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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일을 시작한 지 3년이나 됐어요

반승제 근처의 아우라는 마치 여름이란 겪어본 적 없는 것처럼 차가웠다.

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성혜인을 바라보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가지.”

성혜인은 반승제를 따라 문라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알아본 사람들은 저마다 단정한 태도로 허리 굽혀 인사했다.

그렇게 조용히 걷고 있던 반제승가 갑자기 멈춰서서 몸을 돌렸다. 성혜인도 따라 멈춰서서는 덤덤하게 자본주의 미소를 지었다.

“너 임경헌한테서 얼마나 받았어?”

성혜인은 임경헌과 반승제가 어떤 사이인지 몰랐다. 반씨 일가의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니 이것도 당연하였다.

반승제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으로서 그녀는 그냥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겠거니 했다.

“사장님 말로는 2억 정도 한다고 했어요.”

“이 짓거리를 하는데 사장도 있어?”

반승제는 진심으로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

문라이트에서 비밀스러운 거래가 이뤄진다는 것을 임경헌에게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자신이 당사자가 될 줄은 또 몰랐다.

어찌 됐든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와서 고민하기에는 늦었다.

반승제는 다시 몸을 돌려 룸으로 걸어갔고 성혜인도 묵묵히 따라갔다.

“임경헌 말로 너희가 부르는 값은 높지만, 서비스는 확실하다고 했지?”

성혜인은 그동안 많은 고객을 만나왔다. 대부분 사람이 다 부자라서 가격만큼은 충분하게 줬지만 물론 아닌 사람도 있었다.

성혜인은 반승제의 말을 듣자마자 기계처럼 대답했다.

“반승제 씨, 가격에 관해서는 충분히 서비스와 정비례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비스와 정비례 한다라...’

반승제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만약 내가 네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했다면?”

어색한 반응에 가만히 있을 줄밖에 모르던 성혜인에게는 서비스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게다가 반승제는 그녀의 얼굴과 몸매가 수억 원을 주고 살 정도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돈 벌기 참 쉬운 직종이군.’

성혜인은 ‘고객이 왕이다’라는 생각 하나로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럼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요? 제가 최대한 맞춰줄게요.”

성혜인의 얼굴에는 단정한 미소가 걸렸다. 그녀의 미소는 은은한 불빛 아래에서 아주 청아하게 보였다.

반승제는 문뜻 새벽이 거의 끝나갈 때, 그녀가 더 이상 버티기 힘든 듯 초점을 잃고 자신을 끌어안던 모습이 떠올랐다. 약간 물기 돌던 그녀의 눈빛은 아주 아름다웠다.

성혜인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이어서 말했다.

“제 고객 중에 단골도 아주 많아요. 다들 꽤 만족스러운 것 같던데요.”

성혜인이 디자인한 펜션과 별장은 중고로 다시 팔아도 비싼 값을 부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녀의 디자인에 불만을 표시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단골이라...’

“너한테 다른 고객도 있다고?”

반승제는 약간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이 아니었어?”

“그럴 리가요. 저 일을 시작한 지 3년이나 됐어요.”

성혜인은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그녀는 임경헌과 반승제 사이에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도무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말을 끝내자마자 반승제의 표정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이 감정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숨이 잘 올라오지 않는 것만 같았다.

“됐어. 그냥 조용히 따라와. 돈은 문제없이 계산해 줄 테니까 다른 건 바라지도 마.”

성혜인은 그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은 임 사장님한테 가는 건가요?”

성혜인의 질문이 반제승에게는 그저 교태로 보였다.

“걔도 네 고객이야?”

“그런 셈이죠.”

성혜인은 머리를 끄덕였다. 미래의 고객도 고객인 셈이니까.

그러자 반제승은 갑자기 안색이 확 어두워지더니 몸을 돌려 가버렸다.

성혜인은 제자리에 멈춰서서 자신이 도대체 무슨 말을 잘못했기에 남자의 예민한 신경을건드렸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짧은 대화에 잘못된 것이란없었다. 더구나 반제승은 성혜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 리도 없었다.

이때 마침 양한겸에게서 전화가 왔다.

“들어왔어?”

“사장님, 저 아무래도 망친 것 같아요.”

양한겸은 약간 멈칫했다. 그는 성혜인을 완전히 믿고 있었다. 디자인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 그녀는 단 한 번도 일을 망친 적이 없기도 했다.

“1402 룸이야. 일단 이쪽으로 와서 얘기하자.”

“네.”

전화를 끊고 난 성혜인은 직원에게 1402 룸의 위치를 물었다.

양한겸은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임경헌을 바라보며 말했다.

“디자이너가 곧 도착한다고 하네요.”

아직 젊은 티가 나는 임경헌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급할 것 없어요. 제 형도 곧 도착할 거예요. 두 사람이 만나기만 한다면 이번 일도 틀림없이 잘 진행될 거예요.”

임경헌의 말을 듣고 나서야 양한겸은 약간 시름이 놓인 듯 미소를 지었다.

“저는 승제랑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혹시 기억나나요?”

반승제의 능력으로 그와 어떻게든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주 많았다. 양한겸이진짜 그와 동창 사이라고 해도, 사실 반승제는 학교를 다닌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았다.

양한겸이 말을 끝내자마자 문이 열리고 성혜인이 걸어들어왔다.

성혜인은 오늘 정장이 아닌 편안한 옷을 입었고 머리도 깔끔하게 묶었다. 덕분에 평소 출근할 때와는 다른 청순한 느낌이 있었다.

성혜인은 임경헌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임경헌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디자이너님께서 능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이리 아름다우신 줄은 몰랐네요.”

성혜인이 혼자 들어 온 것을 보고 그는 바로 이어서 물었다.

“제 사촌 형은요? 같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성혜인은 약간 멈칫하며 생각했다.

‘반승제 씨가 이 사람의 사촌 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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