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하강시 사람이라면 서씨 가문의 서지혁이 냉혹하고 단호하며 여지라곤 남겨두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4년 전에 완벽하게 속아 넘어갔다. 이름도 모르는 여자와의 뜨거웠던 하룻밤. 그리고 10개월 후, 갓 태어난 아기를 빌미로 거액을 뜯어간 그녀.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이토록 대담한 일을 벌인 걸까? 모두의 궁금증이 하늘을 찔렀다. 나중에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에 그녀는 서씨 가문 본가로 들어갔다. 모두들 복수심에 불탄 서지혁이 절대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아무리 아들이 있다 해도 키우지 않았는데 모자간에 정이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서씨 가문 본가의 정원. 한 새침한 여자가 나무 의자에 앉아 옆에서 서류를 보던 남자의 발목을 장난스럽게 톡톡 건드리며 웃고 있었다. 그녀의 발목을 덥석 잡은 서지혁. “또 힘이 생겼어?” 여자가 콧방귀를 뀌었다. “창피하게 왜 그래?”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건강을 회복한 아이가 달려왔다. “우리 엄마 괴롭히지 말아요.”
Voir plus하시윤은 서무열과 원정희가 손을 잡고 서경민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에서 정신을 채 차리기도 전에 그의 마지막 한마디에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다.과거 서인준과 함께 서무열의 죽음이 서경민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하며 귓속말을 나눈 적은 있었다.당시 두 사람 모두 그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그건 그저 짐작일 뿐이었다.그런데 지금 서경민이 직접 내뱉은 자백은 하시윤에게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다.하시윤은 입술을 달싹였으나 차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그때, 정적만이 감돌던 넓은 집 안에서 윙윙거리는 진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휴대폰 진동 소리였다.하시윤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주머니를 뒤졌지만 소리의 근원지는 그녀의 주머니가 아니었다.서경민이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더니 피식 웃으며 화면을 하시윤 쪽으로 돌렸다.“지혁이의 전화네요.”화면에는 서지혁의 이름이 떠 있었다.하시윤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지혁 씨가 내가 여기 온 걸 알아요?”그렇다면 서지혁이 왜 자신에게 전화하지 않고 서경민에게 전화를 했을까.서경민은 휴대폰을 무음으로 돌리고는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어젯밤에도 전화를 했더군요. 내가 받지 않았을 뿐이죠.”그제야 하시윤은 상황이 이해가 갔다.조인경과 서시은의 실종 사건에 대해 서지혁은 서경민에게 직접 따져 묻겠다고 했었다.서경민이 어제 전화를 받지 않았으니 오늘 다시 전화를 건 것이 분명했다.하시윤도 그 일이 떠올라 서경민을 쏘아보며 물었다.“그럼 어제 일, 정말 회장님이 한 짓인 거예요?”이제 와서 숨길 게 없다는 듯 서경민이 시원하게 인정했다.“나 맞아요.”그가 덧붙여 물었다.“많이 놀랐나 보군요?”그의 말투는 너무나 가벼워서 어제의 일이 그저 사소한 농담이나 장난조차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하시윤은 이를 악물었다. 증오심이 다시금 들끓었다.“제정신이세요? 그 어린애를 상대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별일 없지 않았나요.”서경민이 말을 받았다.“나도 생각이 있어서 한 일
경호원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하시윤은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지윤정은 응급실 로비 대기석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미 상처 처치는 끝난 모양인지 얼굴에 밴드가 붙어 있었다. 상처가 그리 크지는 않아 보였지만 얼굴이라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놀란 하시윤이 달려가 물었다.“얼굴을 다친 거예요? 많이 심해요?”하시윤을 보자마자 지윤정은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입술을 삐죽거렸다.“두 바늘이나 꿰맸어요.”하시윤은 급히 손수건을 꺼내 지윤정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울지 마요. 눈물 들어가면 덧나니까요.”하시윤이 다시 물었다.“상대방은 어떻게 됐는데요?”“그 여자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다쳤어요. 그런데 그쪽은 몸을 다쳤단 말이죠.”지윤정은 억울해 죽겠다는 듯 독기를 품고 덧붙였다.“그쪽이 먼저 손찌검했어요. 내가 오늘 컨디션만 좋았어도 아주 박살을 냈을 텐데.”하시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그 남자는요? 윤정 씨를 이 지경으로 만든 그 인간은 지금 어디 있어요?”지윤정은 대답 대신 고개를 홱 돌려 한쪽을 가리켰다. 하시윤이 시선을 따라가니 약 봉투를 든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남자는 지윤정을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그리고 하시윤을 보더니 아는 체를 해야 할지 말지 망설이는 눈치였다.그는 하시윤에게 인사를 건네는 대신 지윤정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약 다 받아왔어. 이제 가자.”하시윤이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지윤정과 비슷한 또래에 인상은 꽤 순박해 보였다.지윤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시윤의 팔을 꽉 껴안았다. 그리고 남자에게 싸늘하게 쏘아붙였다.“약은 나한테 주고 넌 그냥 가.”지윤정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나 지금 너 보고 싶지 않거든.”남자는 입술을 깨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내 설명 좀 들어주면 안 될까? 정말 속이려던 게 아니야. 그 여자랑은 진작에 끝났어. 오늘 왜 찾아와서 난리를 피웠는지 나도 진짜 모르겠다고. 그 계정 내 거 아니야. 진짜 아니라고. 못 믿겠으면 내 휴대폰 다
하시윤은 아이를 산후 도우미에게 건네며 방으로 데려가라는 눈짓을 보낸 뒤, 다시 서지혁을 돌아보았다.산후 도우미는 그들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군말 없이 아이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갔다.배불리 먹고 온 서시은은 오는 내내 옹알이를 멈추지 않더니 이제는 조금 피곤해 보였다.산후 도우미가 아이의 몸을 닦아주고 옷을 갈아입혀 아기 침대에 눕히자 서시은은 스스로 편안한 자세를 잡더니 혼자 손가락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산후 도우미는 안방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병원에 다녀왔으니 옷부터 갈아입어야 했다.거실을 지나치던 산후 도우미의 귀에 서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15층 사는 놈이야.”산후 도우미는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가 얼른 숨소리를 죽이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문을 닫는 찰나 서지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이미 연행됐어.”서지혁과 하시윤이 사는 곳은 16층이었고 평소 이웃들과는 교류가 전혀 없었다.하시윤도 외출이 잦은 편이 아니었기에 15층에 누가 사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하시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그 사람이 왜 그런 짓을 했대?”서지혁이 대답했다.“밤마다 애 우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잤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화풀이 좀 하려고 그랬대.”15층에 사는 독신 남성은 밤마다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에 원한이 쌓여 따끔한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진술했다.서지혁이 처음 이곳에 입주할 때 조사한 바로는 15층 집주인은 세 식구였다. 하지만 오늘 확인해 보니 그 남자가 살고 있었다.남자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집주인의 먼 친척인데 집주인 가족들이 여행을 간 사이 며칠 머물러 온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며칠 동안에도 아기 소리가 멈추지 않아 홧김에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연재윤이 물었다.“어떻게 찾아낸 거야?”서지혁이 대답했다.“옥상에 CCTV가 있었어.”범인은 CCTV의 위치를 미리 알고 있었는지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유모차를 먼저 옥상으로 밀고 올라가 구석에 세워둔 뒤, 다시
하시윤은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아이를 받아 안았다.핑크색 겉싸개 안에서 서시은은 규칙적인 숨을 내뱉으며 곤히 잠들어 있었다.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진 하시윤은 아이를 품에 꼭 껴안고 얼굴을 비볐다.“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운전석에 앉은 서지혁은 백미러를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는 깊은숨을 몇 번 내쉬고 나서야 요동치는 감정을 간신히 억눌렀다.차 밖에는 연재윤과 산후 도우미가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차에 올라타서 구체적인 상황을 살피고 싶어 했다.서지혁이 연재윤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넌 따라오지 마.”서지혁이 덧붙였다.“네 일이나 보러 가라고.”연재윤은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네 차 안 타도 되니까 내 차로 병원까지 따라가는 건 괜찮지?”연재윤이 투덜거렸다.“나도 걱정돼서 미치겠단 말이야.”서지혁은 그와 실랑이할 기운조차 없었다.“마음대로 해.”서지혁은 산후 도우미에게 타라는 손짓을 했다.“가죠.”차가 부드럽게 출발하자 하시윤은 코를 훌쩍이며 그제야 조인경의 안부를 물었다.“지혁 씨, 인경 아주머니는?”“다른 차로 병원에 먼저 보냈어.”서지혁이 대답했다.“발견했을 때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거든.”산후 도우미가 다급히 물었다.“두 사람을 어디서 찾은 거예요? 누가 납치라도 했던 건가요?”곁에 앉아 있던 경찰이 대신 대답했다.“옥상에서 찾았습니다. 관리소 말로는 처음에 옥상을 수색했을 때 아무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그쪽으로 옮겨진 모양입니다.”경찰이 말을 이었다.“엘리베이터 안의 CCTV가 파손된 걸 보면 범인이 아주 치밀하게 준비한 게 분명해요.”그는 서씨 가문의 복잡한 집안싸움을 알 리가 없었기에 그저 질 나쁜 범죄자의 소행이라 여기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 아이는 무사합니다. 이렇게 어린아이는 조금만 험하게 다뤄도 큰일 날 뻔했는데 말이죠.”하시윤은 서시은을 품에 파묻을 듯 꽉 껴안았다. 끊임없이 자책감이 밀려왔다.“내 탓이야
차가 서씨 가문 저택을 향해 달렸다.국도를 벗어나 산 중턱쯤 올랐을 때, 멀리 길가에 세워진 차 한 대가 보였다. 차 주변에는 서너 명의 남자가 내려서 있었는데 어떤 이는 차에 기대어 있었고 어떤 이는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일행의 차가 다가오자 그들은 몸을 일으켜 길 쪽으로 두어 걸음 다가왔다.서지혁은 무시하고 지나치려 했으나 조수석에 앉아 있던 서인준이 갑자기 몸을 바짝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형, 저 사람 집사 아저씨 아들 같은데?”그 말에 서지혁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조금 더 나아가 멈추자 길가에 있던
서지혁 역시 곧바로 소식을 접했다. 유골이 발굴되자 대나무숲에 상주하던 경찰들은 대부분 철수했지만 폴리스라인은 여전히 쳐져 있었고 현장은 엄격히 통제된 상태였다.그는 저녁 무렵까지 업무를 마친 뒤에야 구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은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자마자 말을 꺼냈다.“안 그래도 전화를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그가 덧붙였다.“혹시 바쁘지 않으시면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여쭤보고 싶은 게 좀 있어서요.”서지혁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정말로 뭐가 나오긴 했나 보군요?”상
집 구경을 마친 일행은 다시 본채로 돌아왔다.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막 귀가한 듯한 서경민과 마주쳤다. 기척을 느낀 그는 고개를 돌려 일행을 보았다.“형사님, 안녕하세요.”구 형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회장님, 실례가 많았습니다.”“다 둘러보셨습니까?”구 형사가 그렇다고 답하자 서경민은 소파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권했다.“앉아서 이야기하시죠.”모두 자리에 앉은 뒤, 서경민이 먼저 입을 뗐다.“한숨 돌릴 틈도 없이 움직이시는 걸 보니 위에서 압박이라도 내려온 모양이죠?”구 형사가 씁쓸하게 웃었다.“사건이 너무 오랫
서지혁은 먼저 서인준의 팔을 툭툭 두드리며 위로했다.“자책하지 마. 네 잘못 아니야.”그러고는 이어서 말을 덧붙였다.“대나무숲에 묻혀 있던 사람은 나도 모르는 분이야. 아주 오래전에 벌어진 일이라는데 그때 우리는 너무 어렸잖아.”잠시 침묵하던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자.”서인준은 짧게 대답하더니 처치실 앞에 서 있는 성문영을 슬쩍 살피고는 망설이며 입을 뗐다.“그리고 형, 하나 더...”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성문영이 몸을 돌려 다가왔다. 그녀는 옆에 있던 의자에 앉으며 한효진이 들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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