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들은 임소미는 안색이 어두워졌다.“강이한 이놈...”노여운 나머지 임소미는 마치 분노에 활활 타버릴 것만 같았다.이유영은 가슴이 벌렁벌렁 기복을 이루었다.임소미는 비록 강이한에 대해 불만이 많았지만, 이 타이밍에 더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기가 말을 더 하면 이유영이 더 괴로워할 걸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결국 그녀는 수많은 불만을 다 배속으로 삭혀버렸다.“너도 너무 괴로워하지 마. 아이가 놀래. 방법은 내가 생각해 볼게.”수만 가지 생각을 거친 후에, 생각했던 많은 말들은 다시 뱃속으로 삼켜버렸다.이유영은 임소미를 쳐다보았다.이유영이 대꾸하기 전에 임소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이미 오래전부터 예상했던 거잖아. 그 사람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였어.”“...”“그런데 그놈이 알았다고 해서 뭐? 그놈은 아이를 빼앗을 자격이 전혀 없어!”“맞아요. 자격이 없어요!”외숙모가 이렇게 말하자 이유영은 그나마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하지만 가슴속에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강이한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이유영은 마음속으로 제일 잘 알았다. 일단 아이가 그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면 그는 무조건 과분한 행동을 할 게 뻔했다.비록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갑작스럽게 들이닥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이날 밤, 이유영은 방안에서 온밤 아이를 안고 있었다. 자기 품속에서 곤히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작은 코에 기다란 눈매, 딱 봐도 아주 예쁜 아가씨인 것이 보였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저도 모르게 강이한과 이온유가 같이 지내던 화면이 떠 올랐다. 정말이지 강이한은... 좋은 아버지가 될 것이었다.하지만... 전에 강이한이 이유영과 한지음을 대할 때의 차별을 생각하면 이유영은 저도 모르게 두 아이를 대입하게 되었다.‘만약 두 아이를 한 곳에 놓고 본다면 축소판의 나랑 한지음이 되지 않을까?’이렇게 생각한 이유영은 가슴이 더욱 턱턱 막혔다.이튿날 아침, 아침 식사 자리였다.“일은
“왜?”“유라는 지금 어디에 있어요?”이유영이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졌다.그러자 부드럽던 임소미의 눈빛은 이 질문을 듣자마자 순간 굳어져 버렸다.“갑자기 걔 얘기는 왜 꺼내?”말투는 이미 조금 안 좋아졌다.“아무리 화가 크게 냈었다고 해도 지날 때가 되었잖아요.”다들 가문 간의 재산분쟁이 제일 큰 골칫거리라고 하지만 이유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로열 글로벌의 경영을 맡으면서부터 이유영은 비록 일에서 뜻대로 되는 일은 없었지만, 딸의 곁을 지킬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적었다.그래서 이유영은 외숙모와 외삼촌이 하루빨리 정유라와 모순을 화해해서 정유라를 집에 돌아오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화를 내는 게 아니야!”“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유라는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어요?”특히 2년 전부터 정유라는 집에 돌아오지도 않았다.그중에 도대체 어떤 오해가 있었는지 이유영은 줄곧 사정을 모르고 있었다.그런데 매번 외숙모 또는 외삼촌에게 물을 때면 그들은 이 주제를 항상 피하면서 얘기를 꺼렸다.지금...임소미는 이유영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그만 물어봐.”또 이 대답이었다!‘외삼촌과 외숙모가 유라를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는데 왜 지금은 유라 얘기를 묻는 것조차 마음이 아파하시는 거지...!?’‘2년 전에 도대체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외숙모.”이유영은 자신의 따뜻한 손바닥으로 임소미의 손등을 감쌌다. 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임소미의 감정을 달래주려고 하였다.임소미가 뭐라고 입을 열려고 하는 때, 갑자기 핸드폰이 진동했다.순간, 임소미는 갑자기 해방을 받은 것처럼 말했다.“네 외삼촌의 전화야. 먼저 전화 좀 받을게!”이유영은 눈빛이 흔들리는 임소미의 눈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또 이렇게 얘기를 빼시네.’“월이. 아.”이유영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이유영은 정말 정유라가 정씨 가문으로 돌아왔으면 했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딸과 놀아줄 시간이 더 생길 수 있었다.매번 외삼촌이 병원을 다녀오는
여기까지 말한 임소미는 잠시 멈칫하였다.이유영을 바라보는 임소미의 눈빛에는 애절함이 스쳐 지나갔으며 심지어 숨결도 조금 무거워졌다. 그녀는 이 일을 생각하기만 해도 이미 감당할 수 없는 게 분명했다.그래서 2년 전, 진실을 알았을 때 임소미는 도대체 마음속으로 어떤 고통을 감당하면서 이유영을 받아들였을지 상상이 가곤 하였다.이유영은 임소미를 안아주었다!사실, 이때 임소미가 마저 얘기하지 않아도 이유영은 대충 마음속으로 답안이 서군 하였다! 정유라는 외숙모의 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사실 이 2년 동안 이유영은 의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필경 전에 이 가족의 감정은 엄청나게 좋았다. 정유라가 제멋대로 굴어도 그들은 언제나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관용했다.‘왜 갑자기 유라를 내버린 거지?’2년이었다!이 2년 동안 이유영은 시도 때도 없이 임소미와 정국진이 냉담하게 정유라를 대하는 것을 보았다...그리고 역시 2년 전, 외삼촌의 몸이 서서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외숙모!”이 순간, 이유영은 임소미를 달래주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할지 몰랐다.예전에 이유영이 아이를 잃어버린 건 아이가 배속에서 나오기 전이었다. 근데도 이유영은 그 트라우마에서 하마터면 걸어 나오지 못했다!반명 외삼촌과 외숙모는?이 2년 동안 어떤 고통을 엮었을까!?정유라가 그들의 자식이 아니면 그럼 그들의 진짜 자식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외숙모는 또 어떤 고통을 감당하였을까?“유영아 그거 알아? 내가 그때 낳은 건 사실 쌍둥이였어. 내 아이들은...”여기까지 말한 임소미는 이미 감정을 공제할 수 없을 정도였다.그녀는 흐느끼면 울기 시작했다.더는 얘기를 이어 나가지 못할 상황이었다.그리고 이유영의 가슴도 바늘에 콕콕 찌르는 것만 같았다.“아이가 둘이었어요?”“응.”그러니까 아이가 두 명이었다.그동안 임소미가 정유라를 얼마나 아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임소미가 자신이 낳은 아이가 사실 쌍둥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
그건 외삼촌 도와 회사를 경영하는 거랑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그리고 이유영을 키워준 부부에 대해서... 임소미는 당연히 감사했다.그들은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엄청 아름다운 존재였다. 특히 정국진의 언니는 죽으면서도 이유영이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게 이유영을 수호해 주었다.이유영은 운이 좋았다!“유영아...”임소미는 깊게 숨을 한 모금 들이마시고는 2년 전 파리에서 생긴 엄청난 변화를 빠짐없이 이유영에게 알려주었다.뒤로 들을수록, 이유영의 안색은 하얗게 질렸고 심장도... 한데 쪼여 들었다.이제야 이유영은 2년 전 그때, 자기가 청하시에서 커다란 사고를 당하고 있었을 때 외삼촌도 그녀를 돌볼 시간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원래 그 당시 외삼촌과 외숙모도 일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에 처해 있었다.그들은 갑작스럽게 자기들이 정성스럽게 키운 딸이 기실은 원수의 딸이며 자신들의 쌍둥이 딸과 아들은 행방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당시의 충격은 생각하지 않아도 엄청나게 클 게 뻔했다!청하시의 일은 지현우와 루이스에게 맡겼고 정국진은 이유영이 위험에 처하면 안 된다는 명령을 내린 뒤, 자식을 찾는 일에 뛰어들었다.하지만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이렇게 인산인해인 세상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었겠는가?결국...유전자 풀의 대비를 통해, 이유영을 찾아낸 순간, 정국진은 정말 미친 듯이 청하시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큰불 속에서 정국진은 이유영을 데려왔다.그 뒤의 일은 이유영도 알고 있었다. 외숙모는 보통 이상으로 이유영에게 잘해 주었고 정유라에 대해서는 신경을 일도 쓰지 않았다.하지만 이유영은 그저 매번 정유라 얘기를 꺼내면 외숙모가 화를 내는 것만 알았지, 임소미와 정유라 사이에 도대체 어떤 모순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원수의 딸이었구나!’이건 어떤 개념이지...“어떻게?”임소미의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이유영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고 못 했다. 이 모든 것은 그녀에게 너무나 갑작스러운 게 분명했다.하지만 임소미에게는 2년이나 기다린
모든 것들이 다 너무 갑작스러웠다.뒤에 임소미가 한 얘기를 듣고서야 이유영은 외숙모가 왜 갑자기 이 소식을 자기에게 알려주는지 알게 되었다.나머지 쌍둥이 아이를 찾은 것이었다!2년! 고통을 받으면서 2년이나 지났는데 드디어... 그래도 찾아냈다. 임소미는 기쁘고 감격스러웠다.“유영아.”“우리 돌아가요.”이유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외숙모도 아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겠지.’임소미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응!”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얼른 짐을 정리하라고 했다.하지만 이유영을 바라볼 때, 그녀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너도 나랑 같이 돌아가자!?”강이한도 다 아이의 존재를 알아버린 이상, 아이도 더는 퀘벡에 숨겨둘 필요가 없었다.이유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비행기 안에서, 임소미는 월이를 품속에 안고 있으며 눈에는 온통 자애로움이 가득했다. 이유영은 전에 외숙모가 월이를 아끼는 것을 보면 조금 이해 못 했지만, 지금은 알 수 있었다.이런 지나친 편애는 사실 아이가 자신의 외손녀였기 때문이다.2년 동안, 외숙모는 정성을 이유영에게 쏟아붓지 않으면 월이에게 쏟아부었다.예전에는 이해가 안 되었던 것들이 지금은 아주 잘 이해가 되었다.“유영아.”“네?”“난 지금 어떻게 그 애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어!”임소미는 갑자기 울먹이며 말했다.“...”‘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른다고!?’이 점에 대해서 이유영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지금의 그녀와 마찬가지였다. 사실 지금 이유영은 어떻게 외숙모를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임소미의 곁에 있는 건 단지 임소미가 자기를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이유영은 임소미를 안아주었다.임소미는 이유영의 품에 기댄 채 감탄을 늘어놓았다.“이러니까 다들 딸이 보배라고 하는 거구나. 하지만 그것도 친 딸이어야지.”예전에 그녀는 정유라에게서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정유라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때 임소미는 일편단심 정유라를 사랑해서 정유
“유영아!”이유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는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임소미는 이유영의 품에서 일어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갑작스럽게 실망에 찬 임소미의 눈빛을 보며 이유영은 가슴이 덜컹거렸다.“왜요?”아무래도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사람이어서, 임소미가 슬퍼하는 것을 보니 이유영도 마음이 아팠다.임소미는 그녀의 두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날 엄마라고 불러주면 안 될까?”“...”이유영은 순식간에 온몸이 굳어져 버렸다.‘엄마?’모든 것이 너무 빨리 일어나기 때문에 이유영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비록 그녀는 임소미를 아끼는 건 맞지만 지금의 현실을 아직 다 받아들이지 못했다.그래서 지금 임소미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 사실 마음속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이유영이 멍해 있는 것을 보니 임소미의 눈 밑에는 애처로움이 스쳐 지나갔다.“미안해. 내가 너무 조급하게 몰아붙이면 안 되는 건데!”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임소미는 이유영에게 최선을 다해 잘해주면서 그녀가 자기를 엄마라고 부르길 얼마나 원했는지 아무도 모른다.매번 이유영이 자신의 부모가 자기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를 듣고 있으면 임소미의 가슴속은... 정말 말이 아니었다. 한편으로 그들에게 감사하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두렵기도 했다.감격스러운 건 그들이 어린 시절부터 이유영에게 잘해주어서, 아무리 자기가 이유영의 곁에 없었지만, 그들이 여전히 공주처럼 그녀를 대해주어서 정말 고마웠다.하지만 반대로 두렵기도 했다. 그들이 너무 좋아서 이유영이 마음속으로 자기를 받아주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임소미의 눈에 든 애처로움을 보면서 이유영은 머리가 띵하고 울리는 것만 같았다.이유영은... 임소미의 이런 모습을 제일 견디기 어려웠다. 이런 애처로움은 이유영에게 가시가 되어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이유영은 자기의 아담한 체구로 임소미를 품에 안았다. 따뜻한 체온 덕분에 임소미는 비로소 안식처를 찾은 듯싶었다.“제가 이렇게 해서 마음이 조금 나아질 수
이유영은 끊임없이 임소미를 위로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는 어떤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외삼촌과 외숙모가 하루 사이에 갑자기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고, 그리고 이유영은 줄곧 자기를 외동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어떤 형제자매가 없다고 생각했다.심지어 한지음이라는 존재를 계속 인정하지 않았었다.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다고 하니 받아들이기 쉬운 건 아니었다.“외숙모.”“응?”“저...”이 순간, 이유영은 새하얘진 얼굴로 임소미를 보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왜냐하면 그녀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만약 내가 외삼촌과 외숙모의 친딸이면 한지음은 왜 나와 혈연관계가 있었던 거지? 어떻게 내 여동생이었던 거지?’이유영은 순간 가슴이 꽉 쪼여 들었다.눈앞의 대문을 바라보며 순간... 이유영은 마치 심연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많이 달라지겠지...?’“왜?”임소미는 이유영을 바라보면서 이유영의 이상함을 감지하였다.“한지음은, 제 여동생이에요!”이유영은 임소미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비록 조금 잔인하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래도 이유영은 시작하기 전에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싶었다.“너희 유전자 검사를 해봤었어?”“아니요. 근데 제가 한지음의 딸과 혈족관계 검사를 해봤는데 수치가 높게 나왔어요.”이유영은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말했다.한지음의 딸 이온유를 말하는 것이었다.그 당시 이유영은 너무도 믿기지 않아 유전자 검사를 했었다. 그러자 혈족관계 검사에서 수치가 높았던 것이 떠 올랐다.그러니 한지음은... 이유영의 동생이 맞았다!지난번에 안 그래도 이유영은 혈연관계가 의심스러워 바로 유전자 검사를 했었다. 그 결과 이온유와 이유영은 친족관계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그 말인즉, 한지음은... 이유영의 동생이 맞았다!‘그럼 한지음도 아버지의 딸이라는 건데, 이렇게 되면 외숙모, 외삼촌이랑 관계가 있을 수 없는 건데...’혼란스러웠다! 이유영은 너무
그래서 산전 검사에서도... 단서를 얻을 수 없었다.이유영은 임소미를 안아주었다.“괜찮아요. 우리 일단 들어가 봐요.”“그래.”비록 이때 두 사람은 모두 것이 너무 혼란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모든 의심은 다 헛되고 말았다.모든 두려움과 불확실함, 그리고 의심은 정국진과 같이 서 있는 여진우를 본 순간, 다 사라지고 말았다.“유영아, 유영아...”임소미와 이유영은 거실에 선 채, 주방 안의 정국진 맞은 쪽에 앉은, 이유영과 똑같이 생긴 남자를 보았다.그 순간, 모든 의심은 다 사르르 사라졌다.아까 집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임소미는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지금, 모든 의심은... 연기가 되어 삭 사라졌다. 이유영도 마찬가지였다.두 사람은 그저 넋 놓고 멍하니 바라보았다.외동자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자기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보면 기분이 어떨까?이유영의 마음속은 충격으로 가득 찼다....정씨 저택 안의 분위기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정도라면, 다른 한편 소은지 쪽도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다.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온 소은지는 소월이 급급히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소은지 아가씨, 여섯째 도련님께서 오셨습니다!”“...”이 말에 소은지는 멈칫하였다.‘왔으면 왔지!’하지만 소월의 모습만 보아도 오늘 밤 엔데스 명우가 쉽게 온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은지는 손에 든 수건을 내려놓았다.“왜 왔대요?”“도련님...”소월은 눈물을 흘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소월의 눈에는 눈물이 핑 고였으며 소은지를 위해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괜찮아요. 왜 왔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엔데스 명우는... 이미 소은지를 한두 번 모욕한 것이 아니었다. 그 과정들은 모두 치가 떨릴 정도였다.‘왜 왔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여섯째 도련님은 설유나 아가씨, 의료진과 함께 오셨습니다.”“...”‘설유나? 설선비!’소은지가 말을 하기도 전에 소
공기가 얼어붙었다.“쾅!”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박연준이 탁자를 세게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박연준의 억눌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가서 유영이를 백산 별장으로 데려가.”이유영은 미친 게 분명했다.‘감히 엔데스 셋째 도련님 같은 인물과 술집에 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건가?’정국진이라면 이유영이 엔데스 신우와 가까워지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특히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엔 더욱 반대가 심할 것이다. 박연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고 남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문기원이 급히 박연준을 따라나섰다.“네!”위험한 박연준의 모습에 용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대답했다.강이한이 각막을 이유영에게 이식해 주려고 할 때 왜 박연준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되는 듯했다.지금 이유영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그녀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과거의 그녀는 마치 강이한의 손바닥 위에서 반짝이는 천사 같았다. 하지만 혼란을 겪은 이후 그녀는 변했다.거만하고 방탕하게 아무하고도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지금 박연준이 생각했을 때, 이유영은 더 이상 고상하고 단정한 명문가의 며느리가 아니라 그저 자유롭게 떠도는 바람 같은 여자였다.최근 그녀는 서재욱과 엔데스 신우와 모호하기 짝이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서주에서.박연준이 차에 타기 전, 문기원이 그를 붙들었다.“선생님, 선생님!”“비켜.”“오늘 정말 중요한 회의입니다.”문기원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은 서주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시기였기에 이유영을 생각하면 문기원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정말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박연준 곁에 있는 문기원조차 그녀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박연준이 돌아서기를 기다렸다.박연준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눈을 감은 순간, 그의 눈빛 속 날카로움은 잠시 가려졌지만 몸 전체에서 풍겨 나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은 고민에 휩싸일 때마다 이런 방식을 택했다.하지만 결국 이런 방식은 오히려 고민에 잠긴 마음을 더욱 괴롭힐 뿐이었다.한번 마음에 깊이 새겨진 근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었다.“죄송합니다만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그녀의 몸은 항상 술을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예전에 건강이 좋지 않기도 했고 어렵게 다시 찾은 시력인 만큼 그녀는 술과 더욱 멀리하게 되었다.하지만 오늘 진영숙이 백산 별장에서 벌인 일을 생각하니 이유영의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 감정을 억눌렀다. 그녀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회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인 건지 알 수 없었다.남자는 그 말을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깜빡했네요.”남자의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러웠다.“괜찮아요.”“...”“이제 가도 될까요?”“술을 마시지 않아도 즐길 수 있잖아요.”“...”하지만 이유영은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특히 많이 노출된 옷을 입은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하지만 남자는 그녀에게 반항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녀를 향락의 세계로 이끌었다....한편 박연준은 서주에서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용준의 전화를 받은 그의 가슴이 쿵쾅거렸다.“그쪽은 괜찮아?”진영숙에 관해 묻는 것이었다.이유영이 인정사정없을 거라는 걸 박연준도 알고 있었다.과거 강이한 곁에 있을 때의 이유영을 떠올렸다. 그때의 그녀는 적어도 강이한에게 만큼은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었다.그래서 진영숙이 아무리 이유영을 괴롭혀도 그녀는 어떻게든 참고 견뎠다.지금은 성격이 점점 더 나빠졌다고 해야 할까? 아예 참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용준은 진영숙의 현재 상황을 박연준에게 설명했고 이미 좋지 않았던 박연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회의 끝나고 바로 갈게. 일단 진정시켜.”박연준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 과연 내가 진정시킬 수 있을까?’“네!”“유영이는
“박연준, 네가 강이한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고 또 이제는 강이한 어머니까지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난 여태 몰랐네.”그 말은 날 선 조롱처럼 들렸다.동시에, 과거 강이한과 박연준의 사이가 이유영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되새기게 했다.그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유영의 냉정한 말에 박연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다른 일 있어서 먼저 끊을게.”이유여은 박연준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사랑이란 그저 우스운 감정에 불과했다.차는 천천히 백산 별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지혁 씨.”“네.”“지혁 씨는 사랑해 본 적 있어요?”이유영은 지혁을 향해 불쑥 물었다.예전의 이유영은 사랑이란 존재를 믿어 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를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토록 반짝이던 사랑이란 단어 뒤편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었는지 이젠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의 말을 들은 지혁은 묵묵히 앞을 응시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핸들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이유영은 굳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쾅!”그 순간, 갑작스러운 충격음과 함께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이유영은 아픈 이마를 짚고 있었고 지혁은 차에서 내려 사고 처리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차 문이 열렸다.“아가씨.”지혁이 이유영 앞에 공손하게 나타났다.“무슨 일이에요?”“셋째 도련님 차입니다.”“...”그 말을 듣고 그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자꾸 나타나는 셋째 도련님의 존재에 우연한 사고인지 아니면 이미 계획된 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이유영은 미간을 짚으며 말했다.“어떻게 된 거예요?”“셋째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이유영은 이 전설 속의 셋째 도련님을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특히 엔데스 가문과 정씨 가문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밖에서 이유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유영은 몰랐다. 그 아이가 결국 진영숙이 데려온 의사로 인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줄은.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아!”분노가 치밀수록 이유영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고 진영숙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녀는 이유영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세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놔, 놔 이 미친년아! 악!”“짝!”이유영의 손바닥이 진영숙의 뺨을 후려쳤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말릴 용기를 잃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유영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다시 한번 움찔하고 말았다.이유영의 행동에 소리 내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숨을 삼켰다. 진영숙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결국 이유영은 진영숙을 놓아주며 말했다.“주제 파악하라는 의미에서 그랬어요. 당신은 할머니라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에요.”그렇다. 진영숙은 할머니가 될 자격이 없었기에 이유영도 그녀를 아무 감정 없이 내던질 수 있었다.진영숙의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머릿속이 멍해진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얼어 있었다.그 사이 이유영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저년이 감히...”감히 뭐라고?예전엔 강이한 곁에서 순한 토끼처럼 보호받더니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이유영이 밖으로 나왔을 때,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를 감쌌다.그 순간, 가슴속의 억눌린 감정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지혁은 이유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용준을 밀쳐내고 앞으로 다가왔다.“아가씨.”“가요.”용준은 여전히 당당한 이유영의 모습을 보며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유영의 휴대폰이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박연준이었다.차에 오르자마자 전화를 받은 이유영의 모습은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여보세요.”“어디야?”“풍산.”“유영아...”전화 너머의 남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박연준은 지금 이유영이 강씨 집안을 어떤 태도로 맞서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강씨 집안에서 강이한이 곁에 없는 동안에는 진영숙의 말에 고스란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홍문동으로 이사한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진영숙이 찾아오면 이유영은 그녀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고 감히 그녀의 말에 거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도대체 언제부터일까?’아마 강이한과의 이혼을 결심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즈음부터 이유영은 진영숙의 말에 더 이상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그땐 고작 진영숙의 지시를 어기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한참 뒤에야 겨우 말을 꺼낸 진영숙이 이유영을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이빨을 드러낸 짐승 같은 기세가 실려 있었다.이유영은 고작 이런 걸로 화를 내는 진영숙이 가소로웠다.이유영은 아직 다 마시지 않은 따뜻한 물이 담긴 잔을 들고 망설임도 없이 진영숙의 얼굴에 뿌렸다.“앗!”진영숙은 비명을 질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손을 댄다는 건 이런 거예요.”이유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진영숙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퍽!”손에 들고 있던 잔이 손끝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산산조각 났다.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예전의 풍산 사람들이 기억하던 이유영은 언제나 조용하고 온순한 여인이었다. 누가 감히 지금 이유영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분노로 찬 이유영은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진영숙 역시 이유영을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예전에도 이유영에게 자주 화가 났지만 오늘처럼은 아니었다.진영숙은 분노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이유영은 격하게 숨을 들이마신 진영숙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다시 백산 별장에 가거나 우리 가족 근처에 얼씬거리면 그땐 당신 진짜 가만 안 둬.”그 마지막 한마디는 징벌처럼 무겁고 섬뜩할 만큼 냉정했다.월이는 이유영의 세상 전부이자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힘들게 월이를 낳으면서 강씨 가문은 이 아이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아
끊임없이 박연준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던 강이한의 모습을 이유영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두 사람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사이였다.늘 서로를 원수처럼 대했고 그 모습을 본 이유영도 두 사람 사이에 과거의 악연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악연이 한 여자 때문이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 여자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 전까지는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은 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모든 게 이토록 명백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유영만은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그 7년 동안 강이한은 얼마나 다정했던가?그 친절함 속에 실은 다른 여인을 향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이유영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박연준은 강이한의 어머니를 보호하고 있었다.이건 과거의 이유영이라면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이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다시 실감하고 있었다.“어쨌든 강이한 씨의 어머니잖아요.”조금 전 용준이 한 말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마치 우스운 농담을 듣는 듯했다.“형님이 돌아오신 후에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용준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공손함 속에는 이유영을 절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있었다.이유영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진영숙이 월이를 데려가려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의 분노는 가슴 깊이 타오르고 있었다.“지혁 씨.”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지혁을 불렀다.지혁은 그녀의 뒤에 있다가 곧장 앞으로 나섰다.“네, 아가씨.”“전 들어가야겠어요.”이유영이 내뱉은 짧은 문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용준은 지금까지 이유영의 이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 냉혹함에 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네!”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지혁은 곧장 앞으로 다가섰다. 분위기는 마치 폭발할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이유영은 어지럽게 엉킨 현장을 냉정히 바라보며 우아하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용준은 지혁을 막으려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