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이라 부르지 마

삼촌이라 부르지 마

By:  삼계절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goodnovel4goodnovel
Not enough ratings
30Chapters
16views
Read
Add to library

Share:  

Report
Overview
Catalog
SCAN CODE TO READ ON APP

10살이 되던 해. 2년 동안 떠돌던 강씨 집안의 딸, 강이라는 경울시 최상류 재벌가인 고씨 집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라의 보호자가 된 사람은 고씨 집안의 둘째 아들, 고은후였다. 그때 은후는 막 열여덟이 된 소년이었다. 차갑게 잘생긴 얼굴, 아무것도 아쉬울 것 없는 태도, 세상 위에 홀로 선 듯한 오만함. 은후는 눈앞의 가엾은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에는 동정도, 온기도 없었다. 이라는 겨우 손에 넣은 안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얌전하고, 예의 바르고, 말을 잘 듣는 아이가 되기로 했다. 눈가에 눈물을 매단 채, 이라는 겁먹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오빠?” 은후가 낮게 웃었다. 이라의 머리 위에 얹힌 손은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처럼 무심했다. “내 항렬을 낮추려고?” 그 후. 18살, 이라가 성년이 되던 밤. 창밖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라는 은후의 침대 위로 올라가, 남자의 단단하고 마른 허리를 끌어안았다. 고집스럽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얇은 입술을 깨물었고, 숨이 얽히도록 입을 맞췄다. 은후의 손이 이라의 허리를 세게 붙잡았다. 뜨거운 숨결은 살갗 아래까지 파고들었다. ... 사람들은 고은후를 두고 말했다. 경울시 최상류층 재벌가의 귀한 도련님. 차갑고 고결하며, 여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남자라고. 하지만 이라는 알고 있었다. 은후는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잔인할 만큼 무심했고, 사람 마음을 흔드는 데 지나치게 능숙한 남자였다. 이라는 그런 은후에게 2년을 매달렸다. 하지만 은후의 마음은 단 한 번도 이라에게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이라는 미련 없이 그를 단번에 끊어 내고 떠났다. ... 훗날, 이라는 남자친구의 팔짱을 낀 채 은후 앞에 나타났다. 웃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은 듯 불렀다. “삼촌.” 그날 밤. 좁은 방 안에서 은후의 어두운 눈동자에 질투가 들끓었다. 그는 이라의 가느다란 허리를 거칠게 감아쥐고, 벽 모서리로 몰아붙였다. “삼촌?” 은후의 낮은 목소리가 이라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약혼자 아니었나?” ... 사랑, 집착, 금기, 함락. 세상이 뭐라 해도 두렵지 않아. 나는 영원히 너를 사랑해.

View More

Latest chapter

More Chapters

To Readers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No Comments
30 Chapters
제1화
귀국 첫날, 강이라는 약혼자에게 바람을 맞았다.비행기에서 막 내렸을 때였다. 핸드폰이 울렸고, 전화를 건 사람은 심초연이었다. 초연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터질 듯했다.[나 오늘 하늘엔터 대표랑 협업 이야기하다가 들었어. 네 약혼자 최지범, 그 회사 신인 여배우 소아영을 끼고 스카이클럽으로 갔대. 곧 약혼을 앞둔 사람이 여배우랑 그렇게 붙어 다녀도 돼? 진짜 뻔뻔해.]초연은 분이 안 풀리는지 한마디를 더 보탰다.[기본이 안 됐어. 얼굴에 철판을 깔았나 봐.]최지범은 경울시 부동산업자의 아들이었다. 여자를 좋아하는 성정은 업계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었다.최씨 집안이 경울시에서 졸부로 분류된다고 해도 부자들의 모임에는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지범이 아무리 방탕해도 최씨 집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는 셀 수 없이 많았다.지범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걸 알아도 그 곁으로 가까이 가려는 여자는 끊이지 않았다. 지범 역시 마다하지 않았다. 스캔들 역시 계속되었다.스카이클럽은 경울시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회원제 클럽이었다. 돈과 권력이 모이는 곳이고, 상류층 자제들이 밤을 밝히는 곳이었다.지범이 여자를 데리고 그런 곳에 갔다면 목적은 뻔했다. 방을 잡으려면 사생활 보호가 확실한 곳이 좋으니까.“그런 집 아들들은 노는 것 좋아하잖아.”이라는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고 한 손으로 핸드폰을 쥔 채, 북적이는 입국장을 지나갔다. 목소리에는 이상하리만큼 담담한 웃음이 묻어 있었다.“며칠 더 신나게 놀게 내버려둬.”지범의 끊이지 않는 여자 문제에 대해, 이라는 늘 모르는 척했다.초연은 이라의 쿨한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알고 지낸 지 2년이 됐지만, 약혼자의 바람을 왜 이렇게 쉽게 넘기는지 알 수 없었다.이라는 예쁘고 눈에 띄었다. 해외 명문대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따라다니는 남자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 이라가 왜 최지범 같은 남자와 약혼하려 하는지, 초연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다.초연은 이라가 별일 아니라는 듯
Read more
제2화
이라는 그해 여름밤을 아직도 기억했다. 그곳도 스카이클럽이었다. 꼭대기 층 룸 안이었다.조용한 룸에는 두 사람 말고 아무도 없었다. 차가운 향초와 과실주의 향기가 공기 속에 섞여 있었다.그날 밤, 이라는 술기운을 빌려 은후의 무릎 위에 올라앉았다.크리스털 조명 아래 은후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남자였다. 균형 잡힌 몸, 완벽하게 빚은 듯한 골격, 차가운 선이 어우러져 있었다.한 번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라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뜨거운 숨이 은후의 목덜미에 닿았다. 이라의 뺨은 달아올라 있었고, 눈빛은 흐릿했다. 마음과 시선은 전부 아래에 앉은 남자에게 가 있었다.붉어진 입술이 벌어졌다. 이라는 몇 번이고 이름을 불렀다.“고은후, 고은후...”은후는 소파 등받이에 기대 이라의 가는 허리를 잡고 올려다보았다. 호박빛 눈동자에는 웃음이 번져 있었다.“취했어?”“취했어.” 이라는 말랑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의 보조개가 작게 피었다. “나한테 키스해 줘.”“어떻게?”은후는 알고도 모른 척 물었다. 목소리는 낮고 매끄러웠다.이라의 눈동자에 물기가 어렸다. 그녀는 불만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여 은후의 입가를 물었다. 두 팔로 목을 끌어안고 부드러운 입술을 은후의 입술에 눌렀다.숨은 급하고 뜨거웠다. 키스는 서툴고 어설펐다. 마음 깊은 곳의 열망에 떠밀려 상대를 물고, 머금고, 차지하려 했다.입술과 숨결이 뒤엉켰다. 이라는 낮게 속삭였다.“키스해 줘.”애교 같기도, ‘초대’ 같기도 했다.공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룸 안에는 둘만 아는 열기가 가득 찼다.이라의 목소리가 은후의 마음을 건드렸다. 은후는 눈썹을 살짝 올렸다. 눈동자에는 이라를 빼앗겠다는 뜻이 선명했다. 힘줄이 돋은 손등이 이라의 뒷목을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번에는 은후가 주도권을 잡았다. 거침없고 집요한 키스였다....“모릅니다.”그 한마디에 과거의 모든 친밀감이 산산이 부서지고 사라졌다.이라는 자리에 멈춰 있었다. 발소
Read more
제3화
2년 만에 처음으로 이라는 은후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서양적인 역삼각형 상체 골격에 동양적인 피부, 날카로운 눈매, 특유의 압도하는 기세. 모든 것이 여전했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주위의 시선을 끌었다.검은 정장을 입었고 넥타이는 없었다. 흰 셔츠 깃은 조금 열려 있었다. 매끈한 목 아래로 선이 분명했다.그렇게 편하게 입은 걸 보니 박동혁의 초대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마음에 담지도 않았을 것이다.역시 고은후 같은 사람을 박동혁이 설득할 수 있을 리 없었다.‘선배의 기대는 무너졌겠구나.’이라는 속으로 좀 아쉬웠다.은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매서운 검은 눈이 이라를 붙잡았다.“언제 들어왔어?”시선이 마주쳤다. 은후의 눈은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바다 같았다. 그 안에 빠지면 숨을 놓칠 것만 같았다.이라는 얼른 시선을 피했다.“오늘 오후에 도착했어요.”차는 일정한 속도로 달리며 화려한 도로의 흐름으로 빠져들어갔다.은후가 물었다.“어디 묵어?”“호텔이요.” 이라는 호텔 이름을 말한 뒤, 자신도 모르게 은후의 기분을 살피듯, 무의식적으로 덧붙였다. “아직 집을 구할 시간이 없었어요.”역시 은후의 눈썹이 희미하게 좁혀졌다. 목소리가 낮아졌다.“집에 안 가?”은후가 말한 ‘집’이 어디인지 이라는 바로 알 수 없었다.고씨 집안 본가인지, 은후의 개인 저택인지.이라는 10살에 고씨 집안으로 들어갔고, 고씨 집안은 이라가 18살이 될 때까지 거둬 주었다. 지금 다시 돌아가기에는 어딘가 맞지 않았다.18살부터는 은후와 함께 살았다. 꼬박 2년이었다.은후의 집에는 가장 달콤했던 기억이 있었고, 가장 부끄러운 마음도 숨어 있었다.은후와 끈적하게 이어졌던 낮과 밤도 그곳에 있었다.이라는 달콤하게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그건 좀 그렇잖아요.”은후는 더 캐묻지 않았다.“네 마음대로 해.”차 안은 조용해졌다. 공기는 묘하게 굳었다.운전대를 잡은 정훈도 뒷좌석에서 흘러오는 냉기를 느꼈다.
Read more
제4화
이라는 전화를 끊었지만 지범에게 가서 비위를 맞추지 않았다.하지만 혼사가 정리되지 않는 한 최씨 집안을 계속 상대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이라가 원하는 물건은 서건오의 손에 있었다. 그 물건은 오직 서건오만 갖고 있었다.이라에게 먼저 파혼을 요구할 권리는 없었다. 하지만 최씨 집안 아들이 먼저 파혼을 입에 올리게 만들 수는 있었다.체크인을 마친 이라는 캐리어를 끌고 객실로 올라갔다.깨끗하고 텅 빈 방에는 낯선 냄새가 감돌았다. 그런데 그 안에 희미한 차가운 우드 향기가 섞여 있었다.익숙하고,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는 향기였다.이라는 코끝을 움직였다. 천천히 가느다란 손가락을 들어 코끝에 가져갔다.손에는 은후의 몸에서 나온 향기가 남아 있었다.은후의 차에 잠깐 탔을 뿐인데 몸에 향기가 묻었다.이라는 은후의 몸에서 나온 향기에 유난히 민감했다. 사춘기 때 이미 깨달았다.그때 아무것도 모르던 이라는 몰래 책을 찾아봤다. 책에는 좋아하는 사람을 향한 감각이 커진다고 쓰여 있었다. 남들이 맡지 못하는 냄새를 그 사람에게서 맡는다고 했다.사람들은 그걸 체취라고 불렀다.확인하려 들었던 18살의 이라는 겁 없이 은후의 침대로 올라갔다.그 향기에 거의 잠겨 죽을 뻔했다.이라의 숨이 조금 무거워졌다.그 2년 동안 몰래 맛본 금기의 뜨거운 장면들이 떠올라 뺨과 귓불이 달아올랐다.이라는 서둘러 욕실로 들어가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기억에서 벗어나야 했다.그때 초연의 전화가 걸려 왔다. 텅 빈 방의 정적이 깨졌다.[이라야, 지금 어디야?]목소리는 다급했다. 이라는 티슈로 얼굴의 물기를 닦았다.“호텔. 왜 그래, 선배?”[방금 세아픽처스 쪽에서 연락이 왔어. 계약을 갑자기 바꾸재. 박동혁이 우리 대본 단가를 깎겠대!]초연은 분을 참지 못했다.[오늘 투자 이야기가 잘 안 됐나 봐. TC캐피털 대표가 십 분밖에 안 보고 나갔대.]이라는 얼굴 앞으로 쏟아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얼마나 깎았는데?”[회당 900만 원에서
Read more
제5화
“으음...”침대 위의 사람이 몸을 뒤척였다. 이불 밖으로 드러난 피부는 희고 투명했다. 들어온 아침의 빛 속에서 도자기처럼 빛났다.감겨 있던 살구빛 눈이 서서히 열렸다. 잠깐 멍해진 뒤 바로 또렷해졌다.이라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꿈꿨다.꿈속에서 은후와...이라는 자기 이마를 손바닥으로 세게 쳤다.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달아올랐다.‘강이라, 너 정말 답이 없네.’‘검은 것이든 흰 것이든 은후만 만나면 머릿속이 온통 야한 색으로...’그때 급하게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본 이라의 눈에 세 글자가 들어왔다.빠르게 뛰던 심장이 차분해졌고, 몸의 열기도 모두 가라앉았다.“여보세요?”전화 속 서건오는 노발대발했다.[당장 들어와!]...서씨 집안의 집은 경울시 외곽에 있었다. 그 동네에서 집을 산 사람은 대부분 서건오처럼 아주 부자는 아니지만 사업상 체면은 세워야 하는 사람들이었다.12년 전, 서건오 부부는 외할머니를 데리고 다른 도시로 이사했다. 몇 년 전 사업을 경울시까지 넓히면서 다시 이곳에 자리 잡았다. 작은 상류 모임 언저리에는 들어온 셈이었다.서건오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고 싶어 했다. 그래서 부동산 사업으로 세를 불린 최씨 집안에 기를 쓰고 매달렸다.이라는 처음으로 이 집에 왔다. 거실에 들어서자 솥바닥처럼 얼굴이 검은 서건오와 소태란 부부가 보였다.사촌 서민채는 조용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다도 책을 들고 있었다.이라는 하이힐 소리를 내며 안으로 들어가 서건오 부부 맞은편 소파에 거리낌없이 앉았다.“무슨 일이에요?”입가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고, 말투는 가볍고도 멀었다.서건오가 차갑게 노려보았다.“이라! 어젯밤 지범에게 잘 보이라고 했잖아, 내 말을 귓등으로 들었어?”이라는 순진한 척 눈을 깜박였다.“갔잖아요.”소태란이 참지 못하고 매섭게 물었다.“가서 뭘 했는데? 판을 뒤집으러 갔니?”사진 한 장이 탁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에 던져졌다.“강이라, 너 간도 크다. 최씨 집안 도
Read more
제6화
소태란은 분해서 몸을 떨었지만 핸드폰 화면을 보고는 손을 내리지 못했다. 이라를 노려보는 눈은 불이 붙은 듯했다.“그만해!”서건오가 소리쳤다.“이라야, 오늘 밤 보운정에서 식사 자리를 잡았다. 내가 얼마나 사정해서 최씨 집안 사람들을 모신 줄 알아?”서건오는 굳은 얼굴로 이라를 보았다.“가서 잘해. 그 자리에서 지범에게 제대로 사과해. 네가 지범이와 무사히 결혼만 하면, 내가 약속한 물건을 넘기겠다. 그 다음에 지범과 잘살든 못살든 나머지는 다 네 할 탓이다.”간단히 말해, 결혼만 하면 서씨 집안과 최씨 집안의 거래가 성사된다. 그 뒤 이라는 서씨 집안과 아무 상관이 없어진다.이라도 바라던 일이었다.“좋아요.”이라는 가볍게 웃고 이 집을 나왔다.멀리 걸어 나온 뒤에야 깊게 숨을 들이켰다.민채를 때린 손바닥이 저릿했다.이라는 예전에 누군가 가르쳐 준 말을 떠올렸다. 맞으면 돌려줘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면, 내가 받쳐 주면 그뿐이다.은후가 있으면 경울시의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다.다만...보운정은 고씨 집안의 영역이었다.오늘 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했다.이라는 아픈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하늘에 빌었다.오늘 밤만은 은후와 마주치지 않게 해 달라고....저녁 7시, 어둠이 내려앉았다.택시는 보운정 본관 입구 앞에 멈춰 섰다.이라는 뒷좌석에 앉아 창밖의 누각을 바라보았다. 경울시 외곽 산허리에 자리한 보운정은 흰 벽과 회색 기와가 어우러진 한식 건물이었다. 숲과 산이 둘러싼 덕분에 고요하고 고풍스러웠다.바람이 스치자 나뭇잎이 잘게 흔들렸다.따뜻한 노란 불빛들이 곳곳에 걸려 독특한 운치를 만들었다.이곳은 보통 경울시에서 이름 있는 사람들이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쓰는 곳이었다. 여기 룸을 잡으려면 돈만으로는 부족했고, 꽤 많은 인맥이 필요했다.서건오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최씨 집안에게 사과하려는 건... 그만큼 이 혼사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었다.다르게 말하면, 최씨 집안이 서씨 집안에게 가져다줄 이익이 꽤 크다는
Read more
제7화
이라는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룸 바깥에는 고요한 밤만 내려앉아 있을 뿐, 어둠 속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옅은 우드 향기는 여전히 주변 공기 속에 남아 있었다.그 익숙한 향기가 이라의 숨결을 흐트러뜨리고, 이미 무뎌졌다고 믿었던 감각을 조용히 흔들었다.이라는 가볍게 숨을 들이쉬었다. 가슴속에 알 수 없는 뻐근함이 느껴졌다.‘술을 많이 마신 건가? 왜 그 사람의 몸에서 나온 향가가 느껴지는 거야?’보운정의 각 채에는 따로 화장실이 있었다. 룸 밖으로 조금만 걸으면 닿는 거리였다.달빛이 구불구불한 돌길을 비추고 있었다. 이라는 잘게 부서진 달빛을 밟으며 화장실로 갔다.대리석 세면대에 두 손을 짚고 조명 아래 섰다.거울 속 여자는 곱고 선명했다. 옅은 화장이 또렷한 이목구비를 돋보이게 했다. 술을 마신 탓에 맑은 눈은 조금 흐렸고, 흰 피부는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어딘가 가엾게 보이는 얼굴이었다.이라는 살짝 웃었다. 입가에 작은 보조개가 생겼다.이런 이라조차 은후의 차가운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했다.그녀는 손목시계를 보니 룸 안의 ‘연극’이 곧 시작될 시간이었다.화장을 고친 뒤 화장실을 나섰다.문 앞에 이르자 매서운 박하와 담배 냄새가 먼저 닿았다.그 사이에 익숙한 우드 향기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이라의 심장이 세게 조였다. 앞을 바라보았다.밤빛 속에서 작은 붉은 불씨가 켜졌다가 꺼지기를 반복했다.은후의 길고 곧은 그림자는 어둠과 구별되기 어려웠다. 한 손은 주머니에 꽂고, 다른 손은 자연스럽게 옆으로 내려뜨린 채였다. 고운 손가락 사이에는 불붙은 담배가 들려 있었다. 온몸에서는 귀티와 냉기가 함께 흘렀다.주변은 조용했다. 들리는 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와 이라의 빨라지는 심장 박동 소리뿐이었다.얼마나 오래 떨어져 있었든 은후의 작은 움직임 하나가 이라의 마음을 흔들었다.은후는 손끝의 담배를 비벼 끄고 고개를 돌렸다. 맑게 흔들리는 이라의 눈과 마주쳤다.“이젠 정말 남처럼 대하네.”목소리는 낮고
Read more
제8화
이라의 말이 떨어지자, 손목을 쥔 은후의 손끝에 힘이 실렸다.비스듬히 올라가 있던 입매도 천천히 굳어 갔다.그 말은 은후가 가장 감추고 싶어 하는 부분을 정확히 찌른 셈이었다.차갑고 빈틈없이 이어진 은후의 30년 인생에서, 이라는 은후를 금지된 관계의 틈으로 끌어들인 유일한 사람이었다.은후가 높고 먼 곳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질수록, 이라 안의 어긋난 감정은 더 짙어졌다.이라는 차갑고 속을 알 수 없는 은후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두 사람 사이에 말 없는 긴장이 팽팽하게 흘렀다.은후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오래도록 침묵했다.그럴수록 이라의 웃음은 조금씩 씁쓸해졌다.그때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삼촌?”동시에 이라의 손목을 잡은 힘이 풀렸고, 따뜻한 감촉이 사라졌다.거리가 멀어지는 것과 함께, 은후를 향해 밑에서 꿈틀대던 감정도 갑자기 끊겼다.“이라 언니?” 다가오는 목소리에 놀람이 섞였다.이라가 돌아보았다.“믿음이?”“정말 언니네!” 믿음은 놀란 목소리에 반가움을 담아 두어 걸음 뛰어왔다. “언니, 언제 돌아왔어?”“어제 막 들어왔어.” 이라가 부드럽게 웃었다.“진짜 우연이다.” 고믿음은 이라의 팔을 잡고 웃었다. “삼촌이 오늘 일 이야기 있어서 나도 같이 와서 밥 먹으려 했거든. 여기서 언니를 볼 줄은 몰랐어. 언니, 2년 동안 너무 보고 싶었어.”믿음은 이라보다 두 살 어렸다. 은후의 혈연상 조카였고, 고씨 집안의 진짜 아가씨였다.이라는 고씨 집안에 입양되어 믿음과 비슷한 대우를 받았지만, 외부인 중 이라와 고씨 집안의 관계를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예전에 은후가 가끔 학교에 데리러 와도, 친구들이 관계를 물으면 이라는 웃기만 하고 얼버무리기 일쑤였다.“나도 보고 싶었어.” 이라는 믿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오늘은 일이 있어서 먼저 가야 해. 다음에 보자.”믿음이 급히 말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나랑 삼촌이랑 같이 밥 먹고 가면 안 돼?”“다음에.” 이라는
Read more
제9화
하지만 업계에는 한미주가 몇몇 재벌 2세들과 가깝게 지낸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그중 하나가 지범이었다.“좋아! 끝까지 인정 안 하겠다는 거지?”미주는 고개를 돌려 이라를 바라보았다.“당신이 지범 씨 약혼녀예요?”이라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미주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저... 지금 임신 2개월이에요.”미주는 당당한 태도로 이라를 쏘아보았다.“아이 아빠는 지범 씨예요. 그래도 이 결혼, 할 거예요?”“아...”이라는 놀란 듯 입을 가리고 지범을 돌아보았다. 말투에는 과장된 떨림이 섞여 있었다.“이게 정말...?”지범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최 회장이 분노한 얼굴로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쾅!소리와 함께 손끝에 있던 찻잔이 날카롭게 흔들렸다.최 회장은 지범을 가리키며 못마땅함을 감추지 못했다.“똑바로 말해. 저 여자가 하는 말, 사실이냐 아니냐?”“그게, 저 여자랑... 뭐, 그런 일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닌데...”지범은 말을 더듬으며 황급히 변명했다.“그래도 매번 조심했어요. 임신한 건 저도 몰랐다고요.”“그만해!”유명희가 더는 듣기 싫다는 듯 날카롭게 말을 끊었다.“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놀 거면 놀더라도, 아무 여자나 임신시켜서 데리고 오는 일은 만들지 말라고!”약혼 이야기가 거의 마무리되려던 자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지범의 여자가 들이닥쳤고, 심지어 임신까지 했다고 했다.서건오는 이 결혼이 깨질까 봐 다급해졌다.“회장님, 이건....”“회장님, 사모님.”이라가 얼른 말을 가로챘다. 맑은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남자가 결혼 전에 마음을 못 잡고 밖에서 흔들리는 일, 저는 이해할 수 있어요. 지범 씨를 원망하지도 않아요.”이라는 눈물이 맺힌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저분이 가진 아이가 정말 지범 씨 아이고, 아이가 태어난 뒤 최씨 집안에서 받아들이겠다면... 저도 제 아이처럼 대하겠습니다.”눈물이 그렁한 눈에 억울한 표정은 참기 힘들어 보
Read more
제10화
보운정을 나오자, 먹빛으로 내려앉은 하늘에 별이 드문드문 박혀 있었다.높이 걸린 달은 사방에 희고 맑은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밤바람이 갑자기 불어와 이라의 등 뒤로 흘러내린 긴 웨이브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찬바람을 맞아서인지, 이라는 뒤늦게 술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머리가 조금씩 무거워졌다.밤의 산중턱에서는 택시를 잡기 쉽지 않았다.호출 요금도 평소보다 열 배 가까이 올라 있었다.택시 기사가 배정되기를 기다리던 사이, 번호판부터 눈에 띄는 검은 마이바흐 한 대가 지하 주차장 VIP 전용 통로에서 빠져나왔다.이라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인 고급 세단은 제 영역을 순시하는 왕처럼, 돈과 권력의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었다. 범접할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졌다.차는 이라 앞에 멈춰 섰다.문이 열리고, 정훈이 차에서 내려 곧장 이라에게 다가왔다.정훈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차에 타시라고 하셨습니다.”이라는 굳게 닫힌 뒷좌석 차창을 한 번 바라보았다.안에 앉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짙게 검은 유리만 보일 뿐이었다.일부러 심술을 부리듯, 이라는 고개를 숙여 핸드폰 화면을 몇 번 눌렀다.그러고는 호출 금액을 다시 열 배 더 올렸다.“괜찮아요. 택시 불렀어요.”...차 안 뒷좌석.은후는 곧게 뻗은 눈썹 아래로, 창밖에 서 있는 이라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잘생긴 얼굴에는 아무런 파동도 없었다.긴 웨이브 머리가 흘러내려 이라의 작고 섬세한 얼굴선을 감싸고 있었다.얇은 몸, 바람에 살짝 들리는 흰 치맛자락.이라는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붉은 입술이 움직이는 걸 보니 정훈에게 무언가 말하는 듯했지만, 발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꼭 땅에 박혀 움직이지 않는 말뚝처럼.이라의 핸드폰 화면에 곧 ‘기사 배정 완료’라는 문구가 떠올랐다.이라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핸드폰을 정훈에게 들어 보였다. 택시가 잡혔다는 뜻이었다.정훈은 더 말하지 않고 검은 마이바흐 쪽
Read more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