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도대체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엄마가 그 성격을 죽이고 살라고 누누이 말했잖아. 아저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안 그래도 지금 강씨 집안에서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단 말이야.”심유는 마음이 약해져 따끔하게 혼내진 못했다.강용이 그런 엄마의 마음을 읽었는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가서 쉬세요.”강용은 그녀를 돌려보낸 뒤 서재 문 앞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저녁 열한 시 반이 되었지만 서재 안에 있는 사람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그때 강용의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자를 힐끗 본 그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장소월은 욕실에서 씻고 나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아냈다. 지금은 강용의 밤 생활이 시작되는 시간이라 그가 뭘 하고 있는지 돌연 검사에 나선 것이다.연결음이 울리자마자 전화는 끊겼다.장소월이 이마를 찌푸렸다. 전화를 꺼버린다고?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그녀는 곧바로 다시 걸었다. 하지만 야속한 연결음만 울릴 뿐이었다.네 번이나 걸어서야 전화가 연결되었다.장소월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이제야 받아? 강용, 너 대체 뭐 하는 거야?”강용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꼭 여자친구 같네. 왜! 내가 바람이라도 필까 봐?”“또 밖에서 허튼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공부 열정이 벌써 식은 거야? 오늘 너한테 내준 시험지는 다 풀었어? 너 계속 이러면 내 전부 시간을 너한테 낭비한다고 해도 널 구제할 수 없어.”“진짜 사납네. 앞으로 어떤 남자가 이런 널 데려가겠어. 잠시 후에 얘기해. 일단 끊어!”통화가 끊긴 순간, 장소월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핸드폰 너머론 어떠한 소음도 들리지 않고 조용했다.오랫동안 전화를 받지 않다가 받은 걸 보면 아마 그녀에게 들킬까 봐 조용한 곳을 찾아 숨어 전화를 받았을 것이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침대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진동했다. 강용이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시험지는 다 풀었어. 수학 마지막 문제는 작년 수능 시험 문제랑 비슷하더라
새벽 두 시.강용은 방으로 돌아와 채 닫히지 않은 문틈 사이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불빛을 바라보았다. 안에선 흐느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무언가를 애써 참아내고 있는 듯했다.강용은 문을 열려고 뻗은 손을 결국 내려놓았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물고 복도 끝자락에 걸어가 불을 붙였다.끝도 없이 펼쳐진 칠흑 같은 깜깜함 속에서 강용의 눈동자엔 더욱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그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하늘에서 빛나는 몇 안 되는 별을 올려다보았다....다음 날, 태양이 떠오르고 날이 밝았다.따뜻한 햇볕이 방에 내리쬐었다...장소월은 일찍 일어나 베란다에 있는 식물에 물을 주었다. 거리에선 몇 명의 상인들이 수레를 끌고 부지런히 지나가고 있었다. 또 누군가의 집에서 만든 음식 냄새도 바람을 타고 풍겨왔다.이곳의 사람들은 평범하고 고단해 보였지만 그녀는 그들이 살고 있는 평안하고 인간미 넘치는 삶이 부러웠다.오늘 그녀는 집을 쓸고 닦으며 깨끗이 청소했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심심할 때, 그녀는 항상 집안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곤 한다.그녀는 전연우는 말한 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3일 후 그는 틀림없이 그녀를 데리러 올 것이다.그녀가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하지만 이제 이곳의 생활에 익숙해졌다.그녀는 계속 월세를 낼 생각이었다. 설사 줄곧 살지 않는다고 해도 만에 하나 또 쫓겨나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다면 이곳에 머무를 수 있으니 말이다.점심 12시까지 기다렸는데도 강용은 오지 않았다.예전 그는 항상 아무리 늦어도 열한 시 반엔 도착했었다.장소월도 더이상 기다리지 않고 홧김에 대명산의 스키장으로 향했다.다음 날 새벽 5시쯤, 산꼭대기에 올라가 설산의 일출을 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런 풍경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버스로 한 시간가량 달리자 산에 도착했다. 그녀는 표를 산 뒤 사람들과 함께 케이블카를 탔다. 20분이 지나니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이곳의 기온은 너무 차가워 장소월로 하여금
호텔 뒤편으로 몇 분 걸어가니 스키장에 도착했다. 장소월은 보드 장비를 착용하고 조심스레 뒤뚱뒤뚱 움직였다.“... 걱정하지 말고 대담하게 이동해요. 리듬을 잘 장악하고요. 넘어지면 제가 일으켜 줄게요.”거의 처음으로 이런 액티비티를 접한 장소월은 너무나도 무서웠다. 보호장치를 입고 있다고 해도 만에 하나 부딪힌다면 분명 아플 것이다.한편으론 그녀는 눈앞의 사람들처럼 시원하게 맨 밑까지 내려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도저히 발을 뗄 용기가 나지 않았다.코치가 그녀의 옆으로 걸어가 어떻게 보드를 통제해야 하는지 가르쳐줬다.“넘어지면 얼마나 아플지를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럼 영원히 배울 수 없어요.”“네.”장소월은 이를 악물고 30분이 넘게 연습했음에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반면 함께 배웠던 8살짜리 남자아이는 빠른 속도로 배워냈다.그 외 애굣덩어리 아가씨가 한 명 있었는데 연습하며 수차례 미끄러 넘어져 결국엔 코치에게 벌컥 화를 냈다. 남자친구와 함께 왔지만 그는 혼자 스키를 타러 가버렸다고 한다.“아빠, 저 누나 진짜 멍청해요! 아직도 못해요.”남자아이가 천진한 얼굴로 장소월을 가리키며 깔깔 웃어댔다.아버지는 얼른 아이의 입을 막고는 호통을 쳤다.“그런 말 하면 안 돼. 빨리 이모한테 사과해!”이모?장소월은 화살이라도 맞은 듯 가슴이 시큰거렸다.올해 18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모라니.저 부자 두 명은 똑같이 예의를 모른다.장소월은 예쁜 얼굴을 살짝 드러내고 미소를 지었다.“꼬마야, 사람을 욕하면 입술이 뭉개지고 승냥이한테 뜯겨간다는 거 아빠가 안 알려줬어?”남자아이는 그 말을 정말 믿었는지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가 아무리 타일러도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코치님, 우리 저쪽으로 가서 해요.”“그래요.”그녀는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이 고작 꼬마보다도 못하다는 걸 말이다.가장 아래는 경사가 작은 초급자의 구역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급자 구역에서 즐기고 있었다.남자들은 보통 예쁜 여자를 대할 때 인내심이
전연우의 주위에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는 것에 대해 장소월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전연우는 마음속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밖에서 방탕한 습관을 고칠 수 없었다.장소월은 스키 코치의 연락처를 추가했지만 그저 형식적이었다. 아마 다시는 이 스키장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정말 스키에 재능이 없는 것 같았다.이곳은 설산 정상이고, 영하 십여 도의 날씨라서 장소월이 두껍게 입었지만 여전히 추웠다.전연우가 그 여자에게 다가갔고, 장소월은 떠날 준비를 했다. 그녀는 고글과 복면 안대를 쓰고 자신을 꽁꽁 싸맸다.그녀가 입을 열지 않는 한, 전연우는 그녀를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장소월이 아무것도 못 본 척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았다.갑자기,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비켜, 비켜!”장소월이 고개를 들자, 누군가 산비탈에서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이미 멈출 수 없었고, 장소월과 부딪치려 할 때, 한 그림자가 갑자기 나타나 장소월의 허리를 잡고 옆으로 옮겨, 장소월은 위기를 모면했다.장소월은 눈동자가 움츠러들고, 빠르게 내려오던 사람을 보았다. 서 있던 사람이 지금은 굴러내려 가고 있었다.장소월은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을 구한 사람을 보고는 덤덤하게 말했다.“고마워요!”“전연우!”나청하가 재빨리 달려와 전연우를 잡아당기고 말했다.“자기야. 왜 낯선 여자를 구하려고 목숨을 던져? 봐봐, 안 다쳤어?”전연우는 나청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깊은 눈으로 장소월을 바라보았다.“이제 오빠를 보고도 모르는 척하는 거야?”확신에 찬 그의 눈빛을 보니 장소월은 더 이상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담담하게 웃었다.“그럴 리가? 그저 오빠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나청하는 장소월에 대한 적개심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어느새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소월이였구나. 학교에서 너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 난 너보다 한 학년 위야. 내 이름은 나청하고 지금은 연기 반에 있어.”나청하는 손을 내밀었고, 장소월도 서서 악수를 했다.“안녕하세요
나청하는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 웃으며 말했다.“그래, 학생은 연애보단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그녀의 목소리에 겁먹은 기색이 역력한 걸 보니 그녀도 전연우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장소월은 고개를 숙이고 앞에 놓인 주스를 보고 빨대를 들고 저었다.“정학당했어요. 마침 이 기회에 나와 놀고 있는데 마침 만난 거죠.”“두 사람은 사귄 지 얼마나 됐어요?”나청하는 행복한 표정으로 전연우의 팔을 껴안고 다정하게 그의 몸에 기대었다.“거의 1년 정도? 맞지? 자기야?”나청하는 몸을 돌려 전연우를 보았다. 전연우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자신의 감정을 감추더니, 그가 눈을 떴을 때, 눈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고, 물잔을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답을 하지 않았다.누구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장소월은 나청하의 얼굴을 보고 낯이 익은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나청하의 미간이 자신과 닮은 것 같았다.장소월은 눈앞의 설경을 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오빠한테 이렇게 오래 사귄 여자친구가 있는 줄 몰랐네요. 언니가 말하지 않았다면 오빠는 계속 저한테 비밀로 했을 거예요.”나청하는 좀 부끄러웠다.전연우는 깊은 눈으로 장소월을 보더니 말했다.“미리 안 알려줬다고 오빠를 탓하는 거야?”“그럴 리가! 오빠 나이도 적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나도 당연히 기쁘지!”“그래?”“당연한 거 아니야?”장소월은 그의 눈빛에 온몸이 불편했고, 휴대폰을 들어 답장하는 시늉을 했다. 디저트가 막 올라오자 장소월이 입을 열었다.“진짜 죄송한데 전 다른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다음에는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언니.”장소월의 호칭에 나청하는 싱글벙글하여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벌써 간다고? 내가 배웅해줄게.”“괜찮아요. 제 친구가 이미 저 데리러 왔어요. 오빠... 재밌게 잘 놀아.”“그럼 엘리베이터까지만 배웅할게.”“네.”장소
그녀의 출신은 별로 좋지 않았다. 1년 전, 아버지가 도박에 빠져 카지노에 사채를 빌렸다.아버지는 빚을 갚지 못해 딸을 돈을 갚는 도구로 삼아 천하일성 지하회소에 팔아 술 시중을 들게 했다.그녀는 술은 대접하지만 몸은 팔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손님이 미쳐 그녀를 룸으로 끌고 가서 강제로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그녀는 도망치는 과정에 전연우를 만났다.전연우는 나청하를 도왔고, 그녀의 처지를 알게 된 후, 그녀를 학교에 보내주었다. 당시 나청하는 돈을 벌기 위해 학교를 그만둔 상태였다. 만약 전연우가 없었다면, 지금의 그녀도 없었을 것이고, 맘 편히 학교도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장소월은 방에서 짐을 싸고 호텔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체크아웃하려는데 프런트 직원이, 어젯밤 눈이 와서, 지금 산꼭대기에 눈사태가 일어나 유일한 도로가 막혔다고 알려주었다.케이블카도 정전되고, 점점 범위가 커지고 있어 이미 여러 곳에서 정전이 발생했다.지금 호텔은 비상전력을 쓰고 있지만, 8시간밖에 유지할 수 없었다.올 수 있는 구급대원들이 모두 출동하여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었고, 케이블카에 갇힌 사람들도 있었다.오늘은 정말 운수가 없는 날이다.반갑지 않은 사람을 만난 이후로 불운한 일이 속출했다.도로가 언제 통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녀는 옷을 많이 가져오지 않았다.그녀가 호텔 방으로 돌아가 막 문을 여는데, 갑자기 문 뒤에서 누군가 그녀를 안으로 끌어당기더니 등으로 힘차게 문을 닫았다. 장소월은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그 사람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장소월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애써 침착한 척하며 앞에 있는 사람을 보았다. 지금 다른 사람도 없으니 남매의 정을 연기할 필요도 없었다.“여자친구 놔두고 왜 여기 왔어? 화내면 어떡해?”방금 전연우가 장소월을 살짝 만지기만 했을 뿐인데, 나청하의 눈에는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았다.장소월은 그녀의 연적이 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전연우는 어떻게 그녀가 여기 묵는 것을 알고 있을까?
장소월은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하지만, 저는 아는 남성분이 없어요. 그분이 착각하셨나 보네요.”“바로 오늘 손님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계셨던 그 남성분이세요.”장소월은 단호하게 말했다.“모르는 사람이에요. 죄송하지만 이건 도로 가져가세요.”웨이터는 장소월의 단호한 모습에 더 이상 방해하지 않았다.장소월은 문을 닫고 방해하지 말라는 버튼을 눌렀다.12층에 있는 바 전망대.“나와서 눈 구경도 하고 스트레스도 풀라고 데려왔는데 왜 돈을 뜯긴 구린 얼굴을 하고 있어?”서철용은 옆에 있는 여자를 껴안고, 주전자에 있는 차를 마주 앉은 사람에게 따라주었다.서철용은 잔을 들어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향기가 은은하고 맛은 진했다.입을 오므리고 찻잔을 내려놓았다.“같이 온 여자는 어디 갔어? 싸웠어?”바로 이때, 웨이터가 다가왔다.“안녕하세요, 손님.”전연우는 차갑게 말했다.“뭐죠?”웨이터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남자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기가 죽었다. 그의 몸에는 사람을 두렵게 하는 기운이 감돌았다.“그분께 주라고 하신 디저트를 갖다 드렸더니, 손님과 모르는 사이라고 하시네요.”가뜩이나 어둡던 남자의 얼굴은 서리가 내린 것 같았다.서철용은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두고 가세요. 이따가 저희가 직접 갖다 주죠.”“네, 알겠습니다.”웨이터는 카트를 밀고 왔다. 차를 마시던 테이블에는 디저트로 가득했고, 남은 것은 한쪽에 놓았다.전연우의 호의를 거절한 여자는 장소월이 처음이었다.서철용은 조롱하듯 말했다.“꽤 똑똑한데?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음식은 먹지 않잖아. 장해진이 죽기 전까지만 버틸 줄 알았는데, 왜 지금은 그 여자한테 마음이 약해진 거야? 작작 해. 네가 한 일은 이미 돌이킬 수 없어. 장소월한테 마음을 쓸 필요가 없다고!”전연우는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네 일이나 신경 써!”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긴 다리로 짜증스럽게 걸어 나갔다.장소월은 확실히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을 두려워했다. 똑같은 일
두피의 통증이 가시기도 전에 장소월은 심하게 소파에 내동댕이쳐졌다.그녀는 발버둥 치며 일어나려 했지만, 전연우에 의해 눌리고 말았다.“오빠를 보고 왜 도망가? 아직도 도망가고 싶어?”전연우는 웃고 있었다. 마치 목숨을 앗아가는 악마의 웃음과도 같았다.“뭐 하는 짓이야?”장소월은 소파 구석에 움츠러든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전연우는 흰색 케이스의 아주 예쁜 케이크 하나를 집어 들고, 그녀 옆에 앉아 포장을 뜯었다.“너 케이크 좋아하잖아? 오빠가 직접 먹여줄까?”전연우는 숟가락을 들고 그녀의 입가에 건네주었다.장소월은 눈을 붉히며 말했다.“이번엔 또 무슨 약을 탄 거야?”장소월은 전연우의 반응을 살피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장소월은 손을 들어 케이크를 내팽개쳤다.“죽을까 봐 못 먹겠어! 꺼지라고!”장소월은 전연우를 밀어냈고,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그녀가 막 일어나려는데 전연우는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졸랐다. 단단하고 뜨거운 몸이 장소월에게 다가오자 그녀는 몸부림쳤다.“전연우, 이거 놔!”“죽을까 봐 무서워? 전에는 안 무서웠나? 아직 나쁜 마음을 먹기 전이니까 순순히 말을 듣는 게 좋을 거야!”전연우가 손을 내밀자 장소월은 무의식적으로 공포에 질려 피했다.전연우는 목 주위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고, 그곳은 이미 빨갛게 부어올랐다.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몰라 장소월은 심장을 조이며 감히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머리카락에서는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지만, 마음은 한없이 차가웠다.병 주고 약 주는 것은 전연우의 특기였다.아직도 장소월을 예전의 그 어린 소녀로 생각하는 것일까?한 시간 후.남자가 또 케이크를 먹여주자 장소월은 혐오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렸다.“못 먹겠어.”앞으로 그녀는 케이크를 입에도 대지 않을 것이다.그녀의 순종에 전연우는 확실히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장소월은 이미 5개의 케이크를 먹었다. 한계를 뛰어넘는 양이라 속이 울렁거리고 토하고 싶어졌다.전연우는 그제야 손을 놓았고, 장
배가 고픈 데다 아기들이 발길질까지 하니 더욱 아팠다. “아가들아, 제발 차지 마. 규영 언니랑 미진 언니가 곧 맛있는 거 가져다줄 거야.” 그녀가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규영과 미진은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뱃속 두 녀석들이 워낙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으니 더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알았어요, 아가씨. 간단히 드실 걸 가져다드릴게요. 여기 앉아서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거듭 당부했다. 소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 이렇게 많은 언니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절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게요.” 규영과 미진은 사람들에게 다시 신신당부한 뒤에야 먹을 것을 가지러 자리를 떴다. 지난번 일 이후로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게 되어 소현아의 음식은 반드시 그들이 직접 준비해야 했다.소현아는 혼자 소파에 앉아서 작게 아기들과 이야기했다. “아가들아, 소월 이모가 전연우 그 나쁜 놈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전화를 왜 안 받은 거지?” “나 소월이가 너무 걱정돼. 근데 너희가 너무 무거워서 몰래 도망갈 수도 없어.”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은 점점 잦아드는 태동뿐이었다. 소현아는 아기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 누군가 문을 열었는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얇은 연노랑 잠옷만 입고 있던 소현아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이어 도우미들의 공손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효연 아가씨.” 천효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 보고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여기 뒀던 내 꽃병은 어디 갔어?” 계단 모퉁이에 있던 꽃병이 사라진 걸 발견한 천효연이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현아 아가씨가 다치실까 봐 잠시 장식품들을 다 치웠습니다.” 소현아?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천효연의 눈동자에 냉기가 스쳤다. “그 바보는 지훈 씨가 방에 가둬놨잖아?” 도우미
엄마와 통화를 마친 뒤, 소현아는 장소월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 그 나쁜 놈이 소월이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혹시 소월이는 강용 소식을 알지 않을까... 소현아는 강지훈이 강용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장소월의 당부를 기억하며 감히 묻지 못했다. 통화음이 두 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소현아는 흥분해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월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있잖아, 강지훈 그 나쁜 놈이 나 계속 방에 가둬놓고 문밖으로 못 나오게 했어. 나 진짜 답답해 미치겠어!” “널 여기 데려와 같이 놀려고 했는데, 강지훈의 말이 전연우 그 나쁜 놈이 너 안 보낸다고 하더라고. 둘 다 진짜 짜증 나! 내가 간신히 휴대폰 구해서 전화한 거야. 소월아, 그 나쁜 놈한테 말하고 이쪽으로 놀러 와줄 수 있어?” 한참을 떠들었을 때, 저쪽에서 낮고 위험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지훈이 내가 소월이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고? 언제 나한테 물어봤는데?” 소현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에야 머뭇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전... 전연우 씨? 왜 당신이 전화를 받아요?” 전연우가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놈이 전화를 받아서 많이 실망했나?” 소현아는 겁을 먹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잘못 들었어요! 소월이는요? 이거 소월이 폰이잖아요. 빨리 소월이한테 돌려줘요!” 전연우가 말했다. “소월이는 전화 안 받아. 다시 전화하지 마.” “소월이한테 나라고 말해줘요. 소월이가 제 전화 안 받을 리 없어요.”소현아는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소월이 찾지 마. 바빠서 너랑 소꿉놀이할 시간 없으니까.” “그리고 강지훈한테 전해. 내게 터무니없는 누명 씌우지 말라고.” 전연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현아가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현아 아가씨, 이제 일어나서 운동할 시간이에요.” 규영과 미
소현아는 얼굴에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빨 자국을 달고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강지훈을 바라보았다. 강지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소월이한테 전화해도 돼요?” “그쪽에서 받기만 한다면야.” 소현아는 이제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 강지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안 돼.” 신이 나 붕방거리던 소현아는 김빠진 공처럼 순식간에 축 처져버렸다. “하지만 방에만 계속 있는 건 너무 따분하단 말이에요.” “절대 도망 안 갈게요. 여기 아기들도 있잖아요. 그냥 아래층에서 좀 돌아다니게만 해줘요, 네?” 그녀가 지금 머무는 방은 집에 있던 침실을 완벽하게 똑같이 복원한 곳이었다. 소현아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며칠 동안 줄곧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녀는 방안을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은 갑자기 창고로 변해버렸고, 아무리 깨려고 해도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었다. 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밥을 한입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연우 그 나쁜 놈도 소월이가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건 허락하던데... 강지훈 씨는 날 침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네. 전연우보다도 더 나빠.” “...” “아래층에서만 놀아. 방을 나서면 규영과 미진이 따라갈 거야.”결국 강지훈이 한발 물러섰다. 소현아의 눈에 다시 별빛이 들어왔다. “음, 당신은 전연우 그 나쁜 놈보다 조금 나아요. 정말 아주 조금.” 아침을 먹고 난 뒤 소현아는 바로 휴대폰을 요구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거의 즉시 연결되었다. “현아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명세진의 목소리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오랜만에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소현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
강지훈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옆방에서 샤워를 마친 강지훈은 잠옷을 입고 소현아의 방으로 들어갔다.소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2.2미터나 되는 퀸사이즈 침대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말이다. 무슨 꿈을 꾸는지 웅얼거리며 입가에 흘린 침을 닦고 있었다.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강지훈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침대 곁으로 다가간 그는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배를 덮어주고는 코를 꼬집었다.“윽...”잠시 후 소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듯 눈을 떴다.“강지훈 씨 너무 싫어요.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빨리 놔줘요.”침대 곁에 있는 사람을 본 소현아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강지훈이 말했다. “말해 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제대로 말하면 놔줄게.”소현아는 씩씩거리며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숨을 쉬었다. 가슴이 뻐끔뻐끔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마치 복어 같았다.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까지 막아버렸다.몇 초 지나지 않아 소현아는 다시 웅얼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강지훈은 그저 잠시 그녀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지만, 한번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그는 손을 떼어 그녀의 허리에 얹고 반바지를 벗기려 했다.소현아는 필사적으로 바지를 붙잡고 엉덩이를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강지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손 놔. 살살할게.”“저 졸려요. 자고 싶으니까 강지훈 씨도 빨리 자요.”그녀는 강지훈이 또 키스하려 할까 봐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낑낑거리며 그를 밀치고는 죽은 척 눈을 감았다.강지훈이 어떻게 하든 소현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정말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곤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는 강지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 꼭 안겨있었다. 그녀의 코끝에 그의 단단한 가슴이 닿아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어젯밤 일이 떠오른 소현아는 그의 가슴을 힘껏 깨물었다.곧이어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