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 그들은 아직 신농의 제자가 아니었기에, 용전이 정말로 그들을 죽인다고 하더라도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을 것이었다.그리고 원래부터 용전은 진서준를 비롯한 사람들의 신분이 자신보다 훨씬 천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런데 방금 진서준과 임배가 손을 잡고 그를 다치게 했으니 용전의 체면이 여지없이 구겨졌다.용전이 이렇게 뻔뻔스럽게 나오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속으로 그를 엄청나게 경멸했다.아까는 전력을 다해서 덤비라고 했던 사람이 지금에 와서는 도리어 진서준과 임배에게 상처를 입었다고 화를 내고 있다니, 정말 염치가 없었다.하지만 사람들은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거니와, 심지어 나서서 돕지도 못했다.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낯선 사람 하나 때문에 자신의 앞길을 망칠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난 당신이 그를 죽이게 할 수는 없습니다!”진서준은 임배의 앞을 가로막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용전은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너털웃음을 웃기 시작했다.“하하하하...”미친 듯한 웃음을 마친 용전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두 눈에 살기가 거의 넘쳐흘렀다.“당신이 뭔데 감히 내 앞을 막아? 누군가 호송해주지 않았다면 네놈은 우리 신농의 대문도 못 들어왔을 거야!”조기강이 진서준을 호송하는 장면을 용전은 모두 눈여겨보았었다.이 일로 용전은 진서준을 매우 업신여기었고, 진서준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미친 듯한 너털웃음을 마친 용전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두 눈에는 살기가 거의 넘쳐흘렀다.“오늘은 이 사람만 죽는 게 아니라 당신도 죽어야 해!”용전이 매섭게 말했다.“이건 김평안과 무관하니 풀어주세요...”바닥에 쓰러져있는 임배가 허약하고 무기력하게 사정했다.“풀어주라고? 그럼 저승에 혼자 내려가면 외롭지 않아? 나처럼 착한 사람이 어떻게 당신 혼자 저승에 가게 할 수 있겠어!”용전은 말을 마치자, 갑자기 진서준에게 주먹을 날렸다.그의 주먹은 매우 맵고 지독하다. 게다가 뜻밖에 공격하여 속도가 더욱 극에 달했다.공기 중에 귀를 진동하
“좋아요, 당신이 사정을 봐주지 않는 이상, 저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말을 마치자 진서준은 손바닥을 쫙 펴서 흔들었다.검이 공기를 베는 소리와 함께 천문검이 진서준의 손에 떨어졌다.진서준의 손에 든 천문검을 보고 용전은 빈정거리며 말했다.“이 검으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진짜 순진하네.”“당신이 검을 다루니, 내가 먼저 검을 부숴버린 후 네놈들을 죽일 것이다!”말을 마친 용전의 모습은 제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또한, 그 속도는 아까보다 더 빨랐다.진서준은 눈동자가 급히 수축함에 따라, 앞을 향해 다섯 개의 검을 연속적으로 베었다.다만 모든 검이 허영에 베였을 뿐, 용전의 털도 한 가닥 건드리지 못했다.“속도가 너무 느려...”용전의 빈정대는 목소리가 진서준의 귓가에서 울렸다.‘펑!’또 한 방!긴박한 상황에서 진서준은 천문검으로 용전의 주먹을 막았다.‘찰칵...’손에 잡힌 검에서 뭔가 부러지는 소리처럼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이 검은 진서준에 의해 담금질 되었기에 강인함이 뛰어났다.지금 용전의 한 주먹에 천문검이 작은 균열을 내고 있으니 용전의 실력을 알 수 있었다.용전의 수련 시간은 진서준보다 훨씬 길고도 남음이 있었다.그는 어릴 때부터 신농산 안에서 자랐고, 또 신농 대장로가 직접 가르쳤으니, 실력이 자연히 속되지 않을 것이었다.고수들이 구름같이 모여드는 신농곡이라 할지라도, 또래 중 누구도 용전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심지어 같은 단계에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게다가 그 두 사람은 모두 40대 중년 남자였다.“이것이 바로 네놈의 검이냐, 내 주먹보다도 약하네!”용전의 얼굴에는 흉악한 웃음이 가득했고, 진서준을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죽은 사람을 보는 것과 같았다. 진서준의 마음은 지금 초조하기 그지없었다.이대로 가다간 천문검마저 지킬 수 없었다.정말 스스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가?‘펑펑펑...’용전은 천수관음처럼 수많은 권영이 대중의 시야에 나타나 끊임없이 천문검을 폭격했다.불
여러 사람은 즉시 신농곡의 오장로에게 고개를 돌렸다.오장로를 본 여러 사람은 모두 어리둥절해졌다.그들의 인상 속에는 신농곡의 장로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선풍도골의 늙은이들이다.그러나 눈앞의 이 오장로는 전혀 늙어 보이지 않았을고, 오히려 매우 젊고, 멋있었다.긴 검은 머리에 연청색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 모습이 마치 선협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을 연상케 했다.용전이 그를 오장로라고 부르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를 신농산의 장로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살짝 혼내주기만 하면 돼, 죽이지는 마.”“시월 초열에 사문회전이 남아 있다. 이번 회전은 모두 젊은이들의 몫이니,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나설일이 없지.”오장로가 담담하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용전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명심하겠습니다.”오장로는 고개를 끄덕인 후 뒤돌아 떠났다. 심지어 진서준 일행을 쳐다보지도 않았다.진서준도 안도의 한순을 내쉬었다.그는 이 오장로가 귀찮게 할까 봐 내심 두려웠다.오장로가 떠난 후, 용전은 진서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네놈은 운이 좋은 셈이야. 하지만 도망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지 마!”“다른 사람들은 한 세트씩 훈련하면 되지만, 너는 세 세트를 해야만 쉴 수 있다!”용전의 말에 따르면 진서준은 세 세트를 해야만 휴식이 허락되었다. 이를 듣고 많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진서준을 동정했다.지금 그들은 훈련을 한 세트씩 하는 것도 미칠 정도로 힘들었으니, 연속 세 세트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하지만 진서준은 개의치 않았다. 세 세트는 그를 조금 피곤하게 할 뿐이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자신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진서준도 감히 건방지게 행동하지 못했다.용전이 떠난 후, 진서준은 임배를 등에 업고 약국으로 데려갔다.신농곡에는 좋은 약재가 아주 많다. 이전의 성약당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하지만 진서준과 같은 사람들은 선농곡의 약재를 전혀 만질 기회조차 없다.가령 임배가 심하게 다치지
바로 몇 년 전, 한 무리의 골드러시가 난사 부근에서 고대 문물을 발굴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었다.심지어 국가 차원에서도 탐사대를 수없이 보냈지만, 왕모묘가 워낙 바다 밑에 있는지라시공 난도가 너무 커서 포기했었다.진서준은 임배가 그곳까지 찾아가서 보물을 구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진서준의 얼굴에 나타난 놀란 표정을 본 임배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내가 말한 절세보검은 바로 그 왕모묘에서 나온 것입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쓴웃음을 지었다.“하산할 기회가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임배는 진서준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위로했다.“반드시 기회가 있을 겁니다. 내가 미리 물건을 어디에 숨겼는지 알려줄 테니, 언젠가내려갈 수 있으면 바로 가요!”이내 임배는 보검을 숨긴 곳을 진서준에게 알려주었다.진서준은 듣고 몹시 놀랐다.“묘지에 숨기셨다고요?”“목소리 낮춰요!”임배는 주위를 둘러보고나서 아무도 두 사람을 주목하지 않는 것을 보고 계속해서 말했다.“그곳에 숨겨야 아무도 찾지 못하니깐, 밤에 쉴 때 자세한 위치를 그려줄게요.”밤에 휴식할 때, 임배는 검을 숨긴 곳을 그려서 진서준에게 주었다.진서준은 약간 감동은 되지만 또한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임배 씨, 왜 나한테 잘해줘요?”“당신만이 내가 가진 임씨 방계의 신분을 멸시하지 않으니까요.”임배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은범을 비롯한 8명은 모두 대가족의 직계다.그들의 눈에는 방계가 바로 직계의 종이기에 저희가 방계에게 시키는 일은 방계 가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임배가 임가의 방계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아무도 그에게 좋은 내색을 보이지안았다.오직 진서준만이 예전과 다름없이 임배를 대했다. 아무런 멸시도, 조롱도 없었다.진서준은 임배의 설명을 듣고 감개무량했다.혈연으로 사람들을 등급으로 나누어 차별 취급하다니, 정말 가엾은 사람들이었다.“간계를 부리는 사람만 아니라면 전 차별하지 않습니다.”그 후 며칠
임배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그들처럼 오디션을 통해 신농곡에 들어온 무인들이 신농곡의 제자가 되려면 적어도 2년은 걸릴 것이었다.내실 제자가 되려면 시간뿐 아니라 운도 따라야 했었다.신농곡의 장로가 제자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내실 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전에 진서준이 신농곡 입구에서 만난 두 사람은 신농곡에 들어온 지 8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외실 제자에 불과했다.“그럼 힘내세요.”진서준은 싱긋 웃으며 임배의 어깨를 두드렸다.“평안 씨는 왜 이렇게 덤덤합니까? 당신은 내실 제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까?”임배는 진서준의 태도에 조금 놀랐다.담담, 평온, 내실 제자의 신분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만약 그들이 내실 제자가 되었다면, 용전은 감히 그들에게 이렇게 함부로 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나는 강해지고 싶을 뿐이지, 내실 제자가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진서준은 싱긋 웃었다.“쯧쯧, 과연 당신 각오가 나보다 높긴 높네.”라고 임배는 감탄했다.진서준은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이는 진서준의 솔직한 생각이기 때문이었다.만약 실력이 충분했다면, 그는 바로 장로 다락방 뒤편의 작은 집으로 쳐들어가 어머니를 구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진서준이 신농곡에 들어온 지 어느덧 보름이 되었다. 이제 보름만 더 지나면 4월이다.4월은 해외 무인들이 대거 대한민국 무도를 포위 공격하는 시기다.진서준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바로 진서준이 자신의 어머니를 어떻게 만나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그날 낮, 장로 다락방의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곧이어 다섯 명의 장로들이 동시에 나타났다.진서준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어, 다섯 장로가 내실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하는지 들을 수 없었다.잠시 후, 다섯 명의 장로들은 신농곡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그들은 다락방을 떠났다!진서준은 눈앞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이것은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인 것 같았다.다섯 명의 장로가 모두 사라졌으니, 지금이 바로 몰래 어머니를 만
“어머니, 진짜 접니다, 전 서준입니다!”진서준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준아, 내 아들아!”조희선은 즉시 몸을 숙여 진서준을 단번에 덥석 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하지만 조희선은 금방 눈물을 거두고 수심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서준아, 넌 어떻게 들어왔니? 신농곡은 철옹성이야. 게다가 내 앞에 있는 다락방은 신농곡의 다섯 장로의 거처야.”“만약 네가 그들에게 잡히면, 네 아버지의 고된 노력은 헛수고가 되고 만다.”진서준은 조희선의 손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 즉시 설명했다.“괜찮습니다. 어머니, 전 그 다섯 장로가 오늘 신농곡을 떠나는 것을 보고 기회를 타서 몰래 들어온 것입니다.”조희선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들이 없으면 됐다…”“어머니, 물어볼 게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누구고, 왜 여기에 갇혔으며, 엄마는 애초에 왜 아무 말도 없이 떠났습니까?”진서준은 이미 많은 내막을 알고 있지만, 어떤 일은 여전히 자신의 어머니가 직접 말하는 것을 듣고 싶었다.조희선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이제는 너도 진실을 알아야 할 때다.”“네 아버지의 이름은 진요한인데, 경성 진씨 집안 사람이고, 나의 본명은 임수련이며, 임씨 집안 사람이다.”“처음에 네 아버지와 나는 첫눈에 반했었고, 진씨 가문과 임씨 가문도 혼인을 맺을 뜻이 있어서, 나는 네 아버지에게 시집갔단다.”“그 후 네 아버지는 한 사람을 따라 선법을 수련하셨는데,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었단다. 나도 그때 네 아버지를 대신해서 기뻐했지만, 네 아버지는 또한 그로 인해 재화를 초래했다.”“대한민국 무도계가 나와 네 아버지를 살해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의 이도들, 심지어 4대 은세종문까지 네 아버지를 찾아다니며 살해하려 했단다.”“하지만 그때 나는 이미 너를 회임했고, 네 아버지는 우리 두 모자가 피해를 보는 것이 두려워서, 신농을 따라 신농 금지 구역에 들어가 자신을 숨기기로 했다.”“내가 너를 낳은 후, 네 할아버지 진혁은 우리 두 모자에게 무
“얼씨구? 모자지간의 정이 너무 깊어 눈물이 날 것 같네.”이때, 밖에서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소리를 듣자마자 진서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용전!”조금 전까지 진서준의 관심은 온통 조희선에게 쏠려 있어서 밖에 누가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이제야 용전의 목소리를 들은 진서준은 용전이 이미 밖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진서준은 용전이 자기를 방금 알아챈 건지, 아니면 이미 정체를 알고 있었던 건지 헷갈렸다.용전은 방으로 들어와 조롱이 섞인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널 진서준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면 김평안이라고 불러야 하나?”용전이 진서준의 또 다른 이름을 말하자 진서준의 마음은 깊은 절망으로 가라앉았다.오늘 다섯 장로가 떠난 게 아무리 생각해도 진서준에게 보여주기 위한 술책이었을 것 같았다.그 목적은 바로 진서준을 이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이었다.“신농곡 다섯 장로도 사실 안 떠난 거지? 오늘 장로들이 떠난 건 연기였어?”진서준은 심각한 표정으로 용전을 바라보며 물었다.신농곡의 다섯 장로가 아직 남아있다면 오늘은 정말 위태로운 상황이 될 수 있었다.“너 하나 때문에 연극을 한다고? 네가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용전은 가차 없이 진서준을 비웃었다.“우리 신농곡 다섯 장로는 진짜 볼일이 있어 나간 거야, 네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연극을 한 게 아니야. 너 같은 단역 배우 때문에 그분들이 연극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용전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신농곡의 다섯 장로는 그야말로 절정의 고수들이었다.그들 앞에서는 호국장군조차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춰야 할 정도였다.게다가 다섯 장로는 이런 일에 신경 쓸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고 다들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조희선이 스스로 덫에 걸려들었을 때 다섯 장로는 조희선을 이용해 진서준을 유인하려 하지 않았다.“서준아, 어서 도망쳐!”조희선은 곧장 진서준을 향해 외쳤다.“저 사람들은 나에게 감히 손대지 못해!
진서준은 속전속결로 용전을 쓰러뜨리고 조희선을 데리고 신농곡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좋아, 나가서 한 판 붙자.”용전은 곧바로 몸을 돌려 작은 오두막을 나서더니 근처의 아무도 없는 수련 장소로 이동했다.“엄마, 여기서 절 기다려요.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진서준은 조희선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용전의 뒤를 바짝 따랐다.밤이 되면 신농곡의 링에서 교전을 벌이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에 용전은 자기와 진서준의 싸움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 거라 염려하지 않았다.평소 용전은 매우 거만하고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는 듯했지만 사실 그의 생각은 상당히 치밀했다.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용전은 신농곡의 대장로에게 제자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진서준과 용전은 링에 도착했고 두 사람은 서로를 신중하게 주시했다.용전이 먼저 천천히 입을 열었다.“진서준, 정말 고맙구나. 네가 아니었으면 이 모든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을 거야.”용전의 말을 들은 진서준은 잠시 멍해졌다.“내 정체를 조금 전 알게 되었단 말이야?”“그래!”용전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인피면구는 정말 대단하더라. 우리 장로들조차 속일 수 있을 줄은 몰랐어.”그날 오장로가 진서준의 가면을 알아차렸다면 오늘 밤의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터였다.이제 진서준은 완전히 안심할 수 있었다.용전만 처리할 수 있다면 엄마와 함께 신농산을 몰래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장로들은 속였지만 널 속이진 못했구나...”진서준은 차갑게 말했다.“네겐 아직 기회가 있어, 날 이기기만 하면 돼.”용전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근데 날 이긴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거야.”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전의 모습이 사라졌다.용전의 속도는 번개와도 같아 짙은 밤의 어둠과 하나가 된 듯했다.그 모습에 강렬한 위기감이 진서준의 마음속에서 솟아올랐다.여러 차례 생사가 오간 경험이 진서준에게 눈앞의 용전은 문호동보다도 훨씬 강하다고 경고하고 있었다.하지만 진서준은 포기하지 않았다. 진서준은 반드시 엄마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