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범이었다

나는 공범이었다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6-25
Por:  희나리KAtualizado agora
Idioma: Korean
goodnovel18goodnovel
Classificações insuficientes
20Capítulos
149visualizações
Ler
Adicionar à biblioteca

Compartilhar:  

Denunciar
Visão geral
Catálogo
ESCANEIE O CÓDIGO PARA LER NO APP

우리집 지하실엔 특별한 아이가 살았다. 성도 없이 불리던 이름, '유 영'. 누구도 가족이라 부르지 않았지만, 준호에게 만큼은 특별했다. 작고도 겁이 많던, 예쁘지만 웃지 않던, 아무리 아파도 울지 않던 그런 아이. 그런 영이가 열 네 살이 되던 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준호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공범이구나, 공범이었어.' 그리고 십 년 뒤, 영이를 찾았다. 아니, 끝끝내 찾아냈다. 문제는 자신이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 아무 것도 모른 채,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일에 놀아나고 있었다는 것. 그때부터 준호는 달라졌다. 살아있는 한, 아버지를 용서하는 일은 기필코 없을 것이다.

Ver mais

Capítulo 1

제1화

“유영! 영아...!” 

정신없이 집안을 헤집었다. 열려 있던 방문을 하나씩 확인하고, 지하실을 들락거린지 삼십여 분. 

 

아무 대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름을 부르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더 이상 그 아이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영아..!”

얼마나 애타게 불렀는지, 목이 잔뜩 쉬어가고 있었다. 교복 넥타이는 헐겁게 풀렸고, 거실 슬리퍼는 한쪽만이 위태롭게 발을 감쌌다. 

그때였다.

“신준호!”

어머니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집안을 갈랐다.

숙경은 거실 한가운데 서서 아들의 옷깃을 꽉 움켜쥐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은 떨렸고, 눈동자는 이미 결론에 닿아있었다.

“정신 차려! 어차피 떠날 아이였어!”

준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방금 들은 말을 뇌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그런 얼굴.

“그게 지금 하실 말씀이에요? 고작 열네 살이에요. 열네 살이요!”

처음 보는 아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그 짧은 순간이 이미 대답보다 더 많은 걸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와서 그 아이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보내야 했고, 하루 빨리 보내길 바랐고, 사실은 내내 끔찍하고 소름까지 끼쳤다. 

맞다. 아들의 말처럼 그 아이는 열네 살이다. 하지만 그 나이는 숙경에겐 완전히 다른 의미였다. 

처음부터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르는 아이. 14년이나 먹여주고 재워주고 돌봐줬으면 그걸로 됐잖아. 이미 충분하잖아. 

분을 못 이겨 씩씩거리던 준호가 거실 한켠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신태호는 이 사달에도 소파에 앉아 신문을 넘기고 있었다. 손놀림은 느긋했고 표정은 덤덤했다.

그 모습에 속이 서늘하게 뒤집혔다. 

“아버지.”

텁, 신문이 접히는 소리가 들렸다. 태호는 준호에게 시선 하나 주지 않고 안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란 피울 일 아니다.”

“소란이요? 지금 소란이라고 하셨어요?”

“쟤 좀 치워.”

“여보!”

숙경의 목소리가 뒤늦게 터졌지만 이미 늦었다. 닫혀있던 방문이 벌컥 열리며 동생 보람이마저 잔뜩 구겨진 얼굴을 내밀었다.

“또 뭔데? 곧 기말인 거 몰라서 이래?”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에, 준호는 깨달았다.

이 집에서 영이가 사라진 건, 사건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에 불과하다는걸. 어차피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결말이라는걸.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 하나가 사라졌는데, 기말고사 이야기나 하고 있는 동생의 모습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다들 지긋지긋해.”

보람이 보란 듯이 코웃음을 쳤다. 

“설마 그 기지배 때문에 그래? 그래서 시험 기간에 이 난리를 치는 거야?” 

“신보람. 그 입 안 닥쳐?”

“오빠가 걔를 언제부터 그렇게 챙겼다고? 가식 좀 그만 떨어.”

거실엔 이내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무도 보람을 말리지 않았다. 아무도 그 말이 틀렸다고 하지 않았다. 그게 더 끔찍했다.

“그래. 이제 좆같은 가식은 그만 떨어야겠네.”

***

준호는 그날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고3. 마지막 기말고사를 앞둔 어느 날이었다. 

하굣길, 그날도 편의점에 들러 젤리를 샀다. 영이가 좋아하는 복숭아 맛 젤리.

교복 안주머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평범했다. 너무도 평범해서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가 달랐다.

어머니는 웃음을 흘리며 저녁상을 차리고 있었고, 콧노래마저 흥얼거렸다. 

꼭 무언가에 해방된 것처럼,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모습은 본 적이 없는데. 너무도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엄마, 무슨 일 있어요?”

갑작스러운 준호의 물음에 숙경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았다. 그리곤 괜스레 분주하게 접시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모든 게 부자연스러웠다. 모든 게 평소답지 않았다. 

“어, 어... 준호 왔어? 얼른 앉아. 배고프겠다.”

“잠깐만요.”

늘 그랬던 것처럼, 준호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계단 옆에 위치한 문 쪽으로 향했다.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 영이가 있는 곳. 

문고리를 잡아 돌리려는 순간, 어머니의 목소리가 등 뒤로 떨어졌다. 

“걔 없어!”

“네?”

“없다고. 그러니까 더는 기억도 생각도 하지 마.”

그렇게 영이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남아있는 짐도, 마지막 인사도 없었다. 어제까지 그 자리에 있던 아이가 끔찍한 설명 하나로 지워져 버렸다.

그 아이를 어떻게 잊으란 소리지? 그건 이미 불가능한데. 

부모님은 자식 없는 부잣집에 입양을 갔다는 똑같은 대사로 입을 맞춘듯했지만, 애초부터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아니, 성립할 수 없었다.

아버지 주변에는 다 자란 열네 살짜리 아이를 입양할 만큼 마음 넓은 인간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가끔 집에 드나들던 어른들은 하나같이 영이를 찾으면서도, 동시에 꺼렸다.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표정과 시선이 먼저 답을 내놨다. 소름 끼친다. 그 말이 가장 어울렸다.

그날 밤, 준호는 지하실 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손에 쥔 젤 리가 눅눅해지며 복숭아 향이 진득하게 새어 나왔다. 

달콤한 향기가 진실을 알려주었다.

자신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걸, 이곳에 영이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자연스레 여겨왔던 공범이었다는걸. 

“다 알고 있었잖아. 영이는 내내... 갇혀 있었다는 걸.”

Expandir
Próximo capítulo
Baixar

Último capítulo

Mais capítulos

Para os leitores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Sem comentários
20 Capítulos
제1화
“유영! 영아...!” 정신없이 집안을 헤집었다. 열려 있던 방문을 하나씩 확인하고, 지하실을 들락거린지 삼십여 분. 아무 대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름을 부르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더 이상 그 아이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영아..!”얼마나 애타게 불렀는지, 목이 잔뜩 쉬어가고 있었다. 교복 넥타이는 헐겁게 풀렸고, 거실 슬리퍼는 한쪽만이 위태롭게 발을 감쌌다. 그때였다.“신준호!”어머니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집안을 갈랐다.숙경은 거실 한가운데 서서 아들의 옷깃을 꽉 움켜쥐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은 떨렸고, 눈동자는 이미 결론에 닿아있었다.“정신 차려! 어차피 떠날 아이였어!”준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방금 들은 말을 뇌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그런 얼굴.“그게 지금 하실 말씀이에요? 고작 열네 살이에요. 열네 살이요!”처음 보는 아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그 짧은 순간이 이미 대답보다 더 많은 걸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와서 그 아이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보내야 했고, 하루 빨리 보내길 바랐고, 사실은 내내 끔찍하고 소름까지 끼쳤다. 맞다. 아들의 말처럼 그 아이는 열네 살이다. 하지만 그 나이는 숙경에겐 완전히 다른 의미였다. 처음부터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르는 아이. 14년이나 먹여주고 재워주고 돌봐줬으면 그걸로 됐잖아. 이미 충분하잖아. 분을 못 이겨 씩씩거리던 준호가 거실 한켠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신태호는 이 사달에도 소파에 앉아 신문을 넘기고 있었다. 손놀림은 느긋했고 표정은 덤덤했다.그 모습에 속이 서늘하게 뒤집혔다. “아버지.”텁, 신문이 접히는 소리가 들렸다. 태호는 준호에게 시선 하나 주지 않고 안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란 피울 일 아니다.”“소란이요? 지금 소란이라고 하셨어요?”“쟤 좀 치워.”“여보!”숙경의 목소리가 뒤늦게 터졌지만 이미 늦었다. 닫혀있던 방문이 벌컥 열리며 동생 보람이마저 잔뜩 구겨진 얼굴을 내
Ler mais
제2화
- 똑, 똑. 현실로 정신을 되돌려 놓듯, 단정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준호는 손바닥으로 두 눈을 지그시 누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네.”집무실 문이 열리고, 아버지 신태호가 들어섰다.오늘따라 시선이 어깨로 갔다. 견장 위에 반짝이는 별 세 개. 괜히 눈살이 찌푸려졌다.“자꾸 말없이 오시면, 직원들이 불편해한다니까요.”“군에서나 그렇지 뭐. 여기 커피가 꽤 맛있어.”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를 따라 소파에 앉았다.테이블 위엔 헤이즐넛 향이 가득한 커피 두 잔이 놓였고, 태호가 커피향을 음미하며 말을 이었다.“사업은 잘 돼가고? 문제는 없고?”“예.”“다들 칭찬이 자자해. 시대에 딱 맞는 혁신적인 사업이라고.”“예.”짧은 대답들 사이, 커피 향만 짙어졌다.태호는 그 침묵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하다는 듯, 잠시 창밖을 보다가 말을 꺼냈다.“요즘 사람을 많이 만난다지.”“그럴 수밖에요.”“그래서. 원하는 건 얻었나.”준호는 잠시 말을 고르는 척 시간을 벌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버지의 의도를 가늠하고 있었다.뭘 묻고자 하는 거지?늘 말을 완곡하게 포장하는 사람. 핵심은 숨기고, 방향만 던지는 방식. 그게 새삼 소름 끼쳤다.설마 영이를 찾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건가?아니다. 그럴 리 없었다. 그건 회사 내부에서도 극소수만 아는 일이었고, TF팀 외에는 어떤 것도 일절 공유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이 닿을 구석은 애초부터 없어야 했다.“하실 말씀 있으시면, 그냥 하세요.” 태호는 아들의 표정을 확인하듯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이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유영. 영이 말이다.”“그 이름은 갑자기 왜요.”“넌 이제 그 아이를 찾아낼 능력을 갖췄으니까.”휘둘리면 안 된다. 이건 그냥 떠보는 거다.TF팀의 보안은 국내 최고다. 사람도, 프로그램도 완벽하게 설계된 팀이었다. 그 누구도 파고 들 구멍은 존재하지 않는단 말이다.그래서 자신 있게 되받아쳤다. “제가 영이를 찾고 있다고 생각
Ler mais
제3화
“누군지 물어봐도 되냐.” 넥사이드(Nexide)를 설립하고 딱 1년째 되던 날, 유일하게 믿는 친구이자 전무인 '강석현'이 처음으로 물었다. 솔직히 그동안 묻지 않았던 게 이상할 정도였다.전국 단위로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돌리며, 오직 한 사람만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까.“왜 이제서야 묻냐.”“중요한 사람인 건 충분히 알았고. 도대체 뭔데 이래.”잠시 숨을 고르던 준호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무겁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 죽겠는 사람.” “뭐...?”“넥사이드를 세운 유일한 이유.”그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신준호가 그런 말을 농담처럼 던질 성격이 아니라는걸, 석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준호는 대학 시절부터 유독 AI를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에 집착했다. 단순한 집착이 아니었다. 거의 광적이었다. 유행처럼 뜨고 지는 기술이 아니라 찾아내는 기술. 데이터를 축적하고, 패턴을 읽고, 사라진 흔적을 복원하는 알고리즘에만 관심을 보였다.그래서 그가 AI 회사를 설립했을 때, 대학 동기들은 물론 교수님들까지 누구 하나 놀라지 않았다.당연히, 마땅히 차릴 줄 알았다는 말들의 연속이었다. “넌 항상 사람보다 기록을 믿었지.”“기록은 거짓말을 안 하니까.”사람은 숨기고, 잊고, 부인하지만 데이터는 남는다. 지워졌다고 생각한 흔적조차 어딘가에는 반드시 잔존한다는걸, 준호는 남들보다 일찍 알아버렸다. 그래서 넥사이드는 미래를 예측하는 회사명을 가졌지만, 사실은 과거를 되찾는 명분에서부터 시작됐다.“찾으면? 찾고 나면 그다음은?”“사과할 거야.”“미친놈. 사과 하나 하겠다고 그 날고 기는 인재들로 팀을 꾸려?”“그러니까. 그 사과 하나가 참 어렵다.”서버실 너머 기계음이 일정한 리듬을 냈다. 멈추지 않는 계산, 쉼 없는 기록이 꼭 신준호 같았다. 어쩌면 진작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이 회사는 성공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끝내 하지 못한 말 하나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곁에 남고 싶
Ler mais
제4화
“뭐지?”“8... 88% 입니다!”놀라움이 담긴 말과 함께, 스크린 화면에는 단 하나의 사진이 떠올랐다.좌측 상단을 보아하니, 회사 소유의 드론이 어젯밤 11시경. 찰나에 찍은 사진 같았다. 가로등 하나에 의존한 여자는 무언가를 품 안에 안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표정은 없었고 품 안에 끌어안은 건 얇은 책인지 종이인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준호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스크린을 바라보는 눈빛. 그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88%.그 수치는 우연으로 넘길 수 있는 영역도 아니었지만, 화면 속의 여자는 분명, 분명히 영이 같았다.닮았다는 판단을 하기도 이전에, 온몸의 솜털이 먼저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유영. 영아...”넋을 잃은 듯한 준호의 모습에 팀원들은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석현이 대신해서 물었다.“위치는.”“수락산 고도 400미터 반경, 주택으로 보이는 건물 하나가 유일합니다.”모두의 시선이 지도에 고정됐다.초록으로 뒤덮인 화면, 산의 능선, 그 아래 찍힌 점 하나는 누가 봐도 고립된 좌표였다.“단독?”“예. 근데 이상합니다.”“뭐가.”“등기상 소유주가 5년 전에 이민을 간 걸로 나타납니다. 근데 전입, 전출 내역이 없습니다.”준호가 곧바로 재킷을 집어 들었다. “다들 퇴근해.”아무도 움직이지 못하던 순간, 석현이 유일하게 그의 앞을 막아섰다.“대표님, 제가 모시겠습니다.”“아니, 88%면 충분해.”나름 직원들 앞이라 신경 쓴 존댓말은 딱 거기까지였다.지금부터는 오직 친구로서 전할 대화만이 남아있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그리고 너, 지금 그 손으로 운전대를 잡겠다고?”이제야 내려다본 손은 마치 자신 것이 아닌 것처럼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그걸 자각한 순간 떨림은 더 심해졌다. 꼭 심장이 손끝으로 쏠린 것처럼 맥이 튀었다. “젠장.”“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잖아. 차 키 내놔.”“강석현.”“지금 네 행동이 음주 운전이랑 뭐가 달라? 그렇게 싫으면 기사라도 부르던
Ler mais
제5화
여전히 가슴팍에도 닿지도 않는 키, 연갈색의 눈동자와 길게 내려온 속눈썹, 밤인데도 도드라지는 새하얀 피부와 오똑한 콧날까지.AI도, 수치도 필요 없는 날것 그대로의 확신이었다.“영아.”“누구... 세요?”숨이 목구멍에서 걸려버렸다. 역시나 알아보지 못하는구나.십 년이란 세월은 준호의 체격을, 인상을, 표정을 참 많이도 바꿔놓았다. “나야. 신준호. 준호 오빠.”그 이름을 듣자마자 영이의 얼굴이 굳더니, 곧바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마치 보면 안 될 사람을 마주한 것처럼, 눈동자가 보란 듯이 흔들렸다.“유영! 영아!”“가, 가세요...”“무슨 소리야. 얼마나 찾았는데. 얼마나 걱정 했는....”순간,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던 영이가 검지 하나를 들어 자신의 코 끝에 갖다 댔다.조용히 하라는 너무도 익숙한, 기억 속에 여전히 또렷한 제스처였다.“누가 보고 있어요. 들어오시면 안 돼요.”그제야 보였다. 대문 위, 처마 아래. 불빛이 깜빡이는 카메라로 보이는 것들. 영이는 마치 문 밖의 상황과, 아니 준호와 멀어지려는 듯 조금 더 뒤로 물러섰다. 문틈은 여전히 반만 열려 있었다.“괜찮아. 잠깐만. 잠깐만 들어갈게.”“안 돼요! 여긴 말 해서도 안 되고, 나가서도 안 되는 집이에요.”말 해서도 안 되고, 나가서도 안 되는 집?세상에 그딴 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이가 내뱉는 말은 하나같이 이상함과 부자연스러움 투성이었다. 당연히 분노부터 차올랐지만,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누가 또 있어? 혼자 있는 게 아니야?”“아니요. 아니에요. 모르겠어요.... 그냥 제발, 제발 좀 가 주세요.”더는 참을 수 없었다. 누가 있든 말든 상관없었다.대문을 활짝 열고 정원으로 발을 들이려 했다. 그 순간 영이가 다급히 달려와, 그 작은 몸뚱어리로 준호를 밀쳐냈다. “안 돼요...!”그러고는 준호의 옷깃을 붙잡고, 가로등도 없는 숲속으로 향하기 시작했다.낑낑거리며 걷는 모습, 숨이 차올라 어깨가 들썩
Ler mais
제6화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중, 어둑한 숲길을 따라 석현이 다가왔다. 발걸음은 빨랐고, 목소리엔 걱정이 한가득 배어 있었다.“벌써 만났어? 영이 씨는?”“석현아.”“뭔데 또!”준호가 고개를 들어 집 쪽을 바라봤다. “여기 있는 카메라, 전부 해킹 좀 해야겠다.”“지금?”“어. 일단 이 집이 먼저 눈을 잃어야 해. 그게 순서야.”석현은 목 끝까지 올라오는 욕설을 삼켰다.당연히 그건 준호를 향한 게 아니었다. 사람 하나를 산속에 가둬 둔, 이름 모를 누군가를 향한 것이었다.“딱 봐도 여섯 대는 될 것 같은데.”“사각지대까지 포함하면 열.”“내부는?”“아직 몰라.”한숨이 흘러나와 새하얀 김으로 변했다.그렇게 힘들게 찾아냈는데, 딱 봐도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누지 못한 모양새였다. “집주인은 집주인이 아니고, 거주자도 거주자가 아니고.”“서두르자.”호출을 받은 TF팀 팀원 몇몇이 각자의 노트북을 열고 하나둘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준호는 차 안에서 실시간으로 지시를 내렸고, 목소리는 흔들림 하나 없이 단호했다. 차 안이 순식간에 다른 공간으로 돌변했다.“방금 전 집 밖으로 나왔던 기록, 그거부터 전부 백업해.”“예. 확인했습니다. 백업 완료됐습니다.”“내부 화면 띄워 봐.”떠오른 화면엔 텅 빈 거실과 서재로 보이는 공간, 그리고 침실에 멍하니 앉아 있는 영이의 모습이 보였다.아무래도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곳에 카메라가 있는 모양이었다.“최근 6개월 내 방문자 리스트 확보해. 출입 시간, 체류 패턴까지 싹 다.”“알겠습니다.”이내 로그가 지워지고, 흔적은 재배열됐다.방금 전의 재회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끔하고 고요한 화면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다음 지시까지 화면 좀 유지해 줘.”“예.”화면을 바라보던 눈길이 석현에게로 향했다.“석현아.”“다녀와. 나는 상관없어. 시간도 충분히 벌어줄게.”오늘따라 석현의 말이 더 든든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차에서 내리자, 숲의 공기가 전보다 더 차가웠다
Ler mais
제7화
묶는 걸 좋아한다니? 말 같지도 않은 말에 준호의 눈빛이 돌변했다. 그는 이성을 잃어버린듯 방 안을 헤집기 시작했고, 붙박이장 문을 여는 순간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버렸다.안에는 수많은 성인 용품들이 즐비했고, 종류와 수가 그야말로 상상 이상이었다.영이는 입양된 게 아니었다. 누군가에 의해 이 곳에 가둬지고, 끔찍한 시간을 견뎌가며 죽지 못해 살아온 것이다.그리고, 준호는 그 누군가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오빠, 준호 오빠....!”욕설이 목구멍을 막아버렸다. 차마 내뱉지 못한 채 후들거리는 다리에 애써 힘을 실었다. “어차피 곧 알게 돼. 이 집에 널 데려다 놓은 게, 카메라를 설치한 게 누구인지. 그러니까 똑바로 얘기해. 내가 지금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 맞지.”“그게 아니라요....”“맞잖아. 내 아버지, 신태호 중장.”그때였다. 정적을 가르는 벨소리가 너무도 가까이서 울렸다. 황급히 손목을 들어 올린 영이는 멍하니 화면만을 바라보았고, 수갑처럼 채워진 스마트워치의 작은 화면에는 ‘관리자’라는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받아.”“....”“받으라고. 입 다물고 있을 테니까.”통화 버튼이 눌리는 순간,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차분하고 건조한 톤이었다.“아가씨, 심장 박동이 또 빠릅니다. 정말 아무 일 없는 거 맞습니까?”“네…….”남자가 묵직한 한숨을 길게 늘어뜨렸다.“하, 아까는 벌레 때문이었고. 이번에는 또 뭡니까?”“아, 아직 진정이 안 됐나 봐요... 죄송합니다.”준호가 이를 악물었다.이런 미친 새끼들, 적당히를 모르고 가지가지 하는구나. CCTV도 기가 차는데, 손목에 스마트워치까지 채워두고 심박수를 체크한다고? 편의를 위해 만든 기기를 고작 이딴 한심한 방식으로 쓰고 있다고?게다가 관리자? 한 마디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그때, 워치에서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오늘은 탄산수를 일찍 드셔야겠어요.”“네...”탄산수? 탄산수는 또 무슨 소리야?통화가 끊기지 않은 탓에, 준호
Ler mais
제8화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던 중, 침대 옆에 높인 협탁. 그 서랍을 무심코 열어보았다. 안에는 투명한 아크릴 케이스에 담긴 핸드폰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충전기는 연결되어 있었고, 화면은 어두웠다. 문제는 상자에 보란 듯이 채워진 자물쇠였다. 외부와의 소통을 아예 선택지에서 지워버린 방식임이 분명했다.“아....”그래서 스마트워치를 채운 거였구나. 그저 수신되는 전화만 받게 하려고.전화가 오면 지시를 듣고, 그 외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사람 하나를 세상에서 완벽하게 고립시킨 거였다.준호는 다시 한번 영이의 숨결을 확인했다.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는 모습. 이 말 같지도 않은 평온이 강요의 결과라는 사실이 가슴을 꽉 옥죄었다. 마지막으로 이불을 정리해 준 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방문을 닫았다. 냉장고에서 수상한 페트병 하나를 꺼내 손에 쥐고는 화장실에 들러 칫솔도 챙겼다.그렇게 증거들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일단은 돌아가야 했다. 마음이 급해도 파악이 우선이니까.누가, 언제부터, 얼마나 깊게 관여해 왔는지. 모든 걸 알아내야 제대로 된 벌을 줄 수 있을 테니까. “기다려 영아, 데리러 올게.”차에 올라타자, 운전석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석현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아주 잠깐이었다.“석현아. 아무래도 우리 아버지, 사람이 아닌 것 같다.”“속단하긴 일러. 입양 갔다며. 그 입양했다는 사람들부터 다시...”“아직도 모르겠어? 아무리 뒤져도 그 당시 열네 살 여자아이에 대한 기록은 없었어.”맞다. 그건 이미 두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잔혹한 진실이다.영이가 사라졌던 그 해에는, 서울을 떠나 전국 어디에도 관련된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 석현의 시선이 준호의 손을 향했다. 손에는 투명한 페트병과 새하얀 칫솔이 들려 있었다. “그건 다 뭐야?”“페트병은 성분 분석. 그리고 칫솔은…… 유전자 검사.”석현은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대신, 시동이 걸리고 차가 움직였다.
Ler mais
제9화
몇 시간 전, 하늘이 유독 흐렸다.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쏟아질 것처럼 공기가 낮게 가라앉은 아침이었다.번듯한 제복을 차려입은 ‘신태호’의 어깨엔 오늘도 반짝이는 은색 별 하나가 박혀 있었다. 1성 장군(將軍), 준장을 의미하는 별.그의 아내 ‘이숙경’이 견장 위를 다정스레 어루만졌다. 손길엔 오래된 습관 같은 온도가 섞여 있었다.“여보, 오늘은 퇴근하고 바로 오실 거죠?”“응.”숙경은 더 묻지 않겠다는 듯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남편을 배웅했다. 그건, 하루도 빼놓지 않는 익숙한 루틴이었다. 태호가 익숙한 듯 현관문을 열고 정원을 가로질렀다.잔디는 밤새 내린 이슬로 젖어 있었고, 군화가 지날 때마다 젖은 소리가 났다.그렇게 대문을 나설 무렵, 군화 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아래에는 담요 하나가 마치 뭉텅이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미간에 주름이 잡힐 만큼 낡아빠진 담요였다. 순간, 담요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숨, 분명히 살아있다는 확실한 증거. 그는 즉시 주변부터 둘러보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다행히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고 운전병도 오늘따라 늦는 모양새였다.군에서 수도 없이 위기 상황을 겪었지만, 이상하게 이 순간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떨리는 손으로 담요를 걷어냈다.아래에는 아이가 있었다. 태어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보이는 아이. 상황과 다르게 아이의 얼굴은 고요하기만 했다. 울지도, 몸을 뒤척이지도 않았다. 마치 이곳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라는 듯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대, 대체 누가...”말이 끝나기도 전, 머릿속이 빠르게 과거를 훑었다.지워버렸다고 믿었던 수많은 얼굴들. 이름도, 관계도 흐릿한 하룻밤의 파트너로 치부했던 여자들. 그때마다 책임을 남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웬만하면 콘돔을 착용했고, 질내 사정은 피임 시술을 받은 계집들한테만 가끔씩 해왔었는데.문제가 될 일은 없다고 믿어 왔었다. 설마 내 판단이 틀렸던 건가? 정말, 그들 중 하나가 이딴 짓을 벌인 건가? 경찰, 병원
Ler mais
제10화
지하실이라는 공간은 소리가 없다기보단 억눌린 공간 같았다.벽과 바닥에 스며든 습기, 낮은 천장,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 가슴이 먼저 답답해지는 공기.먼지 쌓인 테이블 위, 아이를 조심스레 내려놓자 담요 사이로 아이의 얼굴이 드러났다.작았다. 모든 게 너무 작고 여려서 이런 공간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다시 한번 자신의 결정을 되짚었다. 6개월, 그 숫자를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뇌었다.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하지만 이 모든 일을 정리하기에 가장 안전한 기간.그때, 아이의 눈꺼풀이 열렸다. 형광등 불빛에 잠깐 눈을 찡그렸지만 울지 않았다. 대신 시선이 천천히 움직여 태호를 향했다.그 시선은 어수선하게 흔들리지도, 허공을 더듬지도 않고 오직 신태호를 정확히 잡아냈다.태호는 순간 이유 모를 불쾌감을 느꼈다.아무것도 모르는 이 조그만 아이가, 마치 어른보다 더 적응이 빠른 것처럼, 혹은 상황을 파악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아이의 시선을 피하듯, 몸을 뒤로 빼며 고개를 돌렸다. 군복 차림의 거대한 몸과,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생명 사이 묘한 간극이 생겼다. “우리 정말... 이래도 되는 거예요? 네?”“갔다 올게. 중요한 회의 있어.”“여, 여보...!”남겨진 숙경은 차마 아이를 안지 못했다. 그저 가만히 바라보았다.아무리 봐도 남편과는 닮은 구석이 없었다. 그 하나의 이유를 빌미로, 결코 남편의 아이일 리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를 믿는다. 믿고 싶었다.그냥 지금은 뭐 하나든 조심스러운 시기니까, 하나라도 흠 잡히기 싫으니까. 그래서 이런 결정을 내린 거겠지. 그 판단이 맞겠지. “믿자... 믿어야 하는 거잖아.”손부터 빠르게 움직였다. 대충 먼지를 치워 침대를 대신할 공간을 만들어주고, 쿠션과 베개로 사방을 막았다. 마트에 전화를 걸어 분유와 기저귀도 주문했다. 찬장 구석에 보관하던 젖병까지 오랜만에 꺼내들었다. 움직이는 내내 이게 맞는 건가, 이게 정말 현실인가. 아무것도
Ler mais
Explore e leia bons romances gratuitamente
Acesso gratuito a um vasto número de bons romances no app GoodNovel. Baixe os livros que você gosta e leia em qualquer lugar e a qualquer hora.
Leia livros gratuitamente no app
ESCANEIE O CÓDIGO PARA LER NO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