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71화

작가: 꽃길
진정우는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한 것일까?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나는 이내 답장을 보냈다.

[?]

진정우는 내게 답장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이미 아침을 먹었던지라 먼저 놀이공원으로 갔다.

하룻밤 사이에 놀이공원의 전기 회로는 전부 수리되었다. 진정우도 조명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나는 담당자와 마찬가지였기에 그가 테스트하면 나는 살펴보았고 문제가 있는 조명을 발견하면 다시 조절했다.

게다가 나는 어젯밤 그가 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건강이 업무의 진도를 늦추는 이유가 되지 않길 바랐다.

그는 기계처럼 쉼 없이 일했고 나도 쉬지 못했다. 심지어 물도 편하게 마시지 못했다. 가끔 물을 많이 마시면 자꾸만 화장실에 들락거려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화장실 다녀온 사이 그는 어쩌면 벌써 조명 수리를 끝냈을지도 몰랐다. 담당자인 나는 옆에서 지켜보며 기다려야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았다.

연속 사흘 동안 이렇듯 일한 덕에 결국 입안에 염증이 생기고 말았다. 그러나 나와 똑같이 물도 편하게 마시지 못하며 일한 진정우는 멀쩡했다.

여자와 남자의 체력엔 역시나 차이가 존재했다.

“언니, 물이라도 마셔요. 그러다간 쭈글쭈글 할머니가 되겠어요.”

이소희는 나와 같은 방을 쓰고 있었기에 당연히 바로 내 상태를 바로 눈치채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제가 쭈글쭈글해진다고 해도 할머니가 아니라 그냥 수분 부족 미소녀가 되어 있을 거예요.”

말을 마친 나는 얼른 고개를 젖히며 물을 마셨다. 마침 진정우와 시선이 마주친 나는 하마터면 사레에 들릴 뻔했다.

“언니, 뭘 그렇게 허겁지겁 마셔요?”

이소희가 얼른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사다리에서 내려온 진정우는 생수병을 들고 꿀꺽꿀꺽 물을 마셨다.

그는 아주 빠르게 마셨기에 목울대의 움직임도 빨랐다.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건 몸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유난히 진정우의 목울대에 예민한 것 같았다.

‘설마 나 목울대에 페티시가 있는 건
이 책을 계속 무료로 읽어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잠긴 챕터

관련 챕터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2화

    고개를 돌리니 역시나 강유형이 보였다. 강유형은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지만 이소희에게 말을 걸었다.“어디 가요?”“아, 지원 언니 구내염이라고 해서 약 사러 가는 길이었어요.”이소희가 말을 마치자마자 강유형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나에게로 왔다.“요즘 물은 마시고 있어?”나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그는 바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쉽게 열이 오르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쌀밥보다 죽을 더 자주 먹었고 평소에 물도 많이 마셨다.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구내염이 나거나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나는 강유형과 10년을 함께 보냈었기에 그는 이런 나의 체질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이런 걱정 어린 말들은 비꼬는 것처럼 들렸고 나도 모르게 신지태의 말이 떠올랐다.‘둘은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아.'너무 잘 알고 있는 나머지 강유형은 나에게 더는 흥미가 없었고 과부에게 관심을 보이었다.“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나는 강유형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차가운 어투로 되물었다.강유형은 쌀쌀맞은 나의 모습에 바로 표정을 굳혔다. 입을 열려던 순간 내 옆에 서 있는 진정우를 발견하곤 말했다.“내가 여길 왜 왔겠어. 당연히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왔지.”비록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 했던지라 진정우가 옆에 있는 이 상황에선 대화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 강유형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다만 멀리 가지는 않고 강유형을 불렀다.“나 일해야 하니까 할 말이 있으면 빨리해.”강유형은 걸음을 멈추더니 잔뜩 불쾌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지금 일부러 나 화나게 하려고 그러는 거지? 나한테 복수하려고.”“뭐?”서두 없는 말에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윤지원, 넌 혼인신고 하기 싫다고 억지 부렸잖아.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나한테 복수하겠다고 다른 남자를 찾아도 참아줄게. 그런데 지인한테 손을 대면 안 되지. 그러면 나중에 우리 서로 얼굴 어떻게 보고 살라고?”강유형의 말에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나는 2초간 멍 때리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3화

    이제 보니 강유형에게 내 생각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강유형, 넌 사소한 잘못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아니야. 난 참을 수 없는 잘못이었어. 내가 너랑 몇 년을 함께 보냈는데 너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겠지. 난 내 눈에 모래알이 들어오는 걸 참을 수가 없어.”나는 말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와 거리를 둘 생각이었다.“내가 한 사랑이 열정적이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내 남자가 다른 여자랑 애매모호한 사이가 되는 건 아주 싫거든. 조금이라도 애매모호해서도 안 돼. 난 완벽한 내 남자를 원하거든.”이 말을 내뱉으면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강유형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고개를 돌린 순간 진정우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나와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내가 했던 말을 아마 전부 들었을 것이다.나와 시선이 마주친 그는 그저 짧게 나를 빤히 볼 뿐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강유형을 보았다. 여전히 내가 억지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얼굴이었다.“윤지원, 이 사회가, 이 세상이 변했다는 걸 왜 아직도 모르는 거지? 그딴 헛된 환상 속에서 이제 그만 깨어나라고.”확실히 이 세상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 아주 많았다. 예전처럼 느긋한 시대는 사라진 지 오래였고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볼 수 있는 사랑도 거의 없었다.나는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그래, 완전한 내 남자가 될 수 없다고 나도 안 가질래. 뭐하러 쓸데없는 노력을 해.”강유형은 나의 말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나는 그런 그를 빤히 보았다.“강유형, 오늘 이 대화가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으면 좋겠어. 우린 이미 헤어졌으니까 각자 갈 길 가자고. 쓸데없는 미련도 품지 말고 깔끔히 헤어지자.”“하.”강유형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그래, 서로 갈 길 가자. 나야말로 윤지원 네가 나 말고 어떤 남자를 찾는지 지켜보겠어.”말을 마친 그는 씩씩대며 자리를 떠났다.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너무도 유치하게 느껴졌고 토라진 어린아이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헤어지고 나서도 나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4화

    약의 효과는 아주 좋았다.바르고 나니 입안의 타들어 가는 통증도 어느 정도 사라졌다.점심을 먹으면서 물을 마셔도 전처럼 고통스럽지 않았다.다만 여전히 음식을 먹을 땐 조심스러웠다. 여하간에 반찬에 소금과 다른 조미료가 들어 있었기에 상처에 자극이 되어 분명 아플 것이었다.“언니, 우린 죽을 먹어요. 반찬은 간이 적은 야채 볶음을 먹어요.”이소희는 나를 엄청 챙겨주었다.나는 이소희가 고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괜찮아요. 저만 죽 먹을게요. 음식은 먹고 싶은 거로 주문해요.”이소희는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진정우가 다가왔다.“점심 같이 얻어먹어도 돼요?”덩치가 큰 남자가 먼저 다가와 점심을 얻어먹겠다고 하니 정말로 이상했다.다만 나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그가 나의 입안에 약을 발라준 일이 떠올랐다. 그를 볼 때마다 민망했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그러나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진정우에게 푹 빠진 이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진 기사님은 어떤 음식을 드시고 싶으세요?”“전...”진정우는 나를 힐끗 보았다.“윤 팀장님이랑 같은 거로 주세요. 죽이면 돼요.”이소희는 눈을 크게 떴다.“죽만 드시려고요? 다른 음식은 안 드세요?”“담백한 거로 주문해주시면 돼요. 간이 심심한 거로요.”진정우는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저도 이틀 동안 물을 자주 마시지 않았거든요.”“진 기사님도 구내염인 거예요?”이소희는 감탄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괜히 나만 멀쩡한 것 같네.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농땡이 피우고 있었나?”결국 세 사람은 돼지고기 야채죽과 소고기 오이볶음, 그리고 잡채를 주문했다.“진 기사님, 혹시 부족하진 않으세요? 양이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네요.”주문을 하고 난 이소희가 진정우에게 물었다.“충분합니다.”진정우는 말수가 적었다.며칠간 일하면서도 그는 대부분 그저 묵묵히 일할 뿐이다.“언니, 우리 다른 요리 두 가지 더 주문해요. 진 기사님 몸은 아무리 봐도 이렇게 적게 먹는 사람 같아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5화

    나는 이소희가 포기하길 바라며 말했다.“아니요. 전 돈을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돈이 없으면 아무리 신이 조각한 얼굴이라고 해도 저한테 무용지물이에요.”말을 마치자마자 마침 진정우가 다가왔다.어쩌면 내가 한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나는 피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와 이어질 가능성은 없었으니까. 차라리 그가 듣고 미리 단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나는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나 나에게 스킨십을 하는데 내가 눈치 못 챌 리가 없지 않은가. 심지어 오늘은 약을 발라주었을 뿐 아니라 사소한 행동까지 그가 나에게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언니, 너무 밝히는 거 아니에요?”이소희가 투덜댔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정우를 보지도 않았다.이소희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핸드폰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고 비서님이에요.”‘고준석 비서님?!'“...네, 있어요. 놀이공원 A 구역에 있어요. 무슨 일이세요, 고 비서님? ...아, 네. 그럼 기다릴게요.”이소희는 전화를 끊자마자 나를 보았다.“고 비서님이 언니를 찾으세요.”‘고 비서님이 날 찾는다고?'‘왜? 설마 또 강유형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니겠지?'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오전에 강유형에게 더는 찾아오지 말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설마 이젠 고준석을 시켜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고준석이 왔다. 그의 손에는 도시락통이 있었다.“윤 팀장님, 이건 사모님이 전해주시라고 한 녹두차입니다. 속열을 내릴 수 있습니다.”‘아주머니가 직접 만드신 거라고?!'아주머니는 최근 나와 연락한 적 없었기에 속열이 났는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이것은 강유형이 만들어낸 핑계였다.만약 강유형이 가져다준 것이라면 고준석에게 다시 가져가라고 할 수 있지만 아주머니가 만든 것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네, 고마워요!”나는 도시락통을 받았다.그러나 고준석은 가지 않았다. 꼭 나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나를 봉화타운으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6화

    손을 안 씻은 사람은 나와 강진혁이었다.나는 아무래도 괜찮았지만 강진혁은 머쓱한 듯했다.“뭐 어차피 내 배 속으로 들어가는 데 문제없으면 그만이죠.”나는 이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먼저 말을 꺼냈다.다가오는 진정우 손에는 물티슈가 있었다.강진혁은 받으려 했지만 진정우는 손을 놓지 않았다. 결국은 내가 받으면서 한 장을 꺼내 강진혁에게 건네곤 나도 손을 닦았다.“지원아, 이분은 누구야?”강진혁은 불쾌한 티를 팍팍 내는 진정우가 누군지 아주 궁금했다.“이분은 진정우 씨, 조명 기사님이세요.”나는 강진혁에게 소개했다.나를 보는 진정우의 눈빛에선 압박감이 느껴졌고 결국 진정우에게도 강진혁을 소개하는 수밖에 없었다.“이분은 제... 오빠 강진혁이에요.”“안녕하세요.”강진혁은 진정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그러나 진정우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이소희가 바로 입을 열었다.“진 기사님은 결벽증이 있어요.”강진혁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렸다.“얼른 앉아서 먹어. 식으면 맛없으니까.”이소희는 입맛을 다셨다.“저도 하나 먹어도 돼요?”“물론이죠.”강진혁은 이내 진정우에게도 말했다.“진 기사님도 먹어봐요.”“아니요. 전 죽을 먹을 거예요.”진정우는 차갑게 거절한 뒤 자리를 떴다.이소희는 만두를 먹다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나를 보았다.“언니, 진 기사님 혹시 생리하는 건 아니겠죠?”나는 그런 이소희를 향해 엄지를 척 들었다.“정말 그런가 보네요.”강진혁은 나와 이소희의 대화에 웃음을 터뜨렸다.“진 기사님 성격이 좀 까칠하네요.”“아니에요. 사실 성격이 나쁘진 않아요. 조금 쌀쌀맞긴 하지만 이 정도로 까칠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요.”이소희의 입은 음식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이때 주문한 음식이 도착했다. 다만 녹두차와 만두를 먹은 나는 더는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이소희와 진정우가 전부 먹어치웠다.이소희는 당연히 진정우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진정우는 먼저 이소희에게 먹으라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7화

    나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다음 생에요. 다음 생에 전 두 분의 딸로 태어날 거예요. 그때가 되면... 오빠랑 저는 진짜 남매가 될 수 있겠죠.”강진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만두를 보며 말했다.“더 먹어. 너 요즘 살 많이 빠졌어.”“네.”나는 다시 만두를 먹기 시작했다.강진혁은 내가 먹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다. 결국 배가 부른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녹두차를 마셨다.“유형이는 여전히 널 걱정하고 있나 보네. 어머니가 만들었다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너에게 녹두차를 만들어준 것을 보면 말이야.”강진혁이 말했다.나는 바로 입꼬리를 올리며 픽 웃었다.“있을 때 잘하지 않고 이러는 건 문제 아닌가요?”구내염은 여전히 내 식욕을 방해하고 있었다. 나는 먹은 것을 정리한 뒤 말했다.“고마워요, 오빠. 이 먼 곳까지 와줘서요. 그리고 돌아가면 아저씨랑 아주머니께도 말씀드려주세요. 일 끝나면 바로 찾아뵐 거라고요.”나는 이 놀이공원을 가리켰다.“여긴 아마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아직 조명 조절 완벽하게 못 했거든요. 그래서 요즘 많이 바빠요.”“그래, 유형이한테서 들었어. 그래도 몸 챙겨가면서 해.”강진혁이 당부했다.“네, 알겠어요.”나는 멀지 않은 곳에서 바쁘게 일하는 진정우를 가리켰다.“저 이젠 일하러 가봐야 할 것 같아요.”“그래, 조심히 해.”강진혁은 또 걱정 어린 말로 말했다.진정우는 결국 점심을 먹지 않았다. 오후 내내 나와 거의 말도 섞지 않은 것을 보아 어딘가 화가 난 듯한 모습이었다.나는 정말 그 이유를 몰랐다. 대체 그가 왜 화가 난 것인지를.연이은 며칠, 진정우는 전보다 더 말수가 없었고 차가웠으며 그저 묵묵히 일만 할 뿐이다.이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나도 최선을 다해 협조했다. 다만 매일 물 마시며 쉬는 시간이 정해졌다.자기 몸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를 위한 것인지 모를 휴식 시간이었다.일주일 동안 진도는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진행되었고 뜻밖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8화

    진정우가 통화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이미 노트북 앞에서 기절한 듯 자고 있었다. 은은한 호텔 방 불빛이 내 얼굴에 비치고 그의 시선도 내 얼굴에 닿았다.나는 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으나 눈이 떠지지 않았다.한참 지나자 그가 나직하게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다윤아...”‘다윤아?!'‘지금 날 부른 거야?'‘맞네, 날 부른 거네.'강씨 가문으로 들어가기 전 나의 이름은 다윤이었다. 지원이가 아니라.하지만 그동안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오빠, 난 다윤이라고 해...”그 순간 머릿속에 작은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여자아이는 양 갈래로 두 개의 만두 머리를 했고 포동포동한 볼살로 귀엽게 어떤 한 남자아이를 보며 말했다.남자아이는 무뚝뚝한 성격이었던지라 말수가 적었다.곧이어 내가 그 여자아이가 되었고 남자아이는 진정우가 되었다. 나는 어느새 진정우의 등에 업혀 있었다.“오빠, 냄새가 너무 좋아...”“오빠 목 뒤에 까만 콩이 있어. 내가 뜯어줄게.”“다윤아, 그만. 아파.”“다윤아, 오빠 힘든데 그만 뛰면 안 될까?”...“엄마, 난 오빠가 좋아. 크면 오빠랑 결혼할 거야...”“하하...”“엄마, 아빠! 웃지만 말고. 다윤이는 커서 오빠랑 결혼할 거라고!”“다윤아, 넌 오빠랑 결혼할 수 없어. 너한테는 이미 약혼자가 있단다...”“싫어! 약혼자랑 결혼 안 해! 싫어!”그 순간 나는 꿈에서 깨게 되었고 숨을 몰아쉬었다.조금 이상했다. 왜 갑자기 이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 게다가 몸이 아주 작은 것을 보아 네 살쯤 되는 것 같았다.침대에 누운 나는 멍하니 천장을 30초간 보다가 다시 일어났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이 방은 내 방이 아니었다.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면서 어젯밤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폈지만 진정우는 없었다.나는 이내 고개를 숙여 몸을 보았다. 다행히 옷은 그대로 있었다.놀란 가슴을 달래며 밖으로 나가니 소파에서 자는 진정우가 보였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9화

    안리영이 지금 이 시간에 답장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대화창에서 나와 SNS를 열었다. 그러자 신지태가 올린 여유로운 사진을 보게 되었다.사진 속 신지태는 혼자가 아니었다. 옆엔 다른 사람도 있었고 몇 명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그중 아주 익숙한 손이 보였다. 그것은 강유형의 손이었다.그의 손가락에 끼어 있는 싸구려 반지는 내가 선물한 것이기 때문이다.지금 그 반지를 다시 보니 너무도 유치하고 창피했다.그 반지는 한 쌍이었다. 남은 하나는 나에게 있었고 내가 18살 때 생일 선물로 산 것이다. 가격고 기껏해야 19만 9천 원이었다.내가 간직하고 있는 것은 여성 사이즈였고 남성 사이즈는 강유형이 끼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강유형은 이 반지를 보며 목줄을 채우는 것이냐며 놀리기도 했었다.그러다 나중엔 그는 더는 이 반지를 끼고 다니지 않았다. 궁금했던 나는 떠보듯 물었지만 들려온 대답은 다른 사람들이 비웃을까 봐 뺐다는 것이다.너무 싸구려라서.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고귀한 몸인 강유형이 고작 20만 원 하는 반지를 끼고 다니기엔 체면을 구기지 않겠는가?하지만 그 반지는 내가 처음으로 가정 교사 아르바이트하면서 번 돈이었다.그날 이후로 나는 더는 이 반지에 관해 묻지 않았고 그도 끼지 않았다. 그런데 사진 속 강유형은 반지를 끼고 있었다.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나도 이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다만 그 반지는 확실히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나도 모르게 항상 강유형의 앞에서 주눅 들어 눈치만 살피며 비위를 맞추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안리영의 답장이 오면서 나는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누구랑 잤는데?]안리영은 직설적이었다.나는 이 문자를 보고도 바로 답장하지 않았다. 강유형이 낀 반지 때문에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다.[강유형?]안리영이 또 문자를 보냈다.[아니, 걔는 아닐 거야.][혹시 정우 오빠?]안리영은 진정우임을 알아맞

최신 챕터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10화

    이 한 방은 강진혁을 향한 것이자 강씨 가문의 체면에 날린 일격이었고 동시에 그에게 보내는 경고이기도 했다.역시 용진표였다. 본색을 드러낼 땐 그 누구도 봐주지 않는다. 명백히 아들을 대신해 분풀이를 한 것이다.“이 자식아, 네 아버지도 생전에 감히 나한테 아니오라고 하지 못했어. 어디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나대는 것이냐.”그는 비서에게서 건네받은 실크 손수건으로 사람을 때린 손을 천천히 닦았다.강진혁의 입가에서 피가 스며 나왔다. 눈동자 밑바닥엔 살기를 담은 분노가 깔려 있었지만 겉으론 억지웃음을 지으며 피 묻은 입가를 닦았다.“대표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예의도, 규칙도 몰랐습니다.”그 모습은 비굴하기 그지없었다.나는 안다. 그건 그저 잠시 몸을 낮춘 것일 뿐이라는 걸 말이다. 이미 조시언 하나만으로도 감당하기 버거운 판에 용진표까지 자극했다간 내일 세운 계획은 아예 무산될 것이다.용진표가 오늘 조문이라는 명목으로 이것에 온 것도 결국엔 그를 윽박지르기 위함이었다. 내일은 아마 큰 소동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하지만 내일은 본래 강두식의 발인이 예정되어 있었다.나는 영정 사진을 바라보았다. 죽어서조차 편히 쉬지 못할 줄은 그도 몰랐을 것이다.어쩌면 이것도 업보인 셈이었다.선과 악은 결국 되돌아오고 하늘은 공평하게 그 누구도 쉽게 용서하시지 않는다.강진혁이 상황을 파악하고 꼬리를 내리자 용진표도 더는 문제 삼지 않고 돌아섰다.강진혁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채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눈은 용진표가 사라진 방향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엔 마치 죽여버리겠다는 외침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그는 참았다. 스스로도 말했듯이 그는 인내에 가장 능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그때 김희연이 다가가 그의 입가를 조심스레 어루만지려 했으나 그는 조용히 몸을 피했다.“아주머니, 구급상자 좀 가져와 주세요”김희연이 가사도우미에게 말했다.“필요 없어요”강진혁은 단호히 거절했다.김희연이 뭔가를 더 말하려 했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9화

    조시언은 강두식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절을 올리고 김희연에게 다가가 애도의 뜻을 전했다.그 모습은 마치 그가 정말로 단지 조문하러 온 사람인 듯한 착각이 들게 했지만 조금 전 지하 주차장에서 강진혁과 벌인 격렬한 대치전을 생각하면 그렇지만은 않았다.“엄마.”강유형도 김희연에게 걸음을 옮겼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슬이 맺힌 눈으로 고개만 끄덕였다.“옷 갈아입고 아버지 곁을 지켜드리렴.”강유형은 이미 안정을 되찾은 듯했다. 가사도우미의 도움 아래 옷을 갈아입은 그는 김희연의 곁에 나란히 섰다.찾아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나무가 쓰러지면 원숭이들이 흩어지는 건 당연했다.강씨 가문은 강유형의 손에서 강진혁에게로 넘어간 뒤 눈에 띄게 힘을 잃었다. 게다가 강진혁이 용씨 가문과 얽히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기류도 감지되었다.이런 때일수록 엮이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의 마지막은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것이다.“조시언 씨를 모셔다드려!“조시언이 막 애도를 마친 순간 강진혁은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조시언이 쉽게 떠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내쫓듯 말을 꺼냈다.“괜찮아요, 전 우리 리영이를 기다려야 하거든요.”조시언은 안리영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단번에 뜻을 알아채고는 내 팔짱을 끼며 말했다.“난 지원이와 함께 있을 거야.”나는 당연히 이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누군가가 김희연의 곁을 지키고 있어야 했고 안리영도 내 옆에 있겠다고 했으니 조시언은 자연스레 이 자리에 남게 되었다.강진혁의 눈빛엔 거슬린다는 기색과 도발적인 분노가 아른거렸지만 이곳은 장례식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그럼 조시언 씨는 접견실에서 잠시 쉬시죠.”강진혁의 목소리는 차디차고 딱딱했다.조시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안리영을 한 번 더 바라본 뒤 조용히 자리를 나섰다.하지만 그가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문 밖엔 여전히 그의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의미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모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8화

    조시언은 아예 강진혁과 정면으로 맞붙을 작정으로 보였다.강진혁은 괜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지만 이 일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면 그도 마냥 가만있을 수 없었다.하지만 조시언이 강진혁의 영역에서 이토록 기세등등한 걸 보면 분명 무언가 대비책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조시언이 귀국한 지는 겨우 몇 달 남짓한데 어떤 수를 숨기고 있는지, 무슨 힘이 있는지 궁금했다.잠시 혼란스러웠다. 강진혁은 조시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언제나 조용하고 겸손한 자세를 유지했고 귀국한 후에도 특별히 어울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강진혁은 그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다.그런데 그가 이렇게 자기 발목을 잡는 존재가 되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강진혁이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세상 별의별 인간들을 다 상대해 봤고 그런 그에게 이름도 낯선 조시언 따위는 아무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 여겼다.파도를 일으키기는커녕 물결 하나 일렁이기도 어려운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그는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조시언 씨께서 이렇게까지 예의를 갖추시겠다고 하시니 그럼 이 자리에서 내일 장례식까지 천천히 기다리시죠.”말을 마친 그는 손을 살짝 내저었다.그 즉시 출입구 쪽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고는 조시언 쪽 사람들과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나도 갑작스럽게 누군가에게 끌려 나와 강유형의 뒤에 숨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자기 자신조차 지키기 어려운 처지였다.나는 그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그제야 문득 깨달았다. 키 차이가 이렇게나 많이 났다는 것을 말이다. 널찍한 등 너머의 세상을 볼 수조차 없을 만큼 듬직했다.생각해 보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는 늘 이정도 키 차이를 유지했었던 것 같다. 그는 늘 이렇게 내 위를 지키고 있었다.학창 시절에 나는 어떤 불량 학생의 고백을 거절해 골목길에서 애들한테 둘러싸여 봉변을 당할 뻔했을 때가 있었다. 그때도 강유형이 나타나 나를 자기 뒤로 끌어당기더니 그대로 녀석들과 맞붙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7화

    “안리영 씨가 괜히 남의 일에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생기진 않았을 겁니다. 조시언 씨가 직접 오셨으니 이제 그쪽 사람 데리고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강진혁의 말투엔 조시언이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기를 바라는 속내가 담겨 있었다.조시언의 맑고 단정한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강 대표님은 우리 조씨 가문을 우습게 보시는 모양이네요. 사람을 붙잡았다 풀었다, 본인 마음대로 하시겠다는 말씀인가요?”강진혁도 알고 있었다. 조시언이 이곳에 온 이유가 안리영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서로 적당히 선을 넘지 않으며 겉치레투성이인 말만 주고받는 것도 결국엔 정면충돌을 피하려는 계산에서였다.하지만 지금 보니 조시언은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리고 지금 강진혁의 입지는 예전만 못했다. 용준호와의 협력도 끊겼고 강유형과도 더 이상 같은 편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혼자 싸우는 상황이었다.그러니 적이 하나라도 줄면 그만큼 신경 쓸 일도 줄어들 터였다.“그럼 원하는 게 뭡니까? 내가 사과라도 하길 바라는 겁니까?”강진혁은 한발 물러서며 말했다.그러자 조시언은 고개를 돌려 안리영을 바라보며 대답했다.“그건 저한테 물을 일이 아니죠. 얘한테 물어보셔야죠.”강진혁의 턱 근육이 일렁였다. 명백히 기분이 상한 눈치였다. 강진혁더러 안리영에게 사과하라고 한 건 사과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의 자존심을 짓밟으려는 의도였다.그는 남에게 무시당하는 걸 가장 싫어했다. 그런데 지금 조시언이 이런 식으로 나오니 오랫동안 눌러왔던 분노가 마침내 터지려 하고 있었다.“보아하니, 조시언 씨가 원하는 건 사과가 아니라 우리 강씨 가문의 일에 끼어들려는 거군요?”강진혁은 노골적으로 말을 꺼냈다.조시언은 태연하게 말했다.“그럴 생각은 없습니다.”“없으면 그만 가시죠.”강진혁은 대놓고 내쫓는 듯한 말을 뱉었다.조시언은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내곤 안리영을 바라보았다.“리영아, 가자.”하지만 안리영은 곁에 있는 친구를 두고 떠날 사람이 아니었다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6화

    나는 소화기를 들어 올리는 그 순간부터 그와 함께 끝장을 볼 각오를 했다.강진혁은 이미 이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는 마치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언제든지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함께 파멸로 끌고 갈 수 있는 위험한 존재였다.“지원아.”강유형이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무모하게 나서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그가 두려워한 건 내가 강진혁을 해칠까 봐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다칠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하지만 내 위협은 강진혁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그는 우리를 깔보듯 훑어보며 한심한 벌레라도 보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그럴 만도 했다. 강유형은 그에게 당해 지금 몸조차 가누지 못했고 가사도우미는 나이가 지긋했다. 게다가 나는 임신 중인 몸이었다. 그러니 그는 무서울 게 없었다.“윤지원, 사람은 눈치를 살필 줄 알아야 해. 지금 상황을 봐, 내 편에 서는 것만이 네가 살 길이야. 너도 네 아이가 엄마, 아빠 없이 살아가길 바라진 않을 거 아니야. 태어나기도 전에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사라지길 원하니?”“진정우가 준 물건만 내놓으면 너희 세 식구를 무사히 지켜줄게. 게다가 부귀영화까지 누릴 수 있게 해주지. 그때 가서 계속 여기에서 살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든 마음대로 해도 좋아.”이런 상황에도 그는 여전히 나를 유혹하려 들었다.“강진혁, 그렇게는 안 돼. 그런 식으로 살다간 나중에 내 아이 앞에서 고개도 들 수 없을 거야. 만약 아이가 자라서 자신의 행복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더러운 거래로 이루어졌다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나를 원망하게 될 거야.”그 말을 내뱉는 순간 아랫배가 꿈틀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고작 한 달을 채운 아기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생각해 보면 이 아이의 존재는 하늘이 준 뜻밖의 선물이었다. 진정우가 배성재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왔던 그날,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생겨난 기적이었다.강진혁은 코웃음을 쳤다.“그래? 그렇다면 더 할 말은 없군.”그 말과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5화

    이 차는 강씨 가문의 아름다웠던 기억인 동시에 강진혁이 부모님과 강유형을 원망하기 시작한 사건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강유형을 이곳에 가둬뒀을 거라 확신했다.나는 곧장 그 차를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차 문 가장자리의 먼지가 문질러져 벗겨진 흔적이 보였다.내 예상이 적중했다.“강유형.”나는 그를 부르며 차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았다.하지만 문은 잠겨 있었고 당연히 열리지 않았다.나는 손으로 유리 위의 먼지를 닦아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손발이 묶인 채 뒷좌석에 누워 있는 강유형이 보였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강유형, 강유형...” 나는 다급히 그를 불렀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기절한 듯했다.어떻게 강유형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강진혁은 정말 사람이기를 포기한 셈으로 보였다.이제 와서 열쇠를 찾으러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고 구석에 놓인 소화기를 발견했다. 곧장 달려가 그것을 들고 차 유리에 힘껏 내리쳤다.차 유리의 강도를 너무 얕본 탓일까, 두 번을 내리쳤는데도 유리는 깨지지 않았다. 있는 힘껏 내리칠 수도 없었다. 내 뱃속의 아기는 작은 충격에도 버티기 힘들 테니 말이다.“지원 씨.”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리자 집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제가 할게요.”그녀는 내 손에서 소화기를 받아 들고 전보다 더 힘차게 차 유리를 내리쳤다. 두어 번의 충격 끝에 유리는 방사형으로 금이 가게 되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내리쳐 마침내 유리에 구멍을 냈다. 그녀는 손을 넣어 안쪽의 잠금장치를 열었다.“강유형, 정신 차려, 정신 좀 차려봐.”나는 그의 어깨를 붙들고 흔들었다. 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지원아...”나와 가사도우미는 그를 부축해 앉혔고 손발에 묶인 끈을 풀어 주었다. 정신을 되찾은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형이 한 짓이야.”“아마 삼촌 장례식을 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4화

    강유형이 여태껏 안 보이던 이유가 드디어 밝혀졌다. 강진혁이 그를 가둬둔 것이다.안리영의 말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는 정말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까지 수작을 부렸다.용준호는 이미 처리됐고 강유형마저 가둬두었으니 이제 남은 건 강진혁, 그 혼자뿐이었다. 모든 결정권이 그의 손에 넘어갔다.사람들은 말한다. 사내는 독해야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말이다. 언제나 점잖고 다정하기만 했던 그가 지금은 혈육도 모르는 체하는 악마가 되어 있었다.“지원아, 그이를 구할 사람, 너밖에 없어...”김희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더욱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내게 몰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자신도 강진혁한테 잡혀 갇힐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눈을 감고 못 본 척해야만 했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내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자식에게 두려움을 느껴서라기보다는 그녀에게 아직 다하지 못한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다.강두식은 그녀가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고 가장 의지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남자가 먼저 떠났으니 그녀에게 삶은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그저 가장 사랑했던 이의 곁을 지키고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고 싶을 뿐이었다.나는 그녀를 달래고는 조용히 안리영 곁으로 다가가 속삭였다.“내가 강진혁을 붙잡고 있을게. 넌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강유형을 구해.”안리영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내가?”지금껏 메스만 들어본 그녀였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구하는 일은 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이곳엔 우리 둘뿐이었고 그녀 외엔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없었다.망설임도 잠시 안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김희연은 몸을 휘청이더니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은 척했다.강진혁은 얼른 그녀를 안아 침실로 옮겼고 안리영은 의사라는 이유로 당연히 함께 불려 들어갔다.나와 안리영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역할을 바꿨다. 그녀가 강진혁을 붙잡아두는 사이, 나는 강유형을 구하러 나섰다.“혈압이 너무 높아요. 혹시 혈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3화

    “의료사고는 병원이나 의사의 책임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고 도 선생님도 복직하셨어. 다만...”안리영은 말을 잠시 멈췄다.“다른 병원으로 전근 가셨어.”며칠 동안 병원에 머물면서 그녀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이번 사고 때문에 전근 가신 거야?”“응. 조사 결과 산모의 죽음은 도 선생님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밝혀졌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냥 그녀 손에 죽었다는 사실만 보고 이 모든 게 그녀의 책임이라고 여기는 거지.”안리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씁쓸히 말했다.“사람들의 입이 제일 무서워. 가볍게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다들 몰라.”그 말의 뜻은 도 선생님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기도 했다. 그녀도 지난 세월 동안 유가족들에게 오해받고 괴로워한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우리 리영이, 마음고생 많았겠네.”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맞는 말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 가장 고달프다고 느끼지만 정작 우리가 겪는 고통은 이 세상 온갖 아픔 중의 아주 작은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출관하는 날, 하늘에선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치 하늘조차 이 아픔을 가엾게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나는 안리영과 함께 강씨 가문에 도착했다. 저 멀리 길 양쪽으로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강두식은 평생을 업계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그를 애도하러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강씨댁 대문 앞엔 흰 보가 드리워져 있었고 양옆에는 추모의 글귀가 붙어 있었다. 문 앞에 서기만 해도 가슴 속으로 서늘한 기운이 파고들었다.“조금 있다가 아주머니 뵙게 될 텐데 감정 조절 잘 해야 해. 흥분하면 안 돼.”안리영이 걱정된다는 듯이 당부했다.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잘 알고 있었다.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조절되는 거라면 이 세상엔 그렇게 많은 희로애락도 없었을 것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2화

    강유형은 들고 있던 휴대폰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온몸에 힘이 빠진 듯했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입술을 살짝 떨며 말을 꺼냈다.“엄마가 그러는데, 아빠가... 돌아가셨대.”강진혁은 이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는지 별다른 반응도, 놀라움도 없었다.둘은 말없이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강진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가자.”그때 마침 강유형이 전화를 걸어왔고 나는 잠결에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나는 어지럽고 복잡한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헤매고 있었다.그 전화는 마치 구명줄처럼 나를 그 혼란스러운 꿈에서 깨어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꿈에서 너무 많은 힘을 빼버려서 그런지 목소리가 흐물거렸다.“여보세요...”“지원아.”강유형은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렀고 그 뒤로 말이 없었다.“무슨 일이야?”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흐물거리며 물었다.“아빠... 오늘 가셨대.”강유형의 목소리는 깊고도 낮았다. 하지만 내게는 그 소리가 너무 크고 너무 선명하게 들렸다.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시간조차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강두식은 내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원망했었다.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그는 나를 친딸처럼 아껴주었고 그로 인해 나는 더 이상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되었다.그 애매한 감정은 늘 내 마음을 갉아먹었다. 그래서 김희연이 나더러 집에 한번 들르라고 부탁했을 때, 그러겠다고 했지만 결국엔 가지 못했다.이제 강두식은 세상을 떠났다. 더는 그를 볼 수도, 마주할 수도 없게 되었다.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그 틈 사이로 강유형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이제 난 아버지가 없어.”이런 영원한 상실이라는 감정은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나는 안다. 우리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때의 나는 너무나도 어렸지만 그날 느낀 망연자실한 공포는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깊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책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책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