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운의 반을 가로지르는 호수인데 수평면이 이때 놀랍게도 5센티미터 정도 낮아졌다. 이 두루미의 무게는 백 톤이 넘을 것 같았다. 두루미의 주변 온통 금빛 강기로 빛났다.곧 이 하얀 두루미는 눈 깜짝할 사이에 금빛으로 변했다.“헐! 이게... 바로 왕 대종사의 실력이란 말인가?”“너무 무서워. 여기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무서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압박감이야.”“오 품 대종사 경지를 넘기면 지선과 비슷하다고 하지 않았어요?”지선은 신의를 응결시킬 수 있다. 왕안석은 비록 신의가 아니지만 선천의 힘으로 금색 두루미를 만들어냈고 그의 위력은 미사일과 비슷했다.“가!”왕안석이 말이 끝나자마자 두루미는 울부짖으며 진서준을 향해 달려갔다.진서준의 손등에 있던 영기는 지금 천문검에 모였다. 검은 캄캄한 밤에 반짝이는 별처럼 눈부셨고 긴 용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용의 눈에서는 푸른빛이 번쩍이였다. 그리고 엄청난 기세가 진서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진서준은 천문검을 들고 두루미가 그의 앞에 도착하기 전에 칼을 휘둘렀다.쿵...검은 30미터 넘어까지 빛을 반사했으며 빛이 닿는 곳마다 물이 철렁이였다. 칼은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로 두루미를 향해 찔렀다. 그러자 두루미는 울부짖었고 양 날개를 접으며 자신을 보호했다.쨍그랑...검이 두루미의 날개에 부딪히는 순간 맑은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선천의 힘을 지닌 날개는 유리조각처럼 부서졌다.“이럴... 수가! 저 검이 종사님의 선천 강기를 뚫었다니.”“선천 강기를 뚫었을 뿐이에요. 아직 두루미가 공격하지 않았잖아요.”“별거 아니라고요? 그럼 직접 가서 싸워보세요.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게 될 거예요.”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체내의 영해가 거의 고갈되자 진서준은 서두르지 않고 품에서 단약 한 알을 꺼내 먹었다.단약이 들어가면서 진서준 체내의 영기가 다시 들끓었다. 펑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의 윗옷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상반신이 드러났다.성난 근육들은 마치 조각처럼 뚜렷했고 엄청난 힘을
“진 마스터님... 죽은 건 아니겠지?”오열하는 김연아의 모습을 보자 다들 수군거렸다.“칠 품 대종사가 혼신의 힘을 다해 공격했는데 아무리 선법이라 해도 받아내지 못할 거야.”“이렇게 죽었다고? 선법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고 싶었는데...”“역시 서씨 가문은 강남 제일 명문이야.”구경하던 사람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앞날이 창창하던 천재 소년이 결국 이렇게 죽게 되다니.“김연아를 잡아 와! 오늘 이 결혼 꼭 해야만 해.”서혜련은 차갑게 말했다.김씨 가문 두 여종사는 앞으로 걸어 나와 김연아를 데려가려고 했다.“서준 씨, 외롭지 않을 거예요. 함께 가요.”김연아는 울먹이면서 머리에 있던 비녀를 천천히 뽑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김연아가 자살이라도 할까 봐 긴장했다.“연아야, 아이고 우리 딸. 그러지 마!”이때 김형섭이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갔다.“하지...”피범벅으로 된 진서준의 손이 갑자기 꿈틀거렸다. 진서준은 김연아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서준... 서준 씨!”김연아는 고개를 숙이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진서준을 바라봤다.진서준은 아직 살아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김씨 와 서씨 가문 대종사들이 그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오늘 어차피 진서준은 죽을 것 같았다.구경하던 재미를 잃은 사람들도 모두 걸음을 멈추고 다시 돌아섰다.“정말 지독한 놈이야.”“왕 대종사님의 한 방을 맞고도 죽지 않았다니. 정말 대단해.”“참 아까워. 아마 백 년이 더 지나도 대한민국에는 이렇게 대단한 인물이 없을 것 같아.”사람들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들은 오늘 진서준의 행동에 모두 감탄했다.세상에 누구 한 여자를 위해 강남 양대 가문인 김씨 가문과 서씨 가문에게 미움을 살 수 있을까?이런 기개만으로도 마스터라는 부르기에 충분했다. 호수 위에 있던 왕안석은 천천히 항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죽어가는 진서준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내가 한 말은 지킬 거야. 오늘 네가 죽지 않았으니 이젠 더 이상 관여
이한석은 차가운 눈빛으로 서광철을 쳐다봤다. 그러자 서광철은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그는 하마터면 이한석이 서씨 가문 서열 2위인 오 품 대종사라는 것을 잊을 뻔했다.이한석은 비록 서씨 가문의 부하이지만 어떤 일은 대종사인 그를 강요할 수 없었다.서광철이 명령조로 이한석에게 말한다면 화를 자초할 뿐이다.“저는 서씨 가문의 월급을 받지만 이 세상에는 서씨 가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이한석은 서광철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그러자 서광철도 이를 악물고 말했다.“다들 손을 쓰지 않으니 내가 직접 나설 수밖에! 자식을 죽은 원수는 반드시 목숨으로 갚아야 해. 누구도 나를 막지 마!”이한석 등인의 안색은 약간 어두워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들은 서광철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지만 서광철을 막을 수는 없다. 이 일이 알려지면 대종사의 명성에 누를 끼칠 것이다. 마치 경호원이 회장님에게 손찌검하는 것과 같다.서광철은 체내의 강기를 모으면서 진서준을 향해 걸어갔다. 서광철도 비록 대종사이지만 일품 대종사였고 실력은 인의방 10위밖에 있었다.하지만 중상을 입은 진서준을 죽이기엔 충분했다.“아버지, 이렇게 보기만 하실 거예요? 진 선생님이 곧 죽는다고요...”장도윤은 초조한 어조로 말했다.“안돼. 왕안석은 갔지만 아직 여기에 대종사들이 이렇게 많은데 함부로 손을 썼다간 우리 모두 죽어.”장조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쩌면 모든 것은 정해진 운명일 듯싶다.서광철은 진서준 앞으로 걸어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내 아들을 죽였을 때 이런 날이 올거라고 생각했어?”진서준은 눈을 천천히 뜨며 서광철은 평온하게 바라봤다.“이런 날? 어떤 날인데?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해?”그러자 서광철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손을 들어 진서준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아직도 반항할 수 있다고? 그럴 리가!”“하지 마세요!”김연아가 진서준을 위해 막으려는 순간 진서준은 그녀를 품에 꼭 껴안았다.허윤진이
“어디 갔어? 사람은? 왜 갑자기 사라진 거야?”서광철은 미친 사람처럼 진서준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서광철뿐만이 아니라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깜짝 놀랐다.“헐. 진 마스터님이 정말 선인은 아니겠지? 방금 사용한 것은 설마 선법인가?”“너무 무서워. 진 마스터님이 이번에 죽지 않았으면 몇 년 후 꼭 두 가문에게 복수할 거야. 그때 가서...”“방 마스터님, 왜 그러세요?”방홍진은 매우 흥분하며 몸을 미친 듯이 떨고 있었다.“죽기 전에 전송 대진을 볼 수 있다니.”방홍진은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 그러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었다.“전송 대진? 그게 뭐죠? 정말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거예요?”사람들은 방홍진이 말한 전송 대진이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서광철도 달려와 방홍진의 멱살을 잡으며 물었다.“전송 대진이 뭐예요? 진서준 저 자식이 도대체 어떻게 도망갔는데요?”서광철은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콜록콜록... 이 손 놔요...”방홍진은 숨이 막혀오면서 얼굴이 붉어졌다.서광철이 손에 힘을 풀자 방홍진은 숨을 두 번 들이마시며 천천히 말했다.“전에 스승님의 고서에서 본 적이 있어요. 전송 대진은 세상의 모든 것을 심지어 살아있는 사람까지도 전송할 수 있죠. 대진을 치면 1초도 걸리지 않고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전송 대진은 배치하기가 매우 어려워서 제 스승님도 배워 내지 못했어요. 하지만 방금 이걸 보게 되다니.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네요.”방홍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은 마치 덕후가 자신의 스타는 만난 듯했다.“X발, 죽일 놈! 방금 내 공격을 막지 않은 것은 분명 내 경계심을 내려놓기 위해서야.”서광철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진서준이 전송 대진을 배치했다는 것은 그가 약을 먹은 후 다시 기력을 회복했다는 것을 증명한다.서광철의 공격을 받아내지 못한 것은 사람들에게 그가 이미 궁지에 몰린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이다.서광철이 추측한 것과 같았다.
류재훈은 노인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인사하였다.다른 사람들도 류재훈의 말을 듣자 정신을 차리고 절을 했다.“현천 진군께 인사를 올립니다.”세상에! 호국 장군이 오다니!진서준이 왕안석의 공격을 받아낸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다.현천 진군은 천의방 랭킹 40위에 있는 호국 장군이다. 그는 줄곧 명주시를 지켜왔으며 큰일이 없으면 절대 명주시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오늘 금운에 왔다니.서씨 가문에서 초대한 걸까?서광문은 현천 진군을 초대하지 않았기에 더 어리둥절해졌다.비록 서씨 가문은 강남 제일의 가문이지만 호국 장군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현천 진군께서 오신 줄도 모르고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서광문은 허리를 굽히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인사했다.“그냥 구경하러 온 거야. 긴장하지 마.”진서훈은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네네네...”서광문 등인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공손한 표정으로 진서훈을 바라보았다.소문에 의하면 진서훈은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소문이 도대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아무도 모른다.“이 자식이 여기서 X랄을 했네.”진서훈은 아수라장이 된 결혼식장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그게...”서광문은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진서준은 국안부 상경이기에 국안부를 대표하는 것과 같다.비록 서광철은 방금 호국 장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허풍을 떨었지만 진서훈을 실제로 만나자 그는 누구보다도 겁을 먹었다.서씨 가문 사람들이 진서준을 거의 죽일 뻔했는데 그 책임을 물을까 봐 다들 벌벌 떨었다.“젊은 사람들이 치고받는 싸움에 우리 늙은이들은 끼어들지 맙시다. 아니면 다들 수군거리기 마련이에요.”진서훈이 웃으며 말했다.흠...그 말을 듣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숨을 들이마셨다.우리 늙은이들?그 말은 분명 서씨 가문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만약 다시 진서준에게 손을 댄다면 진서훈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진서훈이 손을 쓰면 서씨 가문은 물론 강남 모든 대종사가 힘을 합쳐도
운대산.진서준은 산골짜기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주위의 영기는 마치 용처럼 꿈틀거리더니 진서준을 향해 다가왔다.방홍진의 말대로 진서준은 전송 대진을 써서 도망쳤다. 진서준은 운대산의 영맥을 장악한 후 이곳에 전송 대진을 배치했다.바로 오늘 김연아를 구출하기 위해서였다.다만 전송 대진을 배치하는 데 필요한 재료는 매우 많았고 재료마다 희귀했다. 진서준에게는 공교롭게도 대진을 배치하는 데 필요한 희귀한 재료 두 개가 있었다.하나는 감옥에 나오기 전에 창욱 어르신이 준 천기각 옥패고 다른 하나는 조희선이 그에게 준 진자가 새겨진 옥패이다.진서준은 두 옥패의 영맥을 장악하자 옥패는 눈 부신 빛을 발했다.하지만 서지은과 권해철이 있었기 때문에 진서준은 감히 소문을 내지 못했다. 그는 권해철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권해철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그는 점점 더 위험해지기 때문이다.오늘도 진서준은 권해철 대신 금성 등인을 불렀다. 그들은 어차피 죽일 놈들이니 이런 방식으로 죽이려 했다.몸의 상처를 치료한 후 진서준은 천천히 눈을 떴다.그러자 아름다운 김연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서준 씨, 괜찮아요?”김연아는 걱정스레 물었다.“괜찮아요. 우리 이제 갑시다.”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으며 일어섰다.“정말 괜찮아요?”김연아는 진서준이 방금 연회에서 왕안석에게 맞고 바로 회복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이제 겨우 한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그럼요. 못 믿겠으면 봐요.”진서준은 말하면서 김연아를 품에 앉았다. 김연아는 그의 상처를 다칠까 봐 깜짝 놀랐다.“억지 부리지 말고 상처가 낫지 않았으면 좀 더 쉬세요.”김연아는 걱정스레 말했다.“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요. 빨리 내려갑시다. 아니면 사연 씨가 걱정하겠어요.”진서준은 껄껄 웃으며 김연아를 안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길에서 두 사람은 별말이 없었지만 분위기는 어색했다. 산 밑에 도착했을 때 김연아는 갑자기 진서준의 목을 껴안고 말했다.“서준 씨, 다시는 이런 바보짓 하지 않
“서라야, 오랜만이네!”김연아는 진서라는 다정하게 바라봤다. 진서라는 진서준의 여동생이기에 자기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진서준과 함께 있을 때만 김연아는 가족 같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먼저 차에 타. 서씨 가문 사람들이 도시를 봉쇄하면 우리는 떠날 수 없어.”진서준은 다급하게 말했다. 그들은 아직 금운시에 있었다. 만약 서씨 가문에서 금운시를 봉쇄하면 진서준 등인은 떠날 수 없을 것이다.“그런데 차가 한 대...”허사연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제 차를 살 때 탑승 할 인원수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방금 차를 몰고 와서야 모두가 차에 앉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진서준 남매, 허사연 자매, 그리고 한보영과 김연아까지 총 6명이었다.하지만 차는 4인승이고 많아야 5명이 앉을 수 있다.비록 모두 체형이 마른 여자들이지만 그래도 네 명이 뒷좌석에 끼어 앉으면 불편했다.이때 한보영이 입을 열었다.“아니면 먼저 가세요. 서씨 가문에 저를 어쩌지 못할 거예요.”한씨 가문과 진서준은 이익 관계일 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서씨 가문은 한씨 가문으로 진서준을 협박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진서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안 돼요. 전에도 저 때문에 김문호 그 자식한테 잡혀가서 며칠 고생했는데요. 이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 거예요. 같이 가요.”그 말을 듣자 한보영은 감동했다.“제가 사연이를 안고 조수석에 앉을 테니 셋은 뒷좌석에 앉아요.”진서준이 제안했다. 그와 허사연은 커플이니 껴안고 앉아도 진서라는 별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교통경찰을 만나면 일이 번거로워질 것이다.허사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게 합시다. 그럼 바꿔가면서 운전하세요. 수고해 줘요.”허윤진은 진서준을 매섭게 째려보았다.“우리 언니를 안고 싶어서 그러는 거죠?”그러자 진서준은 피식 웃었다.“안고 싶으면 안 돼요? 내 여친인데? 그냥 빨리 차에 타세요.”진서준은 먼저 조수석에 앉고 허사연을 자기 품에 안았다.두 사람의 다정
펑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검은 그림자는 부딪혀 5.6미터나 날아갔다. 전조등 앞에 눈에 거슬리는 빨간 핏자국이 묻었다.잠이 슬슬 내려오던 허윤진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형부! 저 사람을 박은 것 같아요.”당황한 허윤진은 진서준을 깨웠다. 그러자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잠에서 깨어났다.“당황하지 마. 내가 내려가 볼게.”진서준은 눈을 뜨더니 허윤진을 달랬다. 차 문을 열자 진서준은 쏜살같이 차 앞으로 달려갔다. 그는 쓰레기를 줍는 노인과 부딪힌 줄 알았다. 새벽에 혼자 걸어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하지만 진서준은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한 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화려한 옷차림을 한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녀의 옷차림으로 봐도 평범한 여자가 아닌 것 같았다.“서준 씨, 어때요? 살아 있어요?”허사연 등인은 달려와 다급하게 물었다. 한밤중에 무고한 행인과 부딪쳐서 그녀들은 속이 타들어 갔다.“잠시만. 한 번 볼게.”진서준은 웅크리고 앉아 그 여자의 맥을 짚었다. 쓰러져 있는 사람이 미녀라는 것을 확인하자 허윤진은 갑자기 경계했다.이 여자가 깨어나면 진서준에게 반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러면 경쟁자가 한 명 더 생기는 셈이니 말이다.여자의 맥을 짚은 후 진서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 차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아직 숨은 붙어 있어요.”진서준의 말을 듣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윤진아, 좀 쉬어. 내가 운전할게.”허사연이 말했다.“응? 그럼 난 어디 앉아야 해?”허윤진의 얼굴은 갑자기 빨개졌다. 그녀는 진서준의 품에 안기는 이날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전에 다쳐서 진서준의 품에 안겼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었다.마치 하늘이 무너져도 이렇지 않은 듯한 편안함과 행복감이었다.“뒤에 앉아. 이렇게 다쳤는데 이 여자를 뒤에 앉힐 수는 없잖아.”허사연이 말했다. 날이 어두워 허사연은 허윤진의 표정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허윤진의 기분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다시 우울해졌다.“그런데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