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Chapter 591 - Chapter 600

801 Chapters

제591화

아침 조조 영화관은 한산했다. 내가 요즘 제일 인기 있는 영화표를 끊고 돌아오니 석지훈은 팝콘 한 통과 미지근한 콜라 한 잔을 들고 서 있었다.내가 궁금해서 물었다.“오빠는 안 마셔요?”“난 콜라 안 마셔.”그가 말했다.사실 석지훈은 굉장히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서 정크 푸드는 절대 먹지 않았다.나는 그가 군것질하는 모습은 물론 음료를 마시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기껏해야 차나 커피 정도? 나는 다른 걸 가리켰다.“저기 생수도 있어요.”석지훈은 잠시 말이 없다가 말했다.“들어가자.”그가 손에 들고 있던 팝콘을 건네주자 나는 받아 안았다. 그는 한 손에는 콜라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익숙하게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우리가 전세 냈네요.”내가 석지훈에게 말했다.이 시간에 영화 보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긴 했다.시작하기 직전에 몇 사람이 더 들어왔다. 그중 한 커플이 우리 앞자리에 앉았는데 어린 나이 탓인지 남자애가 여자친구에게 팝콘을 계속 먹여달라고 칭얼거렸고 목마르다고 콜라도 먹여달라고 했다.내가 계속 그 커플을 쳐다보자 석지훈이 고개를 돌려 나지막이 말했다.“영화 시작했어. 집중 좀 해.”나는 시선을 거두어 스크린을 향했지만 자꾸만 앞자리 커플에게로 눈길이 갔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나는 갑자기 손에 있던 콜라를 석지훈에게 건넸다.남자는 빨대를 잠시 보더니 살짝 물고 한 모금 마셨다.그가 빨대에서 입을 떼자 나는 콜라를 도로 가져오며 물었다.“어때요? 신세계죠?”석지훈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안 마셔본 것처럼 말하네. 안 좋아한다고 해서 안 마셔봤다는 건 아니야.”“그럼 팝콘은 먹어봤어요?”내가 다시 물었다.“그건 안 먹어봤어.”나는 팝콘 몇 알을 그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석지훈은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윤아야, 너 진짜 장난꾸러기야.”나는 웃으며 물었다.“맛있어요?”그는 마지못해 대답했다.“어. 영화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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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2화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산들바람이 불어와 남자의 몸을 스치며 이마의 검은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게 즐거워 보였고 약간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품에 안긴 작은 생명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아이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뺨을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달랬다.“윤아야, 엄마가 들어보게 다시 '아빠'라고 불러봐.”아이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빠'라는 단어에는 반응을 보이며 아주 달콤하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유모와 엄마가 평소에 많이 가르쳐준 모양이었다.나는 나지막이 말했다.“아빠~”그러자 아이는 작은 소리를 냈다.“아~”나는 계속 가르쳤다.“엄마 따라 해봐. 아빠~"윤아는 힘겹게 입을 떼었다.“아빠~"그 말을 듣자 석지훈의 눈빛은 마치 녹아내릴 듯 부드러워졌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겁고 묵직한 감정이 솟구쳐 오르는 듯 그는 내 앞에서 윤아의 뺨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대답했다.“아빠 여기 있어.”나는 경악에 찬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며칠 전 내 앞에서 차갑게 나에게만 키스한다고 말하던 남자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아마도 '아빠'라는 소리가 그의 마음을 녹인 것 같았다.하지만 이런 다정함은 오직 석윤아에게만 허락된 특권일지도 모른다.딸인 윤아에게만큼은 석지훈은 언제나 특별한 애정을 쏟았으니까.석지훈의 변화된 모습에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는 석윤아에게 “아빠”라고 부르도록 계속해서 가르쳤고 아이는 한참 만에 겨우 그 단어를 내뱉었다.비록 서툴지만, 석지훈은 그 작은 발음에도 매우 기뻐하며 방에서 윤아와 계속 놀아주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따뜻한 분위기의 짧은 동영상을 찍었다.촬영을 마치고 나니 고현성이 보낸 문자가 눈에 띄었다.어젯밤 새벽 두 시에 보낸 것이었다.[수아야, 나 너무 괴로워.]고현성은 갑자기 나한테 아주 괴롭다고 했다.그를 동정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는 휴대폰을 도로 집어넣고 석지훈의 곁으로 다가갔다.내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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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3화

하지만 그 화는 자초한 것이었다.그는 믿기 힘들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사과했다.“미안해.”최희연은 차분하게 대답했다.“사과할 것 없어요. 당신은 내게 빚진 거 없으니까.”그녀에게 빚진 사람은 주민솔이었고 진유겸은 단지 그녀의 마음을 도려냈을 뿐이었다.이젠 그녀가 그의 마음을 도려낼 차례다.그녀는 주민솔에게 상처를 주어 그에게 똑같은 고통을, 똑같은 지옥을 선사할 것이다.다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이때의 최희연은 진유겸의 마음을 진정으로 도려낸 사람은 자신이고 그녀가 왕자현과 결혼한 것 자체가 그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하지만 지금 진유겸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그는 왕자현의 존재조차 몰랐다.다만 진유겸은 결코 다음 고현성은 되지 않을 것이었다.어린 시절부터 밑바닥에서 온갖 피비린내 나는 절망을 겪으며 올라온 그였기에 그는 고현성보다 훨씬 더 잔인할 것이었다.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부숴버리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자기야, 다음 달 내 결혼식에 와.”진유겸은 속으로 중얼거렸다.‘그건 너를 위한 결혼식이야.’자기라는 다정한 호칭에 최희연은 잠시 멍해졌다.“네, 갈게요.”그녀는 대답했다.결혼식에 참석해 주민솔을 완전히 파멸시킬 것이다.진유겸이 떠난 후, 최희연은 신중하게 왕자현에게 답장을 보냈다.[연수아요. 그녀의 약혼자가 우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어 한대요.]왕자현은 답장하지 않았다.최희연은 그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었다. 초대에 응한 건지, 거절한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지금 뭐 하세요?]그녀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저택 정원에 꽃을 심고 있어요.][저택을 사셨어요?]최희연이 놀라며 물었다.[네. 부인의 고향이니 우리 신혼집으로 쓸 저택을 샀어요. 와서 구경할래요? 미리 오는 길도 익혀두고.]왕자현의 말에 최희연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지금요?][네, 사람을 보낼게요.]오늘 운성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마치 그의 존재를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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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4화

석지훈은 계속 방에서 아이와 함께 놀아주었고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엄마를 거들었다. 점심 식사 후, 석지훈은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고 그의 그런 모습에 엄마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지훈이는 아이를 정말 예뻐하는구나!”석지훈이 석윤아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었다.하지만 그보다는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였을 것이다.다시 말해, 그는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본인도 우리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런 그의 모습은 왠지 외로워 보였다.나는 부모님과 몇 마디 나눈 후 위층으로 올라갔다. 석윤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는데 아주 조용해 보였다. 석지훈은 내가 들어오자 나지막이 말했다.“사별이가 졸려서 잠들려고 하는 것 같아.”석지훈은 늘 석윤아를 사별이라고 불렀다.나는 그의 옆에 앉아 그의 어깨에 턱을 괴고 석윤아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금세 눈을 감고 잠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그의 뺨에 살짝 입을 맞췄다.그의 귀가 순간 발갛게 달아올랐다.“장난치지 마.”진한 키스가 끝나고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아이 방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나는 당황하며 물었다.“언제 CCTV를 설치했대요?”석지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몰랐어?”내가 만약 알았다면 감히 그렇게 대담하게 그를 유혹했을까?어쩐지 평소보다 더 적극적이고 내 작은 스킨십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더라니. 모든 것이 CCTV 때문이었다.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황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의 서두르는 모습에 엄마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 있어?”나는 애써 태연한 척 엄마에게 물었다.“컴퓨터 어디 있어요?”엄마는 바로 눈치를 채고 나를 보며 말했다. “아빠 방에 있어. 아빠 지금 뉴스 보고 계시니까 아마 너희들 못 봤을 거야.”나는 서둘러 부모님 방으로 가서 아빠가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태연한 척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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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5화

이 결혼은...나는 최희연이 예전에 진유겸에게 접근했던 목적을 떠올렸다.지금 그녀는 똑같은 방법을 쓰고 있었다.진유겸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 건가?[저녁에 봐.]나는 답장과 함께 식당 주소를 보냈다.문자를 보내고 나서 석지훈에게 물었다.“오후에는 뭐 할까요?”석지훈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뭐 하고 싶어?”“놀이공원에 갈까요?”내가 제안했다.나는 아직 사랑하는 사람과 놀이공원에 가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석지훈이 이렇게 시간을 내주는 것도 흔치 않은 기회였다.“좋아. 사별이도 잠들었으니 우리도 나가자.”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서 걸어가자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별장 문을 나서는 순간, 석지훈의 휴대폰이 울렸다.나는 그의 옆에 서서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지훈아, 나 아파. 병원에 와서 간호 좀 해주렴.”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나은은요?”“그 애는 우리 집 며느리가 아닌데 내가 어떻게 그 애를 내 곁에 붙잡아 두겠니? 엄마 얼굴 좀 보러 오렴. 우리도 오랫동안 못 봤잖아.”“어머니, 저 오늘 바쁩니다.”석지훈은 나와 놀이공원에 가기로 약속했다.“지훈아, 난 그냥 네가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어려운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 네가 내일 운성을 떠나면 또 언제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석지훈은 어머니 이정희에게 확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이정희는 한마디 툭 내던졌다.“병원에서 기다릴게.”석지훈은 전화를 끊고 나와 함께 차에 올랐지만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그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조심스럽게 말했다.“어머니는 오빠에게 좀처럼 부탁하는 법이 없잖아요. 지금 아프신데 곁에 아무도 없고 오빠는 또 어머니의 하나뿐인 가족이니 당연히 오빠가 보고 싶고 보살핌을 받고 싶을 거예요.”한성범이 석지훈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는 이유로 석지훈은 항상 그를 마음속 깊이 존경했다. 마찬가지로 이정희 역시 그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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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6화

석지훈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머니는 석씨 가문의 안주인이었고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을 가진 분이셨어.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어머니를 이길 수 없었지. 그런데 어머니는 욕심이 많아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 했어. 하지만 아버지에겐 첩이 많았고 이미 아들이 셋이나 있었어.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의 원한은 점점 쌓여갔고 그녀의 높은 자존심은 아버지에게서 멀어지게 만들었지. 그래서 어머니는 늘 뒤채에서 혼자 지냈어. 아마도 혼자 지내는 동안 심경의 변화가 생겼던 것 같아.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어머니는 그녀를 지키던 경호원과 관계를 가졌어. 한 명뿐만이 아니라, 어머니 곁에 있던 모든 경호원들과 말이야.”그럼 석지훈의 아버지는 누구란 말인가.석지훈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내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냉정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당시 어머니를 지키던 경호원은 모두 열네 명이었어. 그 누구도 감히 어머니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지. 게다가 당시 어머니는 아름다웠고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누구도 어머니를 거절할 수 없었을 거야.”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석지훈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내 아버지는 그 열네 명 중 한 명일 수도 있고 어쩌면 다른 사람일 수도 있어. 이제 와서 그 진실을 알아낼 방법은 없지. 하지만 난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석지훈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어머니가 나를 인정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어. 난 오히려 어머니의 삶이 불쌍하고 안타깝게 느껴지니까.”나는 그의 차가운 손을 따스하게 감싸 쥐고 부드럽게 말했다.“어머니는 아버지를 너무 깊이 사랑했을 뿐이에요. 아버지가 다정다감한 분이라 여기셨기에 다른 첩들의 존재도 참아내셨을 테고 뒤채로 거처를 옮기신 것도 그들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였겠죠.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아버지가 내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자 그 사실을 평생 원망하며 사셨던 거예요. 심지어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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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7화

나는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운성은 비랑 눈이 정말 많이 오죠!”얼마 지나지 않아 한민수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예하나 앞에서 전화를 받았다. 곧 그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형수님! 제발 부탁할게요. 나랑 유진이, 형 앞에서 얘기 좀 잘 해주세요! 우리 둘 다 진짜 힘들어 죽겠어요!”맞은편에 앉은 예하나의 얼굴이 좀 어색해 보여서 난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어떻게 도와달라는 거죠?”그때 예유진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형수님, 우리 둘은 매일 여기서 형이 가둬놓은 사람들이랑 같이 지내는데, 정말 너무 지루해 죽겠어요! 형한테 우리 좀 빨리 풀어달라고 말해주세요.”그 말에 나는 웃으며 물었다.“지금 갇혀있다고요?”한민수가 재빨리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우린 여기서 그 사람들을 지키고 있는데 정말 너무 지루하다니까요!”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그럼 오늘 밤에 슬쩍 얘기해 볼게요.”“부탁드려요. 형수님.”한민수와의 통화를 끝내고 난 뒤, 나는 표정이 굳어진 예하나에게 설명했다.“모두 내 약혼자의 친구들이에요.”“네, 재미있는 분들 같네요.”찻집에 머문 지 얼마 되지 않아 최희연의 전화가 걸려왔다.“수아야, 그이가 급한 일로 떠나야 하는데 나도 같이 따라가려고. 내 얼굴 흉터를 치료해주겠대.”“알았어! 무슨 일 있으면 돌아와서 얘기하자!”“어. 운성에 돌아가면 연락할게.”저녁 모임은 이렇게 취소되었다. 석지훈에게 문자를 보내 상황을 설명했더니 답장이 왔다.[응, 저녁에 집에 갈게.]휴대폰을 내려놓으니 갑자기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졌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었다.나는 무심코 예하나에게 물었다.“하나 씨, 부모님은요?”“해외에 정착하셨어요.”“아, 나 너무 심심하네요.”“하아, 저도 심심해요.”...이정희는 창가에서 석지훈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차갑고 무정한 그의 표정은 그 남자와 정말 똑같았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그 남자의 친아들이 아니었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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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8화

저녁 8시가 되었는데도 석지훈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담현아가 저녁에 고정재의 연주가 있다며 음악회에 초대했다.나는 답장을 보냈다.[정재 씨는 휴가 중이라고 하지 않았어?][친구 대신 급하게 연주하는 거래요!]집에 있기도 심심해서 나는 담현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음악회장 가는 길에 고양이 카페를 지나는데 창가 테이블에 앉아 팔로 머리를 괴고 바깥의 차들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예하나를 보았다. 내가 가까이 갔는데도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멍하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내가 그녀 앞에 서자 그제야 나를 발견한 그녀는 배시시 웃으면서 귀여운 덧니를 보이며 찻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밤이라 찻집 안은 은은한 조명 몇 개만 켜져 있어 고풍스러운 등갓 아래 따스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나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물었다.“음악회, 같이 갈래요?”유리창 너머라 그녀는 내 말을 듣지 못했다. 나는 목소리를 높여 다시 한번 물었다.“나랑 음악회, 같이 갈래요?”이번에는 들리는 듯했다.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아니요. 난 여기 있다가 9시가 되면 바로 올라가서 잘 거예요.”그녀가 원하지 않으니 나는 더 권하지 않고 고양이 카페를 떠났다. 모퉁이를 돌기 전에 뒤돌아보니 그녀의 표정은 아주 쓸쓸해 보였다.이 여자도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수아 언니, 여기요!”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담현아가 혼자 서 있었다. 그녀는 얇은 긴소매 원피스 하나만 입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젊으니까 추위도 안 타나 보네.’내가 다가가서 물었다.“정재 씨는?”담현아는 웃으며 대답했다.“지금 무대 뒤에서 준비 중이에요.”나는 담현아와 함께 음악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담현아는 연주회가 이미 절반 정도 진행되었고 고정재의 연주는 10분 후라고 말했다.그녀는 이제 고정재의 스케줄을 완전히 꿰고 있었다.5분 후, 고정재가 내 옆에 왔다. 나와 담현아는 깜짝 놀랐다. 곧 무대에 올라가야 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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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9화

“고마워요.”내가 막다른 길에 들어설 때마다 조언해 주고 스승이자 친구처럼 나를 이끌어준 그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그의 망설임 없는 대범함에도 감사했다.내가 사랑했던 남자는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다정하고 따뜻하면서 분별력 있는 사람, 고현성의 차가운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다.고현성...문득 그가 보낸 문자가 생각났다.그는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하는 걸까?나는 고개를 흔들며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라고 스스로를 다그쳤다.“꼬마 아가씨, 드레스로 갈아입어.”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나는 곧 하늘빛 롱드레스로 갈아입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정재의 비서가 다가와 말했다.“곧 시작합니다.”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무대 위로 걸어 나갔다. 객석을 향해 인사를 하는 순간, 맨 뒷줄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나는 옅은 미소를 띠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건반 위에 손을 올리고 잠시 숨을 고른 후, 첫 음을 눌렀다. 곧 애잔한 멜로디가 내 손끝에서 흘러나왔다.바람이 사는 거리사실 바람은 여기에 살지 않았지...그저 스쳐 지나갔을 뿐...우리 모두가 어렸던 그 시절...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4분 남짓한 시간, 곡은 금세 끝났다.이어서 네 곡을 더 연주했다. 20분 정도 걸렸을까. 관객들의 우레같은 박수 속에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고정재와 담현아는 나란히 앉아 있었고 그들 뒤편, 두 줄 뒤에는 태산처럼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그 남자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강했다...그리고 그 남자는 내 인생의 유일한 사랑이었다...박수갈채 속에서 난 과거의 집착을 떠올렸다. 평생 단 한 사람...나는 나의 9년간의 기다림이 그걸 증명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처음부터 잘못된 남자와 결혼했다.내 '평생 단 한 사람'은 그때 이미 웃음거리가 되었다. 고현성과 결혼한 순간부터가 웃음거리였던 것이다.나는 고정재에게 줄 사랑을 고현성에게 줬다.그 사랑은 그토록 진실했지만, 잘못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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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0화

나는 무대에서 황급히 내려와 의상을 갈아입고 그 남자를 찾으러 객석으로 갔다.그러나 뒷좌석은 텅 비어 있었다.나는 급히 음악당을 나와 옆 골목에서 석지훈을 찾았다. 그는 고개를 약간 든 채 골목길 가로등을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다가가서 물었다.“뭘 보고 있는 거예요?”“이 가로등이 고장 났어.”그가 말했다.그의 말대로 불이 꺼져 있었다.나는 다가가 익숙하게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고장 난 지 얼마 안됐나 봐요. 이곳은 번화가니까 금방 고칠 거예요!”석지훈은 나를 쳐다보며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윤아야, 너 평생 네 신념을 굳건히 지킬 수 있겠어?”나는 일부러 물었다.“내 신념이 뭔데요?”내 신념은 오직 평생 눈앞의 이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었다.하지만 난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었다.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웃기만 했다.오늘 밤의 석지훈은 좀 이상했다. 병원에 있는 이정희가 그한테 뭔가 이간질하는 말이라도 한 건가.나는 묻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석지훈과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잠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고 나는 일부러 따뜻한 색의 침구로 바꿨다.별장에는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니가 계시는데 항상 우리가 집에 없을 때 와서 정리해주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갈아주시는 침대 시트는 흰색 아니면 검은색이라 왠지 차갑게 느껴졌다.나는 따뜻한 색을 좋아했다. 그래야 마음도 따뜻해지는 기분이 드니까.석지훈은 30분 후에 샤워를 마치고 나왔고 그다음에 내가 샤워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보니 그는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그는 평소에 담배를 거의 피우지 않았다. 혹시 무슨 걱정거리가 생긴 건가.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아니.”그의 대답에 나는 다시 물었다.“근데 표정이 안 좋아 보여요.”그는 고개를 돌리며 불쑥 말했다.“어머니는 마음고생을 너무 오래 하셔서 병나셨어. 방금 아버지가 그립다고 하시더라.”이정희는 나의 아버지를 미워했다.하지만 사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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