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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그는 빠른 속도로 S시에서 가장 유명한 백화점 앞에 주차했다.

“수현 씨, 들어가서 쇼핑하세요. 끝나가면 미리 저한테 전화주세요. 바로 모시러 오겠습니다.”

윤찬은 회사에 볼일이 있어 그녀와 인사를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

차수현도 그에게인사를 하며 머리를 끄덕이곤 홀로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서니 값비싸고 화려한 물건들이 한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차수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차한명에게 쫓겨난 후로는 그녀는 이런 곳에 와본 적이 없었다. 온은서에게 이끌려 딱 한 번 와본 듯싶었다.

온은서를 떠올리자 그녀는 살짝 넋 놓고 말았다. 기억 속의 그 방향대로 걸음을 옮기자 그때 한번 입어봤던 옷이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보란 듯이 걸려 있었다.

그때 온은서는 그녀에게 나중에 프러포즈하는 날에 꼭 이 원피스를 사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만들어주겠다고 했었다.

차수현은 그리움이 잔뜩 묻어난 눈빛으로 안으로 걸어가 그 원피스를 만져보려 했는데 이때 갑자기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머, 왜 이래요 정말? 여기 옷들 당신 따위가 함부로 만질 수 있는 옷이라고 생각해요? 흠이라도 나면 당신이 배상할 수 있겠어요?”

차수현이 고개를 돌리자 종업원이 짜증 섞인 얼굴로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차수현은 이 상황이 살짝 우스웠다. 그녀는 이렇게 비싼 원피스를 살 생각이 없었다. 종업원이 친절하게 말하면 그냥 보고만 가려고 했는데 아예 그녀를 거지 취급까지 하다니!

이 원피스를 조금이라도 더럽힐까 봐 질색하는 모습에 차수현도 더는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옷을 걸어놓은 이유가 손님들을 입어보라고 그런 거 아닌가요?”

“그건 살 능력이 됐을 때 그런거죠.”

종업원은 저렴한 그녀의 옷차림을 보며 하찮듯이 말했다.

차수현은 이번에 진짜 화가 나서 실소를 터트렸다. 그녀가 종업원의 태도를 지적하려 할 때 비난 조의 여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야? 누가 이런 곳에서 소란을 피워? 창피한 줄도 모르게!”

차수현이 머리를 돌리자 입구에 두 남녀가 걸어들어왔다.

여자는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하여 귀티가 흘러 넘쳤고 남자는 건장한 체구에 훤칠한 외모를 지녔다.

외형적으로만 봐서는 두 사람 다 수려해 보였지만 차수현에겐 너무나도 싫은 존재였다.

그 여자는 바로 차수현의 배다른 여동생 차예진의 단짝 안수지였다. 전에 안수지와 차수현은 같은 대학을 다녔었는데 학교에 다닐 때도 안수지는 항상 트집을 잡았고 차수현과 원수 지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편 그 옆의 남자는 이주원이고 마찬가지로 차수현과 같은 대학 출신이다. 그는 마케팅 학과의 얼짱이고 한때 두 사람은 함께 한 프로젝트를 책임졌었다. 이주원은 일찍 차수현에게 호감 표시를 했는데 그때 마침 엄마가 몸이 편찮아 연애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놓쳤다.

이주원도 이런 곳에서 대학교 다닐때 좋아하던 여자를 만날 줄은 상상치 못했다. 그는 차수현을 바라보며 멍하니 넋을 놓고 말았다.

이를 본 안수지가 언짢은 듯 기침을 해대며 옆에 있는 종업원에게 말했다.

“이 옷 좀 입어보려고 하는데 사지도 못할 여기 거추장스러운 인간을 치워주실래요?”

말을 마친 안수지는 손을 뻗어 좀 전에 차수현이 만지려던 원피스를 가져오려 했다.

이에 차수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온은수가 줬던 블랙카드를 꺼내 두 사람 앞에 흔들어 보였다.

“이젠 이 옷 입어볼 자격 있는 거죠?”

블랙카드를 본 순간 그녀를 내쫓으려던 종업원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차수현의 카드를 건네받고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감탄을 연발했다.

“진짜였어…….”

한도 제한이 없는 블랙카드는 S시 전체에 몇 장 없어 말 그대로 부의 상징이었다.

종업원은 여전히 구시렁댔지만 감히 함부로 대하진 못하고 고분고분 치마를 가져와 두 손으로 차수현에게 건넸다.

차수현은 옷을 가지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안수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돼버렸다. 블랙카드를 본 순간 그녀의 눈가에 시기와 질투가 한 가득 어렸다.

이주원은 체면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라 두 여자가 또다시 말다툼을 벌일까 봐 얼른 안수지를 끌고 매장에서 나가려 했다.

안수지는 그의 행동에 짜증이 확 밀려와 가차 없이 손을 뿌리쳤다.

“왜? 옛정이라도 되살아난 거야? 쟤가 무슨 행실을 하고 다니는지 딴 사람은 몰라도 나는 다 알아. 차씨 집안에서 진작 쫓겨났는데 블랙카드나 들고 다니니 분명 부잣집 영감탱이의 내연녀나 하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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