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로님, 그만하세요. 굳이 그분과 입만 아프게 해명할 필요는 없잖아요.”조슬기가 나서서 이장로를 설득했다.조슬기는 예전에 아버지한테서 들은 적이 있어 주자청과 문추원 사이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이 두 사람이 서로를 이렇게 못마땅해하는 이유는 한 여자로 인해 시작되었다.아버지의 말로는 두 사람이 젊었을 때 공교롭게도 한 여자를 좋아했는데 그 여자 때문에 둘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싸웠었다.직접적인 충돌은 열 번이 넘었고 승패는 반반이었다.하지만 나중에 그 여자는 두 사람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깊은 상처를 받았다.두 사람은 서로가 없었으면 그 여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하며 그 원한을 지금까지 이어 온 것이었다.둘이 실랑이를 벌리는 사이, 김평안이 스님 한 명을 따라 들어왔고 모두의 시선이 즉시 그쪽으로 끌렸다.“이 사람이 바로 김평안인가? 별로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데?”“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마. 동북 검선과 이름을 나란히 하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일 수 있겠어?”“저 곤륜 중주 따님이 이 중년 아저씨에게 관심 있는 건 아니겠지?”조슬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활짝 웃으며 김평안에게 다가갔다.“김평안 씨, 드디어 오셨네요.”조슬기는 이미 숭산에서 10일 정도 있었고 지루한 나날을 힘들게 보내고 있었다.그러니 오매불망 그리던 김평안을 보니 신날 수밖에 없었다.“조슬기 씨, 안녕하세요.”진서준은 매우 공손하게 조슬기에게 인사했다.진서준이 갑자기 이렇게 격식을 차리자 조슬기는 순간 당황했고 이내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조슬기는 애써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물었다.“김평안 씨,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서남 지역에서 볼 일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늦었죠.”진서준은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요 며칠 사이 진서준은 한가할 시간이 없었다.허사연의 다리가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성약당에 부탁해 여러 가지 약재를 보냈고 매일 마사지와 침술을 해주었다.그
“신농 사람들 뭐 하는 거야? 이틀 후면 시작인데 왜 아직도 안 오지?”남사 사장로 문추원이 참지 못하고 불평을 터뜨렸다.남사와 곤륜, 그리고 장백은 이미 숭산에 온 지 15일이 넘었는데 신농 사람들만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신농 사람들은 항상 잘난 척하며 온갖 허세를 다 부리잖아. 너희도 잘 알잖아.”“맞아, 매번 뭐 할 때마다 가장 늦게 온다니까.”“내가 듣기로는 작년 신농에서 제자 모집할 때 조건을 크게 낮췄다고 하더라. 그러니 이번에 모집된 제자들도 별로일 거야.”그 말을 듣자 은청준이 즉시 입을 열었다.“저 사람은 본래 신농 제자였습니다.”“뭐라고요? 이 사람이 신농 제자였다고요?”현장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고 장백과 남사에서 온 장로들도 전부 김평안을 의아하게 쳐다봤다.“그런데 왜 혼자 왔어? 신농 사람들은 어디 갔어?”그러자 은청준이 나서서 해명했다.“저 사람이 말하길 신농에 들어갔다가 스스로 신농에서 나왔다고 하던데요.”그 말에 현장은 한순간 술렁였다.“그건 무슨 헛소리야? 신농이 뭐 동네 화장실이야?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고 나가고 싶으면 마음대로 나가는 곳이야?”“신농은 비록 온갖 잘난 척은 다 하지만 실력은 있잖아. 절대 네가 쉽게 나갈 수 있을 리 없어.”“누구는 헛소리 칠 줄 몰라 안 치는 줄 알아?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사람들이 김평안을 비웃기 시작하자 은청준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김평안을 도발하기 시작했다.“김평안, 너 해명 안 할 거야?”“무슨 해명?”김평안이 의아해하며 되묻자 은청준이 차갑게 말했다.“무슨 해명이겠어? 난 네가 아예 신농 시험도 통과 못 했을 거라고 의심하는 거야. 신농은 4대 종문 중 하나잖아. 시험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신농에 어렵게 들어갔는데 네 마음대로 나온다고? 증거가 있기나 해?”그러자 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왜 내가 너한테 그걸 증명해야 하지?”사실 은청준이 증거를 내놓으라고 명령할 자격은 없었다.“이유는 없어. 단지 네가 증명할 용기가 없어서
조슬기는 바로 김평안을 잡으며 대꾸했다.“아니요, 이번엔 김평안 씨랑 함께 있으니까 절대 문제가 없을 거예요.”“이장로님, 저희도 슬기 후배와 함께 가겠습니다.”이때, 은청준이 갑자기 나섰다.은청준이 함께 가겠다고 하자 조슬기는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틀 후면 대회가 시작할 건데 너희는 아직도 내려가서 놀려고 해?”“우리 후배 신변을 보호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은청준이 진지하게 나오자 조슬기는 입술을 비쭉이며 말했다.“김평안 씨 하나만 있어도 안전은 문제없어요.”“그 사람은 실력이 부족해 널 보호할 수 없어.”은청준은 김평안의 체면도 고려하지 않고 전혀 거리낌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만해, 그만 떠들어.”주자청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내려가고 싶으면 은청준 일행과 함께 내려가.”그제야 은청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은청준은 절대 조슬기와 김평안이 단둘이 있는 꼴을 지켜볼 수 없었다.“함께 가면 가죠.”조슬기는 은청준을 노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곤륜 사람들까지 산에서 내려가 놀려고 하자 장백과 남사에서 온 제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하나둘씩 장로에게 휴식을 요청했다.“그럼 오늘 하루만 허락할게.”장로의 한마디에 모두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감사합니다, 장로님!”그중 몇몇 제자들은 처음으로 숭산에서 내려가게 되었다.숭산에 오늘 길에 목격한 길가의 세속적인 풍경이 그들에게 잊지 못할 깊은 인상을 남겼다.이번에 어렵게 산에서 내려오게 될 기회가 생기자 다들 당연히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김평안 씨, 우리 가요.”조슬기는 김평안의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그때 지현민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평온아, 너도 함께 내려가.”“네?”배수정은 스승님이 산에서 내려가라고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 흠칫 놀랐다.“우리 숭산에 특별히 대접할 만한 게 없잖아. 산에서 내려가면 네가 알아서 손님들을 잘 대접해 줘.”지현민이 이유를 밝혔다.“네, 스승님.”“저놈들이 산에서 내려가서
“이 제안 좋네요. 사실은 곤륜에 오기 전 난 경성에서 마이크를 한번 잡으면 놓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했어요.”은청준이 겸손함 없이 당당하게 말하자 조슬기는 입을 삐죽이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평온 씨 앞에서도 감히 노래를 잘한다고 말할 수 있나요?”“내 목소리는 평온 씨와 비교할 순 없지만 평온 씨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압도할 수 있다고 장담해.”은청준은 여전히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럼 다들 동의했으니까 노래하러 가죠.”조슬기가 김평안을 바라보며 물었다.“김평안 씨, 이 제안 괜찮은가요?”“저는 괜찮습니다.”김평안이 고개를 끄덕였다.“40대 중반 아저씨가 우리 같은 젊은 청년과 어울려 놀 수 있어?”은청준이 슬슬 비꼬자 조슬기가 은청준을 쏘아보며 받아쳤다.“누굴 아저씨라고 하는 건가요?”“됐어, 나도 그만할게. 얼른 가자.”은청준은 조슬기의 태도에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은청준은 도대체 왜 조슬기가 이 중년 아저씨를 이토록 챙겨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설마 새파란 20대인 자기가 이 40대 아저씨보다도 매력이 더 없단 말인가?조슬기 일행은 택시 몇 대를 잡아타고 얼른 시내로 향했다.송산 소림이라는 관광지 덕분에 시내 경제는 급성장해 고층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현대적인 도시 느낌이 물씬 났다.배수정은 산에서 내려온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였고 매번 산에서 내려올 때마다 여성용품을 사곤 했다.조슬기 일행은 인테리어가 화려해 보이는 유흥업소로 들어가 가장 큰 방을 예약하고 모두 방으로 들어갔다.그 뒤를 따르던 제자들은 대부분 은청준 후배였고 곤륜 시험을 통과해 들어온 사람들이었다.그러니 노래 같은 건 이들에게 낯선 존재가 아니어서 굳이 한 명씩 따로 가르쳐줄 필요가 없었다.잠시 후, 모두가 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반면, 진서준을 비롯한 몇몇은 소파에 앉아 지켜보기만 할 뿐, 이들과 함께 즐기지 않았다.“김평안 씨, 혹시 평온 씨와 아는 사이인가요?”조슬기가 의심스럽게 묻자 진서
신수란도 주해준이 가리키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김평안 외에는 은청준이 싫어할 만한 사람이 여기에 없었다.조슬기와 배수정은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김평안은 그냥 방치되었다.“김평안, 경고하는데 넌 4대 종문 대회에 끼어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주해준이 김평안을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4대 종문 대회에 외부인이 참가할 수 있는 건 맞지만 우승을 따내려면 각 종문에서 5번의 승리를 거둬야 해. 네가 혼자서 다섯 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그냥 망상일 뿐이야.”진서준은 승리 조건에 대해서 이미 장로 세 명의 대황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5번의 승리를 거두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왜냐하면 이번에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전부 다 고수였기 때문이다.하지만 김평안은 반드시 천년병제련을 손에 넣어야 했다.진서라의 체내 독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약초는 이제 이 천년병제련 하나만 남았다.그러니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약초를 손에 넣어야 했다.진서라의 병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유지수도 전에 자기가 이번 4대 종문 대회에 등장할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진서준은 천년병제련을 손에 넣을 뿐만 아니라 허사연의 복수도 해야 했다.진서준은 유지수에게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생지옥에 떨어뜨리겠다고 결심했다.“그래서 뭐 어쩌라고?”주해준의 경멸이 가득한 말투에 김평안은 차분하게 되물었다.“내가 너라면 염치없이 여기 눌러앉아 있지 않고 조용히 밖으로 나갈 거야. 네가 슬기 후배를 구했다고 해서 우리 곤륜 사람이 되었다는 착각은 집어치워.”주해준이 차갑게 말했다.“그래서 뭐 어쩌라고?”진서준은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주제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야. 다음에 곤륜에서 제자를 모집할 때 너도 한번 지원해 봐. 아마 네가 슬기 후배를 구해 준 덕에 우리 곤륜에서 널 조금 봐줄 수도 있을 거야.”주해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그래서 뭐 어쩌라고?”진서준은
“오늘 내가 기분이 좋으니 특별히 목숨을 건질 수 있는 기회를 주겠어.”주해준은 오만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지금 당장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 이번 한 번만 봐줄 거야.”그러자 검은 옷의 우두머리가 싸늘하게 말했다.“너 따위가 감히 우리한테 무릎을 꿇으라고? 전부 덤벼! 저 녀석 난도질해 버려!”순식간에 열 명이 넘는 킬러가 주해준을 향해 달려들었다.그러나 주해준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싸늘하게 웃으며 번개처럼 이 무리를 향해 돌진했다.“내 강룡십팔권을 맛보게 해주마.”주해준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검은 옷의 킬러들이 하나둘씩 나가떨어졌고 반면, 누구도 주해준의 옷자락조차 건드리지 못했다.그야말로 압도적인 실력이었고 간지가 철철 넘치는 장면이었다.“역시 해준 선배입니다. 저런 잡것들이 해준 선배 상대가 될 리가 있겠어요?”“해준 선배, 너무 멋집니다. 저 쓰레기들 깡그리 박살 내버려요.”“우리 슬기 후배를 납치하겠다고? 도대체 우리를 뭐로 보고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곤륜 제자들은 환호하며 주해준을 응원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킬러들은 전부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기 시작했다.주해준은 거만하게 턱을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이 쓰레기들이 그냥 무릎 꿇고 살길 찾지 그랬어? 맞고 나니 후회돼? 우리가 누구인지도 모르나 본데, 우린 곤륜 종문의 무도 고수야!”“해준 선배, 카리스마 넘치네요!”모두가 주해준을 향해 찬사를 보냈다.이곳에 은청준이 없으면 주해준이 곧 모두의 큰형이었다.하지만... 주해준의 간지는 오래가지 못했다.갑자기 누군가의 주먹이 주해준의 얼굴을 강타하자 주해준은 그대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고 코와 입에서 시뻘건 피가 뿜어져 나왔다.“제기랄, 누가 기습질이야? 개싸가지 없네.”사람들이 황급히 주해준을 부축했다.주해준은 살기를 내뿜으며 검은 옷의 우두머리를 노려봤다.기습에 성공했다는 건 그만큼 실력도 상당하다는 뜻이었다.“이건 교훈이야. 싸울 땐 집중해야지 어디서 허풍이나 치고 있어?”검은
주해준이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했는데 그 표정은 당장이라도 혼자서 백 명도 상대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외칠 기세였다.“해준 선배, 고마워요.”조슬기가 감사를 표했다.“슬기 후배, 우리 사이에 그렇게 격식 차릴 필요 있나? 남자가 여자를 보호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난 어떤 겁쟁이처럼 이런 상황에서 구석에 처박혀 숨어 있지는 않아. 평소에는 잘난 척하는 끝판왕인데 막상 일이 터지니까 입도 뻥끗 안 하네? 같은 남자로서 진짜 창피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야.”주해준은 엄청나게 비꼬면서 일부러 진서준을 바라봤다.도대체 누구를 비꼬는 말인지는 누구나 다 뻔히 알 수 있었다.“이봐 김씨, 아까는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왜 지금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어?”“그러게 말이야. 아까 해준 선배가 싸울 때는 거북이처럼 꼼짝도 안 하고 앉아 있었잖아. 이런 겁쟁이는 또 처음 봐.”“슬기 후배, 저런 남자랑은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거야.”사람들은 순간 수군거리며 진서준에게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한쪽은 위풍당당하게 나서서 싸웠고 다른 한쪽은 구석에서 몸을 사렸으니 두 사람을 비교하면 차이가 너무 컸다.“김평안 씨는 그런 분이 아니에요.”조슬기가 나서서 또 진서준을 옹호했다.“그리고요, 각자 전문 분야가 다른 거잖아요? 김평안 씨는 의사예요. 당신들처럼 무인이 아니라고요.”배수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앉아 조슬기의 말을 들었다.“그딴 쓰레기들이랑은 상대할 가치도 없어.”진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쓰레기는 개뿔, 실력은 형편없으면서 입은 왜 이렇게 살아있지?”“그러게. 해준 선배를 기습할 정도면 절대 쓰레기가 아닐 텐데?”“얼씨구, 딱 봐도 허세만 가득한 놈이네. 말발 하나는 끝내주겠어.”가만히 있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진서준이 한마디 하자마자 분위기가 더 싸늘해졌다.주해준도 이때다 싶어서 콧방귀를 끼며 진서준을 내려다보았다.“네가 무인이든 아니든 악당이 나타났을 때는 남자가 먼저 나서야 하는 거야. 네가 무도를 모
“너 지금 뭐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진서준이 입을 떼자마자 곤륜 제자들이 일제히 그를 비난하고 나섰다.“이제야 확실해졌네. 넌 겁쟁이일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흔히 보는 악플러잖아?”“자기가 잘난 것도 없으면서 남이나 비웃고. 이따가 해준 선배가 이기면 넌 제대로 혼날 줄 알아.”“지난번 유씨 가문에서 네놈 안 팬 건 유씨 가문 가주 체면을 고려해서 그런 거였어. 네놈을 때리지 않으니까 아주 신났구나?”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진서준을 비난하고 있을 때,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허공으로 날아갔다.모두가 시선을 돌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고 날아간 사람이 누군지 확인한 순간, 모두가 그대로 얼어붙었다.“뭐야, 이 자식 입 터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네?”“해준 선배가 날아갔다고? 저 대머리가 그렇게 강해?”조금 전까지 위풍당당하던 주해준이 지금은 죽은 개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있을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해준 선배. 괜찮으세요?”정신을 차린 제자들이 황급히 다가가 주해준을 부축하려 했다.그런데 손을 대려는 순간, 주해준이 울부짖듯 소리쳤다.“건들지 마! 허리가 부러졌어! 팔도 부러졌어! 다리도 부러졌어!”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면 당장 죽기라도 하는 게 아닐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제자들이 주해준의 몸을 살펴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주해준의 뼈가... 온몸의 뼈가 전부 부러져 있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주해준의 단전이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무인에게 단전이 부서진다는 건 사실상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비록 목숨은 건졌다고 해도 더 이상 무인으로 살아갈 수 없으니 결국 곤륜에서 쫓겨날 게 뻔했다.“감히 우리 해준 선배의 단전을 파괴해? 네놈들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한 제자가 이를 악물고 외쳤다.철썩!그 순간, 대머리가 거침없이 그 제자의 뺨을 후려쳤다.“왜? 내가 파괴하면 안 돼?”“너... 네놈, 우리가 누구인지나 알아?”따귀를 맞은 청년이 분노에 찬 눈으로 노려보았다.“그럼 네놈은 내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