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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1화

고은서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서야 병실 문을 두드렸다.송민아가 복도에 나오면서 그녀를 보고 물었다.“뭐하러 갔어? 왜 이리 늦은 거야?”고은서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송민아는 억지로 괜찮은 척하는 고은서를 보면서 그녀가 민시후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줄 알고 저도 모르게 어깨를 토닥여 주며 그녀를 위안했다.“괜찮아. 천천히 얘기 나눠. 시아 언니가 오면 다 내 생각이라고 말해둘게.”고은서는 송민아한테 자세히 설명해줄 힘도 없었는지라 나지막한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하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민시후는 머리에 붕대를 묶은 상태로 환자복을 입은 채 병상에 앉아 있었는데 약간 초췌해진 것 같았다.병실 불빛 때문인지 그의 모습이 귀공자처럼 느껴졌다.민시후도 입을 꾹 다문 채 걸어들어온 고은서를 관찰하고 있었다.가녀린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녀는 피부마저도 눈처럼 새하얬는데 당장이라도 깨질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쓸쓸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눈이 유독 민시후의 마음에 와닿았는데 저도 모르게 가엾다는 생각이 들면서 괴이하게도 달려가 그녀를 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민시후, 몸은 어때? 머리는 아직도 세게 아파?”고은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다.민시후는 고은서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그녀를 빤히 바라보면서 직설적으로 물었다.“송민아 말로는 내가 널 엄청 좋아했다고 하던데? 심지어 포기할 줄도 모른 채 널 쫓아다녔다며?”‘송민아가 일부분 일을 알려준 모양이네.’“왜?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야?”민시후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고은서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확실히 날 좋아한다면서 쫓아다니긴 했어. 심지어 그 일 때문에 네 가족과 불화도 생겼고. 하지만 그 모든 게 다 송민아한테 보여주기 위한 연기일 뿐이었어.”고은서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민시후는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캐물었다.“이유는?”고은서는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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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2화

“과정은 방금전에 말했던 것보다 더 힘들긴 했어. 하지만 결과는 변함없어.”“송민아가 방금전에 내가 널 엄청 좋아한다고 강조하는 걸 보아선 나를 향한 감정을 내려놓은 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왜 우리 둘 사이의 합작은 계속되고 있는 거지?”민시후가 새로운 질문을 제기했다.‘사고방식 하나는 정말 끝내주네.’고은서는 침착하게 그의 물음에 답했다.“전에 네가 송민아의 행동이 일종 너의 관심을 끌려는 새로운 방식이기라도 하면 어쩌냐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해서 지금까지 계속 합작해 왔던 거야.”민시후는 이어 이틀 전에 병실에 찾아왔을 땐 평범한 파트너인 대신 아주 친해 보였다면서 또 물음을 제기했다.고은서는 두 사람이 서로 돕는 과정에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고 이실직고했다.“그런데 난 친한 친구를 데리고 어머니 보러 가진 않는데.”민시후가 뜬금없이 예상치도 못한 말을 했다.고은서는 순간 멈칫했다.‘송민아가 그 일까지 민시후한테 알려준 거야?’그녀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얼버무리며 넘어가려고 했다.“송민아를 속이기 위해 거짓말한 거야. 그뿐만 아니라 송민아한테 우리가 엄청 다정하게 지낸다고 거짓말하면서 일부러 송민아 앞에서 나한테 잘해주는 척하기도 했어.”민시후가 확실히 그런 적이 있었기에 고은서는 아무런 부담도 없이 말을 술술 내뱉을 수 있었다.민시후도 의심하지 않았다.“그러니까 내가 널 좋아한다는 것도 다 가짜라는 거지?”고은서는 대답하는 대신 그에게 되물었다.“민시후, 너라면 곽승재 전처한테 감정이 생기겠어? 우리가 합작하는 관계 외에 뭐가 더 있겠어?”민시후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는 곽승재를 극도로 증오하는 사람이었다.곽승재의 일이라면 전혀 참견하는 일이 없었고 그의 전처에게도 관심이 생길 일이 없을 것이다.게다가 그가 송민아를 성가셔하면서 그녀를 떨쳐내고 싶어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만약 정말 약혼했던 사이라면 충분히 온갖 수단을 써가면서 파혼하려 했을 거야.’민시후는 더는 캐묻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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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3화

고은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민시후를 보았다.“왜 그래?”민시후는 자신이 왜 고은서를 불러세웠는지도 몰랐다. 분명 그녀에 대한 인상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그런데 우리 친구 사이인 데다가 난 또 너 때문에 다쳤잖아. 그럼 날 자주 보러 와야 하는 거 아니야?”민시후가 합당한 이유로 얼버무리려 했다.“미안하지만 은서는 그럴 시간이 없어.”고은서가 대답하기도 전에 곽승재가 병실 문을 열고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그가 올 거라고 생각 못 했던 고은서는 약간 놀랐다.‘이틀 전까지만 해도 출장 간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왔다고? 그리고 여긴 어떻게 찾은 거지?’고은서가 어리둥절해 하며 밖을 내다보았지만 송민아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누가 꾸민 일인지 짐작이 된 고은서는 콧방귀를 뀌었다.‘민씨 집안 사람들이 나를 믿지 못하는 모양이네.’“여긴 왜 온 거야?”민시후가 차가운 눈빛으로 곽승재를 쏘아보며 물었다.곽승재는 불만을 드러내는 대신 고은서의 허리를 둘러안으면서 덤덤하게 말했다.“당연히 내 아내를 데리러 온 거지.”본능적으로 곽승재의 팔을 뿌리치려 했던 고은서는 이내 자신이 여기까지 온 목적을 떠올리고 가만히 있으면서 곽승재의 말을 반박하지도 않았다.“민시후, 우리 알고 지낸 지 꽤 되긴 하는데 친구라고 해도 너무 깊은 감정이 있는 사이는 아니야. 지금은 기억도 다 잃은 데다가 또 해외로 간다고 했잖아. 그냥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각자의 길을 가자.”고은서가 민시후를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곽승재 때문인지 상처 때문인지 민시후는 다정하게 붙어 서 있는 곽승재와 고은서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 났다.“하긴. 틀린 소린 아니지. 내가 곽승재 전처한테 호감이 생길 리가. 내가 진짜 널 진심으로 좋아했다고 해도 아마 곽승재를 약 올리기 위해서였을 거야.”민시후는 두 사람을 밖으로 내쫓고 싶었다.그와 사이가 안 좋은 곽승재가 이곳에 나타난 이상 그는 고은서의 말이 다 진실이라고 믿을 생각이었다.“네 전남편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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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4화

박지연은 우람진 체격의 곽승재가 병실로 들어오는 걸 보고 약간 놀랐다.“병원에는 왜 왔어요? 출장 갔다고 하지 않았나요?”곽승재는 아주 간략하게 답하면서 고은서를 병상에 내려놓았다.“일이 일찍 끝나서 돌아왔어요.”박지연은 참지 못하고 고은서를 향해 물었다.“얘기는 잘 나눴어?”고은서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잘 나눈 거 같아.”박지연은 고은서의 표정을 보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 또한 속수무책이었다.고은서가 민시후랑 함께 있으려거든 뛰어넘어야 할 곤란이 너무 많았으니까 말이다.게다가 민시후가 그녀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두 사람이 사귀게 될 가능성이 더 작아졌다.‘육현석이 이 소식을 들었으면 펄쩍 뛰면서 좋아하겠네.’박지연은 일부러 소식을 육현석에게 알리지 않았다.곽승재는 병실에 남아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며칠 동안 병실에서 함께 있어 줬던 박지연은 고은서가 달래면서 집으로 보냈다.박지연이 떠난 후 고은서는 곽승재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민시아가 당신한테 병실로 가라고 한 거야?”“민시현이야. 널 병실에서 데리고 나오라고 나한테 연락이 왔어. 아마 민시후가 미련을 버리게끔 만들려는 거겠지.”그와 더는 다투고 싶지 않았던 고은서는 누워서 쉬려고 했다.“내 일엔 관심 끄고 돌아가.”고은서를 곽승재를 보내려고 했다.그러나 곽승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외투를 벗으면서 병실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힘에 부친 고은서는 두 번 정도 더 말하다가 더는 상관하지 않고 자려고 했다.얼마 후, 소파에 앉아있던 곽승재는 고은서가 잠든 걸 발견했다.그는 병상 옆으로 다가가 조용히 자고 있는 고은서를 빤히 바라보았다.그녀의 얼굴은 몹시 창백했고 어딘가 불편한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곽승재는 조심스레 그녀의 곁에 앉으면서 찌푸려진 미간을 어루만져 주었다.고은서가 깊은 잠에 든 후 곽승재는 살며시 그녀의 옷소매를 걷어 올리며 거의 나아가지만 아직도 약간 빨갛고 부어있는 상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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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5화

고은서의 물음을 들은 곽승재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사실대로 말했다.“백승엽이 백유미 일로 아버지를 찾아간 적이 있어. 그리고 얼마 되지 교통사고가 났고.”고은서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러니까 내 목숨을 원하는 사람이 곽 회장님이라는 거야?”‘왜 이 정도로 날 싫어하는 거지? 백유미를 데려와 날 해치게 한 것도 모자라 이젠 날 죽이려고까지 한단 말이야? 백유미가 그날 나와 고씨 가문을 노리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했는데 설마 곽수현인 건가?’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린 곽승재가 말을 이어갔다.“이미 아버지한테 물어보고 증거도 경찰 측에 넘겼어. 그런데 조사해본 결과 아버지랑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일이라고 결론이 났어.”‘곽승재가 곽수현을 의심했다고?’고은서는 순간 의아해했다.‘전에 할아버지한테 고씨 가문이 실수로 곽현수를 건드린 적이 있냐고 물었는데 그런 일은 없다고 했는데. 그런데 곽수현이 나랑 고씨 가문을 해치려거든 백승엽의 손을 빌리진 않았을 거야. 너무 눈에 띄니까.’“증거 자료 좀 봐도 돼?”곽승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료를 그녀에게 넘겨주었다.“당연하지.”증거 자료에는 사진과 통화기록 외에 감시 카메라에 찍힌 동영상도 포함되어 있었다.동영상 배경은 대형 경마장이었는데 곽현수가 친구 몇 명이랑 경마를 보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휠체어에 앉은 백승엽이 나타났다.이어 직원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들은 곽현수가 VIP실로 향했다.아쉽게도 VIP실에는 감시 카메라가 없는 탓에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알 수가 없었다.반 시간 후, 백승엽이 다시 카메라가 있는 범위 내에 나타났다.단지 동영상을 통해서는 곽현수가 교사한 일이라는 걸 증명할 수가 없었다.경찰 측에서 기타 방면에 관해서도 조사해보았지만 끝내는 곽현수가 아무런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왔다.‘정말 백승엽이 이리저리 빌다가 마지못해 모든 원망을 나랑 민시후에게 쏟아부으면서 우리 둘을 죽이려 했던 걸까?’고은서가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이미숙이 도시락을 들고 병실에 들어왔고 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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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6화

비록 너무 큰 연관이 없는 일이지만 사실을 파헤쳐 보고 싶었던 고은서는 서연정한테 오후에 병원 옆에 있는 도자기 공방에서 만나자고 연락했다.서연정도 아주 흔쾌히 받아들였다.그날 오후.서연정은 곽승연을 데리고 약속대로 도자기 공방에 나타났다.일주일 동안 못 본 탓인지 곽승연은 고은서를 보자마자 눈에 띄게 기뻐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언니라고 불렀다.고은서도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승연아, 여기 도자기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는데 언니를 위해 선물 하나 만들어주면 안 될까?”곽승연은 거절하지 않고 기분 좋게 도자기 체험을 하러 갔다.고은서는 이내 서연정을 데리고 옆에 있는 휴식실로 갔고 직원은 두 사람을 위해 물을 따라주고 나갔다.서연정은 얼굴이 창백한 고은서를 보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은서야, 왜 이리 초췌해 보여?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어?”고은서는 아주 덤덤하게 답했다.“사고가 좀 있었어요.”“사고라니? 크게 다쳤어?”서연정은 이내 무언갈 떠올린 듯 말을 이어갔다.“승재도 네가 다친 걸 알고 있어?”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요 며칠 저녁마다 저를 케어해 주러 오곤 했어요.”“요 며칠 승재가 엄청 바삐 보내는 것 같았는데 심지어 어머니 말로는 본가에도 가지 않아서 몇 번이고 오라고 불렀는데도 시간이 없다고 거절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네가 다쳐서 그런 거라고는 미처 생각도 못 했지.”서연정이 마음 아파하며 말했다.“은서야, 다쳤으면 나한테 얘기해줬어야지. 그럼 나도 승연이를 데리고 널 보러 갔을 텐데.”“어머니한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요. 게다가 지금은 다 나았어요.”고은서가 웃으면서 답했다.“오늘은 무슨 일로 날 부른 거야?”“별일 아니에요. 그저 승연이도 볼 겸 어머니랑도 얘기 좀 나누려고요.”고은서가 미소를 잃지 않고 말했다.“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데?”서연정이 온화한 눈길로 고은서를 바라보며 물었다.고은서는 약간 어색한 기색을 띠며 자신의 의문을 제기했다.“얼마 전에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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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7화

고은서는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그저 호기심 때문에 물어본 거예요.”서연정은 고은서가 했던 말들을 돌이켜보면서 무언갈 깨달았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은서야, 이번 사고 백씨 집안이랑 연관되어 있지? 그래서 혹시 승재 아빠가 지시한 건 아닐까 하고 조사해보았는데 하필 손문호가 현장에 나타나서 두 사람 사이에 관해 묻는 거지?”아니나 다를까 서연정의 추측이 맞았다.고은서도 부인하지 않았다.“곽승재랑 경찰 측에서 다 조사해보았는데 곽 회장님과는 연관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확실히 그 일 때문에 묻는 건 맞아요.”백승엽한테 일이 생겼다는 건 서연정도 듣긴 했으나 별로 깊이 캐묻진 않았었다. 그러나 고은서가 그 일에 엮여 있을 줄은 미처 생각 못 했던 것이다.서연정은 무언갈 고민하다가 이내 말을 이어갔다.“승재 아빠가 일을 하면서 고집이 세고 독단적이긴 하지만 또 자기가 한 일을 부인할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기도 하거든. 손문호에 관해서는 내가 왜 그날 경마장에 갔는지 한 번 물어볼게.”“물어보지 않으셔도 돼요. 저랑 아는 사이도 아닌데 저를 해치려 하는 사람은 아닐 거예요.”고은서가 단호하게 거절했다.“괜찮아. 의문이 있으면 해결해야지. 단도직입적으로 묻진 않을 거야.”서연정이 걱정하지 말라고 그녀를 위안했다.“고마워요, 어머니.”쓸데없는 생각을 한다고 반감하면서 비난할 만도 한데 자신을 이렇게 믿어줄 줄은 몰랐던 고은서는 감동받는 일면 약간의 어색함을 느꼈다.이어 서연정은 손문호한테 연락해 곽승연에 관해 한참 얘기하다가 자연스럽게 요즘 바쁘냐고 물었다.“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을 너무 많이 받진 않았어. 그리고 요즘 힐링할 만한 곳을 찾아다니곤 했는데 해성에 꽤 괜찮은 경마장이 있더라고. 얼마 전에 한 번 가봤는데 시간 되면 승연이를 데리고 가보지 않을래?”서연정은 웃으면서 승연이가 말을 타보겠다고 고집부릴까 봐 경마장은 잠시 안 가겠다고 사양했다.스피커 모드로 통화한 덕분에 고은서도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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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8화

회사의 프로젝트는 아주 순리롭게 운행되고 있었고 고은서는 이 기회에 전체 직원들에게 밥 한 끼를 사주기로 했다.밥을 먹은 후 송민아는 먼저 돌아가서 쉬라고 고은서를 달랬다.“돈도 쉬면서 벌어야지. 얼른 돌아가서 쉬어.”그러나 고은서는 뜬금없이 그녀에게 민시후에 관해 물었다.“민시후는 이미 해외 병원으로 이송되었겠지? 잘 도착했대?”송민아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네가 나를 통해 민시후 소식을 알려고 할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분명히 민시후한테 두 사람 사이에 관해 말했는데 왜 전혀 믿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혹시 민시후한테 뭐라고 한 거야?”고은서도 따라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말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야. 이게 제일 좋은 결과야.”송민아는 더는 캐묻지 않고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M국으로 갔어. 시아 언니랑 시현 오빠도 같이 갔고. 그리고 전에 쓰던 폰이랑 번호도 다 바꿨다고 하던데 필요하면 내가 새로운 연락처를 알아 봐줄게.”고은서는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필요 없어.”...시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자비하게 흘러갔다.고은서는 매일 회사에서 바삐 보냈고 그나마 보람찬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도아름의 명운주류도 상장에 성공했고 고은서가 전에 투자했던 이백억 되는 투자금도 열 배 가까이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제인 제약까지 잘 운행되고 있는 덕분에 고은서는 투자계에서 꽤 높은 명망을 얻게 되었다.그 어느 평범하게 느껴지던 하루, 고은서가 사무실에서 서류를 확인하고 있을 때 고은혜한테서 연락이 왔다.“언니, 큰일 났어!”고은혜는 평소와 달리 처음부터 그녀를 부르면서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고은서도 따라서 저도 모르게 긴장되었다.“왜 그래? 설마 할아버지가 편찮으시기라도 한 거야?”마침 전생에 이맘때쯤에 고준석이 다친 다리 때문에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는데 이번 생엔 다리를 다치지 않아 별로 신경쓰지 않았었다.그러나 고은혜 때문에 갑자기 마음이 졸여왔다.“할아버지는 괜찮아.”고은서는 고은혜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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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9화

문은 제대로 닫혀 있지도 않았고 고은서가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집안은 이미 아수라장이 된 상태였다.소파 쿠션은 이리저리 땅에서 뒹굴고 있었고 카펫 위에는 깨진 유리 조각과 찻잎들이 널브러져 있었다.티 테이블 위에 있는 꽃병도 땅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 주변에는 꽃잎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원래는 생기가 넘쳤던 꽃들이 볼품이 없이 되었다.벽에도 물건 던진 탓에 긁힌 자국이 적지 않게 있었다.단은숙은 머리가 이리저리 헝클어져 있었고 한쪽 얼굴에는 선명한 손자국까지 보였다.고국성도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셔츠가 찢어질 정도로 구겨져 있었고 목에도 손톱에 긁힌 자국이 가득했고 유리잔에 맞았는지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반면 고은혜는 옆에 서서 무력하게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현장 상황을 봐서는 두 사람이 아주 심하게 다툰 듯했다.“언니, 왔어?”고은혜는 고은서를 보자마자 부랴부랴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곧 대학 졸업을 앞둔 고은혜는 비록 성인이지만 어릴 적부터 단은숙이 엄격하게 단속하는 바람에 독립적 사고 능력이 비교적 부족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맞서 당황해할 수밖에 없었다.고은서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씩씩거리는 고국성과 단은숙을 보며 애써 침착하게 두 사람을 불렀다.“은서야, 마침 잘 왔어.”단은숙은 그녀를 고국성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네 삼촌한테 똑바로 물어봐. 이 나이에 얼마나 파렴치한 짓을 했는지.”고국성은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호통쳤다.“단은숙, 그만해.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제삼자고 나발이고 나한테 누명을 덮어씌울 생각하지 마.”“제삼자가 아닌데 당신 아이를 임신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단은숙은 그 여자를 떠올릴 때마다 들끓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참지 못하고 고국성에 덮쳐들면서 그를 때리려고 했다. 그러나 고국성의 힘이 훨씬 강한 탓에 얼마 되지 않아 밀려났다.자신의 힘으로는 고국성을 상대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단은숙은 그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그래, 힘으론 나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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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0화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고국성은 창피하긴 했으나 어쩔 수 없이 자초지종을 고은서에게 알려주었다.그와 오미나는 처음에는 확실히 사업 파트너로서만 연락하다가 나중에 그녀가 여러 새로운 업무를 소개해주면서 몇 번 밥을 같이 먹은 적이 있었다.그러다 어느 한 모임에서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셨는데 얼마 되지 않아 오미나랑 같은 침대 위에서 눈을 뜨게 되었다.그러나 오미나는 화를 내는 대신 두 사람 다 술을 많이 마신 탓에 일어난 일이라면서 한 번의 사고라 여기고 없던 일로 치자고 하면서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죄책감이 든 고국성은 그 후로 오미나에게 적지 않은 선물을 사줬는데 또 그 일이 단은숙에게 들키면서 고준석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었다.그 이후로 고국성은 오미나와의 만남 횟수를 줄였고 그녀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도 없었다.그러나 오미나가 갑자기 임신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고국성은 아이를 지우라고 오미나를 몇 번이고 달랬지만 그녀는 기어코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갑자기 오늘 단은숙을 찾아와 고국성을 자신에게 주면 안 되냐고 애원하기 시작했고 단은숙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의 뺨을 후갈리기 시작했는데 옆에서 싸움을 말리려던 고국성까지 봉변을 받게 된 것이었다.단은숙이 행여나 일을 크게 만들까 봐 걱정되었던 고국성은 오미나를 먼저 보내려고 했는데 이는 단은숙의 화를 더 돋우게 되었고 끝내는 참지 못하고 그의 몸에까지 손을 댔고 따라 화가 났던 고국성도 참다못해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고 한다.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고 있던 고은혜도 소란 소리에 깜짝 놀라 거실로 달려 나와 보니 이미 상황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고은서가 전화를 받고 달려왔다.“삼촌, 그래서 어쩔 생각이에요?”고국성이 아무리 실수로 저지른 일이라고 해도 그의 잘못이 분명했다.그는 두 여자에게 모두 상처를 준 사람이 되었다.고국성은 물려서 아픈 손목을 문지르면서 자신은 단 한 번도 그 아이를 남길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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