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식은 앞에 저승사자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공포에 휩싸였다.남자는 피에 굶주린 맹수의 눈빛을 하고 그를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그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겁에 질린 이현식은 연신 뒤로 뒷걸음질 치며 소리쳤다.“너… 뭐 하려는 거야? 여기 정부 기관이야! 나 품질관리 이현식 부장이라고! 넌 도대체 누군데 나한테 이러는 거야?”한지훈은 한발 한발 다가가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싸늘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나 강우연 남편 한지훈이야!”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는 이현식의 안구를 조준하고 주먹을 휘둘렀다.이현식의 두 눈에 시퍼렇게 멍이 들더니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악! 이 멍청한 백수 자식이! 너 미쳤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나 품질관리센터 이현식 부장이라고! 강우연이 가져온 샘플 내 허락이 있어야 통과시킬 수 있단 말이야! 그런데 네 놈이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앞으로 너희가 보낸 자재는 절대 통과시켜 주지 않을 거야! 절대!”한지훈은 살짝 비웃음을 짓고는 말했다.“이현식 부장? 당신 권력이 그렇게 막강해? 정부 집행관 앞에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당연하지! 집행관은 내 매제야! 내가 말 한마디만 하면 요구에 따라줄 거라고!”이현식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벌벌 떨면서도 기죽지 않고 한지훈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멍청한 자식! 이제 넌 끝장이야! 강우연도 끝장이야! 오늘 이 일로 정신 손해 배상까지 전부 청구할 거야! 내 말 한마디면 강운은 절대 품질합격 결과서를 받아볼 수 없을걸?”“그래?”한지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입에 물고 소파에 가서 앉았다.“이 부장, 정말 막대한 권력을 가졌네?”“당연하지!”이 부장은 냉소를 지으며 허리를 곧게 펴고 한지훈을 내려다보았다.“이제 알았으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감이 오지? 내 조건은 네 마누라를 일주일간 나한테 빌려주고 치료비 2억을 배상하는 거야! 그러면 품질보고서에 합격 도장을 찍어주지! 어때? 남는 장사 아니야?”
소지성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회의에 참석했던 고위 공무원들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S시 시장 소지성이 이토록 지극정성으로 대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물일지 궁금하기도 했다.“소 시장님, 품질관리센터 손 집행관께서 시장님과 회의 중이시라고 들었는데 맞습니까?”한지훈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그 말을 들은 소지성은 움찔하며 사람들 틈에 앉아 있는 손강호를 찾아내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여기 있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손강호는 시장이 자신을 바라보자 덩달아 긴장했다.‘설마 내가 뭘 잘못한 건가?’한지훈은 이현식의 사무실 소파에 앉아 싸늘한 시선으로 이현식을 노려보며 말했다.“지금 자재 품질관리센터에 있는데 우리 집사람이 품질 문제로 두 번이나 샘플을 보내 검사를 진행했거든요? 전부 불합격이 나왔네요.”그 말을 들은 소지성은 큰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한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품질관리센터는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라 제가 아무리 시장이라도 나서기 힘듭니다. 만약 사모님께서 자재 문제로 고민하신다면 제가 새로운 공급처를 알아봐 드리겠습니다.”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한지훈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아니라 시장님, 이 센터의 이현식 부장이 저한테 그러는데 샘플 품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통과시켜 주기 싫어서 불합격을 줬다고 하네요. 그리고 품질센터는 자기 말이 곧 법이라며 자기가 기분 좋으면 통과시켜 주고 기분 나쁘면 불합격이라는데요? 두 가지 샘플 중에 하나는 내가 군 공장에서 납품한 샘플입니다. 지금 이 부장은 제가 군인을 사칭했다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네요.”그 말을 들은 소지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네? 이현식 이 자식이 감히 한 선생께 그런 말을 지껄였단 말입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손 집행관을 그리로 보내겠습니다!”“20분 드릴게요. 20분 안에 결과가 없으면 내가 스스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겠군요.”한지훈이 담담하게
손강호의 이마에 식은땀이 뚝뚝 흘러내렸다.이게 다 무슨 소리지?이현식이 군 공장에서 나온 품질보고서를 찢어버렸다니?하지만 한 선생이나 한 선생 사모님은 그가 모르는 인물이었다. 도대체 어떤 인물을 건드렸기에 시장이 이 정도로 화가 나신 걸까?“시장님, 그분들은 도대체 누굽니까? 일이 많이 심각한가요?”손강호는 이마의 식은땀을 훔치며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소지성이 싸늘한 말투로 대꾸했다.“그분들 신분을 자네 같은 말단 공무원이 알 필요 없지! S시에서 시장인 나조차도 눈치를 보는 인물이야. 그분께서 S시에서 정권을 잡겠다고 하면 나도 순순히 물러나야 한다고! 그런데 이현식 그놈이 그런 분을 건드린 거야! 알아들었어?”소지성의 말에 현장에 있던 공무원들은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한 선생이라는 자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이렇게 무시무시한 권력을 가진 걸까?설마 수도에서 보낸 감찰관?손강호는 고개를 바짝 숙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시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돌아가서 처리하겠습니다!”“20분이야! 자네한테 주어진 시간은 20분이라고! 20분 안에 모두 처리하고 나한테 연락해! 한 선생이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나한테 전달하면 자네는 그 옷 벗어야 할 거야!”말을 마친 소지성은 씩씩거리며 먼저 회의실을 나가버렸다.손강호는 지체할 시간 없이 회의실을 뛰쳐나갔다. 그는 뛰면서 운전기사를 호출해서 입구에서 대기하라고 지시했다.품질센터로 향하는 길에서 손강호는 이현식에게 계속 통화를 시도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조급해진 손강호는 짜증스럽게 핸드폰을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이현식, 이 새끼 때문에 언제 한번 크게 사고 날 줄 알았어!”한편, 이현식의 사무실.이현식은 만면에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한지훈에게 비아냥거렸다.“한지훈, 벌써 15분이 지났는데 손 집행관은 지금 어디쯤 왔대?”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던 한지훈은 번쩍 눈을 뜨고 싸늘한 말투로 대꾸했다.“집행관이 도착하면 넌 목숨 하나는 건질 수 있을 테지만 집행관이 안 오면 넌
그 말을 들은 이현식은 진심으로 당황했다.한지훈의 표정과 말투, 모두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이현식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래도 체면은 포기할 수 없었는지 그는 헛기침하며 소리쳤다.“헛소리 지껄이지 마! 센터에서 살인하겠다고? 나 품질센터 이 부장이야! 내 매제가 여기 집행관이라고! 감히 내 구역에서 이상한 짓하면 바로 잡혀가서 처벌받아! 그때가 되면 네 마누라랑 네 딸년은 가장을 잃게 되겠지! 강운그룹은 네가 한 짓 때문에 모두의 비난을 받게 될 거야!”“그래? 이 부장, 넌 지금도 내가 한 말이 우습게 들리나 봐?”한지훈은 싸늘하게 말하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겁에 질린 이현식은 연신 뒷걸음질 쳤지만, 뒤쪽은 창가라서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었다.“오… 오지 마! 계속 다가오면 나 뛰어내릴 거야! 네가 여기서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고 소리칠 거라고!”이현식은 완전히 당황했다. 한지훈은 그가 소문으로 듣던 것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정말 이곳에서 살인을 저지르려는 걸까?“이 부장, 아래를 좀 내려다보고 뛰어내릴지 가만히 있을지 결정해.”한지훈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이현식은 당황한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그 순간 이현식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아래층에는 네 대의 군용 트럭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옆에 무장 군인들이 총을 들고 이쪽을 겨누고 있었다. 품질센터는 현재 군인들에게 새어나갈 틈도 없이 포위된 상태였다.모든 군인들의 총구는 이현식의 사무실을 겨누고 있었다.무장 군인들의 앞에는 임량이 살기를 번뜩이는 눈으로 사무실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품질센터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직원들은 안으로 밀고 들어온 군인들에게 제압되었다.강우연과 그녀의 직원들은 호위받으며 밖으로 나왔다.그녀는 멀리서 실탄을 장전한 군인들과 맨 앞에 서 있는 임량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강우연은 멍하니 고개를 들어 이현식의 사무실을 올려
군 공장!그들이 정말 군 공장 제품을 가져왔을 줄이야!이게 어떻게 가능하지?분명히 한정그룹이 망하고 혼자 살아남은 한지훈은 모든 걸 잃고 강운그룹에 데릴사위로 들어갔다고 했다.그런 사람에게 인맥이라는 게 존재할 리 없었다.그리고 이때!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군복을 입은 임량이 총을 들고 신속히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한지훈을 보더니 공손한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한 선생님, 지시하신 대로 백 명의 병사가 이 품질센터 건물을 포위하고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한지훈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고개를 돌려 이현식을 바라보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21분이 경과했네. 손 집행관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어. 그렇다면 이 부장, 이제 우리가 빚을 청산할 시간이야!”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한지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살기가 청사 전체를 집어삼켰다.아래층에서 대기하던 병사들과 제압된 직원들, 그리고 강우연 일행마저 그의 날카로운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정말 어마어마한 기운이었다.‘지훈 씨일까?’강우연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안으로 달려 들어가려 했지만,병사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안으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지금은 공무집행 중입니다!”강우연은 조바심이 나서 다급히 말했다.“우리 남편이 안에 있다고요!”그 말을 들은 병사가 인상을 쓰며 그녀에게 물었다.“확실해요? 안에는 우리 임 대위님하고 또 다른 장관님 한 분을 제외하면 이 사건 관련 용의자밖에 없는데요? 저희가 하는 일에 협조해 주시고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강우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다른 한 분의 장관?그녀는 고개를 번쩍 들고 창문을 바라보았다.‘지훈 씨가… 장관이었어?’그 시각, 이현식은 한지훈이 한발 한발 다가오자 엉금엉금 기어서 도망치려고 했다.하지만!쾅!한지훈이 발로 복부를 걷어차자, 그는 힘없이 공중을 날아 사무실 책상에 허리를 부딪히고 쓰러졌다. 원목 재질로 된 사무실 책상이 엄청난 힘에 밀려 뒤로 1미터나 이동했다!이현식은 입에서 피를 뿜으며
급급히 달려온 손강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이마에 식은땀이 돋았다.조금만 더 늦었으면 그는 총을 발사했을 것이다.이현식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손강호를 보자 그는 이때다 싶어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손 집행관, 빨리 나 좀 구해줘! 우린 가족이잖아! 나 정말 죽을 뻔했다고!”이현식은 사실 손강호보다 나이가 어렸다. 손강호의 누나가 젊은 이현식을 보고 한눈에 반해 결혼식을 올린 것이었다.손강호는 당장이라도 이현식을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었다.누나의 부탁이 없었으면 절대 저런 놈을 요직에 추천하지 않았을 것이다.이현식이 어떤 놈인지 손강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안타깝게도 그의 누나는 이현식의 감언이설에 속아 무슨 일만 생기면 그를 찾아와서 울고불고 하소연하고는 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손강호도 그를 도와줄 자신이 없었다. 그는 건드려서는 안 될 인물을 건드렸다.안으로 들어간 손강호는 분노한 얼굴로 이현식의 귀뺨을 때렸다. 순식간에 이현식은 이빨이 부러지면서 입에서 피를 토했다.“이현식! 너 정말 미쳤구나! 지금 네가 누굴 건드렸는지 알기나 해? 내가 너 같은 놈을 믿고 요직에 추천한 게 잘못이지! 내가 네 뒷수습한 게 올해만 해도 몇 건이야! 도대체 넌 왜 그 모양이야?”이현식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변명했다.“매제, 그래도 내가 형부잖아. 누나를 봐서라도 나 좀 살려줘….”손강호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이현식의 배를 걷어차고는 공손한 자세로 한지훈의 앞에 고개를 숙였다.“한 선생님이시죠?”한지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손강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손 집행관님, 지각하셨네요.”손강호는 순간 당황했다. 한지훈의 뒤에는 군부 대위가 지키고 있었다.“죄송합니다! 오는 길에 차가 좀 막혀서 최대한 빨리 오려고 했지만 늦었습니다. 사모님께서 자재를 가져왔는데 압류당했다고 하셨죠?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당장 처리하겠습니다!”손강호가 장담하듯 말했다.하지만 한지훈의 반응은 싸
그 말을 들은 한지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물었다.“기태식? 그 J그룹 후계자?”“너한테 묻잖아!”손강호가 짜증스러운 얼굴로 재촉했다.“네! 그 J그룹 자제가 맞습니다.”이현식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울며 말했다.“집행관님, 한 선생님, 아시다시피 저는 일개 공무원에 지나지 않아요. 제가 무슨 수로 자본 세력에 맞서겠습니까. 저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요. 목숨만 살려주세요!”말을 마친 이현식은 바닥에 쾅쾅 머리를 찧으며 애원했다.한지훈은 살기가 번뜩이는 눈빛으로 놈을 노려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기태식과 J그룹이라! 일이 재밌게 돌아가는군!”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이현식에게 말했다.“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말 안 해도 알겠지?”이현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옆에 있던 손강호는 다가가서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뭘 멍하니 서 있어? 당장 사모님께 합격 결과서를 내어드리지 않고!”“네? 아…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갈게요!”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이현식은 옷매무시를 정돈하고 다급히 사무실을 나섰다. 멀리서 강우연 일행이 보이자, 그는 비굴한 자세로 다가가서 웃으며 말했다.“강우연 씨, 죄송해요. 전에는 제가 눈이 돌아가서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지금 바로 합격 결과서를 내어드릴게요!”강우연은 입가에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기괴한 웃음을 짓는 이현식을 보자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이 부장님, 괜찮은 거죠?”뒤에 있던 직원들은 싸늘한 눈빛으로 이현식을 노려보았다.이현식은 다급히 휴지로 입가를 닦고는 웃으며 말했다.“괜찮습니다. 급하게 내려오다가 계단에서 좀 굴렀어요. 그것보다 강우연 씨, 이쪽으로 오시죠.”잠시 후, 이현식은 직접 강우연에게 품질 합격 결과서를 건네주었다.결과서를 받은 강우연은 뭔가 어안이 벙벙했지만,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이걸 받아냈네. 당장 공장에 연락해서 생산라인 가동하라고 지시해요! 오늘 저녁 야근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지훈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뭐? 그런 일이 있었어? 잘못 들었겠지. 자재는 친구를 통해 군 공장에서 가져온 거잖아. 그런데 이현식이 군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이 품질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으니,군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있나. 난 그냥 방관자에 불과해. 이제 일도 끝났으니 집에 가자.”강우연은 입을 삐죽이며 여전히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은 얼굴로 한지훈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결국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고마워요, 지훈 씨. 지훈 씨 아니었으면 오늘 무슨 일이 있었을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아요. 이현식 그 사람이 나한테 그런 역겨운 생각을 품고 있을 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저런 사람이 정부 요원이라니!”강우연은 지금 생각해도 등 뒤에 소름이 돋았다.한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품에 안고 말했다.“이제 다 지나갔어. 이런 사건이 있었으니, 이현식은 분명 해고당할 거야. 경찰에 끌려가 심문을 받을지도 모르지.”강우연은 한지훈의 따뜻한 품에서 안정감을 찾고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솔직히 그와 한지훈 사이에는 스킨십이 많지 않았다. 이렇게 거리에서 서로 포옹한 적도 거의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였다.“그게 사실인가요?”강우연은 그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마음을 안정시켰다.“당연하지! 이미 집행관한테 이현식의 뇌물 수수와 공금횡령 정황을 증거로 제출했어. 저런 놈은 당연히 콩밥을 맛봐야 정신을 차리지.”한지훈이 정색하며 말했다.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현식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수갑을 차고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다.“정말 이대로 체포됐다고요?”그 모습을 본 강우연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다시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지훈 씨, 아무리 봐도 이 일은 지훈 씨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요? 당신이 잡혀갈 거라고 얘기하자마자 수갑 차고 끌려갔는데… 정말 나한테 숨기는 거 없어요?”한지훈은 어색한 웃음을 터뜨리고는
이 둘과 비교하면, 기자인 그녀는 마치 한 줌 모래처럼 미미한 존재였다.임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오르자, 유 씨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사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금의 용국은 이미 몇 년 전의 용국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내 뒤에는 오대 명산이 있단 말이지.”“우리 오대 명산이 널 지지하는데, 뭐가 두려운 것이냐? 설령 용국 조정이라도 감히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줄곧 내가 한 말이었으니 잡으려면 나를 잡는 거지, 널 잡을 일은 없다.”임설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한 듯 보였으나,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지만…… 유 씨 어르신, 그건 전부 어르신의 추측일 뿐이에요. 우리 손엔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증거? 증거가 그렇게 중요해?”유 씨 노인은 냉소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무종 전체가 내 말에 동의한다면, 그게 바로 증거지!”비록 천릉자가 대량산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한지훈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만 한다면 국왕은 가장 중요한 의지를 잃게 된다.바로 이때, 국왕의 자리를 노린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때, 산성시.산중에 위치한 호화로운 별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인에게 말했다.“선아, 며칠 전 장 도령께서 놀란 일이 있었단다.”“우리 천산 장씨 가문과는 대대로 교류가 깊었지. 어떤 의미에서든, 넌 가서 한 번은 그를 봐야 하지 않겠니?”“그리고 네 신분도 좀 자각해야 해. 진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어찌 그리 속된 백성들처럼 옥기점 같은 데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냐!”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진천국, 산성 진씨 가문의 가주였다!진천국이라는 이름은 산성 전체에서 거의 군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특히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진천국의 사문은 현재 산성 최대의 종문인 천앙종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은 지금 천산 장씨 가문과 우호 관계를 다져가며, 혼인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만일 혼인이 성사된다면, 진씨 가문은
사실, 한지훈이 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미 유 씨 노인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오대명산과 무종 사람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어찌 한지훈이 모를 수 있을까!최근 이 시기 동안 천릉자의 기세가 드높다는 건, 곧 오대명산이 천릉자를 내세워 한지훈이 용국에 세운 공적을 지우려는 의도임을 뜻한다.게다가 이 기회에 국왕의 지위마저 위협하려는 것이었다.개인의 영예나 치욕 따위는 한지훈에게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국왕의 권위를 흔드는 일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오대명산의 계략을 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천릉자의 기세가 가장 드높을 때 정면으로 한방 먹이는 것이었다!그리고, 천릉자가 살해당한 사건은 과연 큰 파장을 일으켰다!그 전에 오대명산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보도하게 하려고 수많은 언론 기자들을 초청했다.하지만 정작 결과는,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장에 와 있던 언론사 수가 너무 많았고, 모두가 생중계로 현장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수많은 인플루언서들까지 합류하며 정보를 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이 사건은 마치 다리가 달린 듯, 하룻밤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흥! 정말 웃기는군. 그 따위가 어찌 한지훈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한지훈보다 깨달음이 뛰어나다고? 타고난 자질이 낫다고? 결국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렸잖아!”“흥, 내 보기엔 그냥 날뛰는 광대였을 뿐이지!”“날뛰는 광대? 그래도 광대는 멀쩡한 머리를 잃진 않겠지! 하하하…”온라인에서는 조롱이 난무했고, 항산의 사람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한순간에 오대명산의 기세는 급격히 꺾이고 말았다.그 뒤 한 달 동안, 모든 이들의 화제는 이 사건에 쏠렸다.오직 한지훈만이 조용히 천생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따라 진지하게 약제를 조합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그에게는 강우연이 천신계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이런 화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게다가 천하 정세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가 도중에 강탈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령풍이 자소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는 약속대로 천릉자에게 져주지 않을 가봐 걱정됐다. “여러분, 드디어 가장 관건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됐을지 함께 알아봅시다!”한 인터넷 BJ는 생방송을 켜고는 팬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흘렀고, 모두들 손꼽아 승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산 길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 나왔다. 다만, 천릉자와 장령풍 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죠? 장 사부님이랑 천릉자 사부님은 왜 여태까지도 나오지 않는 거죠?”임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 격렬하게 싸운 나머지 모두 중상을 입어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필경 모두 동문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한판 붙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둘 거야!”유 씨 어르신은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대결은 5대 명산이 함께 손을 잡고 벌인 판이다. 게다가 천산 장 씨 집안도 이 계획에 얽혀있었기에, 절대 어떠한 실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위에는 또 수많은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의외의 사고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 씨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산길에서는 어두운 안색의 항산 제자 4명이 단대 하나를 들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내 카메라들은 일제히 그 단대에 초점을 뒀고, 모든 기자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 단대 위에는 머리 없는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웬 동그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천릉자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한편, 몇 명의 장 씨 집안 자제들 역시 단대 하나를 들고는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장령풍
그러나 한지훈은 장령풍을 투명 인간 취급한 체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여전히 깊은 공포 속에 빠져 있었다. 사실 천릉자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방금 그와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천릉자의 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두 사람의 실력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천릉자의 촘촘한 검망을 깨뜨려 그의 머리를 아작 낸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최선을 다해봤자 기껏해야 천릉자에게 상처만 입힐 거라 확신했다. 천릉자를 죽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모두들 알다시피 검망 아래에서는, 수천 갈래의 검의 습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 검망을 피해 사람을 죽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검방을 피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2성 천신계 강자라 하더라도 밀집된 검망을 마주하게 되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게 되고 더욱이는 천릉자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오직 나뭇잎 하나만으로,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닥치는 대로 나뭇잎을 던져 천릉자의 머리를 아작 냈다. 지금 이 순간, 산 전체는 비할 데 없이 조용했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줄곧 조용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감히 고개 한번 들어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나서야 장령풍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한지훈의 자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는 비로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장령풍, 오늘 벌어진 일을 소문내면 장 씨 집안은 멸망하게 되는 줄 알아!”“네... 저는... 아무것도 못 본겁니다!”크게 놀란 장령풍은 벌벌 떨었다. 한지훈의 경고는 그에게 있어서 성지였다. 한지훈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용경과는 80리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직 용국을 위해 복수
게다가 사방에서 한지훈을 헐뜯고 있는 발언들에 대해, 장령풍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한지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몇몇 명산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훈이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역외 강자조차도 흔들 수 없는 거물을, 누가 감히 건드리려 하겠는가? 그러나 옆에 있던 천릉자는, 장령풍의 표정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한지훈의 정체가 뭐든, 자신이 쟁취해야 할 성과를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는 장령풍과 상의도 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그물처럼 촘촘한 검망이 한지훈의 정수리 위에 펼쳐졌다. 그는 단 한 방에 한지훈을 산산조각 내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건드리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온 하늘을 덮은 검망에도, 한지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나뭇가지에서 잎사귀 하나를 따냈다. 그러고 나서는 천릉자가 서있는 쪽으로 잎사귀를 가볍게 던졌다, 곧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잎사귀에, 제대로 화가 난 천릉자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잎사귀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무종 모든 종사들의 장기였다. 그러나 종사계의 실력은, 그저 전신계와 같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성 천신계 고수인 자신이 뜻밖에도 전신계 같은 땅강아지한테 무시당하게 될 줄이야?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천릉자는 곧바로 또 하나의 검망을 휘두르며 사악한 웃음을 보였다. “네 이 녀석, 천신계 강자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주마!”“죽어!”지금 이 순간, 천릉자는 이미 한지훈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은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눈앞의 상황에 장령풍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에 이미 한지훈의 전력을 직접 목격했었다. 모든 전투에서,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던졌었다.
천산 장 씨 집안과 항산 사이에는 서로 맺은 약속이 있었다. 오늘 이 자소화도 사실은 천릉자에게 주기로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소화 자체는 결코 희귀하지는 않지만, 꽃이 피기 전의 자소화를 찾는 건 매우 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대다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기 전에, 산속의 맹수들에 의해 먹히고는 만다. 사실 천신계 강자에게 있어, 자소화의 장점은 셀 수 없이도 많았다.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순조롭게 2성 현급 천신계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큰 유혹 앞에서, 장령풍은 장 씨 집안과 항산의 약속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생각뿐이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천릉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령풍, 작은 것을 얻으려고 큰 것을 잃으려 하지는 마. 당시 한지훈의 그 사건도 장 씨 집안이 자초한 일이었어. 네가 자소화를 손에 넣는다면, 그동안 우리가 한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사실 전에 5대 명산, 항산 그리고 천산 장 씨 집안이 줄곧 천릉자를 치켜세운 이유는 그 배후에는 아주 큰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불세출의 천재란 타이틀을 근본적으로 꾸며낸 것이다. 사실 천릉자는 이미 30년 전에 항산 문하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항산은 줄곧 그를 중점 육성 대상으로 간주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4년 만에 단번에 천신 경계를 돌파하게 된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가짜였지만, 그 최종 목적은 천릉자를 이용하여 한지훈을 호되게 밟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유 씨 어르신의 발언과 언론을 통해 한지훈은 영원히 용국의 치욕이라는 이미지로 매장하려는 속셈이었다.그러려면 이 과정에서 천릉자의 후광을 더욱 밝게 비추어야 했다. 그의 후광으로 한지훈의 공적을 덮어 그를 폄하하고 말살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획이었다. “장 씨 집안의 계략이 뭐가 대수야? 난 지금 오직 이 자소화만 갖고 싶을 뿐이야!”장령풍은 여전히 굳은 표정
만약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이 내용이 보도된다면 전 세계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 될 것이다.필경 현재 용국은 물론, 심지어 전 세계가 모두 한지훈이 단지 일성 준 천신계의 실력으로 10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참살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 세계는, 한지훈과 용국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그 배후에 호천 창세가 손을 쓴 거라면 용국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한지훈은 또 어떻게 될까? 과연 누가 용국을 두려워하겠는가? 아마 그 누구도 한지훈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 않을 것이다.“됐어, 한지훈 그 반역자에 대해서는 이쯤하자. 저 두 사람의 시합이나 지켜보자고!”유 씨 어르신은 의도적으로 반역자라는 세 글자를 강조하며, 한지훈의 못된 이미지를 제대로 박았다. 한편 그 시각, 한지훈도 어느새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은 여전히 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장령풍의 상황은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새하얀 도포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장령풍은, 어느새 피범벅이 되었고 분노 가득한 두 눈동자는 천릉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반면 천릉자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여유롭게 한 손을 짊어진 채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듣기로는 너희 장 씨 집안 삼절진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하던데, 오늘 보니 역시나 명실상부라 느껴지긴 하는구나. 하지만 다만 아쉬운 건, 넌 아직 제대로 불꽃이 튀지 않아 천절진의 위력은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앞으로 만약 10년만 더 지나게 된다면, 나중에 나의 천망 검진은 너를 더 이상 격파하기도 어렵게 될 거야. 하지만 어찌 됐든 그건 10년 후의 일이니, 오늘은 일단 이 자소화를 나한테 양보해!”이내 천릉자가 허리 굽혀 자소화를 따려는 순간, 숲속에서는 갑자기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오옥!”불곰보다도 몇 배나 더 큰 맹호 한 마리가 갑자기 숲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순간 천릉자와 장령풍 모두 멍해졌다. 전에 5대 명산 고수들이 이미 산꼭대기를
유 씨 어르신의 말에, 임설은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기가 돌아온 후, 모든 사람들의 몸에는 큰 변화가 생겼고 저항력도 강해졌을 뿐만 신체능력도 향상되었다.그러나 마찬가지로 맹수들도 더욱 강해졌다. 만약 임설이 맹호를 상대한다면, 그건 바로 먹잇감이 되는 것이었다.당시 한지훈의 일전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상대하다니, 게다가 모두 한지훈보다 한두 단계 높은 경지의 고수들이라니. 비유하자면 당시의 한지훈은 마치 현재의 임설과도 같았고, 그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은 바로 맹호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결 결과는, 전혀 추측할 필요가 없이 다들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당시 그 대결이 만약 오로지 한지훈의 소행이었다면, 이건 합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유 씨 어르신은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해졌다. 필경 유 씨 어르신은 화산 고수중 한 명이었기에, 그의 말은 신빙성이 아주 높았다. 게다가 진정한 무도 중인 만이 한지훈이 당시 직면한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유 씨 어르신은 이런 속임수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무종이 점점 강해지게 되면서, 현재 더욱 많은 일반인들이 모든 경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잘 알게 되었다. 천신경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전신계라 하더라도 작은 경계 사이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즉 천릉자는 비록 일성 준 천신의 최고 실력에 도달하긴 했지만, 그가 2성 천신계를 돌파하지 못한 이상, 2성 천신계 상대에게 있어 그는 마치 땅강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두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 전혀 같은 수평선에 놓여있지 않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 “어르신, 그 말씀은 전에 한지훈이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하여 모든 사람들을 속여왔다는 뜻인가요?”임설이 다시 물었다. “그래. 중요한 포인트를 짚었네. 너희들 아직도
임설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혹시 임설이니?”바로 이때, 임설의 뒤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씨 어르신?”고개를 돌린 임설은, 뒤에 선 노인을 보고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이내 급히 열정적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녀가 유 씨 어르신이라 부르는 이 사람은 바로, 세속에서 활동 중인 화산 강자이자 현재 무도 재판소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게다가 화산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에 유 씨 어르신은 세속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매체인으로서 임설 역시 유 씨 어르신이 낯설지는 않았다. 게다가 전에 그녀는, 유 씨 어르신의 인맥을 통해 5대 명산의 3기 다큐 영화까지 제작했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왜 여기 계신 거예요?”임설은 겉으로는 궁금해하는 척했지만, 사실 내심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이었기에, 같은 5대 명산인 화산에서 사람을 보내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난 단지 길을 가던 중 한번 와서 본 것일 뿐이야. 그나저나 이 아이들은 이젠 모두 어른이 되었는데, 이들이야말로 용국의 미래 희망이지!”유 씨 어르신은 눈을 지그시 뜨고는 산 꼭대기 쪽을 유유히 바라보았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임설은 급히 보조 카메라 감독을 불러 휴대폰으로 촬영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내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유 씨 어르신 가까이에 다가갔다. “어르신, 어르신의 경험으로 봤을 때 오늘 이 자소화, 과연 어느 집안이 가져갈 거라고 예상하시나요?”필경 유 씨 어르신의 신분 지위는 꽤나 높았기에, 아마 일부 내막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5대 명산끼리의 호흡은 결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령풍과 천릉자가 맞붙기도 전에, 아마 암암리에 모든 준비를 마쳤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아이고, 그 질문은 좀 난처하네. 원칙부터 말하자면, 장 씨 집안 역사는 엄청 유구하지. 우리 용국의 많은 비진도 모두 장 씨 집안으로부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