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월은 겁에 질려 그에게 가까이 가지 못했다.“미... 미안해! 이번 생에도 네 옆에 남는 같은 실수를 할 수는 없어.”그녀가 고개를 저었다.“전연우, 솔직히 우리 둘 다 알고 있잖아. 넌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 계속 이렇게 지내다간 우리 두 사람 다 힘들어질 거야.”마취제의 약효는 너무나도 강력했다. 전연우는 모든 집중력을 끌어올려 간신히 또렷한 의식을 유지했다.“너 여기에서 한 발자국만 나가면 내가 강영수 뼛가루도 남기지 않고 없애버릴 거야.”전연우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실은 그는 아직까지도 강영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오직 장소월만이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장소월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미안해.”“어디 한 번 나가봐. 내 전화 한 통이면 넌 어차피 도망 못 쳐.”장소월의 동공이 순간 확장되었다. 그의 손이 침대 옆 탁자 위 핸드폰에 다가가자 그녀는 곧바로 앞으로 달려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절대 전화를 걸게 놔둬선 안 된다. 전연우가 더 많은 사람들을 부르면 장소월에겐 도망칠 일말의 기회도 남지 않게 된다.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이미 전연우가 파놓은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걸.사실 그 핸드폰은 배터리가 없어 전원이 꺼진 상태였다.전연우는 한 손으로 장소월을 잡아챘다. 마취약에 중독되긴 했으나 그 힘은 무서울 정도로 강력했다.장소월은 믿을 수가 없었다.“날 속였어!”“소월아... 그렇게 많이 당했으면서 아직도 교훈을 얻지 못했어?”“이거 놔! 놓으란 말이야!”장소월은 끊임없이 발버둥 치다가 그를 밀쳐버리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문 앞까지 도망쳤을 때, 전연우가 살기가 번뜩이는 눈빛으로 완전히 이성을 잃은 미치광이처럼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당겼다.하늘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장소월은 정신이 혼미해진 채 침대에 쓰러져버렸다.전연우의 손에는 언제 꺼냈는지 모를 단도가 들려있었다. 그의 손바닥엔 칼에 베인 상처도 나 있었다.그는 자신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의식을 유지했던 것이다!장소월은 그
“안 돼. 이러지 마... 오지 마...”지금 전연우는 이성을 잃은 미치광이 그 자체였다. 장소월은 그의 체력이 바닥난 기회를 틈타 바로 그의 등 뒤 문을 향해 뛰었다.“으악!”하지만 그의 손이 또다시 그녀의 발목을 잡는 바람에 또다시 넘어지고 말았다.깨끗했던 옷이 그 순간 전연우가 흘린 피에 물들어버렸다. 장소월은 피로 얼룩진 그의 얼굴 위 차갑게 일렁이는 시뻘게진 눈을 본 순간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다. 그의 손이 천천히 장소월의 목을 움켜쥐었다. 전연우의 얼굴에서 피 한 방울이 목을 타고 떨어져 내렸다. 장소월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그의 손을 잡았다.“전연우... 제발 놔줘...”“또 도망칠 거야?”장소월은 힘들게 눈을 감았다.“...”“말해! 또 도망칠 거냐고!”“왜 아직도 도망치려 하는 거야! 내가 너한테 충분히 잘해주고 있잖아!”고통스러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는 전연우의 마음도 괴롭기 그지없었다.장소월이 정신을 잃기 1초 전, 전연우가 손에서 힘을 풀었다. 이어 그녀의 옷을 끌어 내리고는 엎드려 힘껏 어깨를 깨물었다.“악!”장소월이 슬프게 울부짖었다. 문밖에 서 있던 경호원들은 우당탕탕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들어가려 했으나, 그 어떤 움직임이 있더라도 절대 들어오지 말라는 대표님의 말이 떠올라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사모님의 신음소리를 듣고서야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다시 뒤로 물러섰다.대표님은 정말 정력이 어마어마하다. 어젯밤 내내 해놓고선 또 시작하시다니.농후한 피 냄새가 전연우의 입안을 가득 메웠다.“소월아... 너 죽으면 이 오빠 옆에 줄곧 있을 수 있겠지? 너 강영수 보고 싶다며. 그럼... 내가 강영수를 죽여서 네 옆에 묻어줄게.”“너 정말... 미쳤어!”전연우는 그녀의 가는 목을 어루만졌다. 새하얀 피부에 어젯밤 다정했던 흔적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건만, 왜 또 이 지경까지 되었단 말인가.“죽으면 소월이는 다시는 도망가지 못할 거야!”장소월은 전연우의 정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의 살
“나 차라리 네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난 분명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어. 다 너 때문이야... 네 그 이기심이 내 모든 것을 망쳐버렸어!”전연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게 뭐가 어때서?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다 죽었어. 소월아... 오빠 곁에 돌아와.”그가 간절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오늘 일 다 없던 거로 해줄게. 응?”장소월은 그의 얼굴에서 뭐라도 보아내기 위해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마취약에 취해 완전히 미쳐버린 고집불통 남자 한 명뿐이었다.장소월은 대체 언제부터 전연우가 자신 때문에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전연우가 정말 그녀를 사랑하는 걸까?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 저번 생에서 그녀가 몸과 마음을 다 바쳤음에도 전연우는 송시아를 선택하지 않았던가? 그럼... 전생에서 있었던 일은 대체 뭐란 말인가?“왜...”전연우!“사랑해.”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사랑해.”그가 세 걸음 다가왔다.여전히 그 한 마디였다.“사랑해.”장소월이 시뻘게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아니, 넌 날 사랑하지 않아. 네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야. 난 저번 생에서 너한테 모든 걸 바쳤어.”“전연우... 전생에서 널 위해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장소월의 목소리가 떨려왔다.전연우는 더는 움직이지 않고 원한이 가득 찬 그녀의 눈동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송시아가 안 알려줬어? 넌 우리가 결혼 생활을 할 때에도 송시아를 데려와 내 침대에서 더러운 짓을 했어!”“결혼기념일에도! 넌 줄곧 송시아와 함께 있었다고!”“그 후... 넌 내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바깥에서 송시아와 아이까지 낳아서 키웠어. 그렇게 난 모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됐어.”“그 아이를 집에 데려오고 나서는 기성은을 시켜 나한테 이혼합의서를 가져다줬어. 그렇게 난 빈털터리로 집에서 쫓겨났어.”“오직 송시
장소월은 날카로운 칼날 절반이 전연우의 심장을 파고 들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어 그가 완전히 바닥에 쓰러지고 눈을 감았다.“전연우!”장소월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려왔다. 맑은 액체가 그의 옷에 스며들어 검붉은 피와 뒤섞였다.장소월은 감히 그의 몸에 손끝도 대지 못했다. 왜 눈물이 끊임없이 흐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두려움 때문이거나... 제 손으로 직접 그를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이거나.“전연우, 너... 안 죽어. 내가 의사 선생님 불러올게.”전연우의 가슴팍엔 단도 하나가 꽂혀 있었다. 장소월은 조심스레 그의 심장에서 흐르고 있는 피를 손바닥으로 막으며 소리쳤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빨리 들어와 주세요!”“제발 살려주세요!”문밖에 있던 경호원들은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닥에 온몸이 피로 흥건한 사람 한 명이 누워 있었다.경호원은 깜짝 놀라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119에 전화했다.다행히 산장에도 의료진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속해 있던 서철용은 혼란스러운 틈을 타 장소월의 손을 잡고 그 층을 벗어났다.서철용이 진지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지금 소월 씨에겐 두 가지 길이 있어요. 하나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이곳을 떠나는 거예요. 기성은이 3분 뒤면 도착할 테니 그 전에 떠나야 해요. 다른 하나는... 다시 전연우의 곁에서 예전과 같은 삶을 이어가는 거예요.”“소월 씨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난 소월 씨 편이에요. 앞으로 전연우가 살든 죽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죽는다고?지금 장소월은 피를 온몸에 뒤집어쓴 채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지만 사실 그녀의 몸은 다친 곳 하나 없었다.장소월이 전연우를 죽이려 했음에도, 그는 결코 그녀의 몸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예전 그가 알던 전연우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전연우가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어떤 말은... 서철용은
송시아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무슨 일 있어요?”소피아가 빠르게 말했다.“송 부대표님, 대표님께서 다치셨어요! 대표님이 구급대원들에게 들려 방 안에서 나가는 걸 제가 똑똑히 봤어요. 온몸에 피가 가득했고, 가슴엔 칼이 하나 꽂혀 있었어요. 심각한 상태인 것 같아요. 그리고... 사모님께서 도망치셨어요.”“부대표님, 저희 지금이라도 신고할까요? 하지만... 기 비서님께선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으라고 하셨는데...”“뭐라고요? 장소월이 감히 대표님한테 손을 댔다는 거예요? 지금 어느 병원에 있어요?”송시아의 음산한 눈동자가 번뜩거렸다.“부대표님과 같은 병원이에요.”“알겠어요. 계속 지켜보고 있어요. 절대 들키면 안 돼요.”“네, 부대표님. 전 먼저 회사에 들어가 볼게요. 다른 일이 생기면 연락드리겠습니다.”송시아는 전화를 끊은 뒤 간호사에게 휠체어에 앉혀달라고 부탁했다.“환자분, 죽 안 드실 거예요?”“제 남자가 다쳤어요. 가봐야 해요.”송시아가 알아보니 전연우는 수술을 받고 있는 중이고 기성은은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기성은은 휠체어를 타고 온 여자를 보고서도 얼굴에 표정 변화 하나 생기지 않았다.송시아가 ‘수술 중’이라는 빨간색 글자를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수술실 밖에서 연우 씨가 나오길 기다리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연우 씨, 이게 바로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여자예요. 신혼 첫날 밤 가슴에 칼을 꽂아 넣는...”장소월 또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반복적으로 그녀를 시험해본 결과 이제 확신이 들었다.장소월은 확실히 그녀처럼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아니면 그토록 전연우를 좋아하면서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기성은이 쏘아붙였다.“부대표님께선 자신의 일에나 신경 쓰면 됩니다. 대표님께선 무사하실 겁니다.”그때, 돌연 수술실 문이 열렸다.간호사가 안에서 걸어 나오자 기성은이 다급히 일어나 물었다.“상황이 어떻습니까?”“...”그때, 강지훈은 위풍당당하게
“누가 타라고 했어?”강지훈의 그 말은 선명히 소민아를 가리키고 있었다.뒤에 있던 부관이 말했다.“현아 아가씨가 차에 태우셨습니다. 함께 며칠 동안 머물러야 한다면서요. 현아 아가씨가 너무 기뻐하시는 걸 보니 저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소민아는 차 가장 안쪽에 앉아 있었다. 한없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강지훈의 모습에 그녀는 그를 향해 올렸던 손을 빠르게 내려놓았다.소민아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소현아의 등 뒤로 조심스레 몸을 숨겼다.이 강지훈이라는 놈은 대표님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다.정말이지 사람을 등골이 오싹하게 만든다.대체 언니는 이런 사람과 어떻게 만났단 말인가.그들과 기성은을 비교해보니, 기성은은 그야말로 천사와 다름없었다.또한... 그녀를 보는 강지훈의 눈빛은 항상 그녀로 하여금 소름이 돋아오르게 만들었다. 서늘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볼 때마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강지훈이 말했다.“외부인을 데려가는 게 그렇게 좋아?”소현아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줍고는 톡톡 먼지를 털며 말했다.“민아는 제 동생이에요. 엄마가 언니는 동생을 잘 챙겨줘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민아는 좋은 사람이에요. 예전 절 도와 나쁜 사람을 쫓아주기도 했는 걸요. 저 민아와 함께 살고 싶어요.”“지훈 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나도 민아랑 집에 갈 거예요.”소민아는 더러워진 과자를 입에 넣으려는 소현아를 보고는 재빨리 과자를 빼앗아 창밖에 던져버리고 말했다.“바닥에 떨어진 건 먹지 마.”왜인지 현아 언니의 병증이 더 심해진 것 같았다.그녀가 팔을 뻗으니 소매 안으로 멍이 든 흔적이 보였다. 색깔이 옅지 않은 거로 보아 적어도 3, 4일 전에 다친 것 같았다.저 상처는 대체 어떻게 생긴 거지?소민아는 최대한 얼굴로 드러날 뻔한 의심을 가라앉혔다.강지훈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소민아를 데리고 북경 감옥에 가는 걸 허락한 것이다.다만 소민아는 아직 그들이 가려는 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있었다.그때, 정장을 입
“흑흑흑... 이랑 씨, 저 죽을 것 같아요!”소민아는 쓰러질 듯 힘없이 신이랑에게 다가가 이마를 그의 가슴에 기댔다. 신이랑은 조금 놀라긴 했지만, 보이지 않는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말해봐요.”신이랑이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아침밥 먹었어요?”“저 지금은 아무것도 못 먹겠어요.”“내가 집에 데려다줄게요. 일단 차에 타서 얘기해요.”쌀쌀한 아침이라 산장 길옆에 내린 서리는 아직 채 녹지 않았다. 신이랑이 손에 들고 있던 목도리를 소민아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가 눈을 내리뜨리니 검은 속눈썹이 조금씩 떨려왔다.“아침엔 추워요. 얼른 타요.”신이랑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머지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는 차로 향했다.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소민아가 차에 탄 뒤, 신이랑은 운전석에 올라타 얼이 빠진 채 앉아 있는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해주었다.신이랑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평온하게 운전했다.“어젯밤 일은 미안했어요. 민아 씨를 또 귀찮게 했네요.”“괜찮으면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래요?”소민아는 입이 가벼운 사람이라 아무것도 숨기지 못한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몇 글자 내뱉었다가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입을 닫았다.“아니에요. 이랑 씨까지 위험하게 만들 필요 없어요. 이번 일은 모르는 게 더 나을 거예요.”“알겠어요. 묻지 않을게요. 일단 조금 자요. 도착하면 깨워줄게요.”신이랑은 초췌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필시 어젯밤 무슨 일이 있어 밤을 새웠을 거라 생각했다.신이랑은 차 속도를 늦추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던 소민아는 조수석 의자에 기대어 앉아 빠르게 잠이 들었다. 시내에 들어와 신호등 앞에 멈춰 섰을 때, 돌연 소민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가 희미한 정신으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서울 경찰서입니다.”소민아가 번쩍 눈을 떴다. 단번에 모든 졸음이 사라져버렸다.25분 뒤.소민아는 경찰서에 도착했다.그녀는 이유도 모른 채 취조실에 갇혀버렸다.4, 5
떠나기 전, 소월 언니의 몸엔 핏자국이 가득했었다... 설마... 그 피... 소월 언니가 다쳐서 묻은 게 아니라 대표님의 것이었던 거야?경찰이 물었다.“소민아 씨, 더 하고 싶은 말 있어요?”소민아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문득 신이랑이 떠오른 그녀가 말했다.“저 제 친구랑 몇 마디 얘기 나눠도 될까요?”“용의 선상에서 벗어나기 전엔 소민아 씨와 친구분 모두 풀려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이 일이 두 사람과 관련이 없다는 걸 증명해 주어야만 나갈 수 있습니다.”소민아의 머릿속엔 기성은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오직 기성은 만이 당시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그녀는 정말 자신이 신이랑을 위험에 빠뜨릴 줄은 몰랐다.그녀가 기성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울린 지 1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지만 좀처럼 연결이 되지 않았다.소민아는 인내심을 갖고 한번 또 한 번 반복해 걸었다.마지막으로 그 번호에 걸었을 땐 이미 전원이 꺼진 상태가 되어버렸다.분명 기성은도 대표님이 다친 일이 그녀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소민아는 실망스러운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누군가 제 결백을 증명해 주어야만 나갈 수 있는 거예요?”“이번 건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저흰 성세 그룹 사람이 직접 와 두 사람이 이번 일과 확실히 관련이 없다는 걸 확인시켜줘야만 풀어드릴 수 있습니다.”소민아가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바깥에 서 있는 저 사람은 성세 그룹의 편집장이에요, 소설 을 쓴 작가님이기도 하고요. 저 사람은 절대 이번 일과 아무런 연관이 없어요. 몸도 좋지 않은데 먼저 보내면 안 될까요? 전 계속 여기에 있을게요.”옆에 있던 여경이 보내온 서류를 훑어보고는 말했다.“이 일은 저희가 처리할게요.”옆 유치장.여우림은 소식을 듣고 경찰서에 달려와 신이랑의 알리바이를 증명한 뒤 그를 유치장에서 빼냈다.신이랑이 형사에게 물었다.“민아 씨 상황은 어떤가요?”“죄송하지만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배가 고픈 데다 아기들이 발길질까지 하니 더욱 아팠다. “아가들아, 제발 차지 마. 규영 언니랑 미진 언니가 곧 맛있는 거 가져다줄 거야.” 그녀가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규영과 미진은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뱃속 두 녀석들이 워낙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으니 더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알았어요, 아가씨. 간단히 드실 걸 가져다드릴게요. 여기 앉아서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거듭 당부했다. 소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 이렇게 많은 언니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절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게요.” 규영과 미진은 사람들에게 다시 신신당부한 뒤에야 먹을 것을 가지러 자리를 떴다. 지난번 일 이후로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게 되어 소현아의 음식은 반드시 그들이 직접 준비해야 했다.소현아는 혼자 소파에 앉아서 작게 아기들과 이야기했다. “아가들아, 소월 이모가 전연우 그 나쁜 놈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전화를 왜 안 받은 거지?” “나 소월이가 너무 걱정돼. 근데 너희가 너무 무거워서 몰래 도망갈 수도 없어.”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은 점점 잦아드는 태동뿐이었다. 소현아는 아기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 누군가 문을 열었는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얇은 연노랑 잠옷만 입고 있던 소현아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이어 도우미들의 공손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효연 아가씨.” 천효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 보고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여기 뒀던 내 꽃병은 어디 갔어?” 계단 모퉁이에 있던 꽃병이 사라진 걸 발견한 천효연이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현아 아가씨가 다치실까 봐 잠시 장식품들을 다 치웠습니다.” 소현아?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천효연의 눈동자에 냉기가 스쳤다. “그 바보는 지훈 씨가 방에 가둬놨잖아?” 도우미
엄마와 통화를 마친 뒤, 소현아는 장소월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 그 나쁜 놈이 소월이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혹시 소월이는 강용 소식을 알지 않을까... 소현아는 강지훈이 강용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장소월의 당부를 기억하며 감히 묻지 못했다. 통화음이 두 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소현아는 흥분해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월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있잖아, 강지훈 그 나쁜 놈이 나 계속 방에 가둬놓고 문밖으로 못 나오게 했어. 나 진짜 답답해 미치겠어!” “널 여기 데려와 같이 놀려고 했는데, 강지훈의 말이 전연우 그 나쁜 놈이 너 안 보낸다고 하더라고. 둘 다 진짜 짜증 나! 내가 간신히 휴대폰 구해서 전화한 거야. 소월아, 그 나쁜 놈한테 말하고 이쪽으로 놀러 와줄 수 있어?” 한참을 떠들었을 때, 저쪽에서 낮고 위험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지훈이 내가 소월이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고? 언제 나한테 물어봤는데?” 소현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에야 머뭇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전... 전연우 씨? 왜 당신이 전화를 받아요?” 전연우가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놈이 전화를 받아서 많이 실망했나?” 소현아는 겁을 먹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잘못 들었어요! 소월이는요? 이거 소월이 폰이잖아요. 빨리 소월이한테 돌려줘요!” 전연우가 말했다. “소월이는 전화 안 받아. 다시 전화하지 마.” “소월이한테 나라고 말해줘요. 소월이가 제 전화 안 받을 리 없어요.”소현아는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소월이 찾지 마. 바빠서 너랑 소꿉놀이할 시간 없으니까.” “그리고 강지훈한테 전해. 내게 터무니없는 누명 씌우지 말라고.” 전연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현아가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현아 아가씨, 이제 일어나서 운동할 시간이에요.” 규영과 미
소현아는 얼굴에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빨 자국을 달고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강지훈을 바라보았다. 강지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소월이한테 전화해도 돼요?” “그쪽에서 받기만 한다면야.” 소현아는 이제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 강지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안 돼.” 신이 나 붕방거리던 소현아는 김빠진 공처럼 순식간에 축 처져버렸다. “하지만 방에만 계속 있는 건 너무 따분하단 말이에요.” “절대 도망 안 갈게요. 여기 아기들도 있잖아요. 그냥 아래층에서 좀 돌아다니게만 해줘요, 네?” 그녀가 지금 머무는 방은 집에 있던 침실을 완벽하게 똑같이 복원한 곳이었다. 소현아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며칠 동안 줄곧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녀는 방안을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은 갑자기 창고로 변해버렸고, 아무리 깨려고 해도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었다. 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밥을 한입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연우 그 나쁜 놈도 소월이가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건 허락하던데... 강지훈 씨는 날 침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네. 전연우보다도 더 나빠.” “...” “아래층에서만 놀아. 방을 나서면 규영과 미진이 따라갈 거야.”결국 강지훈이 한발 물러섰다. 소현아의 눈에 다시 별빛이 들어왔다. “음, 당신은 전연우 그 나쁜 놈보다 조금 나아요. 정말 아주 조금.” 아침을 먹고 난 뒤 소현아는 바로 휴대폰을 요구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거의 즉시 연결되었다. “현아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명세진의 목소리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오랜만에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소현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
강지훈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옆방에서 샤워를 마친 강지훈은 잠옷을 입고 소현아의 방으로 들어갔다.소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2.2미터나 되는 퀸사이즈 침대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말이다. 무슨 꿈을 꾸는지 웅얼거리며 입가에 흘린 침을 닦고 있었다.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강지훈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침대 곁으로 다가간 그는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배를 덮어주고는 코를 꼬집었다.“윽...”잠시 후 소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듯 눈을 떴다.“강지훈 씨 너무 싫어요.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빨리 놔줘요.”침대 곁에 있는 사람을 본 소현아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강지훈이 말했다. “말해 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제대로 말하면 놔줄게.”소현아는 씩씩거리며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숨을 쉬었다. 가슴이 뻐끔뻐끔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마치 복어 같았다.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까지 막아버렸다.몇 초 지나지 않아 소현아는 다시 웅얼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강지훈은 그저 잠시 그녀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지만, 한번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그는 손을 떼어 그녀의 허리에 얹고 반바지를 벗기려 했다.소현아는 필사적으로 바지를 붙잡고 엉덩이를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강지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손 놔. 살살할게.”“저 졸려요. 자고 싶으니까 강지훈 씨도 빨리 자요.”그녀는 강지훈이 또 키스하려 할까 봐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낑낑거리며 그를 밀치고는 죽은 척 눈을 감았다.강지훈이 어떻게 하든 소현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정말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곤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는 강지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 꼭 안겨있었다. 그녀의 코끝에 그의 단단한 가슴이 닿아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어젯밤 일이 떠오른 소현아는 그의 가슴을 힘껏 깨물었다.곧이어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