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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Autor: 생생이
한편, 서정호는 정무를 처리하고 있었지만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정시월이 그날 하사품을 받은 뒤로, 그는 몇 번이나 별원을 찾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박해주의 병세가 반복해서 악화되는 바람에 발걸음을 미뤄야 했다.

서정호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정시월은 지금 화가 난 것이다.'

'그동안 너무 많은 억울함을 겪었으니 마음속에 원망이 남아 있는 것도 당연하다.'

'며칠 정도 내버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정시월의 화가 풀리고, 자신이 눈앞의 까다로운 정무를 처리하고, 박해주를 안정시킨 뒤 찾아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어느새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며칠 뒤에는 정시월을 다시 본원으로 들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서오원은 본래 시월이의 처소이기도 하니...'

'박해주는 몸이 약하니 더 따뜻한 동난각으로 옮기면 된다. '

서정호는 기억하고 있었다.

정시월은 예전부터 추위를 많이 탔다.

겨울이면 손발이 늘 차가웠고, 서오원의 지하 난방은 왕부에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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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빛 속의 칼날   제21화

    서정호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하지만 부러진 뼈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극심한 통증이 밀려와 결국 낮게 신음을 흘리며 다시 침상 위로 쓰러졌다.서정호의 이마에는 순식간에 식은땀이 맺혔다.“왕야! 상처가 너무 심합니다.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암위가 다급히 다가와 서정호를 붙잡으려 했다.“비켜라!”서정호는 핏발 선 눈으로 소리쳤다.어디서 그런 힘이 나온 것인지, 서정호는 암위를 단숨에 밀쳐냈다.그리고 부러진 다리를 끌며 침상에서 추하게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상처가 다시 터져 피가 빠르게 붕대를 적셨다.하지만 서정호는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며, 힘겹게 한 걸음씩, 조금씩 문을 향해 기어갔다.정시월을 찾아야 했다.반드시 찾아야 했다.정시월이 떠날 리 없었다.정시월이 이렇게 자신을 버리고 떠날 수는 없었다.암위는 더 이상 차마 바라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품 안에서 곱게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떨리는 손으로 그에게 내밀었다.“왕야... 시월 아씨께서 떠나시기 전, 이것을 남기셨습니다.”서정호의 움직임이 멈췄다.서정호는 피와 흙으로 얼룩진 손을 떨며 종이를 받아 들었다.그리고 천천히 펼쳤다.그 안에는 뼛속 깊이 익숙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한때는 소녀의 마음과 애정으로 가득했던 글씨.하지만 지금은 차갑고 단호한 한 줄의 말만 남아 있었다.“왕야, 저를 놓아주고 왕야 자신도 놓아주십시오. 이제부터는 산과 물이 서로 만나지 않듯 다시 마주칠 일 없을 것입니다. 지난 인연의 길고 짧음을 더는 논하지 마십시오.”'다시는 만나지 않으리라.''지난 인연의 길고 짧음을 논하지 말라.''하...''하하하...'서정호는 가벼운 종이를 움켜쥔 채, 그 위에 적힌 단정하면서도 힘이 배어 있는 글씨를 바라보았다.그러다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갈라진 웃음소리가 텅 빈 방 안에 울려 퍼졌다.웃고 또 웃던 서정호의 충혈된 눈가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그 눈물은 얼굴에 묻은 피와

  • 햇빛 속의 칼날   제20화

    “왕야—!!”정시월은 그가 온 힘을 다해 밀친 탓에 비틀거리며 안전한 바위 위로 넘어졌다.무릎과 팔꿈치가 바닥에 쓸려 살갗이 벗겨졌고, 화끈거리는 통증이 밀려왔다.절벽 아래는 구름과 안개에 휩싸여 끝이 보이지 않았다.정시월은 서정호가 이미 산산이 부서져 계곡 아래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그 순간, 아래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날카로운 소리와 억눌린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정시월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서정호는 그대로 계곡 아래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다행히 절벽 벽면 밖으로 비스듬히 뻗어 있던 고목 하나에 걸려 있었다.하지만 그 고목은 그의 추락 충격과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듯, 위태로운 소리를 내며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그의 몸은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등과 팔에는 날카로운 바위에 긁힌 상처가 수없이 생겼고, 온몸은 피투성이였다.서정호는 아직 살아 있지만 상황은 매우 위태로워 언제라도 아래로 떨어질 수 있었다.구진웅 역시 절벽 끝까지 달려왔다.상황을 확인한 구진웅은 표정이 무거워졌다.“시월아, 여기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거라. 바줄을 찾고 사람을 불러야겠다.”구진웅은 곧바로 결정을 내리고 마을 쪽으로 달려가려 했다.구조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마을의 사냥꾼들과 장정들이 밧줄을 들고 달려와 온 힘을 다한 끝에, 중상을 입은 서정호를 절벽 아래에서 끌어올릴 수 있었다.절벽 위로 끌어올려졌을 때, 서정호는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왼쪽 다리는 골절되어 하얀 뼈가 드러났고, 갈비뼈 두 대도 부러져 있었다.몸에는 성한 곳이 거의 없었다.서정호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하지만 정신을 잃은 순간에도 그의 입술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미간은 굳게 찌푸려져 있었고, 마치 끝없는 악몽 속에 빠진 듯했다.“시월아... 가지 마라... 미안하다... 미안하다...”끊어질 듯한 중얼거림이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이어졌다.구진웅은 그 자리에서 응급 처치를 했다.부러진

  • 햇빛 속의 칼날   제19화

    구진웅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여전히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태도를 유지했다.“구진웅이라고 하오. 이리저리 떠돌며 의술을 펼치는 의원일 뿐이오. 내가 아는 것은 이곳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는 정시월은 이제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몸이라는 것이오. 만약 계속 억지를 부리며 환자의 안정을 해친다면 나도 좌시하지 않겠소.”구진웅의 손끝에 든 은침이 차갑게 빛났다.“오라버니.”정시월이 갑자기 손을 뻗어 구진웅의 소매를 살며시 붙잡았다.그 모습은 완전한 신뢰와 의지가 담긴 행동이었다.정시월은 서정호를 향해 다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마치 그는 정시월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스쳐 지나가는 존재일 뿐인 것처럼.“들어갑시다.”정시월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서정호의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다.“상관없는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상관없는 사람.짧은 한마디였다.하지만 가볍게 흩어진 그 말은 독을 바른 비수처럼 서정호의 심장에 깊숙이 박혔다.그리고 그 안을 휘저으며 피투성이 상처를 남겼다.그는 눈앞에서 정시월이 구진웅의 소매를 잡고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구진웅이 조심스럽게 정시월을 부축하는 모습도 보았다.문턱을 조심하라고 낮게 일러주는 모습도 보았다.그리고 정시월이 소박한 집의 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끼익.”얇은 나무문이 서정호의 눈앞에서 조용히 닫혔다.그 문은 서정호와 그의 모든 후회, 애원, 고통을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갈라놓았다.햇살은 여전히 따뜻했고, 작은 뜰은 여전히 고요했다.하지만 서정호는 자신이 마치 얼어붙은 설원 한가운데 서 있는 듯했다.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서정호는 낙운진의 한 허름한 객잔에 머물렀다.그리고 매일 날이 밝기도 전에 그 작은 뜰 앞을 찾아가 영혼을 잃은 석상처럼 말없이 그곳을 지켰다.해가 떠오를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그리고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까지.서정호는 보았다.정시월이 잠에서 깨어나 구진웅의 부축받으며 천천히 뜰 안을 걸으며 재활하는 모습을.아직 걸

  • 햇빛 속의 칼날   제18화

    “아니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건 성립되지 않는단 말이다!”서정호는 다급히 정시월의 말을 끊었다. 격한 감정에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 안에는 감출 수 없는 두려움이 묻어났다.“시월아, 내가 잘못했다! 이제 모든 걸 알았다! 박해주가 저지른 일들, 옥에서 있었던 일, 절벽에서 벌어진 일까지... 모두 내가 어리석었던 탓이다! 내가 눈이 멀었던 탓이다! 내가 너에게 죄를 지었다!”“나를 용서해 주면 안 되겠느냐? 우리 다시 시작하자. 앞으로는 너에게만 잘하겠다. 오직 너만 믿고, 너만 아껴주겠다...”서정호는 앞뒤도 맞지 않는 말을 쏟아냈다.며칠 동안 쌓여온 후회와 고통, 그리움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모두 토해내며, 마지막 남은 한 줄기의 희망이라도 붙잡으려 했다.하지만 정시월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을 뿐이었다.감동해서가 아니었다.그저 평온한 일상을 누군가 헤집어 놓았다는 불쾌함에 가까운 반응이었다.정시월은 자신에게 다가와 팔을 붙잡으려는 서정호의 손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몸을 뒤로 물렸다.마치 불쾌하고 더러운 것을 피하듯.“왕야의 마음은...”정시월은 고개를 들어 서정호의 고통과 애원으로 일렁이는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그리고 한마디 한마디 또렷하고 차갑게 말했다.“제가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왕야의 사촌 여동생을 잘 돌보십시오. 두 분이야말로 천생연분입니다.”“나는 해주에게 마음이 없다!”서정호가 낮게 울부짖었다.그 말은 마치 칼날처럼 서정호의 심장을 깊이 찌른 듯 고통이 밀려왔다.“내 마음속의 여인은... 너다! 내가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시월아, 나를 봐라... 제발 나를 봐라... 지금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느냐? 나는 이 시간 동안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 밤낮으로 너만 생각했고, 후회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한 번만 기회를 다오. 단 한 번만이라도... 내가 너에게 보상할 기회를 줘. 내가...”“보상이요?”정시월이 갑자기 서정호의 말을 끊었다.입꼬리

  • 햇빛 속의 칼날   제17화

    그는 스물다섯, 여섯쯤 되어 보였다.곧게 뻗은 체격에 온화한 기품이 흐르고, 훤하고 깨끗한 이목구비는 마치 산속의 맑은 샘물과 숲 사이를 스치는 바람 같았다.그의 손에는 거친 도자기 그릇 하나가 들려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구진웅이었다.구진웅은 등나무 의자 곁으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 약그릇을 옆 작은 탁자 위에 내려놓은 뒤, 매우 조심스러운 손길로 정시월의 다친 발을 받쳐 들었다.이어 감겨 있던 깨끗한 천을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서정호의 심장이 세차게 움찔했다.숨이 가빠졌다.그 발바닥에는 여전히 끔찍한 분홍빛 새살과 짙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하지만 분명 극진한 보살핌을 받은 흔적이 있었다.찻집에서 길손들이 말했던 “성한 살이 하나도 없다”는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아져 있었다.구진웅은 약물에 적신 부드러운 천으로 상처 주변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닦아냈는데, 그 손길은 마치 세상에 하나뿐인 귀한 보물을 다루는 듯했다.정시월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찌푸려졌다.“조금만 참거라. 곧 끝난다.”구진웅은 곧바로 정시월의 불편함을 알아차리고 손길을 더욱 부드럽게 했다.목소리는 온화했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이번에 구한 설련연고가 전보다 효과가 좋구나. 조금만 더 바르면 흉터도 많이 옅어지고, 걸을 때 통증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정시월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정시월의 미간이 풀렸다.그리고 눈을 떠 자신의 발을 바라보다가, 다시 구진웅을 올려다보았다.그 눈빛에는 온전한 신뢰와 평온함이 담겨 있었다.“감사합니다, 오라버니.”정시월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바람을 타고 서정호의 귀에 또렷하게 들어왔다.오라버니라는 호칭은 차가운 바늘처럼 예고 없이 서정호의 심장을 찔렀다.순간 날카롭고 끊임없는 통증이 밀려왔다.정시월은 한 번도 그런 목소리로 자신을 ‘오라버니’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정시월은 항상 서정호를 ‘왕야’라고 칭했다.그 안에는 소

  • 햇빛 속의 칼날   제16화

    “짝——!”뺨 때리는 소리가 돌연 찻집 안에 울려 퍼지자,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던 몇몇 길손들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그곳에는 줄곧 말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내가 있었는대, 초췌한 얼굴 속에서도 감출 수 없는 귀한 기품이 흐르는 사내였다.그런데 서정호가 방금 자신의 뺨을 세게 내리친 것이었다.얼마나 힘껏 때렸는지 입가에는 순식간에 피가 흘러내렸다.하지만 서정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그저 타오르는 불꽃만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서정호의 눈에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후회가 가득했다.그날 밤.황량한 들판과 산길 사이, 살을 에는 듯한 찬 바람이 몰아쳤다.서정호는 홀로 모닥불 곁에 앉아 있었다.불빛은 핏발 선 서정호의 눈과 턱에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을 비추고 있었다.서정호는 품 안쪽에 숨겨두었던 작은 보자기를 꺼냈다.그 안에는 철제 상자에 남아 있던 재와, 타다 남은 향낭 조각이 들어 있었다.거칠어진 손끝이 조심스럽게 새까맣게 그을린 천 조각을 어루만졌다.차갑다.마치 마지막 순간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처럼.“시월아...”서정호는 텅 빈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갈라지고 부서진 목소리는 차가운 바람이 스치자 금세 흩어졌다.“그때 나는... 정말 네가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네 무공이... 네 무공이...”서정호는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몰랐다.서정호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몰랐다.그저 정시월이 장군 가문의 딸이고, 무예가 뛰어난 사람이라고만 알았다.하지만 정시월의 비파골은 이미 꿰뚫렸고 무공은 모두 폐해져, 평범한 사람보다도 약한 몸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다.“그 생선도... 잊고 있었다... 네가 먹지 못한다는 걸... 정말 잊고 있었다...”서정호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뜨거운 눈물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와 얼굴에 묻은 먼지와 뒤섞였다.“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 나는 그저...”그저 무엇이었을까?정시월을 외면하는 것이 익숙했다.언제나 정시월이 자신의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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