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아이

도깨비의 아이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09
Oleh:  쌍춘Ongoing
Bahas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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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 세상과 단절된 한옥에 사는 여인 ‘명옥’과 그녀가 거둔 청년 ‘독고춘’. 죽은 자의 혼을 인도하던 그들의 고요한 삶은, 어느 날 톱스타 강지희의 방문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뱃속에 아기 귀신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경악하는 그녀는 아기 귀신을 없애는 대신 사랑으로 보내 주려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 “방금 아기가 그쪽 보고 아빠라고 한 거 못 들었어요?” “이 아기가 행복하게 스스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해 보고 싶어요. 그러니 도와주세요.” “그래서 말인데, 그쪽이 내 세컨드 매니저로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어쩔수 없이 산에서 내려와 강지희의 매니저를 하게 된 독고춘. 그 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표지: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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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 1

1화

비가 세차게 내리던 7월의 어느 날.

병원 장례식장 한켠, 하얀 형광등 아래에 아홉 살짜리 소년이 혼자 앉아 있었다. 누가 입혀 주었는지 모를 검은 옷은 소매가 손등을 다 덮을 만큼 컸다.

소년의 이름은 독고춘.

제단 위에는 영정 사진 두 장이 나란히 놓여 있었고, 사진 속의 아빠와 엄마는 작년 가을 동네 사진관에서 찍던 날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독고춘은 그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울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머릿속이 하얬다.

향냄새와 육개장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어른들은 저마다 바쁘게 오갔지만, 아이 곁에 와서 앉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복도에서는 어른들이 목소리를 낮춰 다투고 있었다.

"그래서 애는 누가 데려가는데."

"애 엄마 쪽은? 홍 씨네 연락해 봐."

"거긴 연락할 데가 없대. 원래 친정이 없었다잖아."

어른들이 말하는 '애'가 자신이라는 것쯤은 독고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 말들이 들리지 않는 척 무릎을 끌어안았다.

───

불과 하루 전 아침만 해도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독고춘은 눈이 반쯤 감긴 채 현관 앞에 서서 출근하는 부모를 배웅하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의 비뚤어진 넥타이를 바로잡아 주었고, 아빠는 구두를 신으며 연신 시계를 흘끔거렸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어깨와 아빠의 등 뒤에서 검은 연기가 실처럼 가늘게 풀려나와, 두 사람의 몸을 천천히 감고 있었다.

"엄마… 아빠… 몸에서… 검은 연기가 나와."

부모는 서로를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우리 춘, 아직 잠이 덜 깼구나. 얼른 들어가서 좀 더 자렴."

엄마의 손이 머리를 한 번 쓸고 지나갔지만, 잠은 이미 달아난 뒤였다. 가슴 한가운데가 서늘했고,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가지 말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지난달에도 배가 아프다고 떼를 썼다가 아빠를 지각하게 만들어 한참 혼이 난 적이 있었다. 또 혼이 날까 봐, 독고춘은 끝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다녀올게. 학교 끝나면 냉장고에 있는 반찬 꺼내 먹고."

현관문이 닫히고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멀어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몇 시간 뒤, 두 사람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

"내가… 말렸더라면…"

독고춘은 영정 사진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 연기를 본 사람은 자신뿐이었는데, 고작 혼나는 것이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바로 그때였다.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장의 영정에서 푸른 불꽃이 하나씩 피어올랐다. 불꽃은 제단을 내려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독고춘의 주위를 천천히 맴돌았다.

독고춘은 겁먹은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두 손으로 감싸 쥐었는데도 뜨겁지 않았다.

아빠가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처럼, 엄마가 이불을 덮어 줄 때처럼 그저 따뜻하기만 했다.

'걱정하지 마라, 춘아.'

'넌 혼자가 아니야. 엄마가 곁에 있을게.'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손바닥을 타고 가슴으로 곧장 흘러드는 목소리였다.

그제야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빠… 엄마…"

독고춘은 불꽃을 끌어안은 채 울고 또 울었고, 하얀 방 안은 아이의 울음으로 가득 찼다.

───

얼마나 울었을까.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난 후, 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때 조용히 문이 열렸다.

비 냄새와 함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들어왔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여인의 옷자락에는 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기이할 만큼 고운 얼굴의 여인은 독고춘의 앞으로 다가와, 품에 안긴 두 개의 불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제… 그들을 보내 주지 않겠느냐, 아이야."

독고춘은 고개를 저으며 불꽃을 더 꼭 끌어안았다.

"싫어요."

"그리 오래 붙들고 있으면 저들이 길을 잃는단다."

꾸짖는 것도 달래는 것도 아닌, 그저 조용한 목소리였다. 불꽃은 그 목소리에 이끌리듯 독고춘의 품을 빠져나가 여인에게 안겼다.

여인은 불꽃과 아이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무언가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던 그녀가 이윽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리하마."

누구에게 하는 대답인지 알 수 없었다.

두 불꽃은 독고춘의 곁으로 돌아와 뺨을 스치듯 한 바퀴를 돌더니, 팟 하고 사라졌다. 여인이 눈을 뜨고 부드럽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야, 나와 함께 가자꾸나. 그래야 네 부모의 마음이 편할 게야."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홀린 듯 그 손을 잡았다. 방금 전의 불꽃처럼 따뜻한 손이었다.

여인이 독고춘의 손을 잡고 복도로 나서자, 다투던 어른들이 일제히 말을 멈췄다. 누구냐고, 아이를 어디로 데려가느냐고 물어야 할 사람들이었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아무도 두 사람을 막아서지 않았다.

독고춘은 걸어가다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영정 속의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

깊은 산속,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오래된 한옥이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안개가 쉽게 걷히지 않는 곳이었다. 지붕에는 이끼가 얹혀 있었고, 마당 옆 대나무 숲에서는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낮은 휘파람 소리가 났다.

여인이 알려 준 것은 '명옥'이라는 이름 하나뿐이었다.

첫 겨울에는 장작을 패다가 도끼 자루에 손바닥이 다 까지기도 했다. 처음 지은 밥은 새카맣게 탔지만 명옥은 말없이 그 밥을 다 먹어 주었다.

엄마 아빠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머리맡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 주었고, 마당에 떠다니는 푸른 불꽃과 검은 연기가 무엇인지도 하나씩 가르쳐 주었다.

언젠가 한 번은 독고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너는 내 후손이란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무슨 뜻이냐고 물어도 명옥은 조용히 웃기만 했다.

독고춘은 어느 해 봄 다친 다람쥐 한 마리를 주워다 기르기도 했다. 산 아래로 내려갈 일은 없었고, 내려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가끔 산 아래에서 사람들이 올라오는 날이면 대문을 열어 주고 마당을 쓸었을 뿐, 안채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는 묻지 않았다.

"아이야, 오늘은 제법 쌀쌀하구나. 방이 차지 않게 준비하거라."

"알겠습니다."

매일 새벽 마당을 쓸고 장작을 패고 밥을 짓는 사이, 계절은 몇 번이고 바뀌었다.

명옥은 늘 한복 차림이었고, 깊고 고요한 눈에는 어딘가 쓸쓸한 빛이 어려 있었다.

독고춘은 가끔 그런 명옥을 바라보며 궁금해했다.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하지만 그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명옥이 말하고 싶어 하는 날이 오면, 그때 들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새 스무 해가 흘렀다.

아홉 살의 소년은 스물아홉 살의 남자가 되어 있었다.

산에 들어온 날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키와 몸집뿐이었다.

명옥의 얼굴은 그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스무 해 전 처음 보았던 그 고운 얼굴 그대로였다.

그리고 낙엽이 조금씩 떨어지는 어느 가을.

안개가 유난히 짙게 내려앉은 날, 두 여자가 산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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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비가 세차게 내리던 7월의 어느 날. 병원 장례식장 한켠, 하얀 형광등 아래에 아홉 살짜리 소년이 혼자 앉아 있었다. 누가 입혀 주었는지 모를 검은 옷은 소매가 손등을 다 덮을 만큼 컸다. 소년의 이름은 독고춘. 제단 위에는 영정 사진 두 장이 나란히 놓여 있었고, 사진 속의 아빠와 엄마는 작년 가을 동네 사진관에서 찍던 날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독고춘은 그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울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머릿속이 하얬다. 향냄새와 육개장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어른들은 저마다 바쁘게 오갔지만, 아이 곁에 와서 앉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복도에서는 어른들이 목소리를 낮춰 다투고 있었다. "그래서 애는 누가 데려가는데." "애 엄마 쪽은? 홍 씨네 연락해 봐." "거긴 연락할 데가 없대. 원래 친정이 없었다잖아." 어른들이 말하는 '애'가 자신이라는 것쯤은 독고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 말들이 들리지 않는 척 무릎을 끌어안았다. ─── 불과 하루 전 아침만 해도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독고춘은 눈이 반쯤 감긴 채 현관 앞에 서서 출근하는 부모를 배웅하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의 비뚤어진 넥타이를 바로잡아 주었고, 아빠는 구두를 신으며 연신 시계를 흘끔거렸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어깨와 아빠의 등 뒤에서 검은 연기가 실처럼 가늘게 풀려나와, 두 사람의 몸을 천천히 감고 있었다. "엄마… 아빠… 몸에서… 검은 연기가 나와." 부모는 서로를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우리 춘, 아직 잠이 덜 깼구나. 얼른 들어가서 좀 더 자렴." 엄마의 손이 머리를 한 번 쓸고 지나갔지만, 잠은 이미 달아난 뒤였다. 가슴 한가운데가 서늘했고,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가지 말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지난달에도 배가 아프다고 떼를 썼다가 아빠를 지각하게 만들어 한참 혼이 난 적이 있었다. 또 혼이 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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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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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촬영장은 여느 때처럼 분주했다. 드라마 세트장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대본 리딩도 무사히 마쳤고, 메이크업을 받는 동안에는 통증도 잠잠했다. 문제는 첫 촬영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조명이 지희의 얼굴을 하얗게 비췄다. 수십 명의 스태프가 오가는 현장 한가운데에 서 있었지만, 지희의 표정에는 묘한 긴장이 스며 있었다. "컷! 방금 좋았는데 지희 씨 표정이 살짝 굳었어! 자자, 다시 한번 갈게요!" 감독의 목소리에 지희는 숨을 고르며 고개를 숙였다. 배 안쪽에서 찌릿한 통증이 올라왔고, 손이 저도 모르게 아랫배로 향했다. "지희 씨, 괜찮아요?" 조명팀의 누군가가 걱정스럽게 묻자 지희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네, 괜찮아요. 잠깐 집중이 안 됐나 봐요."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대역인 김서준이 다가와 손을 잡는 감정 신이었는데, 카메라가 돌아가자마자 아랫배를 쿡 찌르는 듯한 고통이 다시 찾아왔다. 표정이 일그러졌고 대사의 톤이 흐트러졌다. "컷! 지희 씨, 다시 한 번 갈까요?" 감독의 목소리가 점점 조심스러워졌다. 지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등으로 식은땀을 닦았다. 두 번, 세 번, 네 번. 데뷔한 뒤로 한 장면에서 이렇게 여러 번 NG를 낸 적은 없었다. 결국 다섯 번째 NG가 나오자 감독이 손을 들었다. "오케이, 잠깐 쉬었다 가죠. 지희 씨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네." 조명이 꺼지고 현장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스태프들의 시선이 등 뒤에 따갑게 꽂히는 것 같아, 지희는 대본으로 얼굴을 가린 채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때 김서준이 다가왔다. 회색 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린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지희 씨, 괜찮아요?" 그가 손을 뻗어 어깨를 감싸려는 순간, 지희의 몸이 눈에 띄게 굳었다. "손 치우시죠." 차가운 목소리가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어느새 다가온 지아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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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하필이면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서울을 벗어나 한참을 달려온 산길 위에서, 지아는 운전대를 움켜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입술은 바짝 말랐고 머릿속은 새하얬다. 조수석의 지희가 그야말로 죽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이퍼가 쉴 새 없이 눈을 밀어냈지만 앞은 좀처럼 트이지 않았다. 옆자리에서 이를 악문 신음이 새어 나올 때마다 지아의 발끝에는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처음에는 지희의 본가에 도움을 청하려 했다. 하지만 지희는 본가에 연락하면 평생 얼굴을 안 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옥신각신한 끝에 겨우 타협한 곳이 명옥의 집이었다. 새벽녘의 산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지아는 땀을 뻘뻘 흘리며 지희를 부축해 눈 쌓인 산길을 올랐다. 지난가을에는 투덜거리면서도 제 발로 오르던 길이었다. 그 길을 지희는 이제 지아의 어깨에 매달리다시피 해서 겨우 한 걸음씩 떼어 놓았고, 두 사람은 한참 만에야 가까스로 대문 앞에 닿았다. 지아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대문을 두드렸다. "저기요! 이른 시간에 죄송하지만 도와주세요! 문 좀 열어 주세요!" 마침 마당에 쌓인 눈을 쓸고 있던 독고춘이 그 소리를 듣고 대문을 열었다. 문밖에 선 것은 지난번에 화를 내며 돌아갔던 바로 그 여자였다. 조만간 다시 찾아올 거라던 명옥의 말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언니가 죽을 것 같아요. 제발 명옥님 좀 만나게 해 주세요." 지아는 그를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했다. "지아야, 호들갑 그만 떨어. 나 안 죽어. 윽… 좀 아프긴 한데 죽을 정도는 아니야." 독고춘은 빗자루를 든 채 두 사람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잘라 말했다. "지금 여기에 안 계십니다." "네? 어디 가셨는데요? 금방 오시겠죠?"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지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옆에서 간신히 서 있던 지희가 그 팔을 붙들었다. "됐어, 지아야. 병원으로 가자. 가서 수면제 맞고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 크윽!"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고통이 아랫배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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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눈은 아침나절이 되어서야 완전히 그쳤다. 창호지를 건너온 부드러운 햇살이 눈꺼풀을 스치자, 지희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낯선 천장과 낯선 공기 속에서, 본 적 있는 남자의 얼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희가 화들짝 놀라 상체를 일으키자 독고춘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를 진정시켰다. 몇 시간째 그 자리를 지킨 듯 조금 지쳐 보이는 얼굴이었다. "여긴 어디죠? 당신 집인가요?" 독고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희는 두리번거리다가 옆자리에서 웅크린 채 곤히 잠든 지아를 발견했다. 그제야 굳어 있던 얼굴이 조금 풀렸다. 무심코 아랫배로 손을 가져간 지희는 숨을 멈췄다. 며칠 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대신 다른 것이 남아 있었다. 좁은 방에서 혼자 울던 여자와 차가운 아스팔트, 그리고 어둠 속에서 끝없이 이어지던 아기의 울음소리. 꿈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선명해서, 꼭 누군가의 기억을 통째로 들여다보고 나온 것만 같았다. '…그게 다 뭐였지.' 독고춘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려 하자 지희가 급하게 그를 불러 세웠다. "아, 저기요?" 독고춘이 무뚝뚝한 눈빛으로 돌아보았다. 지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작게 말했다. "…고마워요." 독고춘은 말없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방문을 나섰다. 그 순간 "으음…" 하는 소리와 함께 지아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언니! 깨어났어요?" 지희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지아는 그대로 달려들어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진짜 다행이에요… 전 언니가 죽는 줄 알았다고요!" "이제 괜찮아. 걱정 끼쳐서 미안해." "언니 잘못될까 봐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엉엉." "그래, 그래. 이제 괜찮으니까 집에 가서 좀 더 쉬자. 응?" "네, 언니. 훌쩍…" 지희는 들썩이는 등을 한참 두드려 준 뒤에야 지아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 마루에는 명옥이 앉아 있었다. 처마 끝에는 아직 하얀 눈이 매달려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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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소복이 쌓여 있던 눈이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다. 지희와 지아가 먼저 대문을 나섰다. 독고춘은 옷가지 몇 벌을 싼 보따리 하나를 든 채 문턱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고 뒤를 돌아보았다. 마루에 앉은 명옥이 조용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따뜻하지만 어딘가 쓸쓸한 눈빛이었다. "어서 가거라. 부디 그 아이가 스스로 떠날 수 있게 잘 돌봐 주려무나." 독고춘은 고개를 숙였다. 스무 해 동안 그가 본 세상은 오로지 이 산속뿐이었다. 산을 넘는 바람과 새소리, 그리고 처음 만난 날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아름다운 명옥. "…금방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다녀오겠습니다." 입 밖으로 내고 보니 낯선 말이었다. 이 집에 온 뒤로 그는 단 한 번도 어딘가에 다녀와 본 적이 없었다. 명옥은 부드럽게 웃었다. "사람이 누굴 돕는다는 건 방법보다 마음이 먼저란다. 네가 그 아이를 돕고자 하는 마음을 품는다면, 그 아이도 널 받아들이고 스스로 떠날 게다." 독고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문턱을 넘었다. 등 뒤에서 대문이 닫히자 처마 끝의 종이 작게 울었다. 그는 한 번 더 돌아보려다 그만두고, 앞서간 두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눈 녹은 산길을 내려갔다. 새벽에는 지아의 어깨에 매달려 겨우 올랐던 길을, 지희는 제 발로 가볍게 내려가고 있었다. 독고춘의 눈에는 그 배 위에 얌전히 웅크린 검은 연기가 여전히 보였다. ─── 산 아래에 세워 둔 차는 독고춘이 어릴 적에 보았던 것들보다 훨씬 크고 세련돼 보였다. 지아가 조수석 문을 열어 주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몸을 구겨 넣듯 올라탔다. 한복 차림으로 안전벨트와 씨름하는 모습에 지아는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차가 산을 벗어나자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바뀌었다. 논밭이 끝난 자리에 회색 건물이 들어섰고, 건물은 갈수록 높아져 이윽고 하늘을 가릴 정도가 되었다. 독고춘은 창에 이마를 붙이다시피 하고 그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어린 나이에 산으로 들어간 뒤로 처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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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그날 저녁, 지희는 독고춘에게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그녀의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깔끔한 원룸이었다. "여기서 지내면 돼요. 필요한 건 다 있을 거예요." "…방이 하나뿐이군." "원룸이니까요." 지희가 웃었다. 그러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진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매니저 일은 처음이겠지만 지아가 옆에서 잘 알려 줄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아요." 독고춘은 그 말을 곱씹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현관 쪽에서 지아가 얼굴을 내밀었다. "내일부터 매니저 교육 들어갑니다! 제가 또 열네 살에 언니 팬클럽 회장을 맡은 것부터 치면 경력 10년 차거든요. 아이돌 시절부터 쫓아다니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니까 걱정 붙들어 매세요!" "팬클럽 회장이 왜 경력에 들어가?" "언니, 그때가 제일 고된 시절이었거든요?" 독고춘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그러지." 말투는 단호했지만 표정은 숨길 수 없이 어색했다. 지아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지희도 따라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낯선 원룸 안을 한동안 따뜻하게 채웠다. 두 사람이 돌아간 뒤, 독고춘은 불도 켜지 않은 채 창가에 섰다. 밤이 깊었는데도 창밖은 대낮처럼 환했고 어디선가 끊임없이 차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 소리와 새소리뿐이던 산의 밤과는 너무도 달라서, 그는 새벽이 가까워서야 겨우 눈을 붙였다. ─── 다음 날 아침, 차 안. 독고춘은 검은 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지아가 챙겨 준 검은 점퍼를 걸쳤다. 처음 입어 보는 옷이 여전히 어색하기만 했다. '이게 매니저 복장인가. 불편하군.' 운전석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지아가 그를 보고 웃었다. "괜찮아요. 생각보다 잘 어울려요. 언니도 곧 올 거예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 문이 열리고 지희가 뒷좌석에 앉았다. 선글라스에 모자, 그리고 긴 코트. 아직 이른 아침인데도 그녀는 이미 스타였다. "꼬춘 씨, 준비됐어요?" 익숙하다는 듯 부르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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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다음 날, 아직 해가 뜨기 전이었다. 투명하게 식은 새벽 공기 속으로 한 남자의 그림자가 느릿하게 걸어 들어왔다. 검은 트레이닝복 차림에 묵직한 눈빛을 한 독고춘이었다. 그는 전날 지아가 알려 준 비밀번호를 눌러 현관문을 열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선 그는 한참 동안 집 안을 둘러보았다. 처음 왔을 때는 그저 넓고 번듯한 집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니 거실 창에는 먼지가 뿌옇게 끼어 있었고, 싱크대에는 설거지하지 않은 그릇이 쌓여 있었으며, 소파 위에는 옷가지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이게 사람 사는 집인가." 그는 낮게 중얼거리고는 곧장 움직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정확하고 빠른 손놀림이었다. 청소기 소리가 조용히 울리고 걸레가 바닥을 훑고 지나가는 사이 세탁기와 식기세척기가 나란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전날 저녁 지아에게 가전제품 쓰는 법을 하나하나 배워 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스무 해 동안 산속에서 모든 살림을 손으로 해 온 그에게, 버튼 하나로 빨래와 설거지가 끝나는 세상은 놀라울 만큼 편했다. 그는 창문을 닦고, 식탁 위에 쌓인 대본과 잡지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대충 있을 건 있군."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칼을 잡았다. 기름이 지글거리는 소리와 달걀이 부드럽게 익어 가는 냄새, 절로 미소가 번질 만큼 고소한 향이 집 안 가득 퍼졌다. "뭐야, 이 냄새?" 지희가 헝클어진 머리로 방에서 나왔다. "지아야, 이 시간에 네가 요리했어?" "저도 방금 일어났는데요?" 옆방에서 하품을 하며 나오던 지아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말끔하게 정리된 거실과 윤이 나는 바닥, 가지런히 개어 놓은 빨래, 그리고 김이 오르는 찌개와 달걀말이가 한 상 가득 차려진 식탁. 두 사람은 나란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우리 집 맞지…?" 지희가 중얼거렸다. 그때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걸어 나왔다. "…식기 전에 들지." "꼬춘 씨! 뭐,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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