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태는 진서준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진서준이 비싼 물건은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아마도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한 보물일 것이다.서현욱이 준비한 백 년 된 동충하초 따위는 눈에 차지도 않았다.비싼 것이면 뭐 어떻단 말인가? 허씨 일가에서도 충분히 돈 주고 살 수 있는데 말이다.진서준과 허사연의 관계는 이미 확실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서준아, 넌 너무 겸손해. 네가 매번 준비한 선물은 날 놀라게 했으니까 말이야.”허성태는 진서준을 향해 웃으며 말한 뒤 서현욱에게 말했다.“현욱아, 네가 준 약도 고마워. 하지만 너무 비싸서 받기가 좀 그렇구나.”서현욱은 허성태의 말에 초조해졌다. 그는 허성태가 진서준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아저씨, 이 동충하초는 아주 신통한 거예요. 상자를 열면 동충하초가 저절로 튀어나올 거예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자 웃음이 터질 뻔했다.동충하초는 아주 비싼 약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벌레이기도 했다.진서준은 서현욱을 놀려줘서 이참에 그의 낮은 지능을 제대로 조롱할 생각이었다.아버지가 부시장이 아니었더라면, 서현욱의 지능으로는 성인이 되지도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서현욱 씨, 이 동충하초 어디서 산 거예요?”진서준의 질문에 서현욱은 헛기침을 하면서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그는 같잖다는 눈빛으로 거만하게 말했다.“잘 들어요. 이 동충하초는 내가 강주에 있는 늙은 농부에게서 사 온 거예요. 우리 아버지가 부시장이라는 걸 그가 몰랐다면 이런 보물을 싼값에 나한테 팔지 않았을 거예요. 다른 곳에서 파는 동충하초들은 적어도 20억은 하거든요.”서현욱은 이 동충하초를 얼마나 주고 샀는지 명확히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자랑하는 듯한 말투를 보면 적어도 몇억은 쓴 것 같았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작게 웃었다.“강주라면 남주성이 아니네요?”강주는 남주성과 비교적 가까웠지만 남주성에 속해 있지는 않았다.남주성의 농부라고 해도 서현욱의 신분을 모를 것이다. 그런데 남주성 밖의
감옥에 있을 때 구창욱은 진서준에게 귀한 약재들은 천 년 이상 살게 되면 신통하게 영성을 띠게 된다고 한다.그러나 영성이 있다고 해서 달릴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허사연 부녀가 자신을 믿지 않자 서현욱은 초조해졌다..“안 믿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 바로 열어볼게요. 이 동충하초가 그렇게 신통한 물건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게!”서현욱은 그렇게 말하면서 상자를 열었다.상자를 열자 빨간색 천이 그 밑의 물건을 가리고 있는 게 보였다.빨간색 천이 잠잠하자 서현욱의 안색이 달라졌다.설마 정말 그 농부가 그를 속인 걸까?그럴 리가 없었다. 그는 서울시 부시장의 아들이 아닌가.“왜 열지 않는 거예요? 도망칠까 봐 걱정되는 거면 내가 문을 닫고 올게요.”진서준이 조롱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서현욱은 진서준을 노려보더니 빨간색 천을 들었다.빨간색 천 아래의 물건을 본 순간, 서현욱은 얼이 빠졌다.그 밑에 있는 것은 신통한 동충하초가 아니라 나뭇가지 몇 개와 죽은 매미 몇 마리가 들어있었다.“하하하하...”진서준은 결국 참지 못하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서현욱 씨, 속으셨네요. 하지만 괜찮아요. 서현욱 씨 아버지는 명성이 자자하잖아요.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강주에 있는 그 사람을 잡으러 가면 되죠!”진서준이 통쾌하게 웃자 서현욱은 너무 화가 나서 죽을 것 같았다.그는 4억으로 죽은 벌레 몇 마리와 나뭇가지 몇 개를 샀다.가장 중요한 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체면을 잃었다는 점이다.“됐다, 현욱아. 이번에는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해. 누구나 사기당할 때가 있는 법이지. 나도 예전에 사업할 때 사기당한 적이 있어.”허성태는 서현욱의 안색이 좋지 않자 곧바로 그를 달래주려고 그의 편을 들어주었다.서현욱은 진서준을 바라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선물은 뭔데요? 좋은 선물이에요?”서현욱은 진서준을 통해 자신의 체면을 되살리려 했다.서현욱이 보기에 진서준은 가난해서 비싼 선물을 준비할 수 없었다.진서준은 차갑게 웃었다.“좋은 선
세 가지 처방은 남녀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여자라면 앞의 두 가지 약을 쓰고 남자는 뒤의 두 가지 약을 쓴다.하지만 어느 것이든 시장에 내놓는다면 아주 잘 팔릴 것이다.허사연은 진서준의 의술과 처방을 100% 믿었다.진서준이 흉터 제거 파우더, 주안 파우더처럼 이목을 끄는 이름을 지었다는 건 진서준이 준 처방으로 충분히 그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특히 흉터 제가 파우더는 세계 시장을 뒤흔들 수도 있었다.사람이라면 몸에 흉터가 있기 마련이고 다들 그 흉터가 사라지길 바랄 것이다.병원에서 흉터 제거 수술을 받을 수도 있지만 비용이 워낙 많이 들어서 일반인은 감당할 수가 없었다.가장 잘 팔리는 상품은 언제나 대중을 향한 것이다.일반 대중들도 살 수 있다면 벼락부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그게 뭔데요?”서현욱은 못 알아들었다.“주안 파우더, 흉터 제거 파우더, 신장 강화 알약이요!”허사연이 다시 경멸 어린 어조로 반복했다.“못 알아듣는 것도 정상이에요. 서현욱 씨는 마른 나뭇가지를 몇억 주고 사는 사람이니까요.”허사연의 비아냥에 서현욱은 화가 나서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내가 속은 건 사연 씨 때문이죠! 사연 씨, 내가 사연 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연 씨도 알고 있죠? 나랑 만난다면 허씨 일가는 서울시에서 가장 강한 가문이 될 거예요. 그러면 좋지 않아요?”허사연은 차갑게 웃었다. 그녀는 서현욱의 말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진서준이 준 세 개의 처방만으로 허씨 일가는 서울이 아니라 남주성, 심지어 전국 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다.이 세 가지 약이 시판된다면 허사연은 허씨 일가가 1년 만에 국내 시총 순위 500위 안에 들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서현욱 씨, 똑똑히 얘기할게요. 난 남자 친구 있어요. 그러니까 이만 포기해요!”허사연은 혐오스럽다는 눈빛으로 서현욱을 바라본 뒤 그의 앞에서 일부러 진서준의 팔에 팔짱을 꼈다.“뭐 때문이죠?”서현욱은 미친 사람처럼 허사연을 향해 달려들며 그
“괜히 공무원이랑 싸우게 되면 피곤해지는 건 우리야. 이 점만은 꼭 명심해!”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알겠어요.”조금 전 서현욱을 찼을 때, 진서준은 몰래 서현욱에게 은침을 하나 꽂았다.그 은침은 마침 서현욱의 배에 있는 혈 자리에 꽂혔다.고수의 도움이 없다면 서현욱은 평생 남자구실을 하지 못할 것이다.“됐어, 우리는 밥 먹자. 밥 먹으면서 얘기 나누자고.”세 사람은 다이닝룸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밥을 먹을 때 허성태는 진지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서준아, 조금 전에 사연이가 말한 약 이름들 진짜야?”“네, 확실해요. 하지만 흉터 제거 파우더로 완벽한 효과를 보려면 조금 비싼 약재를 사야 해요. 일반 약재로도 흉터를 없앨 수는 있지만 1mm 정도 되는 흉터가 남게 돼요.”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장철결에는 흉터 제가 파우더의 처방이 여러 가지가 있었고 진서준은 그중 두 가지를 선택했다.한 가지는 비싼 약재를 써서 효과가 좋고 다른 한 가지는 일반 약재를 쓰지만 효과가 지금 시판되는 흉터 제거 파우더보다 훨씬 더 효과가 좋았다.허성태 부녀는 진서준이 겨우 1mm 정도 되는 흉터가 남는다고 하자 깜짝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1mm의 크기는 바로 눈앞에 있지 않으면 눈치채기도 어려웠다.“서준아, 넌 정말 우리 집안의 복덩이야!”허성태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이 세 처방전 모두 잘 보관해.”진서준이 당부했다.“걱정하지 말아요. 돈 벌 수 있는 보물이면 당연히 잘 숨겨둘 거니까.”허사연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이 세 처방전으로 허씨 일가는 대한민국 한약 업계에서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진서준이 허사연 부녀와 함께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한껏 모욕당한 서현욱은 권력을 상징하는 차를 타고 돌아갔다.“아저씨, 이 사람 좀 조사해 주세요!”서현욱은 차에 타자마자 운전석에 앉은 중년 남자를 향해 말했다.운전기사는 서현욱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일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누
허윤진은 홀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곁에는 잘 생기고 비싼 옷을 입은 청년이 있었다.청년은 잘 보이려는 듯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러나 허윤진은 전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심지어 그녀의 눈동자에서 약간의 혐오가 보였다.자기 집에서 나오는 진서준을 본 허윤진은 눈앞이 환해지면서 빠르게 그에게로 다가갔다.“서준 씨, 우리 집에 왔으면서 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은 거예요?”허윤진은 진서준의 곁으로 다가가서 그의 팔에 팔짱을 끼며 친근한 척했다.진서준은 허윤진의 행동에 겁을 먹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허윤진이 보낸 눈빛을 보았다. 자신에게 협조하라는 듯한 눈빛이었다.청년은 허윤진과 진서준의 친근한 모습을 보더니 눈빛이 차가워지고 표정이 어두워졌다.“윤진아, 이 남자는 누구야?”청년이 차갑게 물었다.“조규범, 이래도 모르겠어? 당연히 내 남자 친구지!”허윤진은 그 말을 할 때 몰래 진서준을 힐끔거렸다.진서준이 거짓말이라고 폭로하지 않자 허윤진은 그제야 안도하며 내심 기뻐했다.“윤진아, 거짓말하지 마. 그 사람 윤진이 네 집안의 운전기사나 경호원이지?”조규범은 웃었다. 그는 허윤진의 말을 믿지 않았다.조규범은 허윤진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허윤진이 절대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남자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조규범이 보기에 진서준은 잘생긴 얼굴을 제외하면 다른 이목을 끌 만한 점이 전혀 없었다.진서준은 허윤진이 자신을 방패막이로 삼는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허윤진은 앞으로 그의 처제가 될 사람이니 도울 수 있다면 최대한 도울 생강이었다.“윤진아, 이 남자는 누구야?”진서준이 자신을 친근하게 윤진이라고 부르자 허윤진은 얼굴을 붉혔다. 그녀의 얼굴에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나랑 같은 학교 다니는 사람인데 계속 나한테 달라붙어요.”허윤진이 설명했다.“내가 남자 친구 있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도 믿지 않아요.”허윤진이 조규범에게 말했다.“내 남자 친구를 봤으니까 이젠 믿죠?”조규범은 같잖다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상대방이 바보가 아니라면 자신이 조씨 일가 사람인 걸 알고 당연히 부랴부랴 도망칠 줄 알았다.“그건 또 뭐예요? 못 들어봤어요.”진서준은 귀를 후비면서 말했다.진서준이 자신의 가문을 무시하자 조규범은 진서준의 뺨을 때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서준 씨, 조씨 일가는 만만치 않아요. 고양시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집안이에요. 우리 서울의 명문가들도 조씨 일가와 비교할 수 없어요.”허윤진은 진서준의 반응이 과한 것 같아 곧바로 목소리를 낮추고 설명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도 조씨 일가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좋아요, 배짱 있다 이거죠? 진서준이라고 했죠? 내가 기억해 뒀으니까 두고 봐요!”말을 마친 뒤 조규범은 진서준을 노려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는 자신의 스포츠카에 올라탄 뒤 자리를 떴다.조규범이 떠난 뒤 진서준은 허윤진이 팔짱을 풀 줄 알았으나 그녀는 팔짱을 풀지 않고 계속해 말했다.“저 조규범 때문에 진짜 짜증 나 죽겠어요. 오늘 서준 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허윤진이 기쁜 얼굴로 말했다.“참, 내일 저녁 우리 학교에 파티가 있는데 내 파트너로 참석해 줘요.”허윤진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난 춤 못 춰요.”진서준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내가 가르쳐줄게요. 엄청 간단해요!”허윤진은 진서준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애교를 부렸다.“진서준 씨, 부탁이에요. 내일 한 번만 도와줘요. 그렇지 않으면 저 조규범이 또 날 귀찮게 할 거예요!”조규범은 허윤진에게 고백하기 전까지 신사인 척했다.내일이면 파티이기 때문에 조규범은 뻔뻔하게 차까지 타고 허윤진을 따라서 그녀의 집 앞까지 따라왔다.진서준은 반팔 하나 입고 있었다. 허윤진은 비록 겉옷을 입고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아주 얇게 입고 있었다.허윤진이 팔을 계속 잡아당기자 진서준은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그만해요. 갈게요.”허윤진은 그 말을 듣더니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일찌감치 승낙하면 얼마나 좋았어요?”허윤진은 진서준을
서현욱은 부시장의 유일한 아들이었기에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사람이 아주 많았고 그중 한 명이 바로 강성철이었다.진서준이 출소하기 전까지 강성철과 도진수 모두 서현욱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고 했다.두 사람 다 지하세력이었기 때문에 서정훈의 아들 서현욱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지위가 달라진다.그러나 진서준이 도진수를 항복시킨 뒤로 강성철은 서현욱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라이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그런데 서현욱이 갑자기 연락하자 강성철은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이젠 서현욱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지만 그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앞으로 그를 이용할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강성철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말씀해 보세요.”“사람 좀 죽여주세요!”서현욱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강성철은 깜짝 놀랐다. 그는 서현욱이 다짜고짜 사람을 죽여달라고 할 줄은 몰랐다.“어느 눈이 달리지 않은 놈이 서현욱 씨 심기를 건드린 거죠?”강성철이 조심스레 물었다.“출소한 지 얼마 안 되는 전과자예요!”서현욱이 말했다.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전과자라는 말을 들었지만 강성철은 바로 진서준을 떠올리지는 않았다.그가 보기에 진서준과 서현욱은 접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겨우 전과자예요? 내일 좋은 소식을 들려드리도록 하죠.”강성철이 자신만만하게 장담했다.“그 사람 정보는 잠시 뒤에 보내줄게요. 난 내일 저녁 그 자식의 시체를 봐야겠어요!”서현욱의 눈동자가 악랄하게 번뜩였다.“좋아요”전화를 끊은 뒤 서현욱은 차갑게 코웃음 쳤다.“일개 전과자 따위가 감히 내 심기를 거슬러? 자기가 뭐라고. 내 심기를 건드린다면 허씨 일가도 널 지키지 못해!”서현욱이 방 안에서 중얼거리고 있을 때 그의 집 대문이 누군가에 의해 열렸다.“천천히, 천천히...”정장을 입은 중년 여성이 백발의 남성을 부축하며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내가 말했죠. 퇴근하면 바로 병원으로 가라고. 내 말 듣지 않고 굳이 집으로 오려고 하다뇨!”중
“이 자식, 내 말 들었어?”서정훈은 목청을 높이며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됐어요, 여보. 화내지 말아요. 의사 선생님이 화내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심해윤은 곧바로 서정훈을 말리며 그를 소파에 앉혔다.차분함을 되찾은 서정훈은 곧바로 한숨을 쉬었다.“해윤아, 나한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그동안 서정훈은 가끔 심장이 빠르게 뛰고, 또 가끔은 심장이 아주 느리게 뛰는 걸 느꼈다. 두려움이 들 정도로 아주 느렸다.의사도 서정훈에게 솔직히 얘기했다. 적합한 심장을 찾지 못한다면 1년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말이다.“얼른 퉤퉤퉤 해요.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에요!”심해윤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현욱이 저 자식 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항상 사고만 치고 말이야!”서정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내가 살아있을 때는 저 성질머리를 좀 죽일 수 있었지만 내가 죽으면 저 녀석 아주 제멋대로 날뛸 거야! 그러다가 되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를까 봐 걱정이야!”서정훈은 서현욱을 엄하게 가르쳤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일 때문에 가르침이 조금 부족했다.심해윤은 절망한 서정훈의 모습을 보고 오후에 반재윤에게서 전화가 온 사실을 얘기했다.“여보, 좋은 소식 알려줄게요. 당신 병 치료할 수 있대요!”서정훈은 웃었다.“장난치지 마. 내가 살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내가 가장 잘 알아!”예전에 부영권이 그를 진료해 준 적이 있는데 부영권의 의술로는 치료할 수 없어서 약만 처방해서 그의 수명을 반년 정도 늘려줬다.부영권도 그를 살리지 못하는데 서울시의 다른 의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거짓말 아니에요. 반재윤 씨가 직접 전화했다니까요. 신의를 한 명 만났는데 부영권 씨보다 의술이 훨씬 뛰어나대요!”심해윤이 서둘러 설명했다.의술이 부영권보다 더 뛰어나다는 말에 서정훈은 흠칫했다.“설마 반 처장님이 경성에 아는 의사가 있는 걸까?”서정훈은 서울시 부시장이었지만 서울시에서만 조금 지위가 있을 뿐이다.남주성에는 그와 같은 부시장이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