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은 원현성이 진기로 만들어낸 용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내가 이번에 신청한 봉호가 뭔지 아직 모르죠?”진서준이 앞으로 한걸음 성큼 다가섰다.순간 검의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검도를 수련하는 무인들의 등과 허리춤에 찬 장검이 전율했다.“세상에 용이 많다 한들 나를 보면 머리를 조아려야 합니다.”“제가 신청한 봉호는 용존입니다.”정말 오만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용에게 머리를 조아리라고 한 건 진서준이 처음이었다.관전하던 세 명의 호국 장군들도 진서준의 호탕한 기세에 놀라고 말았다.“진 장군님, 진서준 씨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요.”송경식이 웃으며 말했다.“아버지만 봐도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죠.”진서훈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진서준의 재능이 아직 아버지 진요한을 따라잡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오만한 건 똑같았다.그런 진서준을 바라보는 허사연의 눈빛은 흠모와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여자라면 누구든 자기 남자가 능력 좋고 대단한 사람이길 바랄 것이다.“이번 경기의 승자는 나에요.”짧은 한마디였지만 예리한 검과도 같이 위협적이었다. 진서준은 이 말과 함께 다시 자취를 감췄다.종사들의 눈에는 서슬 퍼런 진서준의 검밖에 보이지 않았다. 진서준이 언제 검을 휘둘렀는지 알아채기도 굉음이 들렸다.금속으로 만든 링은 수십만 킬로그램이 넘는 물건으로 부순 것처럼 절반이 날아간 상태였다.원현성이 만든 용은 두 발로 진서준의 검을 꽉 잡고 있었다.검은 가벼워 보였지만 힘이 무시무시했다. 원현성의 용은 마치 등에 집채같은 산이라도 업은 것처럼 힘들어 보였고 원현성의 얼굴도 점점 빨갛게 달아올랐다.원현성이 두 손으로 주문을 읊자 용의 몸집이 점점 더 선명해지기 시작했다.진서준은 원현성을 힐끔 쳐다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한방에 용을 없애줄게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진서준은 다시 자취를 감췄다.다시 사람들 앞에 나타났을 때 진서준의 빛은 은하수처럼 눈 부신 빛을 내며 하늘에서 떨어졌다.허공에서 반짝이는 진서준의 검을 보고 사람들은
“다음.”현장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진서준을 뚫어져라 쳐다봤다.경기가 시작되기 전 사람들은 진서준이 무조건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야 진서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알아챘다.지구전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서준은 단 두 방에 원현성을 때려눕혔다.너무나도 무서운 실력이었다. 어떻게 저런 경지까지 올라가게 된 건지 의문이었다.“대박. 형부가 이겼어. 형부가 이겼다고.”허윤진의 함성에 적막이 깨졌다.서산객도 눈이 휘둥그레졌다.“아가씨, 아가씨가 찾은 이 남자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요.”유정은 지금 매우 흥분한 상태라 서산객이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진서준의 동생이라는 명목으로 같이 다니고 있지만 진서준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허사연도 잘 알고 있었기에 누구도 서산객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정말 의외네.”관전하던 진서준이 감탄했다.진서준의 마지막 한 방은 5급의 정점을 찍은 대종사와 맞먹는 실력이었다.5급 대종사여도 진서준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공격으로 진서준은 체내의 영해가 거덜 난 상태였다.다행히 진서준은 영기를 회복하는 단약을 미리 준비했다.아까 차에서 임준도 진서준에게 단약을 건네줬다.진서준은 임씨 가문과 혈연관계가 있었기에 임준도 진서준이 잘못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이만 내려가요. 목숨은 살려줄게요.”진서준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원현성에게 덤덤하게 말했다.해외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용의 안식 계획을 들은 뒤로 진서준은 국내의 무인들에게 조금 인자해졌다. 무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무도에 대한 인자함도 있었다.내년 4월 해외의 강자들이 대한민국의 무인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일 예정이라고 들었기에 원수를 지지만 않으면 진서준도 절대 죽일 생각은 없었다.“왜 나를 풀어주는 거죠?”원현성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의아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 진서준도 분명 원현성이 그를 죽이려 했다는 걸 알 텐데 말
허사연과 그녀의 일행이 고개를 돌려 이지성과 강성준을 바라보았다.“너희 둘이구나!”그 두 사람을 보자 허사연 일행의 눈에도 분노가 일었다.“허사연 씨, 당신도 진서준과 함께 온 거예요?”이지성이 음흉한 눈빛으로 허사연을 쳐다보며 말했다.“잠시 후 제가 진서준을 죽이고 나면 당신은 제 것이 될 거예요.”“네가 진서준을 죽인다고?”허사연이 코웃음을 치며 경명스럽게 말했다.“하, 그 쓰레기 같은 놈을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는 곧 알게 될 거예요.”이지성은 그렇게 말하고 류재훈 앞에 섰다.“저도 대회에 나가겠습니다.”류재훈은 이지성과 진서준 사이의 갈등을 몰랐다.하지만 이지성이 겨우 종사 경지에 있는 것을 보고 그의 눈빛은 연민으로 바뀌었다.‘이놈은 진 마스터님의 실력을 모르는 모양이군.’“서류를 작성하세요.”류재훈이 차갑게 말했다.이지성은 즉시 서류를 작성한 뒤,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이 경기대 위로 올라갔다.“안 그대로 너희들을 찾으려 했는데 제 발로 찾아왔구나.”진서준은 아래에 서 있는 강성준을 한 번 쳐다본 뒤, 류재훈에게 말했다.“저 사람도 함께 올라오라고 하시죠.”강성준과 이지성은 그 말을 듣고 모두 얼어붙었다.‘이 녀석 미친 거 아니야? 둘을 동시에 상대하겠다고? 자기 실력을 제대로 모르는 것일까?’무시당했다고 느낀 이지성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진서준, 나 이제는 횡련 종사야! 예전의 그 쓰레기가 아니란 말이야. 이제 너를 죽이는 데 한 손이면 충분해.”이지성은 여전히 진서준이 내공 무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비록 반년 동안 보지 못했지만 이지성은 진서준이 종사가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소년 종사는 매우 희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진서준 같은 쓰레기가 소년 종사가 될 리가.’강성준은 진서준이 실력이 약하지 않은 종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지성은 횡련 종사였기에 진서준의 상대가 되지는 않더라도 그의 체력을 상당히 소모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진서준이 힘을 다 썼을 때,
진서준도 이지성과 강성준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 둘의 성격상 주먹이 직접 그들에게 꽂히지 않으면 죽어도 믿지 않을 것이다.“믿지 못하겠다면 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돼.”진서준이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이지성과 강성준을 그냥 죽이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고 그 둘에게 너무 후한 처사였다.진서준은 그들이 끝없는 공포와 절망 속에서 죽어가게 하고 싶었다.아래의 관중들을 한 번 본 이지성의 안색이 변했다.그들의 눈빛 속에서 연민과 조소를 본 것이다.“그냥 잘 살면 안 되나? 왜 굳이 진 마스터님을 도발하러 나왔을까.”“아까 그 대련장은 진 마스터님이 한 칼에 베여버린 게 맞아. 우리가 증인이다.”“쯧쯧, 저 두 사람 후회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사람들은 비웃으며 말했다.종사 수준의 실력으로 진서준에게 도전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였다.이지성과 강성준은 당황했다.“이건 사실이 아니야. 사실일 리 없어! 이 사람들은 분명 네가 돈을 주고 데려온 엑스트라들일 거야!”이지성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진서준에게 달려들었다.반년 만에 이지성은 정말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만약 반년 전에도 이지성이 횡련 종사였다면 서울시에서 그는 거칠 것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그에게 남은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다.그것은 바로 죽음의 길이었다.진서준은 심지어 칼을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지성과 같은 상대에게 칼을 사용하는 것은 천문검에 대한 모욕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네가 우리 아버지를 죽이고 우리 집안을 파탄으로 만들었어. 죽여버릴 거야!”이지성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고 그의 눈에서는 증오가 흘러넘칠 것 같았다.이지성은 지난 반년 동안 매일 밤 꿈속에서 진서준을 보았다.그는 정말로 진서준을 뼛속까지 증오했다.하지만 진서준 또한 이지성을 똑같이 증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출소하고 나서 두 다리가 모두 부러진 어머니가 쓰레기를 주워야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진
황현은 겁에 질려 떨고 있는 강성준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이냐?”“스승님, 저 사람 저를 죽이려 해요!”강성준이 진서준을 가리키며 말했다.황현은 진서준을 한 번 보고 그가 젊은 청년임을 확인한 후 화난 듯 말했다.“뭐가 무서워서 그러냐? 저 녀석도 기껏해야 종사일 텐데 그 정도도 이기지 못한단 말이냐?”반년 동안 자신이 애써 가르친 제자가 같은 수준의 청년에게 겁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며 황현은 한심해했다.“그는... 그는 종사가 아니에요. 그는 대종사입니다.”강성준은 울먹이며 말했다.“대종사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황현의 첫 반응은 당연히 믿지 않는 것이었다.“이지성을 보세요. 진서준 주먹 한 방에 저렇게 당했어요!”강성준은 땅에 누워 있는 이지성을 가리키며 말했다.황현은 처음엔 이지성이 그냥 바닥에서 자는 줄 알았다.자세히 보니 이지성의 온몸 뼈가 부서져 있었다.그때 이지성의 스승인 곽기린도 달려왔다.당산성의 무인들은 곽기린을 보자 표정이 변하며 길을 비켜 주었다.“저 사람은 곽 대종사의 제자였군!”한 노련한 종사가 놀라며 말했다.“곽 대종사? 그게 누구지?”누군가 물었다.“곽기린! 우리 당산성의 4급 대종사이자 지의방에 소속된 괴물이지.”“10년 전, 당산성에 있는 한 가문이 곽기린을 건드렸다가 하룻밤 사이에 곽기린이 그 가문을 몰살시켰지. 대종사 두 명이 곽기린 손에 죽었어.”“그 후 몇 년 동안 당산성의 5급 이하 대종사들은 곽기린에게 전부 당했어! 그는 당산성에서 제일가는 대종사라 불릴 자격이 충분한 인물이지.”그 노련한 종사가 설명했다.“헉...”사람들은 숨을 들이마셨다.당산성은 중부 삼성처럼 무인이 희귀한 곳이 아니었다.당산성의 각 도시에는 네다섯 명의 무도 종사가 있었으며 대종사의 수도 열 명이 넘었다.그런 사람 중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은 그 실력이 상당히 강하다는 것을 의미했다.대련장에 도착한 곽기린이 처참한 이지성의 모습을 보자 눈에는 분노가 불타올랐다.그가 처음
진서준과 문호동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람들은 모두 숨을 들이마셨다.비록 키가 작은 문호동이었지만 명성은 곽기린보다 훨씬 뛰어났다.그는 은씨 일가의 오급 대종사로 지의방에서 58번째 괴물로 불리고 있다.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그의 축골술이었다.문호동이 이렇게 키가 작은 이유는 축골술을 수련했기 때문이었다.그는 자기 몸의 모든 치명적인 부위를 체내로 축소해 상대가 공격할 수 없게 만들었다.하지만 사람들은 진서준이 어떻게 은씨 일가와 갈등을 빚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진광과 진명철도 문호동을 보고 깜짝 놀랐다.“저 녀석은 도대체 몇 명이나 건드린 거야?”진명철은 눈썹을 찡그렸다.“아버지, 우리 대종사들도 올라가게 해주세요. 저 녀석을 한 번에 없앨 기회예요!”진광의 눈은 빛났다. 이것은 진서준을 죽일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진서준만 죽이면 이전에 당한 수모를 깨끗이 씻을 수 있을 것이다.“안 돼. 너희 증조부가 위에서 지켜보고 계시잖아. 그분의 명예를 훼손하는 짓은 할 수는 없다.”진명철은 엄하게 말했다.진서훈이 위에 있는 지금 진씨 일가가 다수를 동원해 약자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이면진서훈의 체면은 어찌 되겠는가?또 하나는 진서준이 진요한과 너무 닮았다는 점이었다.진명철은 진서준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는 진서준과 진요한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아휴, 저 녀석 운이 좋네.”진광은 약간 실망했지만 은씨 일가의 대종사가 있는 한 진서준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확신했다.“어르신!”곽기린과 황현은 문호동에게 인사했다.“너희 둘은 여기서 지켜봐라. 저놈의 목숨은 내가 취하겠다.”문호동은 무심하게 말했다.서로 시선을 마주친 두 사람은 상대방의 눈에서 무력감을 읽을 수 있었다.문호동은 오급 정점의 대종사로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괜히 문호동을 자극했다가는 곽기린과 황현 역시 문호동에게 당할 것이었다.“어르신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둘은 대련장 구석 자리로 물러나 문호동과 진
귓가에 타격음이 들리고 나서야 사람들은 문호동이 진서준 앞에 도착했음을 보았다.진서준이 손을 들어 문호동의 주먹을 막았다.평범한 듯 해 보였던 주먹은 산처럼 묵직하게 다가왔고 경기장마저 충격에 흔들리고 있었다.강력한 압박 속에서 진서준의 손뼈가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그것은 뼈와 근육이 중압으로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이내 진서준의 체내에서 혈기가 모공을 통해 퍼져 나왔다.핏빛 기운이 모여 붉은색 거대한 용으로 변하며 진서준의 등 뒤에 떠올랐다.그 광경은 아까 원현성이 소환한 교룡보다 훨씬 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이와 같은 이변에 횡련 대종사들마저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자기 신체를 이 정도로 단련하다니!”곽기린의 눈동자도 흔들렸다.그조차도 혈기를 이처럼 형상화하는 경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문호동은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거두었다. 이내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다시금 한 주먹의 그림자가 쏟아져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산을 무너뜨리고 달을 부술듯한 기세로 다가왔다.쾅!다시 한 주먹이 떨어졌고 진서준의 팔이 미세하게 떨리며 그의 이마에는 주름이 잡혔다.문호동의 실력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이 주먹은 마치 소림의 금강경과 융합된 것 같군!”한 대종사가 감탄하며 말했다.“듣기로는 문 노인이 젊은 시절 소림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때 그가 내공을 포기하고 횡련을 수련하기 시작했답니다.” 한 노인이 말했다.이를 들은 은범이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문 어르신은 심지어 소림의 금강불괴 신공도 수련하셨습니다. 어르신은 금강경과 금강불괴신공을 융합해 자신만의 축골술을 창조하신 것이죠!”사람들의 감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호동의 세 번째 주먹이 내려졌다.이번 주먹은 그림자가 중첩되어 같은 경지의 오급대종사들조차 실체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였다.차분한 표정을 지은 진서준의 뒤로 청룡이 떠올랐다.붉고 푸른 두 마리의 용이 동시에 진서준의 팔로 뛰어들었다.그 순간, 진서준의 양팔은 마치 견고한 갑
‘진 마스터님이 졌나?’링 위에 있는 진서준의 가냘프고 거의 쓰러질 듯한 몸을 바라보며 많은 사람들은 안타까움을 느꼈다.“진 마스터님은 정말 강하지만 문 대종사도 만만치 않네. 그의 실력이라면 육급 대종사와 맞붙어도 절대 밀리지 않을 거야.”“소림사의 양대 절학을 모두 익힌 문 대종사가 약할 리가 없지!”“안타깝구나. 대한민국에 또 한 명의 천교를 잃게 되는구나.”진서준이 문호동의 아홉 주먹을 막아낸 것만으로도 이미 현장에 있던 수많은 대종사들이 우러러볼 수준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서준의 전설적인 삶은 여기서 끝이 나는 듯했다.“저 녀석이 용존 이라고? 웃기고 있네!”일부 질투에 가득 찬 젊은 무인이 진서준의 패배를 보며 비웃었다.허사연은 그 말을 듣자마자 다가가 그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짝!“아야! 너 뭐 하는 짓이야!”뺨을 맞은 청년은 얼굴을 감싸며 허사연을 분노에 찬 눈으로 쏘아봤다. 하지만 허사연의 얼굴을 확인하자 그의 분노는 곧 음탕한 표정으로 변했다.“네가 다시 내 남자를 욕하면 네 입을 찢어버릴 거야!”허사연이 냉정하게 말했다.“네 남자라고? 하하!” 청년은 잠시 멈칫하더니 큰소리로 웃었다.“네 남자는 곧 죽을 텐데...내가 보기엔 빨리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게 좋겠어! 나는 어때? 네 남자보다 더 강한데!”청년의 모욕적인 말을 들은 허사연은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올렸다.하지만 청년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챘다.“또 때리려는 거야?”청년이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밤에 네가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자고!”그 순간 강력한 기운이 청년을 압도했다.“손 놔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산산이 조각낼 것이다!”권해철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청년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 손을 내려놓으며 권해철을 바라보았다.“늙은이,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서도 나랑 여자를 뺏으려고 하는 거야?”퍽!권해철은 주먹을 날려 청년을 십여 미터나 날려버렸다. 청년의 가슴에는 주먹 크기의 움푹 들어간 자국이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