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사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푹 숙였다.‘설마 또 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당신이 너무 보고 싶었어.”진서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허사연을 끌어안더니 손으로 몸매 라인을 따라 쓸어내렸다. 온천에서 참았던 욕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던 것이다.허사연은 배 아래로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졌고 귀까지 빨갛게 물들었다.“대낮에 하기 싫은데... 저녁에 다시 얘기해요.”허사연은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라서 눈빛을 피했고 흥분한 진서준은 당장이라도 눈앞의 여자를 덮치고 싶었다.“괜찮아, 각자 방에 있는데 뭐 어때.”진서준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사연 씨, 더는 못 참겠어.”허사연은 진서준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고 입술을 깨물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럼 빨리 해야 해요. 윤진이가 알게 되면 큰일 난다고요.”진서준은 허사연을 와락 안고는 다급히 방문을 닫았다.“진서준 이 나쁜 놈, 온천에서 내 몸도 봤으면서 왜 언니랑 또 붙어있는 거야!”방에서 쉬고 있던 허윤진이 씩씩대며 인형한테 화풀이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진서준을 찾으러 가려고 방에서 나왔는데 마침 두 사람이 진서준 방문 앞에서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봤던 것이다. 허사연과 진서준이 꼭 붙어있는 장면은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았고 아끼는 인형을 빼앗긴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예전의 허윤진이었다면 애써 괜찮은 척했겠지만 진서준과 보운산에 다녀온 뒤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진서준한테 완전히 빠져들었고 목숨까지 바칠 수 있을 정도로 사랑했다.하지만 허윤진은 허사연의 친동생이기에 진서준과 이어질 수 없었다. 언니의 남자를 유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나 어떡해, 정말 어떡하냐고!”허윤진은 진서준 곁에 꼭 붙어있고 싶었지만 친언니의 남자를 뺏을 수 없다는 생각에 몹시 괴로워했다.“두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허윤진과 진서준의 첫 만남에서 진서준이 무례한 말을 했었다.“언니한테 물어봐야겠어.”진서준과 허사연은 점심시
순간 정적이 흘렀고 모든 시선이 허윤진에게 집중되었다. 밥을 먹고 있던 허윤진도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고개를 들었다.“왜 그런 눈빛으로 보세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닌 것 같은데...”허윤진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허사연이 미간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서 그래.”진서준은 허윤진이 좋아하는 남자가 누군지 궁금했고 허윤진이 다른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언짢았다. 이유 모를 집착과 소유욕은 진서준을 끊임없이 괴롭혔다.진서준이 좋아하는 사람은 허사연뿐인데 왜 허윤진마저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다 저만 보고 있어서 그런지 너무 부끄러워요!”허윤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자 허사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밥 먹은 뒤에 나한테만 알려줘. 우리 윤진이도 다 컸네, 좋아하는 사람도 생기고 말이야.”허윤진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언니, 난 어릴 적부터 남자를 좋아했지, 여자한테 관심 없다고!”“어머, 그랬어?”허윤진의 말을 듣고는 모두 깔깔 웃어댔고 답답했던 공기가 삽시에 유쾌한 분위기로 뒤바뀌었다. 식사를 마친 뒤, 진서준이 그릇과 수저를 치웠다.“오빠는 쉬고 있어, 내가 할게.”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우리 둘이 같이하면 더 빠를 거야.”“좋아!”진서라는 신이 나서 진서준과 함께 주방으로 향했다. 한편, 허사연은 허윤진을 데리고 별장 앞마당으로 나왔다.“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려줘.”허사연이 묻자 허윤진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언니, 내 말 듣고 화내면 안 돼.”방에서 한참 동안 고민했던 허윤진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더 참다가는 미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내가 왜 화를 내겠어.”허사연이 미소를 짓자 허윤진은 심호흡하고는 말했다.“그럼 언니한테 솔직하게 말할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진서준 씨야.”허사연한테 알려주면 뺨을 맞을까 봐 걱정했던 허윤진은 말을 마친 뒤 두 눈을 질끈 감
허윤진은 제일 궁금한 점에 관해 물었다.“그럼 언니는 화도 안 나고 질투도 안 나?”허윤진은 진서준과 허사연이 꼭 붙어있을 때마다 속상했었는데, 친동생이 자신의 남자 친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허사연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처음에는 그랬었지만 지금은 괜찮아.”허사연이 미소를 짓자 허윤진은 깜짝 놀라면서 두 눈을 크게 떴다.“뭐라고?”‘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지?’허사연은 농담 삼아 지난 일을 꺼냈다.“진서준이 우리 아빠를 구해줬을 때, 우리 두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고 했었잖아.”“아니, 그 말은 웃어넘겼잖아.”이때 허윤진이 허사연의 손을 잡더니 물었다.“언니, 설마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어?”친자매가 한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면 무조건 소문이 퍼져서 난리 날 것이다.“나도 그저 넘기려고 했었는데, 네가 서준 씨를 향한 마음이 보이니까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어. 네가 다른 남자랑 결혼하면 괴롭힘당할까 봐 걱정했었는데 서준 씨랑 결혼하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허윤진은 허사연의 말을 듣더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친자매가 한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받아들인 허사연이 대단해 보였다.“윤진아, 서준 씨랑 지내보면서 너도 알겠지만 일반인은 아니잖아. 앞으로 서준 씨 곁에 다른 여자들이 몰려들 거야. 강한 남자한테는 내조를 잘하는 여자가 한두 명이 아닐 테니 서준 씨와 끝까지 함께하려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허사연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우리 둘이 힘을 합쳐서 서준 씨가 다른 여자를 봐도 흥미가 생기지 않게 노력해야 해. 우리는 친자매니까 다른 여자에 비하면 유리하다고 볼 수 있어.”허윤진은 안절부절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언니, 그럼 앞으로 형부 옆에 다른 여자가 함께할 수 있다는 뜻이야?”허사연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지금도 서준 씨 옆에 여러 여자가 붙어있잖아. 김연아, 한보영, 유정 그리고 서씨 가문의 그 여자까지...”허윤진은 주먹을 꽉 쥐고는 씩씩댔다.“우리 두 사람으로도 부족
남해 항공 회사는 규모가 작은 편이긴 했지만 전 세계 500대 기업 순위에 들었다. 그런 회사를 단시간 내에 망하게 할 사람이라면 손꼽히는 재벌가의 사람일 것이다.그 남자의 건방진 말에 사람들은 수군거렸다.“비행기를 타는데 선글라스를 왜 끼는 거야? 너무 구려.”“조용히 해. 남해 항공 회사를 망하게 손 쓰겠다잖아.”“그렇게 돈이 많으면 전용 비행기를 샀겠지. 그럴 돈도 없으면서 허세 부리네.”구경하던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다. 재벌가 사람들은 일반 비행기의 비즈니스석 대신 전용 비행기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이런 소란을 피울 리가 없었다.“뻔하지, 서비스업 직원들한테만 화풀이하는 놈은 인생 글러 먹었어.”허윤진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소리에 자존심이 상한 그 남자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닥쳐! 너희들 내가 누군 줄 알고 함부로 입을 놀려? 내 정체를 알게 되면 당장 무릎부터 꿇으려 할 거야.”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고객님, 진정하세요. 곧 이륙 시간이라 탑승구를 닫아야 하니 이코노미석이 불편하시다면 내일 항공편으로 바꿔드릴게요.”여승무원도 점점 인내심을 잃어갔다.“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그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자 뭇사람들은 깜짝 놀랐다.“어머, 오인혁이잖아!”“이상한 랩으로 갑자기 인기가 많아진 그 사람이네.”“곁에 있는 여자가 오인혁 여자 친구인가?”오인혁을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어떤 여성 팬들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오인혁 곁으로 다가갔다. 진서준은 평소에 영화와 예능을 즐겨보지 않았기에 그 사람이 오인혁이든 육인혁이든 신경 쓰지 않았다.주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오인혁은 전형적인 랩과는 다른 스타일의 랩으로 주목받았던 것 같았다. 이때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유명한 연예인이야?”“네, 국내에서 알아주는 톱스타죠.”허사연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회사에서 출시한 신제품 홍보대사로
“그깟 보상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 내가 반 시간 내에 쓴 신곡을 발매해도 당신 회사 한 달 수입 정도는 번다고!”오인혁 곁에 있던 여자가 나서서 말렸다.“인혁아, 진정해. 두 시간 정도만 참으면 서울에 도착할 거야.”진서준은 귀에 익은 목소리에 뒤돌아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어쩐지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 같다 했어.”“아는 사람이에요? 누군데요?”허사연이 묻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사연 씨도 만난 적 있는 사람이야. 저 여자 조해영이잖아.”진서준과 조해영은 서울에서 큰 충돌이 있었던 사이기에 김연아도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정말 조해영이잖아? 저 여자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오인혁이랑 가까운 사이인가 보네.”김연아가 조성우 부부와 친하게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조해영과도 만나게 되었다. 김연아는 조해영이 제멋대로인 사람이라고 느꼈다. 만약 조성우가 서울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면 조해영은 진작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일행과 얘기를 나눌 때, 조해영과 오인혁이 걸어들어오더니 진서준 바로 옆에 있는 자리에 앉았고 조해영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진서준과 시선이 마주쳤다.“진서준 씨, 여기서 다 뵙네요.”조해영은 깜짝 놀라면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 이창훈과 고양시에 갔을 때 진서준과 탁현수가 겨루는 모습을 보고는 진서준한테 복수하려던 계획을 접어야만 했다.진서준은 너무나도 강해서 조해영이 평생을 다 바쳐 노력해도 이길 수 없었다. 진서준은 그날에 조해영이 온 줄 몰랐기에 서울에서 만났을 때의 기억만 떠올랐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래서 뭐요?”오인혁은 진서준의 말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조해영은 오인혁의 여자 친구이기에 다른 사람이 조해영을 무시하는 건 오인혁을 무시하는 것과 같았다.“해영아, 네 친구야?”조해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아니, 우리 큰아버지 친구야. 예전에 한 번 만나 뵌 적이 있었을 뿐이야.”조해영은 진서준을 두려워했기에 오인혁과 진서준 사이에 충돌이 생기는 것을 막고
오인혁은 진서준이 조해영에게 사과할 때까지 그만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만약 두 사람이 계속 소란을 피운다면 비행기 내의 다른 승객의 불만을 일으킬 수 있기에 여승무원이 직접 나섰다. 그런데 여승무원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오인혁이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목청을 높였다.“나 오늘 기분 정말 뭐 같으니까 당장 내 여자 친구한테 사과해! 너 오늘 잘못 걸렸어.”진서준은 오인혁의 말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이쯤에서 그만해. 비행기에서 던져버리기 전에 그만하라고.”비행기는 이미 이륙한 상태였고 상공 수천 미터에서 오인혁을 던져버리면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하지만 오인혁은 진서준의 말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고 계속해서 도발했다.“어디 한 번 해보든지, 네까짓 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진서준의 실력을 아는 조해영은 식은땀이 났다. 진서준은 한 손으로도 오인혁을 들 수 있기에 식은 죽 먹기였다.“서준 씨, 저런 사람은 상대하지 않는 게 나아요.”허사연은 일이 크게 번지는 것을 막고 싶었다. 만약 누군가 인터넷에 이 광경을 찍어 올린다면 오인혁의 순정 팬들이 진서준을 모욕할 것이고 극성팬들은 진서준의 정보를 캐내 직접 찾아올 수도 있었다. 진서준은 누가 찾아오든 두렵지 않았지만 평온한 삶에 영향을 줄 것이 뻔했다.허사연의 말을 들은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을 감고는 오인혁을 무시했다. 이때 허사연과 눈이 마주친 오인혁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오인혁이 봤던 연예인 중에 허사연처럼 이쁜 여자가 없었다고 느꼈는지 눈을 떼지 못했다.오인혁은 허사연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부담스러운 시선이 느껴진 허사연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저... 안녕하세요.”오인혁은 조해영이 곁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허사연한테 먼저 말을 걸었다. 하지만 허사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진서준의 품에 안겨있었다. 조해영은 오인혁의 모습에 아주 실망한 것 같았다.“인혁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조해영의 말에 오인혁이 미소를 지었다.“저놈 미모에 속지 말라
조해영은 화가 솟구쳐 올랐다.“오인혁, 내가 경고하는데 그 사람 건드리면 정말 후회할 거야.”하지만 오인혁은 허사연한테 푹 빠져서 조해영이 뭐라고 하는지 듣지 않았다. 오인혁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건 톱스타여서일 뿐만 아니라 회사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회사의 대표는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이라 레벨부터 남달랐다. 오인혁이 근 2년 이래 회사에 큰 수익을 가져다주지 않았다면 대표를 만날 자격조차 없었다. 여론이든 생활 속의 문제든 대표 한마디면 모두 해결할 수 있었기에 대표의 권세를 믿는 오인혁은 건방지게 행동했다. 두 시간 뒤, 비행기는 서울 공항에서 착륙했고 진서준과 일행들은 비행기에서 내렸다. 진서준 곁에 앉은 여자들이 허사연과 견줄 만큼 예뻤고 깜짝 놀란 오인혁은 입을 다물지 못하더니 동공이 흔들렸다.‘저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한둘이 아니라고? 두 사람은 친자매인 것 같은데...”예쁜 여자들을 물색하고 다니는 동안 처음 이렇게 많은 여자한테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린 오인혁은 매니저한테 전화를 걸었다.“인혁아, 너 어디 간 거야?”매니저는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고 오인혁은 다급히 말했다.“나 지금 서울에 왔어. 회사 인맥 중에 서울 사람 있는지 알아봐.”“남주성에서 서울로 상경해서 자리 잡은 사람은 있는 것 같은데...”매니저의 질문에 오인혁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으니까 다 알아봐!”“그래, 조금 있다가 다시 연락할게.”오인혁이 전화를 끊은 뒤, 조해영은 팔짱을 끼고는 물었다.“너 그 여자를 만나려고 이러는 거지?”오인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조해영의 허리를 감쌌다.“아니, 내가 어떻게 우리 해영이를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나겠어. 나한테는 네가 전부고 너밖에 없어.”오인혁의 달콤한 말에 넘어간 조해영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흥, 허사연을 쳐다보는 눈에서 꿀이 떨어지던데?”오인혁은 허사연의 이름을 듣고는 바로 기억했다.“시간도 늦었으니 얼른 호텔로 가자.”오인혁은 느긋하게 일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허사
강성철은 모르는 번호인 것을 보고는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를 질렀다.“미친놈이 감히 주제도 모르고 전화를 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죽여버릴 줄 알아!”오인혁은 강성철의 난폭한 모습에 피식 웃었다.“안녕하세요, 강성철 씨.”“내 이름은 어떻게 안 거야? 넌 누구지?”강성철의 질문에 오인혁이 재빨리 대답했다.“저는 태하 영화 제작사 소속 연예인 오인혁이에요.”강성철은 들어본 듯한 제작사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오인혁이 말을 이었다.“회사는 경성에 있고 진 대표님의 소개로 연락드렸어요.”강성철은 두 눈을 크게 뜨더니 애인을 뒤로하고 공손한 자세로 전화를 들었다.“진 대표님의 사람에게 제가 큰 실수를 저질렀네요.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전화주신 거죠?”강성철은 ‘진 대표’라는 사람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공손하게 말했다. 태하 영화 제작사는 진성 그룹의 산하 회사였고 진성 그룹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진씨 가문의 회사였다. 오래전에 ‘진 대표’와 만난 적이 있었지만 지하 황제 강성철도 무시당했었다.강성철은 서울에서 영향력이 컸지만 서울을 벗어나면 일반인과 다름없었다. 진서준의 수하로 있으면서 지위가 높아졌으나 한국 4개 가문의 진씨 가문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했다.이때 오인혁이 입을 열었다.“저희 대표님께서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해서요.”강성철은 진씨 가문 사람의 부탁을 받을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여겼기에 무척 흥분했다.“진 대표님 부탁이라면 제 한 몸 바칠 테니 말만 하세요.”강성철이 가슴팍을 내리치며 말했다.“여자를 한 명 납치하면 돼요.”“누군데요?”“허사연이라는 여자인데, 서울 재벌가 아가씨래요.”오인혁의 말에 강성철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미쳤어... 감히 진 마스터님의 여자 친구 허사연을 납치하라고? 이건 나더러 죽으라는 말이잖아.’“진 대표님의 뜻인가요?”강성철은 손이 덜덜 떨렸다.“그럼요, 아니라면 제가 이 밤에 전화드릴 리가 없잖아요. 저는 대표님 말씀을 전달했으니 최대한 빨리해 주세요.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