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3개월 됐을 무렵 진윤슬은 누군가에게 납치당한다. 하지만 편애가 심한 남편과 가족들은 진윤슬의 여동생인 진세린의 생일 파티에 정신이 팔려 그녀의 절박한 구조 요청 전화를 끊어버린다. 결국 진윤슬은 폭우 속에 차갑게 버려진 채 유산의 고통을 겪는다. 그 후 회사의 수석 조향사 자리를 죽마고우인 진세린에게 주는 남편 문강찬. 설상가상 향수 레시피를 팔아넘겼다는 누명까지 쓰게 되면서 그녀가 피땀 흘려 만든 향수 시리즈를 진세린에게 넘길 수밖에 없게 되는데... 마음이 식을 대로 식어버린 진윤슬은 결국 결혼의 마침표를 찍는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났을 때 진윤슬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오리엔탈 향수 마스터로 거듭났다. 수많은 찬사와 함께 그녀 곁에 여러 스타일의 남자들이 몰려든다. 편애가 심했던 가족들은 뒤늦게 후회하며 그녀에게 용서를 빌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문강찬은 진윤슬을 찾아와 눈물을 머금고 재결합을 원한다. “내 목숨이라도 줄게. 날 한 번만 더 속여줘.” 하지만 모든 증여 계약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린 진윤슬. “우린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야.”
View More문강찬은 출장 중에도 진윤슬에게 전화를 걸어 약을 꼭 제때 챙겨 먹으라고 당부했다.진윤슬은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그녀 역시 아이를 간절히 원했기에 약을 거르지 않을 것이다.기분이 한결 좋아졌고 문강찬의 당부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알았어.”한 가족이 되는 장면을 상상하던 문강찬은 갑자기 가슴이 따뜻해졌다.“윤슬아, 나 곧 돌아갈 테니까 기다려.”당장이라도 그녀를 품에 안고 따스하게 보듬고 싶었지만 이번 프로젝트가 너무 중요해서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진윤슬은 휴대폰을 쥔 채 잠시 멍하니 있었다. 문강찬에 대한 감정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그의 변화가 느껴졌고 과거의 상처를 보듬으려 애쓰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이미 입힌 상처는 쏟아진 물과 같았다.문강찬을 다시 믿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게다가 진세린이라는 죽마고우도 여전히 걸림돌이었다.진세린 생각에 진태호도 함께 떠올랐다.이미 변호사를 통해 진태호를 고소했고 곧 재판이 시작될 것이다. 이제 그녀와 진씨 가문의 관계는 완전히 끝장나는 길로 접어들었다.진윤슬은 고개를 돌려 잠든 할머니를 보았다.할머니가 그녀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거듭 말했지만 진윤슬은 알고 있었다. 할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하룻밤이 지났다.도우미가 약을 가져왔고 박순옥의 몫도 있었다.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서로의 평온한 눈빛을 바라보니 마음도 편안해졌다.약을 먹고 진윤슬이 잔을 씻던 그때 병실 문이 갑자기 벌컥 열렸다.진성국이 몇몇 사람들을 데리고 쳐들어왔다.진윤슬의 얼굴이 순식간에 확 굳어졌다.“여긴 어떻게 들어왔어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성국이 데려온 사람들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더니 침대 옆으로 끌고 갔다.화가 난 박순옥이 이불을 치며 소리쳤다.“진성국, 지금 뭐 하는 거야?”진성국은 잠시 망설였지만 진태호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어머니, 저도 이러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제게 아들이라곤 태호 하나뿐이에요. 제발 윤슬이를 설
“아이를 낳기 어렵다고 했지, 불가능하다고는 하지 않았어.”진윤슬이 입술을 깨물었다. 김해인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몸을 잘 요양하면 엄마가 될 기회가 있을 거라고.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저 위로의 말일 뿐이라는 걸.흠칫 놀란 문강찬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이분 명의셔. 다시 한번 진찰받아봐.”진윤슬은 흰 수염이 덥수룩한 한의사를 보면서 순순히 자리에 앉았다.마음 깊은 곳에서 사실 그녀도 아이를 간절히 원했다. 양의가 안 된다고 해서 한의도 안 될 거란 법은 없었다.이번 진맥은 유난히 길었다.진윤슬은 처음에는 설렘과 기대에 차 있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절망으로 가라앉았다. 저도 모르게 얼굴이 창백해졌다.‘역시 안 되는구나.’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진윤슬은 이젠 완전히 포기했다.문강찬도 초조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물었다.“아저씨, 어때요?”여현식은 한참 동안 생각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일시적으로 한기가 막혔을 뿐이야. 약 몇 첩 먹으면 뚫릴 거야.”진윤슬이 주먹을 꽉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정말입니까?”‘정말로 희망이 있는 거야? 나 다시 엄마가 될 수 있어?’문강찬의 눈에도 눈물이 어렸다. 그는 아내의 어깨를 힘껏 끌어안았다.“윤슬아, 정말이야.”진윤슬은 손으로 입을 막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문강찬은 그녀를 꽉 끌어안았고 뜨거운 감정이 가슴을 채웠다.그들은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진윤슬의 마음을 돌릴 기회가 생겼다.처방전을 써준 후 여현식은 문중엽을 진찰하러 갔다.문강찬은 따라가지 않고 직접 약을 지으러 갔다.병실로 돌아온 진윤슬은 여현식이 했던 말을 할머니에게 일일이 전했다.박순옥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손녀의 손을 꼭 잡았다.너무 다행이었다. 만약 진윤슬이 엄마가 된다면 이젠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진윤슬은 여전히 불안했다.“약을 먹어도 안 되면 어쩌죠?”또다시 실망할까 봐 두려웠다.“난 그 선생님을 믿어.”박순옥이 확신에 찬
성예빈의 말은 마침 문강찬의 마지노선을 건드렸다.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성예빈의 창백한 얼굴을 쳐다보았다.“지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하는 거야?”성예빈이 억울해하며 이를 악물었다.“진윤슬 씨, 여기 CCTV 있어요. 어디서 헛소리예요?”문강찬이 확인만 하면 그녀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게 밝혀질 것이다.진윤슬은 고개를 들어 문강찬을 쳐다봤고 목소리는 평소처럼 담담했다.“예빈 씨를 믿어, 아니면 날 믿어?”“당연히 너지.”문강찬이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성예빈이 당황해했다. 자신이 진윤슬보다 못할 줄은 몰랐다.“윤슬 씨가 거짓말했어.”진윤슬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그래요. 거짓말했어요. 그래서 어쩔 건데요?”그녀가 당당하게 인정하자 오히려 성예빈이 흠칫 놀라 할 말을 잃었다.진윤슬은 문강찬의 손을 뿌리치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사실 문강찬의 앞에서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성예빈이 그녀의 아이가 복이 없다고 말한 순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성예빈은 문강찬에게로 다가가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말했다.“오빠, 정말로 저 여자가 거짓말했어.”“내 아이가 복이 없다고 한 것도 거짓말이야?”문강찬의 준수한 얼굴에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웠다.“그건...”“성예빈, 내 와이프는 오직 진윤슬뿐이야. 넌 윤슬이의 출신과 내 아이를 모욕했어. 네 아버지한테 직접 찾아가서 대체 딸 교육을 어떻게 했는지 물어볼까?”문강찬은 몸을 돌려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성예빈이 그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난 오빠 때문에 돌아온 거란 말이야.”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문이 닫히는 소리뿐이었다.성예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를 만나려고 일부러 돌아왔건만 그의 마음에는 오직 이혼한 전처뿐이었다.병실 안.문강찬이 데려온 한의사 여현식이 박순옥의 맥을 짚고 있었다. 진윤슬은 곁에 조용히 서서 숨을 죽인 채 결과를 기다렸다.박순옥은 덤덤하기만 했다. 생로병사는 이미 받아들인 지 오래였다. 그녀가 유일하게 마음을 놓지 못하는 건
모든 일에 용서가 따르는 건 아니다.문강찬이 입을 꾹 다물었다.그때 그녀가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한 탓에 평생 후회할 일을 만들었다....진윤슬은 성예빈이 찾아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성예빈이 카네이션 꽃다발을 들고 와 침대 옆에 내려놓으며 말했다.“할머니, 인사드리러 왔습니다.”박순옥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진윤슬을 쳐다보았다.“이분은?”진윤슬의 안색이 굳어지더니 성예빈을 내보내려 했다.“성예빈 씨, 여긴 예빈 씨를 반기는 사람이 없어요.”진윤슬은 이미 그녀에게서 수상한 기운을 감지했다.성예빈은 나가지 않고 가방에서 수표를 꺼냈다.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말속에는 협박이 섞여 있었다.“이 수표는 나의 작은 성의입니다.”진윤슬은 수표를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성예빈이 벌써 돈으로 그녀를 쫓아내려 할 줄은 몰랐다.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성예빈은 미소를 지으며 수표를 옆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윤슬 씨가 조향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캐서린 마스터한테서 배울 수 있도록 추천해줄 수 있는데 어때요?”조건을 더하면 진윤슬의 마음이 무조건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다. 성예빈이 박순옥을 보며 말했다.“그리고 태호 오빠 일 말이에요. 할머니, 태호 오빠는 할머니 손자잖아요. 윤슬 씨한테 너무 심하게 하진 말라고 하세요.”“성예빈 씨.”진윤슬은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성예빈의 말을 가로챘다.“이만 나가세요.”성예빈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병실을 나섰다. 복도에 서서 오만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태호 오빠는 윤슬 씨 오빠인데 신고하면 어떡해요?”지시하는 듯한 말투는 듣는 이의 불쾌감을 자아냈다.“다른 사람은 생각 안 해도 할머니 생각은 해야죠. 할머니 연세도 많으신데 이젠 자식들 곁에서 노년을 누리면서 사셔야 하지 않겠어요?”그녀의 말에 노골적인 협박이 담겨 있었다.진윤슬은 그녀에 대한 혐오감이 마구 밀려왔다.“예빈 씨, 시간만 되면 바로 이혼 도장을 찍으러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예빈 씨랑 강찬 씨의 결혼에 방해되는 일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 문강찬이 무슨 말을 해도 진윤슬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문강찬은 미간을 주물렀다. 맞선 얘기는 더 이상 꺼내지 않고 유명한 한의사를 모셔 와 박순옥의 맥을 짚게 하겠다고 했다.“여현식 한의사 선생님을 모셔왔어. 할머니 몸을 잘 보살펴주실 거야.”진윤슬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할머니라는 걸 알기에 이번에 특히 신경을 썼다. 하지만 진윤슬은 고마워하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문강찬을 보면서 코웃음을 쳤다.할머니가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모습만 생각하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문강찬에게 왜 시원하게 이 결혼에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그녀와 그녀 주변 사람들을 자꾸만 괴롭히는지 따져 묻고 싶었다.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이젠 아무 의미도 없었다.진윤슬이 나지막하게 말했다.“성예빈 씨가 강찬 씨랑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성예빈은 집안이 훌륭하고 품위도 있었다. 문씨 가문 사모님에게 어울리는 배경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걸어가는 모습은 정말 선남선녀가 따로 없었다.만약 그들이 순조롭게 이혼한다면 성예빈이 미래의 안주인이 될 것이다.“축하해.”진윤슬이 진심으로 말했다.문강찬의 마음속에서 들끓던 감정이 식어버렸다. 칠흑 같은 눈동자로 진윤슬의 수수하고 깨끗한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우리가 아직 완전히 이혼한 것도 아닌데 벌써 날 다른 여자한테 떠넘기려고 안달이 난 거야?”차가운 목소리에 옅은 분노가 섞여 있었다.문강찬은 이미 그의 진심을 그녀에게 보여줬지만 그녀는 헌신짝처럼 버렸다.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들의 숨결이 억지로 뒤섞였다.진윤슬의 맑은 눈은 차분하기만 했다.“우린 이제 이혼 도장만 찍으면 돼.”진윤슬이 덤덤하게 말했다. 문강찬만 원한다면 이혼은 아주 순조로울 것이다.“난 그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문강찬이 가슴속의 분노를 한숨으로 토해내더니 아내를 힘껏 끌어안고 고개를 숙여 입술에 입을 맞췄다.“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야.”어두운
“쟤가 계속 강찬 오빠를 좋아했거든. 이번에 귀국한 것도 강찬 오빠랑 선보려고 귀국했대. 집안 형편도 비슷해서 양쪽 집안이 다 만족스러워한다고 들었어.”진세린은 진윤슬이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진윤슬의 표정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고 너무나 평온했다.진세린이 실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집안도 빵빵해서 정말 잘 어울려.”진윤슬은 진세린의 속셈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가소롭기만 했다. 진태호 핑계를 대고 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시시콜콜한 연애 감정이나 따지고 있었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진윤슬이 코웃음을 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문강찬과 성예빈은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진윤슬을 발견했다.문강찬의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진윤슬.”진윤슬은 차가운 태도로 고개를 돌렸다.“나한테 볼일 있어?”문강찬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옆으로 잡아당겼다.성예빈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품위를 유지하며 물었다.“오빠, 이분은 누구셔?”문강찬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내 와이프.”네 글자에 그의 태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성예빈의 얼굴에 나타났던 미소가 옅어졌다. 문강찬과 아내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문강찬이 자기 마음을 깨달았을 줄은 몰랐다.“진윤슬 씨, 반가워요.”그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진윤슬은 그들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아 힘껏 손을 빼내며 예의 바르게 웃었다.“이혼 숙려 기간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성예빈 씨. 그럼 계속 얘기 나누세요.”그녀는 발걸음을 재촉해 자리를 떠났다.문강찬이 그녀를 뒤쫓아 나왔다.“윤슬아, 내 말 좀 들어봐.”그는 문 앞에서 진윤슬의 손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할아버지께서 마련한 자리라 어쩔 수 없이 나온 거야. 난 저 여자한테 아무 감정 없어.”진윤슬은 이런 변명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어쨌거나 곧 이혼 도장을 찍을 사이니까.두 사람은 이제 아무 관계도 아니기에 문강찬이 누구와 선을 보든 아무렇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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