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훈의 한마디로 주위가 조용해졌다. 모두의 표정이 어두웠다.표준우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그는 매섭게 한지훈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5천만 원이 뭐라고?! 하하! 정말 입만 살았네? 잘 들어! 이건 고작 테이블 값이라고! 테이블 값! 젠장, 빌어먹을!”잔뜩 약이 오른 표준우는 괘씸한 한지훈을 화가 풀릴 때까지 패고 싶었다.그러나 강우연과 그녀 부모 앞에서 자신의 신사스러운 모습을 잃고 싶지 않았기에 애써 화를 억눌렀다.서경희는 한지훈을 매섭게 흘기며 꾸짖었다.“한지훈, 적당히 해. 여기는 고급 레스토랑이야. 테이블 값이 5천만 원이라고! 너한테 5천만 원이 있기나 해?”“질투할게 따로 있지. 이쪽은 잘나가는 집안의 귀공자라고. 그냥 얌전히 우리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며 밥 한 끼 얻어 먹고 떨어져! 그러다가 정 있기 힘들다면 스스로 떠나도 좋아. 정말 쪽팔리게…”멸시 어린 눈빛으로 강신이 핀잔을 주었다. 강학주도 헛기침을 하며 뒷집을 졌다. 그의 마음속에도 한지훈을 향한 불만과 멸시가 가득했다.허우대만 멀쩡했지 충동적이고 무례한 이런 녀석이 어떻게 내 사위가 될 수 있단 말인가?저런 남자가 과연 강우연에게 좋은 미래를 안겨줄 수 있는가?이렇게 생각할수록 서경희의 말이 맞는 듯했다. 하루빨리 강우연에게 더 좋은 상대를 골라줘야 한다.표정우같은 도련님 정도여야지 꼭 맞다.품에 한고은을 안은 강우연이 한지훈을 말렸다.“조금만 참아요. 당신이 불쾌한 걸 알아요. 저도 내키지 않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뜻이잖아요. 밥만 후딱 먹고 우리는 돌아가자고요.”한지훈이 난감해하는 강우연을 내려다보다가 하는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한지훈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표준우가 피식 웃으며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그들도 그 뒤를 따라들어갔다. 로비에 들어선 순간, 호화로운 인테리어에 압도당해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깔끔한 배경에 고급스러운 장식과 벽에 걸려있는 그림까지 너무 눈부셔서 눈이 멀 지경이었다.“우와! 이런 고급 진 호텔은 난생처음이에요. 준우 씨가
이보다 더 화려할 수 없다!거기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식사하는 곳도 있었고 쉬는 공간도 있었으며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도 있었다. 그리고 밖에는 야외 정원이 있었다. 그 옆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수영장까지 있었다. 물위에는 수많은 화려한 불빛들이 수놓여 있었다.거기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면 높은 건물들도 한눈에 보여서 모든 것을 발밑에 밞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아줌마, 아저씨, 우연 씨, 편한 자리에 앉으세요.”표준우는 예의 있게 자리를 권하고 그들이 먼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서경희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예의도 어쩜 이렇게 바르죠? 어른이 먼저 앉기를 기다릴 줄도 알고. 정말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네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서경희, 강학주 그리고 강신이 자리에 앉았다. 의자를 만지작 거리던 서경희가 격동되어 말했다.“의자도 천연 소가죽이네요? 어쩜......이렇게까지......”연이은 칭찬에 표준우는 입꼬리를 올렸다.“당연하죠. 그렇지 않으면 5천만 원이 아니겠죠. 의자도 매일 새로 바꾼다고 하더군요. 아마 의자 하나에 백만 원은 할 거에요. 누구의 한 달 월급보다 더 비쌀 걸요?”표준우는 말을 하며 품에 한고운을 안은 채 자리에 앉는 한지훈을 힐끔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한지훈은 한고운을 챙기고 있었고 표준우와 강우연의 사이에 앉았다. 표준우의 비웃음 소리를 듣고 있던 한지훈은 그저 담담하게 미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때 기회를 잡은 서경희가 입을 열었다.“너무 과대평가했어요. 직업도 없는데요. 뭘. 매일 놀고먹으면서 일자리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아요. 우리로서는 아주 속이 터지죠.”표준우는 의기양양해서 반문했다.“네? 그럴 리가요? 직업도 없다고요?”그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직업조차 없다는 말에 그는 더욱 강우연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자식과 강우연이 어떻게 한 평생을 함께 한단 말인가?자신감이 붙은 표준우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
불만이 가득한 강우연이었지만 서경희 때문에 억지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어색한 공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분위기도 바꿀 겸 표준우가 종업원에 손짓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정하게 차려입은 종업원들이 음식을 올렸다.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서경희와 강신의 침샘이 폭발했다.“아이고! 한평생 이런 대접은 받아보지 못했는데 음식이 아니라 예술품이 따로 없네!”서경희의 입에서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정갈하고 고운 것이 모양을 흩트리기 아까울 지경이었다!강신도 얼른 한 점 집어 입안에 넣었다. 그러자 입안에서 향긋한 냄새와 함께 육즙이 팡 터졌다.“우와! 진짜 맛있어! 엄마! 이거 먹어봐.”서경희가 듣더니 예의를 차리는 것도 잊고 냉큼 하나를 집었다. 그녀의 얼굴에 행복감으로 가득 찼다. 한편 칭찬도 잊지 않았다.“정말 맛있네요! 여기를 잘 예약했어요. 이런 음식들은 미슐랭에 이름을 걸 정도 아닌가요?”표준우가 흐뭇해하며 대답했다.“아줌마가 마음에 들어 하시니 다행이네요.”한편 의자에 앉아 있는 한고운은 토실토실한 작은 손으로 테이블의 변두리를 잡고 있었다. 머리를 반쯤 빼꼼 보이고는 똘망 똘망 한 눈으로 앞접시에 놓인 토끼 모양의 케이크를 보고 고개를 돌려 한지훈을 보더니 물었다.“아빠, 고운이 케익 먹어도 돼요?”한지훈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당연하지. 아빠가 집어줄게.”한지훈은 젓가락을 쥔 손을 뻗어 케익을 집으려 했다. 그때 다른 젓가락이 나타나 그의 것을 밀쳤다. 한지훈이 고개를 돌려 보니 서경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쏘아붙였다.“먹긴 뭘 먹어! 이렇게 비싼 걸 먹을 자격이 돼? 한지훈 네가 잘 지낸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서 이런 5 천만 원짜리를 하찮게 봤잖아? 그럼 먹지 말고 가만히 보기만 해!”서경희는 해도 해도 너무 했다.한지훈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지켜보던 한고운도 울먹이기 시작했다. 맑은 그녀의 눈이 촉촉해졌다.할머니는 왜 자신을 예뻐해 주지 않는 것인지 그 작
강학주의 표정도 일그러졌다.“우연아, 아버지 말 좀 들어봐. 지훈이는 연씨 가문으로 곧 끌려갈 거야. 그러니 넌 하루빨리 좋은 짝을 만나야 해. 내가 보기엔 준우가 괜찮은 거 같아.”강학주는 그녀를 너무 몰아붙이지 못했다. 너무 강압적이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았다.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까지 자신들의 원하는 삶을 위해 그녀를 협박하는 모습에 그녀는 너무 씁쓸했다. 강우연은 눈물을 슥 닦으며 입을 열었다.“절대 동의 못해요! 이까짓 거 먹지 않을 게요! 지훈 씨, 가요!”강우연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한지훈이 한고운을 품에 안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그러자 다급해진 서경희가 달려가 그녀의 팔을 잡고 부드럽게 타일렀다.“그래그래그래! 그러라고 하지 않을게. 어머니가 잘못했어. 이렇게 비싼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온 걸 봐서라도 그냥 가면 안 되잖아? 적어도 식사는 해야지. 얼른 다시 가서 앉아.”서경희도 자신이 너무 급했다는 걸 알고 천천히 해야 한다고 속으로 되뇌었다.강우연은 그렇게 다시 자리로 돌아왔고 내키지 않았지만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다.저편에 앉아 있는 표준우도 기분이 잡쳤다. 그래도 그는 애써 미소를 쥐어짜며 입을 열었다.“우연 씨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으니 우리 너무 몰아붙이지 말자고요. 저의 능력과 우수함이 언젠가는 우연 씨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고 전 믿어요. 그러니 오늘은 식사만 하기로 하고 그 외 일은 꺼내지 않기로 해요.”그리고 그가 다시 손짓했다. 종업원이 두병의 와인을 들고 다가왔다.표준우가 와인을 들고 또 으스대기 시작했다.“이건 한 병에 5백만 원 가까이하는 로마네 꽁디에요. 한번 맛보세요.”말을 마친 표준우가 그들에게 한잔씩 따랐다.강학주와 서경희는 감격스러워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특히 눈앞의 5백만 원짜리 로마네 꽁디를 본 순간 완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이게 한 병에 5백만 원이라고요?”강학주가 재차 물었다.그는 비록 회사에서 사장직을 맡고 있지만 그저 껍
한지훈의 말이 끝나자 방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헛소리하고 앉았네!이 450상자의 로마네 꽁디 특급 레드와인은 절반이 한지훈에 보내졌다. 그는 그것들을 부하들에게 선물했다.그리고 억 단위의 1787년 산 라피트 샤또는 포브스 수집관 주인이 드래곤 헌터를 통해 한지훈에게 선물하려던 것을 한지훈이 단칼에 거절했다.한지훈은 그가 꼭 다른 목적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화가 난 표준우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와인병을 잡은 그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탁!그는 그대로 와인병을 테이블 위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지훈을 향해 소리쳤다.“뭐라고? 날 얕보는 거야? 어디 능력 있으면 이렇게 비싼 와인이라도 구해 오든지!”표준우의 뚜껑이 완전히 열리고 말았다. 그것은 한지훈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이 와인이 제일 비싼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 병에 5백만 원인 와인은 보통 서민들이 쉽게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배경도 없는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자신을 얕보려 한단 말인가!난 표 씨가문의 귀공자에 연봉이 20억을 넘는 몸이라고!한지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서 테이블 아래로 이한승에게 간단한 문자를 보냈다.한편 표준우가 화가 난 것을 보고 서경희가 그의 편을 들며 한지훈을 꾸짖었다.“헛소리 집어치워! 네 주제에 어떻게 와인을 알아? 이건 한 병에 5백만 원이라 잖아. 모르면 가만히 있어.”“그러게! 억지로 허세 부리다니! 부끄럽지도 않아?”강신이 한마디 거들었다.사실 그는 한지훈이 말할 때 휴대폰으로 몰래 검색해 봤다.한지훈의 말이 맞았다.제일 비싼 와인은 2억짜리 1787년 산 라피트 샤또였다.한지훈이 이렇게 똑똑했다고?하지만 놀라움도 잠시, 강신은 개의치 않았다. 한지훈도 전에는 한 씨 가문의 도련님이 었으니까 와인에 대해 잘 알 수도 있었다. 그러나 면전에서 표준우를 까발리는 행동은 조금 지나치다 생각했다.상대도 면이 서야지 않겠는가?몇 명의 질타에 한지훈도 고개를 떨궜다. 강우연이 테이블 아래로 그의 손을 잡으
서경희도 고개를 끄덕이며 문쪽을 가리키더니 소리쳤다.“못 알아들어? 여기서 이러지 말고 당장 꺼지라고!”그들을 한번 슥 둘러보았다. 한지훈도 여기에 계속 앉아 있기 싫었다. 그가 몸을 일으키려는 그때 강우연도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한지훈이 다시 그녀를 앉히며 말했다.“식사마저 하고 나와. 밖에서 기다릴게.”한지훈이 떠나고 안의 분위기는 바뀌었다. 강학주 일가는 표준우에 굽신거리며 술을 부으며 또 강우연을 부추기며 술을 따르게 했다.그때 문이 다시 열리고 회색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이 손에 두병의 와인을 들고 미소를 띄고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7-8명의 종업원이 각양각색의 음식을 들고 있었다.“이분이 우연 씨죠?”중년 남성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강우연은 어리둥절했다. 눈앞의 이 사람은 그녀가 모르는 사람이다.그녀가 일어서며 물었다.“누구시죠?”“안녕하세요. 저는 리아플의 사장 마소문입니다. 여기에 왕림하셨다고 하여 해외에서 특별히 초빙한 셰프의 특별 요리와 두병의 로마네 꽁디를 선물하려고 직접 오게 되었습니다.”마소문은 시종일관 미소를 장착하고 있었다.그들은 접시에 담긴 음식과 와인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건 한지훈이 말한 그 로마네 꽁디가 아닌가!2년 전 한병에 무려 4천만 원에 팔리던 것이다!이건...... 표준우가 주문한 것보다 훨씬 비싼 거였다!표준우도 당황했다. 리아플 사장이 직접 올 줄은 몰랐다.그 역시 마소문을 처음 보았다.마소문은 S시의 호텔 업계에서 거물급이다. 개인 몸값은 이미 조 단위를 넘어 표 씨 가문을 훨씬 능가했다.표준우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공손한 자세로 마소문을 향해 악수를 청했다.“마 사장님, 이거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전 그저 친구 몇 명 데리고 온 것 뿐인데 이렇게 직접 비싼 와인도 올려주시고. 감사해요.”표준우의 머리 회전속도는 빨랐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에 자신 말고는 리아플 사장을 직접 올 수 있게 할 인물이 없다고 판단했다.강학주의 집안?아니면 그
강학주 일가도, 표준우도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들은 동상처럼 굳어있었다.한 선생?“마 사장님, 잘못 아신 게 아닌가요? 한 선생이라뇨? 혹시 한지훈을 말하는 거예요? 그 자식 때문에 이런 진수성찬을 올리는 거라고요?”표준우가 다급히 물었다.그의 체면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마소문이 자신의 체면을 봐서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직접 한지훈 그 녀석 때문이라고 한다.이건 어느 나라 농담인가?서경희은 매우 의아했다.“농담하시는 거 아니죠?”마소문의 기분이 일시에 다운되었다. 그가 차갑게 반문했다.“농담이라고 생각해요?”마소문은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보고 짜증스러운 말투로 덧붙였다.“한 선생이 없으니 이것들만 아깝게 되었네요!”말을 마치고 마소문은 직원들을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분위기가 적막했다. 그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유일하게 강우연만 얼굴이 환했다. 그녀는 보란 듯이 서경희와 표준우에게 말했다.“어머니, 준우 씨, 미안해요. 전 이만 가볼게요. 이것들은 저의 남편의 체면을 봐서 가져가지 않았으니 천천히 드시고 오세요.”강우연은 한고은을 품에 안고 천천히 그곳을 벗어났다.그녀는 오랜만에 속이 다 후련했다. 이렇게 기쁜 것이 얼마 만인가!한지훈은 멋진 사람이다!그녀가 선택한 남자는 괜찮은 사람이다.강우연이 떠나자 표준우도 멎쩍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천천히 드세요. 저는 회사에 일이 좀 생겨서 먼저 일어날게요. 계산은 마쳤으니 걱정하지 마시고요.”너무 창피했다.그런 자식에게 밀렸다.한지훈, 그 자식은 쓰레기라고 하지 않았는가? 어떻게 리아플의 마소문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그럴 수 있단 말인가?서경희와 강학주의 얼굴도 상기되었다. 갑자기 입맛도 사라졌다. 강신만 여전히 먹고 마시면서 구시렁거렸다.“왜 안 먹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진짜 처음이야. 와인도 너무 훌륭해! 몇천만 원이라 그럴만해! 가만, 그 한지훈이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마소문이 이렇게 떠받드는 거지?”“무슨 이유가 있겠어! 또 한민학때문에 그런
한지훈이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그쪽이 이한승이 말한 마소문이에요?”“네, 그렇습니다.”이 남자는 지극히 평범한 옷차림이었지만 마소문은 감히 홀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는 알 수 있었다. 한지훈의 여유로운 몸짓과 표정 하나하나에서 드러나는 그 기품, 그리고 아우라까지. 이것들은 일반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이한승이 왜 이 사람을 잘 모시라고 신신당부했는지 알 것 같다.“네. 알겠어요.”한지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때 한고운을 품에 안고 걸어 나오던 강우연이 한지훈 앞에 몸을 한껏 움츠리고 서 있는 마소문을 보고 어리둥절했다.“지훈 씨, 무슨 상황?!”한지훈이 그녀에게 다가가 한고운을 자신의 품속에 안았다. 그리고 다정하게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우린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일 뿐이야. 그렇죠? 마 사장?”눈치 빠른 마소문이 고개를 끄덕였다.“네네네.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죠. 그럼 천천히 얘기 나누세요. 전 할 일이 남아서 이만 가볼게요.”그렇게 마소문이 떠나고 강우연의 의심 어린 눈초리가 한지훈을 향했다. 팔짱을 끼고 그녀가 탐문했다.“솔직하게 말해 봐요. 지훈 씨랑 마 사장이 언제부터 알고 지냈어요?”한지훈은 급하게 둘러댔다.“5년 전부터 안면이 있었지. 그때 아버지와 마 사장은 친구였어.”그는 한고운의 두 손을 잡고 이리저리 휴게실을 뛰어다녔다.“고운아, 신 나?”“네, 신나요. 우아......”한고운은 꺄르르 웃으며 행복해했다.강우연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녀는 한고운이 혹시라도 넘어질 가봐 그들의 뒤를 바짝 따랐다.저녁, 강우연과 한고운이 잠들어서야 한지훈은 밖으로 나와 용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됐어?”용일이 깍듯하게 대답했다.“사령관님, 3만 명 태풍군이 S 시에 진입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훈련을 목적으로 여러 조로 나누어 진입할 것입니다.”한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그리고 별장은 어떻게 됐어?”“사령관님, 조금 골치 아픈 일인데 S
이 둘과 비교하면, 기자인 그녀는 마치 한 줌 모래처럼 미미한 존재였다.임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오르자, 유 씨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사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금의 용국은 이미 몇 년 전의 용국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내 뒤에는 오대 명산이 있단 말이지.”“우리 오대 명산이 널 지지하는데, 뭐가 두려운 것이냐? 설령 용국 조정이라도 감히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줄곧 내가 한 말이었으니 잡으려면 나를 잡는 거지, 널 잡을 일은 없다.”임설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한 듯 보였으나,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지만…… 유 씨 어르신, 그건 전부 어르신의 추측일 뿐이에요. 우리 손엔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증거? 증거가 그렇게 중요해?”유 씨 노인은 냉소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무종 전체가 내 말에 동의한다면, 그게 바로 증거지!”비록 천릉자가 대량산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한지훈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만 한다면 국왕은 가장 중요한 의지를 잃게 된다.바로 이때, 국왕의 자리를 노린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때, 산성시.산중에 위치한 호화로운 별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인에게 말했다.“선아, 며칠 전 장 도령께서 놀란 일이 있었단다.”“우리 천산 장씨 가문과는 대대로 교류가 깊었지. 어떤 의미에서든, 넌 가서 한 번은 그를 봐야 하지 않겠니?”“그리고 네 신분도 좀 자각해야 해. 진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어찌 그리 속된 백성들처럼 옥기점 같은 데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냐!”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진천국, 산성 진씨 가문의 가주였다!진천국이라는 이름은 산성 전체에서 거의 군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특히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진천국의 사문은 현재 산성 최대의 종문인 천앙종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은 지금 천산 장씨 가문과 우호 관계를 다져가며, 혼인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만일 혼인이 성사된다면, 진씨 가문은
사실, 한지훈이 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미 유 씨 노인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오대명산과 무종 사람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어찌 한지훈이 모를 수 있을까!최근 이 시기 동안 천릉자의 기세가 드높다는 건, 곧 오대명산이 천릉자를 내세워 한지훈이 용국에 세운 공적을 지우려는 의도임을 뜻한다.게다가 이 기회에 국왕의 지위마저 위협하려는 것이었다.개인의 영예나 치욕 따위는 한지훈에게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국왕의 권위를 흔드는 일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오대명산의 계략을 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천릉자의 기세가 가장 드높을 때 정면으로 한방 먹이는 것이었다!그리고, 천릉자가 살해당한 사건은 과연 큰 파장을 일으켰다!그 전에 오대명산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보도하게 하려고 수많은 언론 기자들을 초청했다.하지만 정작 결과는,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장에 와 있던 언론사 수가 너무 많았고, 모두가 생중계로 현장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수많은 인플루언서들까지 합류하며 정보를 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이 사건은 마치 다리가 달린 듯, 하룻밤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흥! 정말 웃기는군. 그 따위가 어찌 한지훈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한지훈보다 깨달음이 뛰어나다고? 타고난 자질이 낫다고? 결국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렸잖아!”“흥, 내 보기엔 그냥 날뛰는 광대였을 뿐이지!”“날뛰는 광대? 그래도 광대는 멀쩡한 머리를 잃진 않겠지! 하하하…”온라인에서는 조롱이 난무했고, 항산의 사람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한순간에 오대명산의 기세는 급격히 꺾이고 말았다.그 뒤 한 달 동안, 모든 이들의 화제는 이 사건에 쏠렸다.오직 한지훈만이 조용히 천생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따라 진지하게 약제를 조합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그에게는 강우연이 천신계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이런 화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게다가 천하 정세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가 도중에 강탈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령풍이 자소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는 약속대로 천릉자에게 져주지 않을 가봐 걱정됐다. “여러분, 드디어 가장 관건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됐을지 함께 알아봅시다!”한 인터넷 BJ는 생방송을 켜고는 팬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흘렀고, 모두들 손꼽아 승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산 길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 나왔다. 다만, 천릉자와 장령풍 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죠? 장 사부님이랑 천릉자 사부님은 왜 여태까지도 나오지 않는 거죠?”임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 격렬하게 싸운 나머지 모두 중상을 입어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필경 모두 동문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한판 붙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둘 거야!”유 씨 어르신은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대결은 5대 명산이 함께 손을 잡고 벌인 판이다. 게다가 천산 장 씨 집안도 이 계획에 얽혀있었기에, 절대 어떠한 실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위에는 또 수많은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의외의 사고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 씨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산길에서는 어두운 안색의 항산 제자 4명이 단대 하나를 들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내 카메라들은 일제히 그 단대에 초점을 뒀고, 모든 기자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 단대 위에는 머리 없는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웬 동그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천릉자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한편, 몇 명의 장 씨 집안 자제들 역시 단대 하나를 들고는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장령풍
그러나 한지훈은 장령풍을 투명 인간 취급한 체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여전히 깊은 공포 속에 빠져 있었다. 사실 천릉자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방금 그와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천릉자의 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두 사람의 실력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천릉자의 촘촘한 검망을 깨뜨려 그의 머리를 아작 낸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최선을 다해봤자 기껏해야 천릉자에게 상처만 입힐 거라 확신했다. 천릉자를 죽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모두들 알다시피 검망 아래에서는, 수천 갈래의 검의 습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 검망을 피해 사람을 죽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검방을 피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2성 천신계 강자라 하더라도 밀집된 검망을 마주하게 되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게 되고 더욱이는 천릉자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오직 나뭇잎 하나만으로,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닥치는 대로 나뭇잎을 던져 천릉자의 머리를 아작 냈다. 지금 이 순간, 산 전체는 비할 데 없이 조용했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줄곧 조용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감히 고개 한번 들어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나서야 장령풍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한지훈의 자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는 비로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장령풍, 오늘 벌어진 일을 소문내면 장 씨 집안은 멸망하게 되는 줄 알아!”“네... 저는... 아무것도 못 본겁니다!”크게 놀란 장령풍은 벌벌 떨었다. 한지훈의 경고는 그에게 있어서 성지였다. 한지훈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용경과는 80리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직 용국을 위해 복수
게다가 사방에서 한지훈을 헐뜯고 있는 발언들에 대해, 장령풍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한지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몇몇 명산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훈이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역외 강자조차도 흔들 수 없는 거물을, 누가 감히 건드리려 하겠는가? 그러나 옆에 있던 천릉자는, 장령풍의 표정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한지훈의 정체가 뭐든, 자신이 쟁취해야 할 성과를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는 장령풍과 상의도 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그물처럼 촘촘한 검망이 한지훈의 정수리 위에 펼쳐졌다. 그는 단 한 방에 한지훈을 산산조각 내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건드리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온 하늘을 덮은 검망에도, 한지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나뭇가지에서 잎사귀 하나를 따냈다. 그러고 나서는 천릉자가 서있는 쪽으로 잎사귀를 가볍게 던졌다, 곧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잎사귀에, 제대로 화가 난 천릉자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잎사귀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무종 모든 종사들의 장기였다. 그러나 종사계의 실력은, 그저 전신계와 같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성 천신계 고수인 자신이 뜻밖에도 전신계 같은 땅강아지한테 무시당하게 될 줄이야?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천릉자는 곧바로 또 하나의 검망을 휘두르며 사악한 웃음을 보였다. “네 이 녀석, 천신계 강자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주마!”“죽어!”지금 이 순간, 천릉자는 이미 한지훈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은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눈앞의 상황에 장령풍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에 이미 한지훈의 전력을 직접 목격했었다. 모든 전투에서,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던졌었다.
천산 장 씨 집안과 항산 사이에는 서로 맺은 약속이 있었다. 오늘 이 자소화도 사실은 천릉자에게 주기로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소화 자체는 결코 희귀하지는 않지만, 꽃이 피기 전의 자소화를 찾는 건 매우 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대다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기 전에, 산속의 맹수들에 의해 먹히고는 만다. 사실 천신계 강자에게 있어, 자소화의 장점은 셀 수 없이도 많았다.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순조롭게 2성 현급 천신계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큰 유혹 앞에서, 장령풍은 장 씨 집안과 항산의 약속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생각뿐이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천릉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령풍, 작은 것을 얻으려고 큰 것을 잃으려 하지는 마. 당시 한지훈의 그 사건도 장 씨 집안이 자초한 일이었어. 네가 자소화를 손에 넣는다면, 그동안 우리가 한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사실 전에 5대 명산, 항산 그리고 천산 장 씨 집안이 줄곧 천릉자를 치켜세운 이유는 그 배후에는 아주 큰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불세출의 천재란 타이틀을 근본적으로 꾸며낸 것이다. 사실 천릉자는 이미 30년 전에 항산 문하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항산은 줄곧 그를 중점 육성 대상으로 간주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4년 만에 단번에 천신 경계를 돌파하게 된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가짜였지만, 그 최종 목적은 천릉자를 이용하여 한지훈을 호되게 밟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유 씨 어르신의 발언과 언론을 통해 한지훈은 영원히 용국의 치욕이라는 이미지로 매장하려는 속셈이었다.그러려면 이 과정에서 천릉자의 후광을 더욱 밝게 비추어야 했다. 그의 후광으로 한지훈의 공적을 덮어 그를 폄하하고 말살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획이었다. “장 씨 집안의 계략이 뭐가 대수야? 난 지금 오직 이 자소화만 갖고 싶을 뿐이야!”장령풍은 여전히 굳은 표정
만약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이 내용이 보도된다면 전 세계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 될 것이다.필경 현재 용국은 물론, 심지어 전 세계가 모두 한지훈이 단지 일성 준 천신계의 실력으로 10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참살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 세계는, 한지훈과 용국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그 배후에 호천 창세가 손을 쓴 거라면 용국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한지훈은 또 어떻게 될까? 과연 누가 용국을 두려워하겠는가? 아마 그 누구도 한지훈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 않을 것이다.“됐어, 한지훈 그 반역자에 대해서는 이쯤하자. 저 두 사람의 시합이나 지켜보자고!”유 씨 어르신은 의도적으로 반역자라는 세 글자를 강조하며, 한지훈의 못된 이미지를 제대로 박았다. 한편 그 시각, 한지훈도 어느새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은 여전히 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장령풍의 상황은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새하얀 도포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장령풍은, 어느새 피범벅이 되었고 분노 가득한 두 눈동자는 천릉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반면 천릉자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여유롭게 한 손을 짊어진 채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듣기로는 너희 장 씨 집안 삼절진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하던데, 오늘 보니 역시나 명실상부라 느껴지긴 하는구나. 하지만 다만 아쉬운 건, 넌 아직 제대로 불꽃이 튀지 않아 천절진의 위력은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앞으로 만약 10년만 더 지나게 된다면, 나중에 나의 천망 검진은 너를 더 이상 격파하기도 어렵게 될 거야. 하지만 어찌 됐든 그건 10년 후의 일이니, 오늘은 일단 이 자소화를 나한테 양보해!”이내 천릉자가 허리 굽혀 자소화를 따려는 순간, 숲속에서는 갑자기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오옥!”불곰보다도 몇 배나 더 큰 맹호 한 마리가 갑자기 숲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순간 천릉자와 장령풍 모두 멍해졌다. 전에 5대 명산 고수들이 이미 산꼭대기를
유 씨 어르신의 말에, 임설은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기가 돌아온 후, 모든 사람들의 몸에는 큰 변화가 생겼고 저항력도 강해졌을 뿐만 신체능력도 향상되었다.그러나 마찬가지로 맹수들도 더욱 강해졌다. 만약 임설이 맹호를 상대한다면, 그건 바로 먹잇감이 되는 것이었다.당시 한지훈의 일전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상대하다니, 게다가 모두 한지훈보다 한두 단계 높은 경지의 고수들이라니. 비유하자면 당시의 한지훈은 마치 현재의 임설과도 같았고, 그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은 바로 맹호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결 결과는, 전혀 추측할 필요가 없이 다들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당시 그 대결이 만약 오로지 한지훈의 소행이었다면, 이건 합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유 씨 어르신은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해졌다. 필경 유 씨 어르신은 화산 고수중 한 명이었기에, 그의 말은 신빙성이 아주 높았다. 게다가 진정한 무도 중인 만이 한지훈이 당시 직면한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유 씨 어르신은 이런 속임수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무종이 점점 강해지게 되면서, 현재 더욱 많은 일반인들이 모든 경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잘 알게 되었다. 천신경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전신계라 하더라도 작은 경계 사이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즉 천릉자는 비록 일성 준 천신의 최고 실력에 도달하긴 했지만, 그가 2성 천신계를 돌파하지 못한 이상, 2성 천신계 상대에게 있어 그는 마치 땅강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두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 전혀 같은 수평선에 놓여있지 않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 “어르신, 그 말씀은 전에 한지훈이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하여 모든 사람들을 속여왔다는 뜻인가요?”임설이 다시 물었다. “그래. 중요한 포인트를 짚었네. 너희들 아직도
임설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혹시 임설이니?”바로 이때, 임설의 뒤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씨 어르신?”고개를 돌린 임설은, 뒤에 선 노인을 보고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이내 급히 열정적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녀가 유 씨 어르신이라 부르는 이 사람은 바로, 세속에서 활동 중인 화산 강자이자 현재 무도 재판소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게다가 화산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에 유 씨 어르신은 세속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매체인으로서 임설 역시 유 씨 어르신이 낯설지는 않았다. 게다가 전에 그녀는, 유 씨 어르신의 인맥을 통해 5대 명산의 3기 다큐 영화까지 제작했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왜 여기 계신 거예요?”임설은 겉으로는 궁금해하는 척했지만, 사실 내심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이었기에, 같은 5대 명산인 화산에서 사람을 보내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난 단지 길을 가던 중 한번 와서 본 것일 뿐이야. 그나저나 이 아이들은 이젠 모두 어른이 되었는데, 이들이야말로 용국의 미래 희망이지!”유 씨 어르신은 눈을 지그시 뜨고는 산 꼭대기 쪽을 유유히 바라보았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임설은 급히 보조 카메라 감독을 불러 휴대폰으로 촬영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내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유 씨 어르신 가까이에 다가갔다. “어르신, 어르신의 경험으로 봤을 때 오늘 이 자소화, 과연 어느 집안이 가져갈 거라고 예상하시나요?”필경 유 씨 어르신의 신분 지위는 꽤나 높았기에, 아마 일부 내막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5대 명산끼리의 호흡은 결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령풍과 천릉자가 맞붙기도 전에, 아마 암암리에 모든 준비를 마쳤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아이고, 그 질문은 좀 난처하네. 원칙부터 말하자면, 장 씨 집안 역사는 엄청 유구하지. 우리 용국의 많은 비진도 모두 장 씨 집안으로부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