 매니저는 아마 하설윤과 사이가 좋은 것 같았다. 한현진이 하설윤을 해고하겠다는 말에 그는 바로 나서서 하설윤의 좋은 말을 해주었다.“한 대표님, 하 팀장은 성격이 원래 직설적이에요. 말을 순화할 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우리 디자인팀의 팀장인데 해고하면 누가 우리 디자인팀을 관리해요? 정말로 해고하시면 회사에 남은 실력 좋은 디자이너가 없단 말이에요.”한현진은 멈칫했다.“아, 잠깐 잊고 있었네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디자인팀엔 팀장이 없으면 안 되죠.”그녀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일단 방금 디자인팀 사무실 세 번째 자리에 앉은 디자이너를 임시 팀장으로 할게요. 그리고 나중에 다시 상황에 따라 새로 채용하든 하죠.”세 번째 자리에 앉은 사람이라면... 바로 전혜지였다.계 매니저의 안색이 급변하였다. 디자인팀의 직원들을 그가 전부 이래라저래라할 수 있었지만 유독 전혜지만이 그의 말을 따라주지 않았고 해고할 수도 없었다. 전혜지의 디자인은 확실히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월급도 낮게 주어도 괜찮았다. 이런 디자이너를 밖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또다시 찾을 수 없었기에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도 해고하지 않았다.전혜지는 아주 딱딱한 사람이었다. 매일 디자인을 그리는 것 외엔 고객들과 대화 한번 하지 않았고 하설윤처럼 아부를 부리는 것은 바랄 수조차 없었다.“한 대표님, 너무 막 정하시는 거 아니에요? 전혜지 씨는 그림 그리는 것 외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요.”“그림 그릴 줄만 알면 됐죠. 디자이너가 디자인하는 게 뭐가 잘못된 건가요? 고객을 접대하는 일도 디자이너가 하면 매장 직원은 왜 필요한 건데요?”계 매니저는 반박하려고 했지만, 한현진이 먼저 말을 이었다.“가서 일 처리 하세요. 하 팀장- 아니, 하설윤 씨가 맡은 업무를 전부 남은 네 분에게 나눠주세요. 다음에 제가 또 왔을 때 하설윤 씨가 이곳에 없었으면 좋겠네요.”하설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잠시만요.”가만히 있던 양지원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녀는 느긋하면서 거만한 모습으로
“...지금 누구더러 하는 얘기에요?”양지원은 어처구니가 없었다.한현진은 웃으며 말했다.“아, 미안해요. 제 친구가 조금 직설적인 성격이라 그래요. 별다른 악의는 없어요. 양지원 씨만 괜찮다면 일단 제가 해주는 대로 스타일링 받아보는 게 어떠세요? 이따 저녁에 반응을 살펴보세요. 만약 반응이 안 좋다면 저를 다시 찾아오세요. 제가 전부 배상해 드리고 양지원 씨가 원하는 대로 할게요.”양지원은 그녀를 빤히 보다가 손을 내려놓고 냉담하게 말했다.“그럼 부탁해요.”한현진은 손을 계속 움직여 화려한 그녀의 액세서리들을 전부 빼냈다.그러자 양지원은 어딘가 어색한 기분이었다. 매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었던 그녀는 전부 빼내니 허전한 느낌이었다.전부 빼낸 한현진은 옆에 있던 조수에게 양지원의 헤어를 부탁하곤 말했다.“양지원 씨, 이쪽으로 오세요.”양지원은 망설임도 없이 일어나 거울 앞으로 갔다.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본 그녀는 살짝 멍한 표정을 지었다.화려한 액세서리가 없었지만, 달랑 귀에 있는 진주 귀걸이와 얇은 은목걸이로 그녀는 단아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조금 전 그녀의 모습과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았다.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다소 어색하기도 하여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옆에 놓인 화려한 팔찌를 손목에 끼워 넣으려고 했다. 그러자 한현진이 말렸다.“양지원 씨, 액세서리를 많이 낀다고 해서 아름답고 화려해지는 건 아니에요. 많이 끼면 오히려 한 사람의 기품을 완전히 없애버리게 되거든요.”“비즈니스 파티는 런웨이가 아니에요. 그러니 과하게 화려할 필요는 없죠. 몸매 라인을 잡아주는 무난한 블랙 드레스에 머리를 지금 이 모습대로만 한다면 절대 실패하는 법이 없을 거예요. 만약 반응이 안 좋다면 언제든지 가게로 와서 부숴도 돼요.”양지원은 입술을 틀어 문 채 거울에 비친 모습을 한참이나 보다가 고개를 돌려 한현진에게 말했다.“반응이 그쪽이 말한 것처럼 좋아야 할 거예요. 안 그러면 정말 가만있지 않을 거니까요!”말을 마친 그
진윤: ...진윤이 흥, 콧방귀를 꼈다. “네가 얘기 안 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아? 한성 그룹 대표지?”진윤이 머리가 떨어질세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엄마, 형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언변이 장난이 아녜요. 게다가 맞는 말만 골라서 한다니까요. 전엔 우리 형이 세상에서 제일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형도 그 형님 앞에선 꼬마에 불과한 것 같아요.”진윤의 뒤통수를 툭 치려던 홍혜림은 그의 머리에 감싸진 붕대를 보고는 시선을 내려 엉덩이를 차버렸다. “형이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팔이 밖으로 굽어?”진윤이 바지의 먼지를 털며 말했다. “좋은 건 당연히 형이 더 좋죠. 하지만 능력으로 따지면 형님이 더 뛰어난 것 같아요..”강한서를 향한 콩깍지가 두껍게 쓰인 진윤의 모습에 홍혜림은 괜히 질투가 났다. 하지만 상대방이 강한서라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정인월이 직접 교육한 아이였으니 성품이 우수하고 능력이 뛰어난 것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진수 그룹과 한성 그룹은 같은 업계에 종사하지 않은 탓에 협업하는 일이 거의 없어 연계가 잦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윤은 한성 그룹이 종사하고 있는 업계와 관련된 전공을 하고 있었고 강한서는 IT 업계의 정상급 인물이었다. 그러니 강한서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진윤에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홍혜림은 강한서가 아무 이유 없이 진윤을 도울 리가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강한서가 여자친구 대신 자신에게서 서해금의 일을 알아내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홍혜림은 그 일엔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세를 지고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강한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자신의 요구를 이야기한 적도 없어 오히려 홍혜림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서 대표에게 우리가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은근슬쩍 오 교수님을 귀띔하게 한 것도 너의 그 스승님 생각인 거야?”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도와주겠다고
입가를 파르르 떨던 홍혜림이 진윤의 손을 툭, 쳐냈다. “저리 가. 엄마한테 그런 농담하지 마.”진윤이 웃는 얼굴로 다가가 홍혜림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러자 홍혜림이 진윤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얌전히 앉아있기나 해. 넌 애가 다치고도 얌전히 있지를 못 해.”잠시 말이 없던 홍혜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엄마한테 얘기도 안 하고 신고했어? 오 교수님께도 비밀로 하라고 하면서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인데 이렇게 수상하게 구는 거야.”“엄마, 만약 학교 측에서 빨리 결과를 발표할 생각이었다면 진위 여부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얼른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을 거예요. 저희가 오 교수님께 부탁할 시간 같은 건 주지도 않았을 거라고요.”“그럴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학교 명예가 걸린 일인데, 누가 그 책임을 지려고 하겠어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이 멈칫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학교에서 너한테 처분을 내렸다는 말이 가짜라는 얘기야?”진윤이 말했다. “엄마, 서화 대학은 엄마와 아빠가 수많은 인맥과 돈을 들여 고르고 고른 대학이에요. 업계에서의 명성도, 학교 분위기도 말 할 것 없이 좋고요. 오랜 세월을 지내며 명성을 쌓아온 학교예요. 그만큼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는 얘기잖아요.”“그런 학교가 고작 이런 여론에 궁지로 몰려 학생에게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여론을 잠재우려고 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세요?”“지금은 예전과 달라요. 요즘은 순식간이면 소문이 퍼진다고요. 이런 일은 조금만 미숙하게 처리해도 오히려 힘들게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봐도 학교 측에서는 함부로 저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어요.”“오히려 진실을 파헤치는 편이 학교의 명성을 지키는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잠시 조용하던 진윤이 말을 이었다. “엄마, 만약 엄마가 학교 이사진이라면 부정행위가 사실이었다는 결론과 부정행위가 루머였다는 걸론 중 어떤 게 신입생 모집에 더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홍혜림이 미간을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