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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프레셔
언더 프레셔
작가: A. C. Meyer

1화

제 1 장

맨디가 일어났을 때는 날이 아직 어두웠다. 여전히 잠에서 덜 깬 채로 그녀가 손으로 눈을 비비며 침대 앞의 열려있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얇은 보일 커튼이 아침 산들바람에 흔들리며 어렴풋이 하늘을 보여주었고, 색채가 변하며 서서히 맑아지고 있었다. 주황색과 노란색의 서광들이 밤의 푸른빛과 서로 혼합되며, 구름들이 거대한 르네상스의 회화처럼 보였다. 조금씩 자연이 그 마법을 부렸고, 빛나는 태양이 떠오르며 소녀의 심장을 뛰게 했다. 맨디는 언제나 내성적인 소녀였다. 그녀는 자신이 한 작은 결정들에서부터 세상에서 자신의 역할까지, 언제나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날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맨디는 간신히 하루를 시작했음에도 짙은 갈색 머리카락 한 타래를 손가락으로 감으면서 시간의 개념이란 얼마나 상대적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맨디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어린이였을 적에 얼마나 시간이 천천히 흐르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지, 특히 가장 친한 친구와 즐겁게 강가에서 뛰놀며 공놀이하고 나무를 오르던 방학 동안에는 얼마나 그해 여름이 영원히 지속하기를 바랐었는지 기억했다.

이제 유년기의 시절은 끝이 났고, 미래가 다가온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그녀를 에워싸며 삶이 제공하는 모든 것들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게 했다. 맨디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침대 위에서 몸을 돌리며 시계에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이른 시각이었지만, 오늘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굉장한 모험에 대해 생각하자 흥분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그녀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제 몇 시간 후면, 그녀는 어른의 삶에 한 걸음 내딛게 될 것이다. 오늘은 가장 친한 친구 메이와 함께 대학교로 떠나는 날이다. 맨디가 평생 동안 살아온 보스턴의 북부 해안의 작은 마을 글로스터가 아닌 다른 도시에서 혼자 살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올해 7월, 맨디는 글로스터 고등학교를 마치고 졸업식을 하기도 전에 대학교 발레단의 일원이 되어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국내의 몇 군데 대학교들에 지원했었지만, 집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브라운 대학교로부터 입학 허가서와 환영 편지를 받았을 때, 그곳에 가는 것이 그녀의 두 가지 꿈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도록 해줄 거라는 것을 알았다. 바로 글로스터를 떠나는 것과 발레단에 들어가는 것. 글로스터에서 사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그 반대였지만, 이곳에서는 프로 발레리나가 되고 싶은 그녀의 큰 꿈을 이룰 기회를 얻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맨디의 어머니인 썸머스 부인은 그녀의 훌륭한 지원자였다. 맨디의 아버지는 열다섯 살 어린 비서와 살기 위해 가족을 떠난 이후로 한 번도 돌아온 적이 없었고, 어머니 홀로 맨디를 돌보아 주었다. 썸머스 부인은 딸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지원해주었다.

남편이 떠난 후에 썸머스 부인은 이벤트 회사에서 첫 직장을 얻어 보조직원으로 일을 시작했고, 직장에 헌신한 결과, 행사 주최자로 빠르게 승진을 했다. 썸머스 부인은 어느 것 하나도 절대 놓치는 법이 없었고, 그런 어머니의 영향으로 맨디는 목표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을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썸머스 부인과 맨디는 서로를 아주 많이 사랑했지만, 두 사람은 아주 달랐다. 직장인으로서 요구되는 부분이기도 했을 것이고, 또 한 편으로는 남편의 부재에 대한 보상심리로 썸머스 부인은 겉모습에 집착하는 여성이 되었다. 썸머스 부인에게서 그리고 집에서는 언제나 윤이 났다. 그녀는 머리가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는 절대로 밖을 나가지 않았고, 청바지와 티셔츠를 즐겨 입는 전형적인 십 대 소녀인 맨디와 정반대였다.

이러한 부딪힘이 계속되면서, 맨디는 집이 몹시 그리워질 거란 걸 알면서도 떨어져 지내는 것이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을 거라고 확신했다. 맨디는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갈 수 있을 것이고, 썸머스 부인은 맨디 때문에 회피해왔던 로맨틱한 연애를 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맨디가 한숨을 쉬며 침실 탁자 위의 책을 집어 들고서, 한 탤런트와 그의 매니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녀는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것을 아주 좋아했는데, 늘 책 속에서 읽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어떨지 상상했다.

‘우선 난 수줍음을 없애야 해, 모든 것에 쑥스러워하니까 말이야.’

맨디가 웃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입가의 미소와 함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서 책을 덮은 후에 침대 위에서 몸을 돌려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드디어!

‘이제 시간이 되었어.’

맨디가 생각하며 더욱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곧바로 샤워실로 향했고, 오랫동안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았다. 맨디의 머리카락이 마르는 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었고, 급한 성미를 참지 못하고서 아직 젖어있는 머리를 묶는다면 저녁에는 후회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녀는 전날 밤에 목욕을 미리 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맨디가 목욕을 마친 후에 포근한 수건에 몸을 감싼 채 방으로 돌아와서 떠나는 날 입기 위해 따로 꺼내 두었던 옷을 입었다. 무릎 부분이 찢어진 청바지와 낡은 너바나 티셔츠가 파란색 컨버스 운동화와 완벽하게 어울렸다. 맨디는 거울을 들여다보고는, 꾸밈없는 모습에 만족하며 배낭을 들고 아래층 부엌을 향해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냉장고의 문을 여는 순간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내 딸 어맨다야. 그런 형편없는 옷차림으로 어디 가는 거니?”

썸머스 부인이 물으며 위아래로 훑어보자, 맨디는 눈을 굴리지 않도록 자신을 다잡아야 했다.

“오늘은 제가 떠나는 날이잖아요, 엄마. 편한 옷차림이 가장 좋을 것 같아서요.”

맨디의 어머니는 딸이 집을 떠나는 날임을 기억해내고는 불편해하던 표정에서 슬픈 얼굴로 바뀌었다.

“왜 그러세요?”

“나의 작은 소녀가 성장하고 있구나.”

썸머스 부인이 맨디를 품 안으로 당겨 안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잠시 포옹을 하고는 서로를 놓아주었고, 함께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썸머스 부인이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물었고, 맨디는 손목시계를 다시 한번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프로비던스로 떠나려면 메이가 벌써 도착했어야 할 시간인데.”

그녀의 말에 썸머스 부인이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밖에서 자동차의 경적이 울리자 두 사람은 집을 나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맨디가 가방을 드는 동안 썸머스 부인이 그녀에게 연달아 질문하며 두고 가는 물건은 없는지 확인했다.

“도착하면 꼭 전화하렴.”

“알겠어요, 꼭 할게요.”

맨디가 현관문을 열며 대답했다. 썸머스 부인과 맨디가 함께 집 밖을 나서면서 서로를 바라보았고,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강인했던 썸머스 부인은 처음으로 약한 모습을 하며 눈물을 보였다.

“아, 내 딸아….”

썸머스 부인이 딸을 당겨 안으며 속삭였다.

“몸조심하고. 항상 집에 전화하는 거 잊지 마. 나는 네가 너무나 보고 싶을 거야.”

“저도요, 엄마.”

둘은 서로를 더 꼭 껴안았다. 그들은 매우 달랐지만, 서로를 굉장히 사랑했기에 맨디가 이사를 나가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힘든 일이었다.

두 사람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고, 맨디는 집을 떠나는 것이 심장이 답답한 느낌을 들게 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들은 각자의 가방을 들고서, 이미 짐으로 가득 차 있는 트렁크가 열린 메이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

“운전 조심하고, 얘들아.”

썸머스 부인이 출발하려고 차에 올라타는 두 소녀를 보면서 말했다. 그녀는 조수석의 창문으로 몸을 기울여서 두 소녀를 한 번 더 끌어안았다.

“물론이죠.”

두 소녀가 동시에 대답하자 썸머스 부인이 웃으며 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갑자기 썸머스 부인의 표정이 매우 진지하게 변했다.

“어맨다, 그곳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 전화하겠다고 약속해. 무슨 일이든 내가 네 곁에서 너를 지지해 줄 거라는 거 잊지 말고.”

“약속할게요, 엄마.”

맨디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썸머스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히 계세요!”

메이가 외치며 차의 시동을 걸었고, 그제야 썸머스 부인은 차에서 물러나며 그들을 배웅해 주었다. 맨디는 백미러를 통해서 들뜬 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친구야, 기분은 어때?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됐어?”

메이가 친구의 집 차고를 나서며 환한 미소를 띠며 물었다.

“당연하지!”

“친구야, 나 너무 흥분돼. 분명히 우리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시기가 될 거야.” 메이가 도로를 향해서 운전하며 말하자, 맨디가 웃으며 음악의 볼륨을 높였다.

“나도. 이번 여행이 우리의 인생을 완전히 바꿀 거란 예감이 들어.”

그들은 함께 차 안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호주 밴드인 포유투의 팝 발라드곡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맨디의 말이 옳았다. 이번 모험은 정말로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얼마나 정확할지 아직 그녀는 알지 못했다.

좋은 쪽으로 그리고 좋지 않은 쪽으로도.

제 2 장

몇 주 후….

시계가 마침내 중요한 날이 왔음을 경고하며 맨디의 잠을 깨웠을 때는 아침 여섯 시 반이었다. 그녀와 메이는 운 좋게 세를 얻은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다. 아파트에는 침실 두 개와 거실, 부엌 그리고 화장실이 있었다. 학생 기숙사에서 지내는 것보다 더 비싼 집세를 부담해야 했지만, 두 소녀의 부모님들은 기숙사 방에서 다른 사람과 같이 지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조금 더 편의를 제공해주었다. 처음에는 둘이 함께 사는 것이 조금 유난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어찌 됐든 둘은 평생의 친구였고, 거의 친자매와도 같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맨디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들었던 생각이 옳았다. 두 소녀는 친구였지만 완전히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었고, 취향과 습관 그리고 많은 상황 속에서 정반대였다. 메이가 방에서 매우 좋아하는 향을 피우고 향냄새를 맡을 때면, 맨디는 그것이 여지없이 미칠 것 같았다.

그들은 학기가 시작하기까지 남은 기간을 기회로 삼아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해나가기로 했다. 두 사람은 작은 마을에서 글로스터에서 태어난 이후로 단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었기에, 대학교 캠퍼스의 장엄함과 국내의 다양한 도시에서 온 사람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메이는 비교적 곤란을 덜 겪고 있었다. 그녀의 성격은 친절하고 외향적이었기 때문에, 수월하게 친구를 만들고 모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맨디는 수줍음뿐만 아니라, 그녀가 자라온 과잉 보호적인 환경을 극복해야 했다. 부모님의 이혼 후에 그녀의 삶은 어떻게 해서든지 아버지의 부재를 만회하고자 했던 어머니로 인해 전적으로 통제되어왔다. 맨디는 파티에 참석한다거나 데이트를 하거나 많은 친구를 사귀는 것에 익숙지 않았다. 게다가 발레는 그녀에게 규칙적인 생활을 영위해나가도록 요구했고, 이러한 부분을 포함해서 대학교의 모든 활동이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맨디가 여전히 졸린 상태로, 천천히 일어나서 욕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으며, 메이도 여유롭게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지체하지 않으려 유의했다. 수건으로 몸을 감싼 채 욕실을 나와 침실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뒤에서 메이의 방문이 쾅 닫히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메이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맨디는 침실의 옷장 문을 열고 어두운색의 청바지를 꺼내면서, 어머니가 계셨다면 분명히 뭐라고 하셨을지 생각했다.

‘어맨다, 학교 첫날인데 청바지라니?’

맨디는 어떻게 모녀가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는지 의아하게 여기며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곧이어 옷장 안에서 티셔츠를 찾았다. 어머니와 그녀 사이에서 유일한 공통점은 발레였다. 썸머스 부인도 맨디처럼 발레에 관해서는 열정적이었고, 딸이 다섯 살이 되자마자 클래식 발레 교실에 등록시켰다. 맨디는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플리에 를 했던 날 이래로 줄곧, 비록 프로 발레리나의 전형적인 완벽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진짜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통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맨디는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된 소녀라기엔 키가 작았는데, 육체의 곡선들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날씬해야 하는 발레리나로서 작은 키는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가장 성공한 발레리나들이 가진 고전미가 부족했다. 맨디의 짙은 갈색의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은 교실 옆자리에 앉은 천상의 금발 머리 소녀들 사이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고, 그녀의 외모는 예쁘다기보다는 이국적이었는데, 거의 회색빛에 가까운 어두운 녹색빛의 눈동자와 그녀의 입술은 아름답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너무나 훌륭했다.

외모와는 불완전한 조합을 이루는 그녀의 성격은 극도로 엉성하고 어설펐다. 발을 헛디디거나 무언가를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간신히 두 걸음 정도를 걸을 수 있는 그녀가 어떻게 점프와 피루엣들을 해낼 수 있는지는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일이었다. 맨디가 발레를 굉장히 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나무랄 데 없는 기교였는데, 그녀가 가진 다른 불리한 성격들을 극복할 만한 것이었다.

맨디는 이미 자신의 어설픈 행동으로 인해서 지금까지 수많은 당혹감을 느껴왔었다. 그녀는 쉬는 시간 학교에서도 인상 깊게 넘어진 적이 많았다. 그렇기에 맨디가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언제나 도서관이었다. 그녀는 대부분의 여가 책으로 가득한 선반들 사이에서 상상에 잠겨 보냈다. 특히 제인 오스틴 시대의 소설책 페이지들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도피처였다. 이번에도 분명히 다르지 않을 것이다. 벌써 그녀는 새로운 문학 도피처가 있는 정확한 위치를 발견해 두었다.

그때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메이가 준비를 다 마쳤다고 말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들어와.”

맨디가 회색의 펄 잼 밴드 티셔츠를 꺼내어 입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오래된 옷이었지만, 그녀에게는 행운의 셔츠였다.

“이크! 그런 누더기를 걸치고 가려고?”

방안으로 들어오던 메이가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녹색 원피스를 입고 적갈색의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포니테일로 묶은 메이는 아름다웠다.

“이건 누더기가 아니야! 내 펄잼 셔츠라고!”

맨디가 항의해 보았지만, 친구는 지겹다는 듯한 표정으로 참견을 계속했다.

“마루 걸레로 쓸 만한 옷이잖아. 진지하게 말인데, 맨디, 모범생처럼 입고서 어떻게 남자친구를 사귀겠다는 거야?”

메이의 물음에 그녀가 터무니없다는 듯 웃으며 파란색 컨버스 운동화를 신었다.

“그런데 내가 남자친구를 원한다고 누가 그래? 너 제정신이니?”

맨디가 대꾸했지만, 메이가 그녀의 어깨를 붙들고 의자에 밀어 앉히는 것을 제때 피하지는 못했다.

“네가 이런 이상한 옷을 입고 나간다고 해도, 너의 머리와 화장은 내가 맡을게.”

더는 항의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는 맨디는 친구가 머리를 드라이하고 연한 화장을 해주도록 허락했다. 준비를 모두 마친 메이는, 친구가 거울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와 매력적인 표정을 지어볼 수 있도록 그녀의 의자를 회전시켰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맨디는 훨씬 나아졌다는 친구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마치 초콜릿색 커튼이 등 뒤로 펼쳐진 듯이 풀어져 있었고, 드라이로 풍성함을 살린 눈썹까지 내려오는 짧은 앞머리는 그녀를 더 어려 보이게 했다. 메이가 어떤 마법을 부린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맨디의 눈동자는 높이 위치한 두 개의 커다란 구슬처럼 보였다.

“드디어! 네가 어설픈 모범생에서 도발적인 괴짜 가 되었어!”

메이가 웃으며 말했고, 맨디는 거울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물론 도발적이라는 말을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은 분명했다. 그녀의 얼굴이 더는 칙칙해 보이지 않았고, 머리카락에서는 윤기가 났다.

맨디의 시선이 자신의 몸으로 내려갔고, 작년까지만 해도 작았던 가슴이 이제는 티셔츠에 꽉 맞아서 두드러져 보였다. 그들은 대학교 첫 학기가 시작되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캠퍼스에서 아침 식사를 하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들은 평소 수업이 시작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복도는 아직 텅 비어있었다. 그들은 메이가 많은 시간을 베이비 시터로 일하며 저축했던 돈과 부모님께 도움을 받아서 구매한 낡은 2009년식 스바루 차량에 올라탔고, 맨디는 오디오의 전원을 켰다.

“친구야, 준비됐어? 나는 모두를 다시 만나는 게 너무 기대돼….”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고향 친구들도 브라운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그중에 그들의 가장 친한 친구들도 있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 살 때부터 글로스터에서 자란 요시와 굉장히 똑똑하면서 조용한 성격의 션이었다.

넷은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랐는데,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 적이 언제인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학교에 와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은 다 함께 흩어지지 않으려고 같은 대학교들에 입학 신청서를 보냈었다. 모두가 브라운 대학교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았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에 선택지는 브라운 대학교가 된 것이었다.

소녀들이 먼저 프로비던스로 이사를 온 후에 적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요시와 션이 근교에 있는 기숙사로 이사를 왔고, 학기가 시작하기 전 기간 동안 맨디와 메이가 두 사람에게 대학교 주변을 안내해주었었다. 두 소녀는 오늘 수업을 들을 강의실 건물 옆의 카페테리아에 가기로 했다.

메이는 짧은 줄에 서서 기다리다가 차례가 되자 토피 마키아토 두 잔을 주문했고, 커피가 나온 후에 구석에 있는 테이블로 가지고 갔다. 맨디가 기억하지 못하는 한 고향 친구가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메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늘의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중요항목들이 적힌 일기장을 꺼내었다. 발끝으로 서 있는 발레리나의 삽화가 그려진 두꺼운 표지로 된 이 노트를 맨디는 어디든 가지고 다녔다. 그 안에는 약속들과 시간표, 발레 수업 계획 그리고 목록들, 그러니까 아주 많은 목록들이 적혀져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후에 메이가 휴대전화를 꺼내어 이메일을 확인했고, 맨디가 일회용 컵을 휴지통에 버리려고 일어서는 순간, 어떤 움직임이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

입구에서 한 무리의 소녀들이 카페테리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는데, 맨디 뿐만 아니라 식당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쏠리고 있었다. 가슴 부분에 K라는 글씨와 삼각형이 수 놓인, 몸에 딱 붙는 흰색 재킷을 입은 여덟 명의 예쁜 금발 소녀들이 큰 소리로 웃으면서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소녀들은 카페테리아 계산대 옆의 세 명의 농구 팀원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멈추었다. 맨디가 다시 테이블로 돌아가는 길에 그쪽에서 계속해서 웃음소리와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이, 저 애들 누군지 알아?”

맨디가 자리에 앉으면서 친구에게 물었다.

“쟤네 카파 델타잖아.”

메이의 대답에도 그녀는 여전히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게 뭐야? 무슨 그룹 이름인가?”

맨디가 얼굴을 찡그리며 묻자, 메이는 친구의 그런 동떨어진 행동 방식이 이미 익숙하다는 듯이 웃었다.

“카파 델타라는 여학생 사교 클럽이야. 재킷에 수 놓인 문양 봤어?”

메이의 질문에 맨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타투를 한 저 남자에게 거의 올라타다시피 하는 세 명의 여자들은 치어리더들이기도 하고.”

“음….”

맨디가 친구가 가리키는 곳을 보자, 대학교 농구팀의 유니폼인 민소매 셔츠를 입은 덩치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의 두 팔은 문신들로 완전히 뒤덮고 있었고, 여학생들이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비록 멀리서였지만, 맨디는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절대 친구로 지낼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맨디처럼 평범한 소녀와 비교했을 때 그들은 너무나 활기가 넘쳤다. 비록 맨디가 대학교 생활을 간신히 따라가고 있기는 했지만, 이곳에 대해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학생들이 농구와 프로비던스의 여학생 남학생 사교 클럽들을 중시한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처음 대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받았던 신입생 환영 안내서에서 읽은 것에 의하면, 브라운 대학교의 농구팀은 미국 프로팀들에 겨룰만한 우수한 실력을 선보이는 학교 스포츠계의 자랑이었다.

“맨디, 우리 이제 갈까?”

메이의 질문이 생각에 잠겨 있던 맨디를 일깨웠다. 그녀는 휴대전화 화면에 나온 시간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그들은 강의실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에 차를 주차해야 했다. 둘은 차를 타고 캠퍼스를 돌면서, 두 과목이나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다는 사실에 들뜬 채 수업 시간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건물 입구에서 가까운 주차장을 찾은 후, 메이가 조심스럽게 차를 주차했다. 그녀의 차는 오래되었지만 아주 잘 관리되어 있었다.

요시와 션은 물리학, 화학 그리고 기계학에 관해서는 진정한 모범생들이었는데, 메이가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지난여름 방학 동안 2주 내내 차 위로 몸을 구부리고서 결함이 있는 부분들을 수리해 주었었다.

맨디가 안전띠를 풀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몇 명의 학생들이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중에는 같은 고등학교를 그들보다 먼저 졸업한 고향 선배들도 있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많은 사람 속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했을 때 느껴지는 친근한 감정이 그녀를 침습하도록 두면서, 한편으로 새로운 환경들을 마주할 때면 이따금씩 그녀를 감싸려 위협하는 긴장감을 진정시켰다.

차에서 내린 맨디는 뜨거운 여름 햇볕이 그녀의 얼굴에 내리쬐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미소를 띤 채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학생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움직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한 형상이 그녀의 시야 안으로 들어와 그녀의 공기를 장악해 버렸을 때까지.

바로 캐트리 였다. 글로스터에서 가장 인기가 있고 잘생긴, 모두가 원하는 남자인 그가 건물 입구 옆의 벽에 기대어 서서, 대학교 농구팀 이름이 등에 수 놓인 스포츠 재킷을 입은 다른 젊은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캐트리, 또는 라이언 매캐너는 두 소녀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많았다. 그는 글로스터 고등학교에서 2학년 때 스카우트에 발탁되었고, 졸업까지 오랜 기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장학금을 받았었다. 작년에 그는 브라운 대학에 입학했고, 농구팀의 주장으로 포인트 가드의 포지션을 맡고 있었다.

라이언은 고향에서도 전설적인 존재였는데,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는 신입생 때 이미 대학교 팀의 주전 선수가 되었고, 대학교 리그 최고의 선수상까지 받았다고 했다. 고등학교 상급생일 때 라이언이 농구팀을 선수권 대회에서 결승전까지 올라가도록 이끌었었기 때문에, 글로스터 주민들에게는 그 소식이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라이언은 훌륭한 선수였을 뿐 아니라 맨디가 본 남자 중에서 가장 잘생긴 소년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던 맨디와 메이가 사흘 동안 함께 뉴욕으로 여행을 갔을 때, 그곳에서 사용하는 캐트리 라는 속어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남자 라는 뜻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후로 그들의 대화에서 그의 이름은 그 의미로 통했다. 두 소녀는 운동선수들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하는 그런 유형은 아니었지만, 라이언의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감탄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심지어 약간은 군침을 흘리기도 했다. 웃을 때면 마치 세공된 다이아몬드 같은 푸른빛의 두 눈동자와 그 옆으로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라이언은 숨이 막힐 듯한 외모였고, 큰 키에 선이 선명한 근육질의 몸매였다.

맨디는 라이언이 절대로 다시 한번 그녀를 돌아볼 일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볼 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맨디가 생각에 잠긴 채 미소를 지으며 ‘ 맨디 썸머스의 달성할 수 없는 것들’ 의 목록에 그의 이름을 적은 사실을 떠올렸다. 라이언은 그녀에게 전적으로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괜찮았다. 맨디는 그가 마치 크리스털 가게의 장식품이라도 되는 듯 멀리에서 그를 흠모하는 것에 대해서 개의치 않았다.

보기만 하고, 만지지는 마십시오.

맨디는 현실을 아주 잘 직시하는 소녀였다. 그녀는 알파, 베타 가마 라는 여학생 사교 그룹의 - 혹은 뭐라고 불리던지 간에 - 세 명의 치어리더들처럼 자신이 예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맨디는 한 번도 인기가 많았던 적이 없었기에, 모든 사람에게서 동경을 받는 여자의 기분은 어떨지 항상 궁금했다. 그녀는 그저 평범한 소녀였고 바른 학생이었으며, 발레를 하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무언가에 출중한 그룹에 속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라이언 매캐너 같은 매력적인 남자는 그녀에게 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와의 연애를 꿈꾸는 것은 마치 유명인 잭 에프론의 여자 친구가 되는 상상과도 비슷한 것이었고,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라이언은 빛바랜 청바지에 밴드 티셔츠를 입는 작고 마른 맨디와 같은 소녀가 아니라, 카페에 있던 예쁘고 매력적이고 인기 있는, 육감적인 몸매에 유행하는 옷을 입고 진한 화장을 한 여자들과 데이트를 할 것 같은 타입의 남자였다.

“아, 하지만 그는 잘생긴 남자의 권리를 남용하고 있어.”

메이가 한숨을 쉬며, 맨디를 공상에서 일깨웠다.

“어…. 누구 말이야?”

맨디가 친구의 말에 집중하기 위해 고개를 흔들며 물었다.

“ 캐트리 .”

메이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대답했다.

“좀 전에 그는 최고의 환영 위원회였고, 우리의 대학교 첫날을 빛나게 해줬어!”

“맞아.”

맨디가 웃으며 친구에게서 시선을 돌리자, 조금 멀리에서 션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맨디는 그의 인사에 화답하며, 메이와 함께 그를 향해 다가갔다. 션과 맨디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그들은 유치원에서 만났고, 함께 자랐다. 고등학교 마지막 학기에 불편한 일이 생기기 전까지, 그녀는 션을 친오빠처럼 믿었다. 학교 친구의 집에서 파티가 있던 날, 션이 구석으로 몰아세웠던 기억을 하면 맨디는 다시 몸이 떨려왔다. 평소에 그녀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기에 처음으로 참석했던 파티였다.

그날 션은 적절함을 넘어서 맨디의 손목을 아주 세게 잡으며 키스를 하려고 했고, 좋아한다고 데이트를 하자고 말했다. 션의 충동적인, 거의 공격적인 행동은 그녀를 두렵게 했었다. 그녀는 한 번도 션을 이성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아직 이성 교제에 눈을 뜨지 않았었다.

맨디는 수줍음이 많은 미숙한 소녀였고,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해도 누군가와 사귀는 것에 대해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꼈다. 션은 두 손으로 굳건하게 그녀의 허리를 잡았는데, 맥주 냄새가 나는 뜨거운 그의 숨결이 닿자 맨디는 속이 뒤틀렸다. 션은 계속해서 키스하려고 시도했지만, 그녀는 가까스로 움켜쥔 그의 팔에서 벗어나 그에게 데이트하고 싶지 않다고 매우 단호하게 말했었다. 비록 션이 겁을 주었어도 맨디는 우정을 잃는 것이 두려웠었기 때문에, 아무와도 사귀고 싶지 않다고 그에게 이유를 설명했었다. 션은 며칠 동안은 맨디와 거리를 두었지만, 얼마쯤 지나자 그녀의 입장을 받아들이는 듯해 보였다.

맨디는 수습이 잘 된 것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꼈지만, 그날 이후로 션의 곁에 있을 때는, 특히 그가 짓궂은 표정으로 바라볼 때면 안전함에 대한 약간의 위협을 느꼈다.

“안녕, 소녀들! 잘 지냈니, 메이? 베티 의 상태는 어때?”

차가 구형이고 귀엽다는 이유로, 메이가 ‘베트 부프’에서 이름을 따서 스바루 차량에 지어 준 별명을 부르며 션이 자동차에 관해 물었다.

“차는 아주 잘 있어! 너와 요시는 멋져 보이네!”

메이가 대답하며 션을 안았다. 그는 웃으며 맨디에게 돌아섰고, 약간 수줍은 듯 보였다.

“그리고 넌? 잘 지냈어?”

안부를 물으며 껴안는 션의 행동이 맨디를 조금 경직되게 했다. 하지만 그의 손길은 친근하게 느껴졌고, 곧이어 익숙한 죄책감이 맨디를 감쌌다. 맨디는 머릿속에서 걱정을 밀어내었고, 웃으며 친구를 만난 것에 대해 기쁘게 느끼려고 애썼다.

“모든 게 다 좋아. 넌 다음 수업이 뭐야?”

맨디가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그날 일 이 있기 전의 우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질문을 했다.

“나는 생물학이야. 너는?”

“문학 수업. 메이는?”

“나는 역사야.”

메이가 역사 수업은 넌더리가 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역사 교수님은 메리 엘렌 교수님이었는데, 요구 사항이 대단히 많은 것으로 유명했다. 심지어 그들은 고향에 있었을 때부터 엘린 교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대학교 처음 2년 동안 학생들은 문학, 사회과학, 역사, 미술과 같은 기초과목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신입생 환영 책자에 의하면, 특정한 분야에 집중하기 전에 다양한 과목들을 통해 일반적인 지식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보통 대학교 3학년 때부터는 목표로 하는 자격 분야를 선택해서 학사 학위를 마칠 수 있었다.

의학이나 수의학, 치과학 또는 법학을 선택한 학생들의 경우에는 학위 취득까지 다른 과정보다 기간이 좀 더 오래 걸렸는데, 각자가 선택한 전문 분야의 특정 과목들을 3년간 더 이수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역사학이라니, 젠장.”

션과 메이가 동시에 말하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대화에 집중력이 흐려진 맨디가 시선을 돌려 큰 건물 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다가, 모퉁이만 돌면 교실이 나올 것이라는 메이의 말에 생각에서 깨어났다.

세 사람은 강의실을 찾으며 건물 입구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인사를 한 후에 각자의 교실로 향했다. 맨디는 배낭에서 두꺼운 커버의 중요항목 일기 를 꺼내었고, 문학 수업의 강의실 번호를 찾기 위해서 수업 시간표를 인쇄해 붙여둔 페이지를 찾았다. 그녀는 주변과 단절된 채로 손에는 중요항목 일기 를 들고 배낭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강의실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미처 앞을 올려다보기도 전에 맨디가 어딘가에 부딪혀서 땅에 넘어지려는 순간, 따뜻하고 단단한 두 손이 그녀를 잡아서 보호해 주었고, 그녀의 배낭은 운이 좋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선을 들어 위를 올려다본 맨디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오, 젠장. 브라운의 수많은 학생 중에서 왜 나는 바로 라이언 매케너에게 부딪혀서 넘어져야만 했던 거야?’

“어…. 음…. 정말 미안해.”

맨디는 자신이 바보처럼 말을 더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창피함을 느꼈다.

‘완전히 어설펐던 것으로도 모자라서 단어를 발음할 능력조차 없다는 듯이 말을 더듬고 있다니.’

“괜찮아? 미안해. 내가 정신이 팔려있었어.”

라이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맨디는 한 번도 그와 이렇게 가까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사실, 그녀는 어떤 남자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었다. 맨디는 그의 사랑스러운 푸른 눈을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라이언의 얼굴은 말끔하게 면도가 되어있었는데, 피부가 보이는 것처럼 부드러운지 손을 들어 만져서 느껴보고 싶은 이상한 충동을 느꼈다. 맨디는 몇 초간 거의 넋이 나간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라이언은 그녀가 기억하고 있던 모습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그만해, 이 바보야! 복도 한가운데에 서서 세상에 누가 너처럼 행동하겠니. 대학교에서 가장 멋있는 남자를 보고 군침이나 흘리다니!’

그녀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꾸짖었다.

“음…. 어…. 고마워, 그리고 다시 한번 미안해.”

맨디가 아직도 그녀를 잡고 있던 그의 팔에서 간신히 빠져나오며 말했다. 그녀가 바닥에 떨어진 배낭을 집으려고 재빨리 몸을 구부리자,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배낭은 열려있었고, 복도 위로 그녀의 물건들이 떨어져 있었다.

자신의 어설픔에 짜증이 난 맨디가 멀리 떨어져 있던 중요항목 일기 를 포함해서 모든 물건을 집어 들었고, 라이언에게 몸을 구부릴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최대한 빨리 제자리에 집어넣었다.

그녀는 배낭을 닫고서 어깨 너머에 둘러맨 채 어색하게 웃어 보이고는 서둘러 강의실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맨디는 빠르게 걸어가면서, 몇몇 사람들이 그녀가 넘어진 것 때문에 그녀를 보며 웃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얼굴이 더욱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서투른 행동을 다시 한번 나무랐다. 사람들 앞에서 넘어진 소녀로 기억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마침내 강의실을 찾은 맨디가 다시 눈에 띄지 않도록 안으로 들어가서 뒤쪽에 있는 자리를 찾았다.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은 그녀가 가능한 한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하는 일이었다. 창피함이나 당혹스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순간은 발레를 할 때였다. 무대 위에서만큼은 맨디는 수줍음 많은 소녀가 아니었고, 그녀가 만들어 내는 배역이 되었다.

맨디는 숨을 몰아쉬며 전략적인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들이 비어있어서 다행이었는데,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도 옆에 있는 동급생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맨디가 긴 한숨을 쉬며 가방을 열어 노트를 꺼내는 순간, 그녀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든 맨디는 다시 한번 라이언 매케너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 신데렐라. 복도에 새틴 구두를 두고 갔어.”

웃으며 말하는 라이언의 손에는 발레 슈즈 한 짝이 들려있었다.

맙소사.

제 3장

복도에서 부딪히자마자 맨디가 넘어지지 않도록 팔로 안았던 그 순간부터 라이언은 줄곧 멍한 기분이었다. 라이언은 그녀가 글로스터 고등학교에 다닐 때 복도에서 지나치곤 했던 예쁜 소녀 맨디라는 것을 벌써 알아차렸다. 그는 짙은 색의 긴 머리를 항상 묶고 다녔던 그 소녀를 우아하다고 생각했었고, 보기에 흥미롭다고 느꼈다. 아름다운 이목구비와 녹색 빛의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이국적인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짙은 청바지에 티셔츠와 운동화를 신은 맨디의 활동적인 옷차림은 그녀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이목구비와는 대조적이었다. 라이언이 생각하기에 맨디는 여우였다. 그는 언제나 맨디에게 매력을 느꼈었지만, 그녀는 한 번도 무언가 노력한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같은 친구들이 있는 그룹에 속했던 적이 없었고, 맨디는 그를 한 번 더 돌아보는 일이 없었다. 같은 고등학교에서 공부했지만, 라이언이 한 살 더 많았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다른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었다. 게다가 맨디는 매우 진지했기에, 그가 사귀자고 제안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타입이라고 생각했었다.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고, 가끔 정중한 미소를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그가 맨디를 마지막으로 본 이후로 일 년 만에 그녀를 브라운 대학교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복도에서 부딪힌 사건은 라이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아마도 그녀의 몸이 그의 품 안에 완벽하게 딱 맞았기 때문이었거나, 혹은 그녀의 다정하고 부드러운 꽃향기가 나는 향수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라이언은 조금 더 가까이 그녀에게 몸을 기울여서 그 향기를 더 맡아보고 싶었다. 그것도 아니면 고등학교에서는 자신의 성향을 감추려던 소극적인 소녀였던 것과는 다르게 이제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그녀의 관능적인 외모 때문인지도 몰랐다. 지금의 어맨다는 더욱 성숙해 보였다.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풀어진 머리카락은 그녀의 녹색 빛 눈동자를 돋보이게 했고, 짙은 머리카락은 보이는 것처럼 부드러운지 만져보고 싶게 했다. 하지만 맨디는 그에게 부딪혀 넘어졌던 것만큼이나 순식간에 떠나가 버렸고, 라이언은 마치 지난 경기 때 반대 팀의 모든 선수에게 치였던 것과 같은 격렬한 기분에 휩싸인 채로 그 자리에 남겨졌다.

라이언이 머리카락을 손으로 넘기면서 여전히 조금 혼란스러워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빨간색의 무언가에 그의 시선이 이끌렸다. 발레 슈즈였다. 그가 맨디를 놓쳤을 때 그녀의 배낭에서 떨어졌을 것임이 분명했다.

라이언이 단호하게 결심을 하고는 복도를 내려가서 맨디를 찾으려 가까운 강의실들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 소녀는 마치 증발이라도 한 것 같았다. 라이언은 사라진 주인의 신발 한 짝을 한 손에 들고 좌절감을 느끼면서, 자신이 무도회장에 남겨진 백마 탄 왕자님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상황에서는 무도회장이 아닌 대학교 복도였지만.

맨디를 찾는 데 실패한 라이언은 레슬리 교수님이 강의실 밖에서 그를 찾기 전에 문학 수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오늘 아침 레슬리 교수님이 건물 입구에서 라이언을 지나치면서, 지체하지 않고 손가락을 흔들며 크고 명확한 목소리로 수업에서 그를 기다리겠다고 말했었다. 라이언은 교수님이 했던 말을 기억하면서 곤란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라이언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한 행동만을 보고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이 싫었는데, 이것은 인기 있는 남자가 겪는 불리한 점이었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의 태도를 판단하고는 했다. 라이언은 자신이 운동선수이자 농구팀의 주장, 그리고 비교적 인기 있는 사람의 전형적인 이미지에 꼭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고군분투하며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하는 올바른 학생이었다.

라이언이 여전히 그 소녀에 대해 생각하며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서 어디에 앉을지 자리를 정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교실 뒤편을 본 라이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의 행운을 믿지 못했다. 바로 그곳에 맨디가 의자에 앉아서 가방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녀의 짙은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내려와 있었고, 라이언은 또다시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져보고 숱을 가늠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만해.’

그가 자신을 나무랐다.

그랬다. 맨디는 아름다웠다. 라이언은 그녀에게 굉장히 매료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바보 같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자신의 충동을 아주 잘 통제할 수 있었다.

라이언이 맨디에게 시선을 그대로 고정한 채, 여전히 그의 손에 들고 있는 발레 슈즈를 돌려주기 위해 다가갔다. 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그 소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라이언이 책상들 사이를 걸어 지나가며 한두 명의 동급생들과 인사를 했다. 맨디에게 도착한 그는 달콤하고 부드럽게 에워싸는 그녀의 향기를 다시 맡을 수 있었다. 놀란듯해 보이는 맨디가 입술이 조금 벌어진 채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안녕, 신데렐라. 무도회장에 너의 새틴 구두를 두고 갔어.”

라이언이 과장되게 성대한 몸짓으로 구두를 들고 있는 손을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들어 올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그는 맨디의 반응을 자세히 살피려 고개를 기울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어….”

맨디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작게 말했다.

“고마워. 떨어뜨린 줄 몰랐어.”

그녀가 목청을 가다듬고는 이어서 말했다.

붉어진 두 볼이 그녀가 쑥스러워하고 있다는 충분한 힌트가 되지 못했다고 해도, 그녀의 낮은 목소리와 라이언을 간신히 바라보는 행동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어색해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라이언이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 평소에 여자들이 거부할 수 없는 애교 있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나 기억해? 나 글로스터의 라이언 매케너야. 우리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었는데.”

라이언이 대화를 시작하려고 맨디에게 말을 걸었다.

“음….”

맨디가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작게 웅얼거렸다.

“나는 네가 발레를 하는 줄 몰랐어.” 라이언이 말을 이어갔다.

“그냥 뭐, 조금.”

대답인지 아닌지 모를 맨디의 반응은 그를 당황하게 했다. 라이언은 무시를 받는 것에는 익숙지가 않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인기 있는 남자에게는 모든 관심을 주곤 했다.

라이언이 다시 무언가 말을 하기 위해 입술을 떼려는 찰나, 레슬리 교수님이 강의실로 들어와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교수님은 라이언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를 향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언이 교수님에게 답인사로 소리 없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레슬리 교수님은 자료들을 책상 위에 채 올려놓기도 전에 신이 나서 벌써 이번 학기의 수업 계획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라이언이 교실 앞쪽에서 시선을 돌려서 옆을 보자, 맨디가 무심하게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것들을 적고 있었다.

“발레는 오랫동안 한 거야?”

라이언이 아직 대화를 시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물었다.

“응.”

‘젠장. 그녀는 여전히 짧은 대답이었다. 소용이 없었다.’

“얼마나 오래 했어?”

“다섯 살 때부터.”

라이언을 향해 몸을 돌린 맨디의 눈빛에서 이전과는 다른 생기가 보였지만, 이내 다시 냉랭한 표정 속으로 감추어졌다.

“미안하지만 나는 수업을 따라가려고 노력 중이야.”

맨디가 귀찮은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라이언이 시선을 돌리고 그의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미안, 신데렐라. 나는 단지 너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

라이언은 목소리가 가라앉으면서 생각보다 조금 더 딱딱한 말투가 나왔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뭐가 문제인 걸까? 아니면, 나에게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 건가?’

맨디가 초록빛 눈동자를 크게 뜨며 대답을 하려고 입을 떼는 순간, 이번 학기의 프로젝트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던 교수님이 그들을 향해서 돌아서며 말했다.

“라이언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어맨다와 짝을 하렴.”

교수님은 시선을 돌리며 계속해서 나머지 반 학생들을 임의로 짝을 지어주었고, 라이언이 다시 맨디를 바라보자 그녀는 불만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래, 신디 ? 나와 함께 과제를 하는 게 좋지 않은 거야?”

라이언의 목소리가 꽤나 날카로웠다.

“그래. 나는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짝이 되고 싶었어. 나에게 일을 미룰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 그리고 내 이름은 신데렐라가 아니라 어맨다야.”

‘와우! 여우에게 발톱도 있었다니! 그것도 뾰족한.’

라이언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드레날린이 그의 몸을 침투하며 그는 맨디에게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겠다는 도전 의식을 느꼈다. 그가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몸을 기울여 맨디의 귓가에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그런데 내가 공부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누가 그래?”

라이언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책상 위에 얹고 있던 맨디의 팔 위로 얇은 털들이 곤두서는 것이 보였다.

“우리의 프로젝트가 최고점수를 받을 거라고 확신해도 좋을 거야. 그러니까 주제가….”

라이언이 재빨리 프로젝트의 주제를 확인하기 위해서 칠판을 보았다.

‘제인 오스틴? 아, 이런 젠장!’

“음…. 제인 오스틴이네.”

라이언이 약간의 불안을 느끼며 말을 끝맺었다.

“그리고 나는 네 이름을 알고 있어. 어맨다 썸머스.”

라이언이 이름과 성까지 말하는 것을 들은 맨디의 눈이 조금 커졌다.

“신디는 내가 지은 신데렐라의 애칭이야. 왜냐하면, 넌 내가 신데렐라라고 부르는 것을 다른 사람이 듣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바보 같은 별명은 싫어해.”

서로가 그렇게 가까이에 있지 않았다면 듣지 못했을 정도로, 맨디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앞에 놓인 노트에 집중했다.

“오직 내가 바라는 건, 이 프로젝트를 나 혼자 다 하면서 내 명을 단축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받는 거야.”

“침착해. 난 네가 혼자 하도록 두지 않을 거야. 우리는 함께 할 거야, 좋은 파트너처럼 말이야.”

라이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별명은 바보 같지 않아. 네가 나의 신데렐라인 것이 내 탓도 아니고 말이야.”

“그럼 너는 누군데? 백마 탄 왕자님?”

맨디가 비꼬는 듯한 말투를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며 물었다.

“넌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안 그래, 라이언 매케너?”

맨디는 자신의 목소리에 독기가 서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맨디의 적대감에 놀란 라이언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말 무슨 뜻이야?”

“너는 항상 자만심에 차 있다는 말이지. 단지 네가 농구팀의 주장이고 여자들이 네 주위를 제과점에 있는 날벌레들처럼 날아다닌다는 이유로 말이야. 하지만 나에겐 관심 있는 척 가식적으로 굴 필요 없어. 수많은 여자를 두근거리게 해서 정복하려는 너의 그 대화에 나는 홀딱 빠져버리지 않을 거거든.”

라이언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입을 뗐다가 닫았다가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맨디는 그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라이언은 농구팀의 주장이자 공격수인 그에게 사람들이 특권을 주며 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소녀들도 실제로 치근댔지만, 그는 한 번도 자신을 그렇게 왜곡된 관점으로 본 적은 없었다. 인기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나쁜 남자라도 된다는 것처럼….

라이언이 그녀의 말에 틀렸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레슬리 교수님이 다시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라이언, 어맨다! 너희들의 책은 오만과 편견 이다.”

교수님이 말한 후, 계속해서 짝을 이룬 다른 학생들에게 각각의 책을 지시해 주기 시작했다.

“책이 나왔을 당시의 시대와 현시대의 문화적 차이점과 연애 관계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프로젝트를 만들도록 해라. 항상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참조 문학 서적의 일부인 작가들의 이론적 기초도 잊지 말고. 온라인 수업 포럼에 예시 자료를 만들어 놓을 거다.”

오만과 편견 은 그 이상 좋을 수 없는 책이었다. 라이언은 학기 말까지 신데렐라가 편견을 갖고 그에게 했던 말들을 취소하도록 할 것이다. 이제, 이 냉담한 소녀를 길들이는 것은 그의 명예가 달린 문제였다.

수업이 끝난 후, 라이언이 일어나서 배낭을 어깨에 메고는 투덜이 아가씨를 향해서 웃어 보였다.

“안녕, 신디. 다음에 보자. 그런데 난 벌써 캠퍼스 도서관에서 우리가 만날 날을 정하고 싶은데, 과제를 시작하려면 말이야. 토요일 아침 아홉 시에 만나.”

라이언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상류층의 귀족 여성에게 건넬 법한, 혹은 소설 속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할 듯한 인사를 한 후에 윙크를 하고는 강의실의 출구로 향했다. 그는 그때 뒤를 돌아보았다면, 맨디의 입이 놀라서 떡 벌어져 있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제4장

라이언이 교실을 나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맨디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라이언과의 생소했던 대화로 인한 충격이 전해져오면서, 그녀는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라이언에게 무례하게 말했던 기억이 맨디의 볼을 붉게 달아오르게 했다.

‘오, 세상에. 어떻게 내가 그토록 무례할 수가 있었을까?’

맨디가 스스로를 나무라며 몸을 앞으로 숙여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만약 그녀가 진심이었다면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독한 불안감에 수줍음까지 더해졌던 맨디는 더욱 큰 소리로 말했었고, 할 수 있는 한 최악의 방식으로 그에게 반응해 버렸다.

‘젠장.’

맨디가 한숨을 쉬며 소지품을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강의실 안은 다음 수업을 듣기 위한 학생들로 다시 채워지고 있었다. 물건을 다 챙긴 후, 그녀는 라이언이 바로 옆에 나타나서 대화를 시도했을 때 얼마나 놀랐었는지 생각했다. 맨디가 조금 전처럼 당황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듯이 신중하게 배낭을 닫은 후, 어깨 위에 가방끈을 걸치고 출구로 향했다.

곧이어 그녀는 서둘러 복도를 가로질러 걸으며 화학 강의실로 향했다. 간신히 강의실 문으로 들어온 그녀는 메이가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맨디! 여기야! 내가 네 자리를 맡아놨어!”

맨디가 여전히 떨리는 몸으로 친구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정말 이상했던 오늘 아침에 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라이언 매케너가 정말로 내게 말을 걸었던 걸까, 아니면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정말로 내가 그를 마주 보고서 형편없는 반응을 보였던 건가?’

“맨디야? 친구야?”

메이가 어깨를 흔들며 부르자, 맨디가 놀라며 친구를 바라보았다.

“얘, 무슨 일 있었어?”

“응? 아무것도 아니야.”

맨디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재빨리 대답했다.

그녀는 좀 전의 일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심지어 메이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했던 행동이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라이언이 그녀를 신데렐라라고 불렀던 장난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왜냐하면, 그건 정말로 그의 단순한 장난이었을 테니까.

라이언 같은 남자는 절대로 그녀를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녀의 내면에 있는 로맨틱한 몽상가가 속삭이기 시작했다.

‘만일 그가 정말로 나를 좋아하는 거라면? 그가 나를 여자로 생각하고 관심을 두고 있는 거라면?’

맨디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른 채 숨을 깊게 들이마셨고, 그때 그녀의 부정적인 내면이 격렬하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농구 스타이자 브라운 대학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인, 모든 여자가 원하는 라이언 매케너가 너에게 관심이 있을 거라는 당돌한 생각을 하다니. 아니야, 절대 아니야! 라이언은 맨디 썸머스의 달성할 수 없는 것들의 목록에 있고, 그가 있어야 하는 곳은 그곳이야.’

“맨디야, 무슨 일이야? 누구한테 화라도 났어? 어디 아파? 나에게 말을 해봐, 친구야!” 메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맨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로 다짐하면서, 친구를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했다. 맨디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는 굉장히 폐쇄적인 소녀였고,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아니야, 메이. 난 괜찮아. 그냥 두통이 약간 있어서 그래.”

“아, 저런. 나는 그럴 때가 너무 싫던데. 좀 괜찮아질 때까지 혼자 둘게. 진통제라도 좀 줄까?”

“아니야, 고마워. 곧 괜찮아질 거야.”

맨디는 대답하면서, 가장 친한 친구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더욱 언짢아졌다.

교수님이 강의실로 들어와서 수업을 시작했지만, 맨디는 아침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 짚어 보느라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마치 라이언과 그녀가 주인공인 영화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넘어지지 않도록 라이언이 붙잡아 주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라이언이 두 팔로 굳건하게 맨디를 안았던 순간, 그녀는 그의 온기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었다. 맨디가 눈을 감고서, 더 알아가고 싶다는 듯이 관심을 보이며 수업 시간에 말을 걸던 라이언의 미소와 빛나는 눈동자를 떠올렸다. 내내 친절했던 라이언에게 자신은 무례하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자, 곧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는 호의적이고, 매력적이었는데.’

맨디의 마음속에서 로맨틱한 속삭임이 들리며, 라이언이 그녀를 향해 몸을 기울였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가 맨디의 몸에 있는 털을 곤두서게 만들며 그녀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던 그 순간.

‘그때 내가 조금이라도 고개를 돌렸다면, 서로의 입술을 맛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어. 이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생각인 거지? 맙소사! 나는 누구하고도 키스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야?’

그 순간 누군가가 맨디의 어깨를 흔들며 그녀를 생각에서 일깨웠다.

“어서, 맨디. 수업 끝났어. 점심 먹으러 가자.”

맨디는 미처 깨닫기도 전에 어느새 한 시간의 강의가 끝나버린 건지 의아해하면서 메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수업 시간 내내 라이언과 했던 대화와 그의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를 떠올리며 보냈기 때문에, 만약 누군가가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무슨 말을 했었는지 물어보았다면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맨디는 라이언에 대한 기억을 떨쳐보려 고개를 흔들었고,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메이를 따라 강의실을 나와서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그녀는 역사학 수업이 얼마나 고문이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메이와 함께 걷고 있었다.

복도에서 몸을 돌리는 순간, 맨디는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침 시간 내내 그녀의 마음을 동요하게 했던 푸른색의 눈동자를 발견했다. 눈이 마주친 라이언이 눈을 깜박이자 맨디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맨디? 맨디!“

맨디가 라이언의 눈빛에서 시선을 돌려서, 자신을 이상하다는 듯이 보고 있는 메이를 바라보았다.

“너 괜찮아? 너 조금 얼굴이 붉어진 것 같은데.”

친구의 물음에 맨디가 바닥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음……. 맞아.”

맨디가 그녀를 유심히 보고 있는 메이에게 대답했다. 그녀는 점심 식사를 포기하고 안전한 장소에 가서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친구야, 남자애들하고 점심 먹어. 난 도서관으로 갈게. 배도 고프지 않고, 두통도 심해서.”

“내가 같이 가줄까?”

메이가 복도 중간에 멈추어 서서 맨디에게 물었다. 맨디는 또 한 번 친구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봐야 했다.

“아냐, 그럴 필요 없어. 도서관은 조용하니까. 난 지금 그런 장소가 필요해.”

메이는 친구를 혼자 보내는 것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진짜 괜찮겠어?”

맨디가 약간의 미소를 지으려 노력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나중에 보자.”

맨디는 서둘러 메이에게서 멀어져서, 큰 도서관이 위치한 건물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그녀는 입구로 들어간 후 오래된 홀을 지나서 대학교 첫날 만났던 도서관 사서인 폴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폴리가 미소로 화답하며 소지품들을 받아서 프런트에 있는 작은 사물함 안에 넣었고, 맨디는 서양 고전학책들이 있는 도서관의 뒤편으로 향했다. 이전에 폴리가 사람들이 이 구간으로는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정말 도서관 뒤편으로는 거의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았다. 아마 그런 이유 때문에 이곳은 맨디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맨디가 책들이 가득한 책장들을 지나 천천히 복도를 걸어 내려가면서, 손가락 끝으로 그녀가 아주 좋아하는 두껍고 오래된 책의 등 부분을 미끄러지듯이 쓸어 내려갔다.

그녀는 중간쯤 가다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책 앞에 멈추어 섰고, 선반에서 꺼내어 오래된 두꺼운 표지로 된 책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그녀가 책을 들고 벽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앉았고, 금색으로 글씨가 적힌 책 표지 주위를 손으로 더듬었다. 그리고는 책을 펴서 얼굴 가까이에 가져가서 바라진 책 페이지 속에 있는 단어들의 향기를 맡았다.

‘나는 시가 사랑의 양식이라고 생각했소.’

그녀가 다아시의 문장을 읽은 후 책을 덮었고, 몸 가까이로 당겨진 무릎 위에 머리를 기대었다.

맨디는 눈을 감고, 라이언과 다시 부딪혔던 순간의 기억으로 돌아갔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리 없었다. 절대로. 정말이지, 절대로말이다. 맨디는 라이언 때문에 마음이 아주 많이 흔들렸었고, 그렇기에 체계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다. 맨디는 그를 머릿속에서 밀어내야 했다.

침묵한 채로 맨디는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리 위로 누군가의 가벼운 손길이 느껴지더니, 머리칼이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재빨리 고개를 든 그녀는 라이언이 바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라이언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푸른 눈동자는 흡사 밤의 빛깔과 같이 어두웠다.

“너 괜찮아?”

라이언이 맨디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물었다. 맨디는 괜찮지 않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공기 중의 긴장감은 거의 촉각으로 느껴질 듯했고, 그녀는 라이언이 개인적인 공간을 침범할 정도로 왜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 신데렐라.”

라이언이 그녀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은 채 속삭이며 더 가까이 다가왔다.

“너를 내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어.”

라이언이 그녀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그의 눈길이 맨디의 눈동자를 벗어나 그녀의 입술 주위를 배회했다. 맨디가 혀끝으로 입술 주변을 훑었고, 입술이 촉촉해졌다. 라이언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둘은 이제 겨우 몇 밀리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녀는 입술이 서로 닿는 감촉을 거의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더는 느껴지는 감정들을 합리화하고 저항하는 것에 지친 맨디가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입술을 들어 올렸다. 맨디의 얼굴 가까이에서 라이언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고, 마침내 서로 입술이 닿은 순간, 그녀가 놀라면서 책꽂이 위에 있던 몇 권의 책들이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눈을 뜬 맨디는 숨겨진 이 복도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깜빡 잠이 들었고, 꿈을 꾸다가 책장을 밀어서 책들이 떨어진 것이었다.

‘메이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봐.’

맨디가 정수리를 매만지며 생각했다. 이것은 친구에게 거짓말을 한 것과 가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라이언을 원했던 것에 대한 벌이 분명했다.

‘참 잘했네, 어맨다 썸머스.’

이제 맨디의 두통은 진짜가 되었고, 그녀는 책들을 모두 제자리에 정리해야 했다.

***

메이는 카페테리아 안에서 도서관을 향해 걸어가는 친구의 모습을 바라보며 걱정으로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작 몇 개월의 나이 차이밖에 나지 않았지만 둘은 자매 같았고, 메이는 맨디에게 우울한 기질과 깊은 슬픔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이 점은 언제나 메이의 보호 본능을 일깨웠다. 맨디가 아버지가 가족을 떠난 것에 대해서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만큼, 사실은 그 일이 그녀의 불안감에 상당 부분 일조했다는 것을 메이는 알고 있었다.

맨디는 예쁘고, 다정하고, 매우 지적인 소녀였다. 그녀에게는 재능이 있었고, 발레에 대한 헌신과 성과가 감탄할 만한 것이었음에도 그녀 자신은 그런 점을 보지 못했다. 이것이 메이가 그녀를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이유였고, 특히나 오늘처럼 맨디가 조금 이상하고 평소보다 더 내성적일 때는 걱정이 되었다.

친구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메이는 뒤돌아서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이중 문을 지나니 큰 홀이 나왔고, 오른편의 가게에서는 그릇을 쌓아 올려 정돈한 계산대 옆에서 한 여성이 음식들을 새로 담고 있었다. 그 앞에는 유리문으로 된 커다란 냉장고가 있었고, 안에는 탄산음료와 주스 그리고 물이 있었다.

메이가 다가가서 음식을 접시 위에 올려 담았다. 계산대에서 콜라를 집어 들고는 점원에게 전달한 후에 점심값을 냈다. 메이는 뒤를 돌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페테리아 안에는 사람들이 모두 둘러앉은 테이블로 가득했다.

메이가 저 멀리 뒤편에서 요시가 손을 흔들며 그녀의 주의를 끌려고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가 요시를 보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고, 손에 쟁반을 들고 그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메이는 테이블 사이를 지나가면서 마치 고등학교 때처럼 학생들이 각각 무리를 지어서 나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범생들이 모여 앉는 곳과 록 음악을 하는 학생들, 운동선수들 그리고 메이와 같이 평범한 학생들이 모여 앉은 테이블들이 있었다.

마침내 자리에 도착한 메이가 자동차에 대해 활기 넘치는 대화를 나누고 있던 친구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션이 손을 뻗어 메이의 손에 있던 쟁반을 받아서 테이블 위에 올려 주었고, 요시는 그녀가 앉을 수 있도록 옆에 있는 의자를 꺼내주었다. 메이는 자신을 챙겨주는 친구들의 행동들이 귀엽게 느껴졌다. 메이가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며 그들의 친절에 고마움을 표현하려는 찰나, 션이 그녀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맨디는 어디 있어? 같이 오지 않은 거야?”

“맨디는 도서관에 갔어. 두통이 있다면서.”

메이의 대답에 션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메이는 션을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그는 같은 그룹에 있는 친구였다. 하지만 션은 맨디에 대한 집착이 있었는데, 메이가 느끼기에는 적절한 정도를 조금 넘어선 것이었다. 그녀는 맨디가 이미 션에게 어떠한 연애 감정도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션은 이해한다며 친구로 남고 싶다고 답했지만, 메이는 여전히 그가 맨디에게 드러내 보이는 소유욕이 상당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메이, 역사학 수업은 어땠어?”

끔찍했던 역사 수업에 관한 요시의 질문이 메이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얼마 후에, 농구팀이 앉아 있는 테이블과 그 옆에 흰색과 파란색의 짧은 유니폼을 입은 치어리더들이 서 있는 곳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메이와 친구들은 그 아이들과는 같은 그룹이 아니었지만,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라이어어언!“

그때 애슐리 월터스의 얇은 목소리가 메이의 귓전에 울렸다.

애슐리는 농구부 치어리더의 대표였고, 완벽한 몸매와 빛나는 금발 머리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푸른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소녀였다.

그녀는 완벽한 전형적인 대학교의 치어리더였다. 하지만 애슐리는 그녀의 메스꺼운 목소리만큼이나 좋은 친구로는 볼 수 없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메이는 오늘 첫 수업을 애슐리와 같이 들었는데, 주로 그녀 때문에 수업이 상당히 불쾌한 기억으로 남았다. 애슐리는 편견을 가진 무례한 사람이었고, 그녀와 같은 그룹에 있는 친구들에게만 친절히 대했는데, 이상한 점은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은 그녀의 그런 점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애슐리는 매우 인기가 많았고, 거의 모든 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대부분 남학생은 그녀와 사귀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고, 여학생들은 그녀처럼 되고 싶어 했다.

“라이어어언,”

애슐리가 마치 노래하듯이 라이언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메이는 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애슐리를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메이는 벌써부터 애슐리가 싫었다.

“무슨 일인데, 애쉬?”

라이언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불쌍한 사람에게 관심을 주는 자선이라도 하는 거야?”

애슐리의 물음에 적잖이 놀란 듯한 그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라이언이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나 조금 전에 네가 어린 계집애랑 복도에 있는 거 봤어.”

애슐리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하자, 옆에 있던 친구들이 그녀의 짓궂은 단어 선택에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웃었고, 라이언은 얼굴을 찡그렸다.

메이가 자신만큼이나 놀란 션과 요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치 흥분되는 테니스 경기라도 보는 듯,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몸을 돌려서 라이언을 쳐다보았다가 애슐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메이가 다시 기분이 조금 언짢아 보이는 라이언을 바라보았다.

‘라이언이 누구와 함께 있었던 걸까?’

고등학교 때도 라이언을 괴롭게 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메이는 대학교에서는 분명히 그가 더 힘들 거라고 확신했다.

“대체 뭐야, 애슐리? 난 네가 나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도록 허락한 적 없는데.”

라이언의 표정은 꽤 지루해하는 듯해 보였다.

“내가 과장해서 말하는 게 아니야, 라이언. 모두들 네가 복도에서 부딪힌 그 비쩍 마른 소녀를 따라서 문학 수업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애슐리가 자신은 결백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얘, 너의 여자 취향은 예전이 더 나았었는데.”

애슐리가 입을 삐죽거리며 웃자, 마치 서로의 행동을 흉내 내는 원숭이들처럼 그녀의 친구들도 옆에서 함께 웃었다.

“네 말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 하겠어, 애슐리. 넌 나에게 그런 식으로 말할 자격도 없고. 그리고 네가 존중을 받으려면 먼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해주는 법을 배워야 할 거야.

맨디에게는 이름이 있고, 그 아이는 대단한 아이야. 누구라도 그런 식으로 대할 만한 여자가 아니야. 게다가 많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 그 아이하고 복도에서 부딪혔고, 수업 시간에 사과하러 갔던 거야. 그게 다야.”

‘맨디? 그가 지금 맨디라고 한 거야? 라이언이 말하는 맨디가 내 친구 맨디인가?’

라이언의 말을 들은 메이가 궁금해하면서 자신과 같이 입을 벌린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션과 요시를 쳐다보았다.

“메이, 라이언이 지금 우리 맨디 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야?”

요시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것 같아.”

‘맨디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무슨 일이 있었든 게 분명해!’

메이가 대답한 후 두서없는 생각에 빠져 있다가, 애슐리의 거슬리는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나는 원하는 모든 말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그리고 라이언! 너는 나와 함께여야 한다는 걸 알고 있겠지, 안 그래? 내가 농구팀의 치어리더잖아!”

애슐리가 라이언에게 몸을 기대며 그의 팔을 쓰다듬자, 라이언이 그녀의 손을 들고는 밀어냈다. 라이언은 웃고 있었지만, 재미있어하는 듯이 보이지는 않았다.

“애쉬, 웃기지 마. 난. 이미. 말했어. 난. 너에게서 아무것도 원하는게 없다고. 말도 안 되는 너의 그 진부한 고집이 애처롭다.” 라이언이 손가락으로 애슐리를 가리키며 단어 하나하나를 강조해서 말했다.

그 순간 카페테리아에 있던 모든 사람이 조용해지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주 깊은 정적이 흘렀기 때문에 메이는 라이언의 가빠지는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라이언이 의자를 바닥에 쓰러뜨릴 듯이 세차게 일어선 후에 가방을 등 뒤로 던지듯 메고 카페테리아를 나섰고, 그의 격노에 애슐리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순간 누구도 말을 꺼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메이가 화가 나있는 애슐리를 바라보았다. 메이는 그녀가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기를 바랐다.

“얘들아, 나 맨디를 찾으러 가 볼게. 무슨 일인지 알아내야겠어.”

카페테리아 안의 사람들이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하자, 메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션도 곧바로 일어났다.

“나도 너와 같이 갈래, 메이.”

션이 제안했지만, 메이는 거절했다. 만일 맨디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라면, 션이 나타나는 것이 도움이 되기보다는 방해가 될지도 몰랐다.

“아니야, 션. 내가 가 볼게. 우리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메이….”

션이 다시 한번 말해보려고 시도했지만, 메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간다면, 맨디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거야, 션. 그 애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니까, 내가 말해볼게.”

메이가 션에게는 강경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션은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메이가 소지품들을 챙겨서 일어나려는 찰나, 그들이 앉은 테이블 옆으로 치어리더 삼총사인 애슐리, 해나, 셰럴이 지나갔고, 메이는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메이는 그들이 맨디를 괴롭히지 않기를 바랐다. 부유층에서 응석받이로 자라서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하는 애슐리와 같은 소녀에 대해서 메이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저런 아이와 문제에 휘말리는 일은 최대한 피해야 하는 일이었다. 메이는 세 명의 소녀들이 카페테리아를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깨에 배낭을 메고 맨디를 찾으러 도서관으로 갔다.

***

메이가 프런트 데스크 앞을 지나가자, 폴리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도서관의 사서인 폴리는 항상 친구를 찾으러 오는 빨간 머리 소녀 메이를 알고 있었다.

“맨디가 여기에 있나요?”

“응, 뒤쪽에 있어. 오스틴과 셰익스피어 와 함께 말이야.”

메이의 질문에 폴리가 웃으며 대답했다. 메이가 고맙다고 인사한 뒤, 세계 고전 문학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맨디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오만과 편견 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도서관의 이 구간에 있는 것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여러 개의 책장을 지나가는데 어떤 소리가 메이의 주의를 이끌었고, 그녀는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마침내 메이는 머리가 헝클어진 채로 주변에 떨어진 책들과 함께 바닥에 앉아 있는 맨디를 발견했다.

“맨디?”

맨디가 고개를 들고 친구를 보기가 두렵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 메이….”

맨디가 속삭이며, 참고 있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메이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끼며, 맨디의 옆에서 무릎을 꿇고서 그녀를 당겨 안아주었다.

“진정해, 친구야. 괜찮아…. 울지 마.”

메이가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인지 말해줄 수 있어?”

“내가 왜 이러는지 명확하게 설명을 못 하겠어.”

맨디가 눈물을 닦으려고 시도하며 대답했다.

“말해봐, 친구야. 난 믿어도 된다는 거 알잖아.”

그제야 맨디는 그녀에게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 말해주었다. 라이언과 복도에서 부딪혔던 일과 문학 수업 시간에 짝이 되어 함께 과제를 하게 된 것, 그리고 조금 전의 불편했던 꿈에 대해서도.

“바보같이 들린다는 거 알아, 메이. 그런데 나 너무 불안해.”

맨디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알다시피 나는 남자를 만나본 경험이 없잖아. 그런데 라이언은, 그러니까 솔직히 나를 많이 흔들어. 한 번도 이런 상황에 놓여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어. 최악인 건 내가 그에게 무례하게 굴었고, 그런데도 우리는 과제를 함께 해야 한다는 거야.”

맨디가 더욱 곤란해하며 말했다. 자신의 미숙했던 행동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녀의 기분을 더욱더 좋지 않게 만들었다.

“전혀 바보 같지 않아, 맨디. 나는 이해해. 우리에게는 경험이 없으니까 당황스럽고 불안한 것이 지극히 정상이야. 게다가 상대가 라이언이라면 더욱이 말이야.”

메이가 친구를 진정시켜주기 위해서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라이언 같은 사람과 프로젝트에서 짝이 되었다면 나라도 긴장했을 것 같아. 네가 생각하기에 라이언이 너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니?”

메이가 잠시 숨을 돌린 후에 작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맨디는 말이 나오지 않는 듯이 몇 차례 입을 여닫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

“아니, 내 생각엔 모든 여자를 그렇게 대하는 일종의 그의 방식인 것 같아.”

맨디가 팔을 들고 제스처를 취하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맙소사. 그 애는 대단한 라이언 매케너잖아!”

순간 맨디의 감정이 발산했고, 둘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메이에게 친구를 찾으러 왔던 이유가 떠올랐다.

“음…. 친구야, 좀 전에 카페테리아에서 소란이 좀 있었어.”

“소란이라니?”

“응. 애슐리가 누군지 알아?”

그녀의 질문에 맨디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 아침에 카페에서 치어리더들과 같이 있었던 금발 머리 여자애 기억나? 혼자 머리를 묶고 있었는데, 푸른 눈동자에….”

“음, 알 것 같아.”

맨디가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알잖아, 내가 그런 것들에는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거.”

“응, 그런데 걔가 복도에서 네가 부딪힌 걸 봤었대.”

메이의 말에 맨디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라이언에게 계속 추궁하더라.”

“아….”

계속해서 메이는 라이언과 애슐리 사이에 있었던 다툼에 대해 자세히 전해주었고, 맨디는 두려워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메이, 만약 그 여자애들이 나를 쫓아 온다면, 나는 망했어!”

“내 생각엔 지금으로서의 최선은 네 할 일에만 집중하는 거야. 수업도 잘 듣고 말이야. 다음 문학 수업은 언제야?”

“문학 수업이 라이언과 같이 듣는 유일한 수업이기를 바라자. 토요일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자.”

“오, 세상에…. 나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아!”

맨디가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가, 이내 자신의 극적인 태도에 웃음을 터뜨렸다.

“알아, 맨디.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게 다 좋아질 거야. 그렇게 될 거라고 확신해.”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서로를 안았다. 메이도 맨디만큼 긴장이 됐지만,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정말로, 모든 게 잘 지나가기를 바랐다.

“폴리가 여기에 와서 잔소리하기 전에 어질러진 이곳을 좀 치워볼까?”

빨간 머리 메이의 말에 맨디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숙여 책들을 집어서 책장에 꽂았다.

제 5 장

라이언이 화가 난 채로 카페테리아 밖을 나섰고, 곧장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는 화를 분출하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했다. 라이언은 폭력적이거나 거친 성향의 남자가 아니었지만, 애슐리는 그를 화나게 하는 재주가 있었고, 그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작년에 그들이 신입생이었을 때부터, 라이언이 애슐리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연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그녀의 끈질김이 이제는 선을 넘었다. 애슐리의 망상에 가까운 강요 때문에, 라이언은 이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화가 났다. 애슐리가 하는 허튼소리를 그가 진지하게 고려해본다고 해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결과는 좋지 않을 것이었다.

라이언이 남자 라커룸으로 들어가서 반바지와 티셔츠 그리고 운동화를 벗고는 그의 이름이 적힌 옷장 안에 넣었다. 그는 달리기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신체적인 활동으로 엔도르핀이 나오면서 머리를 식히고, 진정시켜 줄 것이다. 라이언이 옷을 갈아입은 후에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가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때, 그의 제일 친한 친구이자 농구팀 동료인 딘이 다가왔다.

“안녕! 기분은 어때?”

“난 지금 짜증이 난 상태야.”

라이언이 스트레칭을 하면서, 그와 마찬가지로 키가 크고 튼튼한 체격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딘에게 투덜거리며 대답했다. 계속해서 두 사람은 함께 스트레칭을 했다. 딘이 다시 말을 꺼냈을 때 까지는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카페테리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라이언?”

딘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는 갈수록 애쉬에게 인내심이 없어지는구나.”

“하지만 그런 일이 평소에 자주 있었던 일은 아니잖아, 오히려 그 반대지. 너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니까.”

딘의 말이 맞았다. 라이언은 매우 침착했고, 항상 농구팀의 동료들에게도 친절하고 다정한 행동을 하도록 격려했다. 그는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믿었고, 사람들과 다른 점 때문에 힘들 때는 대화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것이 애슐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듯했다.

“애슐리는 나를 화나게 해, 딘. 난 그 애를 견딜 수가 없어.”

“알아. 걔가 가끔 거칠지. 하지만 그 정도까지 했었어야 했어? 그리고 다른 여자라니? 이런 상황에서도 그 애랑 사귈 거야?”

라이언은 맨디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아주 짙은 색의 머리카락과 달콤한 향수 냄새가 떠올랐다. 단 한 번의 부딪힘이 그에게 이만큼이나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는 게 참 이상했다. 어쩌면 그들이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는 사실 때문인지도 몰랐다.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인식에서 오는 어떤 친숙함 같은 것…. 혹은 맨디여서, 그녀의 섬세하고 겁 많은 행동이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게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그건 아냐. 홀에서 거의 그 애를 넘어뜨릴 뻔해서 바닥에 넘어지지 않도록 내가 잡아주어야 했어. 그리고 수업에 들어가니까 같은 반이었고, 교수님이 우리 둘을 학기 과제 프로젝트를 같이 할 파트너로 지정해 주셨고. 그게 전부야.” 라이언이 딘에게 설명했다.

두 사람은 스트레칭을 끝내고 달리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예행 연습이라도 한 듯이 다리를 번갈아 가면서 박자감 있게 땅을 찼는데, 이것은 그들이 함께했던 수없이 많은 훈련과 협력해서 경기를 이겨낸 결과물이었다.

“그럼 그 소란은 다 뭐야, 라이언? 그냥 예전에 조금 알았던 여자라면서 왜 그녀를 두고 애슐리랑 싸우는 건데?”

“나는 애슐리의 오만한 행동을 받아주지 않을 거야. 그 애는 내가 누구와 사귀는지에 대해서, 친절한 방식이든 아니든지 간에, 나를 심문할 자격이 없어. 나는 그 애가 다른 학생들을 놀리고 홀대하는 것에 지쳤어.

그때 카페테리아에서 애슐리는 맨디가 같은 그룹에 속한 친구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녀를 놀림감으로 만들었어. 나는 이런 식의 권리침해에 대해서 대항을 할 거야. 치어리더팀의 코치님에게 말씀드릴 생각까지 하고 있어. 그 애는 치어리더팀의 중요한 일원으로써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모범이 되어야 하잖아. 지금처럼 행동하는 게 아니라.”

라이언의 말에 딘이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라이언은 농구팀의 주장으로써 어떤 상황에서든 팀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들을 비난해왔다. 그는 언제나 팀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대변자였고, 팀원들에게도 평등주의적인 행동을 하도록 격려하면서 지역사회를 지지하는 활동들도 장려했다. 그는 단 한 번도 치어리더들과 다툼에 연루되었던 적이 없었다.

치어리더팀의 코치님은 굉장히 엄격했고, 치어리더들에게 고도의 안무기술 연습과 모범적인 행동을 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에, 라이언의 항의는 애슐리에게 많은 문제를 초래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팀에서 제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맨디라는 여자아이는 누구야? 나는 걔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들이 경기장 코스를 두 번째 바퀴를 돌기 시작했을 때, 딘이 물었다. 두 사람의 달리는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신입생.”

라이언이 설명하자 딘이 눈을 굴리며 웃었다.

“그래…. 애슐리가 신입생에게는 혹독하지….”

“마치 한 때는 자신도 신입생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지.”

라이언의 지적에 딘이 웃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달렸고, 머리카락이 땀에 젖기 시작했지만 호흡은 잘 조절하고 있었다.

“맨디가 건물 입구에서 우리를 지나쳐 간 적이 있었어. 키가 작고 굉장히 어두운색의 머리카락에 앞머리가 있고, 녹색 빛 눈동자.”

맨디에 대해서 설명하는 라이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퍼지는 것을 보고 딘은 놀랐다. 딘과 마찬가지로 라이언도 인기가 많은 남학생이었기에 몇 명의 여자들과 사귀었던 적이 있었고, 대학 캠퍼스 파티에서 라이언의 파트너가 되고 싶어 하는 여학생들이 항상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지금까지 특정한 여자에게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사실, 단 한 번도 사랑에 빠졌던 적이 없었다.

“맨디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어.”

“음.”

딘이 달리기를 계속하며 나직하게 대답했다. 그들은 이제 운동장 세 바퀴째를 달리고 있었다.

“혹시 빨간 머리의 신입생과 함께 빨간색 차를 타고 캠퍼스에 도착했던 그 애야?”

“으흠.”

라이언의 숨이 가빠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야, 걔는 여우야!”

딘이 말하자, 라이언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며 딘도 그녀에게 관심이 있는지 알아내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맨디가 친구랑 오전에 나와 같은 수업을 들었었는데. 그런데 그 여자애, 진지한 성격이지 않아?”

“그런 것 같아.”

라이언이 걱정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대답했다.

‘ 딘도 맨디에게 관심이 있는 걸까?’

라이언의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지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강한 햇빛 때문에 이러는 걸 거야. 그래서일 거야.’ 라이언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조금 더 달렸다. 여섯 번째 바퀴를 돌았을 때, 옆에서 달리던 딘이 속도를 늦추었다.

“나는 그만해야겠다. 20분 후에 수업이 있어.”

라이언도 딘의 의견에 동의했고, 그들은 말없이 라커룸으로 이동했다. 라이언은 걸어가는 길에 딘과 나눈 대화를 다시 떠올려 보면서 또다시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

프로비던스에서의 여름날은 천천히 지나갔다. 라이언은 강당에서 맨디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는데, 언제나 조용했고, 빨간 머리의 친구와 함께 있었다. 그는 깊게 파인 짧은 옷을 입고 수업 시간이나 교실 밖에서 남자들과 시시덕거리는 대부분의 브라운 대학교의 여학생들과 맨디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맨디의 옷은 항상 단정했고, 그녀는 수줍음 때문에 낯선 사람과 겨우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문학 수업 이후로 그들은 처음으로 복도에서 지나치며 눈이 마주쳤었는데, 맨디의 얼굴이 친구의 빨간 머리카락 색깔만큼이나 붉어졌었다. 라이언이 미소를 짓자 맨디는 시선을 내리며 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다른 한 번은 라이언이 농구팀 선수들과 함께 축구장을 달리고 있을 때였는데, 그는 관중석 쪽을 보다가 맨디가 앉아서 공책 같은 것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모습을 보았었다. 라이언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는 달리면서도 맨디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맨디가 연필을 입술로 가져가서 끝부분을 물었고, 잠시 후에는 다시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맨디가 비로소 라이언을 알아보았을 때는 그가 벌써 아홉 번째 바퀴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라이언은 지나가면서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눈을 깜빡였다. 맨디는 라이언이 자신에게 인사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듯 어깨 너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맨디의 반응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라이언의 얼굴에는 바보 같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맨디가 너무 귀여워서, 계속해서 점점 더 그녀에게 관심이 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한 주가 지나갔다. 그는 대학교 캠퍼스 잔디 위에 있는 맨디를 몰래 훔쳐보았고, 복도에서는 그녀를 지나치면서 윙크를 했고,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미소를 지어 보였다. 라이언은 밤에 잠이 들기 전에도 맨디의 눈빛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도대체 그녀의 어떤 특별함이 그를 공상에 잠기게 만드는지, 무엇이 그녀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만지고 도톰한 입술에 키스하고 싶게 하며, 그녀의 몸을 그의 몸으로 닿아 느끼고 싶게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이따금 라이언은 그들이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할 때마다, 그를 대하던 맨디의 냉랭했던 태도가 생각이 났고, 그는 왜 그토록 분명하게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소녀를 원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인지 의아했다. 하지만 맨디를 품에 안았던 기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그가 걱정을 흩어버리고 그녀를 더욱더 열망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라이언은 다수의 브라운 대학교 학생들과 자원봉사를 나갔다. 교수님들이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기 위해 학생들을 모집해서 각자 잘하거나 관련 있는 활동을 맡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라이언은 어린이 농구팀의 코치를 맡았고, 일 년 가까이 7세에서 10세까지의 소년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초반에 라이언은 코치로서의 어려움을 겪었었는데, 가장 중요한 리더십 기술을 습득해야 했고, 팀원들의 조직력을 강화하면서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활기 넘치는 어린이들에게 이러한 것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다. 수업은 아주 재미있었고, 더는 그에게 의무감이 아니라 커다란 기쁨이 되었다.

프로비던스는 공원들로 가득한 도시였는데, 그중 프로스펙 트 공원 은 대학교 근교에 있는 유명한 공원 중 한 곳이었다. 그곳에는 도시를 설립한 신학자인 로저 윌리엄스의 동상이 있었고, 좋은 전망이 보이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공원은 상쾌한 공기로 가득했고, 넓은 공간에는 큰 나무들이 즐비했기 때문에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농구, 달리기, 자전거 타기 등의 운동을 즐겼다. 이 지역에 있는 많은 공립학교의 체육 선생님들도 이곳에서 학생들의 운동과 건강한 생활을 장려하기 위한 훈련을 했다.

글로스터에서 프로비던스로 이사를 온 후로 라이언은 브라운 대학교의 교외에 살았다. 그의 아파트에서 이 공원까지는 고작 몇 분 거리였고, 평소에 그는 공원을 지나 걸어서 학교에 갔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에 라이언이 지나가는 동급생들이 그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아름다운 날이네.’

라이언이 걸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태양은 밝게 빛나고 있었고, 하늘은 아름다운 풍경을 방해할 만한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그가 경기장에 도착하자, 함께 훈련을 받는 열여섯 명의 아이들이 벌써 스트레칭을 하며 경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년들은 라이언을 보고 인사를 한 후에 두 팀으로 나누어졌다.

모두가 준비를 마친 후, 한 소년이 호루라기를 불어 경기의 시작을 알리며 공을 공기 중으로 던져 올렸다. 아이들이 흥분하며 공을 차지하려고 경쟁을 하는 동안, 라이언은 각각의 선수들에게 소리치면서 방향을 지시했다.

“프레드, 스핀을 봐!”

라이언이 한 학생에게 경고하며 말했다.

“달려, 레리, 달려!”

경기가 시작하고 나서 얼마 후에, 먼 곳에서부터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라이언은 그 곡이 차이콥스키의 꽃의 왈츠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어머니께서 호두까기 인형 발레를 좋아하셨기에, 집에서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라이언이 어디에서 소리가 들려오는지 확인하려 몸을 돌렸고, 이내 눈앞에서 보게 된 광경에 놀랐다. 열네 명의 발레리나들이 한 줄로 반원을 만들고 발끝으로 서서, 음악의 리듬에 맞추어 회전하며 서서히 원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그 순간, 맨디가 등장했다. 농구팀 소년들은 맨디의 견고한 팔과 연분홍색 리어타드에 감싸여진 그녀의 완벽한 몸매를 감탄하면서 천천히 훑어보고 있었다. 짧은 검정 스커트가 그녀의 몸을 두르며 오른쪽으로 묶여 있었다. 그녀의 다리는 리어타드와 같은 분홍색 스타킹으로 감싸여져 있었고, 새틴 리본이 발목을 휘감는 빨간색 발레 슈즈를 신고 있었다. 맨디의 짙은 머리카락은 동그랗게 말아서 위로 올려져서, 그녀의 평소 스타일과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라이언은 입이 떡 벌어진 채로, 발끝으로 서서 걸으며 팔다리를 움직이는 맨디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맨디보다 작은 키의 소녀들이 발끝으로 걸으며 넓은 공간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두 줄로 나뉘었고, 맨디가 그 중앙으로 점프를 하며 섬세한 동작을 선보였다. 두 줄로 서 있던 소녀들이 맨디에게서 점점 멀어졌고, 맨디는 홀로 중앙에 남아서 더욱더 동작들에 집중했다.

맨디는 스스로가 발레를 아주 잘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했고, 그런 그녀의 춤동작을 보는 라이언의 심장이 빨라지기 시작하면서 숨소리도 들렸다. 계속해서 맨디의 동작들이 이어지면서 소녀들이 다시 그녀를 중심으로 원을 만들기 시작했고, 맨디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가 이내 분홍색 튜튜 스커트의 물결 속으로 사라졌다. 라이언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소녀들이 원을 완성하자, 맨디가 다시 나와서 피루엣을 했다.

마침내 맨디가 라이언이 있는 방향으로 돌았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라이언을 알아보았다. 맨디는 얼굴이 붉어지며 재빨리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아이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은 라이언이 몸을 돌리자, 공이 그를 향해서 전속력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피할 틈도 없이 공은 라이언의 머리를 치며 그를 바닥에 넘어뜨렸다.

‘아파. 젠장.’

통증이 몹시 심해서 그는 마치 별이 보이는 듯했다. 아이들이 라이언의 주변으로 모여와서 연달아 질문하며 그가 괜찮은지 확인했다. 라이언이 눈을 몇 번 깜박이며 눈의 초점을 맞추고는 앉아서 공이 부딪힌 머리를 문질렀다. 그는 참지 못하고서 다시 맨디가 춤을 추고 있던 방향을 다시 바라보았다.

맨디와 소녀들이 놀란 채로 서서, 그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이언이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웃어 보이자, 비로소 맨디의 눈에는 안도감이 서렸다. 그 순간 라이언이 무심코 그의 손으로 머리에 난 혹을 쳤고, 통증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다시 그가 맨디를 바라보자, 그녀는 혼란스러운 기분을 쾌활함으로 숨기려 애써 웃음 짓고 있었다.

“너 괜찮아?”

맨디가 멀리에서도 라이언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입술을 움직이며 물었다.

“응.”

라이언이 대답한 후에,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청난 두통과 그의 자존심이 상한 것만 제외하면 괜찮았다.

“얘들아, 안심해. 난 괜찮아.” 라이언이 소년들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라이언 코치님. 공을 던질 때 세기와 방향을 잘못 판단했어요.” 한 소년이 죄책감을 느끼는 듯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레오. 이런 일은 흔히 있는 일이야.”

통증에도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라이언을 보며 소년은 미소를 지었다.

“얘들아, 계속할까?”

소년들이 경기장으로 함께 뛰어갔고, 라이언이 그 뒤를 따라가서 경기장 근처의 벤치에 앉았다. 잠시 후 라이언이 다시 맨디가 춤을 추었던 방향을 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라이언은 한숨을 쉬며 다음날 도서관에서 맨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는 내일까지는 머리의 통증이 사라지기를 바랬다.

제 6장

맨디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책장에 있는 탁상시계를 보았다. 거의 저녁 아홉 시였다. 그녀는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가면서, 다음날 라이언과 만나서 과제를 하기로 한 것에 대해 생각했다. 공원에서 라이언이 훈련 도중에 공을 세게 맞았던 광경이 그녀의 마음속에 떠오르며 숨결이 가빠지게 만들었다. 맨디는 물을 마시며, 자신이 발레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라이언의 강렬한 시선을 떠올렸다. 그녀는 발레를 시작한 이래로 누군가의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이 처음으로 쑥스럽게 느껴졌다.

맨디가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것이 가능할 줄 못했지만, 그녀는 라이언이 주위에 있을 때면 더욱더 소심해졌다. 맨디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녀는 닿을 수 없는 라이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일관된 상태를 유지하고자 노력했지만, 날마다 그는 그 외모로 미소를 짓고 눈을 깜빡이면서, 조금씩 그녀의 저항력을 부수고 있었다.

“드디어 네가 도착했구나! 나는 네가 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어서 가자!”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메이가 흥분한 듯 말했다.

맨디가 고개를 돌리자, 메이가 눈을 또렷하게 강조하는 화장을 하고 어깨 아래로 굵게 웨이브 된 머리를 풀고서 꼭 맞는 흰색 티셔츠에 짧은 청치마를 입고 발목을 감싸는 샌들을 신고 있었다. 맨디는 친구를 자세히 바라보며, 그녀가 굉장히 어른스러워 보인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글로스터에서 머리에 분홍색 리본을 달고 다니던 메이가 전혀 아니었다. 어른스럽고 패셔너블 한 친구의 새로운 버전이었다.

“우리 어디에 가는 거야?”

유리잔을 싱크대 위에 올려놓으며, 맨디가 눈썹을 활 모양으로 동그랗게 올리고 물었다.

“놀러 가는 거지.”

“놀러?”

“그래.” 메이가 눈을 굴리며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우리는 파티에 초대받았잖아.”

메이가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어 맨디에게 전해주었다.

“아, 메이…. 나 파티에는 가기 싫은데….” 맨디가 대학교 파티 초대장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맨디는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수줍은 성격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대부분 결국에는 구석에 앉아서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게 되고는 했다.

“너도 좋아할 거야. 우리는 사람들과 어울릴 필요가 있어. 션과 요시도 파티에 올 거고, 우리가 밖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좋은 기회야. 어쩌면 남자를 만날지도 모르고.”

메이가 눈을 깜빡이며 웃자, 맨디는 친구의 흥겨워하는 표정을 보고 함께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난 남자친구를 찾아야 해.”

메이가 사심에 찬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나는 파티에 입고 갈 만한 옷조차 없는걸.” 맨디가 불평했지만, 메이가 그녀를 화장실로 밀어넣으며 말했다.

“샤워하고 머리부터 감아. 내가 널 예쁘게 만들어 줄게.”

“난 네가 입은 것처럼 짧은 건 절대로 안 입을 거야!”

“이건 짧은 것 이 아니라, 치마야.” 맨디가 샤워장 안으로 들어가며 소리치자, 메이가 다가와서 문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말했다.

“어쨋든 나는 입고 싶지 않아.”

“왜?”

“나에게는 짧은 옷이 안 어울리니까.”

“무대에서는 팬티가 보이는 튜튜 스커트를 입잖아. 그리고 아주 훌륭하게 어울리던걸.”

맨디가 샤워장 문 한쪽을 열고 웃으며 말하는 메이에게 물을 뿌리자, 메이가 소리를 질렀다.

“그건 발레복이잖아. 팬티가 보이는 게 아니라 리오타드라구!”

“그래그래, 아주 큰 차이가 있구나. 맨디, 넌 예뻐. 그런 널 세상에 보여 줄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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