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석지훈은 이미 곁에 없었다. 혹시 또 예전처럼 나 모르게 떠난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찾아 나섰다.하지만 서재 근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한 번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는데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했나 보다.곧이어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진이랑 민수는 지금 핀란드에 있어. 이번에 넌 운성시에 남아서 수아를 돌봐.”“알겠어, 나도 솔직히 해외 나가긴 싫었어.”원태웅의 목소리였다.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형, 수아가 아직도 형한테 화났어?”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석지훈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반격했다.“언제 적 얘기를 아직도 꺼내는 거야?”나는 처음으로 그가 이런 식으로 화내는 걸 보았다. 근데 편안한 분위기였다. 둘의 관계는 생각보다 가까운 것 같았다.원태웅은 눈치채고 잽싸게 분위기를 바꿨다.“아니, 그냥 걱정돼서 그러지. 그나저나 여자들은 말이야, 잘 달래주면 다 풀린다고 하더라고.”“...”문 앞에서 듣고 있던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고 석지훈은 아무 대꾸 없이 그의 말을 무시했다.그런데도 그는 기어이 선을 넘으며 계속해서 떠들었다.“형, 꼭 고현성을 조심해야 해! 그 자식, 수아를 절대 포기 안 할 거야. 수아의 전남편이자 수아가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야. 솔직히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 한구석이 약해질 수도 있잖아? 게다가 요즘 고현성이 겪은 일들이...”그가 말끝을 흐리는 바람에 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현성이 요즘 무슨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거지?다만 그가 무슨 일을 겪든 이제는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석지훈은 짧게 대답했다.“수아는 스스로 판단할 거야.”원태웅은 피식 비웃음을 흘리더니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렇게 태연한 척해 봐야 소용없어. 고현성이 다시 수아한테 다가오면 형 또 질투하면서 속으로 혼자 부글부글 끓을 거잖아? 물론 형은 절대 질투한다고 말하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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