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Chapter 581 - Chapter 590

801 Chapters

제581화

석지훈 물었다.“잠이 안 와?”나는 계속해서 그를 불렀다.“둘째 오빠.”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응?”나는 감정이 북받쳐서 말했다.“사랑해요.”“알고 있어.”그는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다.나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평생 잊지 마요.”“응, 영원히 기억할 거야.”나는 괜한 걱정에 또 물었다.“만약 언젠가 잊어버리면?”석지훈이 되물었다.“응?”“만약 언젠가 우리가 사랑했던 걸 잊어버리면 어쩌지?”어찌 보면 터무니없는 질문이었다.하지만 연인들 사이에 흔히 나누는 대화이기도 했다.그는 내가 괜한 걱정을 한다고 타박하지도 침묵으로 답하지도 않았다. 대신 진지하게 내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만약 내가 정말 잊어버린다면 그때 다시 고백해 줘. 반드시 널 다시 사랑하게 될 거야.”생각해 보니 처음 고백한 것도 나였다.나는 웃으며 물었다.“근데 오빠가 나를 까맣게 잊어버리면 내가 다시 고백해도 소용없는 거 아니에요? 그땐 오빠 눈에 내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지금 오빠가 나은 씨랑 한민영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그는 단호하게 말했다.“그럴 일 없어.”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나는 장난스럽게 물었다.“왜?”“왜냐하면 넌 나의 수아니까.”비록 엄청 진지하고 엄숙하게 말했지만 마치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사탕처럼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나는 그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농담이에요. 그냥 오빠의 생각이 궁금했어요. 근데 오빠 대답이 마음에 드니까 오늘은 봐줄게요. 하지만 다음번엔 이렇게 쉽게 넘어갈 일은 없을 거예요!”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태웅이가 말하길 여자들이 하는 말은 무조건 맞장구쳐 주라고 했어. 보아하니 너도 내가 맞춰 주는 걸 좋아하는구나?”또 원태웅...정말 역은 놈이야, 아니, 연애 코치라고 해두자.그는 석지훈을 아주 잘 가르쳤다.적어도 나는 만족스러웠다.나는 그의 품을 빠져나와 그의 옆에 바짝 다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가르쳤다.“여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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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2화

현정우는 전에 나한테 말한 적 있었다. 감히 자신이 다가갈 수 없는 분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평생 숨어서 몰래 좋아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연차를 내고 그녀를 만나러 가다니.혹시 무슨 깨달음이라도 얻은 걸까?대체 누가 그에게 그런 용기를 준 거지?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강해온에게 물었다.“강 비서, 혹시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요?”강해온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모르겠어요. 정우 씨가 그 부분은 철저히 숨기거든요. 하지만 제 생각에 평범한 여자는 아닐 겁니다. 저도 남자로서 알 수 있거든요. 정우 씨가 깊은 열등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속으로 꽤나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열등감..그건 단순히 낮은 자존감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다.현정우는 언젠가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야 할 순간이 올 것이다.나는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배 안 고파요?”강해온이 대답했다.“윤 비서도 지금 F국에 있습니다. 아홉 시에 근처에서 같이 저녁 먹기로 했거든요. 시간 맞춰 가려고요.”나는 놀라서 물었다.“언제 그렇게 친해졌어요?”강해온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최근에요.”최근?도대체 무슨 일로 두 사람이 가까워진 거지?나는 별생각 없이 물었다.“지훈 씨가 요리하는데 같이 먹을래요?”순간 그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급히 거절했다.“제가 감히 어떻게요!”나는 장난스럽게 물었다.“뭐가 그렇게 무서워요?”“석 대표님께서 대표님을 위해 준비하신 저녁이잖아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 자리에... 시간이 늦었네요. 저는 윤 비서 만나러 가볼게요.”그는 도망치듯 황급히 떠났다.나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 석지훈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그는 다정하게 물었다.“왜 놀렸어?”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밥 한 끼 같이 먹자고 한 게 놀리는 거예요?”그는 생선을 굽다가 태연하게 말했다.“다 나를 무서워하잖아.”나는 빠르게 대답했다.“난 오빠가 안 무서운데요?”물론 처음에는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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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3화

항상 요리를 해온 사람은 나였다.그러나 고현성은 단 한 번도 신경 쓴 적이 없었다.석지훈은 요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아래층에서 식사를 마친 뒤 주방을 정리하고 나서야 천천히 그의 뒤를 따랐다. 위층에 올라가니 그는 욕실에 있었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 안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욕실 문이 열렸고 그는 나를 보자 순간적으로 멈칫하더니 이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이렇게까지 나한테 집착하는 거야?”강 비서와 윤 비서는 약속이 있었고 현정우는 연차를 낸 상황이었다.이 넓은 저택에 가까운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그를 따라다니지 않으면 누구를 따라다니겠어?게다가 그는 내 남자였다. 나는 당연히 그에게 기대고 싶었다.말없이 그를 바라보자 그는 갑자기 허리를 숙여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난 그냥 오빠 옆에 있는 게 좋아요.”석지훈의 키는 크고 듬직했다. 그의 품에 안겨 있으니 나는 한층 더 작아 보였다.그는 나를 안은 채 침실을 나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4층에는 유리로 둘러싸인 작은 정원이 있었다. 이름 모를 꽃과 푸른 식물들이 가득했고 그 한가운데 새하얀 침대가 놓여 있었다.그는 조심스럽게 나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푹신한 침대에 몸이 스르르 파묻혔다. 눈을 반짝이며 그를 올려다보자 그는 아무 말 없이 엄지손가락으로 내 뺨을 살며시 쓰다듬었다.“오빠.” “수아야, 위를 봐.”나는 그제야 시선을 위로 돌렸다.까만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쪼각달이 은은한 빛나고 있었다.그 빛은 유리 지붕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며 이 공간을 한층 더 몽환적으로 만들었다.나는 감탄하며 말했다.“오빠, 정말 예뻐요.”“네가 좋으면 됐어.”나는 조용히 물었다.“여기가 오빠의 저택이에요?”“응. 몇 년 전 이곳에 왔다가 경치가 마음에 들어서 윤 비서한테 부탁했어. F국에서 유일하게 내 소유의 저택이야.”“너무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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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화

“응, 네 소원이라면.”그 한마디에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내가 처음으로 그에게 키스하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그때 우리는 아직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고현성이 “세상을 떠난 지” 겨우 4개월이 지난 시점이었고 나는 아직 석지훈을 좋아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 역시 나를 단순한 가족처럼 여겼다.하지만 나는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몰래 그에게 키스하고 싶었다. 그러다 그가 갑자기 눈을 뜨는 바람에 기회를 놓쳐버렸다.달빛이 쏟아지는 밤, 그의 눈빛은 유난히 차갑고 날카로웠다.마치 주변 공기마저 싸늘하게 식어버린 듯했다.그가 불쑥 입을 열었다.“키스하고 싶어?”그리고 다시 물었다.“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나는 알고 있었다.그 순간, 우리 사이의 마지막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고 더 이상 나는 고현성을 사랑하는 연수아가 아니게 될 것이다.그 또한 나에게 단순히 둘째 오빠가 아니게 될 것이다.하지만 다행히도 지금 우리는 사랑하고 있다.내가 멍하니 생각에 잠긴 걸 눈치챘는지 그는 조용히 내 뺨을 어루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수아야, 무슨 생각해?”나는 솔직하게 말했다.“처음으로 오빠한테 키스했던 순간.”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응?”“에르크 별장에서.”그가 고쳐 말했다.“아니야.”“그럼요?”“강물이 처음이었지.”석지훈이 말하는 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였다. 그때 그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고 우리는 얼음장 같은 강물 속에서 첫 키스를 했다. 하지만 의식이 흐릿해서인지 아무 기억도 남아 있지 않았다.나는 단호하게 말했다.“아니에요. 난 기억이 없어요.”그러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핑계네.”나는 뻔뻔하게 말했다.“아니, 내가 아니라면 아닌 거예요.”그는 다정하게 말했다.“하지만 수아야, 난 기억해.”그의 목소리는 너무도 달콤해서 당장이라도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나는 그의 허리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그렇게 주장하고 싶다면 좋아요. 대신 운성시로 돌아가면 나랑 세 가지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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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5화

그는 결국 나와 약속했다.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의 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 순간, 그의 눈빛이 깊어지더니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를 건넸다.“우리 사이에서 손에 꼽을 정도야.”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뭐가 손에 꼽을 정도예요?”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부끄러운 일.”하지만 나는 자궁암 수술을 받은 지 이제 겨우 석 달, 그동안은 절대 부부 관계를 가질 수 없었다.그는 반드시 삼 개월을 참아야 했고 나 역시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갑자기 그가 유럽으로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모르는 척하며 피곤한 듯 말했다.“나 자고 싶어요.”그는 조용히 나를 끌어안았고 그의 체온이 느껴지는 가운데 나는 금방 잠들어 버렸다.눈을 뜨니 어느새 아침이었다.자리에서 일어나자 석지훈은 방에 없었다. 나는 맨발로 계단을 내려와 그를 찾았고 1층 거실에서 윤 비서와 대화 중인 그를 발견했다.나를 보자 윤 비서는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수아 씨.”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강 비서는요?”“아직 자고 있습니다.”나는 놀라서 물었다.“혹시 어제 술 마셨어요?”보통 출장 중에 내가 일부러 휴가를 주지 않는 이상 비서가 술을 마시는 일은 없었다.윤 비서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아닙니다. 어젯밤에 강 비서가 길을 보지 않고 걷다가 강에 빠졌거든요. 그러다 감기에 걸렸는지 병원까지 다녀오는 바람에 지금까지 푹 자고 있는 겁니다.”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몸은 괜찮아요?”“네, 다만 피곤해 보이긴 합니다. 그래서 대표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강 비서가 깨어나면 함께 운성시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아가씨의 비서이니 먼저 허락을 구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서요.”나는 아직까지 내 비서가 언제부터 석지훈의 비서와 이렇게 친해졌는지 모르겠다.마치 오랜 인연을 뒤늦게 만난 것처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부탁할게요. 전 괜찮아요. 그리고 강 비서한테 사흘 동안 휴가라고 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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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희연아, 무슨 일이야?]그녀는 한참을 뜸 들이다가 답장을 보내왔다.[나... 혼인신고 했어.]혼인신고?무슨 혼인신고?설마 결혼했다고?나는 깜짝 놀라서 이내 메시지를 보냈다.[누구랑?][나랑 5년 동안 알고 지낸 남자.]나는 곧장 답장을 보냈다.[왕자현?][응, 바로 조금 전에.]지금 국내는 아마 점심쯤이었다.최희연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혼했다고?그것도 진유겸보다 먼저 했다니.어쩌면 그에 대한 복수인가?나는 차마 어떻게 물어야 할지 몰랐다.아니, 솔직히 말하면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괜히 그녀의 상처를 건드릴까 봐 걱정되었다.나는 이 이야기를 회피하듯 답장을 보냈다.[내일 돌아가면 만나. 지훈 씨가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어. 우리 같이 보자.]하지만 최희연은 더 이상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옷을 갈아입고 내려오자 그는 노트북을 덮고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나는 그의 팔짱을 끼며 물었다.“이제 운성시로 돌아가는 거예요?”“응. 근데 외투는 왜 안 입었어?”나는 입고 있는 체크무늬 원피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안 추워요.”국내는 점점 따뜻해지는 시기라 바람만 불지 않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내가 운성시의 날씨를 너무 얕봤다.그곳은 비가 내렸고 그것도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였다.비바람 속에서 온몸이 떨릴 정도로 추웠지만 그는 아까 F국에서 내가 했던 말을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재킷을 벗어 내 어깨에 둘러주었다.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그는 내일 연씨 가문의 별장에 함께 가겠다고 약속했다. 그 말을 듣자 비로소 안심이 되어 편히 잠들 수 있었다.하지만 그때, 내 핸드폰에 읽지 않은 메시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현성이 보낸 메시지였다....아이스랜드.왕자현은 복도에 서서 아래에 있는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혹여 그가 마음을 바꿀까 두려운 듯 급히 말했다.“제가 약속드릴게요. 언젠가 자현 씨가 다른 여자를 원하시게 된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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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7화

만약 그녀가 그의 권력을 이용해 복수하려고 했어도 그는 기꺼이 허락했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진유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끊어내기로 했다.그렇게 해야만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더 이상 망설이지 않을 수 있었다.그때가 되면 그녀는 이미 유부녀일 테니까.더 이상 그에게 어떤 기대도 품지 않아 된다.여자는 한 번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남자보다 훨씬 더 단호해지는 법이다.“먼저 운성시로 돌아가세요. 내일 찾아갈게요.”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원을 나서려는 순간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그를 돌아보았다.흰색 기모노를 입은 그의 모습은 우아하면서도 고귀했다. 마치 만화 속에서 걸어 나온 듯했다.더군다나 그의 얼굴은 조각상마냥 완벽했다.어쩌면 이 세상에서 드문 남자였다.하지만 그녀는...그랑 어울리지 않았다.차마 바라볼 수조차 없는 사람이었다.그녀의 마음속은 쓰라림과 열등감으로 가득 찬 채 비굴하게 그를 불렀다.“왕자...”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다시는 그렇게 부르지 않을 줄 알았는데.”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게... 진짜 이름인가요?”그는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한참을 뜸 들이다가 말했다.“제 증조부는 일본인이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문화를 무척 좋아했지만 사실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어요. 그래서 제 이름을 지을 때...”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그녀에게 되물었다.“제가 굳이 이름을 속일 필요 있을까요?”“아... 왕자는 혼혈이셨군요.”최희연은 그가 어느 나라 국적인지 정확히 몰랐다.그는 두 손을 뒤로 한 채 차분하게 설명했다.“증조부는 일본인, 증조모는 우리나라 사람이에요. 그래서 할아버지는 중, 한 혼혈이에요. 저는 우리나라 혈통이 더 많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죠.”아, 그래서 기모노를 입고 있었구나.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그 순간, 흩날리는 눈보라 속에서 낮고 깊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희연 씨.”그녀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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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화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석지훈은 이미 곁에 없었다. 혹시 또 예전처럼 나 모르게 떠난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찾아 나섰다.하지만 서재 근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한 번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는데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했나 보다.곧이어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진이랑 민수는 지금 핀란드에 있어. 이번에 넌 운성시에 남아서 수아를 돌봐.”“알겠어, 나도 솔직히 해외 나가긴 싫었어.”원태웅의 목소리였다.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형, 수아가 아직도 형한테 화났어?”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석지훈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반격했다.“언제 적 얘기를 아직도 꺼내는 거야?”나는 처음으로 그가 이런 식으로 화내는 걸 보았다. 근데 편안한 분위기였다. 둘의 관계는 생각보다 가까운 것 같았다.원태웅은 눈치채고 잽싸게 분위기를 바꿨다.“아니, 그냥 걱정돼서 그러지. 그나저나 여자들은 말이야, 잘 달래주면 다 풀린다고 하더라고.”“...”문 앞에서 듣고 있던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고 석지훈은 아무 대꾸 없이 그의 말을 무시했다.그런데도 그는 기어이 선을 넘으며 계속해서 떠들었다.“형, 꼭 고현성을 조심해야 해! 그 자식, 수아를 절대 포기 안 할 거야. 수아의 전남편이자 수아가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야. 솔직히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 한구석이 약해질 수도 있잖아? 게다가 요즘 고현성이 겪은 일들이...”그가 말끝을 흐리는 바람에 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현성이 요즘 무슨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거지?다만 그가 무슨 일을 겪든 이제는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석지훈은 짧게 대답했다.“수아는 스스로 판단할 거야.”원태웅은 피식 비웃음을 흘리더니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렇게 태연한 척해 봐야 소용없어. 고현성이 다시 수아한테 다가오면 형 또 질투하면서 속으로 혼자 부글부글 끓을 거잖아? 물론 형은 절대 질투한다고 말하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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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9화

하지만 나는 석지훈에게 그저 조금 더 나를 아껴 달라고 조를 뿐, 원태웅처럼 그의 한계를 시험하며 장난을 치진 않았다.그는 그렇게 쉽게 휘둘릴 사람이 아니었다.계속해서 건드리다간 언젠가 큰코다칠지도 모르는 일이다.나는 원태웅을 향해 눈을 굴리며 말했다.“그게 같아요?”원태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확실히 다르지. 형은 널 아끼니까 네가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벌을 줄 리가 없잖아. 하지만 우리는 달라. 우리가 말썽을 부리면 무조건 벌받는단 말이야. 민수랑 유진이 봤지? 지훈이 형은 그렇게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야.”나는 그만 시선을 거두고 창문을 통해 비가 그친 뒤 맑아진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그걸 알면서도 계속 그러는 거예요? 셋째 오빠, 내가 한마디만 할게요. 강가를 자주 걷다 보면 언젠가 발이 젖기 마련이에요.”그는 흥미롭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형이랑 얼마나 오랜 친구라고, 절대 선 넘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그렇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나를 향해 말했다.“형, 원래 오늘 핀란드로 가기로 했잖아? 근데 내일로 미뤘더라. 보나 마나 하루 더 시간을 내서 너랑 함께 있으려고 그런 거지?”석지훈은 오늘 함께 연씨 가문 별장에서 식사하기로 약속했다.그는 분명 나를 배려하고 있었다.“네, 오늘 집에 가서 애들 보려고요.”그는 갑자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수아야, 형한테 잘해. 형은 네가 소중히 여길 만한 사람이야.”그는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고 그 한마디는 이상하게 내 마음 한구석을 찜찜하게 했다.나는 곧장 서재로 돌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석지훈은 아직도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나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바빠요?”그는 짧게 대답했다.“30초만.”나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그는 윤 비서에게 메일을 보내고 있었다.[어떤 일이든 내일 핀란드에서 얘기해. 오늘은 절대 방해하지 마.]메일을 보낸 뒤 그는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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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석지훈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는 걸 보고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조용히 고개를 돌려 설거지를 계속했다.설거지를 마치고 거실로 돌아오자 그는 이미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검은색 밀리터리 룩에 허리에는 같은 색상의 가죽 벨트까지.깜짝 놀란 나는 그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오빠, 이건 뭐예요?”그는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좋아한다며.”“...”흘려보내듯 내뱉은 말에 그는 조용히 옷을 갈아입고 왔다.나는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며 살며시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그는 자연스럽게 허리를 감싸안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조심해. 다치면 어쩌려고.”나는 장난스럽게 물었다.“오빠, 설마 기분 맞춰주려고 옷 갈아입은 거예요?”딱히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한 말이었고 그 역시 대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의외로 진지하게 대답하는 그였다.“응. 네가 기뻐했으면 해서.”참, 사람을 설레게 하는 말을 능숙하게도 한다.나는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싼 채 그의 얇은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런데 그의 눈에 비친 웃음기가 너무 달콤해서 나도 모르게 한 번, 또 한 번 입을 맞췄다.“...”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내 모습에 그는 손으로 내 머리를 감싸 쥐더니 거칠게 입술을 베어 물었다.살짝 얼얼한 감각에 나는 수줍게 그의 품에서 몸을 일으켰다.그는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얼굴이었다.더 이상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감정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급히 몸을 돌려 정원으로 도망쳤다.정원에는 살구꽃이 여전히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복숭아꽃 봉오리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아마 다음 달이면 만개할 것 같았다.그때가 되면 정원은 온갖 꽃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볼 수 없겠지...솔직히 말해 나는 그와 헤어지는 게 싫었다.우리의 만남과 이별이 이렇게 잦은 것도 싫었다.그러나 이게 우리의 현실이었고 그는 그가 지켜야 할 권력이 있었고 나 또한 내가 책임져야 할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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