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을 바쳐 사랑했지만, 진심은 짓밟혔다. 결혼을 앞둔 날, 이하니는 강승오가 다른 여자와 얽힌 사진을 보게 된다. 바람난 남자, 뻔뻔한 제삼자, 멸시하는 시어머니까지. 하니는 과감히 모든 걸 끊고 사라졌다. 이름을 지우고, 과거를 버린 채. 화려한 화가로 다시 태어난 그녀. 금빛 인생과 승승장구하는 커리어. 이제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삶. 그런 이하니 앞에 다시 나타난 강승오. 남자의 품에 안긴 하니를 보며 붉어진 눈으로 애원한다. “한 번만... 다시 돌아와 줘.” 그러나 하니를 안고 있던 남자가 승오 앞에 섰다.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단호히 말했다. “다시는 하니를 건드리지 마. 당신 따위가 감히 가질 수 있는 여자가 아니니까.”
View More“할 말 있으면 빨리 해. 너랑 시간 낭비할 여유 없어.”하니의 목소리는 담담했다.“이하니, 너... 너무하는 거 아니야?”권아가 입을 열었다.“강승오 곁을 완전히 떠나기로 해놓고, 왜 자꾸 주변을 맴도는 거야? 일부러 시선 끌려고?”하니는 어이없다는 듯 입술을 꼭 다물었다.‘하... 난 H시까지 내려와 숨어 살고 있는데...’‘그게 어떻게 너희 부부 생활에 영향을 준다는 건데?’“너희 부부, 사이 좋다며? 아이도 있잖아. 그런데도 내가 강승오를 뺏어갈까 봐 이렇게 신경 곤두세우는 거야? 혹시 스스로한테 자신이 없는 거 아니야?”권아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그러니까 인정하는 거네? 일부러 떠난 척하면서 강승오 관심 끌려고 한 거?”“날 모르는구나.” 하니가 비웃듯 짧게 웃었다.“관심을 끌어? 내가 왜? 그럴 거면 애초에 파혼을 왜 했겠니?”“나는 H시에 내려온 지 꽤 됐어.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아니, 아직 부족해.”권아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H시에 있어봤자, 강승오는 언젠가 널 찾아올 거야.”“내가 어디에 있든 네가 참견할 일 아니야.”하니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내가 H시에 있든, 섬에 있든... 네가 간섭할 권리 없어.”권아가 한숨을 섞어 말했다.“지금 내 배 속엔 강승오의 아이가 있어. 근데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강승오가 너만 떠올리면, 나한테 차갑게 대하는 거 알아? 나... 요즘 정말 힘들어.”이어서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그러니까... 제발, 부탁이야. 원한다면... 내가 무릎이라도 꿇을게.”초라할 정도로 불쌍해 보이는 권아의 표정.솔직히 말해, 하니는 조금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그래서 그저 무심하게 권아를 바라본 뒤, 담담히 입을 열었다.“여기엔 강승오 없어. 더 이상 연기할 필요도 없다고.”“그냥 솔직하게 말해.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권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였다.“내가 해외로 나갈 수 있는 비행기 표를 준비할게. 그냥 이 나라를 떠나는 게 어때? 그래
심주영 주변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남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지만, 심주영만큼은 늘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고, 그래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했다.심주영이 앞으로 나서서 강문한의 팔을 붙잡았다.“곧 손자 볼 사람인데,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정 안 되면 내가 하니한테 10억을 주고... 위로라도 해줄게요.”“사람이 떠났는데, 그런 소리를 해서 뭐 하겠어?”강문한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가라앉았다.“애초에 아들 단속을 잘했어야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게 만들면 안 됐다고!”승오는 결국 본가에 갇혔다.그 사이, 권아는 승오 약혼자의 명분으로 본가에 머물렀다.권아가 승오 곁으로 와서, 눈치를 보며 상냥하게 말했다.“오빠, 제발 내 말 좀 들어. 오빠가 나랑 결혼만 약속하면, 지금 당장 이하니가 어디 있는지 알려줄게, 응?”승오가 비웃음을 흘렸다.“넌 정말 이렇게까지 날 붙잡고 싶니? 예전에 다 설명해 주겠다던 말은 전부 거짓말이었지?”“아니야, 오빠. 나 거짓말한 적 없어. 하지만... 난 이제 아이가 있잖아. 나랑 우리 아기를 위해서라도... 오빠가 조금만 이해해 주면 안 돼?”“이해?”승오의 입꼬리가 비틀렸다.“하니가 떠날 걸 알았다면... 난 평생 너랑 안 엮였을 거야.”권아가 입술을 깨물었다.“그깟 추억? 우리도 새로 만들면 돼. 오빠, 우린 이제 가족이잖아. 나, 오빠, 그리고 우리 아기... 행복한 세 식구.”‘행복?’권아의 눈빛 속에는 싸늘한 기운이 번졌다.그녀의 핸드폰 속에는, 사설탐정이 보내온 전화번호와 주소가 저장되어 있었다.뜻밖에도 정말로 하니의 행방을 찾게 된 것이다.‘혹시 모르니까... 내가 직접 가서 확실히 해야 해.’권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승오의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날아왔다.“좋아, 결혼은 해줄게. 하지만 그 전에... 하니를 한 번은 봐야겠어. 하니가 날 따라오지 않으면, 널 아내로 맞을게. 대신, 하니가 날 따라오면... 넌 네 그 사생아 데리고 당장 꺼져.”권아의 온몸이
“대가? 넌 그거 감당 못 한다.”강문한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내가 어떻게 너 같은, 짐승만도 못한 놈을 아들로 뒀는지... 그렇게 바람이 좋으면, 애초에 하니는 왜 건드린 거야?”“하니는 날 살린 사람이야. 네 꼴을 봐라, 이런 죽상으로 무슨 결혼이야? 나는 체면이 있는데, 너는 없어도 되냐?”심주영이 바로 끼어들었다.“우리 아들... 당신 말처럼 그렇게 나쁘지 않아요. 다 그 여우 같은 여자가 꼬드겨서 그런 거라니까요!”강문한의 눈빛이 번뜩였다.“자기 몸 하나도 못 주체하면, 아예 잘라버려야지!”그 말이 끝나자, 주금자가 허둥지둥 달려왔다.“아들, 그래도 네 아들인데... 그건 안 되지. 이 집안의 보배 같은 핏줄인데! 그리고 너, 정신이 있는 거니? 그 이하니란 애, 난 처음부터 속셈 있는 거 다 보였어. 승오가 그런 여자랑 결혼하면 진짜 끝장이야.”“어머니, 다 어머니가 부추긴 거잖아요. 결혼도 하기 전에 바람피우고, 사생아까지 만들고... 그게 자랑할 일인가요? 전 그 얘기만 새어 나가도 창피해서 못 산다고요.”강문한은 자기 어머니의 말에 바로 반박했다. 그때, 권아가 급히 뛰어 들어왔다.승오의 맞은 얼굴을 보자마자,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모든 게 제 잘못이에요, 회장님. 오빠를 탓하지 마세요. 제가 유혹한 거예요.”“네 잘못인 거 알면, 당장 꺼져!”강문한은 권아를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이런 속이 훤히 보이는 여자애를, 대체 우리 어머니는 왜 마음에 들어 했을까?’하지만 권아는 배를 감싸며 얼굴을 붉혔다.“회장님... 아마 안 될 것 같아요. 제 배 속엔 오빠의 아이가 있어요.”승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 애, 세상을 떠난 거 아니었어? 도대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야?”“그... 그날 있었던 일이에요.”권아가 시선을 떨궜다.승오는 얼굴에 절망이 가득했고, 결국 목소리를 높였다.“난 절대 그 아이 인정 안 해. 그리고 너랑 결혼? 꿈도 꾸지 마!”“그 아이
하니는 금세 그림 감상에 몰입했다.그녀는 전혀 몰랐다. 뒤에서 누군가가 몰래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올렸다는 사실을....그 시각, 권아는 머릿속으로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빨리 임신해야 해. 그래야 강씨 집안 어른들이 날 인정하겠지.’‘강승오 마음에 내가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해.’무심코 핸드폰을 넘기던 권아의 눈이 어느 순간 멈췄다.화면 속 사진.하니의 옆모습이 선명했다.권아는 눈가를 비비며 다시 확인했다.그 여자는 분명 이하니였다.‘그 곁에 있는 남자... 도대체 누구지?’두 사람은 꽤 가까운 사이처럼 보였다.‘설마... 벌써 다른 남자랑 눈이 맞은 건 아니겠지?’‘그런데 이하니는 왜 휠체어를 타고 있는 거야?’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곧 권아의 머릿속에 한 가지 계획이 떠올랐다.그녀는 돈을 주고 사진을 조작하게 했다.그리고 하니가 여러 남자와 함께 있는 듯한 합성 사진들을 만들어 승오의 이메일로 보냈다.승오는 그 사진들을 보자마자 눈이 번쩍 뒤집혔다. 온몸에 핏대가 서는 듯한 분노가 치밀었지만, 곧 마음속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말도 안 돼. 하니가 나를 배신할 리 없어.’‘그렇게 오랜 세월 날 사랑했는데... 거짓이 분명해.’그때, 권아가 옆으로 다가왔다.“사진이 조작이라 쳐도... 이건?”그녀는 다른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내 친구가 직접 찍은 거야. 이하니, 지금 다른 남자랑 동거 중이고, 두 사람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더라. 오빠도 이제 놓아줄 때가 된 거 아니야?”승오의 손가락엔 관절이 하얗게 질릴 만큼 힘이 들어갔다.“그 사진, 어디서 찍은 거야?”권아는 고개를 저었다.“아마 여행 간 것 같아. 사진은 이거 하나뿐이고, 어디인지는 나도 몰라. 그냥... 인제 그만 좀 해.”그녀는 승오의 가슴께를 매만지며 눈빛을 가늘게 세웠다.그리고 손끝으로 남자의 넥타이를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이어서 움직임은 점점 노골적으로 바뀌었다.하지만 승오는 그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대체 무
하지만 하니는 지금 돈도, 얼굴도, 배경도 없는 채로 H시에 떠돌고 있는 처지였다.‘저 사람이 나한테 뭘 바라는 거지?’‘설마... 혼자 사는 걸 노리는 건가?’“오늘 밤은 여기서 쉬어요.”건빈이 불쑥 말을 꺼냈다.“발 상태가 좀 심해서 걸으면 안 돼요. 아니면... 내가 안아서라도 하니 씨 집에 데려다줄까요?”동네 사람들의 시선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하니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그렇다고 남자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건... 너무 이상한 일이었다.“여기는 손님방이에요. 편하게 쉬세요.”건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하니에게 내줬다.정확히 말하면, 방 안에는 하니 혼자가 아니었다.초코가 하니 손을 열심히 핥으며 품속으로 파고들었으니까.그 애교가 얼마나 지극한지, 건빈에게는 오히려 시큰둥한 모습이었다.하니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부건빈... 참 좋은 사람인 것 같아.’...다음 날 아침, 하니는 몸 위에서 무언가가 뛰노는 느낌에 눈을 떴다.오렌지와 복실이가 하니 배 위에서 서로 치받으며 놀고 있었고, 그 옆엔 초코가 얌전히 하니 품속에 누워 눈만 반짝이고 있었다.‘내 고양이들이 왜 여기 있지?’궁금해하는 하니 앞에, 건빈이 아침 식사가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조금 쑥스러운 듯 말했다.“하니 씨 고양이들이 혼자 있을까 봐 걱정돼서요. 하니 씨 집 열쇠로 잠깐 들어가서 데려왔어요.”하니는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다만 오렌지와 복실이가 너무 금방 적응해 버린 게 문제였다.건빈의 넓은 집 안을 자기 집인 듯 뛰어다니고 있었으니까.하니 앞에 뜨끈한 조기죽 한 그릇이 놓였다.향이 고소하게 코끝을 간질였다.곁에는 잘 익은 배추김치와 새콤한 깍두기, 그리고 아삭한 콩나물무침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혹시 모자랄까 봐, 건빈은 다진 소고기와 부추를 넣어 노릇하게 부친 부침개도 내왔다.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비주얼이었다.하니는 배가 고팠다. 숟가락을 들자, 결국 참지 못하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오
하니의 손바닥이 근질근질했다.결국 참지 못하고 초코의 털을 두어 번 가볍게 쓸어내렸다.그러자 초코는 멈추지 않고 하니 품으로 파고들었다.그야말로 사람을 좋아하는, 애교 많은 녀석이었다.하니가 초코를 쓰다듬는 데 푹 빠져 있는 사이, 건빈은 부엌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가져왔다.향이 부드럽게 퍼졌다.하니도 요리할 줄은 알았다.하지만 승오를 만난 뒤로는 대부분 밖에서 식사했고, 가끔 집에서 먹을 땐 늘 하니가 요리를 맡았다.다른 사람이 해준 밥을 먹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그 생각에 하니는 괜히 조금 긴장됐다.“먹어요.”건빈의 온화한 목소리가 울렸다.그 얼굴과 함께하니, 거부감이란 건 애초에 생기지 않았다.하니는 조심스레 건빈이 만든 카레덮밥을 한 입 먹었다.순간, 눈이 조금 더 반짝였다.“맛없어요?”건빈이 묻자 하니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부 비서님 요리 정말 잘하시네요.”하니는 원래 양이 적지만, 오늘은 유난히 많이 먹었다.배가 부르자 초코가 하니 치마를 앞발로 살짝살짝 건드렸다.하니는 다시 손을 뻗어 초코의 털을 부드럽게 만졌다.그 눈가에 부드러운 웃음이 번졌다.부엌 문가에 기대 서 있던 건빈의 길고 가느다란 눈매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그 안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쳤다.하니가 고개만 돌렸다면... 눈치챘을 텐데...“고마워요, 부 비서님.”오늘 하루를 가볍게 만들어준 건, 건빈이 해준 따뜻한 밥과 초코의 애교였다.초코는 여전히 하니 다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초코가 아직도 같이 있고 싶은가 보네요. 산책이라도 할래요?”하니는 거절하려 했지만, 초코의 반짝이는 눈을 보자, 결국 몸을 숙여 그 하얀 털을 한 번 더 쓰다듬었다.그리고 초코의 목줄을 잡고, 문을 나섰다.건빈은 외투를 하나 챙겼다.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바람이 차가웠다.하니가 무심코 몸을 움찔하자 외투 한 벌이 부드럽게 어깨 위로 걸쳐졌다.남자의 세심한 배려였다.하니는 조금 어색했다.‘이 사람이... 왜 나한테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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