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연락했다.“안 그래도 서준 씨에게 연락하려고 했어요!”허사연이 작게 말했다.“우리 텔레파시가 통한 걸까요?”진서준이 너털웃음을 쳤다.“얼른 우리 집으로 와요. 우리 집에 아주 고약한 놈이 찾아왔어요!”허사연이 짜증 난다는 말투로 말했다.그 말을 들은 진서준은 곧바로 정색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갈게요!”진서준은 또 누군가 허사연을 희롱하려고 그녀를 찾아갔을 거로 생각했다.그리고 허사연이 그를 바로 쫓아내지 못한 걸 보면 아마 신분이 범상치 않을 것이다.진서준은 이내 차를 타고 허씨 별장에 도착했다.허씨 별장 입구에 검은색의 아우디가 하나 있었다.비록 눈에 띄는 차는 아니었지만 번호판을 보니 깜짝 놀랐다.그건 부시장의 차였다.진서준은 곧바로 허사연이 왜 상대방을 쫓아내지 못했는지를 깨달았다.동시에 진서준은 화가 났다. 점심에 반재윤은 진서준에게 부시장이 좋은 사람이며 보기 드문 훌륭한 공무원이라고 했었다.그러나 이젠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진서준은 차를 세운 뒤 성큼성큼 허씨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허사연과 낯선 젊은 남자가 정원에 앉아 있는 걸 보았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는데 허사연의 안색을 보니 굉장히 불쾌해 보였다.“서현욱 씨, 자꾸 할 일 없으면 우리 집에 찾아오지 말아요.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우리 사이를 오해할 거예요! 내 남자 친구도 이 모습을 보면 분명 오해할 거예요!”허사연은 미간을 구기며 차갑게 말했다.허사연의 말에 서현욱은 당황했다.“사연 씨, 사연 씨 언제부터 남자 친구가 있었던 거예요? 왜 난 몰랐죠?”서현욱이 곧바로 물었다.“당신이 뭐라고 내가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고 당신에게 보고해야 하는 거죠?”허사연은 단호히 반박했다.서현욱 아버지만 아니었어도 허사연은 당장 경호원들에게 그를 내쫓으라고 했을 것이다.서현욱은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곧 미소를 지었다.“사연 씨, 화가 나서 그런 말 하는 거 나 다 알아
“네...”허사연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진서준의 가슴 속에 얼굴을 파묻고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저 사람 서현욱이라고 하는데 아버지가 부시장이에요. 그래서 감히 내쫓을 수는 없었어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허사연의 등을 토닥였다.“걱정하지 말고 나한테 맡겨요.”곧이어 진서준은 허사연의 손을 잡고 정자로 걸어갔다.이때 서현욱의 안색은 한없이 어두워서 아주 무서웠다.서현욱이 보기에 허사연은 그의 미래 아내이자 그의 소유물이었기에 절대 다른 남자가 손을 대는 걸 참을 수 없었다.그런데 진서준으 손을 댔을 뿐만 아니라 서현욱의 앞에서 허사연과 뜨겁게 키스했다.“자기소개를 하죠. 전 진서준이라고 해요. 허사연 씨 남자 친구죠.”진서준은 허사연을 안고 서현욱의 맞은편에 앉았다.서현욱에게 그것은 도발이었다.“진서준 씨, 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요? 사연 씨는 내 친구예요!”서현육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제가 제 여자 친구랑 키스한 게 뭐 어때서요? 여기 부시장 아들이라고 다른 커플이 키스하는 것까지 간섭하는 건가요?”진서준은 차갑게 웃더니 일부러 허사연의 볼에 짧게 뽀뽀했고 허사연은 쑥스러워했다.“그만해요!”서현욱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서 탁자를 쾅 내리쳤다.“조금 전 일은 없었던 일로 해줄게요. 하지만 지금부터는 사연 씨에게서 떨어져요. 사연 씨는 내 미래 아내니까!”서현욱은 진서준을 향해 화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당신이 뭐라고 내가 당신 말을 들어야 하는 거죠?”진서준이 같잖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우리 아버지가 부시장이거든요!”서현욱은 울컥해서 크게 소리쳤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하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당신 아버지는 부시장이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당신이 부시장이 된다면 그때 다시 명령해요.”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있다.그러나 서현욱을 보니 서정훈이 서현욱을 제대로 가르치지는 못한 듯했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또 이해할 수 있었다. 남자들은 일이 바빠서
허성태는 진서준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진서준이 비싼 물건은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아마도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한 보물일 것이다.서현욱이 준비한 백 년 된 동충하초 따위는 눈에 차지도 않았다.비싼 것이면 뭐 어떻단 말인가? 허씨 일가에서도 충분히 돈 주고 살 수 있는데 말이다.진서준과 허사연의 관계는 이미 확실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서준아, 넌 너무 겸손해. 네가 매번 준비한 선물은 날 놀라게 했으니까 말이야.”허성태는 진서준을 향해 웃으며 말한 뒤 서현욱에게 말했다.“현욱아, 네가 준 약도 고마워. 하지만 너무 비싸서 받기가 좀 그렇구나.”서현욱은 허성태의 말에 초조해졌다. 그는 허성태가 진서준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아저씨, 이 동충하초는 아주 신통한 거예요. 상자를 열면 동충하초가 저절로 튀어나올 거예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자 웃음이 터질 뻔했다.동충하초는 아주 비싼 약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벌레이기도 했다.진서준은 서현욱을 놀려줘서 이참에 그의 낮은 지능을 제대로 조롱할 생각이었다.아버지가 부시장이 아니었더라면, 서현욱의 지능으로는 성인이 되지도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서현욱 씨, 이 동충하초 어디서 산 거예요?”진서준의 질문에 서현욱은 헛기침을 하면서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그는 같잖다는 눈빛으로 거만하게 말했다.“잘 들어요. 이 동충하초는 내가 강주에 있는 늙은 농부에게서 사 온 거예요. 우리 아버지가 부시장이라는 걸 그가 몰랐다면 이런 보물을 싼값에 나한테 팔지 않았을 거예요. 다른 곳에서 파는 동충하초들은 적어도 20억은 하거든요.”서현욱은 이 동충하초를 얼마나 주고 샀는지 명확히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자랑하는 듯한 말투를 보면 적어도 몇억은 쓴 것 같았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작게 웃었다.“강주라면 남주성이 아니네요?”강주는 남주성과 비교적 가까웠지만 남주성에 속해 있지는 않았다.남주성의 농부라고 해도 서현욱의 신분을 모를 것이다. 그런데 남주성 밖의
감옥에 있을 때 구창욱은 진서준에게 귀한 약재들은 천 년 이상 살게 되면 신통하게 영성을 띠게 된다고 한다.그러나 영성이 있다고 해서 달릴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허사연 부녀가 자신을 믿지 않자 서현욱은 초조해졌다..“안 믿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 바로 열어볼게요. 이 동충하초가 그렇게 신통한 물건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게!”서현욱은 그렇게 말하면서 상자를 열었다.상자를 열자 빨간색 천이 그 밑의 물건을 가리고 있는 게 보였다.빨간색 천이 잠잠하자 서현욱의 안색이 달라졌다.설마 정말 그 농부가 그를 속인 걸까?그럴 리가 없었다. 그는 서울시 부시장의 아들이 아닌가.“왜 열지 않는 거예요? 도망칠까 봐 걱정되는 거면 내가 문을 닫고 올게요.”진서준이 조롱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서현욱은 진서준을 노려보더니 빨간색 천을 들었다.빨간색 천 아래의 물건을 본 순간, 서현욱은 얼이 빠졌다.그 밑에 있는 것은 신통한 동충하초가 아니라 나뭇가지 몇 개와 죽은 매미 몇 마리가 들어있었다.“하하하하...”진서준은 결국 참지 못하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서현욱 씨, 속으셨네요. 하지만 괜찮아요. 서현욱 씨 아버지는 명성이 자자하잖아요.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강주에 있는 그 사람을 잡으러 가면 되죠!”진서준이 통쾌하게 웃자 서현욱은 너무 화가 나서 죽을 것 같았다.그는 4억으로 죽은 벌레 몇 마리와 나뭇가지 몇 개를 샀다.가장 중요한 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체면을 잃었다는 점이다.“됐다, 현욱아. 이번에는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해. 누구나 사기당할 때가 있는 법이지. 나도 예전에 사업할 때 사기당한 적이 있어.”허성태는 서현욱의 안색이 좋지 않자 곧바로 그를 달래주려고 그의 편을 들어주었다.서현욱은 진서준을 바라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선물은 뭔데요? 좋은 선물이에요?”서현욱은 진서준을 통해 자신의 체면을 되살리려 했다.서현욱이 보기에 진서준은 가난해서 비싼 선물을 준비할 수 없었다.진서준은 차갑게 웃었다.“좋은 선
세 가지 처방은 남녀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여자라면 앞의 두 가지 약을 쓰고 남자는 뒤의 두 가지 약을 쓴다.하지만 어느 것이든 시장에 내놓는다면 아주 잘 팔릴 것이다.허사연은 진서준의 의술과 처방을 100% 믿었다.진서준이 흉터 제거 파우더, 주안 파우더처럼 이목을 끄는 이름을 지었다는 건 진서준이 준 처방으로 충분히 그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특히 흉터 제가 파우더는 세계 시장을 뒤흔들 수도 있었다.사람이라면 몸에 흉터가 있기 마련이고 다들 그 흉터가 사라지길 바랄 것이다.병원에서 흉터 제거 수술을 받을 수도 있지만 비용이 워낙 많이 들어서 일반인은 감당할 수가 없었다.가장 잘 팔리는 상품은 언제나 대중을 향한 것이다.일반 대중들도 살 수 있다면 벼락부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그게 뭔데요?”서현욱은 못 알아들었다.“주안 파우더, 흉터 제거 파우더, 신장 강화 알약이요!”허사연이 다시 경멸 어린 어조로 반복했다.“못 알아듣는 것도 정상이에요. 서현욱 씨는 마른 나뭇가지를 몇억 주고 사는 사람이니까요.”허사연의 비아냥에 서현욱은 화가 나서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내가 속은 건 사연 씨 때문이죠! 사연 씨, 내가 사연 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연 씨도 알고 있죠? 나랑 만난다면 허씨 일가는 서울시에서 가장 강한 가문이 될 거예요. 그러면 좋지 않아요?”허사연은 차갑게 웃었다. 그녀는 서현욱의 말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진서준이 준 세 개의 처방만으로 허씨 일가는 서울이 아니라 남주성, 심지어 전국 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다.이 세 가지 약이 시판된다면 허사연은 허씨 일가가 1년 만에 국내 시총 순위 500위 안에 들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서현욱 씨, 똑똑히 얘기할게요. 난 남자 친구 있어요. 그러니까 이만 포기해요!”허사연은 혐오스럽다는 눈빛으로 서현욱을 바라본 뒤 그의 앞에서 일부러 진서준의 팔에 팔짱을 꼈다.“뭐 때문이죠?”서현욱은 미친 사람처럼 허사연을 향해 달려들며 그
“괜히 공무원이랑 싸우게 되면 피곤해지는 건 우리야. 이 점만은 꼭 명심해!”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알겠어요.”조금 전 서현욱을 찼을 때, 진서준은 몰래 서현욱에게 은침을 하나 꽂았다.그 은침은 마침 서현욱의 배에 있는 혈 자리에 꽂혔다.고수의 도움이 없다면 서현욱은 평생 남자구실을 하지 못할 것이다.“됐어, 우리는 밥 먹자. 밥 먹으면서 얘기 나누자고.”세 사람은 다이닝룸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밥을 먹을 때 허성태는 진지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서준아, 조금 전에 사연이가 말한 약 이름들 진짜야?”“네, 확실해요. 하지만 흉터 제거 파우더로 완벽한 효과를 보려면 조금 비싼 약재를 사야 해요. 일반 약재로도 흉터를 없앨 수는 있지만 1mm 정도 되는 흉터가 남게 돼요.”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장철결에는 흉터 제가 파우더의 처방이 여러 가지가 있었고 진서준은 그중 두 가지를 선택했다.한 가지는 비싼 약재를 써서 효과가 좋고 다른 한 가지는 일반 약재를 쓰지만 효과가 지금 시판되는 흉터 제거 파우더보다 훨씬 더 효과가 좋았다.허성태 부녀는 진서준이 겨우 1mm 정도 되는 흉터가 남는다고 하자 깜짝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1mm의 크기는 바로 눈앞에 있지 않으면 눈치채기도 어려웠다.“서준아, 넌 정말 우리 집안의 복덩이야!”허성태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이 세 처방전 모두 잘 보관해.”진서준이 당부했다.“걱정하지 말아요. 돈 벌 수 있는 보물이면 당연히 잘 숨겨둘 거니까.”허사연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이 세 처방전으로 허씨 일가는 대한민국 한약 업계에서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진서준이 허사연 부녀와 함께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한껏 모욕당한 서현욱은 권력을 상징하는 차를 타고 돌아갔다.“아저씨, 이 사람 좀 조사해 주세요!”서현욱은 차에 타자마자 운전석에 앉은 중년 남자를 향해 말했다.운전기사는 서현욱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일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누
허윤진은 홀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곁에는 잘 생기고 비싼 옷을 입은 청년이 있었다.청년은 잘 보이려는 듯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러나 허윤진은 전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심지어 그녀의 눈동자에서 약간의 혐오가 보였다.자기 집에서 나오는 진서준을 본 허윤진은 눈앞이 환해지면서 빠르게 그에게로 다가갔다.“서준 씨, 우리 집에 왔으면서 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은 거예요?”허윤진은 진서준의 곁으로 다가가서 그의 팔에 팔짱을 끼며 친근한 척했다.진서준은 허윤진의 행동에 겁을 먹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허윤진이 보낸 눈빛을 보았다. 자신에게 협조하라는 듯한 눈빛이었다.청년은 허윤진과 진서준의 친근한 모습을 보더니 눈빛이 차가워지고 표정이 어두워졌다.“윤진아, 이 남자는 누구야?”청년이 차갑게 물었다.“조규범, 이래도 모르겠어? 당연히 내 남자 친구지!”허윤진은 그 말을 할 때 몰래 진서준을 힐끔거렸다.진서준이 거짓말이라고 폭로하지 않자 허윤진은 그제야 안도하며 내심 기뻐했다.“윤진아, 거짓말하지 마. 그 사람 윤진이 네 집안의 운전기사나 경호원이지?”조규범은 웃었다. 그는 허윤진의 말을 믿지 않았다.조규범은 허윤진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허윤진이 절대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남자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조규범이 보기에 진서준은 잘생긴 얼굴을 제외하면 다른 이목을 끌 만한 점이 전혀 없었다.진서준은 허윤진이 자신을 방패막이로 삼는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허윤진은 앞으로 그의 처제가 될 사람이니 도울 수 있다면 최대한 도울 생강이었다.“윤진아, 이 남자는 누구야?”진서준이 자신을 친근하게 윤진이라고 부르자 허윤진은 얼굴을 붉혔다. 그녀의 얼굴에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나랑 같은 학교 다니는 사람인데 계속 나한테 달라붙어요.”허윤진이 설명했다.“내가 남자 친구 있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도 믿지 않아요.”허윤진이 조규범에게 말했다.“내 남자 친구를 봤으니까 이젠 믿죠?”조규범은 같잖다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상대방이 바보가 아니라면 자신이 조씨 일가 사람인 걸 알고 당연히 부랴부랴 도망칠 줄 알았다.“그건 또 뭐예요? 못 들어봤어요.”진서준은 귀를 후비면서 말했다.진서준이 자신의 가문을 무시하자 조규범은 진서준의 뺨을 때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서준 씨, 조씨 일가는 만만치 않아요. 고양시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집안이에요. 우리 서울의 명문가들도 조씨 일가와 비교할 수 없어요.”허윤진은 진서준의 반응이 과한 것 같아 곧바로 목소리를 낮추고 설명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도 조씨 일가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좋아요, 배짱 있다 이거죠? 진서준이라고 했죠? 내가 기억해 뒀으니까 두고 봐요!”말을 마친 뒤 조규범은 진서준을 노려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는 자신의 스포츠카에 올라탄 뒤 자리를 떴다.조규범이 떠난 뒤 진서준은 허윤진이 팔짱을 풀 줄 알았으나 그녀는 팔짱을 풀지 않고 계속해 말했다.“저 조규범 때문에 진짜 짜증 나 죽겠어요. 오늘 서준 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허윤진이 기쁜 얼굴로 말했다.“참, 내일 저녁 우리 학교에 파티가 있는데 내 파트너로 참석해 줘요.”허윤진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난 춤 못 춰요.”진서준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내가 가르쳐줄게요. 엄청 간단해요!”허윤진은 진서준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애교를 부렸다.“진서준 씨, 부탁이에요. 내일 한 번만 도와줘요. 그렇지 않으면 저 조규범이 또 날 귀찮게 할 거예요!”조규범은 허윤진에게 고백하기 전까지 신사인 척했다.내일이면 파티이기 때문에 조규범은 뻔뻔하게 차까지 타고 허윤진을 따라서 그녀의 집 앞까지 따라왔다.진서준은 반팔 하나 입고 있었다. 허윤진은 비록 겉옷을 입고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아주 얇게 입고 있었다.허윤진이 팔을 계속 잡아당기자 진서준은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그만해요. 갈게요.”허윤진은 그 말을 듣더니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일찌감치 승낙하면 얼마나 좋았어요?”허윤진은 진서준을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