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사람을 사랑한 게 얼마나 아픈 일인 줄 아십니까? 너무도 고통스럽습니다.” 지난 생, 장군부 의녀였던 심안영. 그녀는 천하제일의 의술을 가지고 있었고 병법 모략에도 모두 능통했다. 사랑하는 이가 황위에 오르는 걸 돕기 위해 그녀는 조정에서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전장에서는 갑옷을 입고 적을 물리치며 모든 것을 이 사내에게 바쳤다. 하지만 그 대가는 심가의 멸문인데... 죽음을 맞은 뒤 다시 태어난 그녀는 절세의 독비가 되어 비열한 남녀를 짓밟고 간신을 제거해 국경을 수호하며 복수의 한을 씻었다. 약으로는 백성을 구하고, 구름처럼 천하를 떠돌며 전장을 누비는 삶을 살기 시작한 그녀는 찬란한 빛 속에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이번 생에 그녀는 절대 ‘사랑’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런 그녀 앞에 거침없고 도발적인 한 사내가 나타나는데... 천재적인 재능과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그녀의 삶에 강렬하게 파고든 사내는 이렇게 말한다. “안영아, 넌 그저 너답게, 마음껏 살아. 날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그건 내가 하면 되는 일이고 난 언제나 네 곁에 있을 테다. 이번 생엔, 넌 더는 잘못된 사랑을 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나는... 다시는 널 놓치고 싶지 않구나.”
ดูเพิ่มเติม서경연이 밤에 진국 장군부에 잠입한 일을 심안영이 목격한 뒤로, 한동안 그녀는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그를 보지 않게 되자 오히려 심안영은 마음이 편했다.서경연이 여러 차례 자신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녀도 그를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한 번의 실수로 너무 참혹한 대가를 치른 적이 있었기에 이제는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특히 그가 황궁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이다.안 보면 마음이 덜 복잡하고 편하니 그것도 괜찮았다.서경율은 금족령이 내려져 대놓고 돌아다닐 수 없었고 사초령은 표향관 일로 명성이 실추되어 사씨 가문에서도 그녀를 혼인 준비에 전념하도록 가둬버렸다.숙비와 숙씨 집안 역시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그들이 더 이상 방해하지 않자 심안영은 손이 좀 풀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다.몸을 추스르고 약을 만들고, 사람 시장에서 인재를 사들였으며, 인수한 약방도 다시 열었다.삶이 제법 바빠졌다.시간은 어느새 흘러, 소한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이날 아침 심안영은 일찍 일어나 태부인을 찾아뵈었다.태부인과 함께 아침을 들며 심안영은 홍광사에 다녀오고 싶다고 말씀드렸다.자신을 지키다 죽은 이들을 위해 장명등을 켜고 싶다는 이유였다.태부인은 그녀의 뜻을 알고 있었기에 반대하지 않았다.“그래야지, 마땅히 가야 하지.”태부인은 심안영의 손을 꼭 잡고 연민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영묘사에서 너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고생을 많이 했지만 결국 희망을 찾았고, 고난 끝에 평온이 왔지. 하지만 그 아이들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구나. 우리 심씨 가문이 그들에게 진 빚은 금은보화로도 갚을 수 없는 것이란다. 장명등을 켜는 건 그 마음을 전하는 일이니 부디 선에는 선으로 보답이 돌아오고, 그들이 내세에서는 다 평안하길 바랄 뿐이다.”“할머니 말씀이 맞습니다.”“너의 셋째 오라버니도 데리고 함께 가도록 하거라.”경성은 변경과 달라 위험이 많았다.북요산 아래서 당한 일을 생각하면 태부인은 아직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심안영 혼
“좋습니다.”심장열은 웃으며 대답했는데 마치 서경연의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서경연 역시 겉으론 한없이 공손하고 진지한, 그야말로 군자다운 태도였다.그 둘을 지켜보던 심안영은 문득 서경연과 심장열은 은근히 같은 부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똑같이 침착하고, 똑같이 연기 잘하고, 무엇보다 뻔뻔한 건 또 똑같았다. 심안영이 생각에 잠긴 사이 심장열은 이미 선수를 두고 있었고 심안영의 시선도 자연스레 바둑판으로 옮겨졌다.하지만 바둑을 보면 볼수록 뭔가 이상했다.다른 사람들은 한 수 한 수에 신중하게 계산하며 빈틈없이 둬야 하는데 이 둘은 기세만 충만했다.계산도 수를 읽는 것도 하는 것 같으나 정작 판은 아수라장이었다.이건... 공격만 하고 수비는 없는 것이 서로 죽이겠다는 듯 돌격만 해댔다.그야말로 상처뿐인 승부, 피투성이 참혹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심안영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씰룩였다.“두 분이 문무를 겸비한 것도, 바둑을 못 두는 것도 알겠으나 어쩜 두 분이 두는 바둑은 전혀 예상도 가지 않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서경연이 고개를 돌려 심안영을 향해 물었다. “그리도 형편없느냐? 그렇다면 안영이 네가 좀 가르쳐주는 건 어떠냐?” “안영아, 왕야는 실력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니 이 오라버니에게 좀 가르쳐주려무나.” “하하...” 심안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꼬리가 굳어졌다. 지금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상황인가?유치하긴. 그녀는 두 사람을 번갈아 노려보곤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바둑 다 두셨으면 바둑판 챙겨서 나가십시오. 문도 꼭 닫고요. 그러다 혹시 승부가 나지 않아 몸싸움이라도 벌이실 거면 나가서 멀리 떨어진 데서 하시길 바랍니다. 전 귀가 밝아서 시끄러운 건 딱 질색입니다.”그녀는 두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듯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려고 했다. 어차피 심장열이 있으니 걱정될 것도 없었다. 심안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서경연과 심장열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서경연의 말에 심안영은 피식 웃었다. “전왕님은 무공이 대단하니 장군부를 들어오는 건 식은 죽 먹기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안으로 들이든, 들이지 않든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제가 안 된다고 하면 되려 가시기라도 하겠습니까?” “그건 안 된다.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왜 돌아간단 말이냐.” “그럼 왜 물으신 겁니까?” 심안영은 창문을 닫고 책상으로 향했고 그 사이 서경연은 벌써 창문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와 아주 자연스럽게 심안영 옆자리에 앉아 다기를 들고 찻잔에 차를 따랐다.“차를 고르는 안목이 아주 괜찮구나.” 심안영은 아무 말 없이 종이와 붓을 정리하며 서경연의 말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서경연은 궁에서 자란 사람이니, 좋은 물건이야 지겹도록 봤을 텐데 겨우 설정한취 한 잔으로 감탄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말을 걸고 싶었던 것뿐이겠지, 그러니 그런 말에 굳이 응할 필요도 없었다.심안영의 싸늘한 표정에도 서경연은 실망하지 않았다. “심안영, 우리...” 그가 무언가 말하려는 찰나,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심장열의 목소리가 함께 따라 들려왔다.“안영아, 나다. 아직 안 자고 있는 거지?”심안영과 서경연 모두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잠시 얼어붙었다.심안영은 서경연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머릿속에는 낮에 심장열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녀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신은 절대 황궁의 사람과 엮이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분명 황궁으로 시집가지도 않을 거고 황궁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도 않겠다고 했는데 이 밤중에 서경연이 그녀의 방 안에 있다는 건...그 말들이 전부 허울뿐이었단 말인가? 이건 웃음거리나 다름없었다.이 사실을 알게 되면 심장열은 분명 걱정할 것이다. “심안영, 본왕을 그리도 빤히 보는 이유가 뭐냐?” 서경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천연덕스럽게 웃었는데 도도한 얼굴엔 살짝 장난기 섞인 무고함이 묻어 있었다.“본왕은 그저 벗을 찾아온 것뿐이고 딱히 부끄러울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우리 사이가 떳떳하다는 건
반대로, 그럴수록 서경율은 심안영이 위험하다고 느꼈기에 눈을 떼지 말고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서경율의 뜻을 알아챈 그림자 위병들은 더는 지체하지 않고 곧장 물러났다.서재는 곧 조용해졌다.그러나 그 고요함은 오히려 서경율이 느끼는 통증을 더 극대화시켰다.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세게 움켜쥔 채, 손에 드러난 흉측한 상처를 내려다보며 서경율의 얼굴은 철처럼 굳어 있었다.“심안영, 감히 날 우습게 봤으니 이젠 나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의 고통을 넌 몇 배, 몇백 배로 돌려받게 될 거다.”서경율은 이를 악물며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바로 그때, 문득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서신...”표향관에 가기 전, 그는 한 통의 서신을 받았고 그 서신을 읽었기에 그는 표향관으로 향했던 것이다.어쩌면 그 서신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서경율은 재빨리 일어나 서랍에서 서신을 꺼냈으나 다시 펼쳐 본 편지엔 이미 아무 글자도 남아 있지 않았다.모든 글자가 사라진 백지!서경율은 멍해졌다.종잇장을 들고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봤지만, 여전히 자기 눈을 믿고 싶지 않았다.“이게... 어떻게 된 거지?”결국 그 서신조차도 누군가의 계산 아래 있었던 것이다.처음부터 손을 쓴 자는 이미 퇴로까지 철저히 막아뒀고 그는 아무것도 밝힐 수 없게 돼 있었다.그저 이 모든 수모를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감당하란 말인가?심안영이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가?아니면 이 일에 서경연도 얽혀 있는 걸까?서경연은 어째서 표향관에 있었던 거지?머릿속이 복잡해진 서경율은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이미 심했던 현기증은 더욱 심해져 이내 견디지 못하고 그는 또다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서경율의 처참한 상태, 그리고 그로 인한 의심과 분노는 심안영이 직접 본 것이 아니었으나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가 그걸 신경 쓸 리가 있겠나?북요산 아래 영묘사 앞에서, 그가 내민 손을 그녀가 내쳐버린 순간부터 그와 그녀는 이생에서
사황자부.밤이 되어서야 서경율이 보낸 그림자 위병 둘이 돌아왔다.사황자부 바깥엔 황제의 명으로 금군이 배치되어 있었기에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했고 조심하는 건 당연했다.서경율은 이미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사황자부로 돌아온 뒤, 손힘줄이 다친 손이 쑤셔 오르듯 아팠고 거기에 어깨뼈에 입은 상처까지 더해져 통증이 가중되었다.지금껏 효과를 보던 구명혈충의 작용도 오늘따라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통증이 거세질수록 그는 자꾸 어지럼증을 느꼈으며 반나절 사이 벌써 이유 없이 두 번이나 실신했다.그러나 태의와 의원이 번갈아 들여다보아도 아무 이상도 찾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이상했다.그뿐만이 아니다. 서경율은 황제의 성지를 받았다.황제는 사황자비로 사씨 가문 셋째 딸인 사초령을 간택했다.서경율은 사초령 싫어하지 않고 그녀에게 잘해주는 것도 문제없다지만 처음부터 사초령을 정실로 맞이할 생각은 없었다.정실은 오직 한 자리뿐.보다 강력한 가문과의 혼인을 통해 자신의 앞날에 힘을 더하는 것이 그의 원래 구상이었다.사씨 가문은 서씨 가문과도 교류가 깊고 예전엔 태부도 배출한 적 있는 번듯한 가문으로 문관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지만, 군권을 쥔 성대한 무장이자 국경 방위의 중추 역할을 하던 심씨 가문에 비하자면 여전히 한 수 아래였다.이처럼 허술하게 혼사가 결정되다니, 서경율에게는 납득되지 않는 일이었다.몸이 성치 않은 데다 일까지 뜻대로 풀리지 않으니 그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서재.그림자 위병 둘이 들어서자, 서경율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졌다.“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가 뭐지?”그 말에 그림자 위병 둘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감히 그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빠르게 입을 열었다.“사황자님, 위 신의 댁으로 갔으나 그를 찾지 못했습니다.”“뭐라?”서경율은 벌떡 일어나며 시선을 번뜩였다.“찾지 못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더냐?”“사황자님, 위 신의의 집에는 말린 약재들이 온 마당에 널브러져 있었고 수습된 흔적이 없었습니다. 부엌엔 며칠
“소자는 계략을 세우는 건 좋은 일이다만 계략 때문에 덕목은 잃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경율 형님께서 심가와 인연을 맺고자 심안영을 노린 건 분명 급소를 제대로 찌른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형님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심가의 네 생명이 희생됐습니다. 그들은 국토를 지키던 훌륭한 장수들이었고, 심안영은 폐허가 된 사당에서 비참하게 죽을 뻔했습니다.”“심안영은 비록 갓 계례식을 마친 소녀지만, 한때 군을 이끌고 대엽의 국문을 지켜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정으로나 이치로 보나 넷째 형님의 행동은 지나쳤습니다. 소자는 가벼운 훈계로 끝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말에 끌려간 건 오히려 너무 약한 처벌이었습니다.”황제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경율이가 점찍은 게 심씨 가문이라면 넌 어떠냐? 심씨 가문이냐, 심안영 그 아이냐?” 서경연은 잠시 멈칫하다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말했다.“소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심안영이 마음에 듭니다. 사당에서 저를 도적이라 오해하고 온몸이 상처투성이면서도 차라리 같이 죽을지언정 모욕을 감수하려 들지 않던 그때부터, 저는 그 아이를 연모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그래?” “이 황궁의 넘치는 부귀영화가 모든 사람에게 매력적인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특히 그 사람이 심안영이라면, 서경율로 인해 이미 이유 없는 재난을 겪은 그녀에게, 황궁이 좋은 인상일 리 없을 것이다.그는 조금씩 천천히 심안영에게 다가가려 애썼지만 심안영은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 있고, 함께 대의를 도모할 수는 있어도 그 마음속 깊은 곳에선 그를 향한 경계를 단 한 번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이것만 봐도 모든 걸 설명하기에 충분했다.심안영은 똑똑한 여자다.더는 감정에 휘둘려 어리석은 판단으로 심씨 가문을 진흙탕에 빠뜨리진 않을 것이다.게다가 황자의 몸으로 그녀의 마음을 얻고, 사랑을 얻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아바마마, 이 일은 언젠가 모든 게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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