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하는 소리와 함께 한주먹을 맞은 한제성은 그대로 날아가 벽에 세게 맞았다.그리고 푸하는 소리와 함께 한제성이 피를 뿜었다.통로 전체가 순식간에 진한 피비린내로 뒤덮였다. 진서준과 박인성 그들 세 사람의 전투도 이미 과열 단계에 접어들었다.그렇게 큰 링은 이미 형체를 완전히 알아볼 수 없게 자갈로 변했다.링에서 가까운 관중석은 진서준을 비롯한 세 사람의 전투의 여파에 의해 영향을 받아 가루로 되었다!이때 진서준 몸에도 몇 개의 새로운 상처가 생겼고 체내의 영기도 거의 바닥이 났다.하지만 박인성의 상태도 매우 좋지 않았다. 그가 방금 먹은 그 단약은 이미 약효가 떨어지기 시작했다.만약 1분 안에 진서준을 죽이지 못한다면 박인성이 먼저 쓰러질 것이다. 조정수도 마찬가지였다. 몸에 몇 군데 새로운 상처가 더 생겨 피부가 찢기고 살이 터졌다. 바로 그때 진서준은 허사연의 고함을 들었다.“진서준 씨, 우리 상관하지 말고 빨리 도망쳐요.”소리를 들은 진서준은 안색이 갑자기 변하여 즉시 고개를 돌려 허사연을 바라보았다.허사연과 한보영은 이미 이씨 집안의 내공 무인에게 잡혀 2층에서 아래층으로 끌려갔다.권해철 그들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아직도 2층에서 이씨 집안 종사와 싸우고 있었다. “이놈들아, 죽어버려!”진서준의 두 눈이 새빨갛게 변했고 살기가 가득 찼는데 전체 지하 링장의 온도가 몇 도나 떨어져 등골이 오싹해졌다. 진서준이 돌아서서 그의 여인을 구하러 가는 것을 보고 박인성과 조정수는 즉시 그의 앞을 막았다.“비켜!”진서준의 폭발적인 외침과 함께 몸에서 공포의 기운이 맴돌았다. 조정수 두 사람은 눈이 움츠러들었다. 눈앞의 진서준은 아까보다 더 무서웠다.진서준이 검을 몇 번 휘두르자 검의 빛이 빗방울처럼 그 두 사람을 향해 돌진했다.두 사람은 황급히 몸을 피했다. 감히 맞설 수 없었다.하지만 그 두 사람은 피한 후 바로 진서준의 뒤를 쫓아가 한사코 진서준에게 매달렸다. 진서준은 너무 화가 나서 천문검을 바로 거두었다. “너희들
피비린내 나는 광경에 이미 겁에 질려 있던 관객들은 더욱 공포에 질렸다.사람이 아니라 지옥에서 돌아온 악마가 분명했다.“사연 씨, 괜찮아요?”진서준은 허사연의 앞으로 달려가서 그녀가 다치지는 않았는지 자세히 살폈다.“난 괜찮아요. 서준 씨는 괜찮아요? 어쩌다 이렇게 된 거예요?”허사연은 피 칠갑을 한 진서준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파서 그를 꽉 끌어안았다.미처 참지 못한 눈물이 눈가에서 흘러내려 진서준의 옷자락을 적셨다.진서준은 황급히 설명했다.“이 피는 내 게 아니에요. 다른 사람 것도 있어요.”진서준도 다치기는 했지만 심하게 다친 건 아니었다.게다가 그는 조정수와 박인성 두 사람의 선천의 힘까지 흡수하여 단전 내의 영해도 많이 회복되었다.“사연 씨, 잠깐 놔줘요. 나 권해철 씨를 도와주러 가봐야겠어요.”권해철과 이희양은 아직도 싸우고 있었는데 권해철이 질 것으로 보였다.허사연은 서둘러 진서준을 놓아주었다. 진서준이 그들을 도울 수 있게 말이다.진서준은 발밑에 힘을 주더니 마치 기러기처럼 날아가서 2층 창가에 도착했다.진서준이 갑작스럽게 나타나자 이씨 일가의 종사들은 깜짝 놀랐다.고개를 돌린 그들은 목숨을 잃은 조정수와 박인성을 본 순간,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두 선천 대종사가 진서준의 손에 죽다니.‘저 자식은 대체 정체가 뭐지? 인의방 10위 안에 드는 고수도 저 자식의 상대가 되지 않다니.’사실 전성기 때의 박인성, 조정수와 목숨 걸고 싸웠더라면 진서준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그런데 조정수와 박인성 모두 체력이 조금 닳은 상태라서 기회가 있었다.게다가 진서준은 금기시된 방법을 썼기에 아주 빠르게 전투를 끝낼 수 있었다.“박... 박인성 씨를 죽였다고?”진서준을 바라보는 이희양의 눈동자에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있었다.박인성과 조정수 모두 죽었다면 이씨 일가는 더 이상 진서준과 싸울 수가 없었다.5명의 종사는 진서준 앞에서 쪽도 못 쓸 것이다. 진서준은 이미 8명의 종사를 죽인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다.이씨 가문의 종사
진서준은 이희양의 뺨을 오른쪽, 왼쪽 번갈아 가면서 때리기 시작했다.짝짝짝...이희양의 얼굴에 진서준의 손바닥 자국이 가득 남았다. 이빨도 거의 다 빠져서 입안에 피가 가득했다.얼굴이 퉁퉁 부은 이희양을 본 이씨 가문의 종사들은 겁을 먹고 덜덜 떨었다.“제발 살려주세요. 저희는 이씨 일가의 돈을 받고 일한 것뿐입니다.”이씨 가문의 종사들은 이희양이 돈을 주고 고용한 사람들이었다매달 이씨 가문에서는 5명에게 거액을 줘서 평안을 지켰다.그런데 이제 그들은 진서준에게 굴복하여 자기 목숨만 살려달라고 했다.진서준은 다섯 사람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각자 알아서 팔 하나씩 부러뜨리고 꺼져.”팔을 부러뜨리면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다섯 사람은 생각지도 않고 곧장 진서준이 말한 대로 했다.퍽퍽퍽...다섯 사람은 자신의 왼팔을 부러뜨리더니 아파서 계속 숨을 들이켰다.“진서준 씨, 저희는 이제 가봐도 되죠?”“꺼져!”진서준은 가봐도 된다는 뜻으로 손을 휘적였다.이씨 가문의 종사들이 떠난 뒤 이희양은 완전히 절망에 빠졌다.이때 그는 더 이상 빌릴 힘이 없었다.“권해철 씨, 그쪽에 있는 사람들 전부 잡아 오세요.”진서준은 이씨 가문 사람들이 있는 VIP실을 가리키며 말했다.“네.”권해철은 곧바로 사람들을 데리고 이소준 등을 끌고 왔다.진서준은 그들을 쓱 둘러보더니 미간을 찡그렸다.그는 손승호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손승호는?”진서준이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이소준은 서둘러 대답했다.“오늘 몸이 좋지 않다면서 오지 않았어요.”“또 도망쳤네, 그 자식!”진서준은 화가 났다.‘빌어먹을 자식, 당시 서울에 있을 때 죽여버려야 했어!’“진서준 씨, 저희를 놓아주세요. 앞으로 절대 진서준 씨와 맞서 싸우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이서강은 서둘러 말했다.“이제야 잘못을 알았어? 늦었어!”진서준은 차갑게 말했다.이소준은 얼굴이 창백해졌다.“진서준 씨, 전 이씨 일가의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고 전 만하문의 제자예요. 절 죽인
조금 전 조정수가 죽는 모습을 본 허준희는 오늘 허씨 일가는 틀림없이 패배할 거라고 확신했다.두 대종사가 진서준의 손에 죽었으니 패배를 인정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그래도 허준희는 똑똑한 편이었다. 그는 사람을 시켜 허사연을 잡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만약 허사연을 잡으려고 했다면 허씨 가문도 이씨 가문처럼 소멸당했을 것이다.“진서준 씨,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허준희는 가장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덜덜 떨었다.어제까지 진서준 앞에서 건방을 떨던 허준석은 겁을 먹어서 말도 하지 못했다.진서준이 이렇게 강할 줄 알았더라면 절대 진서준을 그렇게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똑똑하네.”진서준은 허준희를 바라보면서 차갑게 웃었다.이씨 일가는 이미 망했고 허씨 일가까지 없애버린다면 한씨 일가만 남게 되는데 그건 현실적이지 않은 일이었다.지금까지 한씨 일가는 조씨 일가와 황씨 일가의 구역도 전부 집어삼키지 못했다.“허씨 일가는 봐줄 수도 있어. 하지만 앞으로 내 명령에 따라야 해.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허준희는 서둘러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허씨 일가는 영원히 진서준 씨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진서준의 앞날은 아주 창창했다.진서준은 겨우 20대였다. 만약 그가 30대가 되고 40대가 된다면 7품 이상의 대종사가 될지도 몰랐다.그대가 되면 허씨 일가의 지위도 하루가 다르게 높아질 것이다.“좋아. 한씨 일가와 연합하여 이씨 일가를 삼키도록 해.”진서준이 분부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확실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모든 걸 해결한 뒤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그곳을 떠났다.한씨 일가로 돌아간 뒤 진서준은 곧바로 샤워하여 몸에 묻은 피를 전부 씻어냈다.그가 가운을 입고 욕실에서 나왔을 때 허사연은 그의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서준 씨, 조금 전에 다친 것 같던데 얼른 봐봐요.”허사연이 긴장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괜찮아요. 상
진서준은 허사연의 허리를 끌어안더니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하게 말했다.“사연 씨, 내가 샤워할 때 왔네요. 몰래 훔쳐보지는 않았죠?”허사연은 부끄럽기도 하고 짜증 나기도 했다.“내가 왜 늑대 같은 서준 씨를 훔쳐보겠어요?”“우리 둘 중에 늑대가 누굴까요? 내가 샤워할 때 몰래 찾아온 건 사연 씨인데 말이에요. 게다가 내 상처를 보겠다면서 옷을 벗으라고 했잖아요!”진서준은 작게 말했다.“아까 이씨 일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죠? 나도 사연 씨가 다친 데는 없는지 확인할래요!”허사연은 진서준의 품에 풀썩 쓰러졌다.심지어 호흡마저 가빠졌다.이 순간, 방 안의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었고 핑크빛 기류가 감도는 듯했다.허사연의 부드럽고 가녀린 허리에 팔을 두른 진서준은 그녀를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그는 잘 때도 허사연을 끌어안고 자고 싶었다.“아...”허사연은 엉덩이에서 이상한 감촉이 느껴지자 참지 못하고 신음을 냈다.그 목소리를 들은 진서준은 허사연의 입에 입을 맞췄다.허사연은 처음엔 진서준의 거친 몸짓에 살짝 놀랐지만 진정한 뒤에는 진서준과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몇 분 뒤, 허사연은 얼굴이 빨개진 채 숨을 헐떡였다.그녀는 진서준에 의해 상의가 다 벗겨져서 검은색 레이스 속옷만 입고 있었다.가슴이 커서 진서준의 한 손에 다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안... 안 돼요. 여긴 한씨 일가예요. 우리 돌아가서...”허사연의 목소리는 마지막에 가서 거의 들리지 않았다.진서준은 사실 허사연과 스킨십을 할 생각이었지 이 정도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냉정을 되찾은 진서준은 서둘러 옷을 입혀줬다.그러고는 허사연에게 몇 번 더 입을 맞춘 뒤에야 그녀를 놓아주었다.“서라를 구하면 바로 돌아가요!”“네. 난 먼저 방으로 돌아갈게요...”허사연은 자신의 방으로 빠르게 달려갔다.그녀는 방으로 돌아온 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욕실에서 샤워했다.진서준은 허사연이 떠난 뒤 창문을 전부 열어놓고 통풍시켰다....저녁.김연아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
김연아는 김형섭이 쓸모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건 서씨 일가의 명령이었고 김형섭은 반박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연아야, 이건 정말 내가 원한 게 아니야. 난 그냥 네가 행복하게 크기를 바란 것뿐인데...”김형섭은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돌아오지 않았다면 전 행복하게 지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김연아는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돌아가세요. 정략 결혼할게요. 당신에게 폐 끼칠 일 없어요.”냉담한 어조에 김형섭은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하지만 이렇게 된 마당에 뭐라고 더 할 수는 없어서 그냥 돌아갔다.김형섭이 떠난 뒤 김연아는 진서준의 사진을 꺼내더니 혼자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서 엉엉 울었다....유지수가 준 시간까지 이틀 남았다.만약 이틀 내로 옥선화를 찾지 못한다면 유지수가 어떤 미친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진서준 씨, 허씨 일가가 오늘 진서준 씨를 위해서 레이 호텔에서 파티를 열 거래요.”한보영은 아침에 진서준의 침실로 찾아와서 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미간을 살짝 구겼다.“거절해 줘요. 전 그런 자리에 참석할 정도로 여유롭지 않으니까요.”한보영은 한숨을 쉬었다.“진서준 씨, 그렇게 초조해할 필요 없어요. 유지수 씨는 절대 서준 씨 동생을 해치지 않을 거예요. 유지수 씨도 진서준 씨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나오면 두려울 거예요. 지금 초조해야 할 사람은 서준 씨가 아니라 유지수 씨예요. 이 파티에는 중부의 모든 가문이 다 올 거예요. 파티하는 와중에 수소문해 보면 옥선화의 소식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진서준은 한보영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좋아요. 보영 씨 말대로 할게요.”“일단 옷부터 바꿔입어요. 그 옷은 서준 씨 신분에 너무 어울리지 않아요.”한보영은 진서준이 입은 운동복을 보면서 말했다.진서준은 이곳에 올 때 옷을 한 번만 가져왔다.전의 옷은 너덜너덜해졌고 지금 입고 있는 옷은 한제성의 것이었다.“알겠어요.”진서준
차를 세운 뒤 진서준과 한보영은 차에서 내렸다.한보영은 진서준의 손을 잡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잡고 싶어서 잡는 거 아니에요. 우리 둘이 손을 잡지 않으면 저한테 연락처를 물으러 오는 사람들이 엄청 많을 거예요.”진서준은 주위를 둘러봤다. 한보영이 차에서 내렸을 때 적지 않은 남자들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한보영은 한때 아픈 적이 있어서 몸이 아주 허약하고 말랐다.그래서 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보면 보호 욕구가 생겼다.그리고 그런 여자들은 남자들의 시선을 더 사로잡았다.“제가 오히려 이득을 본 거네요.”여자인 한보영도 신경 쓰지 않으니 진서준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두 사람은 손을 잡고서 신시아 백화점으로 향했다.한보영은 진서준이 입을 만한 옷을 정성 들여 골랐다.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아마 두 사람을 연인이라고 오해했을 것이다.“보영아!”진서준의 옷을 골라주고 있던 한보영은 갑자기 들려오는 들뜬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고개를 돌린 그녀는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전해찬 씨, 말조심하세요. 당신은 제 이름을 막 부를 자격이 없어요.”한보영은 혐오 가득한 눈빛으로 차갑게 말했다.그녀의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에 전해찬은 흠칫했다.예전에 한보영은 그에게 살갑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냉담하지는 않았다.전해찬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아쉬워했다.“보영아, 그래도 우리 오랫동안 친구였는데 이름을 부르지 못할 건 없잖아?”전해찬은 웃으며 말했다.한보영은 옆에 있는 진서준을 힐끗 보더니 표정이 더욱 차가워졌다.“우리 안 친하잖아요. 친구도 아니고요.”그녀의 말을 들은 전해찬은 체면을 구겼다는 생각이 들어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는 고양시 갑부의 아들이었기에 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썼다.그런데 한보영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그래요, 좋아요.”전해찬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짓더니 몸을 돌려 백화점을 떠났다.고개를 돌린 순간, 그의 잘생긴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분
매니저 또한 난감한 상황이었다.그는 그저 돈 받고 일하는 직장인일 뿐이었다. 고양시처럼 거물이 가득한 곳에서 그가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진서준도, 한보영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매니저가 진서준을 내쫓으러 온 건 아마도 누군가의 명령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명령을 내린 사람은 조금 전 한보영이 쌀쌀맞게 쫓아낸 전해찬이었다.“제가 블랙리스트에 들어갔다고요?”진서준이 물었다.“그렇습니다.”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매니저를 보더니 덤덤히 말했다.“내가 이 백화점 소유자가 된다면 블랙리스트가 될 일은 없겠죠?”아주 태연자약했다.“당... 당연하죠.”매니저는 어리둥절했다.이 백화점을 사겠다는 뜻인 걸까?백화점 매니저는 눈이 튀어나올 듯했다.신시아 백화점은 이곳의 가장 큰 백화점으로 그 가치가 6,000억에 달했다.엄청난 가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아주 대단한 재벌가 아들이라고 해도 블랙리스트가 되었다는 이유로 6,000억짜리 백화점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대체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는 걸까?한보영 또한 놀란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드러냈다.“좋아요. 제가 기억하건대 이 백화점 대표님 이름이 왕석훈이죠?”“맞습니다. 저희... 저희 회장님이세요...”매니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그는 20년 넘게 매니저를 해오면서 이렇게 황당한 일은 처음이었다.배포가 이렇게 크다니!왕석훈이 팔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었다. 이 백화점은 항상 흑자였고 몇 년 더 지나면 가치가 더 높아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왕석훈 회장님 맞죠? 전 한보영이라고 합니다. 진서준 씨께서 신시아 백화점을 구매하고 싶어 하십니다. 진서준 씨는 지금 백화점 2층에 있습니다. 오실 때 계약서 들고 오시죠.”한보영은 빠르게 전화를 끊었다.“왕 대표님 곧 계약서 들고 오실 겁니다.”한보영은 웃는 얼굴로 매니저를 바라보았다.“전해찬을 위해 새로 온 대표님께 밉보일 생각인가요?”매니저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