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그 후회는 치명적: Bab 11 - Bab 20

30 Bab

제11화

김도아는 이 일로 골머리를 앓았다.성지민이 그 남학생을 ‘정리’했지만, 그 과정에서 본인도 입가에 피를 흘리며 돌아왔다.김도아는 발끝을 세우고 그에게 약을 발라주며 속상해서 미간을 찌푸렸다.“왜 걔랑 싸우고 그래...”성지민은 아무런 대답 없이 교복 차림의 그녀를 기자재실 구석으로 밀어붙이더니 키스를 퍼부었다. 남자의 키스는 거칠고 저돌적이었으며 멈출 기미가 없었다.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고 성지민은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김도아가 그를 밀쳐내려 팔로 툭툭 쳐도 소용이 없었다.시간이 일분일초 흐르고 팔에 힘이 빠져 연고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드디어 키스가 끝났고 그녀는 남자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심장이 마구 쿵쾅댔다.“그 자식은 네게 질척대지 말았어야 했어.”성지민의 말을 들은 그녀는 심장 박동이 더욱 빨라졌다.김도아에게 안긴 채 그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입술을 세게 닦았다.그 자식은 질척대지 말았어야 했다.왜냐하면 김도아의 옆자리는 오직 자신만이 차지해야 하니까.그래야만 복수를 할 수 있으니까!그날 이후로 김도아는 점점 성지민에게 빠져버렸고 온 세상이 이 남자로 가득 채워졌다.그녀는 언제나 아이처럼 유치했다. 엄마가 사 온 케이크도 절반은 성지민을 위해 남겨두었고 찰떡이를 안고 별장에서 그를 기다리며 핑계를 둘러댔다.“지민이가 절반 먹고 지방을 나눠 가지면 나머지 절반은 0칼로리야.”그녀는 또 언제나 멍한 구석이 있었다. 성지민이 그녀를 과외해 주느라 침실에서 문제집을 세 장이나 풀어도 김도아는 그제야 비몽사몽 일어나며 눈을 비비고 하품을 해댔다. 그러고는 한다는 말이 고작 ‘우리 뭐 먹을까?’ 였다.그야말로 복을 타고난 아이였다.자신을 아껴주는 부모가 있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며 충성스러운 강아지까지 키우는 더없이 행복한 삶이었다.그에 비해 성지민은 어릴 때부터 그 미친 친척에게 강요당해 길거리에서 구걸해야 했고 일부러 다리를 부러뜨려 가며 불쌍한 척 돈을 구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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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대학 4년 동안 성지민과 김도아는 같은 학교의 다른 과에 다녔다.그는 의료기기 및 장비학을, 김도아는 임상병리학을 전공했다.김도아는 쾌활한 성격 덕분에 어디서든 열성적이었고 친구들에게도 후하게 베풀었다. 대학 시절 그녀는 더 많은 남자들한테서 구애를 받았다.그가 아는 것만 해도 같은 연구실에 벌써 대시하는 남자가 세 명이나 있었다.김도아는 자신에게 대시하는 사람들에게 늘 정중하게 거절했다.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하면서 초대나 선물도 일절 사양했다.어느 한 생일 선물은 재벌 2세가 보낸 무려 1200만 원짜리 하이힐인데 듣기로는 정주에서 공수한 한정판이라 전 세계에 몇 켤레 안 되는 구하기 힘든 신발이라고 했다.김도아는 그 디자인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지만 끝내 상대에게 돌려주었다.그 일 때문에 성지민은 반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서너 개나 뛰었다. 낮에는 수능생 과외를 하고 밤에는 조용한 바에서 서빙에 테이블을 치우는 일을 도맡았다. 겨우 돈을 모았지만 똑같은 디자인은 살 수 없었고 같은 브랜드의 다른 디자인만 겨우 사게 됐다.그는 김도아의 생일 파티에서 그 선물을 건넸다.수많은 선물 중 그 선물은 귀한 편이 아니었다.하지만 김도아는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단독으로 꺼내 품에 꼭 끌어안았다. 파티가 끝난 후에도 집에 가서 부모님께 자랑했다.“엄마, 이거 지민이가 사줬어요. 완전 예쁘죠?”그녀가 부모님과 식사하는 틈을 타 성지민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한진의 외곽, 이끼가 끼어 음침하고 축축한 냄새가 나는 낡은 빌라로 향했다. 막 일을 마치고 돌아온 김효린은 접이식 의자에 앉아 둥근 의자를 탁자 삼아 3천 원짜리 계란 볶음밥을 먹고 있었다.성지민을 본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오빠가 여긴 왜 왔어?”성지민이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생일 선물이야.”김효린은 멍해졌다. 처음에는 기뻐하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으며 목소리까지 작아졌다.“이거 돈 많이 들었지?”“별로 안 비싸.”성지민이 대답했다.그녀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휴대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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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이건 너한테 받은 첫 신발이잖아. 소중하게 간직할 거야. 우리 둘 다 백발이 될 때까지 아껴뒀다가 같이 꺼내 보자. 그때 보면 분명 눈물에 콧물 범벅이 될걸.”그녀는 홀로 그 신발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고 성지민은 벽에 기대어 감동에 젖은 그녀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봤다.나중에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했지만, 비밀 결혼이었다.그녀의 부모님이 여전히 성지민에게 경계심을 품고 있었기에 그가 정식 상속자가 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주고 싶지 않아 했다.그리고 얼마 후, 김도아가 임신했다.그녀의 배가 조금씩 불러 올랐고 성지민은 매일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면 소파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통유리창과 어둑한 스탠드 조명 아래, 김도아는 소파에 기대 그를 기다리다 잠이 들곤 했다. 머리는 느슨하게 묶어 올려서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를 선사했다.성지민이 다가가 포옹하면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아기가 내일 아이스크림 먹고 싶대.”“네가 먹고 싶은 거야 아기가 먹고 싶다는 거야?”김도아는 단호하게 잡아뗐다.“아기가!”성지민은 가볍게 실소를 터뜨렸다. 남편의 정석으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이마에 입 맞추고 나지막이 자자고 속삭였다.어느덧 본인조차도 방금 지은 미소가 연기인지 진심이었는지 구별이 안 되었다.자신의 일생을 걸고 연기하는 성지민, 시간이 하도 길어지다 보니 김도아라는 여자를 혐오하는지 사랑하는지조차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그러던 어느 날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하던 김효린은 은미란과 임신한 김도아가 함께 쇼핑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그 장면은 김효린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녀는 성지민이 효성 그룹 상속자가 될 때까지 기다릴 계획을 접고 차로 은미란을 들이받았다.은미란은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했지만 그 후유증으로 감염이 심각해져 골수 이식이 필요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이식자를 찾기 위해 혈액 검사를 받았는데 그때야 비로소 김도아가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그리고 그때, 사고를 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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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성지민이 떠난 후, 뒤따르던 구도영은 김도아가 있던 곳을 뒤돌아봤다.두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김도아의 입가에 걸려있던 옅은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다.그날 포럼은 꽤 늦게까지 이어졌다.장소가 워낙 외진 곳이라 주변에 대형 공업단지가 많은 편이었다. 배가 고팠던 박서윤은 김도아를 이끌고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편의점 하나 찾지 못했다.결국 옆에 있던 고급스러운 마트에 들어가 거금을 들여 과일 한 접시를 샀다.마트 내부는 절제된 호화로움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블랙과 골드 위주의 색감으로 어우러져 고급스럽고 사치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프런트 옆에는 대형 진열대가 있었는데 안에 든 상품 가격 역시 인테리어에 걸맞았다. 밖에서 400원 하는 생수는 이곳에서 3200원에 팔리고 있었다.박서윤은 또다시 빵 코너로 돌아가는 김도아를 보며 혀를 찼다.“교수님은 몸속에 피랑 지방 대신 온통 몸에 해롭다는 빵 부스러기만 들어있는 거 아니에요?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한창 빵을 고르던 김도아가 살짝 멈칫했다.“어머! 콕 집어줘서 고마워요.”그러고는 돌아서서 몸에 좋다는 통밀빵을 장바구니에 담았다.“...”“교수님, 저 아까 회장에서 누구 봤는지 아세요? 아니 글쎄 구도영을 본 거 있죠...”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김도아에게 정보를 공유했다.“교수님이 미르에서 돌아오신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시겠지만 구도영은 명성이 자자한 부잣집 도련님이에요. 예전에 자기 집 강아지 네 발 모두 애플워치를 해준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실검 1위까지 달렸던 사람이에요.”선반에서 물건을 고르는 김도아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무심하게 대꾸했다.“그래요?”“네! 게다가 성지민이랑 아는 사이더라고요. 이거 완전 다른 차원의 만남 아닌가요... 구도영 같은 막무가내가 성지민 옆에 붙어있으면 주변 공기까지 담배랑 술 냄새로 오염될까 봐 걱정이네요.”1층 모퉁이에서 계산 중이던 구도영은 입꼬리를 비틀며 옆에 있던 직원에게 물었다.“내가 그렇게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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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김도아는 방향지시등을 켜고 천천히 핸들을 돌렸다.“제가 운이 좋아 보여요?”그녀가 웃으며 말했다.“이 행운은 아마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겁니다.”...화요일, 김도아는 오랜만에 온전한 하루 휴가를 맞았다.그녀는 점심까지 실컷 늦잠 자려 했지만, 생체 시계가 정확히 아침 7시 10분에 깨웠다. 김도아는 침대에서 아쉬운 듯 눈을 감고 있다가 일어나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이번 주 금요일 오후에는 하람이가 이틀간 휴식이라 집에 와서 지낼 예정이었다.요 며칠 김도아는 하람이가 키즈와치폰으로 보내온 메시지에 둘러싸여 지냈다.녀석의 카톡 이름은 쭈하람인데 문자가 세 개나 와 있었다.[여사님, 도아 여사님, 뭐 하고 있어요?][너무 보고 싶어요, 엄마. 우리 지금 체육 시간이에요.][나 이번 주말에 집에 가면 엄마가 해주는 족발 먹고 싶어요.]거기에 귀여운 아기 돼지가 엉덩이를 흔드는 이모티콘도 열댓 개씩 보냈다.하람이가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주경찬은 아내가 외도했다는 이유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그때부터 김도아는 주경찬의 부탁으로 주하람을 돌보러 자주 갔었다.처음 분유도 타주고 기저귀도 갈아주며 아이와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냈다.그녀가 하람이를 돌봤다기보다는 하람이가 그녀를 치유하고 상실감에서 끌어내 준 셈이었다.김도아는 이 문제로 주경찬과 진지하게 상의도 했었다. 앞으로 하람이 하나로 충분하니 더는 아이를 갖지 말자고 합의했다.그녀는 오직 주하람에게 모든 사랑을 베풀어주고 헌신할 각오가 돼 있었다.그러니 더는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김도아는 고개를 숙이고 답장을 보냈다.[알았어요, 주하람 어린이.]...메시지를 받은 주하람은 몹시 기뻤다. 아이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키즈와치폰 화면을 껐다.“야, 빨리 좀 치란 말이야!”주하람이 계속해서 농구공을 튕기니 몇몇 친구들이 눈빛을 교환하곤 함께 덤벼들었다.하지만 꼬마 녀석은 무자비한 난폭꾼이나 다름없어 뚱뚱한 몸으로 작고 여린 아이를 밀쳤다. 아이는 채 마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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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그날 오후, 김도아는 막 수술복을 벗었다.네 건의 수술을 연달아 마친 터라 시원한 얼음 콜라 한 캔이 간절했다.뚜껑을 따고 입에 갖다 대기도 전에 주하람의 담임선생님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하람 어머님, 지금 학교로 한번 와주셔야겠는데요. 하람이가 친구를 때렸어요.”김도아는 머리가 핑 돌았다.“네?”“자세한 상황은 오셔서 듣는 게 좋을 것 같아요...”선생님이 ‘싸웠다’가 아니라 ‘때렸다’라고 말한 것은 주하람의 일방적인 가해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이건 꽤 심각한 문제였다.김도아는 급히 의사 가운을 벗고 반 차를 내고서 무거운 마음으로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교무실로 올라가는 길, 담임선생님이 김도아를 맞으며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사실 전에도 몇몇 학생이 하람이가 괴롭힌다고 얘길 했었는데 그때는 말다툼 정도였어요. 이번에는 아예 다른 반 아이를 때렸고 꽤 많은 학생들이 목격했습니다.”담임선생님은 주하람의 가정환경을 알고 있었고 김도아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기에 말을 아끼는 눈치였다.“어떻게 수습하실지... 정 안되면 하람이 아빠가 돌아오신 후에 처리하셔도 괜찮습니다.”하지만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김도아가 갑자기 머리를 질끈 묶고 소매를 걷어붙이고는 걸음을 다그쳤다.담임선생님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하람 어머님... 어쩌시려고요?”김도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말로 안 되면 매로 다스려야죠.”2학년 교무실 문을 열자 쭈뼛거리며 벌서고 있는 뚱보 꼬마가 눈에 들어왔다. 김도아는 주하람을 낚아채 그대로 엉덩이를 걷어찼다.의학을 공부한 사람이니 어디를 때려야 덜 위험하고 더 아픈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두어 번의 킥에 주하람은 엉덩이를 감싸 쥐고 울부짖기 시작했다.“으악... 아파요, 아프다고요!”“아픈 걸 알긴 아네? 친구들 때릴 땐 왜 그 생각 못 했어? 상대도 똑같이 아플 거란 말이야.”주하람은 분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발을 굴렀다.“걔가 먼저 이유 없이 시비를 걸었어요!”“왜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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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주하람은 만 14세가 되지 않았기에 형사 책임이나 처벌을 받지 않는다.경찰에 신고해도 결국 훈계 교육으로 끝날 일이다.은미란의 행동은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터였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경찰에 신고까지 해서 일을 크게 만들려는 목적은 전교에 주하람의 추악한 행실을 알려 퇴학당하게 하거나 나아가 효성 그룹 산하의 모든 학교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다.어차피 한번 폭행 전과가 있는 아이를 받아줄 학교는 없을 테니까.정말이지, 은미란다운 처리 방식이었다.어쩌면 더 독한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김도아는 먼 곳을 응시하며 길게 숨을 토해냈다.시차 문제로 주경찬과는 아직 연락이 닿지 않았다.차 안에서 주하람은 조수석에 웅크린 채 겁에 질려 계속 울고 있었다.아이의 작은 울음소리가 김도아의 두 귀를 바늘처럼 콕콕 찔렀다.너무 속상하지만, 지금은 마음 약해질 때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이 일의 심각성을 깨닫게 해주지 않으면 주하람이 앞으로 더욱 잘못된 길로 갈 수가 있으니 내심 두려웠다.그것이야말로 김도아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학교 건물 1층에 조용히 앉아 있던 성연우에게로 다가간 김도아는 허리를 숙였다.“연우야, 미안해. 이모가 하람이 대신 사과할게.”성연우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나직이 말했다.“이모 속상하시면 제가 할머니께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고 말씀드릴게요.”그 진심 어린 말투에 김도아가 잠시 멈칫했다.“연우는 참 착한 아이야. 하지만 이번 일은 하람이가 잘못한 거고 본인이 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해. 연우 너에게도 마땅히 사과해야 하고.”김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효성 그룹 변호사에게 말을 건넸다.“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곁에 서 있던 변호사는 눈앞의 여자를 훑어보았다.아들을 감싸기는커녕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이동한 뒤, 김도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번 일은 하람이가 잘못했어요. 마땅한 처벌도 받고 신고와 기소 모두 받아들일 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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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그날 새벽, 주하람은 겨우 열이 내렸다.김도아는 병상 옆에 기대어 십여 분만 눈을 붙였다. 하람이가 물을 찾을까 염려하여 깊은 잠에 들지도 못했다.그녀가 침대 옆에 엎드려 있는데 휴대폰 진동음이 또다시 울렸다.이제 더 이상 어떤 전화도 받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 지치고 힘들었으니까.하지만 전화는 멈출 기미가 없이 계속 울렸다.김도아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발신자를 확인했다.[주경찬.]“도아야, 무슨 일 있어?”주경찬의 자상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왜 아무 답장이 없었던 거야?”김도아는 지금 이 질문을 받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고 피곤했다.“일단 아무것도 묻지 말아 줄래?”그녀는 다시 침대 옆에 엎드려 팔에 머리를 묻었다. 자신과 주하람의 희미한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잠깐만, 아주 잠깐만 나랑 같이 있어 줘.”주경찬은 몇 초간 침묵하더니 회의실에서 나와 조용한 곳으로 이동한 듯했다.그는 묵묵히 그녀 곁을 지켰다.한참이나 그렇게 있다가 마침내 물이 흐르듯 평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한 달 안에 꼭 돌아갈게.”김도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서두를 것 없어. 천천히 일 봐, 나 괜찮으니까. 그냥 좀... 경찬 씨가 보고 싶네.”수화기 너머에서 남자가 나직이 웃었다.“이런 말 할 땐 분명 뭔가 있는 건데.”...다음날 이른 아침.주하람의 열이 완전히 내리자 김도아는 그를 데리고 병원을 나섰다.그리고 그녀는 모두가 예상치 못한 선택을 했다.“이따가 네가 해야 할 말을 모조리 하고 나와. 알았지?”김도아는 단호하게 가르치며 주하람의 목도리를 단단히 매주었다.“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겠다고 말해.”주하람은 이제 예전의 늠름했던 기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방금 열이 내린 얼굴은 창백했고 홀쭉해져 있었다.거기에 잔뜩 겁을 먹은 탓에 마치 시베리아 호랑이가 동물원의 순하디순한 새끼 호랑이로 변해버린 신세였다.“네...”주하람은 반성문을 쥐고서 이를 떨며 경찰서로 들어섰다.“경찰관님, 저 자수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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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주하람은 애착 형성이 매우 필요한 아이였다.막 옹알이를 시작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할 때부터 겨우 손을 뻗어 김도아의 품으로 파고들곤 했다.다섯 살이 되던 해, 까만 눈을 반짝이며 촛불을 불기 전 소원을 빌었는데 바로 김도아가 자기 엄마가 되어달라는 것이었다.그녀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고 그날 이후로 김도아는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또한, 평생 엄마로 남아주겠다고 다짐했었다.그녀가 오은주에게 아이를 잠시 맡긴 것도 결국 하람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재계는 결국 정계에 덤벼들지 못한다. 제아무리 재계의 거물이라 해도, 복수심에 불타는 은미란이라 해도 조윤기의 보호를 받는 주하람이라면 감히 손을 대지 못할 터였다.모든 수습을 마치고 김도아는 차를 몰아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꼬박 이틀을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한 탓에 그녀의 컨디션은 말이 아니었다. 회진을 마치고 막 나오려는데 갑자기 눈앞이 빙 돌고 머리가 어지러웠다.“교수님! 교수님!”박서윤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그녀를 간신히 부축했다. 김도아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답했다.“네...”컨디션 난조의 상태에 박서윤이 미간을 확 구겼다.“오후 외진은 제가 대신할 테니 교수님은 빨리 가서 좀 쉬어요.”“알았어요.”김도아는 억지로 버티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태로는 위험하다는 걸 본인도 잘 알기에 간신히 미소를 지으며 박서윤을 껴안았다.“고마워요. 나중에 밥 살게요 제가.”그 말을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물건들을 사무실에 놓아두고 나오는데 걸음이 천근만근이었고 시야가 흐릿했다.도저히 힘이 없어 복도 벤치에 겨우 기대앉았다.남은 의식으로 천천히, 그냥 이대로 잠들자고 생각했으나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살짝 흔들리더니 쿵 소리를 내며 누군가에게 고꾸라졌다.박서윤이 다가가 부축하려다가 상대의 모습을 보고는 문득 멈춰 섰다.성지민이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짚고 있었다. 넓은 품으로 그녀를 기대게 하는 제스처는 수백 번도 더 해본 것처럼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는 김도아의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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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창밖 노을은 붉게 타올라 한 폭의 화려한 그림을 수놓았다.재회 이후로 두 사람이 단둘이 마주 앉은 것은 어쩌면 이번이 처음이었다.“이유가 뭔데?”김도아는 그와 거리를 두고 눈가에 망연한 기색이 스쳤다.“내가 아직 너한테 무슨 이용 가치라도 남은 거야?”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 질문, 그녀는 망설임 없이 쏘아붙였고 이에 성지민은 그저 침묵하며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정말 그렇게 생각해?”“아니면? 달리 이유를 모르겠네. 나처럼 권력도 세력도 없는 절름발이가 성 대표한테 과연 무슨 이용 가치가 있을까?”김도아는 가볍게 야유를 날렸다.“혹시 내가 복수할까 봐 이러는 거라면 걱정 마. 그럴 생각 전혀 없으니까. 한진에 돌아온 이유는 딱 하나야. 다시 새 출발 하고 인생 제대로 살고 싶거든.”아까 침대에 누워있던 자세가 불편했는지 절뚝거리던 다리가 약간 저려서 창가에 놓인 등나무 의자에 몸을 기댔다.성지민은 그녀의 오른쪽 다리를 응시했다. 평소 공격적이기만 하던 그의 시선이 짙어지고 있었다.“다리는 어떻게 다친 거야? 혹시 그때 그 일 때문에?”김도아는 창밖의 눈 부신 햇살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응.”“치료할 생각은 안 했고.”“그땐 돈이 없었고, 나중에 돈이 생겼을 땐 이미 치료할 수 없어졌어.”“혹시라도...”“나 의사야.”김도아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담담하게 웃었다.“내 다리 상태는 내가 제일 잘 알아.”말 그대로 치료가 불가능하단 뜻이었다.설령 희망이 있다 하더라도 그녀는 자신의 남은 가치를 이 다리에 쏟아부을 생각이 없었다.이대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지난 일들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기에...그 추억들은 부러진 이 다리처럼 건드리지만 않으면 아프지도 않았다. 하지만 애써 외면하려 할 때면 그 불완전함과 무력함이 또다시 묻어두었던 고통을 되새기게 만든다.아프다 보니 이제는 무감각해진 것 같았다.그녀의 말을 듣는 성지민은 드물게 침묵을 유지했다.시간은 일분일초 흘러갔다.“김효린과 곧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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