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제자들은 앞날이 창창했다.이렇게 이곳에서 죽게 된다면 장로들은 앞으로 무슨 면목으로 화령문의 역대 장문인을 마주한단 말인가?“너희들은 오늘 한 명도 떠날 수 없어!”변정선은 사장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차갑게 웃었다.“오늘은 화령문의 모든 이들의 목숨을 빼앗아 우리 혈운 조직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는 걸 세상 사람들에게 전부 알릴 것이다.”퍽퍽퍽!세 번의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천경문 등 세 사람도 공격받고 날아가서 바닥에 세게 쓰러졌다.세 사람 모두 크게 다쳤다. 그중에서도 천경문의 상처가 가장 심각했다. 그가 입고 있는 도포는 다 찢겨나갔고 온몸에 검에 베인 흔적과 피가 가득했다.반대로 예준섭 등 네 명은 상처 하나 없고 숨조차 헐떡이지 않았다.그 광경에 사람들은 마음이 가라앉았다.천경문 일행은 그들에게 상처 하나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러니 그들의 제자들은 더더욱 불가능했다.혈운 조직 앞에서 천경문 일행은 아무런 승산도 없었다.“우리 제자들은 보내줘. 대신 진서준 씨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천경문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천경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특히 권해철과 허윤진은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이때 진서준의 위치가 노출된다면 진서준은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그럴 필요 없어. 당신들을 다 죽이면 천천히 찾아봐도 되니 말이야.”변정선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하나뿐이야. 그 자식이 날개라도 달리지 않은 이상 도망칠 수는 없어. 그리고 그 자식 여자 친구도 이곳에 있잖아?”허윤진이 그곳에 있으니 예준섭 등 사람들은 진서준이 나타나지 않고 몰래 도망치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다.“당신들...”천경문은 예준섭 일행이 화령문 사람들을 전부 죽일 정도로 이렇게 악랄할 줄은 몰랐다.“크억!”뒤에서 계속 관전했던 누렁이가 갑자기 으르렁거리면서 펄쩍 뛰었다.그리고 몸 전체가 갑자기 커지기 시작하면서 털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누렁이는 마치 운석처럼 하늘에서 추락하며 예준섭 일행을 덮
석벽에 파묻힌 누렁이를 본 허윤진은 두 손으로 자신의 옷깃을 꽉 쥐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걱정스러움이 가득했다.누렁이가 처음에는 허윤진에게 많은 공포를 가져다줬었지만, 진서준이 누렁이에게 어수인을 남긴 뒤로 누렁이는 마치 애완견처럼 온순해졌고, 그로 인해 허윤진은 누렁이를 자신의 애완동물로 여겼다.그런데 그런 누렁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으니 허윤진은 무척 초조해졌다.“그렇게 저 짐승이 걱정돼?”허윤진을 바라보는 변정선의 눈동자에서 음욕이 보였다.혈운 조직의 종사와 다른 무인들은 큰 차별점이 있었다.그들에게는 실력이 가장 주요했다. 그들은 약자들을 학살하면서 자신의 공허하고 무료한 생활을 채우려고 했다.살인, 강간, 악행이란 악행은 모두 저질렀다.네 종사의 나이를 다 더하면 200살이 넘지만, 다들 여자라면 사족을 못 썼다.“짐승이 아니에요. 이름 있어요. 제 애완동물이에요!”허윤진은 이를 악물고 반박했다.“애완동물?”변정선의 표정이 더욱 음흉해졌다.“그러면 너도 내 애완동물 해. 지금보다 훨씬 더 편하게 살 수 있을 거야.”변정선의 더러운 발언에 허윤진은 화가 나서 몸을 덜덜 떨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그녀는 많은 무인들을 만났었고 다들 하나같이 고상했다.그러나 변정선은 그저 나이만 먹은 양아치였고 종사로서의 기품은 전혀 없었다.권해철은 화를 내며 말했다.“변정선, 입 간수 좀 잘해. 진 마스터님께서 나오면 네 입을 찢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변정선은 그 말을 듣자 같잖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그러니까 진 마스터 보고 빨리 나오라고 해. 안 그러면 진 마스터 여자 친구를 가만두지 않을 테니 말이야.”권해철은 바짝 긴장해서 낮은 목소리로 허윤진에게 말했다.“허윤진 씨, 어서 가서 진 마스터님을 찾으세요. 제가 이 네 사람을 붙잡아둘게요!”“다들 조심해요. 지금 당장 진서준 씨를 불러올게요!”허윤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목욕실로 달려갔다.허윤진이 몸을 돌려 도망쳤
예준섭은 상황을 보고 천천히 말했다.“남주성의 권해철은 풍수살술에 능통하다는 말은 들어봤었는데, 이게 바로 당신의 비장의 무기죠?”권해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 말할 힘도 없었다.조금 전의 뇌전비검으로 그는 많은 진기를 소모했다.만약 보운산의 영기가 짙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 풍수살술을 다시 쓰지 못했을 것이다.천경문 일행은 그때야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더니 곧이어 체내의 마지막 남은 진기를 사용하여 풍수살술을 설치했다.이 풍수살술은 화령문의 절학이었다.실력이 엇비슷한 상황에서 무도 종사가 풍수살술을 마주하게 된다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네 사람이 힘을 합쳐 포진하고 나니 곧 풍수살술의 진법이 나타났다.이 풍수살술은 기운을 물체처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감각을 매혹시키는 수단이 있었다.“방심해서는 안 돼.”예준섭이 나머지 세 명에게 당부했다.“알아요. 하지만 저자들은 이미 심하게 다친 상태예요. 이 풍수살술의 위력 또한 크게 줄어들 거예요.”변정선이 덤덤히 말했다.말하는 사이 네 사람 앞에 갑자기 안개가 피어올랐다. 하나는 뱀이고 하나는 호랑이였는데 거의 3미터는 될 법한 흰색의 맹수가 등장과 동시에 울부짖었다.뱀과 호랑이는 겉모습이 흉악하고 실력도 예사롭지 않았다. 발톱으로 살짝 긁었을 뿐인데 바닥 석판이 소리가 나면서 부서져 산산이 조각났다.“둘이 하나씩 없애.”예준섭 일행은 동시에 두 개의 안개로 된 맹수를 향해 달려들었다.흰 안개 속에서, 풍수살술을 포진한 권해철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보지 못했다.그저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울음소리가 은근히 들려올 뿐이었다. 적지 않은 제자들이 그 소리에 귀청이 째질 듯한 기분을 느껴 서둘러 손으로 귀를 막았다.“파괴되어라!”예준섭은 장검을 들고 조금은 흐릿하게 보이는 흰 뱀의 머리를 잘랐다.그 순간 흰 뱀은 울음소리를 냈고 머리 위 비늘이 산산이 조각났다. 검기가 뱀의 머리에서부터 시작해 그것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흰 뱀은 순식간
퍽퍽퍽...둔탁한 타격 소리와 함께 권해철 등 사람들은 피 안개가 나타나는 걸 보았다.지면을 보니 수많은 제자가 바닥에 누워있었다. 어떤 이들은 칼에 맞아 죽었고, 어떤 이들은 검에 베여 죽었고, 또 어떤 이들은 목이 꺾여서 죽었다.겨우 3분 사이, 화령문 반 이상의 제자들이 혈운 조직 네 사람의 손에 죽었다.짙은 피비린내가 도관 안을 가득 메웠고, 도관 전체가 붉은색 살기로 뒤덮였다.예준섭이 들고 있는 장검에서 피가 끊임없이 뚝뚝 떨어졌다.권해철과 천경문 네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예준섭을 바라보는 네 사람의 눈빛에는 분노와 두려움이 가득했다.이때 권해철은 그제야 혈운 조직이 정말로 소문처럼 잔악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다른 살아있는 제자들은 이 순간 저항할 의욕을 잃었다. 그들은 벌벌 떨면서 멍한 얼굴로 지옥과도 같은 광경을 바라보았다....“진서준 씨, 얼른 나와요. 권해철 씨 사형제들이 전부 죽게 생겼어요!”허윤진은 목욕실 문 앞에 도착해서 문을 힘껏 두드렸다.그러나 허윤진이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도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허윤진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왼쪽에 창문 하나가 있는 걸 발견했다.그 창문은 나무판자와 샌드페이퍼로 만든 것인데 조금만 힘을 줘도 망가뜨릴 수 있었다.허윤진은 서둘러 나무 의자 하나를 가져와 창문 아래 내려놓고 창문을 뚫고 들어갔다.그런데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갈 때 발밑이 미끄러워 바닥에 넘어지게 되었고 옷에는 먼지가 잔뜩 묻게 되었다.허윤진은 아픈 걸 신경 쓸 새도 없이 서둘러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진서준이 눈을 감고 욕조 안에 있는 걸 본 그녀는 급하게 달려갔다.“진서준 씨, 수련은 그만하고 얼른 나가요. 권해철 씨랑 누렁이 모두 죽게 생겼어요!”허윤진은 너무 초조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주먹을 너무 힘줘서 꽉 쥐는 바람에 관절이 하얗게 변했다.그러나 진서준은 마치 석상처럼 꿈쩍하지 않았다.“진서준 씨, 왜 그래요? 왜 말을 안 해요?”허윤진은 상황을 살피다가 서둘러
진서준은 이 용혈과로 몸을 단련할 수만 있는 줄로 알아서 영해를 증진하는 효과가 있는 줄은 몰랐다.이때 진서준 체내의 영해는 조금 더 높아졌고 몸도 아주 단단해졌다.지금은 총알이라고 해도 진서준을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왜... 왜 옷을 안 입은 거예요?”진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허윤진은 갑자기 진서준이 나체라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부주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허윤진은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예쁘장한 얼굴은 붉어졌다. 마치 여름날 밤의 노을처럼 말이다/진서준은 서둘러 나무 욕조 안에서 뛰쳐나와 황급히 옷을 입었다.“윤진 씨,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진서준은 옷을 입은 뒤 서둘러 물었다.“혈운 조직의 네 명의 종사가 우리에게 복수하겠다고 찾아왔어요. 권해철 씨가 지금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진서준 씨가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아요.”허윤진은 진서준이 진지하게 얘기하자 서둘러 그의 손을 잡고 도관 쪽 대전으로 달려갔다....“너희는 분명 죗값을 치를 거야!”바닥에 즐비한 시체들을 본 천경문은 가슴이 짓이기듯 아팠다.그 제자들은 화령문의 근간이었고, 그들의 아이들이기도 했다.천경문 일행은 아이들이 자라는 걸 직접 봐왔었다.그래서 제자들을 일찌감치 자기 친아들로 생각하고 있었다.그런데 그런 제자들이 예준섭 등 사람들에 의해 도륙당한 걸 보니 가슴이 찢기듯 아팠다.“다음에는 당신들 차례야!”함영식은 칼 두 자루를 들고 천경문 일행을 향해 서서히 걸어갔다.그가 쥐고 있는 갈혈도는 이미 검붉은색이 되어 있었다. 위에는 두 개의 긴 용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주 흉포해 보였다. 그저 힐끗 보는 것만으로도 오한이 들었다.천경문 일행을 바라본 권해철은 비분에 찼고, 미안했다.“죄송합니다. 사형. 모두 제 탓입니다!”“네 탓이 아니다. 이건 우리가 겪어야 했던 일이었어.”천경문은 슬픔에 찬 얼굴로 탄식했다.이 순간 그는 십 년은 늙은 듯했다.다른 세 명의 장로도 마음이 무거웠다. 그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지만 이미
분노, 슬픔, 자책... 여러가지 감정들이 진서준의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진서준은 자신의 출현으로 인해 화령문이 이렇게 큰 재앙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조금 전 그가 폐관하지 않았더라면 상황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몰랐다.“진 마스터님, 부디 저희 제자들을 위해 복수해 주십시오!”천경문은 진서준을 보자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했다.“진 마스터님, 저희 화령문 제자를 위해 복수해 주십시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싸늘한 시선으로 예준섭 일행을 바라보았다.“오늘 당신들 모두 죽어야 해. 그리고 내친김에 혈운 조직도 없애주지.”이것은 천경문을 향한 그의 약속이자, 죽은 이들을 위한 약속이었다.진서준의 목소리는 마치 심연 속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아, 예준섭 일행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우리를 죽이려면 그럴 실력이 있어야지.”진서준의 일격에 예준섭 일행은 사실 아주 놀랐다.그러나 그들에게는 물러날 길이 없었기에 목숨 걸고 진서준과 싸워야 했다.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는 아무도 몰랐다.게다가 그들은 네 명이고 진서준은 혼자였다.“같이 덤벼서 저 자식을 죽이자고!”예준섭은 소리를 지르면서 두 발을 힘껏 굴렀다. 순간 발밑의 땅이 가루가 되었다.함영식 등 세 명이 그의 뒤를 바짝 따라서 진서준을 죽이려고 들었다.네 명의 대성 종사는 기세가 엄청났다. 먼 곳에서 관전하고 있던 허윤진은 입술을 깨물면서 손가락 관절이 희게 질릴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진서준 씨, 꼭 무사해야 해요!”허윤진은 진서준을 위해 묵묵히 기도하고 있었다.기세등등한 네 명 앞에서 진서준은 천천히 손을 들어 체내의 장청의 힘을 동원했다.다음 순간, 진서준의 손바닥이 담청색으로 변했고 그의 손 뼈 또한 아주 또렷해졌다.그의 손바닥에 모여든 영기가 자주색의 번개로 변하여 네 사람을 향해 덮쳐들었다.천둥이 손에서 벗어났다. 마치 하늘 위 천둥처럼, 수백 마리의 자줏빛 뱀처럼, 예준섭 일행을 습격했다.“강기화이?”네 사람의 안색이 순식간에 달라졌다.그것
“폭원단을 써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우리 넷이 저 자식을 이길 수는 없어.”변정선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폭원단을 복용하면 단기간에 네 사람의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네 사람은 원래 대성 종사라서 폭원단을 사용하면 아마 선천 대종사와 실력이 엇비슷해질 것이다.그러나 폭원단을 쓰면 큰 부작용이 있었다.예전에 유혁수가 그것을 복용했을 때 순식간에 30살 넘게 늙었다.“폭원단을 써서라도 반드시 오늘 저 자식을 죽여야 해!”네 사람은 그렇게 말한 뒤 곧바로 폭원단을 꺼냈다.권해철은 상황을 보다가 서둘러 진서준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진 마스터님, 절대 저들이 폭원단을 복용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어요!”진서준은 그들을 말릴 생각이 없었다. 그는 그저 차갑게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폭원단을 복용한 뒤 예준섭 일행은 머리가 하얗게 세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스무 살 넘게 늙은 것 같아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처럼 보였다.허약하고 무기력했던 그들의 몸이 다시 전성기로 돌아왔다. 전성기보다 더 좋으면 좋았지 못하지는 않았다.쿵!폭발음과 함께 함영식은 자신의 갈혈도를 들고 빠르게 움직였다. 기세가 전보다 훨씬 더 강했다.“네 피로 이 칼을 물들이겠어!”함영식은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칼보다 50cm는 더 긴 듯한 붉은색 도강이 진서준을 향해 덤벼들었다.권해철은 참지 못하고 창백해진 얼굴로 몸서리를 쳤다.“혈운 조직이 이렇게 악랄할 줄이야!”네 사람은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진서준을 죽이려고 했다.마지막에 폭원단을 복용한 변정선은 한 번에 폭원단 세 알을 삼켰다.그의 실력은 폭원단으로 인해 선천 대종사와 엇비슷한 수준이 되었다.이렇게 무시무시한 진영이라면 선천 대종사라고 해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진서준은 천천히 손을 들었다. 담청색의 영기가 그의 두 손을 뒤덮었고 함영식의 두 칼을 가볍게 두드렸다.눈 깜짝할 사이에 함영식의 공격이 해결됐다.그러나 나머지 세 사람이 진서준을 에워쌌다.자신
진서준이 날아가는 순간 권해철 등 사람들은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허윤진은 미친 사람처럼 진서준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무너진 대전을 향해 달려갔다. “진서준 씨, 진서준 씨! 절대 죽으면 안 돼요!”허윤진은 마음이 아파 눈물을 줄줄 흘렸다.진서준이 정말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녀도 진서준과 함께 죽을 생각이었다.변정선 등은 악랄한 표정을 지었다.“이것이 바로 네가 잘난 체한 결과야. 우리 넷이 폭원단을 먹으면 진정한 선천 대종사라고 해도 우리 손에 죽게 돼 있어. 오늘 너희를 같이 지옥으로 보내주지. 길동무가 있으니 외롭지는 않을 거야!”퍽!허윤진이 반쯤 달려갔는데 폐허더미가 갑자기 폭발했다.진서준이 폐허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서준 씨가 무사할 줄 알았어요!”허윤진은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이 났고 몸도 덜덜 떨렸다.“아직 살아있다고?”변정선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조금 전 변정선은 온 힘을 다해 발차기를 날렸다.폭원단을 무려 세 알이나 복용했기 때문에 그 위력이 선천 대종사가 사력을 다한 일격보다 절대 약하지 않을 것이었다.“이렇게 쉽게 죽지 않을 줄 알았어.”예준섭은 차갑게 말했다.“하지만 넌 오늘 반드시 죽게 될 거야!”함영식과 하신우는 싸늘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 무기에서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진서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그의 등 뒤에 남았던 상처는 혈기의 작용 덕분에 서서히 사라졌다.조금 전 예준섭 일행과 근접전을 펼치면서 진서준은 영기를 쓰지 않고 조금 전 응집해 둔 혈해의 기운을 썼다.진서준은 영기와 비교했을 때 혈해가 훨씬 더 위력이 약하다는 점을 발견했다.조금 전 영기로 몸을 보호했다면 절대 함영식의 발차기에 상처를 입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혈해의 기운 덕에 진서준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수단이 하나 더 많아졌다.앞으로 정말 강적을 만나게 된다면, 영기를 다 소모한 상태에서도 혈해의 기운을 사용하여 상대와 육탄전을 벌일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