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By:  조십일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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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유현진은 SNS에 이혼 합의서가 첨부된 게시글 하나를 올렸다.“싱글, 만남 추구. PS: 생리적으로 건강한 사람 우선”그녀의 이 게시글은 예전에 그녀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한주 강씨 가문에 시집갔던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SNS를 뜨겁게 달구었다.헤어지고 난 후, 전 남편이 남성 불임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게시글을 올리다니.정말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걸까?강한서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언론사를 고소하여 그들이 파산할 지경에 이르게 만든 독한 남자다. 그런 그가 아무런 재산도 갖지 않고 이혼한 전처가 자신을 이런 식으로 얘기하도록 내버려 둘 리가 있을까?하지만 20분이 흐른 후, 누리꾼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다. 유현진의 게시글 아래, 새롭게 가입한 계정으로 ‘누군가’가 댓글을 달았다. “날 블랙리스트에서 내보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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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23번 유현진 씨, 가족분께 연락하셨나요?“

이제 간호사가 몇 번째로 유현진을 재촉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흘긋 확인해보았으나 강한서에게 건 전화는 여전히 응답이 없는 상태였다.

한주시 북부 환형 육교에서 연속 차량 충돌 사고가 발생하며 버스 한 대가 옆으로 기울다 강에 빠져버렸다. 그로 인해 수십 명의 부상자가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들의 가족들이 하나둘씩 병원에 도착했지만 오직 그녀의 남편은 늦도록 연락되지 않았다.

처참했던 사고 현장이 여전히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사고 당시 느꼈던 공포보다 이 순간 밀려오는 서운함에 마음이 더 아팠다.

“유현진 씨?”

간호사의 부름에 유현진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셔츠는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는데 그 덕분에 새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 보였다. 그녀는 목소리가 갈라지고 몰골이 처참했으나 여전히 품위 있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연락되지 않는 것을 보니 지금 좀 바쁜 것 같아요. 제가 직접 사인해도 될까요?”

“안타깝지만 그럴 수 없어요. 만약 가족분께서 사인할 수 없다면 병원에 남아 좀 더 지켜봐야 할 거예요. 뇌진탕은 빠른 진단을 내릴 수 없으니까요. 병원에선 당신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해요.”

유현진은 입술을 꾹 닫고 망설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제가 다시 전화를 걸어 볼게요.”

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의료 기기를 담은 플라스틱 카트를 들고 지나가던 두 간호사를 만나자 그녀가 몸을 살짝 움직여 길을 비켜줬다. 그때, 간호사 중 한 명이 말했다.

“16번 환자, 누군지 알아요?“

“아뇨. 누구죠?“

“송민영 몰라요? 엄청나게 유명해요! 얼마 전에 찍은 핫한 드라마 ’비밀의 연인‘에서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분이에요.“

“저런! 그분, 많이 다치셨어요?“

“조금 늦게 오셨어요. 그리고 팔에 스친 상처가 있긴 한데 그때 이미 약간 아문 상태였어요. 하지만 연예인들 얼굴이 간판이잖아요. 당연히 우리 같은 일반인과 비길 수 없죠. 내가 만약 송민영과 같은 얼굴과 몸매를 가졌다면 온몸에 보험을 들었을 거예요.”

“참! 그분 남자친구도 내가 봤어요! 얼마 전에 둘이 엘 하트 펜션에서 파파라치에게 사진 찍혔잖아요!”

유현진은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잘생긴데다 키도 크더라고요. 돈도 많아 보였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송민영에게 잘해주는 게 제일 부러워요. 사고가 난 후 남자친구가 가장 먼저 달려왔어요. 병원의 VIP 병실에 입원시키고 한시도 옆에서 떨어져 있지 않았어요. 다 같은 여자지만 왜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다 가진 걸까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유현진은 손에서 핏기가 가셔질 정도로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다.

16번 병실 밖에서 강한서는 송민영의 매니저와 연락하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유현진의 귀에 대화 내용이 들리진 않았지만 그녀는 그가 송민영의 사고에 누가 책임이 있는지 묻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강한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한서는 잠시 말을 멈추고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이미 찌푸려진 미간을 한층 더 구겼다.

전화를 받아든 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지금 어디야?”

유현진의 목소리는 맥없이 갈라졌으나 그녀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듯 강한서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사.”

“강운 그룹이 언제부터 병원 사업까지 발을 들여놨어?”

강한서가 흠칫 놀라더니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날 미행했어?”

유현진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지만 눈가에 눈물이 맴돌았다. 그의 무신경하고 짜증 섞인 어조와 행동은 그녀의 심장을 서늘하게 조여왔다.

“강 대표님, 날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네.”

그녀는 잠시 멈췄다가 이어서 말했다.

“뉴스에서 본 사람이 널 닮은 것 같아서 물어봤을 뿐이야.”

“시시하긴.”

그는 그 한 마디를 내뱉고 바로 전화를 끊더니 병실 안으로 사라졌다.

유현진은 자신이 우스워 보였다. 확실히 시시하긴 했다. 모든 걸 보았으면서도 굳이 전화를 걸어 스스로 우스운 꼴이 되도록 자초했으니까.

결국 유현진을 데리러 온 사람은 차미주였다. 만약 연락할 수 있는 가족이 있었더라면 그녀도 친구에게 부탁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자신의 비참한 생활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비웃음이든 동정이든 모두 그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강한서는?”

차미주가 물었다.

“회사에 있어.”

‘그가 그렇게 얘기했지.’

차미주는 운전대를 잡고 한바탕 시원하게 욕을 퍼부었다.

“빌어먹을 놈.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도 안 와?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서 뭐 하려고? 죽기 전에 금으로 만든 관이라도 사려고 그래?”

그러자 유현진이 농담을 던졌다.

“어쩌면 내 관을 으리으리한 거로 사주려고 그러는 걸지도.”

차미주가 눈을 부릅떴다.

“너 농담할 기분이 있어? 너 뒤에 있던 차에서 사상자가 나왔어!”

“그러게.”

유현진은 고개를 살짝 내리깔며 홀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

차미주는 급한 일이 있어서 그녀를 데려다준 후 바로 떠나야 했다.

집으로 돌아온 유현진이 가정부와 간단히 얘기를 나누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북부 환형 육교의 교통사고 소식은 이미 실시간 검색에 올라와 있었다.

다만 연관 검색어가 거의 다 송민영과 관련 있을 뿐이었다.

주요 방송사에서 이번 교통사고의 심각성을 다루고 있을 뿐, 연예계 언론사는 오직 송민영의 비밀스러운 남자친구에게 관심이 쏠려있었다.

언론사들은 강한서의 신분을 공개할만한 배짱이 없었지만 알게 모르게 송민영의 남자친구가 보통 신분이 아니라는 것을 은근하게 드러냈다. 송민영의 팬들은 발벗고 나서서 스캔들을 부인하는 동시에 여러 언론사의 웹사이트 댓글창에 다친 송민영을 걱정해달라는 댓글을 도배했다.

유현진은 그 모든게 웃겼다. 간호사가 분명 송민영은 팔에 스친 상처가 있었을 뿐이라고 했었다.

‘이렇게 날뛸 일인가?’

하지만 송민영이 인스타그램에 임신 검사표를 올린 것을 보게된 그녀의 표정이 일순간에 굳어졌으며 그와 동시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임신 6주차. 6 주라면 마침 강한서가 엘 하트 펜션에서 사진 찍힌 그 날이었다.

‘시간이 맞아 떨어져.’

유현진은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며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3년의 결혼이 백지장과 다름 없어보였다.

강한서는 그녀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송민영과 사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할머니인 정인월은 송민영의 집안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둘을 억지로 갈라놓았다.

자신의 뜻이 꺾이자 강한서는 많고 많은 이름 좀 날렸던 가문의 딸들 중에서 집안 형세가 가장 안 좋은 여자를 골라 자기 가문의 선택에 반항했다.

유현진의 집안은 강씨 집안의 덕을 보려고 했고 강한서는 그녀의 신분을 필요로 했으니 이 결혼은 각자 원하는 것을 얻는 대가로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유현진이 원했던 것은 강한서라는 사람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다.

사랑에 있어 먼저 빠져버리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 했던가. 송민영의 존재는 가시처럼 깊숙하게 그녀의 혼인에 박혀버렸다.

애써 무시하며 살았다. 그 가시가 살을 파고 들어도 참다보면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에 박힌 그 가시는 뿌리를 뻗치며 자라났고 이젠 그녀의 혼인을 갈기갈기 찢으려고 했다.

마지막까지 버티고 서 있던 그녀 자신이 우습고 볼품없게 느껴졌다.

강한서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 열 시가 다 될때였고 아래층은 조용했는데 가정부밖에 보이지 않았다.

“현서는 어디갔죠?“

”사모님께서 방으로 들어가신 후, 다시 나오지 않았어요. 저녁 식사도 드시지 않았어요.”

강한서가 미간을 구겼다.

“제가 죽을 다시 데워서 사모님 방으로 가져다 드릴게요.”

“아뇨, 괜찮아요.”

강한서가 차가운 어조로 답했다.

“배고프면 알아서 내려올 겁니다.”

가정부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샤워를 마친 강한서는 서재에 한동안 머물다가 열한시쯤 되었을 때, 시간을 확인했다.

예전엔 이 시간때가 되면 유현진이이 우유 한 잔을 들고 그를 찾아왔었다. 서로 싸우게 되면 가정부에게 부탁해서라도 보내왔었다.

하지만 오늘은 열한시 십 오분이 되도록 서재에 찾아오지 않았다.

강한서는 어쩐지 집중이 되지 않아 보고 있던 문서를 내려놓고 멍하니 몇 분 앉아있다가 결국 침실로 돌아갔다.

문을 열어보니 방안엔 불이 꺼져 있어서 캄캄했다. 어두운 가운데 흐릿하게 침대에 돌아 누운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유현진은 문이 열리는 순간 눈을 떴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침대 시트가 아래로 살짝 꺼지며 강한서가 옆에 눕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려 그의 잠옷 속으로 손을 뻗었다.

손바닥에 닿은 그의 근육이 팽팽하게 수축하는 것을 느끼자 그녀는 더 대범하게 움직였다.

강한서의 호흡이 거칠어졌고 그녀의 손이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려는 순간, 그가 그녀의 손을 낚아채더니 돌아누워 그녀를 자신의 몸 아래에 가뒀다.

“지금 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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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u
제발 더 많이 좀 올려줘요ㅜ 너무 짧잖아요
2024-12-22 21: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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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란
대체 언제까지 두편씩만 올려줄건가요? 몇년을 끌려고 하는건가요?
2024-12-19 11: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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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u
ㅋㅋㅋㅋㅋ강한서 진짜 웃겨
2024-12-17 12: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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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jo
지아와 온유한 좋아하지 못하게 해주세요 우유부단한 남자 다 거지예요.. 작가님 지아 제발 다른 멋진남자 만나게해주세요
2024-12-16 09: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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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야
디리받아 코피터지니 속쎤하네 바람피는것들 중요한거 다 고장나거라
2024-12-15 04: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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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u
너무 짧아요 업데이트 할때 더 많이 올려주세요
2024-12-10 21: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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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히힛혜
현진이 송가람한테 된통 당하네ㅋㅋ아꼬셔.!
2024-11-13 01:4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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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u
왜 사이의 이야기들이 사라졌죠?? 앞부분 다시보려해도 안나오네요?
2024-10-03 20: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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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uwoo
주강운은 참 의뭉스럽고 그 가족들도 참 수준이하인듯, 아마 최종 빌런은 주가가 아닌가 싶네요..
2024-10-02 12: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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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uwoo
가끔 현진이 하는짓보면 꾀 밉상, 맨날 사람떠보고, 솔직히 은근 짜증나는 타입인듯,, 여주라 그러려니 하는데 가끔씩 읽기 싫어질때가 있음요. 글고 당췌 이야기 진행은 왜 안되는건지 원 매번 비슷한 내용 소 여물먹듯 되새김질 하네요,,
2024-10-02 12: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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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빛노을
아직도 기억 잃은척 하나요?? 안본지가 오래되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ㅋㅋ 하지만 궁굼하긴 함...
2024-09-24 05: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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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uwoo
당췌 송가뇬은 언제 해결되고, 강가놈은 왜 아직도 기억상실인척 하는거죠??
2024-09-11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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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빛노을
이 소설도 내용이 산으로 가나요??
2024-08-10 08: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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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o2477
그나마 이 소설이 오타 등도 없고 내용도 유쾌하게 재밌음
2024-08-07 08: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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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bee1398
다른 소설들 오타 천지에 문맥 엉망인데 이 소설은 오타 거의 없고 진짜 웃겨서 즐겁게 읽게 됨
2024-08-07 07: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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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23번 유현진 씨, 가족분께 연락하셨나요?“이제 간호사가 몇 번째로 유현진을 재촉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흘긋 확인해보았으나 강한서에게 건 전화는 여전히 응답이 없는 상태였다.한주시 북부 환형 육교에서 연속 차량 충돌 사고가 발생하며 버스 한 대가 옆으로 기울다 강에 빠져버렸다. 그로 인해 수십 명의 부상자가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들의 가족들이 하나둘씩 병원에 도착했지만 오직 그녀의 남편은 늦도록 연락되지 않았다.처참했던 사고 현장이 여전히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사고 당시 느꼈던 공포보다 이 순간 밀려오는 서운함에 마음이 더 아팠다.“유현진 씨?”간호사의 부름에 유현진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셔츠는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는데 그 덕분에 새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 보였다. 그녀는 목소리가 갈라지고 몰골이 처참했으나 여전히 품위 있게 대답했다.“죄송합니다. 연락되지 않는 것을 보니 지금 좀 바쁜 것 같아요. 제가 직접 사인해도 될까요?”“안타깝지만 그럴 수 없어요. 만약 가족분께서 사인할 수 없다면 병원에 남아 좀 더 지켜봐야 할 거예요. 뇌진탕은 빠른 진단을 내릴 수 없으니까요. 병원에선 당신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해요.”유현진은 입술을 꾹 닫고 망설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제가 다시 전화를 걸어 볼게요.”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의료 기기를 담은 플라스틱 카트를 들고 지나가던 두 간호사를 만나자 그녀가 몸을 살짝 움직여 길을 비켜줬다. 그때, 간호사 중 한 명이 말했다.“16번 환자, 누군지 알아요?““아뇨. 누구죠?““송민영 몰라요? 엄청나게 유명해요! 얼마 전에 찍은 핫한 드라마 ’비밀의 연인‘에서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분이에요.““저런! 그분, 많이 다치셨어요?““조금 늦게 오셨어요. 그리고 팔에 스친 상처가 있긴 한데 그때 이미 약간 아문 상태였어요. 하지만 연예인들 얼굴이 간판이잖아요. 당연히 우리 같은 일반인과 비길 수 없죠. 내가 만약 송민영과 같은 얼굴과 몸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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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뜨거운 열기가 귓가에 뿜어지고 달아오른 체온까지 더해 유현진의 귓불을 뜨겁게 달구었다. 다만 그녀는 복부에 난 멍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며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다행히 불이 꺼져있어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의 목젖에 키스했다. 강한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짙은 눈빛으로 머리를 숙이고 그녀의 목덜미를 한입 물었다. 곧이어 유현진이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나 오늘 배란기야, 할 때가 됐어.”강한서는 몸이 굳어지더니 눈가에 스친 욕망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살짝 분노에 찬 말투로 물었다.“네 머릿속엔 온통 이 생각뿐이야?”유현진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뜨거웠던 귓불도 서서히 열기가 식었다.“너희 엄마가 계속 날 다그치잖아.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차라리 너 정자 기증할래? 그럼 내가 시험관시술 할게.”강한서가 비난 조로 되물었다.“엄마가 재촉한 게 아니라 네가 사모님 자리를 지키지 못할까 봐 아이라도 낳으려는 거 아니야?”유현진은 가슴을 후벼 파듯 아팠지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옅은 미소만 지었다.“맞아, 네가 날 버리면 어떡해?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 둘 사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지.”강한서는 단추를 채우고 짜증 섞인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이런 데 신경 쓰지 마. 난 아이 안 가질 거야.”유현진의 미소 짓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그녀는 문밖을 나서려는 강한서를 불러세웠다.“강한서, 넌 대체 아이를 갖기 싫은 거야 아니면 내 아이를 갖기 싫은 거야?”강한서는 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쏘아붙였다.“뭐가 다른데?”유현진은 주먹을 꽉 쥐고 대답했다.“같은 뜻이라면 결혼도 아무 의미 없겠지. 이혼해 그냥.”“네 마음대로 해.”강한서는 이 한마디를 내뱉은 후 문을 박차고 나갔다.유현진은 베개를 문에 힘껏 내던졌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다음 날 아침, 조깅을 마치고 돌아온 강한서는 식탁 앞에 앉아 메일을 확인했다.아침을 준비한 지 반나절이 됐지만 그는 도통 수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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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차미주는 꿈속에서 헤매다가 노크 소리를 듣고 잠이 깼다. 문을 연 순간 유현진이 한 손에 캐리어를 들고 떡하니 서 있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청아한 목소리로 물었다.“숙박 좀 할 수 있을까?”차미주는 그녀에게 아이스 콜라 한 병 건넸다. 유현진이 콜라를 건네받자 그녀는 불쑥 제 머리를 툭 쳤다.“내 정신 좀 봐. 너 탄산음료 안 마시지? 우유 갖다 줄게.”“아니야, 괜찮아.”유현진은 캔 뚜껑을 따고 한 모금 마셨다.“못 마시는 게 어디 있어?”전에는 임신 준비 때문에 술과 담배, 음료 및 자극적인 것들을 싹 다 멀리했지만 이혼을 앞둔 지금은 이런 것 따위 전혀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기분이 내키는 대로 하면 그만인 것을.‘임신 준비? 그딴 건 무능한 강한서더러 하라고 해!’“너 정말 강한서 씨랑 이혼할 생각이야?”차미주는 소파의 반대편에 앉으며 확실치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응.”유현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그 사람 또 송민영이랑 만나.”차미주는 대뜸 욕설을 퍼부었다.“그 여잔 대체 왜 이렇게 뻔뻔한 거야? 애초에 결혼할 때도 찾아와 소란을 피우더니 3년이 지난 후 또다시 나타나? 세상에 남자가 없대? 아니 왜 유부남을 물고 늘어지는 거냐고? 강한서 그 자식도 한심해. 놀다 버린 장난감에 아직도 미련이 남은 거야?”유현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지금 대체 누굴 욕하는 거지?’차미주는 마른기침을 하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너 지금 이런 사소한 것에 연연할 때가 아니야. 그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넌 그냥 빠지려고? 왜 그런 비겁한 인간들을 봐줘? 끝까지 맞서 싸우란 말이야! 그 여자가 온갖 청순한 척을 다 떨잖아. 사람들 앞에서 그 가면을 확 벗겨버려! 청순은 개뿔, 유부남이나 만나는 뻔뻔스러운 년인 주제에!”“그래서? 내 결혼생활이 파탄 났다는 걸 온 세상에 알려? 남편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가여운 여자로 남아?”유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이 결혼은 이미 실패야. 떠날 때까지 비참하게 굴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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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네? 대표님은 아직 주무십니다.”“그럼 침실로 가서 깨워요!”유현진은 살짝 화가 치밀었다. 전화기 너머로 한참 침묵이 흐르더니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야?”질문이 너무 자연스러웠고 심지어 이제 막 잠에서 깬 잠긴 목소리라 한순간 유현진도 저 자신을 의심할 뻔했다.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며칠 뒤에 네 옷장의 옷들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리스트를 작성해서 보내줄게. 앞으론 이런 따분한 일들로 전화 걸지 말았으면 좋겠어!”“따분한 일?”강한서가 차갑게 웃었다.“유현진, 이런 따분한 일들은 네가 가장 좋아하던 일이었잖아. 내가 무슨 속옷을 입는 것까지 일일이 책임졌잖아. 이게 고작 네가 추구하던 삶이 아니었어?”유현진은 숨이 턱 막혔다.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심장이 쑤시듯이 아팠다.강한서에게 자신이 그저 이런 이미지였다는 걸 진작 알고 있었지만 막상 듣게 되니 느낌이 새삼 달랐다.대체 마음이 얼마나 단단해야 이런 수모를 겪었을 때 아무런 느낌이 없을까?전화기에 잠시 침묵이 흘렀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한참 후에야 유현진이 잠긴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다.“내가 봐도 한심했어. 그러니까 이젠 더이상 책임지지 않겠다고. 얼른 사인해. 우리 둘 사이 빨리 끝내자.”화제가 또다시 이혼으로 돌아왔고 이제 막 화가 가라앉았던 강한서는 금세 분노가 차올랐다.“제발 적당히 해!”유현진은 피식 웃으며 비난 조로 되물었다.“내가 뭘 어쨌는데?”“너 후회하지 마!”강한서는 이 말만 남기고 전화를 툭 끊었다.유현진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자상하게 챙겨주고 묵묵히 헌신했던 지난날들이 강한서에겐 그저 한낱 놀림거리에 불과하다니.매번 그를 위해 여러 장소에서 입을 옷들을 정성껏 챙겨줄 때 정작 뒤에서 그녀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엔 짜증이 잔뜩 담겨있었을지도 모른다.종일 하루 세끼와 먹고 입는 것에 신경 쓰는 여자가 얼마나 창피했을까? 그녀가 생각해도 이런 저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어리석어 보였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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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곧이어 그녀는 안티카페에서 퇴출당하고 말았다....“왜 넋 놓고 있어?”이때 훤칠한 남자가 프런트 데스크를 두어 번 두드리며 팔꿈치를 괴고 있었다. 그는 턱을 살짝 들고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더러 넋 놓고 있으라고 월급 주는 줄 알아?”그는 바로 옆 건물의 사장이자 섬블 컴퍼니의 사장인 한성우였다.여직원은 한성우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 전혀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사장님도 종일 뵙기 힘들잖아요.”“입만 살았어!”그가 계속 여직원과 말장난을 걸려고 할 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마른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성우는 동작을 멈추고 순간 장난기 어린 표정을 거두며 진지하게 말했다.“박 감독 어디 있어? 지금 바로 내려오라고 해.”“감독님은 녹음 테스트를 하고 계세요.”“녹음 테스트?”한성우는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선셋 스타가 왔어?”여직원이 머리를 끄덕였다.한성우는 살짝 기쁜 기색이 역력했지만 고개 돌려 굳은 표정의 강한서를 본 순간 재빨리 마음을 억누르고 정색하며 말했다.“박 감독한테 전화해서 내가 몇 가지 물을 게 있다고 전해.”곧이어 전화가 연결되자 한성우는 스피커폰을 눌렀다.“박 감독, 녹음 테스트는 잘 돼가? 나한테도 목소리가 괜찮은 배우가 있긴 한데.”“괜찮아, 테스트 다 했고 이미 계약도 마쳤어.”박정문은 비록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지만 한성우의 말뜻을 바로 알아챘다. 한성우는 한숨을 돌리고는 일부러 사장 포스를 내며 말했다.“이젠 나랑 상의도 없이 계약까지 하는 거야? 대체 누가 사장이야?”박정문은 전화를 툭 끊었고 한성우는 계속 구시렁댔다.“얘는 내가 점점 안중에 없는 것 같다니까!”이어서 그는 고개 돌려 강한서에게 말했다.“너도 들었지? 이미 계약했대. 다음에 버전 업데이트하고 알맞은 캐릭터가 있으면 그때 다시 써줄게.”‘정상에서’는 최근 섬블 컴퍼니에서 그가 가장 만족하는 작품이라 송민영이 이 완벽함을 망치는 걸 절대 지켜볼 수 없다.강한서는 담담한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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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유현진과 마주치고 얘기할 기분이 사라진 강한서는 얼마 있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로비로 돌아오자마자 내려오는 박정문을 본 한성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선셋 스타는? 왜 같이 안 내려왔어?”“한참 전에 갔는데? 아래층에 있으면서 못 봤어?”‘현진 씨?’그가 프런트 데스크 여직원을 쳐다보자 여직원이 나지막이 말했다.“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신 그분요, 얼굴도 예쁘시고 사장님한테 고개 끄덕이며 인사하던 그분 있잖아요.”‘현진 씨? 현진 씨가 선셋 스타라고?’그는 순간 이 세상이 너무 판타지 소설 같았다. 강한서의 트로피 와이프가, 게다가 인스타그램에 자주 자랑질만 늘어놓던 졸부가 더빙 계의 최고 성우라니!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은 강한서가 돈으로 자기 와이프의 일자리를 빼앗아서 송민영에게 넘겨준 셈이 돼버렸다.‘이 스토리... 살아있네!’그의 모습을 본 박정문이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눈이 게슴츠레한 게 또 무슨 꿍꿍이야?”한성우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두 글자를 내뱉었다.“비밀.”...‘빌어먹을 개자식 강한서! 그딴 선물 누가 좋아한대? 그 돈으로 가서 네 병이야 고쳐! 난 그딴 거 필요 없어!’그의 말을 곱씹을수록 유현진은 분노가 치밀었다. 휴대폰을 만지던 그때 앱 화면에 뜬 생식 병원 광고 문구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잠시 주저하다가 예약 버튼을 눌렀다.개인 정보를 입력하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받기 싫은 듯 느릿느릿 통화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아빠.”“너 어디야?”유상수가 전화한 이유를 가늠할 수 없었던 유현진은 거짓말했다.“수업 중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별일은 아니고. 수업 끝나면 한서랑 같이 집에 좀 와. 아빠 친구가 트러플 선물해줬는데 안사돈이 트러플 좋아한다고 했지? 와서 가져가.”26년 동안 살아오면서 유상수는 정작 그녀가 뭘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건 정확히 알고 있었다. 참으로 씁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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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아빠, 아빠도 회사 운영하시니까 잘 알 거 아니에요. 어느 회사 인턴이 수억짜리 자동차를 몰고 출근하던가요? 한서 지난번에 수천억짜리 프로젝트를 계약할 때도 1억 좀 넘는 벤츠를 타고 고객을 만나러 갔어요. 그런데 얘가 뭐라고 벌써 그리 비싼 차를 타야 하는데요?”그녀의 말에 유상수가 살짝 분노를 터뜨렸다.“회사마다 사정이 다르잖아. 맨날 집에서 호강하며 놀고먹는 네가 뭘 안다고 그래?”“놀고먹는다고요?”유현진은 어이없는 나머지 피식 웃었다.“그때 저한테 일을 포기하라고 설득하실 때는 이렇게 얘기하지 않으셨잖아요. 그리고 강씨 가문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어디 저뿐인가요?”“쾅!”유상수는 식탁을 탁 치며 노기등등하게 말했다.“차 좀 빌려달라는데 옛날 일을 왜 들먹여!”그러자 유현아가 재빨리 유상수를 말렸다.“아빠, 진정하세요. 아빠 혈압이 높아서 화내시면 절대 안 돼요. 이 얘기 꺼내는 게 아닌데 다 제 탓이에요. 언니가 빌려주기 싫다면 방법 없죠, 뭐. 화내지 말아요, 아빠.”그녀가 옆에서 말릴수록 유상수는 친딸이 점점 더 성에 차지 않았다.“현아 좀 봐봐. 너보다 어린데 훨씬 철이 들었어!”식사 자리가 결국 서로 기분만 상한 채 끝나버리고 말았다. 유현진이 가기 전 유현아는 트러플 두 박스를 그녀의 차에 넣고는 유리창에 대고 말했다.“언니, 형부 오늘 일 때문에 바빠서 못 온 거 아니지?”그러자 유현진이 그녀를 째려보았다.“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유현아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차 주인은 한 사람만 있는 거 아니야. 남자도 마찬가지고.”그러고는 그녀 대신 유리창 버튼을 누른 뒤 안으로 들어갔다.아파트.차미주는 그녀가 가져온 두 선물 박스를 만지며 말했다.“이거 대여섯 근 정도는 되겠는데? 너희 아빠 강씨 가문에 잘 보이려고 아주 아낌없이 돈을 쓰시는구나. 아빠한테 매번 가져간 선물 시어머니가 쳐다도 안 본다고 말 안 했어?”“말한다고 해서 그만둘 것 같아?”TV 채널을 여러 개 돌려도 송민영의 드라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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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갑자기 끊긴 전화에 기분이 언짢아진 강한서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옆에 있던 여자가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한서야.”강한서는 그녀를 덤덤하게 힐끗 보고는 휴대폰을 거두어들였다. 그의 말투가 차갑기 그지없었다.“대체 무슨 일로 왔어?”송민영은 잘 포장된 선물 상자를 꺼내 그에게 건네며 쑥스럽게 말했다.“요 며칠 집에서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디저트 좀 만들어봤거든. 너한테 주려고 가져왔어.”강한서는 고개를 들고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고작 이것 때문에 왔어?”순간 마음이 경직된 그녀는 선물 상자를 꽉 잡고 나지막이 말했다.“그건 아니고... 일도 좀 물어보려고.”강한서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페이스북은 매니저한테 맡겨. 며칠 후에 섬블 컴퍼니에서 계약건 때문에 올 거야. 그때 다시 홍보하면 돼.”송민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전에 한성우에게 “정상에서”의 더빙을 하고 싶다고 여러 번이나 어필했었지만 결국 그를 설득하지 못해 그 일로 오랜 시간 골머리를 앓았었다.사실 게임 더빙을 너무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선셋 스타가 잘되는 꼴을 보기 싫어서였다.얼마 전 “비밀의 연인”이 인기리에 방영할 때 그녀는 더빙 때문에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네티즌들은 더빙 덕에 그녀의 발연기가 살았다면서 소리를 듣지 않으면 인형극을 보는 것 같다고 그녀를 욕했다.동시에 선셋 스타도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힘들게 촬영한 건 그녀지만 인기를 차지한 건 선셋 스타였다. 이런 상황을 누가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자신의 오리지널 대사도 괜찮다는 걸 증명하기 위하여 그녀는 또 다른 계정에 오리지널 대사 영상을 올렸다. 원래는 다들 그녀를 칭찬할 거라 예상했지만 되레 한바탕 비웃음을 당하고 말았다.영화 평론가들은 그녀의 연기력이 형편없다면서 다시 한번 선셋 스타를 칭찬했다.송민영은 너무도 화가 나 펄쩍 뛰었다. 안 그래도 이 화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는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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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유현진이 이를 꽉 깨물었다.‘오늘 부탁할 일만 없었더라면 당장 이 자식을 발로 확 차버리는 건데! 멀쩡하게 생겨서 왜 얄미운 말만 골라서 하는지, 참. 그냥 말 섞지 말아야지!’유현진은 스스로를 위로하며 얄미운 남자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 작성한 문자를 민경하에게 보내며 말했다.“경화로의 ‘화원 향료’라는 가게에서 사면 돼요. 그 집에 향료 종류가 많아서 한꺼번에 다 살 수 있을 거예요.”“고마워요, 사모님.”유현진이 자신을 무시한 뒤로 강한서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이십여 분이 지나 약속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유현진이 차에서 내리려는데 강한서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목을 빼려 했다.“움직이지 마!”강한서의 힘이 어찌나 센지 그녀의 힘으로는 도저히 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네 번째 손가락이 갑자기 차갑게 느껴지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나타났다.화들짝 놀란 그녀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건 그들의 결혼반지였는데 아름드리 펜션에서 나올 때 결혼반지도 함께 두고 나왔었다.그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결혼반지를 끼워주었다. 결혼식 날 송민영이 나타나는 바람에 강한서는 결혼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현장을 떠났다. 결국 그녀는 결혼반지를 스스로 손가락에 꼈다.“엄마가 보시고 괜히 이것저것 물어볼까 봐 그래. 별 뜻은 없어.”강한서는 그녀의 손을 내려놓았다. 그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유현진은 생각에서 헤어나왔다. 그녀는 손을 거두며 덤덤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나도 내 주제를 알아.”그러고는 차 문을 열고 먼저 차에서 내렸다. 강한서는 어두운 얼굴로 뒤따라 내렸다.강한서에게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강민서였다. 올해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두 달 전 친구와 함께 졸업 여행을 갔다가 어제 돌아왔다.한주 강씨 가문의 가장 막내인 데다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버지가 돌아간 바람에 집안 어른들은 특히 그녀에게 더욱 많은 사랑을 주었다. 그러다 보니 안하무인에 오만방자한 성격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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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그녀는 손을 움찔하더니 문을 열 용기가 사라져 몸을 돌려 화장실로 향했다.누구와 결혼하든 똑같다니. 그녀를 선택한 것에 별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 사람이 아닌 아무라도 괜찮았던 것이다.그녀는 밖에서 10분 남짓 있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돌아갔다.문을 열자 음식들이 모두 테이블에 올려져 있었다. 강한서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확인하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신미정이 그녀에게 앉으라고 손짓하고는 물었다.“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유현진이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죄송해요, 방금 속이 좀 더부룩해서요.”신미정은 멈칫하며 그녀의 얼굴을 살폈고 확실히 안색이 창백해졌고 립스틱도 조금 벗겨진 모습에 물었다.“괜찮아? 병원 갈까?”“그럴 필요까진 없어요. 이젠 괜찮아요, 어머니.”신미정이 말했다.“그래도 병원에 가 봐. 임신이면 어떡해?”방금까지 신미정이 왜 그녀의 건강을 걱정하는지 의아했던 그녀는 이제야 신미정의 저의를 알았다. 그녀는 유현진이 임신했을 가능성을 생각하여 행여나 자신의 핏줄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유현진이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알겠어요, 어머니.”신미정은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지만 유현진은 마치 외부인처럼 대화에 끼지 못했다.그릇에 갈비가 놓이고 유현진이 고개를 돌려 강한서를 보았다. 강한서는 그녀를 보지도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먹고 싶은 거 있으면 알아서 먹어.”아니, 그녀는 외부인이 아니다. 유현진은 가족 모임에 참석한 연기자로서 강한서와 각자 알아서 배역에 맞게 연기하면 되는 것이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왠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연기가 필요해? 좋아, 맞춰줄게.’이내 그녀는 아주 매운 닭고기 요리를 강한서의 입가에 가져가며 말했다.“여보, 이거 먹어봐.”강한서는 움찔하더니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유현진은 싱긋 웃으며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매운 음식을 싫어하는 강한서에게 그녀는 일부러 매운 닭고기 요리를 준 것이다.‘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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