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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or: 생생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시월은 힘겹게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인 것은 낯선 침상이고, 온몸의 뼈마디는 모두 부서진 듯 아팠다.

정시월은 살아 있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침상 옆 낮은 탁자 위에 놓인 물병에 손을 뻗으려던 순간이었다.

쾅—!

방문이 거칠게 걷어차이며 열렸다.

서정호가 서 있었다.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날카로운 눈빛에는 억누르지 못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서정호는 정시월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정시월!"

그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분노 때문인지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어찌 그 도적들과 내통한 것이냐!"

정시월은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순간 굳어졌다.

"아직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냐?!"

서정호는 침상 앞까지 다가와 정시월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실망과 분노가 가득했다.

"네가 해주의 행선지와 마차의 특징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놈들이 어찌 그렇게 정확하게 그 아이를 납치할 수 있었겠느냐?! 도적들이 모두 자백했다. 이 모든 일은 너와 그들이 미리 꾸민 일이었다!"

서정호는 한 걸음 더 다가섰고, 목소리는 더욱 격해졌다.

"내가 앞으로는 너에게 최선을 다해, 그동안의 일에 대한 보상도 해주고, 너를 사랑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는데 어찌 해주를 죽음으로 떠민 것이냐?! 이런 방식으로 나를 시험하려 든 것이냐?! 그때 내가 조금이라도 망설였다면 해주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 아이가 그렇게 원망스러운 것이냐?! 목숨을 빼앗고 싶을 만큼?!"

정시월은 그제야 모든 것을 알아들었다.

고작 도적들이 내뱉은 몇 마디 거짓말 때문에.

그리고 다친 이가 서정호가 가장 아끼는 여인이었기 때문에.

서정호는 제대로 생각해 볼 틈도 없이 남의 말만 믿고, 모든 죄를 정시월에게 돌린 것이었다.

"왕야! 부디 노여움을 거두십시오!"

때마침 박해주가 명희의 부축을 받으며 문 앞에 나타났다.

창백한 얼굴, 눈가에 맺힌 눈물. 마치 아직도 놀람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연약한 모습이었다.

박해주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와 서정호의 소매를 붙잡고 부드럽게 말했다.

"왕야, 시월 언니를 탓하지 마십시오... 언니는... 저를 대신해 죄를 뒤집어쓰고 옥에서 오 년 동안 고생했습니다. 마음속에 원망이 남아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만약... 만약 이렇게라도 저에게 화풀이해서 언니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진다면... 저는... 저는 괜찮습니다..."

말을 잇던 박해주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떨어졌다. 가련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명희도 곧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말했다.

"왕야! 부디 아씨의 말씀만 듣지 마십시오. 아씨께서는 마음이 여리셔서 왕비마마를 나무라지 못하시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그냥 넘어가신다면 다음에는 또 이런 일이 생길 것입니다! 그때도 아씨께서 지금처럼 운 좋게 넘기실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서정호는 눈물 흘리는 박해주를 바라보다가, 침상 위에서 아무 말 없이 침묵하는 정시월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서린 분노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정시월. 너는 할 말이 없느냐?"

정시월은 낮게 웃기 시작했다.

갈라진 웃음소리에는 끝없는 비애와 조롱이 담겨 있었다.

"다들... 이미 저를 죄인으로 정해 두셨군요."

"허니 무슨 할 말이 더 있겠습니까?"

서정호는 정시월의 태도에 완전히 화가 치밀었다.

"인정은 한다는 말이구나. 이토록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른다면, 성 밖 정심암(靜心庵)으로 가서 사흘 동안 경전을 베끼며 스스로 반성하거라."

명희는 처벌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한 듯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박해주가 눈짓으로 막았다.

정시월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명의 노파가 다가와 정시월을 침상에서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데리고 나가는 동안에도, 그녀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마차는 왕부를 나와 성 밖으로 향했다.

정시월은 마차 벽에 기대 눈을 감은 채, 주변의 모든 일에 무관심한 듯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정심암으로 가는 길을 이미 훨씬 지나쳤는데도, 마차는 점점 더 외진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제야 정시월은 눈을 뜨고 마차 휘장을 걷어 바깥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정심암으로 가는 길이 아니구나."

정시월이 담담하게 마부에게 말했다.

마부가 고개를 돌렸다. 낯선 얼굴에는 섬뜩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맞습니다. 암자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신형사(慎刑司)로 데려가는 길이지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약물이 묻은 천이 정시월의 입과 코를 거칠게 덮쳤다.

정시월은 저항할 틈조차 없었고, 의식은 빠르게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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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빛 속의 칼날   제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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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빛 속의 칼날   제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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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빛 속의 칼날   제19화

    구진웅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여전히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태도를 유지했다.“구진웅이라고 하오. 이리저리 떠돌며 의술을 펼치는 의원일 뿐이오. 내가 아는 것은 이곳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는 정시월은 이제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몸이라는 것이오. 만약 계속 억지를 부리며 환자의 안정을 해친다면 나도 좌시하지 않겠소.”구진웅의 손끝에 든 은침이 차갑게 빛났다.“오라버니.”정시월이 갑자기 손을 뻗어 구진웅의 소매를 살며시 붙잡았다.그 모습은 완전한 신뢰와 의지가 담긴 행동이었다.정시월은 서정호를 향해 다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마치 그는 정시월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스쳐 지나가는 존재일 뿐인 것처럼.“들어갑시다.”정시월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서정호의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다.“상관없는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상관없는 사람.짧은 한마디였다.하지만 가볍게 흩어진 그 말은 독을 바른 비수처럼 서정호의 심장에 깊숙이 박혔다.그리고 그 안을 휘저으며 피투성이 상처를 남겼다.그는 눈앞에서 정시월이 구진웅의 소매를 잡고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구진웅이 조심스럽게 정시월을 부축하는 모습도 보았다.문턱을 조심하라고 낮게 일러주는 모습도 보았다.그리고 정시월이 소박한 집의 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끼익.”얇은 나무문이 서정호의 눈앞에서 조용히 닫혔다.그 문은 서정호와 그의 모든 후회, 애원, 고통을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갈라놓았다.햇살은 여전히 따뜻했고, 작은 뜰은 여전히 고요했다.하지만 서정호는 자신이 마치 얼어붙은 설원 한가운데 서 있는 듯했다.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서정호는 낙운진의 한 허름한 객잔에 머물렀다.그리고 매일 날이 밝기도 전에 그 작은 뜰 앞을 찾아가 영혼을 잃은 석상처럼 말없이 그곳을 지켰다.해가 떠오를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그리고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까지.서정호는 보았다.정시월이 잠에서 깨어나 구진웅의 부축받으며 천천히 뜰 안을 걸으며 재활하는 모습을.아직 걸

  • 햇빛 속의 칼날   제18화

    “아니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건 성립되지 않는단 말이다!”서정호는 다급히 정시월의 말을 끊었다. 격한 감정에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 안에는 감출 수 없는 두려움이 묻어났다.“시월아, 내가 잘못했다! 이제 모든 걸 알았다! 박해주가 저지른 일들, 옥에서 있었던 일, 절벽에서 벌어진 일까지... 모두 내가 어리석었던 탓이다! 내가 눈이 멀었던 탓이다! 내가 너에게 죄를 지었다!”“나를 용서해 주면 안 되겠느냐? 우리 다시 시작하자. 앞으로는 너에게만 잘하겠다. 오직 너만 믿고, 너만 아껴주겠다...”서정호는 앞뒤도 맞지 않는 말을 쏟아냈다.며칠 동안 쌓여온 후회와 고통, 그리움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모두 토해내며, 마지막 남은 한 줄기의 희망이라도 붙잡으려 했다.하지만 정시월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을 뿐이었다.감동해서가 아니었다.그저 평온한 일상을 누군가 헤집어 놓았다는 불쾌함에 가까운 반응이었다.정시월은 자신에게 다가와 팔을 붙잡으려는 서정호의 손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몸을 뒤로 물렸다.마치 불쾌하고 더러운 것을 피하듯.“왕야의 마음은...”정시월은 고개를 들어 서정호의 고통과 애원으로 일렁이는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그리고 한마디 한마디 또렷하고 차갑게 말했다.“제가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왕야의 사촌 여동생을 잘 돌보십시오. 두 분이야말로 천생연분입니다.”“나는 해주에게 마음이 없다!”서정호가 낮게 울부짖었다.그 말은 마치 칼날처럼 서정호의 심장을 깊이 찌른 듯 고통이 밀려왔다.“내 마음속의 여인은... 너다! 내가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시월아, 나를 봐라... 제발 나를 봐라... 지금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느냐? 나는 이 시간 동안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 밤낮으로 너만 생각했고, 후회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한 번만 기회를 다오. 단 한 번만이라도... 내가 너에게 보상할 기회를 줘. 내가...”“보상이요?”정시월이 갑자기 서정호의 말을 끊었다.입꼬리

  • 햇빛 속의 칼날   제17화

    그는 스물다섯, 여섯쯤 되어 보였다.곧게 뻗은 체격에 온화한 기품이 흐르고, 훤하고 깨끗한 이목구비는 마치 산속의 맑은 샘물과 숲 사이를 스치는 바람 같았다.그의 손에는 거친 도자기 그릇 하나가 들려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구진웅이었다.구진웅은 등나무 의자 곁으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 약그릇을 옆 작은 탁자 위에 내려놓은 뒤, 매우 조심스러운 손길로 정시월의 다친 발을 받쳐 들었다.이어 감겨 있던 깨끗한 천을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서정호의 심장이 세차게 움찔했다.숨이 가빠졌다.그 발바닥에는 여전히 끔찍한 분홍빛 새살과 짙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하지만 분명 극진한 보살핌을 받은 흔적이 있었다.찻집에서 길손들이 말했던 “성한 살이 하나도 없다”는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아져 있었다.구진웅은 약물에 적신 부드러운 천으로 상처 주변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닦아냈는데, 그 손길은 마치 세상에 하나뿐인 귀한 보물을 다루는 듯했다.정시월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찌푸려졌다.“조금만 참거라. 곧 끝난다.”구진웅은 곧바로 정시월의 불편함을 알아차리고 손길을 더욱 부드럽게 했다.목소리는 온화했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이번에 구한 설련연고가 전보다 효과가 좋구나. 조금만 더 바르면 흉터도 많이 옅어지고, 걸을 때 통증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정시월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정시월의 미간이 풀렸다.그리고 눈을 떠 자신의 발을 바라보다가, 다시 구진웅을 올려다보았다.그 눈빛에는 온전한 신뢰와 평온함이 담겨 있었다.“감사합니다, 오라버니.”정시월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바람을 타고 서정호의 귀에 또렷하게 들어왔다.오라버니라는 호칭은 차가운 바늘처럼 예고 없이 서정호의 심장을 찔렀다.순간 날카롭고 끊임없는 통증이 밀려왔다.정시월은 한 번도 그런 목소리로 자신을 ‘오라버니’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정시월은 항상 서정호를 ‘왕야’라고 칭했다.그 안에는 소

  • 햇빛 속의 칼날   제16화

    “짝——!”뺨 때리는 소리가 돌연 찻집 안에 울려 퍼지자,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던 몇몇 길손들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그곳에는 줄곧 말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내가 있었는대, 초췌한 얼굴 속에서도 감출 수 없는 귀한 기품이 흐르는 사내였다.그런데 서정호가 방금 자신의 뺨을 세게 내리친 것이었다.얼마나 힘껏 때렸는지 입가에는 순식간에 피가 흘러내렸다.하지만 서정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그저 타오르는 불꽃만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서정호의 눈에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후회가 가득했다.그날 밤.황량한 들판과 산길 사이, 살을 에는 듯한 찬 바람이 몰아쳤다.서정호는 홀로 모닥불 곁에 앉아 있었다.불빛은 핏발 선 서정호의 눈과 턱에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을 비추고 있었다.서정호는 품 안쪽에 숨겨두었던 작은 보자기를 꺼냈다.그 안에는 철제 상자에 남아 있던 재와, 타다 남은 향낭 조각이 들어 있었다.거칠어진 손끝이 조심스럽게 새까맣게 그을린 천 조각을 어루만졌다.차갑다.마치 마지막 순간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처럼.“시월아...”서정호는 텅 빈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갈라지고 부서진 목소리는 차가운 바람이 스치자 금세 흩어졌다.“그때 나는... 정말 네가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네 무공이... 네 무공이...”서정호는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몰랐다.서정호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몰랐다.그저 정시월이 장군 가문의 딸이고, 무예가 뛰어난 사람이라고만 알았다.하지만 정시월의 비파골은 이미 꿰뚫렸고 무공은 모두 폐해져, 평범한 사람보다도 약한 몸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다.“그 생선도... 잊고 있었다... 네가 먹지 못한다는 걸... 정말 잊고 있었다...”서정호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뜨거운 눈물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와 얼굴에 묻은 먼지와 뒤섞였다.“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 나는 그저...”그저 무엇이었을까?정시월을 외면하는 것이 익숙했다.언제나 정시월이 자신의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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