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Chapter 721 - Chapter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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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1화

설령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자신을 낳고 길러준 은정만으로 그를 용서할 수는 없는 걸까?정말로 그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아버지라는 단어를 다시 입에 올릴 수 있을까?김단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천천히 몸을 돌렸다.그녀의 눈앞에는 눈물로 범벅이 된 채 힘겹게 서 있는 진산군이 있었다.김단은 차분히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마님께서는 지금 누군가의 보살핌이 절실한 때입니다. 부디 몸 건강 챙기십시오. 저는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그녀는 다시 한번 조용히 인사한 후 떠나버렸다.이번에는 정말로 뒤돌아보지 않았다.진산군은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이번에는 진산군도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곁에 서 있던 겸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감님,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아가씨께서 언젠가는 마음을 여실 겁니다.”그러나 진산군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웃음을 지었다.“상심은 무슨… 방금 전 그 애가 나에게 몸조심하라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다음에 또 오겠다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냐?”그녀의 입에서 어렵게 꺼낸 그 짧은 말들이 진산군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김단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마차 안, 김단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창밖으로 저물어가는 풍경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그 어디에도 닿지 않았다.숙희는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아가씨… 정말 괜찮으세요?”그녀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임씨 부인을 만난 후 김단의 기분이 눈에 띄게 저조해 보였다.의원을 만난 뒤 기운을 차린 듯했지만 진산군의 등장으로 인해 다시 무너져 내렸다.한참이 지나서야 김단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숙희를 바라보았다.그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었다.“숙희야, 내가… 너무 매정한 것이냐?”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바람처럼 스쳤다.고작 밥 한 끼였을 뿐인데...눈물까지 흘리며 붙잡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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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2화

새벽의 찬 공기가 아직 채 걷히지 않은 시간.부드러운 햇살이 정교하게 조각된 창살 사이로 스며들었다.고요한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진 그 안으로 화려한 옷차림에 정갈하게 단장을 한 후궁들이 우아하고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들어섰다.입가에 머금은 미소는 공손하면서도 은근히 빛났다. “신첩들, 중전마마께 문안인사드립니다.”맑고 고운 목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중전은 부드러운 비단 이불에 반쯤 몸을 기대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가에는 피로의 흔적이 드리워져 있었다.한 달 남짓한 침 치료 끝에 그녀의 몸속에 퍼져 있던 독은 간신히 사라졌다.하지만 그녀의 몸은 아직 회복되지 못한 듯했다.숨소리조차 얇게 떨릴 만큼 기운이 없었고 손을 들어 보일 힘조차 없었다.“모두 일어나거라.”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너무나 쇠약했다.후궁들 중 가장 먼저 나선 이는 혜비였다.한 걸음 앞으로 다가온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마마, 안색이 영 좋지 않으십니다. 혹시 잠을 설치신 건 아닌지요? 신첩이 며칠 전 좋은 보양 약재를 손에 넣었는데 곧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중전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해 주어 고맙소. 그저 고뿔에 걸린 것이니 걱정 마시오.”그 순간 덕빈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고뿔에 걸렸다고 보기에는 너무 쇠약해 보이십니다.”곁에 있던 현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거들었다.“맞습니다 마마.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꼭 의원을 불러보시지요. 혹시 진맥은 받아보셨습니까?”중전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혼란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받아보았소. 김 의원이 수시로 들러 내 상태를 살펴보고 있소.”그 말을 들은 후궁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덕빈의 얼굴에는 여전히 의문이 서려 있었다.“요즘 저희들도 김 의원 덕분에 많이 회복되었지요. 그런데 어찌 중전마마께서는 오히려 전보다 더 기운이 없어 보이시는 겁니까? 혹시 그 의원이 마마께만 소홀한 건 아니겠지요?”덕빈의 말에 다른 후궁들도 수긍하며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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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3화

정말로 덕빈의 소행이었다면 중전이 고뿔에 걸렸다고 둘러댔을 때 그녀는 조용히 넘어갔어야 했다.더 캐묻지도 않고 중전의 말을 그대로 믿어주는 척하며 상황을 묻어버리는 게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하지만 덕빈은 그러지 않았다. 굳이 말을 덧붙이면서까지 의심을 부풀렸다.그녀의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그녀가 범인이 아니라는 단서가 되어버렸다.서원 공주의 미간이 점점 더 깊게 찌푸려졌다.“그럼…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벌써 한 달이나 지났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짐작 가는 사람이 없으신가요?”그 질문에 중전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러다 이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없다.”그 한마디에 서원공주의 마음이 조급해졌다.“그럼 어쩐단 말입니까? 김단 낭자가 그랬잖아요. 어머니 몸속의 독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어 온 거라고. 만약 범인을 잡지 못한다면... 어머니께서는 또다시 독에 중독될 수도 있습니다.”그녀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가는 붉어지기 시작했다.어머니를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와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그걸 지켜보는 중전의 가슴은 찢길 것 같았다.그녀가 다정하게 말을 건네며 안심시켜주려던 찰나, 서원공주의 눈빛이 확 바뀌었다.“그렇다면 김단 낭자에게 이 일을 맡기시지요.”중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그 아이에게?”서원공주는 입꼬리를 살짝 비틀며 차갑게 말했다.“그 애 뒤엔 지켜주는 사람이 많습니다. 소가 형제도 있고 원군님도 계시지요. 비록 지금 그분은 전장에 있다고 하지만 아무런 대비도 없이 떠났을 리가 없습니다. 김단 낭자의 목숨을 걸고 협박한다면 그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진상을 밝혀낼 겁니다.”비인간적인 방법이지만 꽤 전략적인 계획이었다.“우리처럼 이리저리 추측만 하는 것보다 그 사람들이 움직이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에요.”중전은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가 미소를 지었다.자신을 빼다 박은 딸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하지만 곧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역시 내 딸이다. 우리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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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4화

김단은 단정히 무릎을 꿇은 채 그저 바닥만 바라보았다.“송구하옵니다 세자저하. 제 죄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세자는 그 대답을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죄를 모른다? 지금 내 어머니의 상태를 보고도 감히 그런 소리를 하느냐? 한 달이나 걸렸다. 그런데도 어머니의 몸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지 않느냐? 혹시 치료하는 것처럼 위장하여 목숨을 노리고 있는 것이냐?”김단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김단은 누구보다 진심을 다해 중전의 병세에 대해 설명하고 그녀를 치료했다.중전 역시 그녀를 전적으로 믿고 맡기겠다고 얘기했었다.하지만 지금 세자의 말 한마디로 그녀에 대한 중전의 믿음이 깨져버리고 말았다.중전과 서원공주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그 침묵이 김단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김단은 침착하게 숨을 고르며 정중히 입을 열었다.“세자저하, 중전마마께서 걸리셨던 독은 사람의 내장을 조금씩 갉아먹는 독이었습니다. 지금은 해독된 상태지만 완전히 회복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자의 눈썹이 깊게 찌푸러졌다.그 시선에는 여전히 의심과 불신이 서려 있었다.“그 말을 지금 믿으라는 것이냐?”김단은 고개를 숙인 채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어찌 감히 저하를 속일 수 있겠습니까?”“좋다. 그럼 네 말이 맞다고 치자. 만약 내 어머니의 병세가 이대로 나아지지 않는다면 어찌할 셈이냐?”김단은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녀의 눈빛이 조용히 세자와 맞닿았다.그 순간 김단은 세자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느꼈다.“저하께서는 어찌하고 싶으십니까?”세자의 목소리가 차가운 칼날처럼 내리꽂혔다.“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어머니의 건강뿐이다. 하지만 만약 어머니의 상태가 더 악화된다면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네 원군님도 무사하지 못하겠지.”김단은 그제야 세자의 본심을 알아차렸다.처음부터 이것을 빌미로 자신뿐만 아니라 최지습까지 몰아가려는 것이었다.김단은 숨을 들이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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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5화

김단의 말이 끝나자 중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의 눈빛에는 안도와 신뢰가 담겨있었다.곁에 앉아 있던 서원공주도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웃었다.“저는 낭자의 의술을 믿습니다. 오라버니도 보셨잖습니까?”하지만 세자는 여전히 입꼬리를 비틀며 콧방귀를 뀌었다.“어머니 병세가 완전히 나았을 때 다시 얘기하도록 하지. 약을 달였다면서? 얼른 가서 불 조절이나 하거라.”김단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세자를 흘끔 바라보았다.자기 마음대로 불러 놓고 다시 내쫓는 건 또 무슨 경우인지...세자에 대한 불만이 많았지만 김단은 그저 조용히 예를 갖추며 물러났다.김단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세자는 슬쩍 미간을 들어 올리며 웃음을 머금었다.“어머니, 방금 그 낭자가 저를 노려본 것 같지 않습니까?”중전은 조용히 웃기만 하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서원공주가 비웃듯 얘기했다.“그저 한낱 미천한 의원일 뿐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이런 큰 연극을 펼쳐 보일 필요가 있습니까?”하지만 세자는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연기도 필요한 법이다. 결정적인 순간 네가 나서서 자신을 지켜줬다고 느끼게 해야 완전히 네 편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서원공주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그렇게 쉽게 마음을 열어줄까요? 저는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그 말에 세자의 표정이 굳어지나 싶더니 이내 싸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그럼 어쩔 것이냐? 너처럼 아이를 낙태시키기 위해 저 낭자를 협박이라도 할 것이냐?”그 말에 서원공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지만 방 안의 나인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지금 이곳에 남아 있는 건 오직 그들뿐이었다.서원공주는 말문이 막힌 듯 입술을 떨었다.“오... 오라버니께서 어떻게 그걸...”그녀의 두 눈은 공포와 당혹감으로 가득 찼다.그리고 그 시선이 중전에게 닿았을 때 그녀 역시 고요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그 표정에는 놀라움이 아닌 체념이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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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6화

약 한 시진이 흐른 뒤 김단은 정성껏 달인 약그릇을 조심스레 들고 중전의 방으로 들어섰다.세자는 이미 자리를 비운 뒤였고 중전 곁에는 서원공주만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중전은 독으로 인해 몸이 많이 망가진 상태라 약을 마시자마자 곧 잠에 들었다.서원공주는 어머니의 이불을 다정히 여며주고 나서야 조용히 밖으로 향했다.김단 역시 자연스레 그녀의 뒤를 따라나섰다.그녀가 공손히 예를 갖추고 물러나려던 찰나 서원공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윤이야, 김 의원의 물건은 네가 대신 내의원으로 가져가거라. 나는 김 의원과 따로 나눌 말이 있다.”윤이는 고개를 숙이고는 김단이 들고 있던 약그릇을 받아든 뒤 조용히 자리를 떴다.그제야 서원공주는 고개를 돌려 김단을 바라보며 익숙지 않은 미소를 지었다.“나와 잠깐 어화원으로 가지 않겠소?”그녀의 속내가 무엇인지 헤아릴 수 없었지만 공주의 부탁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그렇게 멀찍이 떨어진 나인들을 뒤로하고 가을이 짙게 내려앉은 어화원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가을 끝자락의 정원은 특유의 고요함과 깊은 색채로 물들어 있었다.노랗게 물든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스치고 마른 낙엽이 조용히 발끝에서 사그라들었다.서원공주는 얼마 걷지 않아 조용히 걸음을 멈췄다.“오늘 오라버니 때문에 많이 놀랐소?”김단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대답했다.“세자저하께서 중전마마의 병이 걱정되어 그런 것이니 이해합니다.”김단은 정중하게 대답했지만 마음은 결코 편치 않았다.그녀가 진짜 경계하고 있는 대상은 세자가 아닌 바로 눈앞에 있는 공주였다.늘 고고하고 거만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던 사람이 이토록 부드럽게 말을 걸어오고 친절을 베푸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김단은 속으로 의심하고 있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그런데 그 순간 서원공주가 갑자기 김단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그 손은 생각보다 따뜻했지만 김단의 심장은 차갑게 식어갔다.“그동안 어머니 곁을 지켜줘서 고맙소. 낭자가 아니었다면 어머니께서는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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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7화

“내가 준다 했으면 그냥 받으시오.”서원공주는 김단 앞으로 성큼 다가서더니 망설임 없이 비녀 위에 보요를 꽂아버렸다.금빛이 찰랑이자 세 알의 붉은 보석들이 더 눈부시게 빛났다.그 반짝임은 오히려 김단의 얼굴을 더 하얗고 뚜렷하게 만들어 주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원공주는 예상치 못한 감정을 느꼈다.김단에게 준 보요는 원래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어릴 적 아버지께서 직접 내려준 소중한 물건이었다.그녀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던 장신구가 김단을 이토록 빛나게 해주니 너무나도 거슬렸다.김단의 머리 위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진 보요는 마치 원래부터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그 사실이 묘하게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공주의 체면이 있으니 이미 내어준 물건을 다시 거두어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서원공주는 얼굴에 가벼운 불쾌감을 띄운 채 말했다.“나는 공주이니 값비싼 장신구들은 많소. 낭자에게 하나 내준다고 해서 아쉬울 거 없다는 뜻이오.”김단은 이 장신구가 예전에 자신이 모욕당하며 손에 쥐었던 공예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 보요의 값은 공주에게 있어 그저 하나의 숫자에 불과할 것이다.김단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공주자가의 은혜는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성심을 다해 공주님께 보답해 드릴게요.”그 말은 김단이 의도적으로 뱉은 것이었다.오늘 먼저 손을 내민 것은 공주였으니 김단은 그저 그녀의 의도대로 반응해 주기만 하면 된다.아니나 다를까, 서원공주는 김단의 태도에 만족한 듯 얼굴에 흐뭇한 기색이 번졌다.“낭자의 의술 실력이 출중하니 내 눈여겨본 게 아니겠소? 기억해시오. 낭자만 잘한다면 나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오.”“명 받들겠습니다.”김단은 여전히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그러자 서원공주는 아무 말 없이 발길을 돌려 어화원의 안쪽 깊은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김단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그렇게 시간이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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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8화

그 두 나인이 집요하게 김단을 괴롭혔던 건 단지 개인적인 악감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그들은 명백히 공주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말이다.그리고 그 둘뿐만이 아니었다.세답방에 있던 사람들 중 그녀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 있었던가?모두가 서원공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김단을 괴롭히고 짓밟는데 앞장섰다.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와중에도 두 나인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찧으며 용서를 구했다.하지만 김단의 머릿속에는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피가 튀고 살이 찢기며 울부짖던 자신의 모습과 그녀의 고통을 즐기던 그 두 나인의 모습이 눈앞에서 다시 재현되는 듯했다.김단은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서원공주가 건넨 채찍을 건네받았다.무릎을 꿇은 두 나인을 잠시 바라보더니 조용히 팔을 들어 채찍을 내리쳤다.무자비하게 휘두르는 것도, 감정을 담아 퍼부은 것도 아니었다.단정하고 절도 있게 한 사람당 다섯 대만 때렸다.두 나인은 땅바닥에서 몸을 웅크린 채 울부짖었다.채찍질을 멈춘 그녀는 채찍을 다시 서원공주 앞에 조용히 내밀었다.그 얼굴엔 분노도 통쾌함도 없었다.서원공주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더니 무언의 손짓으로 두 나인을 끌고 가라고 지시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단의 얼굴에는 억눌린 감정이 뚜렷하게 드러났다.그렇다면 분노를 터뜨리듯 채찍을 휘두를 줄 알았건만 김단은 여기서 멈췄다.예상과는 다른 그녀의 반응에 공주가 입을 열었다.“이걸로 충분한 것이오?김단은 천천히 숨을 내쉰 뒤 차분하게 말했다.“공주님께서 명하신 일인데 제가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예전에도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저의 원한이 깃든 사람은 저 둘이 아닙니다. 두 나인을 보는 것도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이 고통의 시작은 결국 진산군 댁과 임원 낭자입니다.”그 말에 서원공주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김단은 예전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때는 믿지 않았다.단지 자신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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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9화

생각해 보면 참 서글픈 일이었다.한때는 자신의 전부였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가 온갖 꾀를 부리고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야만 겨우 그녀를 볼 수 있는 꼴이라니.한때 자만심으로 빛나던 젊은 장군이 지금은 초라할 만큼 안쓰러운 모습으로 눈앞에 서 있었다.김단은 그를 향해 뭐라 질책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차라리 야멸차게 욕을 해서라도 정신 차리게 만들고 싶었지만 그조차 헛되이 들릴 만큼 이 남자의 모습은 너무 진심이었다.그때 소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앞으로… 내가 다치면 낭자가 약 발라주면 안 되겠소?”“안 됩니다.”김단은 단칼에 잘라내듯 대답했다.그녀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전 군의관이 아닙니다. 전쟁터에서 다쳤다고 가정을 해보세요. 그때도 한양까지 올라와서 저한테 치료 받으실 겁니까?”그러자 소한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낭자가 내 상처를 봐준다고만 하면 난 얼마든지 참고 버틸 수 있소.”그 말에 김단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때 마침, 문밖에서 들려온 단단한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또 다쳤다고?”곧이어 문이 열리고 검은 전투복 차림을 한 소하가 당당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몸에 딱 맞게 재단된 옷자락이 날렵한 어깨선을 따라 흘러내렸고 허리춤에는 장검이 매달려 있었다.힘 있고 절도 있는 그 걸음에 방 안의 기류가 달라졌다.그를 발견한 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환한 얼굴로 인사했다.“소하 도련님.”반면 소한의 얼굴은 순식간에 구겨지더니 찡그린 얼굴로 소하를 노려보며 날을 세웠다.“여긴 왜 왔습니까?”소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김단에게 인사한 뒤 소한을 바라보았다.“네가 다쳤다고 해서 말이다. 많이 다친 것이냐?”그러면서 그는 조용히 손을 뻗어 소한의 옷깃을 젖히려 했다.그러자 소한은 그 손길을 피하기 위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관심 끄세요. 전 김단한테 치료 받으러 온 겁니다.”그 말에 소하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입을 열었다.“김단은 바빠 보이는데? 네 약은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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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0화

소한의 가슴에 감겨 있던 붕대 위로 선홍빛 피가 점점 번져가며 그 면적을 넓히더니 이내 붕대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그 모습을 본 소하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그는 망설임 없이 소한의 팔을 붙잡아 끌며 말했다.“상처가 덧났다. 약 발라줄 테니 가만히 있거라.”하지만 소한은 그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며 노골적으로 말했다.“형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소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켜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그는 소한이 또 김단을 귀찮게 한다는 소문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던 것이다.소한의 상처는 대부분 아물었기에 굳이 내의원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방금 그 잠깐의 실랑이로 인해 상처가 다시 벌어질 줄은 소하도 예상하지 못했다.김단은 그런 상황에 이골이 난 듯 차가운 눈빛으로 소한을 노려보다가 결국 담담하게 말했다.“앉으세요 얼른.”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약통과 붕대를 가지러 갔다.소한은 그제야 만족한 듯 조용히 의자에 앉아 상의를 벗고 탄탄하게 다져진 상체를 드러냈다.그의 눈에는 자신이 원하던 대로 김단에게 치료받을 수 있다는 기쁨과 방금 전 그녀의 약병을 깨뜨렸다는 죄책감이 동시에 얽혀있었다.김단은 말없이 다가와 그의 상처를 감싸고 있던 붕대를 조심스럽게 풀었다.그의 상처가 드러났을 때 김단과 소하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졌다.“한아, 제정신이냐?”그 상처는 단순한 실수로 인해 벌어진 게 아니었다.누가 봐도 일부러 아물어가던 상처를 다시 찢은 흔적이었다.소한은 인상을 찌푸리며 소하를 노려보았다.소하가 여기서 한마디만 더 했다가는 또 싸움이 날 게 뻔했다.김단은 아무 말 없이 붉게 벌어진 상처를 들여다보더니 묵묵히 약을 발라주기 시작했다.그녀는 끝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소한 역시 그녀의 손길에 몸을 맡기면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상처를 다 치료한 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장군이라면 자신의 몸부터 아껴야 합니다.”김단은 짧게 한마디 뱉어버리고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소한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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