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10살이 되던 해. 2년 동안 떠돌던 강씨 집안의 딸, 강이라는 경울시 최상류 재벌가인 고씨 집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라의 보호자가 된 사람은 고씨 집안의 둘째 아들, 고은후였다. 그때 은후는 막 열여덟이 된 소년이었다. 차갑게 잘생긴 얼굴, 아무것도 아쉬울 것 없는 태도, 세상 위에 홀로 선 듯한 오만함. 은후는 눈앞의 가엾은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에는 동정도, 온기도 없었다. 이라는 겨우 손에 넣은 안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얌전하고, 예의 바르고, 말을 잘 듣는 아이가 되기로 했다. 눈가에 눈물을 매단 채, 이라는 겁먹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오빠?” 은후가 낮게 웃었다. 이라의 머리 위에 얹힌 손은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처럼 무심했다. “내 항렬을 낮추려고?” 그 후. 18살, 이라가 성년이 되던 밤. 창밖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라는 은후의 침대 위로 올라가, 남자의 단단하고 마른 허리를 끌어안았다. 고집스럽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얇은 입술을 깨물었고, 숨이 얽히도록 입을 맞췄다. 은후의 손이 이라의 허리를 세게 붙잡았다. 뜨거운 숨결은 살갗 아래까지 파고들었다. ... 사람들은 고은후를 두고 말했다. 경울시 최상류층 재벌가의 귀한 도련님. 차갑고 고결하며, 여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남자라고. 하지만 이라는 알고 있었다. 은후는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잔인할 만큼 무심했고, 사람 마음을 흔드는 데 지나치게 능숙한 남자였다. 이라는 그런 은후에게 2년을 매달렸다. 하지만 은후의 마음은 단 한 번도 이라에게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이라는 미련 없이 그를 단번에 끊어 내고 떠났다. ... 훗날, 이라는 남자친구의 팔짱을 낀 채 은후 앞에 나타났다. 웃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은 듯 불렀다. “삼촌.” 그날 밤. 좁은 방 안에서 은후의 어두운 눈동자에 질투가 들끓었다. 그는 이라의 가느다란 허리를 거칠게 감아쥐고, 벽 모서리로 몰아붙였다. “삼촌?” 은후의 낮은 목소리가 이라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약혼자 아니었나?” ... 사랑, 집착, 금기, 함락. 세상이 뭐라 해도 두렵지 않아. 나는 영원히 너를 사랑해.
View More다짜고짜 쏟아진 욕설에 이라의 웃음이 사라졌다.차가운 눈으로 서민채를 바라보았다.“서민채, 입에 걸레라도 물었어? 입이 왜 그렇게 더러워?”민채는 사람이 오가는 거리에서 이라가 이렇게 거칠게 말할 줄은 몰랐는지, 얌전해 보이던 얼굴 위로 눈썹이 잔뜩 구겨졌다. 얼굴빛이 푸르락붉으락했다.민채 옆에 있던 친구도 이라의 말에 놀란 듯 작게 중얼거렸다.“민채야, 이 사람은 누구야? 말이 왜 저렇게 험해?”이라는 손에 든 차 키를 느긋하게 돌리며 비웃었다.“더 험한 말도 있는데, 들어 볼래?”“강이라.”민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화를 억누른 얼굴에는 억지웃음이 걸려 있었다.“네가 이 차를 어떻게 끌고 다니는지, 너도 잘 알잖아. 나는 좋게 말해 주는 거야. 너 이제 결혼할 사람이야. 처신 똑바로 해.”민채의 시선이 스포츠카에서 세아픽처스 로고로 옮겨갔다가, 다시 이라에게 닿았다.그러다 이라가 입은 옷을 알아본 듯 눈빛이 굳었다.그 옷은 서민채가 패션쇼 사진에서만 봤던 옷이었다.이번 시즌에 단 한 벌만 나온 프라이빗 라인의 고급 의상.민채가 오래도록 갖고 싶어 했던 옷이, 지금 이라의 몸에 맞춘 듯 입혀져 있었다.민채는 속으로 냉소했다.확실히 강이라는 남자가 돈을 쓰고 싶게 만드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분하고 질투가 치밀어 올랐지만, 민채의 얼굴에는 여전히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최지범이랑 약혼하기 전에, 밖에서 만나는 남자부터 깨끗하게 정리하는 게 좋을 거야. 최씨 집안에서 네 더러운 일들을 알게 돼서 혼담이 깨지기라도 하면, 우리 아빠가 너 가만 안 둘 테니까.”이라가 그 말을 듣고 알겠다는 듯 웃었다.민채는 차 한 대만 보고, 이라가 세아픽처스 쪽 돈 많은 남자에게 ‘스폰’을 받는다고 제멋대로 상상한 모양이었다.“너 불안하구나?”이라는 하이힐을 신고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민채의 경멸 어린 시선을 마주하며 옅게 웃었다.“내가 최지범이랑 약혼 못 하게 될까 봐 겁나? 그러면 네 아빠가 그 협력 잡으려고 결국 널
이라가 말을 마친 뒤, 웃으며 덧붙였다.“세아픽처스 감독이 가정 있는 사람인데, 잘나가는 여배우와 사적으로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얘기 터지면 꽤 시끄러워지겠네요.”그 말에 박동혁의 얼굴이 완전히 굳었다.“잃을 게 없는 사람은 무서울 게 없거든요.”이라가 눈꼬리를 곱게 접으며 웃었다.“감독님, 한번 해 보죠. 누가 누구를 먼저 지치게 하는지.”박동혁은 이라가 도도하게 걸어 나가는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분노로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박동혁은 곧바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법무팀에 연락해. 에코의 강이라 작가 고소할 거야.”박동혁의 목소리가 사납게 내려앉았다.“끝까지 물고 늘어져.”...[뭐라고?][박동혁이 너를 고소하겠다고?]이라가 세아픽처스 건물을 막 나섰을 때, 초연의 전화가 걸려 왔다.대화 내용과 결과를 들은 초연은 핸드폰 너머에서 곧바로 욕을 퍼부었다.[그 인간 진짜 낯짝도 두껍다. 겉으로는 멀쩡한 척하더니 속은 그렇게 더러웠어? 먼저 선 넘은 건 자기면서, 이제 와서 우리를 고소하겠다고?]초연은 화를 내면서도 이라를 달랬다.[고소하라 그래. 우리 겁먹을 거 없어. 이라야, 변호사는 내가 알아볼게. 너는 걱정하지 마.]“선배, 내가 일을 망쳤다고 생각 안 해?”이라가 웃었다. 목소리는 조금 부드러워졌다.[내가 왜 널 탓해?]초연이 곧바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늙다리한테 더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그런 저질 회사랑은 협업 안 해도 돼.]초연은 다시 말했다.[일단 회사로 돌아와. 저녁에 내가 괜찮은 데 예약해서 같이 밥 먹자. 놀란 것도 좀 가라앉히고.]“소송 문제는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방법 찾아볼게.”초연이 그렇게 말해 주자, 이라의 마음 한쪽이 따뜻해졌다.이라는 차 옆에 서서 옅게 웃었다.막 대답하려던 순간, 다른 전화가 끼어들었다.저장되지 않은 유선 번호였다.하지만 익숙한 번호였다.이라는 초연에게 잠깐 말한 뒤 전화를 받았다.[이라 아가씨?]상대의 목소리는
이라는 손끝으로 찻잔을 만지작거렸다.차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입가에는 옅은 웃음만 걸려 있었다.맑고 밝은 눈동자 속의 웃음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감독님, 정말 통도 크고 대담하시네요.”이라가 박동혁의 노골적인 시선을 마주하며 웃었다.“원래 감독님은 사업을 실력으로 하시는 게 아니라, 여자 몸으로 때우시나 봐요.”이라의 손끝이 찻잔을 집어 들었다.잔이 허공에서 살짝 기울어지더니, 안에 담긴 차가 테이블 위로 쏟아졌다. 튄 물방울이 박동혁의 정장을 적셨다.박동혁은 급히 몸을 뒤로 물렸다. 입가의 웃음도 사라졌다.이라는 그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그렇게 남의 침대에 올라가 로비하는 걸 좋아하시면, 고 대표 침대에는 감독님이 직접 올라가 보시죠?”이라가 낮게 웃었다.박동혁의 표정이 굳어 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찻잔을 탁자 위에 세게 내려놓은 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 했다.이라가 정말 화가 난 걸 봤지만, 박동혁은 이대로 미인을 보내기 아까웠다.그가 얼른 이라를 불렀다.“강 작가.”이라의 발걸음이 멈췄다.박동혁은 이라의 가느다란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농담 좀 한 거잖아. 화낼 것까지 있나? 대본료는 아직 조정할 여지가 있어.”이라가 가볍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그래요?”박동혁은 이라의 고운 얼굴에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다시 한 걸음 다가왔다.이라가 화가 나도 말투가 차분한 것을 보니, 쉽게 밀어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강 작가는 젊고 예쁘고 몸매도 좋잖아. 이런 건 일찍 깨달을수록 본인한테 좋아.”말하며 박동혁은 손을 은근슬쩍 이라의 허리 위로 올렸다.이라의 몸이 굳었다.박동혁은 이라가 움직이지 않자, 더 만만하게 여겼다. 입에서 나오는 말도 점점 선을 넘었다.“임히나도 내가 키운 애야. 내가 그 애를 요즘 뜨는 배우로 만들었듯이, 강 작가도 유명 작가로 만들어 줄 수 있어.”박동혁은 지나치게 가까이 있었다. 숨결이 닿을 때마다 이라는 역겨운 만큼 마음은 서늘해졌다.
임히나는 젊고 아름다웠다. 말투는 부드럽고 조용했으며, 대중에게는 ‘국민 첫사랑’으로 불렸다.탄탄한 팬덤을 가진 배우였고, 박동혁이 작품마다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배우이기도 했다.이라가 쓴 이 대본의 여주인공도 원래는 히나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하지만 박동혁은 단번에 거절했다. 작은 회사의 대본은 히나의 몸값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감독님, 안녕하세요.”이라는 문가를 가볍게 두드려 두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누군가 들어온 것을 알아차린 두 사람은 곧바로 서로에게서 거리를 뒀다.박동혁은 히나에게 눈짓으로 먼저 나가라는 신호를 보냈다.히나가 사무실을 나간 뒤, 박동혁의 시선이 눈앞의 지나치게 아름다운 여자에게 머물렀다. 눈빛에는 살피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강이라 작가?”이라는 곧바로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입가에는 옅은 보조개가 피어났다.이라가 손을 내밀었다.“감독님, 안녕하세요. ‘에코’의 메인 작가 강이라입니다.”이전까지의 협의는 대부분 화상 회의로 진행됐다.그때도 박동혁은 이라에게 예쁘다고, 배우를 해도 되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강 작가,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낫네. 정말 미인이야.”박동혁은 웃으며 이라의 손을 잡았다.손가락이 이라의 희고 매끈한 손등을 스치듯 지나갔다.“오늘 정신이 너무 없어서 말이야.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이라는 티 나지 않게 손을 빼냈다. 얼굴의 미소는 그대로였다.“감독님께서 바쁘신 건 이해합니다.”이라는 일을 할 때 늘 예의를 먼저 차렸다.예의를 다했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였다.“감독님, ‘에코’는 세아픽처스와 진심으로 협업하기를 희망합니다. 대본료도 이미 협의가 끝난 부분이고요. 계약을 앞둔 시점에서 갑자기 금액을 낮추는 건 조금 곤란합니다.”이라의 얼굴은 아름다웠고, 목소리는 차분했다.하지만 부드러운 말투 속에는 쉽게 밀리지 않는 힘이 있었다.그 당당함이 박동혁의 흥미를 더 자극했다.박동혁의 시선이 이라의 몸매를 위아래로 훑었다.이어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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