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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5화

作者: 이야기보따리
소예지는 몇 개의 영상을 더 넘기다 이내 휴대폰을 내려두었다. 출장길에 선물을 준비할 여유가 없었던 탓에, 공항 근처에서 급하게 선물을 사야 했다.

밤 8시 반, 집에 도착한 그녀는 다시 차를 몰아 곧장 고씨 가문으로 향했다.

현관 앞, 진가영이 고하슬의 손을 꼭 잡은 채 마중을 나와 있었다.

“엄마? 왜 혼자 왔어요? 아빠는요?”

고하슬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빠는 며칠 뒤에 돌아오실 거야. 가자, 선물이 차에 있어.”

‘선물’이라는 말에 고하슬의 눈동자가 반짝였고 아이는 얼른 진가영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할머니, 안녕! 또 놀러 올게요!”

진가영도 따뜻한 미소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래, 다음에 또 오렴.”

그녀의 눈에는 어딘가 아쉬움이 고여 있었다.

월요일 아침, 소예지는 딸을 등교시킨 뒤 곧장 실험실로 향했고 건물 로비에 들어서던 찰나, 마침 안채린과 이서연과 마주쳤다.

그 순간, 안채린의 눈빛에선 짙은 원망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아버지의 프로젝트가 무산되고 어머니는 스트레스로 인해 불면과 두통에 시달리다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는 이 모든 사태의 근원이 소예지라고 믿고 있었다.

“이번 회의에서 수확이 꽤 있었겠네?”

이서연이 먼저 말을 건넸다.

“응. 이따가 회의 자료는 단톡방에 공유할게.”

소예지는 담담하게 대답하며 로비를 지나쳤다.

오전 10시 회의. 양정화는 새로운 업무를 배분했다.

안채린은 여전히 기초 실험 파트를 맡았고 이서연은 각 병원을 돌며 임상 케이스 수집을 담당하게 되었다.

반면, 소예지와 강준석은 MD 사와 함께하는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이서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학술 능력으로 이 연구팀에 합류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운이었기에 맡은 역할에 불만을 품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안채린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매일 실험실에 틀어박혀 반복적인 기초실험에 매달리는 자신과 달리, 소예지와 강준석은 핵심 기술과 전략을 다루는 중심축이 되어 있었다.

“아, 맞다.”

회의가 끝날 무렵,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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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이 정말로 공룡 장난감을 선물 받았다는 걸 확인한 순간, 소예지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심유빈은 단순히 그와 함께 있었던 것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통화까지 그 여자와 함께 스피커폰으로 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어쩌면... 같은 침대에 있었을지도 모르지.’“사모님, 오늘 저녁 대표님께서 여기서 식사하신대요. 제가 저녁 준비할게요!”양희순이 밝은 얼굴로 말했다.“반찬 없으면 안 해도 돼요.”소예지가 단호히 말을 끊었다.이 집에서 고이한이 저녁을 함께하는걸, 그녀는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아, 아니요. 반찬 있어요. 이틀 치나 사다 놨거든요...”양희순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소예지는 양희순이 아직도 고이한에게 옛정이 남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집은 이제 그녀의 것이었고 이 공간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었다.“엄마, 나 아빠랑 같이 밥 먹고 싶어요! 아빠, 가지 마세요!”그때 고하슬이 다가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딸아이의 간절한 눈빛에, 소예지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엄마는 잠깐 위에 가서 세수 좀 하고 올게.”그 말만 남기고 소예지는 고이한을 외면한 채 계단을 올랐다.저녁 식사가 준비된 후에야 그녀는 식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때, 고하슬이 입을 삐죽이며 뜻밖의 말을 꺼냈다.“아빠, 요즘 왜 맨날 유빈 이모랑만 있어요? 엄마가 아빠 아내잖아요. 아빠는 엄마랑 같이 있어야지.”젓가락을 들던 소예지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애가 이런 말을 어디서 배운 거야?’고이한도 당황한 듯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다가, 이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그래. 앞으로는 아빠가 엄마랑 하슬이랑 더 자주 같이 있을게.”“진짜예요? 엄마랑 나 버리면 안 돼요!”“응. 절대 안 버려. 아빠가 약속할게.”고이한은 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웃었다.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소예지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오늘 저녁 식사가 끝나는 대로 분명하게 말할 생각이었다. 그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217화

    윤하준은 소예지를 아래층까지 배웅한 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혹시 오늘 이안이 데려가 저녁 먹일 수 있을까요? 오늘은 제가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물론이지요. 그럼 8시 반쯤 데리러 오세요.”소예지는 흔쾌히 받아들였다.딸아이가 친구와 함께 있으면 유난히 밥을 잘 먹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그녀도 반가운 일이었다.약속된 시간인 8시 반, 윤하준은 어김없이 집을 찾아왔다.그는 손에 선물까지 들고 있었고 두 아이는 그 선물을 함께 뜯으며 깔깔대며 웃음을 터뜨렸다.그 틈을 타, 소예지는 윤하준을 마당으로 불러내 차 한 잔을 건넸다.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젤리도 이제는 윤하준이 익숙한 듯, 그의 발치에 몸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그러다 아예 앞발을 그의 손 위에 얹고는 꼬리를 흔들며 애정 어린 눈빛을 보냈다.20분쯤 뒤, 윤하준은 이안을 달래 데리고 나섰다.“늦게까지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요.”그가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하지만 고하슬은 아쉬움이 남은 눈치였다.그러다 이내 엄마의 휴대폰을 집어 들더니 능숙하게 비밀번호를 해제해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막 빨래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던 소예지는, 딸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네, 공룡 장난감 갖고 싶어요!”그 말과 함께 스피커폰 너머로 들려온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 심유빈이었다.“좋아. 그럼 내일 아빠랑 같이 가서 사줄게. 지금은 늦었으니까 얼른 자야지?”웃음기 머금은 그 목소리에, 소예지의 머릿속은 하얘졌다.딸이 고이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은 건 심유빈이었다.소예지는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지만 귀를 때리는 듯한 그 여자의 목소리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심유빈은 분명 짜증을 참는 듯한 말투였다.딸의 전화가 두 사람의 ‘은밀한 시간’을 방해한 것이 분명했다.밤 9시 반.이 시간이면, 둘은 호텔에 함께 있었을 터였다.“그럼 잘 자요, 유빈 이모! 내일 꼭 아빠한테 말해줘야 해요! 하슬이 공룡 장난감 갖고 싶다고요!”“알겠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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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예지는 몇 개의 영상을 더 넘기다 이내 휴대폰을 내려두었다. 출장길에 선물을 준비할 여유가 없었던 탓에, 공항 근처에서 급하게 선물을 사야 했다.밤 8시 반, 집에 도착한 그녀는 다시 차를 몰아 곧장 고씨 가문으로 향했다.현관 앞, 진가영이 고하슬의 손을 꼭 잡은 채 마중을 나와 있었다.“엄마? 왜 혼자 왔어요? 아빠는요?”고하슬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아빠는 며칠 뒤에 돌아오실 거야. 가자, 선물이 차에 있어.”‘선물’이라는 말에 고하슬의 눈동자가 반짝였고 아이는 얼른 진가영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할머니, 안녕! 또 놀러 올게요!”진가영도 따뜻한 미소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그래, 다음에 또 오렴.”그녀의 눈에는 어딘가 아쉬움이 고여 있었다.월요일 아침, 소예지는 딸을 등교시킨 뒤 곧장 실험실로 향했고 건물 로비에 들어서던 찰나, 마침 안채린과 이서연과 마주쳤다.그 순간, 안채린의 눈빛에선 짙은 원망이 고스란히 묻어났다.아버지의 프로젝트가 무산되고 어머니는 스트레스로 인해 불면과 두통에 시달리다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는 이 모든 사태의 근원이 소예지라고 믿고 있었다.“이번 회의에서 수확이 꽤 있었겠네?”이서연이 먼저 말을 건넸다.“응. 이따가 회의 자료는 단톡방에 공유할게.”소예지는 담담하게 대답하며 로비를 지나쳤다.오전 10시 회의. 양정화는 새로운 업무를 배분했다.안채린은 여전히 기초 실험 파트를 맡았고 이서연은 각 병원을 돌며 임상 케이스 수집을 담당하게 되었다.반면, 소예지와 강준석은 MD 사와 함께하는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이서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학술 능력으로 이 연구팀에 합류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운이었기에 맡은 역할에 불만을 품을 이유가 없었다.하지만 안채린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매일 실험실에 틀어박혀 반복적인 기초실험에 매달리는 자신과 달리, 소예지와 강준석은 핵심 기술과 전략을 다루는 중심축이 되어 있었다.“아, 맞다.”회의가 끝날 무렵,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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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예지는 강준석과 함께 빠르게 로비로 들어서며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이렇게 추운 날, 그 매서운 바람 속에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담배를 피우는 거야...’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 남자의 속을 헤아릴 마음도, 시간도 없었다.그가 뭘 하든, 누구를 만나든 이제는 정말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객실로 돌아온 소예지는 곧장 샤워를 마치고 오늘 있었던 회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며 머릿속을 정돈했다.그때 초인종이 울렸다.강준석이 세미나에 대해 논의하러 온 거겠거니 생각한 소예지는 별 의심 없이 문을 열었다.그러나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 뜻밖에도 전남편, 고이한이었다.순간, 그녀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소예지는 문틈만 겨우 열어 그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무슨 일이야?”고이한은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꺼내 스피커폰을 켰다.잠시 후,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 엄마 맞아요?”그 순간, 소예지의 마음이 사르르 무너져 내렸다.그녀는 본능적으로 그의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응, 엄마야. 아직 안 자고 뭐 해?”“잠이 안 와요. 엄마랑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요.”소예지는 아이와 몇 마디를 나누며 방 안으로 돌아섰다. 몇 걸음 채 가지 않았는데 뒤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났고 고개를 돌리자 고이한이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소예지는 올라오는 짜증을 억누르며 밝은 목소리로 딸아이를 달랬다.“하슬아, 늦었으니까 얼른 자야지. 엄마 회의 끝나고 돌아가면 예쁜 선물 사다 줄게.”“와아! 신난다! 아빠도 아까 선물 사준다 그랬어요! 나 너무 행복해요!”아이의 해맑은 웃음은 사랑스러웠다.하지만 정작 아이는 왜 아빠와 엄마가 따로 선물을 사서 따로 건네야 하는지를 몰랐다.“그래, 우리 하슬이 착하지. 얼른 자자. 엄마 금방 갈게.”“네에! 사랑해요, 엄마 아빠!”통화가 끝나자 소예지는 조용히 핸드폰을 그에게 건넸다.“가져가.”고이한은 그녀에게서 휴대폰을 건네받으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시선이 따갑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213화

    주현우가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두 분도 이 호텔에 묵는 거였군요? 진작 알았더라면 함께 올 걸 그랬네요.”소예지와 강준석은 가볍게 웃으며 프런트로 향했고 이내 체크인을 마쳤다.늦은 시간이었기에 모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기에 두 사람은 곧장 객실로 올라가 휴식을 취했다.다음 날 아침 7시 30분.소예지와 강준석은 호텔 조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소예지는 여전히 장모가 빌려준 회색 체크무늬 자켓을 입고 있었고 그 안에는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매치해 입었다.멀리서 보면 막 대학을 졸업한 신입 사원처럼 풋풋한 인상이었다.같은 시각, 고이한과 주현우 일행 역시 조식당에 도착해 있었다.고이한의 시선은 조용히 음식 코너에서 식사를 고르고 있는 소예지에게 닿아 있었고 그 눈빛엔 깊은 생각이 스며 있었다.“고 대표님, 소예지 선생께 인사라도 하시겠습니까?”주현우가 물었지만 고이한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소예지와 강준석은 창가 쪽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고 고이한 일행은 그 옆의 커다란 원형 테이블에 앉았다.고이한은 커피잔을 든 채, 소예지의 옆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오늘 그녀의 모습은 8년 전,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녀의 얼굴은 놀랄 만큼 변함없었다.소예지는 귀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고개를 돌렸다.누군가의 시선이 너무도 뜨겁게 느껴져 더는 외면할 수 없었지만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그녀는 속으로 비웃었다.‘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늘 차갑고 무심하던 사람이... 이제 와서 이혼했다고 내가 뭐 달라 보이는 건가?’아침 식사 후, 참석자들은 인근 연구소로 이동했다.테이블 위에 이름표까지 놓여 있을 만큼 이번 회의는 국내 각 분야 최정상의 전문가들만 참석한 중요한 자리였다.소예지와 강준석은 나란히 앉았고 고이한은 주현우와 함께 앞쪽 두 번째 줄에 자리를 잡았다.회의는 곧장 시작되었다.화려한 시작도, 감동적인 영상도 없는 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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