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 다시, 장례식엄마가 죽었다.엄마의 장례식장은 아버지의 장례식장과 달랐다.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나는 혼자 앉아 엄마의 사진을 바라봤다.울고 싶지는 않았다.나는 형과 다르니까.기도하고 싶지도 않았다.나는 정말 형과 다르니까.다르고 싶었던 건지, 달라지고 싶었던 건지.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희미하게는 같았다.손님도, 통곡도 없이 엄마의 장례식은 끝이 났다.나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다.집 문 앞에는 세금고지서, 우편, 광고지 등등이 쌓여있었다.그것들은 모조리 집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거실 바닥에 대충 앉아 하나하나 살펴보던 중, 흰 봉투가 하나 끼워져 있음을 알았다.고개를 갸웃하며, 내용물을 꺼냈다.찢어진 것을 테이프로 하나하나, 너덜너덜하게 감은 종이였다.펼쳐보았다.그 언젠가, 형이 내게 준 서류였다.내가 찢어버렸던, 등대지기를 구한다는 서류.내용은 같았다.[등대지기 모집.장소 - 서해 중 하나의 섬.대상 – 스무 살 이상의 누구나.모집 인원 – 00명.월 급여 700만원.하는 일 - 등대 보수 및 유지.- 6개월 간격으로 교대 근무.- 처음 계약서를 작성하고 섬으로 출발하기 전 3개월 치 지급.- 다음 차례와 교대할 때 나머지 3개월 치 지급.- 생필품 및 각종 생존 물자 제공.- 인터넷 x, 전화 x, 편지 x.- 외부와 연락할 방법은 없음.- 신청, 면접, 등대를 다루는 일주일간의 교육. (교육비 별도 제공)]그러나 달랐던 것은 맨 밑 여백에 적힌 두 문장의 글.형의 글씨체로 적힌,+82 050 – 3967등대로나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뚜루루뚜루루달칵남자 목소리 : “나흘 후, 십삼 시, 서해 오천항.”달칵뚜뚜뚜전화가 끊겼다.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있다가, 불현듯 일어나 낡은 가방에 옷가지들을 쑤셔 넣었다.그러다, 가방을 팽개치고 지갑만 챙겨 집 밖으로 나섰다.어차피
- 병이 짙어지다 II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병실에 갔더니 형이 어떤 서류를 읽고 있었다. 내가 옆자리에 털썩, 하고 앉으면 형은 말없이 서류를 접어 품에 넣었다. 나는 굳이 묻지 않았고, 형도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그 날도 그렇게 지나가는 듯했다. 내가 병실을 나갈 때, 형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놀랐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며 형을 돌아보니 형은 품속의 서류를 내게 건넸다. 그러고는 나보다 먼저 병실을 나갔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서류를 펼쳐봤다. [등대지기 모집. 장소 - 서해 중 하나의 섬. 대상 – 스무 살 이상의 누구나. 모집 인원 – 00명. 월 급여 700만원. 하는 일 - 등대 보수 및 유지. - 6개월 간격으로 교대 근무. - 처음 계약서를 작성하고 섬으로 출발하기 전 3개월 치 지급. - 다음 차례와 교대할 때 나머지 3개월 치 지급. - 생필품 및 각종 생존 물자 제공. - 인터넷 x, 전화 x, 편지 x. - 외부와 연락할 방법은 없음. - 신청, 면접, 등대를 다루는 일주일간의 교육. (교육비 별도 제공)] 무슨 뜻이지? 나보고 하라는 걸까? 엄마는 자기가 돌볼 테니? 기분이 나빴다. 언제까지 아빠 행세를 할 건지. 나는 서류를 찢어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버렸다. 엄마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병실 밖으로 나섰다. 병실 밖, 벽에 형이 기대고 서 있었다. 내게 뭔가를 말하려는 듯싶었지만, 나는 무시하고 발길을 돌렸다. 형은 구태여 나를 잡지 않았다, 아니, 잡지 못했던 걸까. 뭐,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형을 본 적이 없다. 형은 소리도 없이 존재를 감췄다. 엄마의 옆에는 그때부터 나만 있었다, 나만. 형도 없이. 나만. 엄마와 함께 있었지만 고독했다. 외로웠고, 괴로웠다.
- 등대 (prologue)[등대지기 모집.장소 - 서해 중 하나의 섬.대상 – 스무 살 이상의 누구나.모집 인원 – 00명.월 급여 700만원.하는 일 - 등대 보수 및 유지.- 6개월 간격으로 교대 근무.- 처음 계약서를 작성하고 섬으로 출발하기 전 3개월 치 지급.- 다음 차례와 교대할 때 나머지 3개월 치 지급.- 생필품 및 각종 생존 물자 제공.- 인터넷 x, 전화 x, 편지 x.- 외부와 연락할 방법은 없음.- 신청, 면접, 등대를 다루는 일주일간의 교육. (교육비 별도 제공)]- 아버지의 죽음단순히 말하자면 안타까운 사고였다.내 아버지의 죽음은.여덟 살과 아홉 살 사이, 그 언저리에서 내가 잰걸음을 놀릴 무렵에 일어난, 사고.초등학교 교실에서 방과 후에 남아 받아쓰기를 연습하던 나에게담임 선생님께서 다가와근처 가까웠던 병원으로 가야 한다며,내 손을 잡아 이끌고 향하신.그 병원에서 아버지는 누워계셨다.아니, 쓰러져계셨다.아니, 아니다.당시의 나는 그 둘의 차이를 알지 못했으니누워계신 동시에 쓰러져계셨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아버지.나의 아버지.언제나 따스한 웃음을 지으시며나와 눈을 마주치시고는내게 오늘 학교는 어땠냐고,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냈느냐고,내게 물으시던나의 아버지.빨간 피로 범벅이 되어 웃음을 짓지도 않으시고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시던 아버지.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삐빅거리는 기계음만 들려주신 아버지.온 가족이 함께 모여 저녁 식사를 하며같이 보곤 했던 뉴스에, 아버지가 아침마다 펼쳐보시던 신문에 나오곤 했던,그래, 뉴스나 신문에서 매일 같이 나왔던음주 운전자가 차로 치어버린 불쌍한 피해자.그런 피해자가 되어버리신 아버지.아버지는 그 수없이 많은 기삿거리 중 하나였다.아마 그 밤,다른 이들의 저녁 식사 시간의자그마한 이야깃거리가 되어버리신나의 아버지.남겨진 가족들은 그 피해자의 가족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다시 말해 특
아프다고로 나는 살아있다아픔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다아프고 나서야 우리는 해당 부위의 존재를 명명백백하게 느낀다아프기 전에, 우리는 그 뼈를, 근육을, 피부를 느낄 수 있었을까?사실상 아픔이란 그들의 비명일지도 모른다자기도 이곳에 존재한다고,자기도 이곳에서 숨 쉬며 살아 있다고,자기도, 자기도 살아 있다고내 몸이지만 역겨움이 올라온다동족혐오일까?자기와 비슷한 걸 보면 혐오감을 느끼는 것은,자기 자체를 싫어하는 것과 같지는 않다되려 더 나을 거다나는 나 자신을 싫어한다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뽑는다면 압도적으로 내가 뽑힐 거다내가 나를 만난다면 난 죽기 직전까지 주먹을 날리고,마지막 한방을 날려 죽여버릴 것이다그러나 나는 고통을 두려워한다그렇기에 죽지 못했다죽음과 고통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밧줄이 목을 조이는 그 잠깐의 고통조차 나는 참아내지 못했다아픈 건 싫으나 죽고는 싶다참으로 이기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불이 붙기 위해서는 장작이 바짝 마를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갓 잘린 나무는 수분기가 많아 불을 붙여도 불이 붙지 않고 연기만 매캐하게 풍겨나온다나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그러나 언제 마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나조차도그렇기에 충분한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어야 한다그러니 지금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그러나 이런 이성적인 판단은 지금껏 지겹게 내리지 않았는가고작 그런 판단들로 만들어진 결과물이 지금의 나다복잡하게 단순한, 지금의 나때로는 나를 위해 나를 배재할 수 있어야 한다끊긴 밧줄이 눈에 들어온다인터넷으로 주문한 밧줄은 생각보다 튼튼하지 않았다현대 사회에게는 필수인 인터넷의 문제다모든 걸 쉽게 살 수 있는 대신,모든 것의 가치는 옅어진다그렇다고 해도, 직접 만지고 무게를 가늠해봤자 그 본질을 알아챌 수 있지는 못하니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모든 것이 그렇다본질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그러나 그 본질을 알아볼 수
"도끼를 들고 가요어깨에 살짝 걸치고바알간 단풍 나무를 벨거랍니다도끼를 들고 가요어깨에 살짝 걸치고단풍 나무는 수액도 빨갛답니다도끼를 휘둘러요온몸에 힘을 주고선바알간 단풍 나무가 쓰러집니다도끼를 휘둘러요온몸에 힘을 주고선등허리가 꺾이고선 죽었답니다"음악이 끝나고,붉은 수액을 질질 흘리는 베어진 단풍 나무를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가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점점 멀어지며 작아지다가,문득 단풍 나무를 팽게치고 달려와 화면에서 튀어나온다.자기가 쓰던, 손잡이까지 붉은 수액으로 물든 도끼를 건네준다."난 이제 필요 없어서!게다가 넌 이걸 제대로 쓸 수 있을 거야!이미 익숙하잖아, 그렇지?안녕!"다시 화면 속으로 들어가단풍 나무를 업고 집으로 향하는 주인공.고개만 돌려 윙크를 찡긋, 하더니 곧 사라진다.검은색 화면.끝, 이라는 글자가 한동안 자리하더니,테레비 화면이 꺼진다.꺼진 테레비와 소파에 앉아있는 사람과 시뻘건 도끼.그 사람은 소파에서 일어나 도끼를 주워든다.채 마르지 않아 끈적거리는 수액이 사람의 손에 들러붙는다.이리저리 도끼를 휘둘러보는 사람.고개를 갸웃하더니 테레비에 휘둘러 두동강을 내버린다.도끼를 잡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도는 사람.그러다 도끼를 놓쳐버리면서 동시에.. 펑!잠에서 깨어납니다.기지개를 켭니다.하품을 합니다.뭔가 재미난 꿈을 꾼 것 같은데..더 자고 싶지만 일어나야 합니다.오늘은 갈 곳이 있으니까요.이불을 걷고, 침대를 박차고 나섭니다.정성스럽게 이불을 갭니다.베개를 이불 위에 올립니다.음, 이정도면 충분히 깔끔해 보이네요.실내화를 질질 끌며 거실로 나갑니다.부엌에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엽니다.생수를 한통 꺼내 뚜껑을 따고 마십니다.집에 정수기가 있기는 하지만 며칠 전에 고장이 나 정수밖에 나오지 않아요.저는 냉수를 좋아하기에 전날밤이면 미리 생수통에 물을 담아 냉장고에 넣어놓습니다.어서 정수기 기사님이 오셔서 정수기를 고쳐주셨으면 좋겠네요.생수통을 비우고 분
밤, 하나의 조명이 켜져 방을 자그맣게 밝히고 있다.각종 잡동사니가 가득 차 있어 어지러운 방.옷가지들과 잡지들, 스마트폰 충전기가 보인다.발 디딜 틈 없어 보이는 방에유일하다시피 깔끔한 앉은뱅이책상이 있다.어지럽혀져 있는 방안을 비추다가흰 벽 앞의 앉은뱅이책상을 화면에 담는 카메라.화면은 고정한 채로 누군가의 걸음 소리가 들린다.책상에 투명한 유리잔과 맥주캔이 놓인다.누군가 벽에 편히 기대어 앉아 맥주캔을 딴다.유리잔에 맥주를 따른다.유리잔 한가득 담긴 맥주와 약간의 거품.맥주캔을 책상에 올려두고,그 앞에 있는 건 여자다.여자는 맥주가 든 유리잔을 손에 쥐고 벌컥벌컥 마신다.여자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신다.맥주가 담긴 유리잔을 반 정도 비운 여자.여자의 입가에 맥주 거품이 묻는다.여자는 팔로 대충 거품을 닦는다.문득 울리는 전화벨 소리.여자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본다.잠시 무표정이다가, 얼굴을 구기고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여자는 무심하게 유리잔에 담긴 맥주를 깔끔하게 비운다.여자는 유리잔을 옆에 두고 캔째로 맥주를 들이마신다.비워진 맥주캔.여자는 빈 맥주캔을 손으로 힘주어 구기고,방 한구석으로 집어 던진다.여자가 일어나 화면에서 벗어난다.카메라는 여전히 그대로인 채로,여자가 침대에 몸을 던지는 소리가 들린다.여자는 조용히 말한다.여자 (조용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씨발.."화면이 어두워진다.장면이 끝이 난다.*밤, 하나의 조명이 켜져 방을 자그맣게 밝히고 있다.여전히 잡동사니들로 가득 차 있어 더러운 방.전 장면의 물건들 위에 새로운 옷이 얹혀져 있다.카메라는 전 장면과 앵글이 같다.카메라는 흰 벽 앞의 앉은뱅이책상을 비춘다.화면은 다시 고정된 채로 걸음 소리가 들린다.책상에 투명한 유리잔과 맥주 2캔이 놓인다.여자가 벽에 기대어 앉아 첫 번째 맥주캔을 딴다.유리잔에 맥주를 따른다.유리잔 한가득 담긴 맥주와 약간의 거품.맥주캔을 다시 책상에 올려두고,
퇴근 후 집에 돌아왔다.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는 냄새와 아빠를 부르며 현관으로 달려오는 사랑스러운 내 딸이 나를 반긴다. 이윽고 아내도 내게 와 오늘도 고생했다고 안아준다. 평범하지만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 이게 나의 평범한 현실이었다. 아름답고, 달콤한 현실. 나는 밥을 먹고, 씻고,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와 잠시 놀아준 뒤, 내일 출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 침대에 누워 그렇게 얼마나 잠에 들었을까? 어렴풋이 잠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켜며 깨어난다. 왠지 모르게 두 눈이 따가울 정도로 시리다. 잠시 눈을 감고, 시린 눈이
#1한 사내가 새까만 검정 속을 걷고 있다.사내의 앞모습을 비추다가 사내의 시선으로 돌려지는 카메라.사람의 형체가 보인다, 사내가 걸어가는 길의 옆에.점점 가까워진다.자그맣게 목소리가 들린다.사내가 걸어갈수록 점점 더 가까워진다.어린 아기 엄마의 목소리다.아기 엄마는 아기를 품에 안고 어르고 달래고 있다.점점 아기와 엄마가 선명해지며 사내에게 가까워진다.사내가 아기를 안고 있는 아기 엄마의 곁을 지나갈 때,아기 엄마는 아기에게 말한다.아기 엄마 (힘들지만 사랑에 가득 찬 목소리로)“사랑해, 우리 아가. 언제
- 에필로그지하실.듀크가 수술대 위의 규리를 내려다보며담배를 피운다.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듀크에게 다가온다.남자 : 누님, 진행할까요?듀크는 무감정한 얼굴로,듀크 : 어, 상하기 전에 가져다 줘야지.돈은 그 계좌로 받는다고 그래.남자와 같은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의료 장비와 함께 들어온다.듀크는 말없이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밖으로 나간다.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그 뒤를 따른다.다른 방으로 들어온 듀크와 남자.듀크는 의자에 앉아, 다른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남자는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여
- 규리일리야가 그런 오카를 바라보며 말한다.일리야 : 자살할 거라는 새끼들 모아다가,납치해서 장기 떼서 파는 게 흔한 일이 아닌 것 같아?존나 흔해, 씨발련아!나도 그런 적 존나 많고, 어!내가 씨발 니들 장기 팔려고 일부러 모아 놨잖아?정확히 이렇게 했을 거야, 알아?저 새끼들처럼 이렇게 우릴 가둬 놓고,천천히 한 명씩 데리고 내려와서 팔았을 거라고!여기 걸린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거? 없어. 없다고!이렇게 발버둥치면 우리는 더 옭아매이는 거야, 밧줄에.우린 이미 올가미에 걸린 거라고!지금 이 상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