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Chapter 731 - Chapter 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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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1화

소하의 미간에는 어느새 짙은 근심의 스며들었다.소한은 이제 더 이상 그녀를 억지로 붙잡거나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의 방식은 여전히 극단적이었다.거의 다 나아가던 상처를 일부러 뜯어내어 다시 덧나게 하다니...그렇게 자신의 몸을 해쳐가며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하지만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소한은 듣지 않을 것이다.자신의 말은 힘이 없다는 걸 이미 오래전부터 체감하고 있었다.그저 방금 전 김단이 한 말이 소한을 정신 차리게 할 수 있기를 바랐다.시간은 조용히 흘러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이날도 김단은 평소처럼 중전의 약을 들고 그녀의 처소를 찾았다.그러나 뜻밖에도 중전의 문병을 온 전하와 마주치게 되었다.전하는 중전의 곁에 앉아 나인들이 중전에게 약을 먹이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더니 김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중전의 몸은 어떠하냐? 도대체 언제쯤이면 완전히 회복된단 말이냐?”김단은 머리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중전마마의 기력은 지난 보름 사이 눈에 띄게 호전되었지만 중독된 세월이 워낙 오래되었기에 완전히 회복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전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생각해 보면 십여 년간 몸속에 쌓인 독이 하루아침에 깨끗이 나을 리 만무했다.다만 최근 소하로부터 중전에게 독을 먹인 자가 중전의 외가 친척인 맹씨 집안이라는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문득 그 생각이 떠오르자 전하의 눈썹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그 표정을 본 서원공주는 혹여 김단이 책망당할까 걱정되어 급히 입을 열었다.“아버지, 어머니의 몸은 정말로 전보다 훨씬 나아지셨어요. 제가 직접 지켜봐서 확신할 수 있습니다.”전하는 딸이 김단을 두둔하는 모습이 의외였는지 조금 놀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정말 그러하냐?”“정말입니다.”서원공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지금 김단은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니 그녀를 지켜주는 건 당연했다.“어머니뿐만 아니라 궐 안의 다른 마님들도 얼굴빛이 많이 좋아지셨어요. 그건 아버지께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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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2화

전하가 떠난 뒤 서원공주는 김단과 함께 중전에게 예를 올렸다.중전의 침실을 나선 그들 뒤로 윤이와 다른 나인들은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며 걷고 있었다.김단은 직감적으로 공주가 자신에게 따로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아니나 다를까 그들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멀어지자 서원공주는 입을 열었다.“아버지의 몸을 돌보는 일은 후궁들과는 차원이 다르오. 오늘 내가 먼저 나서지 않았다면 낭자 같은 의원이 어찌 아버지의 몸을 돌볼 기회가 있겠소?”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전하를 가까이 뵙기 어려웠겠지만 자신처럼 명의의 제자라고 불리는 사람은 달랐다.그러나 그 진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는 없었다.김단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대답했다.“모두 공주님 덕분입니다.”서원공주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앞으로도 잘하시오. 아버지께서 만족해 하신다면 낭자를 어의로 만들어 줄 수도 있소.”그러고는 무언가 떠오른 듯 그녀는 조금 더 목소리를 낮추었다.“그러고 보니 수 어의도 나이가 많지 않소? 몇 해 안에 물러나게 되면 그 자리를 낭자에게 주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오.”그녀는 마치 김단의 미래를 꽃길로 닦아주는 후원자라도 되는 양 자랑스러운 어조로 말했다.하지만 김단은 그런 자리에 관심이 없었다.그녀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뿐이었다.사랑하는 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신의 곁에 있어주는 것.벼슬이나 권세 따위를 목표로 두고 있는 게 아니었다.그럼에도 겉으로는 감격한 듯 고개를 숙였다.하지만 김단의 연기를 공주가 눈치챌 리 없었다.여인으로서 관직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이 직접 김단을 내의원 원장 자리까지 밀어주겠다고 나섰으니 김단이 감격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서원공주는 만족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그녀는 김단을 바라보더니 낮고 느릿한 말투로 얘기했다.“낭자는 이제 내 사람이오. 그러니 나는 낭자를 돌봐줄 책임이 있소. 이거 하나만은 명심하시오. 말을 잘 듣는 자만이 은혜를 누릴 수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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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3화

김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리고 곧 이어진 건 덕빈의 날 선 고함이었다.“천한 계집년이! 대체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단 말이냐! 기아를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내 동생까지 죽여?”내가 죽였다고?김단의 눈썹이 찌푸려졌다.본능적으로 서원공주를 힐끗 바라본 후 덕빈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덕빈마님, 부디 진정하세요. 이 일에는 분명히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무슨 오해!”덕빈은 날카롭게 소리치며 다시 김단의 뺨을 내리치려 했다.다행히 이번에는 김단이 몸을 뒤로 빼며 그 손을 피했다.하지만 덕빈은 포기하지 않았다.그녀가 거칠게 김단을 향해 달려들려는 순간 뒤늦게 달려온 윤이와 나인들이 덕빈을 제지했다.그러나 덕빈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손헌이 당한 죽음은 너무나도 처참하고 모욕적이었다.그건 단순한 처벌이 아니었다.손 씨 가문 전체의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었다.몸이 붙잡혀도 그녀는 계속해서 발악했다.마치 그녀의 살갗을 찢어버리고야 말겠다는 기세였다.이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서원공주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얘기했다.“감히 중전의 침전 앞에서 난동을 부리다니요. 중전마마를 눈에 두지 않는다는 뜻입니까?”“당장 덕빈을 가두거라. 이번 일은 내 직접 아버님께 아뢰어 엄벌을 청할 것이다.”“예.”나인들은 일제히 대답한 뒤 덕빈을 붙잡고 억지로 끌고 갔다.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고함소리는 여전히 귓가에서 메아리쳤다.김단의 뺨은 벌겋게 부어올랐고 화끈거리는 통증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그때 서원공주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괜찮소?”김단은 고개를 돌려 공주를 바라보았다.“공주님께서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이 정도 상처는 약만 바르면 금방 나을 겁니다.”그 말에 서원공주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김단이 집요하게 자신을 응시하자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왜 그렇게 쳐다보시오?”김단은 한숨을 내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도대체 공주님께서는 무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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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4화

덕빈의 그 한 대는 정말이지 강렬했다.그 탓에 김단이 전하를 알현하러 갔을 때 한쪽 뺨은 눈에 띄게 부어올라 있었다.덕빈이 김단의 뺨을 때린 일은 이미 전하의 귀에도 들어갔다.그런데 김단의 부은 얼굴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그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러졌다.“이렇게 심하게 때렸단 말이냐?”김단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별일 아닙니다. 이미 약을 발랐습니다.”하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그의 스승이 알려준 처방대로 만든 약을 사용했다면 붓기와 열기가 말끔히 사라졌을 것이다.하지만 김단은 전하의 걱정을 끌어내기 위해 일부러 부은 얼굴로 그를 만나러 왔고 약을 썼다고 거짓말을 했다.전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짐이 사람을 시켜 확인해 보았다. 손헌이 죽은 시각에 낭자는 궐 안에 있었더구나. 무엇보다 낭자같이 허약한 자가 손헌 같은 자를 해치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손헌은 어찌 되었든 한때 금군을 이끌던 총령이다.김단은 체구도 작고 무공도 제대로 익히지 않았기에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전하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덕빈이 제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이지.”김단은 그 말속에 숨은 의도를 명확히 읽어냈다.전하는 이 일로 덕빈을 엄하게 벌할 생각이 없었다.전하 마음속에서 덕빈은 여전히 큰 존재였다.김단은 그의 뜻을 따라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덕빈마님께서 먼저 자식을 떠나보내셨고 이번에는 동생마저 잃으셨습니다. 일시적으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신 것도 이해가 됩니다. 다만 그 분노를 삭히지 못해 병이라도 얻으실까 걱정됩니다.”전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깊이 공감하였다.이때다 싶어 김단은 머리를 숙이며 전하에게 간곡히 부탁했다.“간청하옵니다 전하. 전하께서 동의하신다면 제가 덕빈마님을 찾아가 오해를 풀고 싶습니다. 그리고 겸사겸사 진맥도 해보려고 하는데 괜찮으신지요?”김단의 태도에 전하는 매우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참으로 마음 넓은 아이로구나. 그런 성품을 지녔으니 최지습도 낭자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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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5화

덕빈의 시선은 김단의 부은 뺨에 머물렀다.그녀는 한참 그것을 지켜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김 낭자, 내가 연기를 너무 실감 나게 해서 원망하는 것은 아니겠지?”김단도 입가에 가벼운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마님께서 세게 내리치시지 않았다면 어찌 서원공주를 속일 수 있었겠습니까?”김단은 이미 덕빈에게 서원공주가 손헌을 제거하려 한다는 사실을 귀띔해 준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공주가 사람을 죽인 후 가장 먼저 김단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아마도 서원공주는 이 기회를 빌어 김단이 자신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볼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그게 아니라면 덕빈과 김단의 관계를 갈라놓고 다른 이들이 명의의 제자라고 불리는 그녀에게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김단도 오늘 덕빈한테 뺨을 맞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하지만 서원공주의 말을 들은 후에야 덕빈이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김단은 덕빈의 맥을 짚어 보았다.지극히 정상적으로 뛰는 맥박이 그녀가 진짜로 분노하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었다.그때 덕빈이 입을 열었다.“손헌은 죽지 않았소. 죽은 건 우리 집안의 한 하인일 뿐이오. 하지만 그 아이가 이리도 잔인하게 나올 줄은 정말 몰랐소.”손과 발을 자른 것도 모자라 그딴 짓까지 하다니.“손헌 도련님은 당분간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됩니다.”덕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말시오. 내 이미 손헌을 잘 숨겨두었소.”그러고는 김단 다시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낭자는 어쩔 셈이오? 계속 서원공주의 발밑에 있는 개 노릇이나 하겠다는 것이오?”김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덕빈을 조용히 바라보며 말했다.“서원공주는 전하의 총애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전과 세자의 보호도 받고 있습니다. 공주를 상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덕빈은 코웃음을 쳤다.“그래. 공주를 건드린다면 전체가 뒤바뀔 것이오. 공주와 얽히고설킨 자들이 많아서 말이지... 그 뿌리가 생각보다 깊고 복잡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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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6화

“그 아이를 보호해 달라는 말씀입니까?”김단은 깜짝 놀라 덕빈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속으로 덕빈이 잔혹하고 음험한 일을 시킬 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그녀가 부탁한 것은 한 궁녀를 보호해달라는 것이었다.“서아름이라는 아이 말이오. 원래는 내 시중을 들던 나인이었소. 그런데 7개월 전 술에 취한 전하가 그 아이를 나로 착각해 그만...”말끝을 흐리던 덕빈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곱고 조용한 아이였소. 나이가 차면 궐에서 내보내려 했는데 이런 일을 당할 줄이야... 전하께서는 이 모든 책임을 아름이한테 떠넘기려 했소. 만약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그 아이는 죽었을 것이오.”그 말을 들은 김단은 기분이 언짢아졌다.그녀의 나이는 아마 자신과 비슷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더 어릴지도 모른다.그렇게 어여쁜 나이에 자신의 아버지뻘 되는 남자에게 정조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그 죄까지 뒤집어쓸 뻔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김단은 이전까지 전하에 대해 나쁜 인식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그가 혐오스러웠다.김단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지만 덕빈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복인지 화인지 모르겠지만 아름이는 단번에 아이를 가졌소. 그 덕에 전하께서는 그녀를 숙원으로 봉했고 지금은 복화궁에 살고 있소. 중전마마께서도 그 아이가 안타까우셨는지 조석문안도 면제하고 온갖 보양식을 보내주고 있소.”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돌려 김단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김 의원,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소?”김단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왕의 아이를 가진 대가로 궁궐 구석에 위치한 복화궁에 갇힌 채 살고 있었다.이름만 숙원일 뿐 지위도 낮고 전하의 총애를 받고 있는 몸이 아니니 하인들조차 그녀를 무시할 것이다.조석문안도 면제되었다는 건 그녀가 거의 방에만 갇혀 지내야 한다는 뜻이었다.게다가 보양식만 먹인다는 것을 보면 아마 태아를 비정상적으로 크고 무겁게 만들려는 목적이겠지.김단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겉으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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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7화

김단은 얼굴에 약을 바르고 난 후 조용히 돌아가려 했다.하지만 내의원에 들어서는 순간 그 생각은 사라지고 말았다.늘 그랬듯 금빛 장식이 얹힌 검은 금군복을 입은 소하가 문 앞에서 김단을 기다리고 있었다.“오라버니?”김단은 무심코 그를 불렀다.“왜 여기 계세요?”소하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짙은 주름이 새겨졌다.그가 천천히 걸어와 김단의 앞에 섰을 때 그의 두 눈은 오직 그녀의 부은 뺨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덕빈마님이... 이렇게 세게 때렸다고?”분명 그녀가 맞았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게 틀림없었다.내의원에서 야간 근무를 서던 이어의는 그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용히 다른 방으로 자취를 감췄다.김단은 다급하게 그를 불러 세우려 했지만 소하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는 말없이 그녀를 의자에 앉혔다.강압적이지는 않았지만 단호했다.그가 연고를 꺼내 드는 것을 본 김단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오라버니 전 정말 괜찮습니다. 저...”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손끝이 그녀의 뺨에 닿았다.손길은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 담긴 억눌린 분노가 조심스레 전해져 왔다.차분하고 냉정한 그의 얼굴에서도 억지로 화를 참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소하는 지금 김단이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그러나 상처는 상상 이상이었다.뺨에 선명하게 남은 다섯 손가락 자국은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조금만 더 세게 맞았더라면 피부가 찢어졌을지도 모른다.소하는 묵묵히 그 상처를 바라보며 연고를 발라 주었다.그러다 갑자기 몸을 숙이더니 그녀의 얼굴 가까이로 다가가 상처 부위에 조심스레 입김을 불었다.갑작스러운 차가운 숨결에 김단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소하는 자신의 상처에 바람을 불어 식혀주고 있었던 것이다.마치 어릴 적 어머니가 다친 손을 불어주던 모습과 겹쳐 보였다.‘괜찮아. 이제 안 아플 거야.’어머니가 마법처럼 속삭이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그 주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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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8화

소한이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김단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소하가 그녀의 얼굴에 약을 발라 줄 때부터였을까?아니면 조심스럽게 상처에 숨결을 불어줄 때부터였을까?하지만 소한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녀는 단번에 깨달았다.그는 지금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고 있었다.그의 눈빛은 서늘하다 못해 오싹하기까지 했다.김단을 쏘아보는 그 시선에는 질투와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예전에 명정대군과 함께 있는 그녀를 보았을 때도 분노하긴 했었다.하지만 지금 그의 눈빛은 그때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뜨거웠다.예전 같았으면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다 들킨 것처럼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졌을 텐데 지금은 너무나도 차분했다.아니, 어쩌면 그가 이렇게 오해해 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오해가 쌓이면 체념하고 자신을 포기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비롯된 마음이었다.소하 역시 김단의 시선에서 뭔가를 느끼고는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소한의 눈동자는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뛰어들어가 자신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원래라면 소한은 병영에 나가 있어야 했다.그런데 이곳에 있다는 것은 김단을 보기 위해 무단으로 빠져나왔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소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숨기지도, 그렇다고 해서 피하지도 않았다.그는 김단을 아끼는 마음에 직접 그녀에게 연고를 발라주었다.그게 전부였다.그러니 그 어떤 해명도 필요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를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작은 그녀를 품에 안고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그런데 과거 그의 손에서 이 모든 것을 빼앗아간 자가 누구였던가?만약 소한이 자신을 속여 잠들게 하지 않았더라면,만약 어머니가 김단에게 화리서를 쥐여주지 않았더라면자신은 당당하게 이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김단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소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약 발라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라버니. 시간이 늦었으니 저는 먼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소하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조심히 가시오.”몸을 돌려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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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9화

말이 길어지면 또 오해할 것이 뻔했다.김단이 떠난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소한은 가슴이 저려오기 시작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소하가 문 앞에 와 있었다.그는 김단이 사라진 방향을 힐끗 바라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거기 가만히 서서 뭐 하는 것이냐? 전하를 뵈러 가야 한다면서?”그는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소한은 오늘 보고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반드시 전하를 찾아뵙겠다고 말했었다.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것을 핑계 삼아 김단을 보려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다.소한은 이를 악물더니 낮게 중얼거렸다.“비열한 놈.”이에 소하는 눈썹을 약간 치켜올리며 특유의 차가운 음성으로 되받아쳤다.“가까이 있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소하는 김단 곁에 있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그걸 이용했을 뿐이다.비록 장군 자리는 소한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김단 옆자리만큼은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소한 역시 그걸 모를 리 없었다.어쩌면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김단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소하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오늘 직접 자신의 눈으로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목격하고 나니 그 위안은 시기와 질투라는 이름으로 변해버렸다.조금만 더 오래 봤다면 분명 참지 못했을 것이다.어쩌면 그 자리에 뛰어들어 소하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버렸을 수도 있다.하지만 그녀가 또다시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면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겨우 참아냈다.그런 소한을 바라보며 소하는 속으로 은근한 쾌감을 느꼈다.하지만 겉으로는 차분하게 충고를 던졌다.“오늘 일 말이다. 뭔가 수상해. 김단이 네 도움을 거절한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너도 섣불리 움직이지 말거라.”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얘기했다.“제가 멍청한 줄 압니까?”그도 전장을 누비며 수많은 계략을 꿰뚫어온 사람이다.김단이 무얼 숨기고 있는지, 어디까지가 계산된 행동인지 정도는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소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했다.“네가 안다니 다행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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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0화

며칠이 더 흘렀다.김단은 중전의 진맥을 끝낸 뒤 전하의 침전으로 향했다.그곳에는 혜비도 함께 있었다.김단을 보자 혜비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익살스럽게 말했다.“전하, 김 의원의 의술은 그야말로 신통합니다. 신첩을 좀 보시지요. 요즘 얼마나 생기 넘치는지... 얼굴이 더 환해진 것 같지 않습니까?”자신을 스스럼없이 치켜세우는 혜비의 말에 전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 내 여인은 원래부터 아리따웠소.”혜비는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전하 옆에 앉아 있었다.그 둘의 대화는 신경 쓰지 않고 맥을 짚는데만 집중하던 김단은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들더니 입을 열었다.“전하의 맥은 안정되고 힘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매일 약을 드실 필요는 없는 듯합니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이틀에 한 번씩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전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혜비가 입을 열었다.“역시 전하는 다르시군요. 신첩보다 연배가 많으신데 어찌 이리도 정정하십니까? 그에 비해 복 없는 자들은… 뭐... 그 서아름이라든가. 이제 갓 스무 살 넘은 나이인데도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지 않사옵니까?”서아름.그 이름에 김단의 눈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김단은 마침 서아름의 일을 어떻게 전하 앞에서 꺼내야 할지 고민하던 참이었다.그런데 뜻밖에도 혜비가 먼저 그녀를 언급해 주었다.그녀 역시 덕빈과 같은 배를 탄 사람이었다.서아름의 이름이 언급되자 전하는 미간을 찌푸렸다.“중전이 그 아이에게 좋은 보양식들을 보냈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기운을 못 차렸단 말이냐?”혜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어제 매화원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안색이 영 말이 아니었습니다. 배도 비정상적으로 커 보이고 말입니다. 제발 전하의 자손만은 무사히 태어나야 할 텐데 말이죠.”그 말에 전하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그에게 있어 서아름은 눈엣가시였다.신분이 낮을 뿐만 아니라 용모도 평범했으니 전하의 마음에 들 리 없었다.그날 술에 취하지만 않았어도 그런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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