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약당 사람들은 변희영을 이렇게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다.“쓸데없는 말이 좀 많네.”말이 끝나자 진서준은 갑자기 사라졌다. 순간 황윤준 등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그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공포를 느꼈다. 죽어가는 자기 모습이 상상이 될 만큼 한 공포였다.황윤준은 무의식적으로 체내의 강기를 동원하여 자신의 온몸을 감쌌다. 하지만 진서준은 그에게 손을 쓰지 않고 먼저 다른 두 명을 죽였다.우드득...두 명의 부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 눈을 부릅뜨더니 목이 부러진 채 죽었다.“개자식, 덤벼!”황윤준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발에 힘을 주어 쿵 내딛더니 단단한 도로 바닥에 5cm의 깊은 발자국이 생겼다. 그리고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기면서 발자국을 따라 사방으로 퍼졌다.황윤준이 주먹을 휘두르자 하늘을 찌르는 듯한 굉음이 들렸고 공기마저 산산조각이 나는 듯했다.“조심하세요.”놀란 변희영은 얼른 큰 소리로 진서준에게 귀띔했다. 하지만 허사연은 담담하게 위로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일개 종사가 제 남친을 다치게 할 순 없죠.”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허사연도 속으로 긴장했다. 낮에 진서준은 김씨 가문과 서씨 가문 연회에서 치열한 싸움을 겪었다. 비록 반날 쉬었다지만 완전히 회복됐는지는 미지수이다.진서준은 날아오는 주먹을 보면서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고 모든 영기를 손끝에 모으자 마치 날카로운 검처럼 무서운 기세를 뿜어냈다.황윤준은 이 모습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진서준이 너무 날뛴다고 생각했다.“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이젠 죽을 때가 됐네.”황윤준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쿵...진서준의 손가락과 황윤준의 주먹이 부딪히자 주먹을 감싸고 있던 강기는 마치 거울처럼 부서지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황윤주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설마 이 녀석이 나보다 실력이 더 강하단 말인가? 말도 안 돼!’황윤준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진서준은 왼손으로 황윤준을 공격했다.쿵...황윤준
차는 시동을 걸고 다시 출발했다. 이젠 다들 전혀 졸리지 않았다. 김연아와 함께 뒷줄에 앉아 있던 변희영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쳐다봤다.“당신이 육장로를 죽인 진서준이예요? 저는 40, 50대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그러자 진서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제 얘기는 그만하고 당신은 누군데요? 성약당 사람들이 왜 당신을 죽이려고 해요?”진서준은 방금 황윤준이 한 말이 귀에 거슬렸다.늙은이가 변희영에게 많은 걸 가르쳐줬다고 했었으니 그 늙은이는 분명 변희영의 할아버지일 것이다.그러자 변희영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사실 저도 성약당 사람이에요.”그 말을 듣자 모두 변희영을 쳐다보았다.“하지만 저는 아까 나쁜 놈들이랑 달라요.”“맥을 끊지 말고 한 번에 다 말하는 게 좋을 거예요. 제가 도와줄 수도 있으니.”진서준은 성약당 사람들이 한 짓에 대해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하마터면 그의 어머니를 죽일 뻔했고 성약당 수하들은 심지어 가짜 약을 팔았다.그들은 잡히고도 자기가 성약당 사람이라고 협박하며 큰소리를 쳤다.진서준이 보기에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 성약당은 사실 온갖 나쁜 짓을 다 하는 도적 소굴일 것 같았다.변희영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더니 천천히 말했다.“제 할아버지는 지금의 성약당 당주 변지산이에요.”변희영이 말했다.“네? 성약당 당주 손녀라고요? 그런데 왜 성약당 사람들이 당신을 잡아요? 할아버지의 명령인가요?”허윤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순간 막장 드라마의 여러 장면이 머릿속에 떠 올랐다.“아니요. 할아버지는 5년 전 외출하셨다가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할아버지가 떠나기 전 성약당의 모든 경영권을 육장로님에게 넘기셨거든요. 처음에는 다들 열심히 사람을 구하고 약을 만들고 팔았죠. 하지만 점점 돈에 눈이 멀면서 성약당을 망쳤어요. 그리고 금지약물을 만들기 위해 살아있는 사람을 잡아다가 약으로 쓰기도 했죠. 저는 그들의 범행을 모두 기록했고 할아버지가 돌아오면 다 일러바치려고 했어요. 하지만
사람을 약재로 쓴다는 말을 듣자 진서준의 눈에는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이런 사람은 죽여도 마땅하다. 심지어 인간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4품 대종사... 좀 까다롭긴 하지만 저도 조력자가 있어서 뭐...”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었다.강주는 서남도의 중심 도시이다. 중심 도시에는 자연히 호국사가 있을 것이다. 진서준은 그때 국안부의 호국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변희영은 진서준의 조력자가 누구인지 몰라서 물었다.“조력자는 사람이 혹시 유씨 가문 사람이에요?”그러자 진서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유씨 가문?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데요.”변희영은 눈을 부릅뜨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진서준을 바라봤다.“종사라는 분이 어떻게 서남 유씨 가문을 몰라요? 유씨 가문은 서남 제일 가문이고 우리 성약당과도 친분이 깊어요. 하지만 할아버지가 떠난 후 왕래가 뜸해졌죠.”변희영은 유씨 가문과 협력할 수만 있다면 성약당의 나쁜 사람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기기도 전에 그들에게 잡혔다.“제 조력자는 유씨 가문 사람들이 아닙니다.”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명문가일수록 더 무정하기 마련이다. 김연아의 일 때문에 진서준은 제일 가문에 대해 아무런 호감이 없어졌다.“그럼 내일에 유씨 저택으로 갈까요? 유씨 가문에서 우리를 도와줄 수도 있는데.”변희영은 격동된 어조로 말했다.“아니요. 필요 없어요.”진서준은 차갑게 대답했다. 그러자 변희영은 잠시 멍해졌다. 그녀는 진서준의 태도가 변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서준 씨 혹시 전에 유씨 가문과 갈등이 있었어요?”“아니요. 그저 대가문들에 대해 호감이 없어서요.”“아, 그래요...”변희영은 마음속으로 유씨 가문의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유씨 가문과 변지산은 관계가 좋은 편이다. 변희영도 지금의 유씨 가문 가주를 알고 있어 유씨 가문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들은 또 30분을 달려서야 강주에 도착했다. 그리고 고급 호텔을 찾아 재빨리 샤워하고 바로
“서준 씨, 기다려. 늦어도 내일까지는 서준 씨를 찾으러 갈게. 살아 있을 때 함께 하지 못했다면 죽어서 같이 부부가 되면 되지. 주변에 여자가 많은 건 알겠지만 귀신이 된 후에 이리저리 매력을 흘리고 다니면 안 돼. 두세 명 정도는 이해해 줄게. 더 많으면 안 돼...”서지은은 손에 들고 있는 사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것은 그녀가 운대산에서 몰래 찍은 진서준의 옆모습이었다.이때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서지은은 얼른 사진을 거두고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지은아!”서광문은 창백해진 서지은의 얼굴을 보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왜 오셨어요?”서지은은 차갑게 물었다. 그녀의 어투에 서광문은 무척 실망했다. 애지중지 키운 딸이 만난 지 보름 남짓 된 남자 때문에 자기를 이토록 차갑게 대하다니.서광문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지은아, 진서준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러 왔어.”서광문은 긴 숨을 들이마시며 천천히 말했다.“살아 있다고요? 저를 속이지 마세요. 결혼식장에 그렇게 많은 대종사가 있었는데 서준 씨가 어떻게 살아남아요?”서지은은 서광문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녀는 서광문이 자기가 바보짓을 할까 봐 속이려고 하는 줄 알았다.“속인 거 아니야. 진서준은 둘째 삼촌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으나 마지막 위급한 상황에서 전송 대진을 쓰며 김연아와 함께 도망쳤어.”서광문은 황급히 설명했다.“아빠, 이젠 소설을 쓰시네요. 제가 바보 같아요?”‘전송 대진? 차라리 블랙홀이라고 하지 그래요?’“지은아, 정말 사실이야. 만약 믿지 못하면 내가 이한석을 불러올게. 네가 직접 물어봐.”서강문은 너무 답답했다. 어떻게 아버지로서 할 역할을 해야 할지 이젠 막막했다.“그럼 한석 삼촌을 불러오세요. 제가 물어볼게요.”서지은이 말했다.“알았어. 지금 부를게.”서광문은 직접 이한석을 불러왔다.“한석 삼촌, 서준 씨는 죽었어요?”서지은은 이한석을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아니.”그러자 이한석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서지
“나중에 다시 오면 절대 절 제지하면 안 돼요.”서지은이 정색해서 말하자 서광문이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성약당.두 번째로 파견한 사람이 황윤준을 찾았을 때 그는 이미 기절해 있었고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깨났다.“황윤준, 너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닭 붙들 힘도 없는 여자도 못 잡아?”사장로가 병상 옆에 서서 황윤준을 나무라자 황윤준이 창백한 얼굴로 급히 설명했다.“사장로님, 제 말 먼저 들어보세요. 변희영을 거의 잡으려고 할 때 진서준이 나타났어요.”진서준의 이름을 듣자마자 사장로는 바로 황윤준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어디서 허튼소리야? 진서준은 중부 남주 사람인데 이곳에 있을 리가 없잖아.”황윤준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남주 사람이 집에 가만히 있지 않고 뭐 하러 서남 지역에 왔지?’“사장로님, 절대 거짓말이 아니에요. 진짜로 진서준을 만났어요. 그리고 그 자식이 자기 입으로 진서준이라고 승인했어요.”황윤준이 울상이 되어 설명하자 사장로는 거짓말인 것 같지 않아 콧방귀를 뀌면서 잡았던 멱살을 풀어줬다.“전에 진서준을 손 안 본 건 나와 사형 몇이 새로운 약을 만들기 위해서였어. 끝나서 남주로 찾으러 가려던 참인데 제 발로 올 줄이야.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식.”사장로의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황윤준에게 분부했다.“그 자식이 지금 어디 묵고 있는지 당장 알아봐. 내가 직접 다섯째 동생을 위해 복수할 거야.”그 말에 황윤준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가려면 세 명의 장로님과 함께 가세요. 진서준의 실력이 아주 강해요. 혼자 가시면 아마...”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장로가 버럭 화를 내며 눈이 퉁방울만 해졌다.“네 뜻은 내 실력이 진서준보다 못하는 거야?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어? 난 지금 대종사야. 종사 나부랭이를 죽이는 건 개미 한 마리 죽이는 것보다 쉬워.”말이 끝나자 사장로의 체내에서 선천강기가 폭발하더니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뒤집어지는 듯한 기세가 몸에서 뿜어져나왔다.순간 황윤준의 이마에서 식은땀
허윤진은 주변에 미인이 이렇게 많은데도 진서준이 밖에서 다른 여자들과 애매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뜻이었다.이 말을 허사연이 하면 문제가 없는데 허윤진이 말하니 이상하게 들렸다.처제가 될 허윤진도 진서준을 좋아한단 말인가?정작 허사연은 아무 생각도 없이 진서준을 흘기며 말했다.“우리는 서준 씨처럼 밖에 애인을 두고 그러지 않아요.”진서준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사연아. 그건 너의 착각이야. 나는 한 번도 밖에서 여자를 찾은 적이 없어. 나의 첫 경험을 너를 위해 지금까지 남겨두고 있어.”진서준의 말이 사실이긴 하지만 허사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무슨 헛소리를 하고 그래요.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진서준이 허허 웃으며 호텔 밖으로 나갔다.어제밤 자기 전에 류재훈으로부터 강주 호국사의 위치와 이름을 알아냈다.유기태, 2품 대종사, 베스트 랭킹 18위.실력으로 치면 그다지 강하지는 않았다.국안부에서 그를 이곳으로 파견한 이유는 유기태가 유씨 가족이기 때문이다.하여 유기태가 강주를 진수한 지 오래됐지만 누구도 감히 이곳에서 행패를 부리지 못했다.진서준은 차를 허사연 일행이 사용하라고 남겨주고 택시를 타고 유기태 만나러 갔다.유씨 가문 장원은 영남산에 있었고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강이 흐르는 풍수가 좋은 곳이었다.진서준이 위치를 말하자 택시 기사가 놀라면서 말했다.“나이도 젊은데 부자인가 봐요. 영남산에 다 살고.”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 만나러 가요.”“그래도 아주 대단하네요. 그곳에 사는 지인이 있다는 건 젊은이의 신분도 보통이 아니란 걸 의미하잖아요.”“우리 아들놈은 대학 졸업하고 집에서 게임만 하고 취직하라고 해도 말도 안 듣고 내 등만 처먹고 있네요.”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는지 기사는 울적해 있었다.진서준은 남의 가정사를 뭐라고 할 입장이 아니라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내가 만일 부자집에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럼 살림살이 걱정할 필요 없고
아직 시내를 못 벗어났기에 진서준은 기사더러 멈추지 말고 계속 운전하라고 했다.좌, 우, 전, 후의 차도 택시를 멈추게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시내를 벗어나 차가 그다지 많지 않은 도로에 도착하자 좌, 우 양측의 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더니 차를 가로 멈춰 도로를 막았다.이 광경을 보고 기사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정신 나간 거 아니야?” 기사가 입으로는 욕하면서도 손은 호주머니를 향하더니 담배 한갑을 꺼냈다.“오늘 몇 푼 벌지도 못했는데 되려 깨지게 생겼어.”진서준이 그 모습을 보더니 기사를 향해 말했다.“선생님은 계속 가시면 돼요. 절 찾으러 온 거예요.”“젊은이 찾으러 온 사람들이에요?”기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자기가 욕해서 상대가 이러는 줄 알았다.“차비 드릴게요.”진서준이 만원권 한 장을 꺼내 기사에게 넘겨주고 차에서 내렸다.택시 기사는 돈을 받자마자 전속으로 도망쳤다.딱 봐도 자기가 상대할 수 없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진서준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뒤에 앉았던 사장로 일행도 따라 내렸다.“진서준, 네가 감히 강주로 와? 죽고 싶어 환장했어?”사장로가 죽일 듯이 진서준을 노려보았고 온몸에서는 강렬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죽고 싶은 사람은 당신이 아닌가요?”진서준이 조용히 말했다.“왕개미가 새끼 개미를 한 무리 거느리고 나를 죽일 수 있겠어요?”진서준이 자기를 개미라고 하자 사장로가 버럭 화를 냈다.“내가 보기에는 너야말로 개미 새끼에 불과해. 내 동생을 죽이고 어제저녁에는 또 우리 좋은 일을 망쳐버렸으니 절대 널 쉽게 죽이지 않을 거야.”“올 때 여자들도 데리고 왔던데 네가 보는 데서 여자들을 괴롭혀 죽일 거야.”말하면서 욕정이 꿈틀대는지 사장로가 나중에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흉측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이 말을 뱉는 순간 사장로는 이미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다.자기 여자를 모욕한다면 하느님이라도 용서할 수 없다.“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럼 괴롭힘을 당
우르릉...무서운 기세가 진서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고 강대한 압박감에 사장로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변해버렸다.“이럴 수 없어. 이 자식의 강기가 왜 이렇게 강해? 이 자식도 대종사란 말인가? 아니야. 이제 몇 살이나 됐다고. 20대 초반밖에 안 된 것 같은데.”사장로와 같이 온 청년들이 놀라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이 자식이 쓸모없는 놈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이렇게 강해?’사장로의 얼굴에 드러난 공포감을 보고 진서준이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날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가만히 서 있어요?”사장로의 목젖이 울렁이더니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너무 거만하지 마. 여긴 강주이고 성약당의 구역이야. 이곳에 왔으면 살아서 떠나려는 생각을 하지도 마.”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장로는 속으로 오늘 먼저 돌아가고 큰 사형과 둘째 사형이 출관하면 함께 와서 진서준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하여 말하는 한편 뒷걸음질을 쳤다.“꼴을 보니 겁을 먹은 것 같은데 감히 못 덤비겠으면 날 원망하지 마요.”진서준이 한 발짝씩 앞으로 다가가면서 사장로에게 도망갈 기회를 주지 않았다.바로 이때 뒤에서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앞에서 뭐 해? 왜 길을 막고 있어?”까만 아우디 차 기사가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진서준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입 닥쳐. 길이 막혔으니 얼른 꺼져.”사장로는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면서 소리를 질렀다.그 말에 아우디 기사도 화가 났는지 바로 차에서 내렸다.“이 차에 누가 앉은 줄 알아?”기사는 팔짱을 끼고 사장로를 오만하게 바라보면서 눈에는 온통 비웃음으로 가득했다.“누구든 상관없어. 길이 막혔으니 다른 데로 가.”사장로는 진서준을 떼어놓을 방법을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이. 차에 유씨 가문의 셋째 어르신이 타고 계셔. 너 따위가 감히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려? 확 찢어버릴라.”유씨 가문 셋째 어르신이라는 말에 사장로의 얼굴이 순간 찬란하게 빛났다.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이 있어.강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