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후는 내 앞에서 전화를 받았다. 귓가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선배님, 제 친구가 주차장에서 선배님을 봤대요. 진짜예요?”정다은이 들뜬 어조로 물었다.지원후는 운전대 위 손가락을 두 번 두드리며 차분히 답했다.“응, 나 맞아.”“정말요? 이건 너무 깜짝선물 아닌가요?”그는 수화기에 더 가까이 몸을 기울였고 입가에는 알아차리기 힘든 미소가 떠올랐다.“아, 제가 말실수한 거 아니죠?”정다은이 살짝 겁먹은 듯한 목소리로 덧붙였다.“혹시 선배님이 다른 일 때문에 학교에 온 건 아닐까 해서요.”아직 어린 그녀는 마음이 죄다 드러났다. 떠보는 것도 이렇게 티가 난다니.지원후는 전혀 불쾌해하지 않았다. 대신 화제를 돌렸다.“밥은 먹었어?”그가 묻는 순간 길게 찢어진 눈꼬리가 내 뺨을 스쳐 지나갔다. 그제야 몸을 살짝 기울여 차 문에 기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까지는 차 안에 나도 있다는 걸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두 사람은 몇 마디 더 짧게 주고받은 뒤에야 통화를 끝냈다.그의 눈매에 스친 기분 좋은 빛을 보며 뒤늦게 깨달았다. 그는 날 데려다주려고 온 게 아니라,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왔고 나는 그냥 덤이었다.그래, 또 그냥이었다.3년 동안 그가 나를 태워 준 횟수는 손에 꼽히는데, 그마저도 마음의 중심에 있는 여자를 만나러 오는 길이었다니 말이다.심장이 바늘에 찔린 듯 자잘하게 아려 왔다.나는 쓰디쓴 감정을 꾹 누르고 안전벨트를 풀었다.“오늘 밤 당직이라 집에 안 가.”낮게 변명하듯 그가 말했다.당직, 아직도 질리지 않는 핑계다.차에서 내리자마자 반짝이는 눈동자와 마주쳤다.정다은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이야.파란 치마에 검은 니삭스, 캐주얼 스니커즈까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미소가 굳었고, 내 쪽을 살피는 기색이 스쳤다.혼인신고서에서는 내가 지원후의 아내지만, 현실에서는 몇 번 본 적 없는 남이다. 그녀가 의아해하는 것도 당연했다.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다가왔다.거리가 가까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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