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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or: 생생이
정시월은 이를 악문 채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손톱은 벽돌 틈을 깊이 파고들었지만, 정시월은 살려 달라고 애원하지도, 변명하지도 않고, 그저 텅 빈 눈으로 서정호를 똑바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 눈빛에는 원망도, 증오도 없었다.

오직 모든 것을 이미 꿰뚫어 본 듯한 차갑고도 죽은 듯한 무감각만이 남아 있었다.

그런 정시월의 눈빛을 마주하자, 서정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엄습해 마음속 분노는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쳐라! 계속 쳐라! 말할 때까지 멈추지 마라!”

정시월의 의식이 흐려지고, 더는 버티기 힘들어지려던 순간이었다.

“왕야! 잘못되었습니다! 모두 잘못되었습니다!”

한 어의가 바닥을 구르듯 다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서정호가 거칠게 고개를 돌렸다.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냐?!”

어의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다급히 말했다.

“소인이 방금 다시 확인하고, 해주 아씨의 곁을 지키는 시녀에게도 물어본 끝에 알게 되었습니다... 해주 아씨께서는 독에 중독된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

“음식의 상극 때문입니다!”

어의가 서둘러 설명했다.

“해주 아씨께서는 어제 적혈 제비집을 드셨습니다. 그 제비집은 성질이 매우 뜨겁습니다. 그런데 오늘 드신 이 약탕에는 한성초라는 약재가 들어갔는데, 그 성질이 지극히 차갑습니다. 두 약재의 성질이 서로 충돌하여, 복용한 시간 간격이 짧으면 심한 토혈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증상이 독에 중독된 것과 매우 흡사했던 것입니다! 몇 첩의 순한 조리약을 처방하여 어혈을 토해내게 하고 며칠간 안정을 취하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서정호의 얼굴에 서린 분노와 다급함이 순간 굳어졌다.

그 표정은 천천히 놀라움으로 변했고, 곧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마침내 새하얗게 질렸다.

서정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정시월을 바라보았다.

온몸이 채찍에 맞아 상처투성이가 되어, 거의 피투성이가 된 정시월을 보는 순간, 서정호의 심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세차게 움켜잡힌 듯했다.

태어나 처음 느끼는 듯한 공포와 날카로운 통증이 순식간에 온몸을 휩쓸었다.

서정호는 비틀거리듯 다가가 정시월을 부축하려 손을 뻗었다.

“시월아... 나는...”

하지만 정시월은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스스로 바닥을 짚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왕야의 보상은 필요 없습니다.”

서정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챈 듯, 정시월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갈라지고 희미했지만 이상할 만큼 평온했다.

“늘 그랬듯, 저는 왕야에게서 한 가지만 받으면 됩니다. 검 매듭을 제게 주십시오.”

서정호는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의 검 매듭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순간 아래로 가라앉았다.

향낭, 호심경.

정시월은 이미 모두 돌려받았다.

그리고 이제 이 매듭까지... 그건 정시월이 서정호에게 준 마지막 물건이었다.

“시월아, 이건 단지 오해였다...”

서정호의 목소리가 메말랐다.

“나는...”

“주십시오.”

정시월이 다시 말했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더는 거스를 수 없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

종잇장처럼 창백해진 정시월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서정호의 가슴속 공포와 불안은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주고 싶지 않았다.

마치 이것을 건네는 순간, 자신이 무엇인가 아주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왕야! 해주 아씨께서 깨어나 계속 왕야를 찾고 계십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명희의 목소리에 서정호는 크게 흔들렸다.

서정호는 정시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막 위험에서 벗어난 박해주를 떠올렸다.

마음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됐다... 어차피 정시월은 나를 사랑한다.'

'허니 지금은 그저 화가 나서 고집을 부리는 것뿐, 화가 내려갈 쯤 다시 달래면 된다.'

'고작 매듭 하나일 뿐이다.'

서정호는 이를 악물고, 결국 오래된 매듭을 풀어 정시월에게 건넸다.

정시월은 그것을 받아 들고 더 이상 서정호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방으로 돌아갔다.

서정호는 정시월의 뒷모습이 문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길게 이어진 핏자국을 바라보는 순간, 심장 한쪽이 무언가에 도려내진 듯 허전하고 아팠다.

서정호는 정시월을 따라 들어가고 싶었다. 무언가 말하고 싶었다.

“왕야...”

밖에서 명희가 다시 서정호를 재촉했다.

서정호는 눈을 질끈 감더니, 결국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별원을 떠났다.

내실.

정시월은 문을 닫은 뒤, 문짝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정시월은 바로 상처를 치료하지 않았다.

대신 힘겹게 몸을 움직여 구석으로 가, 침상 아래에 숨겨 둔 낡은 철제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검 매듭, 전에 돌려받은 향낭과 호심경과 함께 상자 안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정시월은 불씨를 꺼냈다.

주황빛 불꽃이 철제 상자의 가장자리를 핥기 시작했고, 이내 안쪽으로 번져 들어갔다.

천천히, 추하게 생긴 향낭을 삼켰다.

또 천천히, 차갑던 호심경을 삼켰다.

마지막으로, 낡은 매듭을 삼켰다.

모든 정표와 모든 기억, 모든 사랑과 원망과 집착...

그 모든 것이 한 줌의 불꽃 속에서 재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서로에게 빚진 것도 없고, 남은 인연도 없다.

다음 날, 서정호는 호위에게 수많은 하사품을 보내왔다.

별원의 작은 대청이 온통 진귀한 물건들로 가득 찼다.

호위가 공손히 말했다.

“왕야께서 어제 왕비마마를 오해한 것에 대해 사과하는 뜻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왕야께서는 오늘 직접 찾아오려 하셨으나, 해주 아씨 곁을 지켜야 하여 늦은 시간에 다시 문안드리러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정시월은 창가에 앉아 앙상한 나뭇가지를 바라볼 뿐, 방 안 가득한 화려한 보석과 비단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호위가 물러간 뒤, 정시월은 천천히 일어나 가장 소박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정시월은 아무런 짐도 챙기지 않았고, 더는 이 왕부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별원을 나선 그녀는 왕부의 측문을 빠져나와 곧장 경조부로 향했다.

주부는 정시월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가 찾아오자 주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부인, 정말 마음을 정하신 거요? 그 못을 박는 형벌은...”

“정했습니다.”

정시월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시작하십시오.”

주부는 고개를 저으며 정시월을 후당의 별도 형방으로 안내했다.

특수 제작한 못 일흔두 개가 하나씩 정시월의 몸에 박혀 들어갔다.

목숨을 빼앗는 형벌은 아니었지만, 뼈를 파고드는 고통을 안기는 형벌이었다.

부군을 하늘로 여기고 따라야 한다는 부덕을 저버린 죄를 뼈에 새기게 하기 위한 형벌이었다.

정시월은 천 조각을 악문 채 버텼다. 식은땀이 옷을 흠뻑 적셨고, 극심한 통증에 몸은 심하게 떨렸지만 끝내 비명 한마디 내지 않았다.

형이 끝났을 때, 정시월은 거의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고 쓰러지지 않았다.

주부는 관인을 찍은 화리서 한 부를 정시월에게 건네며 말했다.

“다른 한 부는 진북왕부로 전달하겠소.”

정시월은 마치 자유로 향하는 열쇠라도 얻은 듯 그것을 손에 꼭 움켜쥐었다.

정시월은 주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관아 밖으로 걸어 나왔다.

관아 밖 말 매어 두는 돌에는 평범한 조추마 한 필이 묶여 있었다.

그것은 정시월이 가진 마지막 값비싼 장신구를 팔아 마련한 말이었다.

정시월은 말 위에 올라탔다.

몸에 난 상처 탓에 동작이 조금 비틀거렸지만, 이내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뒤편에 우뚝 솟은 경성의 모습을, 그리고 진북왕부가 있는 방향을 뒤돌아보았다.

정시월의 눈빛은 담담한 것이, 더는 아무런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말 옆구리를 가볍게 차자 갈색 말이 길게 울며 네 발굽을 힘껏 내디뎠다.

그리고 정시월을 다섯 해나 가두었던 감옥 같은 곳과, 정시월이 반평생 사랑했고, 또 반평생 미워했던 그 사내를 영원히 뒤에 남겨둔 채 성문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바람이 피로 물든 정시월의 옷자락과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앞길은 막막했고, 어디로 향할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정시월은 이제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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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빛 속의 칼날   제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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