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유혹 속에 피는 독: Bab 21 - Bab 30

30 Bab

제21화

어쩌지?이제 어떡해야 하지?절망에 빠진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사초령의 모습에, 심안영은 비웃음을 참지 않았다.칼날이 자신한테 떨어져 보기 전까진, 그 아픔이 뭔지 절대 모르는 법이지.남이 불행할 때는 비웃고 고통을 안긴 걸 자랑스러워하던 그 사초령이, 전생에 냉궁에 자신을 몰아넣고 고통스럽게 짓밟던 그 여자가 이런 표정을 짓고 있다니.아, 너도 아픔을 느끼는구나.심안영은 코웃음을 치며 탁자 위 찻주전자를 집어 들더니 전혀 망설이지 않고 그 무게감 있는 주전자를 힘껏 휘둘러 서경율의 이마를 향해 던졌다.쿵!묵직한 소리와 함께 도자기 파편이 튀었고, 그 조각들이 서경율의 이마에 생채기를 냈다.순간,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모든 동작이 그대로 멈췄고 정신이 혼미하던 서경율도 한순간 정신이 들었다.“사황자님이 미쳐 날뛰고 있는데 다들 막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 사초령 아씨 다치지 않게 어서 막거라!” 심안영이 일부러 다급한 척 외치자 그제야 포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달려들어 서경율과 사초령을 떼어놓았다.그 틈을 타 심안영이 소매를 살짝 흔들자 비류는 몰래 덕미의 몸에 꽂힌 은침을 빼냈다.덕미는 곧 바닥에 쓰러졌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서경율은 머리가 어지러워 중심을 잡기 힘들었지만 주전자에 맞고 나서야 간신히 본능적인 욕망이 누그러지고 정신이 또렷해졌다.방금 전 자신이 어떤 짓을 했는지를 떠올리자 서경율은 이성을 잃을 만큼 화가 치밀었다.그는 심안영을 노려보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너지? 네 년이지?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날 이렇게 망신당하게 만든 거, 네 짓이지! 네가 날 조종하지 않았느냐!”붉은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며 그의 얼굴을 더더욱 흉측하게 만들었다.그 광기에 찬 얼굴을 보고도 심안영은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제 짓이라고요?”심안영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서경율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사황자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사초령이 절 험담하고 무례를 저지를 땐 제가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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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이 광경을 본 서경연은 힘을 주어 서경율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더니 심안영에게 미소를 지은 후 주변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사황자가 잠시 술에 취해 실수하신 것 같구나. 모두들 보시기 불편했을 텐데, 이제 괜찮으니 모두 흩어지거라."이렇게 겉으로는 당당하게 말한 서경연은 곧바로 밖에서 지키고 있던 명진을 불러들였다.명진은 도착하자마자 지체 없이 서경율을 거칠게 밀쳤다."가자.""잠깐만요." 사초령이 어지럽혀진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눈물을 훔치며 서경연의 앞을 막아섰다."전왕님, 율 오라버니를 어디로 데려가시려는 건가요?""사초령 아씨를 잊었군. 걱정 말 거라, 사황자께서 오늘 사초령 아씨를 모욕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설명할 것이다.""저...""명진아, 이 아씨도 함께 궁으로 데려가라."말이 끝나자마자 서경연은 사초령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표향관을 떠났다.그에게는 이미 충분히 흥미로운 구경거리였다.이제 남은 일은, 흐르는 물을 거슬러 밀어붙이고, 기름을 부어 불을 지피며, 덫에 빠진 자를 더 깊이 짓밟는 일뿐이었다.궁중, 어서방​.서경율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이마의 상처는 치료되지 않아 피가 머리카락 사이로 흥건히 배어 있었고, 눈앞은 흐릿하고 머리는 어지럽고 아팠다.게다가 손과 비파골의 오래된 상처들도 더 이상 구명혈충의 제어를 받지 않는 듯 한꺼번에 통증을 쏟아냈는데 그 고통은 너무나 극심해 거의 의식을 잃을 지경이었다.그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숨을 들이켰다. 너무 피곤하고 아파 잠시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때, 한쪽에서 먹통이 날아왔다.쿵!먹통은 서경율 옆에서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먹물이 튀었다.곧 황제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정신이 들었으면 어서 일어나거라! 죽은 척 누워 있지 말고!”그 소리에 서경율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다급히 눈을 뜨고 황제를 바라보았다. 점차 의식이 돌아오며 그는 표향관에서 쓰러지기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그는 서경연을 만났고 지금은 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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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같은 문제가 다시 눈앞에 놓여 있었지만 서경율은 여전히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그는 이 상황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그러자 서경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심안영 아씨가 한 말은 거칠지만 꽤 맞는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정사를 나누고 낮에 음탕한 짓을 하다가, 다른 한편으로는 뒤에서 사람을 고발하는 형님의 행동은 정말 역겹기 짝이 없습니다.""너..."서경율은 서경연과 맞설 수 없어 황제를 바라보다가 힘겹게 앞으로 다가갔다."아바마마, 소자 억울합니다. 소자 아무리 어리석고 허튼짓해도 밖에서 그런 짓을 할 리 없습니다. 소자는 기억합니다. 표향관에 들어간 후 아주 진한 향기를 맡았는데 그것은 사초령의 향기였습니다. 당시 심안영과 사초령이 다투고 있었으니 반드시 심안영이 그 틈을 타서 사초령에게 무슨 약을 썼을 것입니다. 그래서 소자는 정신이 혼미해져 일시적으로 허튼짓을 한 것입니다.""그게 사실이더냐?"황제는 곁에 있는 내시에게 분부했다. "황 태의를 불러라.""명 받들겠습니다."15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자 내시는 황 태의를 데려왔는데 함께 온 사람은 심안영의 셋째 오라버니인 심장열이었다."신, 황제 폐하께 문안드립니다. 폐하께서 만수무강하시기를 바랍니다.""일어나거라."황제는 손을 저어 심장열더러 일어나라고 했다."자네가 어쩐 일이냐?""폐하, 전에 황 태의께서 제 여동생을 치료해 주신 적이 있는데 약이 조금 부족해서 제가 무례하게 태의원에 가서 더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복선공공을 만나 사황자님이 제 여동생이 사람을 해쳤다고 지목했다는 말을 듣고 놀라서 따라왔습니다. 무례한 점, 폐하께 용서를 구합니다.""괜찮다."황제는 심장열을 나무라지 않았다.그의 시선은 곧바로 황 태의에게 떨어졌다."가서 사초령에게서 나는 향을 살펴보아라.""명을 받들겠습니다."황 태의는 곧 사초령 옆으로 다가갔다.황 태의 황택은 태의원 좌원판으로 약리학에 밝아 황제의 신임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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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폐하, 사황자님의 의심을 풀기 위해 심씨 가문 전체가 조사에 협조할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제 여동생도 궁으로 와서 사황자님과 대질할 수 있습니다. 사황자께서 만족하실 때까지 말입니다. 만약 제 여동생이 이 일과 관련되어 있다면 황자를 계략에 빠뜨리고 명성을 훼손한 죄, 죽이든 베든 전하의 뜻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제 여동생이 이 일과 무관하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폐하께서 제 여동생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명예를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심장열과 서경연은 서로 호응하며 서경율을 곤경에 빠뜨렸다.​황제의 측근인 황 태의를 의심한다는 것은 곧 황제를 의심하는 것이나 다름없고 심안영이 약을 썼다는 것도 결국 추측에 불과하다.황 태의가 아무 이상 없다고 했는데 다른 태의들이 과연 뭔가를 밝혀낼 수 있을까?이 모든 수고 끝에도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다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걸까?서경율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고 황제 또한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됐다.”서경율을 바라보는 황제의 얼굴에는 더욱 엄한 기색이 감돌았다.“사황자, 요즘 따라 네 행동은 점점 도를 지나치고 있다. 네가 중상을 입은 걸 봐서 짐은 널 꾸짖지 않고 체면도 세워주었거늘 반성은커녕 도리어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구나. 참으로 실망스럽다.” “아바마마, 소자는...” “여봐라!” 서경율의 변명은 허락되지 않았다. 황제는 바로 문밖에 있던 금군을 불러 냉정한 목소리로 명했다.“사황자를 사황자부에서 금족시켜라. 연말까지 짐이 부르기 전에는 사황자부를 한 발짝도 나서지 못하게 하고 하인은 절반으로 줄이며 봉록은 반년간 삭감한다. 데려가거라.”“예!”금군이 서경율을 끌어낸 후에야 황제는 사초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초령은 일어나거라. 이번 일은 사황자가 방자하게 굴어 너를 곤란하게 만든 것이니 일단 귀가하거라. 조서는 곧 사씨 가문으로 내려갈 것이다. 너를 헛되이 억울하게 두진 않겠다.”황 태의가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 순간부터, 사초령의 마음속엔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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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소자는 계략을 세우는 건 좋은 일이다만 계략 때문에 덕목은 잃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경율 형님께서 심가와 인연을 맺고자 심안영을 노린 건 분명 급소를 제대로 찌른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형님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심가의 네 생명이 희생됐습니다. 그들은 국토를 지키던 훌륭한 장수들이었고, 심안영은 폐허가 된 사당에서 비참하게 죽을 뻔했습니다.”“심안영은 비록 갓 계례식을 마친 소녀지만, 한때 군을 이끌고 대엽의 국문을 지켜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정으로나 이치로 보나 넷째 형님의 행동은 지나쳤습니다. 소자는 가벼운 훈계로 끝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말에 끌려간 건 오히려 너무 약한 처벌이었습니다.”황제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경율이가 점찍은 게 심씨 가문이라면 넌 어떠냐? 심씨 가문이냐, 심안영 그 아이냐?” 서경연은 잠시 멈칫하다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말했다.“소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심안영이 마음에 듭니다. 사당에서 저를 도적이라 오해하고 온몸이 상처투성이면서도 차라리 같이 죽을지언정 모욕을 감수하려 들지 않던 그때부터, 저는 그 아이를 연모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그래?” “이 황궁의 넘치는 부귀영화가 모든 사람에게 매력적인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특히 그 사람이 심안영이라면, 서경율로 인해 이미 이유 없는 재난을 겪은 그녀에게, 황궁이 좋은 인상일 리 없을 것이다.그는 조금씩 천천히 심안영에게 다가가려 애썼지만 심안영은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 있고, 함께 대의를 도모할 수는 있어도 그 마음속 깊은 곳에선 그를 향한 경계를 단 한 번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이것만 봐도 모든 걸 설명하기에 충분했다.심안영은 똑똑한 여자다.더는 감정에 휘둘려 어리석은 판단으로 심씨 가문을 진흙탕에 빠뜨리진 않을 것이다.게다가 황자의 몸으로 그녀의 마음을 얻고, 사랑을 얻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아바마마, 이 일은 언젠가 모든 게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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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사황자부.밤이 되어서야 서경율이 보낸 그림자 위병 둘이 돌아왔다.사황자부 바깥엔 황제의 명으로 금군이 배치되어 있었기에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했고 조심하는 건 당연했다.서경율은 이미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사황자부로 돌아온 뒤, 손힘줄이 다친 손이 쑤셔 오르듯 아팠고 거기에 어깨뼈에 입은 상처까지 더해져 통증이 가중되었다.지금껏 효과를 보던 구명혈충의 작용도 오늘따라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통증이 거세질수록 그는 자꾸 어지럼증을 느꼈으며 반나절 사이 벌써 이유 없이 두 번이나 실신했다.그러나 태의와 의원이 번갈아 들여다보아도 아무 이상도 찾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이상했다.그뿐만이 아니다. 서경율은 황제의 성지를 받았다.황제는 사황자비로 사씨 가문 셋째 딸인 사초령을 간택했다.서경율은 사초령 싫어하지 않고 그녀에게 잘해주는 것도 문제없다지만 처음부터 사초령을 정실로 맞이할 생각은 없었다.정실은 오직 한 자리뿐.보다 강력한 가문과의 혼인을 통해 자신의 앞날에 힘을 더하는 것이 그의 원래 구상이었다.사씨 가문은 서씨 가문과도 교류가 깊고 예전엔 태부도 배출한 적 있는 번듯한 가문으로 문관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지만, 군권을 쥔 성대한 무장이자 국경 방위의 중추 역할을 하던 심씨 가문에 비하자면 여전히 한 수 아래였다.이처럼 허술하게 혼사가 결정되다니, 서경율에게는 납득되지 않는 일이었다.몸이 성치 않은 데다 일까지 뜻대로 풀리지 않으니 그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서재.그림자 위병 둘이 들어서자, 서경율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졌다.“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가 뭐지?”그 말에 그림자 위병 둘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감히 그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빠르게 입을 열었다.“사황자님, 위 신의 댁으로 갔으나 그를 찾지 못했습니다.”“뭐라?”서경율은 벌떡 일어나며 시선을 번뜩였다.“찾지 못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더냐?”“사황자님, 위 신의의 집에는 말린 약재들이 온 마당에 널브러져 있었고 수습된 흔적이 없었습니다. 부엌엔 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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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반대로, 그럴수록 서경율은 심안영이 위험하다고 느꼈기에 눈을 떼지 말고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서경율의 뜻을 알아챈 그림자 위병들은 더는 지체하지 않고 곧장 물러났다.서재는 곧 조용해졌다.그러나 그 고요함은 오히려 서경율이 느끼는 통증을 더 극대화시켰다.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세게 움켜쥔 채, 손에 드러난 흉측한 상처를 내려다보며 서경율의 얼굴은 철처럼 굳어 있었다.“심안영, 감히 날 우습게 봤으니 이젠 나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의 고통을 넌 몇 배, 몇백 배로 돌려받게 될 거다.”서경율은 이를 악물며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바로 그때, 문득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서신...”표향관에 가기 전, 그는 한 통의 서신을 받았고 그 서신을 읽었기에 그는 표향관으로 향했던 것이다.어쩌면 그 서신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서경율은 재빨리 일어나 서랍에서 서신을 꺼냈으나 다시 펼쳐 본 편지엔 이미 아무 글자도 남아 있지 않았다.모든 글자가 사라진 백지!서경율은 멍해졌다.종잇장을 들고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봤지만, 여전히 자기 눈을 믿고 싶지 않았다.“이게... 어떻게 된 거지?”결국 그 서신조차도 누군가의 계산 아래 있었던 것이다.처음부터 손을 쓴 자는 이미 퇴로까지 철저히 막아뒀고 그는 아무것도 밝힐 수 없게 돼 있었다.그저 이 모든 수모를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감당하란 말인가?심안영이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가?아니면 이 일에 서경연도 얽혀 있는 걸까?서경연은 어째서 표향관에 있었던 거지?머릿속이 복잡해진 서경율은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이미 심했던 현기증은 더욱 심해져 이내 견디지 못하고 그는 또다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서경율의 처참한 상태, 그리고 그로 인한 의심과 분노는 심안영이 직접 본 것이 아니었으나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가 그걸 신경 쓸 리가 있겠나?북요산 아래 영묘사 앞에서, 그가 내민 손을 그녀가 내쳐버린 순간부터 그와 그녀는 이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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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서경연의 말에 심안영은 피식 웃었다. “전왕님은 무공이 대단하니 장군부를 들어오는 건 식은 죽 먹기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안으로 들이든, 들이지 않든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제가 안 된다고 하면 되려 가시기라도 하겠습니까?” “그건 안 된다.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왜 돌아간단 말이냐.” “그럼 왜 물으신 겁니까?” 심안영은 창문을 닫고 책상으로 향했고 그 사이 서경연은 벌써 창문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와 아주 자연스럽게 심안영 옆자리에 앉아 다기를 들고 찻잔에 차를 따랐다.“차를 고르는 안목이 아주 괜찮구나.” 심안영은 아무 말 없이 종이와 붓을 정리하며 서경연의 말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서경연은 궁에서 자란 사람이니, 좋은 물건이야 지겹도록 봤을 텐데 겨우 설정한취 한 잔으로 감탄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말을 걸고 싶었던 것뿐이겠지, 그러니 그런 말에 굳이 응할 필요도 없었다.심안영의 싸늘한 표정에도 서경연은 실망하지 않았다. “심안영, 우리...” 그가 무언가 말하려는 찰나,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심장열의 목소리가 함께 따라 들려왔다.“안영아, 나다. 아직 안 자고 있는 거지?”심안영과 서경연 모두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잠시 얼어붙었다.심안영은 서경연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머릿속에는 낮에 심장열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녀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신은 절대 황궁의 사람과 엮이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분명 황궁으로 시집가지도 않을 거고 황궁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도 않겠다고 했는데 이 밤중에 서경연이 그녀의 방 안에 있다는 건...그 말들이 전부 허울뿐이었단 말인가? 이건 웃음거리나 다름없었다.이 사실을 알게 되면 심장열은 분명 걱정할 것이다. “심안영, 본왕을 그리도 빤히 보는 이유가 뭐냐?” 서경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천연덕스럽게 웃었는데 도도한 얼굴엔 살짝 장난기 섞인 무고함이 묻어 있었다.“본왕은 그저 벗을 찾아온 것뿐이고 딱히 부끄러울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우리 사이가 떳떳하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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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좋습니다.”심장열은 웃으며 대답했는데 마치 서경연의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서경연 역시 겉으론 한없이 공손하고 진지한, 그야말로 군자다운 태도였다.그 둘을 지켜보던 심안영은 문득 서경연과 심장열은 은근히 같은 부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똑같이 침착하고, 똑같이 연기 잘하고, 무엇보다 뻔뻔한 건 또 똑같았다. 심안영이 생각에 잠긴 사이 심장열은 이미 선수를 두고 있었고 심안영의 시선도 자연스레 바둑판으로 옮겨졌다.하지만 바둑을 보면 볼수록 뭔가 이상했다.다른 사람들은 한 수 한 수에 신중하게 계산하며 빈틈없이 둬야 하는데 이 둘은 기세만 충만했다.계산도 수를 읽는 것도 하는 것 같으나 정작 판은 아수라장이었다.이건... 공격만 하고 수비는 없는 것이 서로 죽이겠다는 듯 돌격만 해댔다.그야말로 상처뿐인 승부, 피투성이 참혹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심안영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씰룩였다.“두 분이 문무를 겸비한 것도, 바둑을 못 두는 것도 알겠으나 어쩜 두 분이 두는 바둑은 전혀 예상도 가지 않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서경연이 고개를 돌려 심안영을 향해 물었다. “그리도 형편없느냐? 그렇다면 안영이 네가 좀 가르쳐주는 건 어떠냐?” “안영아, 왕야는 실력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니 이 오라버니에게 좀 가르쳐주려무나.” “하하...” 심안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꼬리가 굳어졌다. 지금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상황인가?유치하긴. 그녀는 두 사람을 번갈아 노려보곤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바둑 다 두셨으면 바둑판 챙겨서 나가십시오. 문도 꼭 닫고요. 그러다 혹시 승부가 나지 않아 몸싸움이라도 벌이실 거면 나가서 멀리 떨어진 데서 하시길 바랍니다. 전 귀가 밝아서 시끄러운 건 딱 질색입니다.”그녀는 두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듯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려고 했다. 어차피 심장열이 있으니 걱정될 것도 없었다. 심안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서경연과 심장열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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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서경연이 밤에 진국 장군부에 잠입한 일을 심안영이 목격한 뒤로, 한동안 그녀는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그를 보지 않게 되자 오히려 심안영은 마음이 편했다.서경연이 여러 차례 자신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녀도 그를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한 번의 실수로 너무 참혹한 대가를 치른 적이 있었기에 이제는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특히 그가 황궁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이다.안 보면 마음이 덜 복잡하고 편하니 그것도 괜찮았다.서경율은 금족령이 내려져 대놓고 돌아다닐 수 없었고 사초령은 표향관 일로 명성이 실추되어 사씨 가문에서도 그녀를 혼인 준비에 전념하도록 가둬버렸다.숙비와 숙씨 집안 역시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그들이 더 이상 방해하지 않자 심안영은 손이 좀 풀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다.몸을 추스르고 약을 만들고, 사람 시장에서 인재를 사들였으며, 인수한 약방도 다시 열었다.삶이 제법 바빠졌다.시간은 어느새 흘러, 소한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이날 아침 심안영은 일찍 일어나 태부인을 찾아뵈었다.태부인과 함께 아침을 들며 심안영은 홍광사에 다녀오고 싶다고 말씀드렸다.자신을 지키다 죽은 이들을 위해 장명등을 켜고 싶다는 이유였다.태부인은 그녀의 뜻을 알고 있었기에 반대하지 않았다.“그래야지, 마땅히 가야 하지.”태부인은 심안영의 손을 꼭 잡고 연민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영묘사에서 너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고생을 많이 했지만 결국 희망을 찾았고, 고난 끝에 평온이 왔지. 하지만 그 아이들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구나. 우리 심씨 가문이 그들에게 진 빚은 금은보화로도 갚을 수 없는 것이란다. 장명등을 켜는 건 그 마음을 전하는 일이니 부디 선에는 선으로 보답이 돌아오고, 그들이 내세에서는 다 평안하길 바랄 뿐이다.”“할머니 말씀이 맞습니다.”“너의 셋째 오라버니도 데리고 함께 가도록 하거라.”경성은 변경과 달라 위험이 많았다.북요산 아래서 당한 일을 생각하면 태부인은 아직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심안영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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