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사연이 초조한 마음으로 물었다.“별일 아니야.”진서준이 웃으며 답했다.“오른팔이 부러졌는데 어떻게 별일 아닐 수 있어요!”허윤진은 진서준의 늘어진 오른팔을 보고 순간 눈시울을 붉혔다.“뭐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라 얼른 진서준의 오른팔을 잡았다.잡고 나서 보니 허사연도 진서준의 오른팔이 완전히 부러진 것을 알았다.“서준 씨, 이게 무슨 일이에요? 오른팔은 왜 이래요?”진서준이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진 허사연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팔이 부러진 사람이 오히려 자신이었으면 했다.“부러진 건 맞지만 걱정하지 마. 내일 아침이면 회복할 거야.”진서준이 웃으며 위로했다.“거짓말하는 거 아니죠?”허사연은 부러진 뼈가 다음날 자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당연히 아니지. 일부러 이한석이 부러뜨리게 한 거야. 부서뜨린 후 재조립. 이제 내 몸은 극에 달했어. 더 강해지려면 영약, 영과를 먹든지 아니면 이런 방법을 쓰든지 해야 해.”진서준이 설명했다.“됐어. 수련하러 가자. 못 믿겠으면 내일 아침에 다시 봐봐.”지금의 진서준에게 시간은 금이었다.연말 봉호전에서 그는 전국 각지의 천교를 만날 것이었다.비록 선술을 수련한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실력으로 13연승을 할 수는 없었다.진서준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허사연 자매는 더 이상 팔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평곡으로 돌아온 진서준은 가부좌를 틀고 성약곡에서 제련한 단약을 꺼냈다.“사연아, 윤진 씨, 이리 와봐.”“왜요?”진서준 앞으로 온 허사연 자매가 그의 손에 들린 단약을 발견했다.“이건 성약곡에서 제련한 단약인데 두 사람은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많이 먹으면 안 되고 차근차근 천천히 섭취해야 해.”진서준이 말했다.“네. 알아요!”실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강력한 단약을 복용하면 몸이 견디지 못하고 심지어 터질 수도 있었다.진서준도 허사연 자매의 실력을 빨리 끌어올리고 싶었지만 절대 서두르면 안 됐다.“두 알 줄 테니 한 알은 오늘 밤에 복용하고 수련 시작해. 다른
남조, 박씨 가문.박만년은 그날 밤, 죽지 않았지만, 목숨을 반쯤 잃은 거랑 다름없었다.진서준의 혈용권이 그의 두 팔을 부러뜨렸고 단전에도 매우 큰 손상을 입었다.살려고 하는 강한 의지만 아니었다면 박만년은 정말 그곳에서 죽었을 것이었다.박씨 가문에 돌아온 후, 박만년은 스무 살은 더 늙어 보였다.생기를 잃은 박만년은 마치 곧 흙에 묻힐 노인 같았다.“시윤이는 아직 안 왔어?”“어르신, 오는 길에 있다고 하셨으니 곧 도착할 겁니다.”“서두르라고 해. 난 이제 시일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박만년은 죽을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았다.오늘을 못 버틸 수도 있었다.“어르신, 별일 없으실 겁니다. 백 살까지 장수하실 수 있으십니다.”집사는 박만년의 말에 놀랐다.“됐어. 내 몸은 내가 잘 알아.”박만년이 한숨 쉬며 말했다.며칠 전, 박만년은 정말 죽을 것 같아 바로 사람을 시켜 박시윤을 집으로 호출했다.박시윤은 박만년이 20여 년 전에 입양한 의손자였다.무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는데 박만년조차도 자신의 재능을 부끄러워할 정도였다.열여섯 살 때, 박만년은 박시윤을 북미 초아국의 한 조직에 보내 공부시켰다.몇 년 동안 두 조손은 전화 통화만 했을 뿐이었다.이번에도 박만년이 자신이 죽을 것 같지 않았으면 박시윤을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었다.날이 어두워져서야 집사가 두 사람을 데리고 왔다.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매우 젊어 보였고 다른 한 사람은 서구적인 얼굴을 지녔는데 마흔 살쯤 되어 보였다.젊은 사람이 박만년이 입양한 의손자, 박시윤이었다.다른 서양 중년 남자는 박시윤과 함께 온 일행이었다.“어르신, 시윤 도련님 오셨습니다.”박만년이 눈을 떠보니 아래에 서 있는 박시윤이 보였다.“할아버지.”박시윤이 공손히 불렀다.“시윤아, 이리 와봐. 할아버지가 할 말이 있어.”박만년이 손짓하며 박시윤을 불렀다.박시윤이 얼른 박만년 앞으로 갔다.“널 부른 이유는 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들도 손자도 모두 대한민국의
“어르신!”노집사는 무릎을 꿇고 목 놓아 울었다.박시윤은 별다른 슬픔도 없이 노집사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할아버지 장례 준비하고 박씨 일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와서 할아버지께 상복을 입히세요.”“네!”노집사가 눈물을 닦고 즉시 박씨 가문 다른 사람들에게 부고 사실을 알렸다.그날 밤, 박씨 가문의 직계가 모두 한곳에 모였다.“할아버지께서 임종 전, 박씨 가문을 저한테 맡기셨습니다.”박시윤이 박씨 가문 일가 사람들에게 말했다.“너한테 맡겼다고? 말도 안 돼. 네 신분은 모두가 다 알고 있어.”박만년의 동생 박천년이 말했다.모두가 박시윤은 박만년이 주워 온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박씨 가문을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박씨 가문 가주의 자리는 절대 너에게 줄 수 없다.”박백년도 나서서 박시윤을 반대했다.“반대하셔도 소용없습니다. 할아버지 명입니다.”박시윤의 태도가 강경했다.“웃기지 마! 네가 우리를 속이고 있는지 어떻게 알아? 형님은 내가 아는데 이런 결정을 내리실 분이 아니야! 형님이 살아생전 너를 아꼈으니 그걸 봐서라도 헛소리는 더 책망하지 않겠다. 당장 네 물건 챙겨서 나가!”“어서 꺼져라!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모르는 놈이 가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박천년 형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박시윤이 가주가 되는 것에 동의할 리가 없었다.가주가 되는 사람은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박시윤은 굴러먹다 온 놈이라는 말을 들은 후, 안색이 싸늘해졌고 이내 사람은 자리에서 사라졌다.다시 나타난 곳은 박시윤을 굴러먹다 온 놈이라고 욕한 젊은 사람 앞이었는데 박시윤은 한 손으로 그 사람의 목을 조르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감히 손을 대? 반란이냐! 여기는 박씨 가문이다.”다른 사람들은 상황을 보고 분노했다.박시윤이 손에 잡은 사람을 그대로 내동댕이쳤다. 벽에 부딪힌 사람은 벽에 큰 구멍을 냈다.“뭘 멍하니 서 있어? 얼른 이 짐승 같은 놈을 때려죽여라!”박천
보름 동안의 수련을 거쳐 진서준의 실력은 완전히 달라졌다.축기경까지 정말 마지막 걸음만 남았다.12개의 단약은 아직 3개가 남았는데 진서준이 축기경을 돌파하기에 충분했다.“응? 허사연과 허윤진은 어디 갔지?”진서준은 허사연과 허윤진을 지도해주려 했지만 두 사람은 자리에 없었다.봉호대전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진서준이 축기경을 돌파하는 데는 열흘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시간이 여유로운 진서준은 두 사람을 충분히 지도할 수 있었다.진서준이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지만 허사연 자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영맥을 감지한 그는 그제야 허사연 자매가 목욕하러 갔다는 것을 알았다.10일 넘게 수련했더니 진서준도 몸이 찌뿌둥해 났다.하지만 허사연 두 자매가 있으니 진서준은 지금 갈 용기는 없었다.허사연 혼자 노천탕에 있었으면 진서준은 무조건 갔을 것이었다.다른 한편, 노천탕에서 허사연과 허윤진은 목욕하고 있었다.“언니, 너무 개운하다.”허윤진이 즐거운 표정으로 탕에 누워 있었다.두 자매도 진서준과 마찬가지로 10여 일 동안 수련했다.오늘 실력을 돌파한 두 사람은 그제야 목욕하러 온 것이었다.열흘 넘게 목욕하지 않아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두 자매는 온몸이 근질근질했다.그런 상태에서 탕에 들어오자 개운함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었다.“서준 씨가 아직 수련 중만 아니었으면 아니면 같이 오자고 했을 텐데.”허사연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응? 같이 온다고?”허윤진이 멈칫했다.“응. 앞으로 너도 서준 씨 사람이니 이제 봐도 괜찮잖아.”허사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서지은도 거부하지 않았는데 허윤진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안 돼. 안 돼! 난 아직 처녀란 말이야. 그리고 언니도 아직 여기 있는데...”허윤진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미래의 어느 날, 진서준과 끝까지 갔다면 허사연의 말대로 함께 목욕도 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허윤진과 진서준은 시작에 불과했다.허윤진은 산에서 진서준과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었다.하
“얼른 죽여!”허사연이 말했다.“응, 알았어.”허윤진이 손에 힘을 세게 주자 흑백으로 뒤섞은 뱀은 순식간에 생기를 잃었다.자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탕 주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두 사람이 무엇에서 나는 소리인지 궁금해하기도 전에 공포스러운 장면이 펼쳐졌다.사면팔방에서 작은 뱀들이 그녀들을 향해 몰려오는 것이었다.그 장면을 보고 두 사람은 놀라서 다리에 힘이 빠졌다.“어... 얼른 뛰어!”먼저 정신 차린 허사연이 허윤진에게 소리쳤다.두 사람은 옷도 입지 않고 곧바로 평곡 쪽으로 달려갔다.두 사람은 도망쳤고 뱀들은 쫓아갔다.다행히 허사연 두 자매가 수련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뱀들에게 잡힐번했다.두 사람은 뛰면서 진서준을 불렀다.“진서준! 진서준! 진서준 수련 그만해! 큰일 났어! 우리가 뱀 우리를 찔렀나 봐.”놀란 두 자매는 안색마저 변했다.진서준도 어렴풋이 허사연의 목소리를 듣고 안색이 바뀌더니 두 사람이 오는 방향으로 돌진해 갔다.이내 세 사람은 만나게 되었다.허사연 자매의 온몸이 젖어있는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뱀 떼에 놀란 두 자매는 그들이 현재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서준 씨! 안에 뱀이 너무 많아요! 곧 올 거예요! 빨리 방법 좀 생각해 봐요.”두 자매는 진서준 뒤에 숨어 벌벌 떨며 말했다.진서준이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빽빽한 뱀 떼가 시야에 들어왔다.진서준조차도 그 광경을 보고 머리가 쭈뼛했다.진서준은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속이 좋지 않은 것뿐이었다.“다 태워버리지 뭐.”진서준의 손바닥에서 불길이 치솟았다.강렬한 불길에 주위의 공기가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공기 중 수분이 순식간에 증발했다.“업화장!”불길이 솟구치며 백 미터의 불바다를 형성하며 뱀들 속으로 떨어졌다.업화는 모든 생명을 삼켜버렸고, 설령 3급 대종사라고 해도 업화에 물들면 강기로도 끄기 어려울 것이었다.평범한 뱀 떼들이 업화를 만났으니
한참이 지나서야 진서준과 허사연은 평곡으로 돌아왔다.허윤진은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그녀도 어린애가 아니다 보니 진서준과 허사연이 뭘 했을지 다 알고 있었다.다만 마음이 조금 불편할 뿐이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함께 있는 장면을 생각하면 마음이 울렁거렸다.“두 사람 먼저 대련해 봐. 실력이 어떤지 봐야지.”진서준이 허사연과 허윤진에게 말했다.“힘을 남기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싸워.”“알았어요.”자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 겨루기 시작했다.허사연은 허윤진보다 한 달 더 늦게 수련을 시작했다.하지만 실력은 허윤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두 사람은 서로 주고받으며 싸웠다.무인의 실력으로 보면 두 사람 모두 내경 초기의 무인이었다.다만 실전 경험이 적어 더 많은 연습을 해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자매는 땀투성이가 되었지만 멈추지 않고 겨뤘다.진서준이 멈추라고 하지 않으면 그녀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됐어. 그만해.”진서준이 외쳤다.“아직 싸울 힘이 남았어.”허사연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녀는 진서준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처참한 부상을 당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허사연은 강해져서 진서준을 돕고 싶었다. 절대로 발목을 잡는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허윤진의 생각도 허사연과 같았다.영기가 강한 운대산에 있는 시간을 이용하여 수련하지 않으면 진서준이 목숨 바쳐 보호해 주는 목숨에 가치가 없을 것이었다.두 사람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진서준의 가슴이 뭉클해졌다.진서준은 두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지 알고 있었다.‘이런 사람을 아내로 삼을 수 있다니... 정말 지난 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네.’진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허사연 자매의 기력이 다했을 때 둘에게 다가갔다.“좋아. 수련한 지 두 달 정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이렇게 발전했네. 당시 창욱 스승님이랑 감옥에서 배울 때 정말 참담하게 혼났어.”진서준이 웃으며 두 자매를 칭찬하는 한편, 자매의 등에 손을 얹어 영기로 피로를
허사연 자매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진서준에게 쉴 명분이 없었다.진서준의 원래 계획에 따르면 그는 일주일 안에 축기경을 돌파할 수 있었다.단약 3개를 먹은 후, 진서준은 무려 보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단약을 전부 정제했다.시간은 비록 예상보다 더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진서준은 성공적으로 축기에 도달하여 반보 수선자가 되었다.구창욱의 말에 따르면 축기는 반쪽짜리 입문이라고 했다. 몸 안에 금단을 응집시키고 세상 대도를 깨달아야만 진정한 수선자가 된다고 했다.“언니, 이것 봐. 형부 몸에서 빛이 나.”허윤진과 허사연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진서준 몸에서 은은한 금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진서준의 호흡에는 일정한 리듬마저 가지고 있었다.“경지를 돌파한 것 같네. 방해하지 말자.”허사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보름이 넘도록 두 자매는 경지를 돌파하지 못했다.하지만 두 자매는 낮에는 실전 연습을 하고 밤에는 수련하면서 실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이제 50~60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와도 자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성인 남자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진서준이 탁한 숨을 내쉬며 눈을 번쩍 떴다.펑!공기 중에 마치 폭탄이 폭발한 것처럼 맑고 낭랑한 폭발음이 들렸다.진서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드디어 경지를 돌파했어!”축기경에 이른 진서준의 실력은 오급 대종사와 거의 동등했다.박만년이 다시 진서준을 찾아온다면 진서준은 세 수 안에 그를 죽일 자신이 있었다.세 수 안에 죽인다고 하지만 진서준도 전력을 다해야 했다. 상대는 사급 대종사이지 지나가던 어중이떠중이가 아니기 때문이었다.“서준 씨, 축하해요.”허사연과 허윤진이 앞으로 나서며 기쁨을 나눴다.“깼어? 내가 방해한 거 아니지?”“아니에요. 아까부터 깨어 있었어요.”허사연이 웃으며 답했다.“며칠 지났을까? 달 말까지 며칠 남았지?”진서준이 부랴부랴 물었다.“잠시만요, 핸드폰 좀 볼게요.”허윤진이 전에 산 핸드폰을
“가족한테 손을 댄다고요? 정말 살고 싶지 않은가 보네요.”진서준의 눈에서 한기가 스쳤다.원현성이 진서준을 이렇게 오래 기다린 것도 국안부의 체면을 본 것이었다.진서준이 국안부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원현성은 진소라부터 손댔을 것이었다.“진 상경, 안일해서는 안 됩니다. 원현성이 실력이 약하지 않습니다. 인의방 1등입니다.”류재훈이 진서준에게 일깨워줬다.“인의방 1등?”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박만년에 지의방에 랭킹되어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지의방의 박만년조차도 진서준의 적수가 못 되는데 인의방의 1등은 더 말할 가치도 없었다.“진 상경, 원현성은 다릅니다. 그는 그저 인의방에 머무르고 싶어 해서 안 올라가는 거예요. 그를 지의방에 넣는다면 박만년도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류재훈이 부랴부랴 설명을 덧보탰다.“네? 그런 사람도 있어요?”진서준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네. 원현성은 사급 술법 영선으로 무서운 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사급 술법 영선? 어쩐지...’술법의 수련은 무도보다 더 어려웠다.같은 경지에서 대대수의 대종사는 영선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하지만 술법 영선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횡련 대종사였다.횡련 대종사는 더 희귀했는데 가장 많은 횡련 대종사를 소유한 가문이 서북의 유씨 가문이었다.바로 유지수 생부가 있는 가문이었다.“알겠습니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류 종사님.”진서준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천만에요. 진 상경님께서 봉호대전에서 좋은 결과 얻으시길 바랍니다.”류재훈이 웃으며 답했다.“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한민국 14억 인구에서 천교도 많을 것입니다. 저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웃었다.높은 곳에 서 있을수록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알 수 있었다.세계는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넓었다.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나아가는 것이다.“진 상경님 겸손하시네요. 진 상경님과 비교할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