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토요일 오전.송유지는 늦잠을 자고 눈을 떴다.휴대전화를 확인하자 채도하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일어났어?시간을 보니 오전 열한 시가 넘었다.유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왜 안 깨웠어요?”—피곤하다며.“그래도 이렇게 늦게까지.”—오늘 출근 안 하잖아.유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어디예요?”—숙소 앞.“뭐?”유지는 창문으로 달려갔다.건물 앞에 도하가 서 있었다.한 손에는 커피 두 잔이 들려 있었다.유지는 웃음을 터뜨렸다.“진짜 왔네.”—어제도 왔어.“잠깐만 기다려요.”삼십 분 뒤.둘은 유지가 앞으로 6개월 동안 지낼 동네를 걸었다.유지가 먼저 길을 안내했다.“저기가 회사.”“진짜 가깝네.”“응. 그래서 아침에는 편해요.”“점심은 어디서 먹어?”“저쪽 골목.”유지는 자주 가게 된 식당과 카페.편의점.퇴근할 때 걷는 길까지 하나씩 보여줬다.도하는 별말 없이 따라왔다.그러다 유지가 웃었다.“왜요.”“뭐가.”“계속 보고만 있잖아요.”도하는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네가 여기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어.”“어때 보여요?”“잘 지내네.”대답은 짧았다.그런데 유지에게는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조금 서운해요?”도하가 그녀를 봤다.“왜.”“저 없이도 너무 잘 지내 보여서.”이번에는 도하가 웃었다.“그건 좋은 거잖아.”“진짜?”“응.”잠깐.“보고 싶은 거랑 네가 잘 지냈으면 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유지는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점심을 먹고 나온 뒤.둘은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았다.유지가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는데 회사 메일 알림이 떴다.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열었다.그러다 표정이 굳었다.도하가 바로 알아차렸다.“왜.”“잠깐만.”유지는 메일을 다시 읽었다.프로젝트 진행 방식 변경.파견 인력 일부에 대한 근무 기간 연장 가능성 검토.기존 6개월에서.최대 1년.유지의 손이 멈췄다.“도하 씨.”“응.”“이거 봐요.”도하는 화면을 받아 들었다.말없이 끝까
월요일 아침.송유지는 새로운 원룸 한가운데 서 있었다.회사에서 마련해준 숙소.침대 하나.작은 책상.냉장고.옷장.필요한 건 다 있었지만.이상하게 비어 보였다.유지는 캐리어를 열다가 잠깐 멈췄다.평소라면 익숙한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자신의 컵.슬리퍼.칫솔.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채도하의 집에 두고 왔다.일부러.돌아갈 자리를 남겨두고 싶어서.휴대전화가 울렸다.—도착했어?유지는 바로 답했다.—응. 방금.잠시 뒤.—사진 보내봐.유지는 방 전체를 찍어 보냈다.몇 초 뒤.—생각보다 괜찮네.—작아요.—혼자 지내기는 괜찮겠다.유지는 잠깐 화면을 보다가 썼다.—도하 씨 집보다 조용해요.답장이 조금 늦었다.—첫날부터 그러면 어떡해.유지는 웃었다.첫 출근은 생각보다 정신없었다.새로운 사람들.새로운 자리.새로운 업무.점심을 먹을 때까지는 도하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다.그게 조금 신기했다.오후가 되자 더 바빠졌다.퇴근한 건 저녁 여덟 시가 넘어서였다.숙소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유지는 처음으로 확실하게 느꼈다.아무도 없다.불도 꺼져 있고.기다리는 사람도 없고.“아.”유지는 혼자 웃었다.채도하의 집에서는 자신이 먼저 들어가도.언젠가는 도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런데 이곳은.자신이 들어오면 그걸로 끝이었다.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을 때.도하에게서 전화가 왔다.“여보세요.”—목소리 왜 그래.“피곤해서.”—밥은 먹었어?“대충.”—대충 뭐.유지는 웃었다.“김밥.”—내일은 제대로 먹어.“알겠어요.”잠깐 침묵.유지가 물었다.“도하 씨는요?”—집.“혼자?”—그럼 누구랑 있어.유지는 괜히 웃었다.“제 슬리퍼 있어요?”도하가 잠깐 말이 없었다.—응.“컵도?”—응.“옷도?”—그대로 있어.유지는 이불을 조금 끌어올렸다.“다행이다.”—뭐가.“그냥.”말하고 나서 스스로 웃었다.“아, 그냥 금지였지.”도하도 낮게 웃었다.수요일.둘은 영상통화를 켜
수요일 저녁.송유지는 회사에서 돌아온 뒤에도 계속 휴대전화를 들여다봤다.파견 제안 수락 마감까지.이틀.채도하에게는 이미 말했다.하지만 결정을 내리는 건 결국 자신이었다.유지는 소파에 앉아 한참 생각하다 도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올 수 있어요?답장은 바로 왔다.—지금 갈게.한 시간도 안 돼 도하가 도착했다.유지는 문을 열어주자마자 말했다.“저 갈 것 같아요.”도하는 신발을 벗다 멈췄다.“파견?”“네.”잠깐.“가고 싶어요.”말하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도하는 한동안 유지 얼굴을 봤다.“그럼 가.”유지는 웃지 못했다.“진짜 괜찮아요?”“안 괜찮아도.”도하가 낮게 말했다.“네가 원하는 일이라면 가야지.”유지는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조금 서운했다.“도하 씨는 너무 잘 보내줘요.”“그럼 가지 말라고 할까.”“그건 싫고.”도하가 피식 웃었다.“어렵네.”유지도 결국 웃었다.잠시 후.유지는 식탁 위에 회사 자료를 펼쳤다.파견지.숙소 지원.출퇴근 조건.주말 이동 가능 여부.도하가 하나씩 읽었다.“회사에서 숙소는 잡아줘?”“네. 작은 원룸.”“위치는?”“지사에서 걸어서 십오 분.”도하는 잠시 생각했다.“그럼 차는 굳이 안 가져가도 되겠네.”“도하 씨.”“응.”“왜 벌써 제 생활 계획까지 짜요.”도하가 화면을 계속 보며 말했다.“불편한 거 없게 보려고.”유지는 한동안 그를 바라봤다.예전 같으면.이런 식으로 도하가 챙기면 또 의미를 찾았을 것이다.지금은 그냥 알았다.좋아해서.자신이 가서 힘들지 않았으면 해서.유지가 물었다.“주말에 진짜 같이 가볼래요?”“응.”“파견지.”“응.”“왜 그렇게 바로 대답해요.”도하가 고개를 들었다.“네가 6개월 살 곳이잖아.”잠깐.“한번 보고 싶어.”유지의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저 없어도 여기 잘 있을 수 있죠?”도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유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왜요.”“잘 있긴 하겠지.”“근데?
월요일 오후.송유지는 회의실에서 나온 뒤 한동안 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방금 들은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6개월 파견.회사에서 새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유지에게 지방 지사 근무를 제안했다.강제는 아니었다.거절해도 됐다.대신 받아들이면 지금보다 맡는 일이 커지고, 이후 자리도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문제는.결정할 시간이 사흘뿐이라는 것.유지는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주말에는 채도하와 다시 집을 보러 가기로 했다.둘이 살 수도 있는 집.그런데 갑자기.자신의 앞에 전혀 다른 도시가 생겼다.저녁.유지는 도하의 집으로 가지 않았다.근처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도하는 자리에 앉자마자 유지 얼굴을 봤다.“무슨 일 있어?”“티 나요?”“응.”유지는 괜히 컵을 만지작거렸다.“회사에서 제안 하나 받았어요.”도하는 말없이 기다렸다.“파견.”“어디로?”“지방 지사.”“얼마나.”“6개월.”도하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었다.유지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싫죠?”도하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네가 가고 싶어?”예상했던 질문이 아니었다.유지는 멈칫했다.“저요?”“응.”“도하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내 생각 말고.”도하가 낮게 말했다.“네가 가고 싶은지부터.”유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솔직히.조금 가고 싶었다.좋은 기회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까지 둘이 만들던 계획이 너무 빨리 떠올랐다.여행.집.같이 살지도 모르는 미래.“가면.”유지가 천천히 말했다.“우리 집 보러 다니던 것도 의미 없어지잖아요.”도하가 고개를 저었다.“왜 없어져.”“6개월이나 없는데.”“6개월 뒤에도 집은 있어.”유지는 말이 막혔다.“도하 씨.”“응.”“안 붙잡아요?”이번에는 도하가 유지 얼굴을 오래 봤다.“붙잡고 싶지.”그 한마디에 유지의 심장이 내려앉았다.“근데.”도하는 손을 뻗어 유지 손을 잡았다.“그거랑 네가 갈 기회를 포기했으면 하는 건 다른 얘기잖아.”유지는 손끝에 힘을
토요일 오전.송유지는 약속 시간보다 십 분 먼저 나와 있었다.오늘은 평소 데이트와 달랐다.영화도 아니고.카페도 아니고.여행도 아니었다.채도하와 함께 집을 보러 가는 날.아직 계약할 생각은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이상하게 아침부터 긴장됐다.도하가 도착하자 유지가 바로 물었다.“진짜 보기만 하는 거 맞죠?”도하가 차 문을 열어주며 웃었다.“응.”“좋은 집 나와도요?”“바로 계약 안 해.”“확실해요?”“확실해.”유지는 그제야 차에 올랐다.“왜 이렇게 긴장하지.”도하가 시동을 걸었다.“네가 먼저 보러 가고 싶다며.”“그때랑 오늘은 다르죠.”“뭐가.”유지는 잠깐 생각했다.“오늘은 진짜 문 열고 들어가서 보잖아요.”도하는 낮게 웃었다.“집 보는 건 원래 그래.”“알아요.”첫 번째 집은 생각보다 작았다.사진으로 볼 때는 거실이 넓어 보였는데.실제로 들어가니 소파와 식탁을 놓으면 금방 꽉 찰 것 같았다.유지는 주방을 둘러봤다.“여기는 좀 좁다.”도하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응.”방 두 개는 있었지만.작은 방 하나는 책상 두 개를 놓기에도 빠듯했다.유지가 문 앞에 서서 말했다.“각자 일하는 공간은 힘들겠어요.”도하가 방 크기를 한번 확인했다.“그러네.”부동산 직원이 말했다.“두 분이 신혼으로 들어오기에는 많이들 보시는 구조예요.”유지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신혼.도하도 아주 잠깐 멈췄다.하지만 직원은 별 의미 없이 다음 설명을 이어갔다.유지는 괜히 도하 쪽을 보지 않았다.집을 다 보고 밖으로 나온 뒤.도하가 먼저 물었다.“왜 조용해.”“아까 들었잖아요.”“뭘.”“신혼.”도하가 웃었다.“그게 왜.”“안 놀랐어요?”“조금.”유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표정 하나도 안 변하던데.”“너는 변했어.”유지가 바로 얼굴을 돌렸다.두 번째 집은 달랐다.현관부터 넓었고.거실로 들어가자 햇빛이 잘 들어왔다.유지는 바로 창가로 갔다.“여기 좋다.”도하도 천천히 주변을 둘러
월요일 저녁.송유지는 채도하의 집 소파에 앉아 부동산 앱을 보고 있었다.도하는 옆에서 노트북을 보다가 슬쩍 화면을 확인했다.“뭐 봐.”“집.”도하의 손이 멈췄다.유지는 바로 웃었다.“진짜 구하는 거 아니에요.”“놀랐네.”“그냥 어떤 집들이 있나 보는 거예요.”도하는 노트북을 닫았다.“보여줘.”유지는 휴대전화를 가운데로 가져왔다.“이런 건 어때요?”화면에는 방 두 개짜리 집이 떠 있었다.밝은 거실.작은 주방.넉넉한 수납장.도하가 사진을 넘겼다.“거실은 괜찮네.”“주방은 조금 좁죠?”“응.”유지는 웃었다.“벌써 같이 보네.”“네가 보여줬잖아.”“그래도.”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살 집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긴장했는데.이제는 화면 속 집을 보며 자연스럽게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유지는 검색 조건을 열었다.“조건 정해볼까요?”“무슨 조건.”“나중에 진짜 집 볼 때.”도하가 잠깐 생각했다.“회사 너무 멀지 않은 곳.”“그건 중요.”유지는 하나를 적었다.“또?”“주차.”“도하 씨답다.”“필요하잖아.”“저는 수납.”“그것도 필요하고.”“햇빛 잘 드는 거.”“응.”유지는 계속 적었다.“주방은 너무 작으면 싫어요.”“요즘 요리 자주 해서?”유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도하 씨도 하잖아요.”“그럼 큰 걸로.”“욕실도 하나는 넓었으면 좋겠고.”도하가 웃었다.“점점 구체적이네.”유지도 잠깐 멈췄다.그러게.아직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는데.조건은 자꾸 늘어났다.“도하 씨는 또 없어요?”도하는 잠시 생각했다.“방 하나 더.”“왜요?”“각자 혼자 있고 싶을 때 쓸 수 있게.”유지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같이 살아도요?”“같이 살아도.”도하는 자연스럽게 말했다.“계속 붙어 있을 필요는 없잖아.”유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말이 좋았다.같이 산다고 해서 모든 시간을 공유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그럼 방 두 개 이상.”“응.”유지는 조건을 추가했다.한참 집을 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